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07. 07. 19) '개가 하는 인문학’

지난달 말 서강대에서 열린 제3회 ‘맑스코뮤날레’ 둘째날 행사를 보도한 참세상 기사의 제목은 <불붙은 한국학술진흥재단 기금활용>이다. 분명히 ‘계급혁명인가 분자혁명인가’라는 토론주제가 있는데, 이것은 부제처럼 밀려나 있다.

여기서 문제를 제기한 이는 조정환이었다. 그는 “발제문이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예산을 받았다고 한 점이 인상적이고 서먹서먹한 느낌으로 다가왔다”고 하면서 “맑스코뮤날레에서 정부 지원을 받은 논문들이 공공연한 석상에 오르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숙고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다른 논문이라면 몰라도 마르크스에 관한 것을 정부 지원을 받아쓴다는 것에는 나도 의아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령 내가 가끔 사서 보는 반년간지 ‘마르크스주의 연구’는 속표지에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간행”한다는 알림글을 적어두고 있으며,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은 논문을 싣기도 한다.

2006년에 나온 제3권 제2호에는 곽노완의 ‘마르크스 사회(공산)주의론의 모순과 21세기 사회주의’라는 논문이 “2005년 정부(교육인적자원부)의 재원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KRF-2005-005-J00201)”임을 밝히고 있으며, 이정구의 ‘새로운 대안경제의 모색’ 역시 “2005년 정부(교육인적자원부)의 재원으로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KRF-2005-005-J00201)”라는 표시를 논문 하단에 덧붙이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적인 입장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이들은 국가가 연구자에게 지원하는 재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러한 재원을 가지고 연구를 수행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가 궁금하기는 했다. 어디서 돈을 받든 연구 열심히 해서 학문 발전에 기여하기만 하면 되지 않느냐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이러한 논문 자체를 통해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적인 사람’으로 제시하는 이들은 정체성 문제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사실 정부에게서건 맘씨 좋은 자본가에게서건 돈을 받는다는 것은 돈을 받는 것 자체로 끝나질 않는다. 돈을 주고받는 거래관계로 인해, 마르크스도 지적했듯이 인간이 더 이상 스스로를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유적 존재로서 인간으로부터의 소외’상태에 빠지기 십상이다. 이는 간단히 말해서 돈을 주고받으니 돈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돈이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소외현상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12년 6개월 동안 이어져 오다가 최근 100회를 끝으로 정리된 부산대의 인문학담론모임에서 한문학과의 강명관 교수는 <다시 대학의 인문학을 생각한다: 공장의 침묵>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에는 참혹한 현상들이 처절하게 거론돼 있다. 몇 가지를 들춰보자.

“생각해 보시라. 우리가 얼마나 변질되었는지, 얼마나 타락했는지. 우리의 일상에서의 대화가 얼마나 처참해졌는지. 학문의 내용은 사라지고 오로지 연구비, 학술진흥재단이 대화의 화제의 중심이 되었고, 또 이따금 어떤 연구자가 거창한 연구비를 수주했다(거창한 연구가 아니라)는 것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 수치감도 버린 지 오래다.” “가증스러운 일은, 이런 연구비의 저주를 당연시하면서, 연구비로 연구를 통제하고 연구자를 노예화하는 외적 강제를 열렬히 찬양하는 주구(走狗)도 생겨난다는 것이다.”

강명관의 글을 읽고 나니 요즘 대학의 사정을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으며, 왜 그리 돈을 쏟아부어도 인문학이 발전하지 않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인문학을 하는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개(走狗)였던 것이다.(강유원/철학자)

참세상(07. 06. 29) 불붙은 한국학술진흥재단 기금 활용

둘째날 전체주제 '반자본주의적 대항지구화운동의 쟁점'과 '분자혁명론'이 오전10시 30분경 시작됐다. 토론 과정에서 윤수종 교수도 지적한 이야기지만, '대항지구화운동'이라는 주제가 직접적으로 다뤄지지는 않았다. 김창근 연구자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한국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 발제에 대해 조정환 연구자가, 윤수종 연구자의 '분자혁명론' 발제에 대해 이득재 연구자가 각각 토론을 부쳤다.

