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옮겨놓은 '공부론'을 저녁을 먹고 나서야 시간을 내 마무리짓도록 한다. 사실은 가짜 학위와 관련해서 역시나 예일대 박사학위를, '인크레더블'하게도 32살의 나이에 3개나 획득했다고 소개된 '석학' 조중걸/조송배 교수가 생각이 나서(http://blog.aladin.co.kr/mramor/1055226 참조) '강유원'을 다시 검색했다가 우연히 김영민 교수의 칼럼 '이소룡에게서 배우는 공부'에 대한 논평('신문읽기의 어려움')을 읽게 되었고 그 두 기사를 아침에 옮겨놓았었다. 먼저 어떤 내용인지는 비교해가며 한번 읽어보시길. 필자 소개상으론 '철학자 vs 회사원'이 아니라 '철학자 vs 철학자'이므로 맞장을 뜨는 게 문제되지는 않겠다. 동급이니까.

  

한겨레(07. 05. 20) '아뵤~’ 이소룡에게서 배우는 공부

“이소룡이 유연성으로 이룬 스타일을 흉내내면서 우리는 우리의 스타일이 만들어지길 소망했다. 쿵푸처럼 공부도 그런 것이다. 칼이든 펜이든 진실을 유연하고 실제적으로 파고들면 자신의 스타일이 생겨나는 것이다”

무술가 리샤오룽(이소룡, 1940~1973)은 어떤 ‘스타일’일 수밖에 없었다. 나태하거나 보수적인 치들은 종종 스타일에 반감을 지니지만, 스타일은 주류의 각질을 뚫는 아웃사이더의 징후로 일정한 혐오감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헤겔과 마르크스의 분쟁에서 보듯이, 스타일이 없이는 진정으로 스승과 결별할 수조차 없다.

미완의 <사망유희>를 유작으로 남긴 채 이소룡이 세상을 뜨자 수많은 잡룡들을 내세워 모작들이 제작되었지만, 그의 스타일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다는 사실만 날로 분명해졌다. 그러나 양식(Typus)은 스타일이 아니다. 요컨대 스타일은 흉내와 더불어 죽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양식은 오히려 흉내내기의 네트워크를 통해 공고해질 뿐이다. 그래서, 스타일에는 매순간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치열한 실존의 열정 속에서 승화시키는 아이러니의 빛이 있다. 키르케고르처럼 말하자면 스타일 속에는 일반자적 양식 속으로 환원될 수 없는 단독자적 체취가 생생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양식은 부끄러움을 없애는 문화적 법식이다. 가령, 게오르크 지멜이 설명하는 양식이란 꼭 그런 것이다. 나아가, 비코나 융이 말하는 양식은 지멜의 것보다 한층 더 깊어 보이고, 제법 형이상학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소룡의 쿵푸(工夫) 스타일에는 형이상학적인 게 없다. 철학도이기도 했던 그는 더러 노자류의 잠언을 흘리면서 ‘물처럼 되라!’는 주문을 하기도 하지만, 그의 테크닉은 간결하게 정곡을 찌를 뿐 실없이 용장스러운 데가 없다. 그는 스크린의 스타가 됨으로써 스펙터클화한 영자(英姿)를 탁이(卓異)하게 뽐내면서, 군부독재와 개발지상주의의 아버지 체제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그 모든 불량스러운 10대의 우상이 되었다. 우리는 교실에서 책상을 마구 뛰어넘고 헛되게 쌍절곤을 돌리다가 형광등을 부수곤 했다. 그의 스타일은 응당 양식으로 굳어지면서 스타의 비용을 치르게 되었지만, 우리는 그 양식 속에서 우리의 스타일이 부활하기를 소망했다.

그는 자신의 무술을 설명하는 중에 형(type)이라는 말을 싫어하고 늘 ‘자기표현’이라고 했다. 그것은, ‘디-자인(de-sign)이 그 자체로 하나의 강력한 사인(sign)이고, 탈(脫)코드는 그 자체로 가장 매력적인 코드’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대중적 이미지, 그 시절인연(時節因緣)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들은 15살의 과도기를 깜냥껏 지나면서 이소룡의 스타일을 향한 불가능한 욕망을 반복강박적으로 양식화했다. 과거, 제자가 스승을 배우는 방식은 반복되는 흉내 속에서 양식을 얻고 마침내 그 양식마저 뚫어내며 자신의 스타일에 이르는 길이었다. 즉, 동화(同化)-이화(異化)의 변증법을 금강산을 스쳐가는 계절처럼 무심히 반복하는 것! 그리고, 이른바 염화시중의 길은 그 깨침의 극점에서 비밀처럼 보여주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비경인 것이다.

그러나 이소룡의 이미지가 재현하는 한편 우스꽝스러운 양식은 스타가 된 아웃사이더들의 세속적 운명이다. 그들은 스타일을 양식 속에 죽이면서 세속의 명성을 얻는다. <사망유희>에서 노란 체육복을 입은 채 예의 괴상한 새울음을 토하며 상대의 쌍단봉을 대적하여 회초리처럼 길게 깎은 대나무 무기를 사용하는 장면은 몹시 흥미로운 파격이다. 그 복색과 무기의 취지는 그가 늘 한결같이 그의 제자들에게 강조하던 유연성(pliability), 즉 주류의 엄숙주의를 가로지르는 바로 그 유연성의 이단과 다를 바 없다. 뛰어난 춤꾼이기도 했던 그는 그 이단적 유연성으로써 그만의 무술 스타일을 얻었으나, 그 스타일을 대중의 환호 속에서 양식의 제물로 희생함으로써 대중적 스타의 권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유연성은 오직 실전 무술의 실용성을 위한 것이었다. <징비록>(1647)에서 유성룡은 신립의 호령이 번거롭고 요란스러워 반드시 싸움에서 패할 것이라고 했고, 인재 등용의 귀재였던 세종대왕은 말수를 줄이고 듣기에 기민했다고 했지만, 쿵푸도 공부 곧 그런 것이다. 주먹이든 말이든, 칼이든 펜이든, 그것은 사태의 진실을 향해 유연하고 실제적으로 파고드는 방식에 주력해야 한다. 연암 박지원도 학문과 문장을 논하면서 억지로 기이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할 일이 아니라고 경계한다; 요점은, 자신의 스타일로 사실에 충실한 글을 쓰면 그것이 곧 기이하고 새롭게 된다는 것이다. 언거번거한 말은 외려 어눌한 것보다 못하고, 형(型)만 요란스러운 동작은 실없기 때문이다. 이소룡의 추억! 그것은 그대로 어떤 공부의 환상이다.(김영민/철학자)

미디어오늘(07. 06. 16) 신문읽기의 어려움

1988년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었을 때의 일이다. 가락동 농산물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내 친구 하나가 ‘요새 한겨렌지, 한거랜지 때문에 골 때린다’는 말을 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같이 장사하는 사촌 형이 한자를 몰라서 그동안 신문을 통 못 봤었는데, 한겨레 나오고 나서는 신문을 어찌나 열심히 읽는지 세상 물정을 다 가르치면서 야단을 치는 통에 그런다”는 것이었다.

한글 전용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깨우쳤는지를 뚜렷하게 느낀 사례 중에 그만한 것이 없었다. 이는 달리 보면 신문이 어떤 사람을 독자로 여겨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표지이기도 하다. 신문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면 그런대로 무난하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씩 우리교육 교사아카데미(www.uriedu.co.kr/edu)라는 곳에서 초·중·고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여 ‘책읽기와 글쓰기’에 관한 몇 주 짜리 강의를 한다. 수강생 전부가 교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본래의 목적에 합당하게 교사들이 학생들과 함께 읽어 볼만한 책을 소개하면서 책을 읽기에 필요한 내용을 곁들여 설명하기도 하고, 글을 쓰는 방법을 함께 궁리해보는 것이 그 강의가 하는 일이다. 이 강의에서 가끔 사용하는 일종의 교재 중의 하나가 한국의 현실을 생생하게 반영하는 글인데, 더러는 신문기사가 교재로 쓰이기도 한다. 사실 마땅한 기사가 별로 없다.

그런데 최근 강의에 사용하기 위해 신문을 검색하다가‘아뵤∼ 이소룡에게서 배우는 공부’라는 글을 한겨레(5월19일자)에서 읽게 되었다. 철학자 김영민씨가 쓴 글이었다. 나는 이 글을 준비하여 교사들에게 나누어주고 검토의견을 내게 하였다.

검토의 기준은 이러했다. 첫째, 주장하려는 바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으며, 그것이 글 첫머리에서 끝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게 주장되고 있는가. 둘째, 자신의 주장에 필요한 핵심적인 개념들을 정확하게 규정하고 있는가. 셋째,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들이 적절하게 준비되어 배치되었는가. 마지막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독자가 읽기에 어려움은 없는가.

몇 분 동안 검토를 마친 교사들의 반응은 대체로 다음과 것들이었다. ‘논지가 분명하지 않아 읽기가 짜증스럽다’ ‘스타일과 양식이 진짜 공부와는 다르다는 건 알겠는데 정의가 없다’ ‘공부법을 알려주기보다는 자기가 얼마나 유식한지를 자랑하기 위해 글을 썼다는 인상이 강하게 든다’. 어떤 이는 ‘한겨레 편집담당자는 도대체 무얼 하기에 이런 글을 신문에 싣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였다. 나야 속사정을 모르니 ‘철학자의 난해한 글을 읽고 이해할만한 도사가 신문사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우스개로 넘겨버렸다.

강의를 마치고 집에 와서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이 신문을 읽는 사람 중에 이 글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200자 원고지 열 매 남짓한 이 글을 이해하여 공부법에 관한 뭔가를 터득하려면 “헤겔과 마르크스의 분쟁”은 무엇인지, “게오르크 지멜이 설명하는 양식”은 또 무엇이며, 어떤 점에서 “비코나 융이 말하는 양식은 지멜의 것보다 한층 더 깊어보이고, 제법 형이상학적”인지 알아야 하는 건 아닐까? 게다가 헤겔의 철학을 전공한 나도 “동화(同化)-이화(異化)의 변증법”은 무얼 말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 건 다 제쳐두고라도 한글 전용에서 출발하였기에 어려운 한자말을 풀어서 쓰려는 방침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는 한겨레에서 “영자(英姿)”나 “탁이(卓異)” 같은 낯선 한자어가 들어가 있는가하면 굳이 나란히 쓰지 않아도 될 ‘Typus’와 같은 라틴어를 곁들인 이런 글을 싣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철학자 김영민씨가 어떤 의도로 이 글을 썼는지는 궁금하지도 않다. 그가 이소룡에게서 뭘 배우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그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렇지만 신문이라는 공공매체의 편집담당자에게, 그것도 한겨레의 담당자에게 꼭 묻고 싶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이도 한번 쓰윽 읽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글을 싣는 이유는 뭔가. 그런 글을 실으면 김영민씨의 표현처럼 “일반자적 양식 속으로 환원될 수 없는 단독자적 체취가 생생한” 스타일이 생겨나서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신문이 되는가.(강유원/ 철학자)

07. 07. 18.

P.S. 나는 이소룡 세대가 아니다. 그의 영화 <정무문>(1972)을 극장에서 보긴 했지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다. 분류하자면 나는 성룡 세대이고, 성룡보다 먼저 나를 매혹했던 이는 <소림 36방>(1977) 같은 영화에서의 유가휘였다(왜 있잖은가?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면 요즘처럼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보는 게 아니라 으레 쇼브라더스의 홍콩무협영화를 보던 시절 말이다).

유가휘? 황비홍의 직계제자라고도 하는 이 '무술인 배우'는 <킬빌2>에도 우마 서먼의 상대역 도인으로 나오기도 했다(소림 '무술인 배우'의 계보는 알다시피 이연걸이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지난달인가 <소림 36방>을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잠깐 다시 보니 30년전에 느꼈던 '비장함'은 온데간데 없고 유치함만이 남아 있었다(아마도 초등학교 3학년때쯤 학교의 단체관람으로 봤을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의 대표작을 <소림 36방>에서 <소림 용문방>으로 바꾸었다.  

잠시 여담이 새어나왔는데, 사실 소림사 무예로 잘 알려진 '쿵푸'가 '공부(工夫)'와 같은 어원을 갖는, 그러니까 동일한 의미연관을 갖는 말이라는 건 잘 알려져 있다(오래전 김용옥의 책에서 처음 그런 내용을 읽고 '그렇구나!' 했었지만 이젠 그런 내용을 접하면 식상하다). 예전에 '공부냐 학습이냐'란 페이퍼(http://blog.aladin.co.kr/mramor/799694)에서 주장한 대로 나는 '자기단련'이나 '자기연마'로서의 '공부'보다는 '가르치고 배움' 혹은 '가르치면서 배움'으로서의 '학습'에 더 놓은 점수를 주는 편이다. 나는 이렇게 적었었다.

학이시습지의 즐거움, 학습(學習)의 즐거움은 가르침으로써 배움을 완성하는 즐거움이다. 학습이란 말이 (주로 사무/행정적인 용어로만 남아있고) 일상어에서는 공부(工夫)(=쿵푸)로 대체된 것은 그래서 좀 아쉽다. 공부란 말에는 즐거움이 왠지 빠져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부비변증법적이다.

 

 

 

 

해서,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가 되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김영민은 '이소룡에게서 배우는 공부'가 있다고 하는데, 그에게서 그것은 자기만의 문체(스타일)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영자(英姿)'나 '탁이(卓異)' 같은 낯선 한자어"나 "굳이 나란히 쓰지 않아도 될 ‘Typus’와 같은 라틴어를 곁들인" 이유는 그런 문체를 만들어나가는 그의 (혼자만의) 보행/산책과 관련되며 구경꾼-독자들과는 무관하다.

'몸으로 하는 공부'를 주창하는 강유원은 그보다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공부에 타자를 끌어들이는데, 그건 '가르치는 자'로서의 자신의 포지션을 항상 고려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나는 생각한다(인용한 칼럼에서 그는 '교사들을 가르치는 강사'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전혀 다른 '공부'를 제시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기본적으로는 강유원 역시 '쿵푸로서의 공부'라는 태도를 견지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공부는 각자가 하는 것!). 당연한 말이지만, 나의 근육을 단련한다고 해서 남들의 뱃살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자기 뱃살은 자기가 빼야 한다. 

하지만 '이소령에게서 배우는 공부'가 있다면, '성룡에게서 배우는 공부'도 있을 법하다. 어떤 성룡인가? 바로 '재수없는 영화' <취권>(1978)의 성룡이다. 무술이라기보다는 코미디를 닮은 성룡식 쿵푸.  

