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교양서로서는 드물게도 국내 필자에 의한 단독 저작이 나왔다. 다루는 시기도 현대미술이 아니라 16-17세기 서양미술, 종교개혁 시기의 '시각문화'다(전문저술가인 노성두씨의 책들을 참고해볼 수 있지만 대부분이 입문서나 소개서이다). 신준형 교수의 <천상의 미술과 지상의 투쟁>(사회평론, 2007)이 그것이고 '가톨릭 개혁의 시각문화'가 그 부제이다. 알고보니 나도 갖고 있는 책 <파노프스키와 뒤러>(시공사, 2004)의 저자이다. 드물게도 장문의 리뷰기사가 있기에 스크랩해놓는다.

세계일보(07. 06. 23) 르네상스, 바로크 명화를 읽는 또 하나의 눈!

‘천상의 미술과 지상의 투쟁’은 개신교와 가톨릭이 벌였던 이념투쟁의 역사가 당시의 시각문화를 어떻게 형성했는지 묻고 있다. 16세기는 르네상스의 시기이자 또한 종교개혁의 시기였다. 종교개혁이 1500년 교회의 전통에 중대한 의문을 제기한 이후 두 세기 동안 가톨릭미술은 자신이 그려내는 천상과 지상의 모습을 재확립하고 교회의 의식과 신도들의 신앙수행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로 기능함으로써 결국 가톨릭의 교세를 복구하는 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것이 이 책의 주제다. 종교개혁의 도전 이후 가톨릭미술이 전개되어 나간 방향과 양상, 즉 가톨릭개혁의 미술사인 것이다.

종교미술은 양식분석이나 도상해석보다는 종교문화의 시각적 분야로서 그 기능의 측면에 주목하여 이해되어야 한다. 모든 종교는 시각체험의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시각체험은 영성에 도달하기 위한 강력한 방법론으로 흔히 사용된다. 바로 이러한 종교의 시각 영역이 가장 잘 표현되는 곳이 종교미술이다. 따라서 가톨릭개혁의 미술도 사실 미술이라는 말보다는 가톨릭의 시각체험, 시각문화라는 용어로 불러야 더 적합하다.

▲명화(名畵)라는 단어에서 악센트는 이름에 있을까 아니면 그 그림에 있을까?
르네상스와 바로크는 흔히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정점의 시기로 생각된다. 따라서 미술사를 배우지 않은 사람들도 라파엘, 카라바조, 티치아노, 루벤스 같은 거장들의 이름쯤은 상식으로 안다. 또한 이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에는 ‘미술’이 아니라 ‘이름’을 보려고 찾아온 관람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르네상스 바로크 미술은 박물관이라는 일종의 보물창고에서 삼엄한 경비와 보안장치의 호위를 받으며 절대적 미의 상징이자 값을 매길 수 없는 문화재로서 군림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와 장치들은 르네상스 바로크 미술을 무언가 고귀한 것, 초월적인 것으로 만든다. 박물관은 신전이며 이 작품들은 시공을 초월한 미의 신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기독교 주제의 작품들을 박물관의 보안장치와 인공조명의 무대에서 떼어내 당시의 시대로, 원래의 장소로 돌려놓고 바라본다. 16-17세기, 종교투쟁의 시기에 만들어진 이 작품들은 미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들이 말해주는 것은 천상의 구원을 향한 열망과 투쟁으로 점철된 인간의 삶이다. 구원과 투쟁, 천상과 지상이라는 양극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공존하는 패러독스의 세계,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 바로크의 작품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당시의 세계이고 삶이다.

▲천상의 구원을 향한 열망과 투쟁으로 점철된 인간의 삶
이 시기 미술가들은 예술가라는 자의식과 종교투쟁의 사회가 부과하는 요구 사이에서 저항하기도 했고 타협하기도 했다.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는 교회와 세속 군주라는 거대 권력을 업고 예술적 성취와 세속적 출세 두 가지를 함께 추구했던 화가들이다. 이들에게 권력의 요구는 기회를 의미했다. 루벤스는 교회와 세속 권력 모두로부터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던 행운아였지만 그가 경탄해 마지않았던 천재 카라바조는 어느 쪽에서도 환대 받지 못한 채 피로와 고독 속에 떠돌다 생을 마쳤다. 미술의 자연주의적 호소력을 추구했던 베로네제는 종교재판의 권위 앞에서 자신의 그림 제목을 바꾸어야 했지만, 그러나 그림은 지켜냈다.

한편 엘 그레코와 보로미니처럼 종교적 열정에 영감을 받아 극단의 환영주의를 추구했던 보다 ‘예술가적인’ 인물들도 있었다. 이처럼 명화의 판테온에서 지상으로 내려진 작품들에서 우리는 당시의 삶을, 당시의 고통과 희열을, 좌절과 성취를 읽는다. 결국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거장의 ‘이름’들이 아니라 이들의 그림으로 결정(結晶)화된 당시의 삶이다. 이들의 그림을 통해 우리도 당시의 고통과 희열을 시각으로 체험하려는 것이다.

▲국내에서 처음 출판된 종교개혁▪가톨릭개혁의 미술사
16-17세기 가톨릭개혁의 미술사는 우리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당시는 유럽이 제3세계로 뻗어나가던 시기였고, 특히 남미와 동양으로 진출했던 이들이 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가톨릭은 중국과 일본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당시 제3세계 전도의 첨병은 예수회였으며, 이들은 이미 16세기에 중국과 일본에 왔다.

예수회는 작은 나라인 조선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18세기에 조선의 지식인들은 가톨릭을 서학이라는 이름하에 중국에서 들여왔다. 이로써 조선은 전 세계에서 자발적으로 가톨릭을 받아들인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18세기에 가톨릭이 조선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개신교에게 유럽의 상당 부분을 잠식당한 가톨릭이 제3세계에 영토를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중국 선교에 엄청난 노력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가톨릭이 들어왔고, 개신교의 유입은 더욱 늦었으나, 현재 동양에서 기독교가 확고히 자리 잡은 나라는 중국도 일본도 아닌 한국이다. 도대체 왜 한국에서 기독교(개신교와 가톨릭 모두)가 그토록 번성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역사적․사회학적 해석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독교 신학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구원의 메시지가 이 땅의 문화에 결여되어 있던 그 무엇인가를 채워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기독교가 유럽을 떠나 전 세계로 퍼지는 계기가 되었던 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의 문제, 또 그와 결부된 미술의 문제는 기독교가 이미 18세기에 들어와 굳건히 자리 잡은 한국의 역사나 문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뿌리내리고 존재하는 한 종교개혁, 가톨릭개혁의 시각문화는 ‘서양인’, ‘타인’들의 문화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역사와 문화의 연장선상에서 우리의 현재로 이어지는 보편적인 유산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보편적 유산으로서의 16-17세기 유럽 기독교미술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다.