발제와 토론을 한 김창근 연구자와 조정환 연구자는 각자의 생각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채 격론을 벌였다. 플로어에서도 토론에 적극 참여했다. 뜻밖에 학술진흥재단 기금 활용 문제가 큰 쟁점이 되었다. '국가'와 '자율'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예상되었으나 연구자들의 현실적인 문제와 연동된 토론으로 이어져 흥미롭고 유의미한 토론으로 기록될 듯하다. (토론 내용을 그대로 싣되, 곳곳에 윤문을 했으며, 일부 누락과 의역이 있음을 밝혀둔다.)

조정환 : 우선 이 발제문이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예산을 받았다고 한 점(김창근 발제문 736쪽 : 이 논문은 2005년 정부(교육인적자원부)의 재원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KRF-2005-005-J00201))이 인상적이고 서먹서먹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지원을 하는 주체가 정부로 되어 있고 그래서 정부 그 자체가 자율적 주체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엄밀하게 보면 정부라 불리는 괴물이 있어서 국민, 다중으로부터 세금을 빼앗아 마치 자기 자신이 남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사유 활동을 국가화 하는 방식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맑스코뮤날레에서 정부 지원을 받은 논문들이 공공연한 석상에 오르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숙고했으면 좋겠다. 좌파 속으로 정부와 국가가 살금살금 기어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주제와 연관되어서 하는 이야기다.

발표자는 국가자율성이 절대적이냐 상대적이냐에 초점을 놓고 발전국가론이 말하는 상대적 자율성을 말하고 있는데, 사실은 절대적 자율성에 가깝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으로 기금을 바라볼 때 국가의 선명함이 확인될 것이다.

맑스코뮤날레 논문 발표되고 쟁점의 구조, 진폭을 나타나기 위해 배치할 때는 국가 자체 내부의 국가의 기능을 둘러싼 논쟁으로 좁혀져서 혁명적 대화로 발전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본인이) 적절한 토론자일 수도 있겠다. 논의 출발점을 맑스에서 출발한다.

두 부분 이야기했는데 토대와 상부구조론에 입각해서 정치적인 상부구조에 속한 국가가 토대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적이라는 이야기와 정부가 사회로부터 자율적이라고 하는 두 가지 주장인데, 왜 우리가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에 초점을 맞추고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 확립 쪽으로 해석해야 하는지 의문스럽다.

토대 상부구조론에서 맑스의 강조는 토대로부터 상부구조의 강한 규정성 문제였는데 (발제문에는) 토대의 상부구조 규정성이 누락되어 있는 것 같다. 구조라는 용어를 통해서 발표자가 염두에 둔 것은 국가에 대한 자본의 규정성이고 자본 중에서도 대자본 재벌의 규정성을 생각하고 있다. 맑스가 토대에서 강조한 경제적 생산관계는 생산영역에서의 사람들간의 투쟁이고 계급적 적대인데 프롤레타리아트를 강하게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이 문화나 정치에 미치는 강한 규정성, 거꾸로 국가의 노동에 대한 의존성을 빼먹고서 토대 상부구조론의 올바른 접근을 하고 있는가 의문스럽다.

보나빠르티즘 국가가 사회로부터 분리된 것은 사실이다. 맑스도 그렇게 논리 전개를 하고 있다. 하지만 맑스의 초점은 루이보나빠르트 브뤼메르 18일의 최후에 두더지 이야기가 있지 않느냐. 48년 혁명적 상황에서 아래로부터의 투쟁들이 위에 구멍을 파내면서 통치 안정성에 빈틈을 드러낸 게 18일이다. 특 치면 무너지는 것이 국가였다는 것이다.

적어도 맑스에게 국가의 자율성이란 산노동에 대한 모든 상부적 형식들의 의존성을 이야기하는 방편이었다. 그런데 지금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이 논문에서는 노동에 대한 관심 없이 초점으로 부상되고 있는데, 유럽으로 치면 유로코뮤니즘, 구조개혁주의 그래서 노동자계급정당들의 제도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20세기 후반을 나타낸다. 그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당운동들이 기본적으로 혁명성을 상실하면서 부르주아 정치권의 야당으로 편입되어가는 과정에서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이 나타난다. 네오맑시즘도 그렇고.