"평소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진중하게 행동하다 결국 싸울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옷 속에 감추어놓은 무골을 드러내고 한 방에 적들을 제압해버리는 이소룡! 그는 패배를 모르는 영웅이었고 도탄에 빠진 약자들의 구원자이다. 그러나 <취권>에서의 성룡은 이소룡과 정반대의 면모를 하고 있다. 그가 연기한 황비홍은 약자들의 구원자들이기 보다는 아녀자들에게 치근덕대는 무뢰배이고, 패배를 모르는 영웅이 아닌 무술 연습이 하기 싫어 잔꾀를 부리는 말썽꾸러기이다. 까불거리는 모습은 진중함과는 거리가 먼데다 무도인이라면 당연히 정정당당해야 할 승부에서 번번히 속임수를 쓰곤 한다.

결국엔 그의 필살기가 되는 ‘취권’도 각이 잡혀있는 절권도와는 사뭇 다르다. 비록 ‘술에 취한 여덟 명의 신선들의 비기’라는 그럴듯한 설명이 붙어있긴 하지만, 그것은 시전함에 있어 결코 ‘가오’를 기대할 수 없는 우스꽝스러운 무술이다. 여기에 성룡은 (지금은 그의 영화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지형지물이용 무술’을 융합했으니, 그의 권법은 ‘무예’라기 보다는 차라리 ‘기예’였다. 이소룡의 강렬한 카리스마를 체험한 사람들에게 성룡은 ‘광대’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었다. 그러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컬한가.('<취권>, 또 한 마리의 용(龍)을 탄생시키다', Joycine, 04. 02. 17)

요는, 보행 공부나 몸으로 하는 공부 말고 '잔꾀'로 까불거리며 하는 공부도 있다는 것. 자신의 무공으로 상대를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지형지물'을 임기응변으로 이용해서 어쩌다 상대를 제압하는 수도 있는 법이고. 비록 우스꽝스럽고 '가오'가 잘 안 나오기는 해도 이걸로 우리의 인식을 확장하고 삶의 기쁨을 배가시킬 수 있다면 나름 그럴 듯하지 않을까?.. 아침에 우연히 마주친 기사(=지형지물)들 때문에 잠시 '기예'를 부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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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 다른 십대의 탄생]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4-05 17:41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
 
 
필라멘트 2007-07-18 12:29   좋아요 0 | URL
철학자들이야 뭐 어떤 현상을 어려운 개념으로 해석하는게 그들의 일이니 뭐라 할 순 없지만, 강유원씨 말마따나 박사학위자들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글을 일반 신문독자들에게 들이댄게 화근이군요. 신문 편집담당자가 독자들이 '게오르크 지젤이 설명하는 양식'이나 '동화-이화의 변증법' 정도는 알 거라고 본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독자들이 저 글을 읽고 불편함내지 거부감을 좀 느꼈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로쟈 2007-07-18 23:29   좋아요 0 | URL
독자의 수준을 탓하기엔 너무 체하는 글입니다...

섬나무 2007-07-18 18:52   좋아요 0 | URL
두 분의 글을 우연히 읽게 됐었는데요 강유원씨의 주장은 일리 있음에도 거침 때문에 거부감이 듭니다. 김영민씨 글의 매력은 저 일반자적 양식 속으로 환원되지 않는 생생한 단독자적 체취이기도 합니다. 저도 신문에서 저런 글을 만났다면 그 신문의 편집담당자가 궁금했을 겁니다. 누굴까 이런 싱싱한 파행?을 결행한 사람은?

로쟈 2007-07-18 23:29   좋아요 0 | URL
김영민씨의 확연한 '문체'는 개성이겠지만 저는 외국어를 섞어쓰는 건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동무와 연인' 같은 연재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Joule 2007-07-19 01:16   좋아요 0 | URL
그래도 내 뱃살은 내가 빼야 한다는 말은 너무 뼈저립니다. 아참, 저 지젝 너무 좋아하게 되었어요. How to Read 라캉 다음 책 좀 추천해 주세요. 더는 귀찮게 안 물어 볼게요. 지금 같아서는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 쪽을 읽을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추천해 주시면 덩달아 같이 읽어 제 뱃살 단련에 도움이 좀 되지 않을까 싶네요.

jouissance 2007-07-19 02:3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강선생 칼럼 실린 이후에 쓰여진 김선생의 칼럼들은 확실히 이 정도까지 과하진 않아요. 짐짓 무시하는 제스쳐를 취하는 김선생이지만 어떤 자각이 온 건 분명한 것 같아요. 김선생 글들을 조금 챙겨보는 사람으로서 항상 불편했는데 강선생에게 감사해야겠어요^^

Joule 2007-07-19 02:39   좋아요 0 | URL
어머나, 주이상스는 지젝의 글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알라딘에도 주이상스가 있었네요.

caute 2007-07-19 20:2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외국어를 섞어쓰는 게 문제가 되나요? 우리는 외국어로 공부합니다. '외국'어가 아닌 외국'언어'에 대한 자신의 고민이 있다면 그로부터도 자신의 사유 속에서 고유한 할 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한참 전에 강유원씨의 글을 알고 있었지만 지나갔는데, 로쟈님 덕분에 강유원씨 홈피에 일부러 들러 사태를 확인했습니다. 강유원씨는 애초 김영민 선생에 대해 편견이 많더군요. 저역시 편견이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런 편견으로 낙서는 하되 긴 글은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텍스트 이해와 명석한 표현을 추구하는 분이 왜 그리 한 사람에 대해서는 불명확한 이해와 왜곡을 하면서도 계속 그에 대한 이야길 할까요. 싫다는 거겠지요.
현재 자신의 철학의 할 일과 방법에 대해 두 분은 다릅니다. 그럼에도 강유원씨의 삐딱하며 감정적인 지적(그 사람의 문제와 의도에 관심도 없으면서 그 사람의 글쓰기만을 도려내 문제삼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치기' 이상으로 여겨지진 않군요!) 때문에 김영민 선생의 작업에 대한 실체 없는 비판은 삼가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글읽기의 어려움을 가지고 그의 글쓰기의 문제를 얘기하자면(그것이 신문이란 대중적 매체라 하더라도) 철학자의 글쓰기는 도대체 어떤 정형화 속에 빠져야 마땅할까요? 저는 김선생과 개인적으로 거의 알지 못하며 항상 거리를 두고 있지만, 그의 글이 어렵다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건 무슨 말인지 모를 관념이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곰곰 생각해보면 그의 이야기들은 따라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외국산 철학의 수입과 앙상한 전달에 급급한 철학동네에서 나름 생동하는 글쓰기를 하는 이라 여겨왔지요. 물론 그의 글에 등장하는 생경한 언어들이 걸리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글을 읽으며 한 사람의 사유를 더듬어간다면 글읽기의 본령인 사유 체험이 되는 것 아닐까요.(신문연재에 국한해서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씨'와 '선생'의 호칭은 김영민의 글은 몇 권이나마 접하며 나와 얼마나 다르건 그가 자신의 사유와 말하기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가려는 우리 시대의 선생들 중 한 분이라 생각하게 됐지만, 강유원에 대해선 글의 교류라 할 만한 계기가 없어 생긴 차이입니다(제 게으름 때문이겠지요). 강유원에 대한 저의 인상은 강단에 구속되지 않으면서 자기 공부하는 사람의 한 모델을 보여주는 사람이라 할까요.

필라멘트 2007-07-19 11:14   좋아요 0 | URL
caute님의 댓글에 대해 잠시 제 생각을 남겨봅니다. 위 포스트의 본질은 꼭 김영민씨와 강유원씨 사이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읽는 대상의 지적 수준을 고려한 글쓰기의 효율성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또한 이 문제는 전달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독자에 대한 예의의 문제이기도 하구요. 김영민씨의 글은 제가봐도 일반 신문독자들의 수준을 넘어선 글입니다. 고등학생 수업시간에 대학수준의 강의를 한다고 해서 그 선생님이 결코 유능한 교사는 아니라고 봅니다. 수업대상이 고등학생임을 알면서도 어려운 대학수준의 수업을 한다는 것은 은연중에 지적과시의 의도가 있는거겠지요. 김영민씨도 컬럼청탁을 받았을때 읽는 대상이 일반 신문독자들임을 고려했어야했고 그에 맞는 글을 썼더라면 더 좋을 뻔했습니다. 김영민씨의 글이 비평지에 실렸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독자층을 고려한 지식의 적절한 분류나 배치도 하나의 능력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caute 2007-07-19 12:5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필라멘트님. 미묘하지만 이 포스트의 본질에 대해선 저와 이해가 다르신데요. 뭐 중요친 않지만, 이 포스트의 출발은 신정아씨가 환기시킨 외국학위와 실제적 공부내용이라는, 공부의 한 현실과 관련한 로쟈님의 관심이 아닐까요. 허나, 제 댓글은 댓글들의 지형이 만드는 흐름, 거기서 감지되는 분위기와 관련한 것입니다. 과민한 탓도 있겠지요. 또 주인장이 철학자 대 철학자로 그들의 글쓰기에 대한 입장을 대질시킨 것 아닌가요?
더구나 저는 김영민 선생의 글이 신문 책소개 코너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일반독자는 누구를 기준으로 하는 건가요? 그에게 감응받은 일반적인 분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신문 연재용 그 글을 비평지(학술적인)에 싣지 못할 것도 없지만, 학술적인 글로서 실릴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뜬금 없지만, 고등학생은 고전문학 못 봅니까? 저도 어릴 때 집에 을유문화사판 고전문학 전집이 있었지만, 오에 겐자부로가 중학교 때 블레이크에게 감응받았다고 한 기억이 나네요. 글읽기도 여러 경로와 때와 인연이 있겠죠.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문을 통해 그런 감응을 일으키는 글을 마주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섬나무님 말대로 파격이고, 작은 즐거움이죠.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은 시대와 사회와 역사, 인간의 현실과 무관한 자기 도취의 현학이겠지요.
님이나 로쟈님은 김영민 선생의 글이 젠 채 한다는 전제에 있으니 서로의 관점이 다른 거죠(피상적이긴 하나, 가까이서 본 바론 과시의 정서 같은 건 없는 분이죠. 그냥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학인일 뿐이지요. 강유원씨도 그런 분일거라 짐작은 합니다만). 그리고 위 글 내용으론 강유원씨 글이 더 문제 있는 글쓰기인데도(실제적으로 예의가 없는) 그것은 지적되지 않는 점 이상하네요. 강유원씬 어떤 판관의 위치에 있나요?

필라멘트 2007-07-19 14:09   좋아요 0 | URL
caute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논쟁을 유발할 성격의 글은 아니라고 봅니다. 컬럼에 대한 각자의 관용의 정도 문제이니 파격적인 글도 실릴 수 있다고 보신다면 어쩔 수 없는거겠죠. 또한 수준 높은 글이 독자의 수준을 더 높일 수 있다고 보는 분들도 있을 거구요. 다만 저는 좀 더 일반적인 관점에서 제 생각을 피력했을 뿐입니다. 꼭 김영민씨만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그런 파격적 시도들이 오히려 '거북함'과 '외면'의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으니까요. 신문컬럼들을 쓰는 분들은 소위 그 분야에서 내노라하는 전문가들입니다. 그런 전문학자들이나 연구원들도 일반 신문독자들을 고려해서 내용을 순화시켜 기고합니다. 예컨대 어느 경제학자가 전공인들만이 이해가능한 어려운 경제이론들을 동원해 학술적으로 쓴 컬럼이라면 적어도 신문상으로는 결코 좋은 컬럼은 아니라고 봅니다. 아무리 전문분야에서 내공이 깊은 전문가 혹은 학자라도 <신문>이라는 전달매체의 특성을 뛰어넘는 글의 기고는 파격일수는 있겠으나 비효율적이고 낯설음의 부작용을 또한 피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이건 글의 기고에 대한 각자의 관용의 문제이니 저와 생각이 다르다할지라도 caute님의 의견 또한 깊이 존중하면서 저의 생각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p.s
로쟈님의 개인 서재에 저와 같은 미혹한 객이 의견을 피력한답시고 분위기를 좀 흐려놓은 것 같아 로쟈님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부디 너그럽게 봐주시길..

로쟈 2007-07-19 16:27   좋아요 0 | URL
수업(계절학기)이 있는 날이어서 아침에 미처 댓글을 달지 못했는데, 벌써 의견들을 나누셨군요.^^ caute님의 의견은 일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역시나 '자리' 문제라고 봅니다. 자신의 책에서라면 허물이 아니겠으나 일간지 지면에서 "키르케고르처럼 말하자면 스타일 속에는 일반자적 양식 속으로 환원될 수 없는 단독자적 체취가 생생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양식은 부끄러움을 없애는 문화적 법식이다. 가령, 게오르크 지멜이 설명하는 양식이란 꼭 그런 것이다. 나아가, 비코나 융이 말하는 양식은 지멜의 것보다 한층 더 깊어 보이고, 제법 형이상학적이기도 하다."라고 쓰는 건 누가 보더라도 현학의 과시 이상은 아닙니다(혹은 '혼자만의 보행'이거나). 강유원은 거기에 대해 비판적인(하지만 상식적인) 코멘트를 한 거라고 생각하고 저도 이 건에서만큼은 그의 의견에 따릅니다.

그리고 제가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했던 것은 '쿵푸로서의 공부'가 갖는 문제점이었습니다. 자기단련의 문제, 자기 뱃살 빼기의 문제로 공부를 환원하는 태도가 '이소룡에게서 배우는 공부'의 함정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이소룡의 스타일(혹은 복근)을 누구나 가질 수는 없는 것처럼 그에게서 배우는 '공부' 또한 일반화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무술을 설명하는 중에 형(type)이라는 말을 싫어하고 늘 ‘자기표현’이라고 했다. 그것은, ‘디-자인(de-sign)이 그 자체로 하나의 강력한 사인(sign)이고, 탈(脫)코드는 그 자체로 가장 매력적인 코드’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대중적 이미지, 그 시절인연(時節因緣)과 같은 것이었다." 같이 (대중적으로는) 소통불가능한 문장이 나온 것이겠지만...

kritiker 2007-07-19 17:2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강유원의 김영민비판을 여기에서도 보게되는군요(존칭생략)
그 비판(의 도를 넘은 비난)은 오래된 것이어서 제가 그의 홈피나 그의 홈피에 있는 각종 강의를 통해 들은 것만도 벌써 3년이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근데 딱 위의 비판 수준에서 넘어가지 않습니다.

