쓸쓸함의 주파수
오츠 이치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당신은 지금 어느 주파수로 누구와 얘기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혼자 라디오 주파수에 맞추고 일방 통행중이신가요?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제목만으로도 왠지 끌리는 책이다. 쓸쓸함이란 주파수는 어떤 것일까...


이 단편집에는 모두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 가장 맘에 드는 단편은 물론 <필름 속 소녀>다. 환상적이면서 미스테릭한 이 작품은 한 남자의 일방적인 얘기다. 남자는 말을 한다. 상대방에게. 우리는 그가 누구와 대화하는지 마지막에 가서야 알 수 있다.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게 만든다. 궁금하게 만든다. 누구에게 얘기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진다. 필름 속 소녀와 더불어. 단편추리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독특한 것은 이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누군가에게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다. 그 주파수는 과연 어떤 식으로 맞추게 되는 걸까...


첫 번째 작품 <미래 예보>에서 소통은 예보가 아닌 생각임을 각인시킨다. 아무런 일도 없이 친구의 말 한마디 때문에 더 소원해진 초등학교 동창인 남녀가 그 뒤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만남 한번 갖지 않았으면서도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가슴속에 담고 있었다는 것은 마치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의 풋내처럼 읽는 내내 다가왔다. 그 소통은 단절이 아닌 그런 소통, 그런 주파수도 엄연히 존재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두 번째 작품 <손을 잡은 도둑>은 손을 맞잡은 도둑과 벽을 사이에 둔 도둑질 당할 사람의 소통을 담고 있다. 재미있는, 그러면서 아이러니한 작품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 밝은 주파수를 내뿜고 있다.


네 번째 작품인 <잃어버린 이야기>는 매일 다투고 소원해진, 그래서 어쩌면 사랑이 식어가고 있는 한 부부가 남자의 교통사고로 인해 신경이 살아 있는 오른팔과 손가락 하나만으로 소통하는 이야기다. 아내는 그 남편의 팔에 피아노를 연주한다. 하지만 남편은 의식만 있을 뿐 자신이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통을 단절한다. 그것은 그에게 자살과도 같은 일이었지만 때론 소통의 단절이 다른 소통을 여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소통에서 어느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 


세상에는 참 많은 주파수가 있다. 쓸쓸함의 주파수, 기쁨의 주파수, 불쾌의 주파수, 즐거움의 주파수... 매일 매일 우리는 어떤 주파수에 자신을 맞추고 살아가고 있다. 다행한 것은 우리가 그 주파수를 맞출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매일 주파수를 맞추고 있었다. 이 작품을 읽고 더 좋은 주파수에 맞춰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쓸쓸함의 주파수는 근사해보이지만 매일 맞출 수는 없을 것 같아 가끔 그리울 때 한 번씩 맞추고 싶다.


작가와의 주파수라는 것이 있어 내가 맞추기만 하면 작가들이 우루루 나와 주면 얼마나 좋을까. 모르고 지나갔을 지도 모르는 책을 알게 해주신 분께 감사드린다. 소통은 이렇게 여기에서도 맞추어져 있다 생각하니 더 많은 전파를 쏘아 올리고 싶은 기분이다. 내 전파를 받아주세요!!!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jedai2000 2006-04-11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얇아서 가볍게 볼 수 있지만, 그렇게 녹녹치만은 않은 단편집인 것 같아요. 무엇보다 굉장히 재미있죠. 오츠 이치 귀엽고 재능있어요. 팬 됐어요..^^;;

물만두 2006-04-11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다이님 맞아요. 이 작가를 어떻게 추리소설 쪽으로 끌어들이고 싶답니다. 그런데 글을 안쓴다니 일본가서 방에 가두고 글을 쓰게 할까봐요^^;;;

비연 2006-04-11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만두님. 미저리 생각나요...^^

물만두 2006-04-11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으헉~ 비연님 흐흐흐 좋은 생각이 났어요~ 일루와요=3=3=3