천상의 황홀경과 지상의 투쟁 사이에 너무나 먼 간극이 존재하듯이 르네상스 이래로 이들이 품게 된 예술가라는 자존의식과 혼란의 사회가 부과했던 요구 사이에도 화해하기 힘든 거리가 있었다. 이들이 져야 했던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무게는 이들에게 짐과 멍에이면서 동시에 성공과 출세의 기회이기도 했다. 실제로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베르니니, 루벤스 같은 이들은 이 기회를 영리하게 붙잡아 미술사에서 전무후무한 지위와 권력을 누렸다. 자신의 공방에 들어온 12살 소년 틴토레토를 열흘 만에 쫓아낸 거장 티치아노의 비정함, 소년의 재주와 천재성에 경악한 티치아노는 호랑이 새끼를 기를 수는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구원의 약속과 세속적 성취가 공존할 수 있었던 시기, 성공과 명성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예술의 이상이 공존할 수 있었던 패러독스의 시기가 바로 르네상스였고 바로크였다.

이 책이 출발하고 있는 시점인 하이-르네상스는 전통적인 미술사에서 너무나 이상화되어 있는 시기이다.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예술가라는 자의식이 깨어나고, 인문주의의 부흥으로 인간 존재의 존엄과 아름다움이 글과 그림으로 표현되고, 결국 인류 문명의 최고 정점으로서 이후의 온갖 세대와 제 민족들이 본받을 영원불멸의 규준canon으로 남게 된 이상의 시기가 르네상스라는 것이 고전적 이론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르네상스는 자본주의와 식민주의, 유럽중심주의의 시작이며 무한경쟁과 물질적 성취가 긍정되었던 매우 냉혹한 시기이다. 화가들 개개인의 삶도 리얼리즘의 극치다.

이 책은 신비화된 르네상스를 지상으로 끌어내린다. 이상의 시대라기보다는 투쟁의 시대로서의 르네상스를 조명하고 있다. 르네상스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의 미술사를, 종교투쟁의 시각체험을 글로 재현한 것이다.

저자 신준형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미술사 석사학위를, 위스콘신 주립대학에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명지대학교 인문대학 미술사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조정진 기자)

국민일보(07. 06. 23) ’천상의 미술과 지상의 투쟁’낸 신준형 교수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서양 미술 관련서는 대부분 초보자용 교양서다. 좀더 깊이 있는 책을 보려면 번역서밖에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신준형(38·사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천상의 미술과 지상의 투쟁’(사회평론)을 내놓았다. 16세기 르네상스와 17세기 바로크의 미술사를 추적한 이 책은 이상화된 당시의 미술을 종교문화, 종교체험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르네상스 하면 인문주의나 인본주의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사실 이 시기는 종교개혁의 시기입니다. 당시 그림들의 70% 이상은 종교화거든요. 인간에 대한 재발견이 이뤄지고 인체의 묘사가 자유로워졌다지만 이들 그림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신앙심을 호소하는 선전선동용입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는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정점의 시기로 생각된다. 미술사를 배우지 않은 사람들도 미켈란젤로, 라파엘, 카라바조, 티치아노, 베르니니, 루벤스 등 거장의 이름은 상식으로 알 정도. 또한 이들의 작품은 지금도 수많은 박물관에서 문화재로 우대받는다. 하지만 저자는 이 작품들은 ‘미’에 관한 것이 아니라 ‘천상의 구원’을 향한 인간의 열망과 투쟁의 결과라고 지적한다. 루터로 시작된 종교개혁 이후의 가톨릭 미술이 바로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개신교와 가톨릭이 벌였던 이념투쟁의 역사가 당시 시각문화를 어떻게 형성했는지 초점을 두었어요. 종교화라고 하면 중세시대의 아이콘(성상화)을 떠올리지만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역시 그 앞에서 기도하거나 명상하기 위해 그렸어요. 이것이야말로 당시 그림의 본질을 이해하는 길입니다.”

이 시기의 화가(조각가)들은 예술가라는 자의식을 가진 인물들로 미켈란젤로 등 몇몇 인물들은 불굴의 의지를 지닌 천재로 묘사된다. 하지만 저자는 당시 예술가들이야말로 교회와 군주라는 거대 권력을 업고 세속적 출세를 추구했던 부류하고 역설한다.

당시 예술가들은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게 되면서 무한경쟁의 시대로 들어갔습니다. 그 경쟁에서 살아남은 예술가들이 지금 우리가 아는 거장들입니다.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루벤스 등의 일생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정치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기독교가 굳건히 자리잡은 한국에서 르네상스와 비로크 미술은 더 이상 이질적인 문화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서양인(타인)들의 문화가 아니라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우리의 현재로 이어지는 보편적 유산입니다.”(장지영 기자)

07. 0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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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대학원신문(제152호)의 특집기사를 자료삼아 스크랩해놓는다. 출처는 학술저널 담비이다. 편집자의 말은 아래에 옮겨져 있는데, 초점은 지젝이 이해하는 라캉과 맑스가 어떤 라캉이고 어떤 맑스인지를 살펴본다는 것이다. 자세한 정독은 다음으로 미뤄두지만, 이제 이 정도 주제에 대해서라면 국내에서 연구논문들이 쏟아져나올 때도 됐다는 생각이 든다. 조만간 <시차적 관점>이 마저 소개된다면, 우리는 그의 주저들을 다 갖게 될 테니까 한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지젝을 읽는 일로도 한 해가 짧다니!