사실 두 사람 모두의 열독자--가끔 분열이 일어나곤 하지요^^--로서 보자면,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은, 두 사람은 서로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점입니다. 김영민은 강유원이 자기를 지목하기 전까지 누구인지도 몰랐을 것이며 김영민의 스타일상 여전히 별 관심이 없을 것이며^^, 강유원에게 김영민은 철학이라는 두껍을 쓴 비교秘敎주의자로써 타기 내지는 비난과 비아냥의 대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김영민은 별 신경쓰지도 않으니--많은 비판에 단 한번도 응답이 없음-- 강유원의 비판만 보자면, 그는 이전의 김영민 글 전반에 대한 비아냥에서 칼럼의 대상에 대한 것으로 타겟을 좁혀갔지만 여전히 김영민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해왔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칼럼의 존재 성격도 모르는 이가 쓴 칼럼' 정도로 요약될 위의 비판에서 그저 수긍할 수 있는 것은 김영민의 자기현학에 대한 지적정도입니다.

이들의 비판들에서 철학자 대 철학자의 대결같은 것은 앞으로도 생겨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상대방의 글, 책 하나 제대로 읽어줄 마음이 없는 이들에게서--그들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볼지니!-- 무슨 학문적인 비판들이 오고 가겠습니까.
그저 이들이 서울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주먹질이나 안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판이란 모름지기 상대의 텍스트에 대한 몰입이 선행해야 할 것이고, 엄밀한 독해에서 나오는 내파일 것인데, 위와 같은 강유원의 비판은 항상 외면적 인상 비판이나 구절 비판에 머물 뿐이지요.
단언컨데 앞으로의 강유원의 김영민 비판도 그 차원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강유원은 김영민의 책 한권 제대로 읽어본 것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요.


caute 2007-07-19 20:4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로쟈님/오랜만에 들어와 쓸데없이 시끄럽게 군 거 죄송하고요.^^;; 저도 어떤 거리두기를 하고 있지만, 나와 달라도 근기를 가지고 줄기차게 자기 스타일의 공부길을 만드는, 그 일반화할 수 없는 진정성은 존중하고 싶습니다.
kritiker님/저역시 씁쓸한 맘으로 공감합니다. 남의 언어로 된 책은 못 쫓아가 전전긍긍이라도 우리는 서로에게 물들지 않습니다. 아니, 행여 옷이라도 젖을까봐 빙빙 돌아 갑니다. 가면서 돌이나 던집니다.

눈팅 2007-07-19 21:58   좋아요 0 | URL
김영민 글의 특징: 명사구와 명사절이 많아 힘이 없습니다. 이는 스타일이 아니라 나쁜 글쓰기입니다.
예:1.과거, 제자가 스승을 배우는 방식은 반복되는 흉내 속에서 양식을 얻고 마침내 그 양식마저 뚫어내며 자신의 스타일에 이르는 길이었다.-->과거에 제자는 스승의 양식을 모방한 후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었다.2.그러나 이소룡의 이미지가 재현하는 한편 우스꽝스러운 양식은 스타가 된 아웃사이더들의 세속적 운명이다.-->그러나 스타가 된 아웃사이더들은 이소룡의 이미지를 우스꽝스러운 양식으로 재현하였다.

참조:How to Write, Speak and Think More Effectively-Rudolf Flesch
김영민 선생은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kritiker 2007-07-19 22:5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우스운 것은 아직 학자라는 타이틀조차도 따지 못한 사람들이 항상 누군가를 가르칠려고 든다는 것입니다. 비판에서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외면적으로 비교해 차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 대상의 논리를 따라가며 그 논의의 엇갈리는 부분을 내파하는 것입니다. 차이에 근거한 외면적 비판만큼 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자신만의 길을 뚫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것이 학문적인 성과이든 그것을 넘어선것이든 말입니다.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굴 손쉽게 가르치려고 하지 마십시오.
대상의 존재가 우습게 보이더라도 학문적 구성을 하는 것은 상당한 고통을 요하는 것이요, 그런 일을 10년 이상 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비웃음치고 지나칠 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강유원이든 김영민이든 그 사람에게 취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겸손하게 그사람에 즉卽해서 취하면 될일이지, 깜냥도 안되면서 누굴 가르치려는 것인지...참 안습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비판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들의 상대방에 대한 비판들에 일희일비 할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새겨보며 그들의 한계를 짚어보는 것이 더 현명할 테지요.

김영민 비판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지젝식으로, 김영민의 단점 그리고 한계라는 것을 지적하고 고쳐버린다면, 그의 장점도 아울러 날라가 버리겠지요.
또 김영민은 effective한 글을 쓰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글은 그의 학위논문인 <현상학과 시간>(까치)에서 마감되었지요. 김영민의 effectivity 수준을 평하고 싶다면 그 책 한번 보고 평가하시지요.

로쟈 2007-07-19 23:13   좋아요 0 | URL
김영민 교수의 책은 <현상학과 시간>을 물론이고 <철학과 상상력>부터 시작해서 5-6권 정도 읽었지만(그의 강의를 들었던 한 동창의 권유로) 어느 시점부터 읽지 않게 되더군요. 최근에 연재물에서는 좀 달라진 듯도 한데, 참신한 문제제기를 그에 걸맞지 않는 고투의 문체가 다 침식해버린다는 게 제가 받은 인상입니다. '지젝식으로'라는 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상식'을 말하기 위해서 '학자라는 타이틀'까지 필요한 것인지요?..

kritiker 2007-07-19 23:4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김영민 글쓰기의 비극이지요^^ 학문적인 글쓰기가 아니래서 학자들 사이에서 백안시당하고, 대중들에게는 전달력이 떨어지는...

김영민에 대한 비판을 살펴보면 그 대부분 그의 글을 전혀 읽지 않고 씌어진 것인데, 만약 그 비판을 듣고 그 단점이라는 것을 고친다면 김영민이 의도한 모든 것 역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단점이라는 것에 대한 외면적 차이 비판이 가지는 의미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됩니다.('오스틴과 함께 헤겔을'을 참고했습죠^^)

김영민에 대한 위의 비판을 '상식'이라고 말하시는 것인가요?
누군가를 비판할 때 누구의 책을 읽어보세요라는 것을 비판이랍시고 즐겨 던지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는데,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습니다. 그 비판의 대상의 전모를 파악하는 것은 그것보다 더욱 어려우며, 비판 대상의 논리에 즉해서 내파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며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손쉬운 인상비판이나 차이 비판은 아무 의미도 없으며, 비판의 대상에게 아무런 설득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비판의 대상은 이렇게 말하겠지요. "제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

무엇인가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밟고 올라갈 과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요.
배우는 이들이라면 배움의 대상 앞에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생활양식으로서의 겸손함이 아니라 텍스트에 대한 몰입, 즉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김영민의 위 텍스트에 의하면 '동화'의 행위이겠지요. '동화'이후에서야 비판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는 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대하는 텍스트 하나하나를 공대하는 마음가짐 정도는 지녀야 할 것입니다. 그 이후에야 제대로 된 비판이 나올 것입니다.
'학자라는 타이틀'정도라도 가지고 있다면 위의 행위를 하지 않고 지 꼴리는대로 해도 별 말 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비판이라는 것을 하려면 제대로 읽어보고 하라고 하겠지요. '창조적 오독'이런 말로 자신의 지적 불성실함을 변명하지 말고 쏘아주면서 말입니다.

로쟈 2007-07-20 00:01   좋아요 0 | URL
레닌을 비판하기 위해선 먼저 레닌전집을 읽어야 한다거나 푸코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푸코 전집을 미리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건가요? 이명박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그의 생애와 업적을 시시콜콜히 탐문한 이후에 '비판 대상의 논리에 즉해서 내파'해야 하는 건가요?(이 경우 원초적인 한계는 '네가 그 시대를 살아봤어?'라는 반문에 놓이겠지요.) 그렇지 않은 비판은 '아무런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구요? 하신 말씀의 취지는 가늠할 수 있지만 하나마나한 얘기입니다. 작은 풀꽃 하나라도 우리가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란 질문과 똑같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따져묻고 이해할 수 있으며 비판할 수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되는 말과 안되는 말을 가려볼 수 있으며 보다 나은 글이 어떤 것인가를 재고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게 제가 아는 메타-상식입니다...

눈팅 2007-07-20 01:02   좋아요 0 | URL
아마리우스에서 '신참'이 쓴 글 '책'을 찾아 'gg절절'이 쓴 덧글을 읽어보세요. 전형적인 김영민의 문체:"학문이란 우선 역사, 곧 삶의 흐름새라는 생각은 여전히 결연하고, 그 흐름새 속에 새로운 지경(地境)들이 가득 담겨져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자연스럽다."
나쁜 문장을 비판하는 마음이 자연스럽다고 저는 믿습니다. 참고로 저는 김영민이 다루는 소재를 좋아하고 그의 책을 여러권 읽었습니다.강유원의 적절한 비판이 없었다면 신문독자에게 더 심한 비난을 샀을 겁니다. 사실 김영민의 에세이는 한겨레에서 편집만 잘 하면 읽을만 할 겁니다.

kritiker 2007-07-20 02:2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로쟈님이 왜 흥분하시는지 알 수 는 없으나, '메타-상식'이라는 것이 '상식'이라는 것을 뛰어넘는(무시하는)beyond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당연히, 레닌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먼저 레닌전집을 읽어야 합니다!
로쟈님도 논문을 써보셔서 아시겠지만, 헤겔 전공했다하면 참고문헌에 헤겔 전집 쭉 써놓지 않나요? 다 읽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다 읽은 시늉이라도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어떤 사상가를 전공하면서 사상가의 전후 사상에 대해 자기가 세운 가설이 모순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참고로 강유원의 김영민 비판 중에 하나가, 탈식민성 비판하던 김영민이 지금 자기가 비판했던 외국학자들 글 잔뜩 인용하는 짓 하고 있다는 것이었지요.


이명박 이야긴 왜 써놓으셨는지?
하다 못해 이명박 검증한답시고 집안 식구들 계좌까지 '시시콜콜히 탐문'하고 있지 않나요? 지금 백분토론에서 한나라당 대선 주자 검증에 대해 나오는데, 박근혜처럼 DNA검사는 못하더라도, 차라리 이명박 검증하는 정도라도 해놓고 비판해야 학자로서 학문적 비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로쟈님께서는 저의 글을 제대로 읽지 않으셨던 것 같은데, 내재적 비판 아닌 인상 비판, 차이 비판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라도 꼼꼼히 읽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이 '상식' 아닐까요?
'따져 묻고 이해하고 비판'하는 것은 그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로쟈님은 눈앞의 텍스트 하나 꼼꼼히 읽는 것만으로도 '따져 묻고 이해하고 비판'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상식이라고 하시고, 저는 제대로 된 비판--그게 철학을 전공한다는 사람들의 비판이라면--을 하려면 문장의 지적 현학에 대한 지적, 문장의 비문 같은 거 뿐만 아니라 비판 대상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상식적인 저의 비판에 대해, 위의 로쟈님의 비판은 도저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로쟈 2007-07-20 09:25   좋아요 0 | URL
역시나 '자리'에 대해서 오판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김영민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는 게 아니며 그럴 의향도 없습니다(저에 대해 한마디 하기 위해 이 서재의 글을 다 읽으셨습니까?). 한 칼럼의 문장들이 난삽하다거나 소통불가능하다는 걸 지적하기 위해서 일반 독자들이 그의 책들을 다 읽고 '내재적 비판'을 가해야 한다는 충고는 상식밖입니다. 이명박의 대운하론에 대해서 비판하기 위해 일반독자들이 토목공학과 대운하 경제학을 두루 마스터해야 한다는 주장이 어불성설인 것처럼. 저는 '메타-상식'이란 말을 '상식에 대한 상식'이란 뜻으로 썼습니다만, 이런 단순한 술어도 '합의(코드)'가 없다면 서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죠. 고고한 공부는 각자가 알아서 할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공론장에서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의 언어폭력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눈팅 2007-07-28 21:23   좋아요 0 | URL
같은 성경이라도 스타일에 따라 느낌이 천차만별입니다. 김영민은 원고를 킴제임스 버전으로 쓰는 셈입니다. 저는 예전에 킴 제임스, 투데이스 잉글리시, 컨템퍼러리 잉글리시 버전을 비교하며 성경을 읽은 적이 있는데 다양한 층위의 표현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떤 텍스트를 김영민 문체로 패러프레이즈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언문일치를 어기는 것은 확실히 시대착오적입니다. 김영민이 말하는 내용보다 말하는 방식을 문제화해야 합니다. http://www.biblegateway.com를 방문하여 각 버전의 성경을 비교해 보세요.


로쟈 2007-07-21 09:11   좋아요 0 | URL
30년 이상 써온 글쓰기이기에 이미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듭니다. 문체가 곧 사람이기도 하니까요...

kritiker 2007-07-20 13:2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레닌비판 비유부터 시작해 이명박 비유, 작은 풀꽃 비유까지 참 X친년 널뛰듯이 날라다니시는군요. 혹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이런 거 시험하고 계신가요^^?
소통의 의지가 없으신 로쟈님께 나름 성의를 가지고 글썼는데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저같으면, 로쟈님과는 다르게 '로쟈님에게 한마디하기 위해' 이 싸이트를 다 보고 가겠습니다. 오랜 기간 다 보고 있기도 하구요^^


로쟈 2007-07-20 13:29   좋아요 0 | URL
김영민도 그렇지만 이기고 지는 데, 자기 실력 테스트에 관심이 많으신가 보군요. 자존심이 있으시다면 이런 데서 시간낭비하지 마시고 고고한 자기단련에 더 정진하시길...

Joule 2007-07-21 02:44   좋아요 0 | URL
똑똑하고 영리한 댓글만 답해 주실 것 아니고, 저처럼 어리숙한 민심이 한 수 가르쳐 주십사고 고개 숙여 묻는 것에도 위와 같이 자상하게 한 마디만 덧붙여 주시면 김영민이나 강유원보다 더 감사해 하지 않겠습니까. 뭐 말 많으면 간첩이라는 옛말도 떠오르고 말이지요. 하핫.

로쟈 2007-07-21 08:50   좋아요 0 | URL
앗, 죄송.^^; 추천도서까지 생각해놓고 있다가 논전이 붙는 바람에... 지젝의 <라캉>을 읽으셨다면,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로 한번 더 '복습'해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과의 승부는 피할 수 없는데, 비교적 잘된 번역서이지만 몇몇 오류들도 감안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후에 대중문화쪽으로 갈 수 있고, 이론적으로 더 깊이 들어가실 수도 있습니다...

joule 2007-07-21 12:0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우는 소리 하길 잘했군요. 감사합니다.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고 사이 E=mc2을 집어들긴 했지마너도.
 