한솔로 2006-04-11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킹이 짜투리 시간에 심심풀이로 단편을 썼다고 하는데, 오츠 이치도 왠지 그런 식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겨우 단편집 두 개를 봤을 따름이지만 예측불허의 재능이라고 할까요

물만두 2006-04-11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솔로님 그러니까 붙잡으러 가자구요. 이 작가는 글을 써야 한다니까요~^^

비연 2006-04-12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왜 이러심까...허걱! 달아나야징~ 헐레벌떡~~~

물만두 2006-04-12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을 잡아서 감금하고 작가 대신 글쓰기 시킬라고요^^ㅋㅋㅋ

부리 2006-04-12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어릴 적에 감전된 적이 있어서 님의 전파를 받아들이기 무섭네요...

물만두 2006-04-12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무쓴쏘리~ 제 전파는 감전없는 전파에욧. 받으세요~^^
 
사랑의 추구와 발견
파트리크 쥐스킨트.헬무트 디틀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신화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모든 사랑은 사랑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하고 아름답다. 세상엔 각양각색의 사랑이 있고 어쩌면 어떤 사랑은 추하고 잔인한 모습일지 모르지만 가끔 그것이 사랑의 껍데기를 뒤집어썼다는 이유로 다시 바라보게 하기도 한다.


솔직히 말해보자. 이 작품 속에서의 미미와 비너스의 사랑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사랑처럼 대단하게 보이는지를. 아니다. 하지만 이 사랑이 그렇다면 세상 모든 사랑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사랑이다. 파트리스 쥐스킨트는 위대한 신화적 사랑을 보편적 사랑으로 끌어내렸다.

 

그가 말하고자하는 것은 어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승에서 다시 만나 현실의 세계로 올라오면서도 미미는 비너스의 살이 빠진 엉덩이에 대해 불평을 하고 비너스는 그 말에 발끈한다. 마치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의 존재를 의심했듯이. 그런데 그런 것이 사랑이다. 있을 수 있는 인간의 사랑은 그런 것이다. 의심하고 질투하고 비난하고 상처주고 그러면서도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 그것이 살아있는 신화적 모든 사랑인 것이다.


피천득의 인연이 생각난다. 아니 만났으면 좋았을 거라는 마지막 말에서 그래도 만나 그런 감정이라도 느껴보는 것이 더 좋지 않았느냐고 되묻고 싶다. 사랑은 발견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사랑을 표현하고 나타낸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근본적인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사랑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비극적이거나 애절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사랑에 품고 있는 환상 때문이다. 낭만이라는... 그런 모든 것을 제거하고 남는 찌꺼기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그것도 사랑이다.


우리는 지금 사랑을 고운체에 걸러내고 있다. 아래에 걸러진 고운 입자를 가질 것인가, 위의 거친 걸러지지 않은 입자를 가질 것인가, 선택은 사랑하는 이들의 몫이다. 미미와 비너스의 사랑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에 비견될 수 있는데 그 어떤 것을 선택한다 해도 사랑은 신화가 될 것이다. 당신은 지금 신화를 만드는 중임을 잊지 말기를...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04-10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쥐스킨트가 책을 썼군요!


이렇게 호들갑스럽게 댓글다는 걸 보면 쥐스킨트가 `제 독자는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할 것 같지만 그래도 너무나도 반가워서 그만...

물만두 2006-04-10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아직도 모르셨다니~^^

비로그인 2006-04-11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향수는 그렇게 주구장창 읽고도 ...지금 알라딘에서 검색해보고 혼자 게으름꾼 독서가가 된 기분에 허하게 앉았답니다. 흐흣. 그래도 읽을 책들이 있어 좋아요.

물만두 2006-04-11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죠. 그래도 읽을책을 발견했다는 기쁨은 어디에도 비할 게 안되죠^^

비로그인 2006-04-11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트리크 쥐스킨트...언제 읽고 안 읽었는지...기억이 가물가물...추리의 대가에 로맨스의 대가까지 군림 하시겠군요.