이번 호 <인문학술>에서는 슬라예보(*슬라보예) 지젝의 논의들을 살펴본다. 지젝은 셸링과 칸트, 헤겔 등의 독일 철학에 바탕을 두고 라깡을 재해석하면서 이를 맑시즘과 결합해 정치, 사회, 문화 형식에 대입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지젝이 해석해 낸 라깡과 맑시즘을 지젝 이전의 다른 이론가들의 그것과 비교해보고자 한다. 본고의 이러한 논의를 통해 지젝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젝의 논의가 가지는 함의와 영향까지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편집자주]

경희대학원신문(07. 06. 21) 칸트에서 헤겔로 혹은 초자아를 넘어 사랑으로

시차(parallax)라는 간극

동일성과 차이의 ‘낯선’ 동거. 동일성으로서의 차이, 차이로서의 동일성. 동일성과 차이가 겹치는 곳. 동일성도 차이도 아닌 동일성-차이라는 괴물이 숨쉬는 공간에서 지젝은 철학사를 회집한다. 대립구조가 배제하고자했던 ‘낯선’ 괴물은 이미 구조 내부에 있는 ‘친밀한’ 이웃이었다. 낯설고도 친밀한 괴물-이웃. 스핑크스의 질문에 인간이라고 답하는 오이디푸스는 이미 자신이 스핑크스라는 사실을 긍정하고 있다. 넷과 셋과 둘이 하나 속에 있는 혼합괴물. 차이는 외부에서 내부로 이동한다. 인간과 괴물을 구별하는 외재적 차이가 아닌 인간내부의 균열. 오이디푸스의 시선 이전에 이미 오이디푸스 속에서 오이디푸스를 바라보는 스핑크스의 응시(gaze)가 있다. 봄과 보여짐이 ‘함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함께 있기 때문에 시선과 응시의 간극은 결코 메꾸어질 수 없다. 대립이나 모순으로 해소될 수 없는 내부적 분열. 바로 이것이 시차라는 간극이다.

차이의 철학은 시차라는 간극을 통해 동일성의 철학 한 가운데에서 이미 발생하고 있다. 칸트의 부정판단과 무한판단의 간극은 정신분석이 탄생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나는 죽었어’(I am dead)의 서술어를 부정하면 ‘나는 죽지 않았어’(I am not dead)라는 부정판단이 되지만 서술될 수 없음을 긍정하게 되면 무한판단에 이르게 된다 ‘나는 죽은것도 산 것도 아니야’(I am  undead) ‘나는 죽었어’라고 말하는 살아있는 나. 긍정과 부정이 시차적 간극으로 존재하는(동시에 발생하는) 공간에서 칸트는 뱀파이어가 된다. 그는 유령을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무한판단은 결국 대립구조가 사유할 수 없는 ‘사이공간’, 대립항들의 내부적 균열을 초래하는 불가능한 공간을 불러낸다. 라깡은 이 재현불가능한 공간을 실재(Real)라 부른다.



칸트의 이율배반은 라깡의 실재를 이미 선취함으로써 정신분석의 공간을 개시한다. 대칭이나 모순과는 달리 이율배반은 모두를 긍정하거나 부정할 때에만 해소될 수 있다. ‘모든 것은 인과론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와 ‘자유는 인과론을 넘어선다’의 이율배반은 둘 모두를 긍정함으로써 해소된다. 자유를 예외적인 공간으로 배제할 때 인과론적인 우주는 전체를 형성할 수 있다. 예외성을 통한 전체 또는 보편성의 확립. 라깡의 남성적 우주.

반면 칸트는 ‘세계는 유한하다’와 ‘세계는 무한하다’ 모두를 부정함으로써 유한/무한이라는 대립구조로 사유될 수 없는 기원적 사이공간을 불러낸다. ‘세계는 (전체로)존재할 수 있는가?’ 전체를 가능하게 해주는 예외적 공간이 거세될 때 또는 예외적 초월성이 전체 속으로 들어와 내부적 균열을 일으킬때 세계는 비전체(Not-All)가 된다. 라깡의 여성적 우주가 탄생하는 것이다. 예외를 통해 보편을 획득하는 남성의 우주와는 달리 여성의 우주는 보편/특수의 ‘사이공간’인 특이성들(singularities)의 집합이다. 실체화할 수 없는 빈공간인 코기토(cogito) 주체를 발견한 후 서둘러 그것을 생각하는 실체(res cogitans)로 바꾸는 데카르트처럼 칸트 역시 비전체를 지시하는 여성적 우주 앞에서 머뭇거린다.



지젝이 보기에 헤겔은 칸트를 전복하거나 지양하는 것이 아니라 충실히 반복(또는 완성)할 뿐이다. 그러나 헤겔의 칸트에 대한 충실성은 칸트의 결핍, 즉 칸트체계에서 이미 발생하고 있지만 아직 오지 않은 가능성으로 지시되는(이점에서 지젝은 데리다 역시 칸트의 한계내에 있다고 말한다) ‘대립물의 일치’를 끌어낸다.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와 ‘이미 발생하고 있다’의 차이가 지젝에게 칸트와 헤겔, 데리다와 라깡의 구별을 가능하게 한다.

시차적 간극이 갖는 타자성을 절대화시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대상으로 물신화할 때 칸트의 한계가 드러난다. 이미 와있는 메시아에게 언제 올 것인가라고 묻는 질문처럼 불가능성은 절대적 타자성으로 승화된다. 타자의 절대성이 타자의 결핍을 숨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젝은 칸트의 예지계 역시 무한판단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상계와 예지계의 ‘사이 공간’ 다시말해 초월적 대상을 현상계의 내부적 간극으로 읽어낼 때 칸트는 헤겔과 ‘함께’ 있다. 불가능한 초월성에서 초월성의 불가능성으로, 타자의 절대성에서 타자의 결핍으로, 칸트에서 헤겔로 이동할 때 정신분석의 윤리학이 시작된다.