작가의 신작소설집이 나온 이후 '두 여자'가 왠지 같이 연상이 돼서 검색을 해보았지만 '조우'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신정아 사건'('사태'라는 표현도 언론에서는 쓰는군)과 관련하여 전문가 인터뷰를 딴다면 나는 단연코 작가 정이현씨를 찾는 수밖에 없다고 보는 쪽이다(그래서 이 사건에 대해서라면 강준만 칼럼보다도 더 기다려지는 것이 '정이현 칼럼'이다). 이른바 '내츄럴 본 쿨걸'들의 대변인이자 그네들의 심리에 가장 밝은 작가가 그녀말고 또 있을까? 신작소설집 <오늘의 거짓말>(문학과지성사, 2007) 관련기사와 함께 말 그대로 '오늘의 거짓말'로 며칠째 뜨고 있는 신정아 사건 관련기사를 나란히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7. 07. 16) 정이현 신작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2002년),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2006년) 등 2권의 책으로 한국문학의 신데렐라가 된 정이현씨(35). 서울에 사는 젊은 중산층 여성의 경쾌하고 도발적인 일상을 그린 칙 릿 풍의 소재를 일정한 문학적 경지로 끌어올리는 게 그의 소설의 강점이다. 순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는 평가에도 불구, 남녀노소를 끌어들이는 흡인력과 예리한 관찰력, 영민한 문체의 힘은 그가 녹록지 않은 재능과 노력의 소유자임을 보여준다.

신작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문학과지성사)은 그런 정씨의 작품세계를 좀더 안착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타인의 고독’(2004년 이효석문학상) ‘삼풍백화점’(2006년 현대문학상) 등 수상작 2편을 포함, 10편이 실린 이번 작품집에서 그는 “사회적으로 보장된 안정된 삶이 과연 우리를 지켜주는 울타리인가란 물음을 기존의 여성의 성과 결혼이라는 범주를 넘어 보다 전방위적인 삶의 양태들에로 가져간다”(평론가 박혜경).



대도시의 일상이란 테두리는 남겨두면서도 그 시선은 아내에게 얹혀살면서 카드키나 잃어버리는 빙충맞은 남편(‘그 남자의 리허설’)에게로, 강북에 살면서 여고 졸업후 강남의 백화점에서 일하다가 붕괴사고로 죽은 판매원(‘삼풍백화점’)에게로, 서른일곱살에 이르는 삶이 버거워 스물다섯에 기억이 멈춰버린 철없는 노처녀(‘위험한 독신녀’)에게로 향한다.

2022년의 시점에서 2004년 벌어진 한 소녀의 자살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빛의 제국’)나 인터넷 쇼핑몰에 가짜 상품사용 후기를 올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인공이 위층에서 들려오는 소음 때문에 고민하다가 그것이 자신이 후기를 올렸던 러닝머신임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오늘의 거짓말’)는 우리 사회가 거대한 거짓말로 구성된 모래탑임을 증언한다.

그러나 그런 거짓말은 사회만이 아니라 연인간에도, 가족간에도 있다. 과외가 금지됐던 1980년대 엄마는 불법 미제장수로 돈을 벌어 비밀과외를 시키고 과외선생은 운동권 학생이다.(‘비밀과외’) 강남 부유층 부모는 대학생 외아들이 음주운전을 하다가 미성년자 여학생을 죽인 걸 덮어버린다.(‘어금니’) 남편이 자기 아파트에서 일어난 유아살해사건의 범인이 아닐까 의심하는 아내(‘어두워지기 전에’)나 자신의 남자친구인 안과의사가 여자환자의 항문사진을 찍었다는 정황이 포착되지만 알리바이를 만들어 비호하는 임상병리사(‘익명의 당신에게’)도 안온한 일상을 위해 진실을 애써 외면한다. 그래서 7년간 연애한 뒤 결혼해서 7개월을 살고 애지중지하던 애완견을 서로 떠미는 부부(‘타인의 고독’)처럼 관계를 두려워하는 현대인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정이현의 소설에서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사이에는 수많은 거짓과 긴장, 그로 인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그러나 스스로 하는 짓을 아는 게 그의 주인공들이다. 그것을 포착한 순간 그들은 질끈 눈을 감거나 또다른 환상으로 그것을 포장한다. 굳이 라캉식으로 말하자면 사회질서를 가리키는 상징계 이전의 실재를 보는 건 죽음이므로.

-이번 소설집이 이전 작품들과 달라진 점이라면.

“첫 소설집에서는 동시대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1인칭으로 지금·여기를 그리면서도 역설적으로 내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 거리가 냉소적 시선을 만들었다. 이번 책은 내가 경험했던 과거, 70~90년대가 모두 현재에 들어와있다는 생각으로 썼다. 당대를 다루되 기억을 호출하는 방식을 사용했고 냉소보다는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거짓을 알고도 외면하는데.

모르고 지내는 것과 알고 덮은 것은 다르다. ‘어금니’의 마지막 문장(아마도 나는, 나와 영원히 화해하지 못할 것이다)을 좋아한다. 그런 상태라면 균열과 파국을 아슬아슬하게 막으면서 가더라도 어떤 시점에서는 바뀔 수 있는 것이다.”(한윤정기자)

조선일보(07. 07. 17) 뉴욕 간 신정아씨 공항서 기자들과 실랑이

가짜 예일대 박사학위 논란을 빚고 있는 동국대 신정아(여·35) 교수는 17일 오전 미국 뉴욕의 JFK공항에 도착, 기자들의 질문에 “논문 표절을 고졸 학력으로 내린 언론에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가짜 박사학위 문제로 파문이 커지던 지난 12일 극비리에 프랑스에서 입국한 후 16일 오전 11시 대한항공 KE081편으로 출국했다. 이날 공항에서 청바지 차림의 신 교수는 흰색 모자를 눌러쓰고 공항 대합실을 빠져나가려다 기자들과 5분정도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에 앞서 신 교수의 가족 A씨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신 교수는 미국 예일대에 가서 (박사학위를 입증할) 자료를 확보할 계획이고, 변호사 등과 법적 대응책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신 교수가 캔자스주립대 학사학위와 예일대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신 교수가 큰오빠와 함께 유학생활을 했고, (캔자스주립대) 학부 과정만 7년을 다녔는데 3년 다니다가 중퇴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동국대측은 “(본인이) 살기 위해 어떤 서류를 만들어낼지 모르겠지만 무슨 근거를 대도 (신 교수의 박사학위가 위조됐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자신 있다”고 밝혔다. 동국대 관계자는 “ ‘신 교수의 예일대 입학과 학위가 모두 가짜’라는 예일대 총장 명의의 서신 원본이 오늘(16일) 도착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출국한 신 교수가 도피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신 교수 임용 의혹을 조사 중인 동국대 진상조사위원회는 신 교수 채용 당시 총장인 홍기삼씨와 상임이사인 임용택(영배 스님) 현 재단 이사장에 대한 조사도 진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상일 동국대 학사지원본부장은 “신 교수에 대한 임용 취소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를 공동 감독에 선임했다가 철회한 광주비엔날레측은 이르면 18일 광주지검에 신 교수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김기훈 특파원)

 

 

 

 

 

 

07. 07. 17.

P.S. 찾아보니, 게다가 두 여자, 72년생 동갑내기다. 정이현, '삼풍백화점'이란 소설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했고, 신정아, 자칭 삼풍백화점 사고 생존자다. 나는 신정아씨의 거짓말 이력이라면 '거짓말 이야기'가 공식적으로 환영받는 동네에서 더 훌륭한 성취를 이룰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쉬워하는 쪽이다. 검찰 고발 사태로까지 갔으니 머잖아 사건은 자초지종이 만천하에 다시 한번 밝혀지고 누군가 법적인 책임을 지겠지만, 아직 젊은 나이이므로 재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 믿어본다. '작가 신정아'가 '큐레이터 신정아'나 '교수 신정아'보다 못할 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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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7-07-17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상한 일입니다. 저 역시나 이 사건을 접하면서 정이현을 떠올렸는데요, 물론 '작품적'이라기보다는 '이미지적'인 것 쪽으로 기운 연상작용이었지만요.

로쟈 2007-07-17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품집이 이때 나온 건 우연의 일치이기도 하지만 두 사람을 동시에 떠올리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런 일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조만간 주목이 되지 않을까 싶고요...

마늘빵 2007-07-17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정아가 미국갔다와서 어떤 증거를 댈지 기대됩니다.

로쟈 2007-07-18 23:20   좋아요 0 | URL
증거가 있다면 미국에 가질 않았겠지요...

mravinsky 2007-07-17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미국 갔다가 다시 오지 않겠죠. 미국에서 계속 헛소리 하거나 아니면 아예 잠적하든가.

로쟈 2007-07-18 23:17   좋아요 0 | URL
짐작엔 당분간은 오지 않을 듯싶네요...

jouissance 2007-07-18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도대체 언제나 신문에서 불쾌한 정아씨 기사를 안 볼 수 있으려나? 이제 서서히 짜증이 밀려오네요. 온갖 방정을 떠는 신문들이나 일단 소낙비는 피하겠다는 황(?)정아씨나 짜증납니다. 가뜩이나 더워 죽겠는데 왜이리 짜증나는 일이 많은지. 로쟈님! 우리의 불쾌한 정아씨는 지금 뉴욕의 호텔방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로쟈 2007-07-18 23:05   좋아요 0 | URL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 수습은 빨리 해주는 게 여러 사람 덜 고생시킬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비로그인 2007-07-18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본 이 페이퍼에는 수정중이라는 꼬리표가 달려있었는데 ㅎㅎ 오늘 다 읽고 갑니다.
거짓말하다가 자신이 그 거짓말을 진짜라고 믿어버리는 무슨 심리학적 병인가 장애인가 이름도 있더군요 쯧쯧...

로쟈 2007-07-18 23:04   좋아요 0 | URL
어쩌면 거짓말이라는 관념 자체가 희박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주 쿨하게...

twinpix 2007-07-18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니, 소설집을 구매하고픈 욕구가 생기네요. ㅇ.ㅇ

로쟈 2007-07-18 23:02   좋아요 0 | URL
빙고입니다.^^
 

지난번에 '거장들의 영화가 온다'(http://blog.aladin.co.kr/mramor/1378961)란 기사를 소개한 바 있는데, 데이비드 린치의 신작 <인랜드 엠파이어>에 관한 뉴스기사를 찾다가 이달 20∼27일에 CGV압구정에서 열리는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의 개막작으로 상영된다는 걸 알았다(극장개봉은 26일). 그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이다. 마침 네이버의 이동진닷컴에서 정성일씨와의 인터뷰를 다루었기에 겸사겸사 읽어보도록 한다(참고로 그가 영화 데뷔작을 찍는다는 소식은 지난달에 잡지를 통해서 알게 됐는데, 영화감독들이 아주 기뻐하며 벼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동진닷컴(07. 07. 16) [인터뷰] 정성일 평론가, 영화제 개최에서 감독 데뷔까지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이 7월20일부터 7월27일까지 서울 ‘CGV 압구정’에서 열린다. 올 들어 유달리 많은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이 영화제가 특히 주목되는 이유는 디지털 영화에만 집중하고, 경쟁 부문에 중점을 둔 행사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각국의 신진 감독들이 출품한 이 영화제 경쟁 부문에는 모두 20편이 ‘발견’을 기다리며 포진해 있다. 또한 21세기 디지털 영화의 회고전 성격을 지닌 비경쟁 초청 부문에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10’, 지아장커의 ‘동’, 바흐만 고바디의 ‘전쟁은 끝났다?’, 가와세 나오미의 ‘출산’, 누리 빌제 세일란의 ‘기후’, 박찬욱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에릭 로메르의 ‘영국 여인과 공작’, 마이클 만 ‘콜래트럴’, 오시이 마모루의 ‘다치구이시 열전’ 등 디지털 영화의 최전선에 섰던 화제작들이 즐비하다. 개막작으로는 데이빗 린치의 첫 디지털 영화인 ‘인랜드 엠파이어’가 상영된다.

그런데 하나 더.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이 주목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정성일이라는 이름 때문이다.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다른 이들이 쓸 수 없는 것을 써온 영화평론가 정성일씨는 지난 20년간 한국 평론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박기용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과 함께 공동 집행위원장으로서 직접 이끌어 온 이 행사의 프로그램 곳곳에서 그의 숨결을 느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가 디지털 영화의 가능성과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 깊게 탐구해온 사람이었다는 점에서도 이번 영화제는 관심을 끈다.

영화평론가에게 가장 설레는 순간은 언제일까. 자신의 영화관(映畵觀)을 그대로 투영해 영화제를 열 때, 혹은 보는 자의 위치에서 만드는 자의 위치로 옮아가 감독의 자리에 서게 될 때가 아닐까. 정성일씨는 지금 그 두 가지 일의 시작을 눈 앞에 두고 있다.

해가 쨍쨍했던 15일 오후,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그를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www.cindi.or.kr)이 열리는 ‘CGV 압구정’ 근처 카페에서 팥빙수와 아이스커피를 사이에 둔 채 만났다. 구어임에도 거의 모든 문장을 ‘~어요’가 아닌 ‘~습니다’로 맺는 그의 종결법과, 질문을 듣자마자 대답하게 될 내용의 가짓수를 미리 가늠해 숫자로 박아놓은 뒤 하나씩 설명하는 연역적 화법, 그리고 듣는 이를 거듭 감탄케 만드는 그의 치열함과 뜨거움은 여전했다. 그로부터 듣는 새로운 영화제 이야기. 아울러, 마흔아홉의 나이로 처음 만들게 되는 감독 데뷔작 이야기.



-처음에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을 어떻게 기획하시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작년 여름쯤이었을 겁니다. 우연한 기회에 CJ 문화재단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젠 CJ도 영화 사업을 해온 지 10년이 됐으니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해야 되는 게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어떤 일이 가능하냐고 반문하시길래, 영화계의 독과점 폐해를 막을 수 있는 다양성 사업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가장 좋은 방법은 영화제라고 대답했습니다. 영화제는 기업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건강한 사회환원이라는 게 제 견해였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문화재단 측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고서, 몇 주 후 제게 구체적으로 어떤 영화제를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7년 전 전주영화제를 맡았을 때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영화제가 어떤 것이었는지부터 떠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을 굴리는 과정에서, 그 사이 테크놀로지가 발전하고 디지털 영화도 발전해왔으니, 이젠 하나의 섹션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디지털 영화제를 해볼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 결과가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입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이신 박기용 감독님과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일을 하고 계신데요.