물만두 2006-04-16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개비 아우 늦게 댓글을 봤구려~ 음... 쥐스킨트책은 몽땅 본다오^^;;;
 
녹턴
세실 바즈브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교롭게도 오늘은 장국영의 기일이다. 언제나 나는 그가 깊은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을 하려 한다. 자신이 좋아하던 배우가 세상을 떠나도 아픔이 남는다. 그런데 자신의 생에서 가장 소중한 무언가 하나씩을 바다로 인해 잃어버린 사람들이라면 그들 마음속에는 어떤 것들이 남아 있게 될까...


<페리의 밤>은 페리호에서 연주를 하던 콘트라베이스 주자가 난파한 배에서 함께 연주하던 동료를 잃고 혼자 살아남아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다. 떠날 수도, 남을 수도, 연주할 수도, 그렇다고 추억할 수도 없는 한 남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잃고 떠나는 여자의 뒷모습만을 바라볼 뿐 여전히 그곳에 남는다. 그는 왜 떠나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한 것일까. 사는 동안 누구나 상처 하나쯤 품고 산다. 그 상처가 아무는 이도 있고 평생 벌어진 채 덧나는 이도 있다. 아물면 아무는 대로, 덧나면 덧나는 대로 삶이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 그때 마지막 연주로 모든 것이 사라졌듯이 꿈이 사라지면 그 당시 그것이 꿈이었는지 행복이었는지 몰랐다 하더라도 바다가 삼킨 것을 뱉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 끝나버린 야상곡을 리플레이할 수 없듯이.

 

<등댓불>은 난파하던 배를 본 등대지기의 이야기다. 그는 비로소 자신의 삶이 사라짐의 연속임을 깨닫는다. 이별과는 또 다른. 바다가 삼키듯이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떠밀려오고 떠밀려가는 가운데 자신만이 오롯이 남아 탐조등으로 그들을 비추고 있다는 두려움과 마주하고도 그는 다시 등대에 오른다. 삶은 선택이 아닌 깨달음이라는 것을 알려준 바다를 보러.

 

<바다로 보낸 병>은 아들을 바다에 잃은 노부부가 바다에 던진 병에 대한 이야기다. 진부한 얘기일 수 있지만 이 얘기는 소통에 대한 이야기다. 이해와 화해에 대한 이야기다. 한 번도 자식을 이해하지 못했던 노부부가 십년 만에 자식을 이해하고 그 꿈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지금 소통부재인 시대에 반목만이 남은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알려준다. 우린 과연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내면을 잘 들여다보고 있는 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기나 하는 것인지. 늦기 전에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바다는 어쩜 삼킨 것을 뱉어내어 주는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인지도...

 

<혼자라면>은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바다에 묶인 형제에 대한 이야기다. 바다는 시커먼 속을 알 수 없는 눈으로 우리를 두렵게 하듯이 우리 또한 우리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것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그 밤바다에 우리는 없었다. 각자 혼자만이 있었을 뿐이다. 아버지의 욕심과 어머니의 원망과 아내의 절망이...


바다는 누군가에게는 꿈이고 누군가에게는 공포다. 바다는 누군가에게는 삶이고 누군가에게는 죽음이다. 그 바다에서 삶이라는 야상곡이 흐른다. 그 야상곡이 어떤 곡인지, 내 바다에서 흐르는 내 야상곡은 어떤 곡인지 한번 이 작품들을 읽으며 잔잔히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작은 네 편의 단편이지만 소품의 피아노곡의 아름다움을 무시할 수 없듯이 이 단편들의 호흡도 깊이 각인될 것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Kitty 2006-04-01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오우 제목이 뿅~ 가게 멋져서 들어와봤더니 리뷰도 멋지네요

물만두 2006-04-01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티님 읽어보세요. 아마 원서로 읽으심 더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플레져 2006-04-01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곧 읽어보려구요... 만순님이 쓰셔서 그런가 리뷰가 더 좋아요~ =3=3=3