초자아에서 사랑으로
법은 비전체이다. 그것은 이미 기원적 폭력이라는 실재를 억압함으로써 가능해지는 상징적 방어물이다. 데리다가 미국독립선언문에 대한 분석에서 잘 보여주고 있듯이 법의 정당성을 보증해주는 그래서 법 이전에 존재해야하는 ‘우리, 미국의 인민’은 단지 법에 의해 사후적으로 구성되는 결과물일 뿐이다. 죄의식의 기원을 설명하려던 프로이트가 아들들이 이미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제할 수 밖에 없는 이유, 기원적 아버지 살해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또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원) 팬터지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살해는 규정하거나 재현할 수 없는 법의 기원, 실재로서의 폭력을 상징적 행위로 환원시키는 방어일 뿐이다.

법의 내재적 분열을 초자아 논의에 한정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초자아는 상징적 금기를 넘어서는 향유, 외재적인 법을 보충하는 비합리적이고 가혹한 명령이다. 그것은 법의 전체성을 망가뜨리는 얼룩이지만 죄의식을 통해 주체를 지배하는 법이기도 하다. 라깡이 칸트와 사드를 ‘함께’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우리에겐 더 이상 식인풍습이 없어요. 어제 남아있는 마지막 놈을 처치했거든요’라고 말하는 식인종처럼 칸트의 합리적인 법을 작동시키는, 그것을 강제적 명령으로 바꾸는 외설적 행위주체는 사드적인 초자아이다.

초자아는 모든 것을 허용하는 그러나 위반이 초래하는 죄의식을 통해 주체를 옭아매는 법이다. 죄를 짓지 않을수록 죄의식이 증가하듯이 다양성의 담론을 통해 초자아는 오히려 자신의 단일성을 강화한다. 법의 결핍을 보여주어야 할 향유가 가혹하고도 무자비한 형태로 절대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초자아적인 자본이 다양한 지식의 형태로 세계를 전체화하고 있는 지금 다양성의 정치학을 넘어서는 불가능한 윤리적 행위가 요구된다. 다양한 위반은 여전히 법과 위반의 초자아적 악순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이 숨기고 있는 법의 불가능성, 불가능한 실재를 드러내기 위해 지젝은 바틀비적인 제스처를 위한다. 법과 위반의 악순환으로부터의 물러남.

아감벤은 명령의 형태로 설명될 수 없는 은총, 외부도 내부도 아닌 사이 공간에서 생겨나는 주권, 법의 중지와 법제정의 동시성을 주장함으로써 초자아적인 향유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는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사이공간, 유대인도 비유대인도 아닌(non-non-Jew) 주체의 가능성을 열어놓기도 한다. 그러나 아감벤은 다시 사랑을 초자아로 설명함으로써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낸다. 냉소적 거리를 통해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처럼 위반적 거리에 기초한 초자아를 중지시키기위해 필요한 것은 법과의 문자적 동일시이다. 윤리적 행위는 위반의 예외적 장소를 제거함으로써 초자아의 매개없이 사랑의 법과 만나는 것이다.

‘모든 지식을 소유하고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바울의 말처럼 사랑은 예외적 지식이 아니라 지식 자체의 결핍, 지식을 비전체로 만드는 시차적 간극이다. 전체를 알지 못해 사랑하지만 전체의 지식 역시 결핍되어 있다. 주체의 결핍과 타자의 결핍이 만나는 곳에서 사랑이 발생한다. 유대교가 이미 인식하고 있지만 숨기고자 하는 신의 결핍을 드러낼 때 기독교는 ‘사랑’의 차원으로 이동한다. 모든 상징적 의미나 광채가 사라진 육체, 배설물처럼 십자가에 못박혀있는 예수와의 불가능한 동일시, 결핍된 신과의 만남이 사랑인 것이다.(민승기/ 경희대 영어학부 겸임교수)

경희대학원신문(07. 06. 21) 이론의 시간과 정치의 시간:알튀세르와 라깡의 조우

그레고리 엘리어트는 알튀세르에 대한 충실한 주석서인 『이론의 우회』에서 알튀세르의 비극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었다. “이론의 시간과 정치의 시간은 서로 만나야만 했다. 그러나 만나지 못했다.” 그레고리 엘리어트는 이 어긋남의 극적인 예로써(*예로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들고 있다.

1968년 파리는 그의 지병인 우울증을 매개로 알튀세르를 스쳐지나갔고, 그의 뒤 늦은 개입이 바로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라는 미완성 연구노트였다. 알튀세르는 이 뜨거운 68년도의 거리를 가능하게 했던 이데올로기의 자율성과 주체의 자율성을 정당화하려고 하였지만 그 이론적 결과물은 구조기능주의의 혐의였다. 결론적으로 이 연구노트 속에서도 이론의 시간과 정치의 시간은 다시 한 번 어긋난다.

근본적인 논쟁을 ‘푸코 대 하버마스’가 아닌 ‘라깡 대 알튀세르’로 잡고 있는 그의 첫 저서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의 서문을 참고했을 때, 지젝의 출발점은 바로 이 어긋남이다. 알튀세르의 무엇이 알튀세르를 이 어긋남 속에 감금하였는가? 지젝은 구조기능주의를 이유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성급히 거부하는 몸짓을 거부하고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것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에서부터 자신의 이론적 작업을 시작한다. 이 지젝의 몸짓에서 알튀세르는 진정으로 라깡을 만나야만 했다.

마르크스와 프로이드의 우발적 마주침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알튀세르와 라깡의 만남이 두 개의 회귀, 즉 ‘마르크스로의 회귀’와 ‘프로이트로의 회귀’간의 만남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마르크스로의 회귀는 비경제결정론적인 사회구성체의 논리를 재구성하는 작업이라는 것과 프로이트로의 회귀는 자아심리학의 헤게모니를 넘어서 무의식의 주체를 재확언·재구성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두 회귀의 만남이라는 이론적 스캔들이 낳은 사생아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일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구성체라는 실체의 논리와 무의식 또는 주체성의 구성이라는 주체의 논리가 매개되는 유일한 공간은 바로 이데올로기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알튀세르의 전체적인 기획 속에서 우리가 인지해야 할 것은 바로 알튀세르의 철학에 대한 정의의 변화, 즉 ‘이론적 실천에 대한 이론’에서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으로의 변화이다. 다른 말로 바꾸어 보자면 알튀세르는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가 없지만 ‘주체 없는 과정 또는 구조’에서 ‘주체 있는 과정 또는 구조’로의 변화 또는 ‘최종심급에서의 경제결정’에서 ‘최종심금에서의 계급투쟁의 결정’으로의 변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즉 계급 또는 주체의 논리라는 빛 아래에서 읽혀져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 지젝이 가지고 오는 개념들은 실재, 적대와 같은 개념들이다.