“이 영화제를 저 혼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까지 제가 해온 일은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것이니, 만드는 사람들의 고민은 과연 어떤 것인가, 그리고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새로운 세대의 생각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잘 아는 파트너와 함께 논의하면서 진행해야 한다고 본 겁니다. 저는 박기용 감독의 첫 영화인 ‘모텔 선인장’은 특별히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두번째 영화인 ‘낙타(들)’은 정말 굉장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한국에서 디지털로 만든 중요한 첫 영화가 있다면 이 작품이고, 디지털 한국영화사를 쓴다면 그 영화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느낄만큼 임팩트가 컸습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제가 강의를 해오면서 지켜본 박감독은 일종의 페스탈로치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학생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학생들 면전에서는 ‘재능이 없으니 영화를 그만두고 농사나 지어라’고 냉혹하게 말하지만, 그들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열정적으로 무슨 일이든 다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디지털 영화에 대한 확신과 새로운 영화 세대에 대한 사랑을 함께 갖춘 박감독 이상의 파트너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의 프로그래밍과 운영방식을 보면 영화제 이름이 드러내듯 디지털 영화에 집중한다는 특성 외에도 두드러지는 측면들이 있습니다. 전 이런 것들이 이 영화제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먼저, 왜 경쟁 영화제입니까. 경쟁을 중시하면 프로그래밍에 있어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등 운영상 쉽지 않은 점이 많을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우리끼린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야 하겠지요.(웃음) 심지어 칸 영화제조차 상영작의 3분의 1이 쓰레기 영화입니다. 그런데도 영화제에서는 다들 좋다고만 말합니다. 칸 영화제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말하곤 하는데, 저는 그렇게 좋게만 봐주려고 하는 분위기가 역겹다고 생각합니다.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필름을 사용하지 않는 디지털 영화가 시작되면서 고무적인 변화도 많지만 나쁜 점들도 생겨났습니다. 무엇보다 디지털을 통해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고민이 대폭 줄어들게 됐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필름으로 찍을 때는 모든 게 다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니까, 감독이 매순간 숙고 끝에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이 등장하면서 고민이 사라진 겁니다. 단편도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보다 더 역겨운 것은 센세이셔널한 영화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용기 있는 척 정치적인 토픽을 던져놓고, 사람들이 그 토픽 때문에 지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겁니다. 그 순간 평하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토픽의 긴급성 때문에 마음에 없는 공허한 지지를 하거나, 아예 침묵을 지키는 겁니다. 이런 점들이 디지털 영화가 시작되면서 만연하게 된 조류입니다.

이런 변화 과정에서 영화제들은 관심과 돈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두가지에 집착합니다. 하나는 양의 경제학입니다. 얼마나 많은 영화를 영화제로 끌어올 수 있는가, 하는 점이죠.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은 그 많은 영화를 다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과연 그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는 그걸 다 봤느냐 하는 의문인 겁니다. 양의 경제학이 질의 저하를 가져올 수 밖에 없고, 한 편이라도 더 갖고 오기 위한 경쟁이 영화제 사이에서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또 하나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센세이셔널한 영화,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받은 영화, 정치적인 토픽이 있는 영화 위주로 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상은 언뜻 푸짐해 보이는데 먹으면 하나같이 맛 없는 반찬으로 차려진 밥상은 우릴 화나게 하지 않습니까. 이젠 그런 영화제는 충분하다는 겁니다.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고 지지하는 올바른 방법은 위로와 격려가 아닙니다. 한 자리에 모아놓고 배틀(battle)을 벌이게 한 뒤 ‘당신의 재능으로 한번 견뎌봐’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걸 돌파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지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영화제가 하나 뿐이라면 이런 방식이 옳지 않겠지만, 영화제가 충분히 많은 지금은 하나쯤 경쟁 방식을 통해 지지해야 할 이름을 소개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본다는 겁니다.”

-또 하나의 특색은 경쟁 부문이 아시아 영화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부산영화제의 뉴 커런츠 부문도 그렇긴 하지만,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은 경쟁 부문이 핵심이기 때문에 이런 특징이 유독 두드러져 보입니다. 왜 아시아 영화입니까.

“그 질문에 대해서는 주관적으로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건 영화제를 하고 있는 저와 동료들이 전부 아시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시아의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생각하고 싶어서입니다. 한 영화제가 전세계의 모든 영화를 다 알고 싶다는 태도를 갖는 것은 제국주의적 발상이라고 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한국에서 열리는 영화제가 전세계 모든 영화들을 다 안고 가고 싶어하는 것은 일종의 백인 신화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전주영화제를 처음 시작하느라고 전세계의 영화제를 돌아다녔을 때 발견하게 된 것은 아시아에 영화제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디지털 영화가 막 시작되었을 때였는데, 이른바 오지에서 새로운 재능들이 나오면서 새로운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시아의 새로운 재능은 서양 영화제의 게이트키핑(gatekeeping)을 통과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알려질 기회가 없습니다. 저는 그런 새로운 재능들에게 작더라도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전주 영화제 때 제가 의무처럼 염두에 뒀던 겁니다.

지금 영화제 이름이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인 것은 향후 이 영화제가 단계별로 자매결연 도시를 늘려가면서 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시네마 디지털 홍콩’과 ‘시네마 디지털 마닐라’를 거쳐 ‘시네마 디지털 텔아비브’까지 열리기를 바랍니다.”

-시상방식도 참 독특합니다. 일반적으로 유수의 국제영화제는 그 명칭이 무엇이든, 1등상에 해당하는 작품상을 준 뒤 심사위원대상, 감독상 같은 명칭으로 2등상이나 3등상을 수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제는 감독들이 심사위원이 되어 수여하는 감독상을 비롯해 비평가상 젊은비평가상 관객상까지, 심사위원들을 달리해가면서 한 작품만 골라 시상하기로 했습니다. 왜 이런 방식을 고안하신 건가요?

“저희가 생각하는 최고의 결과는 그렇게 네 개의 상을 한 영화가 다 가져가는 것입니다. 심사는 분야별 심사위원끼리 다른 방에서 각자 토론해서 서로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할 겁니다. 이전에 영화 관련 심사를 해보면 항상 느끼는 게 안배의 원칙입니다. 하지만 심사위원 등에 따라서 안배하는 것은 올바른 경쟁 방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안배를 없애기 위해 각 부문별로 한 편씩에만 상을 주자는 겁니다. 감독들이 그렇듯, 심사위원들도 자기 이름을 걸고 ‘배틀’을 하라는 겁니다.”

-디지털 영화는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술의 민주주의에는 명암이 공존하고, 유행의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변화가 유독 영화에만 있었던 것은 아닌데요, 일례로 디지털 영화의 등장은 대중음악에서 펑크의 발흥과 비교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미 헨드릭스처럼 뛰어난 테크닉을 지닌 음악 엘리트들이어야 기타를 칠 수 있다고 보았던 60-70년대가 저물 무렵 나타난 펑크는, 섹스 피스톨스의 경우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 코드 3개만 알면 아무나 기타를 칠 수 있고 누구나 록밴드로 활동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초기의 이른바 펑크 정신과는 반대로 이젠 펑크 밴드들도 테크닉을 중시하고 가사도 가다듬는 상황이 됐습니다. 펑크에서 출발한 그린 데이 같은 그룹은 이제 9분짜리 대곡까지 연주하니까요. 그렇다면 영화의 경우는 어떨까요. 제가 묻고 싶은 것은 누구나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시느냐는 겁니다. 누구나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게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쟁점입니다. 그 질문과 관련해서 어떤 사람들은 그게 바로 희망이라고 환호하는 반면, 또 다른 사람들은 그래서 영화를 망쳤다고 탄식하기도 합니다. 저는 두 가지 반응 중 어느 쪽에서도 반문을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예술 매체에의 접근에 대한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예전에 특권이었던 일을 이제는 누구나 할 수 있게 됐다는 겁니다.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의 경쟁 부문 출품 감독 면면을 보면 정말 놀랄 만한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중국의 어느 일용 노동자가 돈을 빌려줬다가 받지 못해서 대신 채무자의 DV 카메라를 받아 왔습니다. 그 후로 그 사람은 쉬는 날마다 DV 카메라로 취미 삼아 이것저것 찍기 시작했고 스스로 촬영이나 편집 같은 영화의 테크닉을 깨달아가면서 마침내 영화를 만들게 됐습니다. 저는 그런 영화들이 다 좋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출품된 영화들을 봤을 때 그 결과물들을 보고서 놀랐습니다. 저는 이것이 희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펑크 초기에 난립한 밴드들 중 섹스 피스톨스나 클래시 같은 몇몇 밴드를 제외하고는 다 쓰레기 밴드들이었습니다. 그게 민주주의의 좋은 점이자 나쁜 점입니다.

이번 영화제 때문에 보게 된 디지털 영화들 중에서는 놀라운 영화도 많지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영화도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평론가나 영화전문기자 같은 게이트키퍼들의 역할이 더욱 더 중요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취미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사실 이 영화는 굉장한 거야’, 혹은 ‘당신은 굉장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 형편 없는 영화는 그냥 당신의 블로그에만 올려줘’라고 말할 수 있는 게이트키퍼 말입니다. 예술적 감식안을 갖고 있는 게이트키퍼들은 재능을 발견하거나 충고를 하는 일에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한국 영화 커뮤니티에서 결핍된 게 바로 게이트키핑 장치라고 봅니다. 영화의 만듦새와 상관 없이 영화 외적인 이유로 각광을 받는 작품들이 많은 상황에서, 그런 작품들에 기꺼이 반대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겁니다. 디지털은 그런 점에서 만드는 사람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비평하는 사람에게도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우리가 뛰어난 재능을 알아보지 못해서 그 재능이 스스로 포기하면, 그 책임은 상당 부분 비평하는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반대로 예술 사기꾼을 알아보지 못한 게이트키퍼들도 엄격히 비판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게 비평 커뮤니티의 의무입니다.”



-소설가 김영하씨가 영화제 트레일러(예고편)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이 영화제의 특성이 감지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영화를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디지털 영화의 축제와 잘 맞아 떨어지지요. 그런데 한 편으론 그 ‘영화 문외한’ 김영하씨가 문학이라는 또다른 예술 매체의 뛰어난 재능이라는 점에서 정반대의 의미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김영하씨에게 트레일러를 의뢰하셨습니까?

“(손가락을 펴 보이면서) 세가지였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김영하씨가 시나리오 각색 작업도 했고 자신의 소설이 영화화되는 일도 경험했기에 상당 부분 알고 있겠거니 짐작했는데, 영화를 무척 좋아하고 많이 본 사람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영화 창작 과정에 대해서 거의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게 의외였다는 겁니다. 사실 영화를 좋아하면 현장도 보고 싶어하고 참견도 하고 싶기 마련인데 현장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조직의 쓴 맛을 보여줘야지.’(웃음) 제안을 했더니 흔쾌히 모험을 받아들여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영하씨는 카메라 자체를 촬영 이틀 전에 받아서 연습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작동법만 익혀서 자동으로 놓고 찍었답니다. 김영하씨의 완성된 트레일러에는 테크닉이 없고 아이디어만 있습니다.

두번째 측면이란 바로 아이디어와 기초적인 작동법만 갖고서 대상과의 스킨십이 가능하겠는가를 우리도 알고 싶었다는 점입니다. 찍어온 것 보니 김영하씨의 말투처럼 트레일러도 툭툭 던지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툭툭 던지면서 사실상 본인은 머리 속에서 편집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박기용 감독이 이 영화제에 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필름 시네마가 이미지 메이킹이라면, 디지털 시네마는 이미지 테이킹이라고 말했던 것을 인상적으로 들었습니다.

세번째 의미는 이번 작업을 통해 김영하씨가 그걸 보여주었다는 겁니다. 메이킹 한 게 아니라 보이는 것들을 찍었고 그걸 테이킹해서 의미를 만들어낸 것이니까요. 그는 영화로 자기의 문장을 써냈습니다. 굉장히 성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디지털이라는 테크놀로지에 두려움을 느끼는 아날로그 세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김영하씨도 했는데 못할 게 무엇이겠습니까.”

-2000년 12월에 영화잡지 키노 편집장을 그만두셨습니다. 그때 하신 인터뷰에서 제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이제 가급적 영화에 대해 글 쓰는 것을 그만두고 싶다고, 사람이 마흔살이 되면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도 감독으로 영화를 직접 만들려고 하셨고, 프로그래머로 전주 영화제를 출범시키셨습니다.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을 여시고 감독 데뷔를 준비하시는 지금 상황이 그때와 무척 흡사하다고 여겨지는데요, 어떻습니까. 이제 곧 쉰이 되어가시는데 지난 40대를 돌아보시면 어떤 기분이 드시는지요. 2000년에 30대를 단번에 훌쩍 지나갔다고 회고하셨듯, 40대도 그러셨는지요.

그 기간 중에 우선 임권택 감독님에 대한 인터뷰 책을 버전 업 시킴으로써 해묵은 부채를 청산했습니다. 임감독님에 대한 인터뷰를 다시 정리해야 한다는 게 항상 제 마음 속에 부채로 남아 있었으니까요. 그 작업에 거의 2년 반이 걸렸습니다. 그 책을 읽으시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로선 자랑스런 작업이었습니다. 저는 영화연구자들이 아니라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임감독님의 뭔가를 훔쳐내고 싶을 때 가져갈 수 있는 도구상자로 이 책을 활용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두번째로는 키노라는 잡지를 만들면서 정기적으로 뭔가 마감을 한다는 게 사람을 참 황폐하게 만드는 일이었다는 점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이동진 기자도 잘 아시겠죠.(웃음) 마감이 끝없이 연속되는 상황에서 충전은 불가능합니다. 자신을 다 퍼내어버리는 것이니까요. 키노를 그만둘 때 쯤에는 제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그만 두려 한 것은 사실 그보다 2년 전이었는데, 키노가 사정이 어려워서 혼자 빠져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이에 무척 황폐해졌는데, 아마도 그 시기의 글들이 제가 쓴 글 중 가장 나쁜 글이었을 겁니다. 그 과정을 끝내고 나서 제게 재활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임감독님 책을 만들었고, 유랑하다시피 영화제를 떠돌았고, 글은 ‘씨네21’과 ‘말’지 정도만 쓰고 쉬었습니다.

그러자 그 다음엔 무엇보다 이젠 나를 위해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적잖은 자본이 필요하고 스탭도 필요합니다. 두 편의 영화를 준비했는데 그 과정에서 잘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세번째 영화를 준비중인데, 아직 자세히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이제까지 작업한 영화들 중에선 가장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감독 데뷔와 관련해서 저 자신이 항상 인용했던 말을 제 자신에게 하고 싶은 겁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번째 방법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두번째 방법은 영화평을 쓰는 것이며, 마지막 세번째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라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발언을 말씀하시는 거지요?