물만두 2006-04-01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아니죠? 다 알아요~ 조사하면 다 나옵니다~ 맘씨 고운 플레져님이 그러실 분이 저얼대 아닙니다. 흥~

하늘바람 2006-04-01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국영 참 안타까운 사람같아요

물만두 2006-04-01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슬퍼요 ㅠ.ㅠ

미미달 2006-04-01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정말 잘 쓰셨어요. 멋졍 멋졍 ㅋ

물만두 2006-04-01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미달님 읽어보세요~
 
비밀 - 나와 나 사이에 숨겨진 열두 가지 이야기
요시다 슈이치 외 지음, 유은경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평범한 사람들에게 무슨 비밀이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묻고 싶었다. ‘자, 비밀 있으면 털어놔봐.‘ 이렇게 누군가 얘기를 한다면 나는 어떤 얘기를 할까. 대답해주는 이가 없으니 내가 나에게 대답을 해보기로 했다. ’내 비밀은... 에이, 별거 아냐.‘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이 이렇지 않을까. 아주 심한 비밀이 아니라면 말이다. 진짜 숨기고 싶고 숨겨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면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비밀이라고는 여기에 등장하는 이런 얘기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결혼을 앞두고 과거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런 비밀은 잘못 전개되면 진짜 추리소설의 소재가 될지 모르지만 서로가 이해하고 모르게 지나간다면 먼 훗날 나이가 들어 저녁놀을 바라보며 다정히 앉아 얘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사실은 말야, 여보...”하면서 그럼 서로 웃으면서 지난 일이고 지금 행복하잖아 하게 될 것이다. 이 정도 비밀 없이 일생을 살아가고 아내, 또는 남편의 작은 비밀 하나 모르는 부부가 있을까 싶다. 서로 감싸주고 감춰주고 하면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소중하고도 사소한 비밀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것을 작가는 제목으로 나타낸 것이리라.


한 사람에게 불행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행복일 수 있다. 삶이란 늘 그렇다. 내가 엄청난 불행 속을 헤매고 있는 그 순간, 누군가는 기뻐서 똑같이 눈물을 흘린다. 눈물의 의미는 다르지만 우리는 인생이라는 굽이굽이를 돌면서 이렇게 살게 되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고 나와 너가 교차하고 그것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엇갈리기도 하고. 그렇다고 내 불행으로 인해 남의 행복을 가로 막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언제나 불행과 행복은 교차해서 온다. 반드시. 그래서 누구에게나 삶은 공평한 것이다. 닫힌 문을 사이에 두고 한 남자는 불행하고 다른 남자는 행복하다. 어쩜 다시 닫힌 문을 열고 불행한 남자가 행복을 만끽하는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축하하오. 그 이름, 참 좋은 이름이라오.” 하고 말이다.


삶에서 만나고 헤어짐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별하는 사람이 있고 만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모두가 특별하게 시작을 하고 어쩌면 특별하게 끝날지도 모른다. 회자정리라 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이 있는 법. 인간사가 그렇게 이루어져 있음을 그러므로 이별을 슬퍼하지 말고 만남을 넘치게 기뻐하지 말지니. 언제나 사람의 인연이 이렇듯 좋게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 해도...

 

일 년에 딱 한번 전화를 하던 사람과 일 년에 딱 한번 전화를 받던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의 만남은 어떤 것이었고 그들의 헤어짐은 어떤 것이었을까. 많지도 않은 전화통화의 기록은 애잔하게 사랑의 울림으로 남는다. 떨리는 손으로 일 년에 딱 한번 전화를 하던 모습, 그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화를 받던 사람은 얼마나 가슴 설렜을까. 비록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누군가 잊지 않고 해마다 전화해주는 이 한 명 정도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인생은 넘치게 황홀하지 않을까...