실재란 라깡의 개념으로 우리의 현실을 구성하는 상징계의 한계, 또는 상징계의 비일관성을 보여주는 또는 상징계가 비­전체임을 보여주는 한계 차원이다. 그리고 적대란 이 실재가 우리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한 가지 양태이다. 적대란 단순한 차이나 대립이 아니다. 좌우의 대립이라는 예를 통해서 왜 그런지 살펴보도록 하자. 우파는 기본적으로 사회를 유기적인 총체로서 인식하며 사회의 분열을 외부적인 침입의 결과로서 생각한다. 그리고 우파는 자신을 이 유기적 총체의 수호자로 좌파를 가장 나쁘게는 이 외부의 침입자로 간주한다. 이에 비해서 좌파는 사회를 본래적으로 분열되고 갈등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좌우의 구별 또한 우파의 구별법과 다르다. 이 둘 간의 관계를 차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둘이 차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전제를 만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음/양과 같이 서로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면서 유기적인 총체를 이루어야만 한다. 두 번째는 이들의 차이가 측정되기 위해서는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잴 수 있는 공통의 잣대가 존재해야만 한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하였던 좌/우의 관계는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부터 서로를 구별하고 인식하고 정의하는 방식에서 조차도 달랐다. 즉 이 둘 사이에는 소통의 공간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비소통의 공백만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좌우의 관계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와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는 일관되고 정합적인 전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 둘 사이에는 어떤 공백이 존재하며 이 공백으로 인해 사회는 유기적인 전체가 아님이 드러난다. 이 공백에 대한 이름이 바로 라깡의 실재이며, 이 공백에 의해 가로질러진 비관계적 관계―상식적인 의미에서의 관계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관계인―가 바로 지젝이 말하는 적대이다.



계급적대의 중층결정
이러한 논리에 따른다면 계급투쟁, 즉 계급적대란 무엇일까? 여기에서 지적되어야만 하는 것은 라깡에 따르면 무의식은 밤의 위엄이 아니듯이 계급투쟁 또는 계급적대란 정치의 로망이 아니라는 점이다. 계급적대란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에서 가정하듯이 실정적으로(positive)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이 사회의 궁극적인 의미를 담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계급적대란 라깡의 실재처럼 오로지 중층결정을 통해서만 그리고 증상적인 형태를 통해서만 드러날 뿐이다.

중층결정이란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에서 꿈 형성 과정을 서술하기 위해서 도입한 개념이다. 중층결정의 논리에 따르면 꿈에서 우리는 무의식적 욕망의 중핵―라깡적 의미의 실재―을 결코 볼 수 없으며 오직 전치와 응축이라는 꿈 작업을 통해서 형성된 왜곡된 형태의 무의식적 욕망만을 볼 수 있을 따름이다. 계급적대 또한 마찬가지이다. 꿈이 무의식적 중핵과 연결된 낮의 찌꺼끼들을 배치하는, 즉 무의식적 중핵의 리비도를 전치하고 여러 다양한 꿈 사고들의 계열을 응축하듯이, 계급적대란 자신의 적대적 에너지를 다양한 사회갈등으로 전치하고 이 갈등들을 라클라우가 말한 등가의 연쇄로 응축하는 중층결정 속에서만 보여질 수 있다.

알튀세르의 “최종심급의 고독한 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는 정식화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계급적대란 항상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노­노 갈등이라든지 여성과 남성의 대립이라든지 또는 현재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외국인과 내국인의 갈등 등으로 중층결정된다. 즉 계급적대란 철저하게 알튀세르적인 의미에서 상이한 갈등 방식의 우연적이고 비일관적인 배치―즉 정세, 국면―를 설명해 주는 구조화 원리이자, 라깡적인 실재의 의미를 살려본다면 초월적 틈새 그 자체이다.

꿈이 탁월한 무의식의 형성물, 즉 증상이라면 이 계급적대는 증상의 형태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증상이란 억압된 것의 회귀이면서도 이것이 없다면 우리의 쾌락 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는, 즉 의식으로부터 배제되면서도 이 의식을 지탱하고 있는 실재의 한 조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지젝은 이것을 사회에도 적용하고 있다. 부르주아 자본주의 사회는 자유와 등가교환을 전제로 성립된 사회구성체이다. 그런데 이 사회구성체를 지탱하면서도 이 사회구성체의 전제에 위배되는 역설적인 존재가 있다.

모든 사람은 자유롭다. 다만 임금 노동을 하지 않는다면 굶어 죽는다는 부자유를 제외하고는. 모든 상품은 등가교환된다. 그러나 노동력은 잉여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등가교환에서 제외되는 예외적인 상품이다. 그런데 이 예외, 즉 임금노동과 잉여가치가 없이는 부르주아 자본주의는 더 이상 유지될 수가 없다. 이 예외를 떠맡고 있는 계급은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였다. 이런 측면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일관되고 정합적인 사회―즉 의식―를 위해서는 배제되거나 부인되어야만 할 증상인 셈이다. 그리고 계급적대로 인한 사회의 비일관성과 마찬가지 이야기이지만 증상에 의한 사회의 비일관성을 다시금 일관된 것으로 환상화하는 것이 바로 지젝이 말하는 이데올로기이다.