“네. 그렇습니다. 얼마 전 씨네21을 통해서 정윤철 감독이 저를 인터뷰했을 때 정감독이 마지막으로 ‘왜 영화를 그렇게 만들고 싶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말 속에는 아마도 ‘당신이 영화를 만들면 세상이 깜짝 놀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란 뉘앙스가 들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유치하지 않습니다. 또 그런 영화가 있지도 않습니다.

제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유는 딱 한 가집니다. 오랜 세월을 영화를 보고 또 영화 책을 읽으면서 열심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같은 자리를 뱅뱅 맴돈다는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가슴에 두 손을 얹고)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겁니다. 그게 정말 너무 괴롭습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합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날 정도입니다.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해결 방법은 하나입니다. 다른 이와 고민을 나누고 같이 해결해나가는 방법입니다. 그러려면 영화를 만드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어떤 상황을 어떤 쇼트로 어떻게 찍을 것인가가 정말 중요한데, 내가 여러 쇼트로 고민하고 있는 것을 히치콕이 하나의 쇼트로 해결하는 것을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저는 최근 두기봉의 ‘익사일’을 보면서 천국에 다녀온 기분이었습니다. 인물을 그 공간으로부터 도저히 빼낼 수 없다고 본 상황에서 인물이 아무 충돌 없이 빠져나오는 쇼트가 있는 것은 매직의 순간입니다. 그런 문제를 두고 영화의 친구들과 맹렬히 토론하고 싶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그러면 영화에 대해서 제가 좀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간절한 제 소망은 사실 영화를 조금이라도 더 잘 보고 싶다는 생각인 셈입니다. 그게 저의 가장 큰 욕망입니다.”

-어떤 말씀이신지 너무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엉뚱한 질문이 불쑥 솟아오릅니다. 꼭 끊임없이 더 나아가야 하십니까. 어떤 지점에서도 완전한 만족이란 불가능하겠지만, 그냥 그대로 영화를 보면 안 되는 걸까요.

“돌려서 반문하겠습니다. 이동진 기자도 영화를 더 잘 보고 싶으시잖습니까. ‘익사일’을 봤을 때, ‘레이디 채털리’나 ‘밀양’을 봤을 때, 혹은 홍상수나 박찬욱의 신작을 봤을 때, 단번에 핵심을 보고 싶잖습니까. 그런 핵심이 희미하게 보이고 스스로가 불안해질 때 괴롭지 않습니까. 영화에 대한 사랑이 의심스러울 때 너무 불안하지 않습니까. 사랑을 확인받고 싶지 않습니까. 영화에 대한 글을 함께 쓰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동진 기자의 글을 보면 어떤 것들은 확신이 있는데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확신이 없는 듯 느껴지는 글을 읽을 때는, 테크니컬하게 잘 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제 속으로 ‘불안했을 게야’라고 생각합니다.(웃음) 하지만 글을 쓰는 우리들은 잘 알지 않습니까. 확신이 있을 때 글에 힘이 있고 또 즉각 설득이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확신을 갖고 쓴 글을 보면 배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아직도 배우는 일이 즐겁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멋진 글들을 보면서도 거기서 배울 게 한 줄도 없다면 의미가 없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말은 고스란히 제게도 돌아옵니다. 저도 종종 확신 없이 글을 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확신을 갖고 쓰면 누가 반론해도 거기에 대해 토론할 마음이 있습니다. 영화를 더 잘 보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일본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 같은 사람의 글을 보면 죽고 싶지 않습니까?(웃음) ‘이거 나랑 똑 같은 영화 본 것 맞아?’ 싶어서 너무 괴로워집니다.”

-감독 데뷔작 일정은 어떻게 잡고 계십니까.

“언제 완성해서 개봉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크랭크 인은 늦여름에서 가을 사이일 것 같습니다. 장소 헌팅은 이미 다 끝냈습니다.”

-제목은 정하셨는지요? 성장 영화라는 소문이 있던데 간략하게라도 내용을 말씀해주시지요.

“아직 가제도 없습니다. 그래서 연출부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못합니다. 제목이 없는 영화를 뭐라고 말하겠습니까.(웃음) 내용은 멜로 드라마입니다. 두 여자 사이에서 끝장 나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게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영화를 준비하시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습니까.

“편견입니다. 저에 대한 편견 말입니다.”

-아, 그렇지요.

“그렇지요,라구요? (입에 넣은 팥빙수를 내뿜을 뻔 하면서) 그런 게 제일 나쁜 대답인 거 아시죠?(웃음) 제가 불편해 하는 어떤 사람을 원치 않게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영화를 찍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무슨 이야기냐고 계속 물어보길래 ‘조폭영화가 유행하니 저도 조폭영화 한 번 만들어보려구요’라고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저를 1분 정도 바라본 뒤에 ‘그러니까 칼을 들고 복수를 하려고 15분 동안 걸어가는 그런 영화군요?’라고 말하더군요.(웃음) 이게 사람들이 내가 영화한다고 하니까 자동적으로 떠올리는 편견이구나, 싶었습니다. 배우들이나 스탭들을 만나볼 때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그런 과정이 다른 감독들과 다른 경우일 겁니다.”

-다른 사람의 영화를 평하는 위치에서 평을 받는 위치로 바뀐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으십니까? 요즘 감독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이 영화 제작 이야기가 자주 화제에 오르는데, 그때마다 ‘두고보자’면서 이를 갈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다는데요.(웃음)

“부담감, 전혀 없습니다. 남이 뭐라고 말하든 관심도 없고 상처도 안 받을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를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올 때에도 저는 전혀 상처 받지 않았습니다. 그게 누구든 지적하는 사람의 말이 맞으면 바로 고쳤습니다. 조금 전에 하신 질문과 비슷한 질문을 저를 아끼시는 분들이 하시곤 합니다. 이 나이에 제가 부서지면 안 될 거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런데 사실 첫번째 영화가 좋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저는 굉장한 영화를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닙니다. 정말로 솔직하게 배운다는 느낌이 제일 큽니다. 저는 준비를 하면서도 스탭들에게 일일이 의견을 구합니다. 막내에게도 물어봅니다. 렌즈에서 인물 동선까지 설명한 뒤 문제 없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문제가 없을 리 있겠습니까. 당연히 있다고 하죠.(웃음) 그 문제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옳으면 따르면 됩니다. 제 영화가 만들어진 후 그 영화에 대한 평들이 나오면 그걸 보고 배울 것 같습니다. 제 말에는 과장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또 이렇게 말하고 자살할 지도 모르죠.(웃음)”

-비평을 통해 일관되게 임권택 홍상수 김기덕 감독을 옹호해 오셨습니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덜 평가하신 감독들도 있습니다. 거칠게 묻겠습니다. 왜 임권택 홍상수 김기덕입니까. 왜 이창동 박찬욱 임상수 봉준호는 아닙니까.

“물론 저는 후자로 거명하신 감독들도 장점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하지만 질문이 간단하니까 저도 간단히 답하겠습니다. 제가 지지하는 감독들의 옹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은 제가 ‘시네마란 무엇인가’를 질문했을 때, 그에 대해 대답을 하거나, 대답을 준비하거나, 시네마를 통해 반문하는 사람들입니다.”



-올해 한국 영화계의 위기는 확실히 질적으로 이전과 다른 것 같습니다. 작년 말부터 올해 상반기까지의 한국영화들을 보면서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산업적인 면 외에 질적인 측면에서 듣고 싶습니다.

영화제와 제 영화를 준비하느라 극장에서 제가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숨’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나온 영화는 디비디로 챙겨본 정도입니다. 그 이전까지라는 전제를 두고 말한다면, 한국영화 그 자체의 문제점이라기 보다는 영화에 대한 관객의 태도에 대한 문제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네마라는 것에 대한 관객의 무관심이 공포스러울 지경에까지 온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괴물’을 예로 든다면, 적어도 작년엔 그 영화를 중심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논전이 벌어졌습니다. 그런 논쟁 자체는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괴물’은 1300만명이 들었다는 점을 괄호로 치고 보면, 내러티브의 구조나 비주얼한 형식 등에서 확실히 예술영화이거든요.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그런 걸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철학적인 면을 생각하도록 만든 것처럼, ‘괴물’ 역시 ‘왜냐면~’이라고 설명하는 순간 담론을 끌어들여 언술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가 한국사회에서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질문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괴물’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분위기가 차갑게 바뀌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마음 편하게 만들었다는 박감독의 말과는 달리 수많은 토론거리를 던지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관객이 토론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겁니다. 이어서 ‘미녀는 괴로워’가 큰 성공을 거둘 때 저는 절망적이라고 봤습니다.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에 이 영화가 그 많은 관객을 끌어들일 때 여기에 뭔가 이야기거리가 있느냐에 대해 저는 아무 것도 부과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 다음에 ‘천년학’과 ‘숨’에 대한 차가운 반응이 있었습니다. 담론조차 되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갔습니다. 요즘 한국영화들은 잘디 잘게 부서진 것처럼 극장을 잠시 채우고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비평 담론들이 논쟁을 벌이기 위해서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해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듯 합니다.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습니다. 이제 대중의 무의식과 욕망을 설명하기 위해서 동원해야 할 영화는 ‘트랜스포머’인 것으로 보입니다. 비극적이지만 사실입니다. 왜냐면 그걸 대중이 바라고 있으니까요. 저는 그 분기점에 있었던 영화가 ‘300’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론 한국영화가 오늘날 이런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 출발점이 바로 웰메이드라는 단어가 생기고부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말을 끌어들인 뒤 끝까지 가면, 그 끝 단계에 할리우드 영화가 있는 겁니다. 결국 한국영화 프로듀서들은 새로운 할리우드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동안 노력해온 셈입니다. 그 학습의 결과가 올 여름인 거지요.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대중의 대답은 할리우드 영화가 됐고, 이제 한국영화는 서브 텍스트 정도로 재배치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올해 여름이 한국영화계에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07. 07. 17.

P.S. 생각밖으로 배울 게 많은 인터뷰이다. 가장 중요한 건 영화에 대한 그의 못말리는 애정. 그 천부적 시네필로서의 열정과 게이트키퍼로서의 의무 사이가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자리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한국영화들에 대한 마지막 멘트는 예상밖의 것은 아니지만 음미해볼 필요가 있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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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나무 2007-07-18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서재가 비었을 때 무지 서운했었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고 다시 돌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인터뷰 내용입니다.

로쟈 2007-07-18 18:42   좋아요 0 | URL
섬나무님 같은 분이 많지는 않겠지만(!) 덕분에, 없는 부지런을 떨게 됩니다. 책임지세욧!..

책읽기는즐거움 2007-07-18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 볼 만한 글 잘 읽었습니다.
 

쏟아지는 책들은 많고 그걸 소개하는 일만으로도 아마 일주일이 모자랄 것이다(하물며 그걸 다 읽는다?). 한동안 연재하던 '최근에 나온 책들' 소개를 포기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데, '전업 서재질'을 하지 않는 이상은 관련기사들을 퍼오는 것에 만족해야 할 때가 많다.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등의 새 번역서에 대해 몇 자 적는 일도 지난주부터의 숙제였는데, 오늘 아침에 다행히 관련기사를 읽게 됐다. 수고를 대신하면서 본격적인 글은 당분간 미뤄놓는다.  

경향신문(07. 07. 16) 루카치·바슐라르·프로이트…거장의 고전들 잇단 재번역

현대 서구 사상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상가들의 대표작들이 잇따라 재번역돼 나왔다.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문예출판사), 가스통 바슐라르의 ‘몽상의 시학’(동문선),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성에 관한 세 편의 해석’(을유문화사).

1916년 발표된 ‘소설의 이론’은 헝가리 태생의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루카치(1885~1971)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 본래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저작의 준비과정에서 나온 이 책은 서구 근대 장편소설에 관한 미학적 담론으로서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 특히 1980년대 세상의 문학적 변혁을 꿈꿨던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번에 출판사가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고 루카치 전공자인 김경식 연세대 강사(독문학)가 번역했다.

루카치는 이 책에서 왜 소설이 현대의 대표적 문학형식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역사철학적·미학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는 소설은 현대의 문제적 개인이 본래의 정신적 고향과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나서는 동경과 모험에 가득찬 자기인식에로의 여정을 형상화하고 있는 형식이라고 정의한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특히 유명한 본문의 첫 구절은 이번 번역본에서 “별이 총총한 하늘이 갈 수 있고 가야만 하는 길들의 지도인 시대, 별빛이 그 길들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는 복되도다”로 옮겨졌다.



‘몽상의 시학’은 과학사가·과학철학자이자 문학 비평에서는 상상력 비평 또는 이미지 비평을 창시한 인물로 널리 알려진 가스통 바슐라르(1884~1962)의 대표작. 그가 타계하기 1년전에 나온 책으로 ‘불의 정신분석’ 이후로 계속된 시적 상상력에 대한 연구의 결정판으로 평가된다. 바슐라르는 이 책에서 플라톤 이래 이데아의 모방에 불과한 가상으로 억압되어 온 이미지가 승리를 구가하는 시대, 철학의 지배로부터 예술의 지배로, 관념의 우위로부터 이미지의 우위로의 이동이 이루어지는 시대를 내다본다. 1978년 고 김현 교수가 번역했던 것을 이번에 새롭게 번역했다.



‘성에 관한 세 편의 해석’은 ‘꿈의 해석’과 함께 프로이트(1856~1939)의 현대 정신분석 이론의 초석을 세운 역작으로 평가되는 작품. 1905년 처음 출간된 이후 프로이트 자신에 의해 20년 동안 수정·보완됐다. ‘성적 이탈’ ‘유아 성애’ ‘사춘기의 재구성’ 등 총 세 편의 논문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의식적·무의식적 충동과 행동에 내재하고 있는 억압에 대한 욕구와 정서적 에너지의 근원인 ‘리비도’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김진우기자)

07. 0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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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장자 읽기'에 이어서 '노자 읽기' 리스트도 만들어보았다. 이 페이퍼는 그 리스트의 배경을 짚어주는 것인데, 교수신문의 서평과 담비의 리뷰를 관련자료로 옮겨온 것이다. 교수신문의 서평은 가장 최근에 출간된 번역서인 최재목 교수의 <노자>(을유문화사, 2006)에 대한 것인데, 이 책은 오늘 손에 들었지만 상당히 공을 들인 역주서로 흡족하다는 인상을 준다. 전문가의 서평을 미리 읽어두기로 한다.

그리고 담비의 리뷰는 노자의 사상이 親유가적인가, 反유가적인가, 하는 오래된 쟁점을 다시 다루고 있는데(이와 비슷한 스케일의 쟁점으론 '주역, 유가의 사상인가 도가의 사상인가'라는 게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최재목 <노자>의 서평 필자이기도 한 조민환 교수의 <유학자들이 보는 노장철학>(예문서원, 1996) 외에 두 사상의 뿌리를 다룬 방동미 교수의 <원시 유가 도가 철학>(서광사, 1999)도 참고삼아 읽어볼 수 있겠다.