그렇다면 발전국가론이 네오맑스주의로부터 무엇을 빌려오든 간에 기본적인 논점은 국가의 자율성이 상대적인가 절대적인가 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국가의 자율성이 상대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절대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상황은 왜 나타나는가. 어떤 상황에서 그렇게 나타나는가를 푸는 것이어야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을 이야기하는 발표문의 주장은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국가가 갖고 있는 노동으로부터의 자율성이라는 관념을 신비한 형태로 옹호하고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이론 전개이다.

오늘날의 자본이 착취하는 것은 일국의 경제(즉 국민경제) 내부의 노동력이 아니라 전지구화된 삶정치적 공동체 자체이다. 국가는 이제 자본가들의 공동위원회도, 자본이 사용하는 억압적 도구도, 일국 자본들의 집합적 대표자도, 사회적 자본가도 아니다. 그것은 일체의 대의기능을 외면할 정도로 사회로부터 분리된 상태 속에서 사회적 삶의 생산과 재생산 속에 깊이 침투하여 삶 자체를 흡혈하기 시작한 네트워크화된 제국적 삶권력의 기관들 중의 하나이다.

국가가 다중의 삶으로부터 크게 분리되어 있는 상황으로 보고 이 상황을 이론화하는 지배적인 것이 탈근대화론인데, 포스트모더니즘 국가이론의 경우에는 국가가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시뮬레이션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국가는 어느 것으로부터도 구애받지 않는 상대적 자율을 이야기한다.

국가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과 자율적 행위자로서 이야기하는 것 모두 유사성이 있다. 발전국가론이 제3세계 신흥공업국에서부터 국가의 자율성을 이끌어내는가 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유럽사회로부터 찾아내는 것이 다르지만 국가의 자율성이라는 점은 두 개 공히 강조하고 있다,

발제자가 이야기하는 상대적 자율성도 기본적으로는 이 논리 틀에서 진행되는데 사라져버린 기반을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을 떠받쳤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한 형태라고 본다. 발전국가론 비판 부분은 기본적인 논조에서는 동의하므로 건너뛰고, 상대적 자율성 부분을 문제 삼겠다. 거의 전적으로 국가와 자본의 관계에 집중된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국가는 노동으로부터 자율적인가 라는 문제가 진지하게 제기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동계급을 수동적으로 취급한다거나 할 때 이런 이야기가 나올법 한데, 그냥 지나가는 방식으로 서술되면서 역사 속에서 노동계급이 자율적인 행위를 하지 못했다 라고 하는 이미지를 남겨두고 있어 안타깝다.

국가가 정책 결정과 정책 집행에 자율적 주체로 나타날 때에도 그 정책의 주요한 관심사는 응당 노동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착취해서 이들로부터 효율적으로 이윤을 뜯어낼 것인가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산노동에 대한 착취 문제가 있는 한 노동에 대한 국가 정책의의존성은 벗어날 수 없는 지반이다.

국가의 자율성에 대한 모든 담론에 노동의 자율성, 삶의 자율성을 배치시켜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국가의 자율성 개념은 삶의 자율성이라 하겠는데, 삶 자체가 스스로를 자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하는 특정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반영으로 생각해야 한다.

김창근 : 정부 지원문제 관련해서는 그렇게 언급하는 것은 부당하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연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원을 받기 때문에 우리 사상에 문제가 있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내 글에 자본주의적 요소가 슬금슬금 기어와서 사고를 마비시키지는 않았다. 그런 비평은 타당하지 않다. 나머지 비평은 본인이 자율주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그르다고 본다.

국가와 자본 관계를 이야기했다. 물론 노동의 문제를 떼놓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자율주의 이론에 따르면 국가는 자본에 완전히 종속된 걸로 나타난다. 국가와 자본을 동일시한다고 본다. 우리가 정치와 경제를 구분하는 이유는 무어냐. 네그리 이야기룰 하는데 제국이 뭐냐, 국가와 결합된 주체다.