계급적대란 그럼에도 돌아오는 것들이며, 이것은 지젝이 벤야민의 ‘억압된 것의 회귀’로서 지칭하고 있는 라깡적 의미에서 항상 제자리로 돌아오는 실재의 고집이고, 즉 반복강박으로서의 죽음의 충동인 셈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오해를 피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도 그랬지만 이데올로기 비판이란 의식상의 변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데올로기는 의식상의 각성으로 폐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이데올로기가 근거하고 있는 현실적 토대가 무너질 때 폐지된다. 이와 대당하는 지젝의 개념은 바로 ‘환상의 횡단’으로서의 행위이며, 라깡적 용어로 실재의 윤리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지젝의 근래의 작업들이 탁월한 행위였던 레닌적인 몸짓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무의식의 주체란 권력의 장소이자 저항 또는 전복의 장소로 정의되고, 이 논리는 “실체로서 뿐만 아니라 주체”라는 헤겔적 모토 아래 역사적 유물론의 기획은 다음과 같이 선언된다. 즉 알튀세르의 ‘주체 없는 과정’은 ‘주체 있는 과정’이 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알튀세르가 기획했던 역사적 유물론의 가능성의 윤곽이 잡힌다: “요컨대 절대는 실체로서 뿐만 아니라 주체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헤겔적 모토의 마르크시즘적 판본은 역사는 경제적 토대의 발전(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증법)뿐만 아니라 계급투쟁(주체의 논리)으로도 인식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포스트-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 지젝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 보면 또 다른 프로이트 마르크스주의자인 숀 호머의 지적대로 지젝은 교조적인 라깡주의자일 수는 있어도 전통 마르크스주의자일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한 번도, 그리고 심지어 알튀세르조차도 프롤레타리아트를 모든 실정적 속성을 박탈당한 라깡의 주체로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레고리 엘리어트가 자신을 반-반 알튀세리앙이라고 지칭했던 호명법을 차용해 본다면, 지젝의 입장은 아마도 포스트-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지젝이 정치경제학과 계급투쟁을 중심에 두는 마르크스주의의 문제틀을 부활시키면서 하는 질문은 이렇다. 만약 지금 당신의 바지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는 것이 죽은 개들의 복수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헤겔, 마르크스, 그리고 알튀세르라는. 이들이 ‘이론은 실천이다. 즉 실천은 이론이다’와 같은 정치의 시간과 이론의 시간 간의 단락의 가능성을 사유 가능하게 한다면.(이병주/ 언론정보학부 강사)

07. 06. 23.

P.S. 생각이 난 김에 지젝이 공부하고 봉직한(봉직하고 있는?) 류블랴나대학의 사진을 옮겨놓는다. 류블랴나는 슬로베니아의 수도이며 사진상으로 보니 아담하고 아름다운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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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 2007-06-23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줄의 '슬라예보' 지젝...^^;; 유교연방이 모두 쪼개지면서 각 도시들이 어느 국가에 속하는지 늘 헷갈리는데, '슬라예보'에서 연상되는 사라예보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네요. 앞으로도 자그레브, 베오그라드와 계속 혼동할 듯합니다,;;;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냐는 순전히 지젝 때문에 알게 됐네요.;;

로쟈 2007-06-23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네요. 편집자부터 헷갈리다니! 사랑님의 '유교연방'(유고연방)도 비슷한 경우인가요?^^
 

필요 때문에 에른스트 벨러의 <아이러니와 모더니티 담론>(동문선, 2005)을 급하게 펴들었는데, 예전에 도서관에서 대출했을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역자들 또한 책을 너무 급하게 옮긴 듯하다(급하게 번역한 책이라 책값은 더 비싼 걸까?). 읽어나가면서 께름칙한 대목들이 눈에 자꾸 들어온다. 시간이 없는 탓에 '한줄'만 지적해둔다.  

 

 

 

 

'현대사상에서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다룬 1장의 한 대목인데, 참고로 벨러의 저작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데리다-니체, 니체-데리다>(책세상, 2003)가 더 안전하겠고, 니체와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해서라면 데이브 로빈슨의 <니체와 포스트모더니즘>(이제이북스, 2002)이 더 자세하겠다. 읽어볼 한줄은 바로 그 '니체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포스트모더니즘은 니체의 목적론뿐 아니라 진리와 전체성을 동일시하는 헤겔주의 전반을 거부하는 니체의 시각과 연결되어 있다."(18쪽)

이 문장은 아무리 읽어봐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단 우리말 문장이 안되기 때문인데, 게다가 '니체의 목적론'이라니? 조금 요령있는 독자라면 얼토당토 않은 '니체의 목적론'에서 '목적론'이 헤겔주의와 관련된 것이라는 것 정도는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그 경우에 '니체의' 다음에 쉼표가 와야 한다). 그러면 절반의 이해 정도는 가능하다. 하지만 제대로 이해하려먼 원문을 참조하는 수밖에 없다.

"Historically speaking, postmodernism is an alignment with Nietzsche's perspectivism and refusal of Hegelianism, of Hegel's equation of truth with totality, as well as of his entire teleology."(6쪽)

짐작대로 'his entire teleology'에서 역자는 'his'를 헤겔이 아닌 니체로 본 것인데, 나로선 상식밖이다. 그리고  'Nietzsche's perspectivism'을 '니체의 시각'이라고 옮긴 것도 예상밖이다(니체에 관해서라면 전혀 문외한이라는 얘기이다). '원근법주의' 혹은 '관점주의'라고 옮겨지는 용어이다.

다시 옮기면, "역사적으로 말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니체의 관점주의와 연계되는 것이면서 헤겔주의에 대한, 헤겔식 목적론뿐만 아니라 진리=총체성이라는 헤겔식 등식화에 대한 그의 거부와 바로 연결되는 것이다."   

무성의해 보이는 번역서라고 해서 소득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서로 분류될 수 있는 책이지만 '포스트모던 번역'에 대한 진단으로서도 읽히기 때문. 가령, "포스트모던한 스타일을 사용하는 작가들의 경우 그들이 다루는 주제의 모호함은 어떤 피상성, 아마추어 수준의 전문지식, '빈약한 철학', 한계 위반 등과 뒤섞여서 나타난다."(21-22쪽)는 지적은 '포스트모던한 스타일'을 '포스트모던한 번역'으로, 그리고 '작가들'을 '역자들'로 대체할 경우에 그대로 포스트모던 번역론이 된다.

그것이 억지는 아닌 것이 'poor philology(빈약한 문헌학)'를 이미 역자는 '빈약한 철학'으로 대체해놓았기 때문이다. 요즘 좀 다른 의미에서 '빈약한 철학'을 지적하는 말들이 많지만 실상은 'poor philology'(나라면 '빈약한 공부'라고 옮기고 싶다)부터가 문제되는 것 아닐까? 필롤로지의 기본은 차근차근 읽는 것이다(짜집기를 글쓰기와 혼동하는 포스트모던한 공부는 공부 이후에 하는 것이다)...