 

교수신문(07. 02. 05) '죽간본' 최초 완역서 - 노자사상의 本意 꿰뚫어

우리가 노자사상을 유가사상과 관련지어 말할 때 일반적으로 한대 사마천(史馬遷)이 ‘사기’에서 “노자를 배우는 사람들은 유학을 배척하고 유학을 배우는 자도 노자를 배척한다(世之學老者, 則絀儒學, 儒學亦絀老子)”라고 말한 것을 떠올리며, 노자는 유가와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연구가들이 ‘노자가 과연 그랬을까’ 하고 질문을 하고 그 해답을 구하고자 했지만, 현행본 81장으로 된 ‘노자’를 보면 유가와 대척점에 선 노자의 모습만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노자’ 연구 가운데 여전히 논란거리가 되는 것은 ‘노자’라는 인물은 과연 어떤 사람이며, ‘노자’ 장의 구분은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되어 있었는지, 또 ‘노자’가 과연 한사람의 저작인지 아닌지 하는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의 ‘노자신한열전(老子申韓列傳)’에서 “노자의 성은 이씨(李氏)고 이름은 이(耳)이며, 시호는 노담(老聃)이다”라 하는데, 중국고대의 위대한 사상가 중에 존칭을 나타내는 ‘자(子)’자를 붙인 경우 성이 다른 인물은 노자 한사람 뿐이다. 노자사상을 연구할 때 이미 사마천이 ‘사기’에서부터 제기한 노자라는 인물과 ‘노자’라는 책과 관련되어 제기된 여러 가지 의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1973년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에서 비단에 쓰여진 ‘노자’(일명 ‘帛書老子’)의 발굴과 1993년 8월 중국 호북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초나라 무덤에서 기원전 4세기 중엽에서 5세기 초 경으로 추정되는 죽간(竹簡)에 쓰여진 ‘노자’(이하 ‘竹簡本老子’로 함)의 발굴은 이같은 의문점에 대한 최소한의 답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특히 ‘죽간본노자’의 발굴은 무덤 속에 진리가 숨어있다는 말을 실감케 한 발굴이었다.

‘죽간본노자’는 ‘백서노자’보다 더 시대적으로 앞선 것으로서, 현행본 ‘노자’와 장·절의 순서 및 사상 내용에서 많은 차이점이 있다는 점에서 기존에 행해진 인물로서의 노자와 책으로서 ‘노자’에 대한 연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번역자가 노자의 ‘노’는 성이 아니고 존칭이면서, 노자는 우리가 흔히 쓰는 ‘노선생’ 즉 ‘늙은 선생(Old master)’을 의미한다는 것, 인물로서의 노자와 책으로서 ‘노자’를 분리해서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 그리고 원시유가와 원시도가는 사마천이 말하고 있는 것 같이 대척점에만 서 있지만 않았다는 말이 함축하고 있듯이, 기존의 노자사상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게 해준 것이 바로 ‘죽간본노자’인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는‘죽간본노자’에 대한 번역 및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그다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이 번역서의 출간은 한국의 ‘노자’ 연구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역자는 유가·불가·도가 삼가사상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중국과 일본에서 행해진 ‘노자’ 관련 연구를 최대한 참조하면서 자구 하나하나에 대해 꼼꼼하게 주석하고 있다. 아울러 노자사상이 갖는 의미를 중국사상을 통관하는 입장에서 해설을 하고 있어 원형으로서의 노자사상과 그 사상이 후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성인(聖人), 자연(自然), 사(士), 미(美), 정(精), 음(音)과 성(聲)에 대한 자구 풀이에서는 관련 자구에 대한 최근의 연구 경향까지 반영하면서 거의 소논문 수준의 주석을 하고 있다. 저자의 성실성과 해박한 학식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아울러 이 책의 앞부분에서는 지금까지 연구된 노자라는 인물, 책으로서 ‘노자’, 그리고 ‘초간본노자’가 출토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내용을 간략하게 잘 정리하여 노자사상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 있다. 좋은 번역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노자’는 워낙 다의적으로 해석되고 따라서 어떤 책보다도 주석서가 많다. 이런 점을 감안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노자사상의 본의에 가깝게 번역된 이 번역서에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동양철학자이면서 시인이기도 한 번역자의 절제된 언어와 맛깔스런 번역이 노자사상의 묘미를 잘 느끼게 해 준다. 다만 역주에서 또 다른 번역의 가능성이 있음을 말하지만, 현행본 ‘노자’ 19장(죽간본: ‘返也者, 道僮也’)의 ‘반(返)’자를 풀이할 때 ‘반대되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고 한 것은 역자가 해설 부분에서 “‘반(反)’은 도의 기능적 측면을 말한 것이다”라고 말하듯이 ‘반대(反)’라는 의미보다는 ‘되돌아감(返)’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점만 거론하고자 한다.(조민환/ 춘천교대 - 동양철학)

담비(07. 03. 20) 老子는 親유가적인가 反유가적인가

1993년 중국에서 '노자' 연구자들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심한 이들은 다리 힘이 쪽 빠질만한 일이 발생했다. 호북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전국시대(기원전 475~221) 중기 무덤에서 죽간으로 된 '노자'의 또 다른 판본이 발굴된 것이다. 이후 노자 학계는 충격과 엄청난 후폭풍에 휩싸였다.

'노자'엔 다양한 판본이 있다. 모두 81개 장으로 이뤄진 이 텍스트는 주로 왕필이 주석을 붙인 ‘왕필본’에 근거해 해석돼왔다. 왕필(226~249)은 남북조시대에 살았던 요절한 천재로서 그의 주석은 '노자'를 형이상학적 수양론의 결정판으로 해석하게 된 기원을 이룬다.



그러나 1973년 중국 남부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의 무덤(기원전 168년)에서 비단에 쓰인 2종의 ‘노자’(帛書本)가 출토되었다. 학계가 깜짝 들썩였지만 왕필본과 비교해볼 때 道經과 德經의 순서가 바뀌고 글자 일부분이 다른 점을 제외하면 백서본과 왕필본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20년 뒤인 1993년 ‘노자’의 일부분이 들어 있는 대나무 문서(竹簡)가 발굴된 것이다. 학계는 뭐가 많이 다르겠냐 싶었지만, 이번엔 정말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노자'에서 儒家를 강하게 비판한 부분은 다 빠져있어 '노자'라는 텍스트가 후대에 많이 개정, 첨가된 것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곽점본과 왕필 및 백서본(이하 합쳐서 통행본)의 내용을 비교하는 연구들이 줄지어서 나왔다. 지난 10년간은 주로 글자를 해독하는 등 텍스트를 확정짓는 연구들이 주로 나왔다면, 근자에는해독된 내용을 바탕으로 '노자'라는 텍스트의 위상을 재규정하는 과감한 주장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최근 두 명의 학자가 곽점본과 통행본을 비교하는 논문을 나란히 발표해 주목을 끈다. 하나는 임헌규 강남대 교수가 학진 프로젝트로 수행해 최근 '동양고전연구' 제25집에 발표한 '노자의 무위이념은 유가의 인의를 비판하는가?'라는 논문이고, 다른 하나는 오상무 고려대 교수가 지난해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고 최근 '동양철학' 제26집에 수정보완해 실은 '노자의 유가관 재론-통행본과 곽점본을 중심으로'이다.

그러나 두 학자가 곽점본을 읽고 내린 결론은 서로 상반되는 감이 있어 이를 둘러싼 학계의 논쟁이 예상된다. 임 교수는 곽점본이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노자 판본이라고 볼 때 노자가 반유가적이라는 기존 견해는 잘못된 것이며, 오히려 노자는 친유가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비해 오 교수는 비록 노자 곽점본은 유가에 대해 덜 적대적이지만 유가의 통치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는 결론을 낸다. 또한 두 교수는 한자 해석 방법에서도 차이를 드러내고 있어 논란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임 교수의 논의를 보자. 핵심은 기존 통행본의 제38장이다. 여기에 "道를 상실한 이후에 德이 있게 되었고, 덕을 상실한 이후에 仁이 있게 되었고, 인을 상실한 이후에 義가 있게 되었고, 의를 상실한 이후에 禮가 강요되었다. 대저 예라는 것은 忠信이 엷어진 것이며 어지러움의 머리이다. 미리 아는 것은 도의 헛된 꽃이며 어리석음의 시작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임 교수는 이런 노자의 인, 의, 예에 대한 비판이 정당한가를 살핀다. 공자는 '논어'에서 "仁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인간이 인을 실행할 때 편안할 수 있다"라고 했으며 공자를 이은 맹자 또한 "仁은 인간의 편안한 집"이라고까지 천명했다. 맹자는 도처에서 인을 식물, 나무, 생장하는 곡식 등 유기체에 비유하면서 인의 실천은 유기체의 성장, 실현, 성숙과 같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임을 역설했다.

이를 통해 볼 때 "仁이 실행하는 의지에 의해 실천된다고 주장한 노자의 주장은 잘못"이라는 게 임 교수의 견해다. 또한 義가 仁의 외표라는 점에서 의 또한 인간의 내적 본성에 말미암아 마땅히 가야하는 바른 길이지 강압적인 것은 아니었기에 노자의 유가비판은 전반적으로 오해나 악의적 왜곡에 가깝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죽간본에는 이 38장이 빠져있다. 여기서 임 교수는 이것이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라는 입장을 보인다. 통행본에는 죽간본에서는 보이지 않는 구절들을 덧붙인 부분이 꽤 보인다. 게다가 글자를 교묘하게 바꿔서 뜻을 완전히 틀어놓는 경우도 발견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18장에 나오는 아래와 같은 경우이다.

죽간본 : 그러므로 大道가 행해지지 않는데 어찌 仁義가 있겠는가? 육친이 불화한데 어찌 효자와 자애로운 부모가 있겠는가? 나라가 혼란한데 어찌 올바른 신하가 있겠는가?

통행본 : 大道가 행해지지 않자 인의가 생겨났고, 지혜가 나오자 큰 거짓이 생겨났고, 육친이 불화하니 효성스런 자식과 자애로운 부모가 있게 되었으며, 국가가 혼란하니 충신이 있게 되었다.

죽간본에는 "故大道廢 安有仁義"라고 돼 있는데 통행본에는 "大道廢 有仁義"라고 두 글자가 빠짐으로써 뜻이 위에서 보듯 확 달라졌다. 통행본에서는 道가 仁보다 더 상위의 가치라는 점이 강조된 것이다. 임 교수는 이를 이데올로기적 투쟁 때문에 개작을 통해 본문을 반유가적으로 바꾼 결과라고 해석한다.

임 교수는 이외에도 많은 부분들을 대조하여 노자의 無爲之道가 유가의 仁政과 전혀 상반되지 않고, 오히려 상호 부합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흔히들 도가는 '도'를 자연물인 天地보다 선재하는 것으로 상정하여, 道 => 天地 => 萬物로 내려오는 형식을 취하는 반면, 유가는 천지에서 만물로 내려오는 우주발생론적 체계를 취하고 있다고 간주되어 왔다. 그리고 도가는 무위를 최상의 이념으로 하며, 따라서 정치 역시 무위정치를 이상으로 한다고 간주되어 왔다.

이에 비해 유가는 인을 최상의 덕목으로 하면서 인정을 정치이상으로 주장하였다. 하지만 단순한 문자상의 차이를 버리고 그 근본정신과 거시적인 체계에서 보면 비슷하다는 게 임 교수의 입장. 도가에서 道가 자연물인 천지를 넘어서는 生生하는 자연 그 자체이듯, 유가의 天 또한 그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오상무 교수의 의견은 좀 다르다. 임 교수가 도가와 유가의 유사점을 강조했다면 오 교수는 그 차별성을 여전히 강조하는 입장이다. 가장 확연한 부분은 앞에서 언급한 "故大道廢 安有仁義"에 대한 해석이다. 임 교수는 여기서 '安'을 의문대명사 "어찌"로 해석했다. 그런데 오 교수는 전후맥락상 볼 때 "어찌"보다는 연결조사 "이에"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입장이다.

오 교수는 그 근거로 이 18장이 내용상 17장을 잇고 있으며, 17장에 '安'이 명확하게 '이에'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만약 '安'을 '이에'로 본다면 "위대한 도사 폐기되면 이에 인과 의가 생겨난다. 가족이 화목하지 않으면 이에 효와 자가 생겨난다"로 죽간본과 통행본 사이에 변별점이 없다. 이런 견해에 대해 임 교수는 어떤 입장을 보여줄 지 궁금하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굳이 뜻이 다르지 않은데 왜 후대에 이 '安'자를 없애버렸는가 하는 점이다. 좀더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

아무튼 오 교수는 이런 입장에서 보듯 곽점본 노자 또한 유가에 대해 유보적이라고 본다. 다만 유가의 통치론에는 비판적이지만, 도덕론에는 동조적이라는 선에서 논의를 마무리짓는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단적으로 표현한다.

"노자가 仁을 끊고 義를 버려라고 말했을 때 그 청자가 누구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군주이다. 다시 말해 인과 의를 버려야 할 사람은 군주이지 백성들에게 인과 의를 행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통치자가 인의의 통치방법을 버릴 때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효의 마음과 행위를 회복하게 될 것이라는 게 노자의 본의이다."

과연 이를 보면 노자는 유가의 '仁'이라는 덕목 자체는 인정했지만, 그것을 통치술에 활용하는 '仁政'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임 교수는 '곽점본' 노자로 볼 때 노자 또한 '인정'을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라고 해석한다. 과연 노자라는 텍스트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학계의 좀더 깊이있는 토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리뷰팀)

07. 07. 16.

P.S. 비전문가로서 <노자> 텍스트 비평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을 갖기 어렵고 대신에 노자 사상/철학의 '해석'의 문제에 주의를 두게 되는데, 나의 견문으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강신주의 <노자: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형이상학>(태학사, 2004)이다. 이 또한 '당신이 없는 사이에' 출간된 책이어서 최근에야 그 존재를 알게 됐는데, 책의 타이틀 자체가 상당히 '모던'하면서 파격적이다. 흔히 '형이상학'으로 이해되는 노자철학을 '정치철학'으로 재해석하는데, 그런 시각에서 보자면 <도덕경>은 가령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같은 책이라는 것이다. 관련학계의 반응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만 그런 '반응'을 따로 알 길이 없어서 리뷰 기사 정도만을 옮겨놓는다.