 

인생은 꿈이다. 우리 모두 지금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른다. 깨어나면 불행한 사람은 행복할지도 행복한 사람은 불행할지도 모른다. 둘 중 하나라면 말이다. 하지만 인생은 그 두 가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린 불행 속에서도 행복을 발견하고 살고, 행복 속에서도 불행을 느끼며 우울한 것이다. 이 세상 누가 감히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으랴. 모든 것은 바람처럼 스쳐지나 가는 것인 것을. 연연하는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검정 전화>라는 호리에 도시유키의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사라져버린 드르륵 촤르륵 소리가 나던 돌리는 전화기. 0부터 9까지 구멍이 나 있어 손가락을 걸어 돌리고 장난감이 없을 때는 그것을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전화가 있었다는 것도, 어떻게 사용하는 지도 모른다지. 아무리 핸드폰 컬러링이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고 해도 지난 날 우리의 추억을 대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추억 속에서 느끼는 아련한 포근함도. 지금도 얼마나 많은 것이 우리 곁을 스치고 사라지는 지. 그것이 진짜 비밀이 아닐까. 그렇게 우리가 알게 모르게 사라지는 것들이.

 

이 단편집은 짧지만 괜찮다. 행간을 읽어보면, 거기에 내 비밀을 조금 보태면, 더 근사한 무엇이 되어 마음에 남는다. 어릴 적 친구도, 연인도, 전화만으로 주고받는 손님과 고용인일지라도 동시에 무언가를 느낄 수도 있고 동시에 상반된 것을 나눌 수도 있다. 안도감을 주기도 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슬픔을, 기쁨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어떤 비밀을 원하는 가? 이런 작지만 아름답고 소중한 비밀들 아닐까. 거창하고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그런 상상 속에서나 일어날 일들, 동화 같은 이야기들 말고.


이 작품이 괜찮은 건 이 때문이다. 일상의 스쳐 지나감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오늘도 바쁜 우리는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얼마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잊어 가는지도 모르며 살지 않았던가. 밤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 좋은 만남과 즐거운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 작품에서의 사소한 비밀처럼 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ephistopheles 2006-03-24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 비밀 있으면 털어놔봐.‘ 이 말에 대한 저의 대꾸는 언제나.
`나 사실 지구인이 아니야....' 입니다..^^ 추천들어갑니다~!

물만두 2006-03-24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피스토님 쉿! 그건 절대 말하면 안되는 극비잖아요~ 우리끼리 얘기하는 건데 여기에도 우리 동족이 좀 있어요~ 쉿!!!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소피 카사뉴-브루케 지음, 최애리 옮김 / 마티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한 설교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어떤 이들은 신을 발견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러나 더 큰 책이 있으니 창조된 세계 자체가 그것이다. 사방 위아래를 둘러보고 눈 여겨 보라. 그대가 발견하고자 하는 신은 먹물로 글씨를 쓰는 대신 지으신 만물을 그대 눈앞에 두신 것이다.”라고. 여기에서 이 책의 제목이 나온 듯하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은 내가 원하던 그런 책은 아니었다. 나는 치우침 없는 자세를 가지고 글을 쓰는 사람을 좋아한다. 자신들만의 우월성을 내포하고자 하는 책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차라리 이 책의 제목이 중세 시대까지의 성경의 발달사라거나 기독교 서적에 포함된 글자 문양과 그림들의 다양한 변천사였다면 이해했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라고 하면 그 세상은 어느 세상이란 말인가? 바로 서구의 중세를 말하는 것이다. 그럼 프랑스 작가가 쓴 책이니 프랑스를 중심으로 쓰여 졌음은 이해하지만 다른 나라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이런 물음만이 가득하다.


예전에 오르한 파묵의 작품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에서는 세밀화가가 등장한다. 아마도 그 세밀화가가 여기에서 말하는 채식사가 아닌가 싶다. 그들이 나아가서 화가들과 경쟁하게 되었다고 하니 화가의 원류는 기독교서, 성경에 그림을 그리던 사람들이 시초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채식사들은 수도사들의 일이었기에 이름을 남긴 이가 드물다. 또한 이런 아름다운 책은 매우 값비싸서 일반 대중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책이었고 교회의 수도사들과 귀족들의 전유물이고 황제나 황후, 대공의 후원을 받지 못하면 제작할 수 없게 되므로 희소성은 이루 말 할 수 없다고 하겠다.