노동의 자율성 이야기를 하는데 노동이 자율적이라고 하고 스스로 떨쳐 일어난다고 하면 왜 고민하나,. 다중이 산발적인 투쟁을 하지만 다중 스스로 혼자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고민하는 것 아니냐. 민중들이 자율성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은 아니다. 그것을 직접 획득하지 못하므로 우리가 이렇게 토론하는 거 아닌다.

모든 걸 자본과 나머지로 나누는데, 그렇게 설정하면 문제는 굉장히 쉽다. 그러나 현실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정치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여러 계급계층이 존재하므로 고려할 것이 많고 이데올로기 면에서 계속 처절히 깨지는 것 아닌가.

도요차 모델 이야기를 하는데 도요타 모델은 일본의 자동차가 노동자를 가장 강력하게 착취하는 체계이다. 일본에 중소기업들을 적기생산방식이라 해서 도요타 앞에 기다리게 하는 체계다. 노동자 자기가치화를 강조하는 포스트모던에서 노동자 자기 주체를 만들고 국가로부터 자본으로부터 자율을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조정환 님은 이런 주장들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 얼마나 현실을 반영하는 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조정환 :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 문제는 사유 활동, 학문 활동에서 국기자원시스템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이런 구조는 두뇌 활동 자체가 국가에 의해 장악되어가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이 문제는 배경과 효과 등에 대해 토론해보는 것이 좋겠다.

다중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였다고 하는데 이는 우리와 다중을 분리시켜버린다. 여기 모인 우리가 다중이고 저 역시 그런 한 사람으로서 지금 바로 우리가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 있다. 국가를 우리 중심에 놓고 국가를 내면화 하는 방향으로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들의 삶의 힘을 중심에 놓고 국가를 해체할 것인가가 우리의 쟁점이다.

정치는 간단하지 않고 복잡하다는 것 동의한다. 정치에 대한 사유에 있어 제도와 국가의 세밀한 권력관계에 대한 내부적 역학에 너무 관심을 빼앗겨서 정작 우리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고, 결집 조직될 수 있고, 우리의 능력이 얼마나 되는 지에 대한 관심은 잃고 있다.

현실 반영이 얼마만큼 현실을 반영하는가 라고 했는데 현실은 생각하기 따라 다르다. 어떤 사람이 현실 문제라고 보는 것을 또 다른 사람은 무관하다고 본다. 돈을 버는 사람들은 우리 모임이 매우 공허하고 비현실적인 사람들이라고 볼 것이다. 어떤 맥락에서 보느냐에 따라 현실은 결정된다.

정성진(플로어) : 조정환 님이 언급한 정부지원금 문제는 저도 연관되어 있다. 사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그랬는데 학진 연구비 지원시스템이 신자유주의 학문정책의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 공감하고 있다. 그것을 개혁해야 한다는 점도 공감한다. 하지만 개혁이라는 게 국가 정책 비판과 변혁적 개입 없이 단지 회피하는 것으로서의 교육, 학문정책에 대한 답이 나올까? 그렇지 않다.

본인의 학교 이야기해서 그렇지만 연구소를 하고 있다. 국립대학 연구소에서 지난 1999년부터 연구기관 자체를 진보적인, 맑스적인, 사회주의적인 연구자들의 관제고지로 장악해서 제도권 내에서 자본주의 자체를 변혁하고 지향하는 연구센터를 만들어보자는 상당한 동의를 구하고 여태 굴러왔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중점연구소지원사업에 몇 번 선정된 바 있다. 개량주의적이고 노무현정부의 정책 쪽으로 밀고 나가려는 측면이 있지만, 과감히 맞서며 활동해왔다. 심사 과정을 보면 알 것이다.