문화일보(04. 05. 14) 군주의 통치윤리로 ‘老子’ 뒤집어 읽기

2000년대 들어 우리 사회와 대중의 지적 호기심을 환기시켰던 흐름 중 하나로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인 노자에 대한 관심을 들 수있다. 공중파 방송을 통해 대중들에게 ‘노자 열풍’을 지피는 데 공헌한 도올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 외에도 국내외 수많은 연구자가 노자의 사상이 담겨 있다는 텍스트 ‘노자’에 주목했으며 나름대로의 관점에서 이를 해석한 다양한 책을 끊임없이 내놓아 왔다. 이에 따라 과거에 양생술(養生術)이나 통치술, 처세술, 무(無)의 형이상학, 마음의 수양론 등으로 이해해온 데서 나아가 최근에는 유토피아적 무정부주의나 생태철학, 페미니즘의 이론적 기초로 보는 견해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노자를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노자 이해의 주류를 이뤄왔던 것은 중국의 보편적인 형이상학 또는 형이상학적 수양론의 결정체로 보는 견해였다. 이는 지난 2000년 가까이 노자 이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중국 위진 남북조시대 왕필(226~249)이라는 천재가 18세에 붙인 주석의 탓이 크다. 노자의 사상을 ‘개인’의 관점에서 조망함에 따라 일반 대중에게 ‘노자’는 무욕(無欲)의 삶을 설파한 마음의 수양론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모든 개인에게 바람직한 삶의 가치를 전해주는 교훈서 또는 ‘삶의 기술’을 통찰해낸 성인(聖人)의 글로 이해돼 왔던 것이다.

이에 반해 책은 개인이 아닌 ‘국가(state)’의 관점에서 ‘노자’를 해석하면서 기존의 노자 이해에 대한 전복을 시도하고 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장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전쟁과 살육, 주장과 논쟁으로 뜨거웠던 중국 전국시대의 혼란과 갈등을 국가라는 관점에서 조망하고 국가의 논리를 비교할 수 없이 정교하게 숙고한데서 ‘노자’의 의미를 발견해낸 것이다. 물론 ‘노자’라는 텍스트에서 국가라는 관점을 찾아낸 것이 저자가 처음은 아니다. 한비자(韓非子) 이래 최근까지 많은 철학자가 ‘노자’에서 국가를 읽어냈지만, 이들의 작업은 그동안 통치술로 가치폄훼돼온 현실에서 보듯 뚜렷한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우선 20세기 후반 중국에서 새로 발견된 판본들을 통해 기존 노자 이해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모두 81개 장으로 이뤄진 ‘노자’란 텍스트는 그동안 주로 왕필이 주석을 붙인 ‘왕필의 판본’에 근거해 해석돼왔다. 그러나 1973년 중국 남부 창사(長沙) 마왕두이(馬王堆)의 무덤(기원전 168년으로 추정)에서 비단에 쓰인 2종의 ‘노자’ 백서본(帛書本)이 출토되고 다시 20년 뒤인 93년 허베이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전국시대(기원전 475~221) 중기 무덤에서 ‘노자’의 일부분이 들어 있는 대나무 문서(죽간·竹簡)가 발굴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결국 우리는 ‘노자’에 대한 상이한 판본을 3종류 가지게 됐는데, 도경(道經)과 덕경(德經)의 순서가 바뀌고 글자 일부분이 다른 점을 제외하면 백서본과 왕필본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다. 반면 곽점본의 경우 백서본과 달리 유가사상에 적대적이지 않고 유(有)와 무(無)가 존재론적으로 동일한 위상을 가지는 등 몇가지 사상적인 차이점이 나타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상의 두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고 ‘노자’ 81장을 포괄적이고 하나의 연결된 문맥으로 독해할 것을 주장한다. 81개 장 전체를 동일한 비중으로 고려하지 않았고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도가도비항도·道可道非恒道)”와 같이 일부 몇몇 장만 핵심적인 장으로 간주해 온 것이 기존 노자 이해 의 문제점이란 것이다.

모두 10장으로 구성된 책에서 저자는 ‘노자’라는 텍스트의 핵심을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교환의 논리를 발견한데서 찾고 있다. 군주가 통치자라는 자리에 오래 있기 위해서는 세금의 대 가로 무엇인가를 피통치자들에게 주어야 하며, 만약 이 교환의 논리를 어기게 되면 군주는 결코 통치자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음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와 가라타니 고진, 라이프니츠 등의 저작과 사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저자는 노자가 유가와 법가를 비판적으로 종합해 사랑과 폭력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제국의 논리를 제공했으며, 이는 한(漢)제국을 거쳐 현재 중국에 이르기까지 중국적 제국의 논리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자연히 ‘노자’에 나오는 수양론도 대상이 군주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제한된다.



이와 함께 장자 연구자인 저자는 노장(老莊)으로 한데 묶어 이해해온 도가(道家)라는 범주가 해체돼야 한다는, 일반 독자들에게 매우 도발적으로 들리는 주장을 제기한다. 군주와 국가의 철학자
였던 노자와 단독적인 개체와 삶의 철학자였던 장자를 함께 도가 또는 노장사상으로 부르는 것은 사마천의 분류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일 뿐 순자(荀子)의 저서나 ‘장자’를 정밀하게 독해하면 노자와 장자가 별개의 학풍에 속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노자의 해석과는 판이하게 다른 저자의 주장이 일반 독자들에게 당황스럽게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노자 열풍’ 속에서 노자에 덧씌워진 각종 신비한 외관을 벗겨내고 그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자는 저자의 주장은 독자들이 음미할 가치가 충분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최영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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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7-16 21:52   좋아요 0 | URL
장자에 이어 노자까지 자꾸 제 가슴에 불을 지피시는군요. 둘 다 매우 관심있고 파들어가보고싶은 매력적인 철학자입니다. 저도 겉핥기 정도의 지식 밖에는 없죠. 장자와 노자는 공부하려면 좋은 텍스트들이 참 많습니다. 지적하신 강신주씨 같은 경우 <도에 딴지걸기 노자와 장자>를 통해서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도 섞어가면서 재밌게 노자와 장자를 비교하기도 하고요.

로쟈 2007-07-17 00:47   좋아요 0 | URL
제가 방화까지 하다니요!^^; <장자 & 노자>는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자가 보다 면밀한 책을 써서 중국이나 미국에 자신의 학설을 소개하는 게 어떨까 싶었어요...

가넷 2007-07-17 00:35   좋아요 0 | URL
장자와 노자 아닌가요...^^;

로쟈 2007-07-17 00:4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노자읽기 2007-09-18 22:39   좋아요 0 | URL
아마도 일년전 쯤 노자, 곽점초간, 백서, 통행본을 완독, 비교 연구해 본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최근에 그 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일년의 소회라 하면, 생각보다, 현대 우리는 한문 독해 능력이 참 떨어진다는 생각입니다 .
임교수님과 오교수님의 논쟁이라면, 저는 오교수님의 입장입니다 .참고로 백서의 표현은 '책상, 밥상, 안석 안案'이라 했습니다. 번역해 보면 큰 도가 기울고(大道廢), 책상, 밥상피고, 안석 기대고 인, 의를 잡고 있다(案有仁義)는 것입니다 즉 오교수의 번역에서 제 번역은 더 나아간 것인데, 큰 도가 짓밟고(大道發), 편안히 인, 의를 가졌다(安又{身心}義)는 것입니다. 이는 사실, 기존 통행본 도덕경에, 安, 案이 없는 것 보다 더 파격적이고, 심한 비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도덕경은 安, 案을 누락해서 더 순화된 표현을 썼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가와 도가의 대립점이라면 유가 또한 무위를 주장하기도 하여 무엇보다, 무위냐, 유위냐의 대립이 아니라, 正名과, 無名이의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유가는 배워서 더 잘 이름을 알고 이름에 걸맞게, 즉 왕은 왕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살자는 것이고, 도가는 억지로 끌어 올려 배워 익히지 말고, 왕도 스스로 고아, 과부, 나쁜 놈으로 부르며 외롭고 천하니, 이름을 가리지 말고, 날마다 비워, 스스로 그러한 바 대로 내 맞겨도 왕은 왕이고, 신하는 신하고, 백성 또한 스스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말 나온 김에 이를 다시 법가와 비교하자면, 법가는 刑名이라, 이름을 벌준다(?!)는 것이니, 신하가 신하 답도록, 백성이 백성 답도록 상벌을 명확히 해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저도 강신주님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 가장 탁월한 관점은 아마도 무뮈무불위에서, 무불치지나, 무소불위와 같은 개념이 나와서, 통치론으로 노자가 '활용'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강신주 님은 아예 노자가 곧 이러한 통치론, 심지어 파시즘적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강론하지만 말입니다 .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사실에 입각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무이무불위가 나오는 장은 도덕경에서 딱 두 장인데, 첫 째는 37장에 도상망위편이고, 두 번째는 48장에 위학자일익편입니다. 그런데 48장에는 초간부터 而亡丕爲가 있는반면, 37장에 而無不爲는 현행 도덕경에서 덧붙은 것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초간에는 아닐 不이 아니라 커질 丕를 쓰고 있으니, 짓길 잃고도 짓기가 커지길 잃는다는 뜻이거나, 丕가 혹 不의 필사 중 오기라면, 짓길 잃고도 짓지 않기를 잃는다는 뜻으로 행위를 잃었는데도 행위하지 못함이 없다(無弗爲; 사실 이렇게 못한다는 것이라면, 不이 아니라 弗이라 해야 합니다. )는 뜻이 아니라, 행위를 잃고 또, 행위 하지 않아야 함에서 자유롭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대게 사람은 무엇을 한사코 하고자 하면서 동시에 무엇을 한사코 하지 않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48장에서는 이는 직접 도를 말하는 술어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도를 무위라 여기게 된 것은 [도덕경] 37장에서 道常無爲而無不爲라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25장 도법자연 구를 덧붙여, 우리는 현재 道는 無爲自然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백서 갑이나, 을은 모두 '도항무명'이라 했으니, '이무불위'라는 구절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초간은 예초에 道를 말한 것도 아니고, 행위의 도인 갈 행行 가운데 人을 끼워 넣은 글자,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구전에, '도 인'자라는 것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초간에선 그럼 이 행위의 도와 노자의 도가 같은 것인가? 이는 똑같은 형식으로 즉 인항무뮈와, 도항망명이라 한 장을 비교해 알 수 있는데, 결론 부터 말하면 초간은 도와 인을 같이 보지 않고, 인을 도에 못 미치는 것으로 봤다는 것입니다. 초간 12편(도덕경 32장) 망명의 도는(道恒亡名) 종놈이고(僕), 단지 점괘를 전하는 여자일 뿐이라고(唯{卜曰女}, 천지가 감히 신하삼지 못하고(天地弗敢臣), 만가지 날림들이 스스로 집안에 재물인데(萬勿將自{宀貝}) 비해, 37장에 인용된 초간에선, 행위의 도인 인은 항구히 짓기를 잃어({行人}恒亡名, 후황이 지켜지는 것임에도(侯王守之) 그래도 만가지 날림은 스스로 마음 짓고(而萬勿自{爲心}, 마음 짓고도 욕망을 갑자기 일으키니({爲心}而慾作}, 이름 잃은 깨침인 것으로써 바로 잡아지는 것({貞之以亡名之박}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백서에서는 이제, 행위의 도인 인과 망명의 도가 구별되 쓰이지 않고, 오직 도만이 쓰이게 되었고, 그래도 백서는 이를 차마 无爲라 하지 못하고, 오직 無名이라 옮기게 되니, 이미 망명인데, 다시 망명지박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통행본처럼 다시 초간을 따라, {行人}이 이미 道라 바뀐 상황에서 무위라 하는 것 역시, 상황을 반전시키지 않았으니, 통행본은 도가 늘 함이 없고, 게다가 하지 못함이 없어, 후왕이 이를 잘 지키고(侯王守之) 만물도 장자 스스로 잘 바뀌는데(萬物將自化), 바뀌다가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욕망이 일어나고(化易欲作), 그러면 내가 이름 없는 통나무 인 것으로 누르는 것이라 하게 된 것입니다. 즉 통행본의 논리 속에서도 무위이무불위 한 도는 다시 무명지박의 힘을 빌어야 하는 만큼, 無所弗爲, 無弗治之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백서가 도를 차마 무위라 하지 못하고 논리적 모순이 있더라도 한사코 망명이라 한 것은 결국 도는 초간이나, 백서나 망명의 도라 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무위를 무불치지로 착각하여 통치술로 본 것은 법가의 오해라 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사실 초간에서는 治자가 쓰인 적이 없고, 바로 잡아서 나라를 좌지우지 하고(以正之邦), 창을 크게 구부려서 병장을 꿰고((以{奇戈}甬兵), 기원해 섬기길 잃고서 천하를 취한다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병법과, 천하를 취하는 일이 다르다 구분했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천하를 천자 또는 황제가 다스리는 천하로 본다면, 어쩌면 비약일 수 있습니다. 혹 춘추전국시대 천하를 주유했던 모든 유가들이 재패하길 소망하는 바, 당대의 세계, 세상을 말한다고는 할 수 있습니다. 설혹 초간에서 백서로의 변화가, 혹 정치적 관심에서 비롯한 것이라 할 지라도 그것이 유독 법가적 관심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문헌적 검토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노자, 특히 전국시대 백서 노자를 법가라 보는 김홍경씨나, 강신주님의 책에는 그러한 문헌적 검토가 없는데다, 이를 테면, 한 고조본 즉 백서 을 노자를 전국시대 노자로 보는 착각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대게 도덕경에 꿰어 맞추어진 현행 백서 노자 번역본을 빌어 쓰다 보니, 현행 도덕경을 전국시대 노자라 우기는 사태도 비일비재하게 됩니다 . 무엇보다, 강신주님이나, 김홍경씨가 증명해야 할 것은, 노자를 통치이념으로 써서, 춘구전국시대 '파시즘'을 구가한 군주나 그러한 통치예가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 아다시피 현행 [도덕경]을 정리한 한 고조의 네째 아들 문제는 노자를 좋아하여 법령을 간소히 하고, 함이 없는 정치를 행하다, 비록 명을 길게 하여 제위기간은 좀 길었을 지언정, 흉노의 침입과 귀족들의 반란을 막지 못하였다는 것은 모두가 다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로쟈 2007-09-18 22:33   좋아요 0 | URL
댓글로 카바될 수 있는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책으로 내시는 건가요?). 저야 '관전자'의 입장지만, 부엌데기님의 입론을 기대하게 되는군요.^^

노자읽기 2007-09-18 22:43   좋아요 0 | URL
그랬으면 좋겠지만, 내 줄 데가 없는데요... ^_^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수천년간 그 이해가 답보 상태였던, [노자]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제겐 정말 행복한 '삼 년'이었습니다.

2007-09-18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