책을 펼치면 내용이 무엇이든, 그림이 어떤 뜻을 담고 있든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만 봐도 족한 책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것만으로 족하지 않다는 것을 책을 덮으면서 생각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철저하게 파피루스의 기원이 어디라는 것, 어디에서 들여왔다는 것은 알리면서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적고 있다. 어찌 받지 않을 수 있을까. 문명이란. 문화란 돌고 도는 것이라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같은 기독교 국가 간의 전쟁을 통해서 빼앗거나 배워온 것에 대해서는 말하면서 - 독일의 성서가 프랑스에 있는 이유 등 - 아랍권에서 들어오거나 혹은 채색 물감에서도 파란색을 얻기 위해 동방에서 수입해야 했기에 비쌌다고 말한 청금석이 있었음에도 그 물감 원료만 들여오고 같이 문화는 들어오지 않았을까 심한 의심을 갖게 한다.


작가가 이 책을 쓴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이 한 권의 진정한 책이 되기 위해서는, 또한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조물주가 말씀하신 자연이라는, 만물이라는 진정한 책을 얻기 위해서는 독선과 아집, 배타적 배척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진정 신이 행하시고자 하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마는 분명한 사실은 이런 화려한 서적의 등장도 아니요, 보석으로 치장한 겉포장의 물질적 상징도 아니고 그것들을 소중히 보존하면서 남의 나라 것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 하는 행위 또한 아닐 것이다.


아름다운 책 한 권을 잘 읽고 체한 듯 가슴이 답답한 것을 그들은 알까. 지금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많은 문화유산들이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말이다. 다시 한 번 나는 프랑스적인 우월주의와 다른 나라에 대한 무시를 느껴야만 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6-03-20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03-20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생각하고 있었어요^^

sooninara 2006-03-20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에선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면서 한국의 영향은 없다고 우기잖아요.
그나마 큰나라에서 들여왔다고 하는게 더 좋다는거죠.
그거 볼때마다 웃기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인들도 몇대조 할아버지가 어쩌고 하면서 뿌리 찾기 해서 영국 귀족 나온다고 자랑하는거 보면....프랑스뿐 아니라 그런 우월주의는 제국주의 나라들이 심한것 같아요.

물만두 2006-03-20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아우 세상이 다 그런데 책까지 그렇게 쓰진 말았음 좋겠는데 참... 읽은 나를 탓해야지 ㅠ.ㅠ

반딧불,, 2006-03-20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프죠 뭐.
이제 괜찮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물만두 2006-03-20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그럭저럭입니다~

비로그인 2006-03-21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소개에 유럽중세의 책문화라고 소개했으니 흠은 아니죠. 제목때문에 저도 읽으면서 동양은 왜 없을까 했는데 동양은 우리가 써야죠. 얇은책에 너무많은것을 담으면 집중도가 떨어지고 산만해집니다. 화려한 도판을 보는 시각적인 효과가 이책의 장점입니다.
오르한 파묵의 <내이름 빨강>읽었는데, 유럽이 투르크를 이긴 이유중의 하나가 인쇄술때문이라고 합니다. 19세기까지 투르크는 필사를 했으니 지식보급이 늦은거죠.

물만두 2006-03-21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뽀뽀님 가끔 제목에 흥분할때가 있어요. 뭐 그들의 성향이고 시각적인 면에서는 돋보이는 책인데 작은 글귀 하나가 약간 그랬습니다. 마지막에요. 그리고 책 초기에 파피루스가 전해진 것은 이슬람권이니 뭐 오고 가고 했을것이라는 거죠. 지식면에서는 그들이 중세 이전에 이미 우월했구요. 인쇄술이라면 그렇지만 필사라면 늦은 건 아니죠. 또한 세상을 너무 자신들 중심으로 본다는 점이 그렇다는 거죠. 중국도 세상이 자기들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했으니 같은 시각에서 그렇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