07. 0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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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TV에서 잠깐 본 프로그램에서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어린 두 자녀를 버리고 가출했던 어머니가 17년만에 용서를 구하며 (아들은 군대에 가 있다고 하고) 딸과 재회하는 장면이 방송됐다. 그런 어머니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고 안사람이 묻기에(자신은 용서할 수 없을 거라며) 그래도 가족인데 다 용서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얼버무렸다. 우연히 둘러본 뉴스사이트에서 프랑스의 '익명 출산제' 유지 논란을 다룬 기사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익명 출산', 소위 'X출산'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프랑스와 룩셈부르크가 유일하다고 한다(여하튼 세계는 넓다!).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익명으로 출산"할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 얼핏 선진적인/진보적인 사회의식의 산물로도 보이지만 프랑스의 경우 신생아를 내다버리는 '역사적 전통'을 법제화한 것이라고 하니 그저 어두운 폐습을 양성화한 것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출산'은 어려운 문제이다... 

오마이뉴스(07. 06. 23) 낳자마자 버리는 X출산, 필요악인가?

프랑스에는 'X출산'이란 제도가 있다. 산모가 병원에서 출산할 때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익명으로 출산하는 것을 말한다. 태어나는 아이는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곧바로 다른 집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주로 남자에게 버림받은 미혼모가 아이를 낳게 돼 혼자서 아이를 양육할 형편이 안 되거나 아니면 혼외 출산을 하는 경우다. X출산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산부인과에서 X출산에 동의한다는 서약서에 서명하면 출산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병원(결국 국가)에서 부담하게끔 돼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현재 세계에서 X출산을 할 수 있는 나라는 프랑스와 룩셈부르크 두 나라뿐이다.

사실 프랑스에는 신생아를 버리는 역사적 전통이 깊이 남아있다. 17세기에 이미 수도원에 마련된 탑에 신생아를 집어넣고 그 옆에 설치돼 있던 종을 울리면, 수도원에서 사람이 나와 아이를 데리고 갔다고 한다. 이는 당시 성행하던 신생아 살해나 임신중절처럼 신생아를 위험에 노출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자연주의 작가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장 자크 루소도 자기 아이 5명을 이런 기관에 버린 것으로 유명하다.

프랑스에서 이 수치스런 탑은 1904년까지 계속 이용되다가, 같은 해 6월 '열린 사무실'로 대체된다. 산모가 신생아를 익명으로 버릴 수 있는 것은 여전했지만, 탑 대신에 사무실에 버리는 점만 달라졌다. 이런 전통에 힘입어 비시정부는 1941년 9월 출생 비밀에 관한 법령을 마련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점령군인 독일군에게 강간당한 많은 프랑스 여성이 X출산을 이용하게 된다. X출산 법령은 몇 차례 수정을 거친 후 1993년 민법에 편입된다.

X출산은 산모와 신생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시작됐지만, 결국 모든 이에게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현재 프랑스에는 X출산으로 태어난 사람이 40만명에 이르고 있고 한 해에 평균 400건의 X출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젊은 한때 책임지지 못한 행동을 한 산모는 자식을 버렸다는 죄책감에서 평생 동안 벗어나지 못하고,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버림받았다는 수치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중요 당사자 외에도 아이의 생부, 그리고 생모가 새로 꾸린 가정의 남편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까지 합하면 약 200만명의 프랑스인이 X출산이란 시스템으로 고통받고 있는 상태다.

X출산을 한 산모는 보통 태어난 아이를 보지 못하게끔 돼있다. 태어난 아이는 즉시로 산모에게서 떨어져 며칠 동안 병원 측 보호를 받다가 이런 아이들만 담당하는 기관으로 옮겨진다. 신생아들은 2개월 동안 이 곳에 머무는데, 산모가 만약 이 기간 동안 마음을 바꿀 경우 아이를 찾아갈 수 있다. X출산을 하는 산모는 주로 나이가 어리고 첫 출산인 경우가 많은데, 아무런 경험도 없는 이들은 처음 겪는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아이와 생이별하게 된다. 그나마 조금 이성을 차린 산모라면 아이의 이름을 정하고 부모의 간단한 이력과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적은 글을 남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개인 신상정보는 봉투에 넣어져 굳게 봉해지며, 아이가 성년이 된 후 찾아와 친부모의 신상을 물을 경우에만 개봉된다.

어리둥절한 상황에서 자기 신상에 대해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산모는 아이를 찾는 일을 포기해야 한다. X출산을 한 산모에겐 어떤 경우든 나중에라도 자기 아이를 찾을 권리가 없다. 유일하게 산모가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나중에 아이가 자기를 찾을 때 자기 신분을 밝힐 권리와 만남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다. 그러므로 생모와 아이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이가 성년이 돼서 생모를 찾고 그 생모가 부름에 응하는 것이다. 만약 생모의 인적사항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라면 생모 찾기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X출산으로 태어난 아이가 성인이 돼 생모를 찾아나서는 것은 프랑스 텔레비전 단막극에서 많이 다뤄지는 소재다. 병원에서 조산원으로 일했던 한 여인이 병원 몰래 X출산을 한 산모와 아이의 사진을 수첩 하나로 묶어 보관하는 단막극을 본 기억이 난다. 드라마에서 나중에 생모를 찾으러 오는 아이들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생모의 당시 주소를 가르쳐주며 인생의 보람을 찾던 노인네. 나중에 자식을 찾게 된 생모도 이 산파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젊었을 때 생각이 짧아 아이를 버리는 엄청난 과오를 저지른 후 회환의 일생을 살다가 자기를 찾아온 아들에게 용서를 빌고 화해를 나누는 장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아 다른 집으로 양자로 들어간 신생아는 양부모가 나중에 비밀을 밝히는 경우 심각한 정체성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더욱이 주로 사춘기 시절에 탄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경우가 많은데,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에게 엄청난 충격이 동반되는 게 다반사다. "버림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3세대가 필요하다"는 프랑스의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프랑소와즈 돌토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들이 느낄 수치와 고통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X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들의 지속적이고도 간곡한 요청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1996년 신분을 밝히지 않은 생모의 신상 찾기를 허용했다. 이후 CADCO(자기 출신 성분을 알 수 있는 권리를 위한 행동사무소)의 출현으로 이 일은 더욱 활성화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2000년 12월 가족장관보이던 세골렌 루아얄(지난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로 출마)은 X출산 개선안을 발표했다. 이 개선안은 구체적인 해결책까지 내놓지는 못했지만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는 점만으로도 하나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

2년 후인 2002년 루아얄은 X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친부모의 신상을 찾는 데 도움이 되도록 'Cnaop(개인신상 정보를 구하기 위한 국가위원회)'를 창설해 이들에게 돌다리 하나를 마련해준다. 성인이 된 아이가 직접 모친에게 연락할 경우 감정적·심리적 문제가 여러 가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기관이 그 중간에서 중개 역할을 해주자는 취지였다.

올해 2월 20일자 <르 파리지앵> 신문은 Cnaop에 부모를 찾는 요구가 2453건 들어온 상태고 그 중 1388건의 서류가 처리됐다고 보도했다. 처리된 서류 중 60%가 미해결 상태로 낙착되었는데 이유는 친부모의 행방 찾기가 불가능해서(45%), 부모가 자식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아서(15%) 등이다. 부모 찾기에 성공한 40% 중 12%는 부모를 찾긴 했지만 이미 사망한 경우였다.

X출산은 주로 정신적·경제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빠진 산모가 혼자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던 아이의 아버지가, 성인이 된 아이가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뒤늦게 찾아오는 일을 겪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그래서 부권을 주장하는 단체에서는 오래 전부터 X출산 폐지를 요구해왔다. 이들은 그게 안 된다면 적어도 산모 혼자서 결정하는 게 아니라 남자의 동의를 거치게끔 해야 한다며 수정안을 요구하고 있다. 아이의 출생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있어야 하는, 위협받는 부권의 신장을 요구하는 셈이다. 어떤 단체는 X출산을 유지하되 아이가 성년이 되면 생모의 신상을 공개하자는 수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렇게 여러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X출산은 지금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여기저기서 폐지안과 개선안을 내놓고 있는 와중에도 이 시스템이 계속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간단하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X출산이 필요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을 옹호하는 첫 번째 집단은 교회다. 임신중절을 살인으로 여기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와 신부들은 어떤 조건에서건 출산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집단은 양자알선기관이다. 프랑스는 최근 출산율 부분에서 아일랜드와 유럽 1위를 다투고 있지만 양자 수요는 여전히 많다. 양자 수요가 공급을 초과해 주로 외국의 도움을 받는데, 여기에는 외국에서 데려오는 아이의 몸값이 엄청 비쌀 뿐만 아니라 장기간을 기다려야 하는(보통 몇 년 걸린다) 불편함이 있다. 이런 면에서 X출산으로 태어나는 아이를 프랑스 가정에 손쉽게 '공급'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양자알선기관은 X출산제 폐지를 반대한다.

또 한 그룹은 페미니스트들이다. 이들은 X출산을 임신중절 권리처럼 여성이 누릴 수 있는 하나의 권리로 생각한다. 프랑스에서는 임신 12주 이전까지는 중절수술이 가능한데, 이 시기를 넘겨 임신중절을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는 경우 산모가 선택하는 방법이 X출산이다.

X출산은 부유층부터 가난한 층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계층에서 실행되고 있다. 그러나 자식이 성인이 돼서 친부모(주로 생모)를 찾을 때, 양쪽이 만날 확률은 생모의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낮다. 생모가 낮은 사회계층에 속할 경우 자식을 만날 것을 쉽게 수락하는 반면, 생모가 높은 사회계층에 속할수록 자식 만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부끄럽고 힘든 과거가 현재 영유하는 쾌적한 생활을 파괴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다. 특히 새로 만나 함께 사는 남편의 직위가 높을수록 친자식을 보지 않겠다고 거절하는 비율이 높아진다고 한다.

지난 2월 10일 에펠탑 맞은편에 있는 트로카데로 인권광장에서 X출산을 폐지하라는 시위가 열렸다. 주로 X출산으로 출생한 아이들과 생모들로 이뤄진 시위대는 광장에 누워 몸으로 X자를 고통스럽게 재현하기도 했다. <르 파리지앵>은 이 시위에 참가한 파니(49)라는 여성의 삶을 조명했다. 자신을 '자격 없는' 엄마로 지칭하는 파니는 26년 전 X출산으로 아들을 하나 낳았다. 알제리 출신인 파니가 당시 아이를 임신하자, 아이 아빠는 그 사실을 알고 도망쳐버렸다. 당시 파니가 엄격한 부모에게 자신의 임신을 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임신 6개월에 접어들었을 때 파니는 조국 알제리를 떠나 혼자 마르세이유로 향했다. 가족 중 파니의 임신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파니는 마르세이유에 있는 엄마 친구 집에서 만삭을 맞고 병원에 가서 X출산을 한다. 당시 파니는 이 방법만이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여겼다. 이 한 순간의 결정 때문에 자신의 삶이 회환으로 점철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해마다 아이의 생일이 되면 눈물로 밤을 지새웠던 파니는 아들이 18세 성년이 되는 해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로 결심했다. 자기 신분과 주소를 적은 종이를 아이를 버렸던 기관에 맡기면서 만약 아들이 생모인 자신을 찾으러 오면 전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나왔다. 아들이 반드시 자기를 찾으러 오라는 법은 없었다. 그러나 파니는 이 가냘픈 희망에라도 기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니는 마르세이유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의 전화를 받는다. 아들이 자기에게 첫 번째로 물어본 것은 다른 형제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왜 자기를 버렸느냐는 질문은 하지 않는 아들의 전화를 받은 후 파니는 대성통곡을 했다. 전화 접촉 후 파니와 아들은 양부모의 허락 아래 상봉했고, 파니는 양부모 밑에서 잘 자라난 아들을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양부모의 이해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파니는 이후 아들과 함께 X출산 폐지 운동에 가담했다. 젊은 세대들이 자기와 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회환으로 가슴을 치며 평생을 보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치겠다는 다짐이다.(한경미 기자) 

07. 0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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