지금 밖(로비)에 보면 우리가 2004년부터 간행해온 연구물들이 있다. 조정환 님도 서너 차례 기고활동도 했고 원고료도 드렸다. 조정환 님도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소에 있고, 오늘 맑스코뮤날레 장소 제공하는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도 중점 연구소로 선정된 바 있다. 맑스코뮤날레 돈 가치를 따지면 7백만 원인데 물론 다른 데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구자 재생산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사회실천연구소에서 우리 나름대로 진보적인 대학원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도 있고, 조직위에서는 맑스아키데미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 나온다. 이 재원이 어디서 나와야 하나.

정부의 돈은 노동의 잉여가치를 착취한 거 아니냐. 그걸 이용해서 자본주의 변혁에 기여하자는 것이다. 정부 지원 받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자면 우리 호주머니 친구들 호주머니 털어서 한다는 건데 그것은 무엇이 될 건가. 따져보면 중소자본가로부터 지원받을 것 아닌가. 국가를 매개로 한 개념이 상당히 중요한데 조정환 님이 강조하는 자율주의에서는 그 부분이 배제되어 있다.

제국을 떠나서 코뮨이 자율적인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건 있을 수 없다. 국가와 자본에 포섭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므로 자본주의 국가 문제를 넘어가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변혁은 가능하지 않다. 한미FTA 대안 문제 관련, 발전주의 국가론 포함해서 개량적인 비판이 한국 사회 진보 구상에서 중요한 문제인데 그걸 피해간다. 국가를 떠나 회피하고 자본주의 극복하는 코뮨 건설된다는 것을 상상한다는 것인데 고전맑스주의 모두 정정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국가와 전면 대결하고 국가권력을 분쇄하는 과정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플로어 : 조정환 님이 이야기한 김창근 님 재반론은 부당하다. 국가와 자본은 자율주의적인 개념이 현실의 반영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자율주의적으로 국가를 본다면 국가를 젖혀두고 자본 관계만을 본다는 것인데 현실이 과연 그런가. 국가를 무시하고 산다면 국가는 우리를 가만히 두냐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율주의자들이 국가를 바라보는 개념 자체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윤수종 : 저의 정체성 일부가 자율주의인데 완전한 자율주의는 아니고. 자율주의가 국가를 완전히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저는 국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글을 쓸 때마다 손끝에서 국가가 느껴진다. 추상적인 논의하면서 자율주의 한쪽으로 몰아부치는데 네그리 주장과 재해석을 두고 여러 생각은 있을 수 있다. 네그리가 국가를 도외시한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너무 단선적으로 이야기 되는 것 같다.

김창근 마무리 발언 : 학진 관련, 대학이 자본주의 속에 있으면서 지배적 엘리트 집단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대학에 자금 제공하는 학진 역시 그런 성격에서 자유롭지 않다. 학진 자금을 지속적으로 받기는 어렵다. 정성진 님이 이야기를 안 했는데 김대중 정권 때는 어찌보면 학진 자체가 자율성이 많았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좌파쪽 사업은 배제하는 상황이다. 국가의 자율성을 이야기하는데 노무현정권에 와서 그런 자율성이 약화되고 있다.

우리가 국가에 비어있는 부분에 침투하면서 연구자를 키우고 공동연구를 통해 좌파적인 이론을 만들어내는 장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교수 자리도 마찬가지다. 지배계급의 이익에 복무하도록 되어 있는 위치이다. 여러 교수들이 그런 걸 떠나서 좌파이론을 연구하고 만들고 하지 않느냐. 물론 한계가 있겠다. 하지만 끊임없는 비판을 가하면서도 활용할 수 있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국가에 대한 상대적 자율성을 논할 때 취해야 할 자세라고 본다.

두 번째 문제는 윤수종 님 이야기다. 윤수종 님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율주의 이야기하면서도 이론에 경직되지 않는다. 다중에서도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을놓치지 않고 국가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그래서 존경한다. 자율주의를 하려면 윤수종 교수와 같은 건전한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조정환 마무리 발언 : (사회자의 발언시간 확인에 대해) 내 발언에 제약을 하는 것 같다. 공포심이거나 적대이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자율주의가 국가를 회피한다고 하는데 과연 제대로 짚고 있나. 정직한 접근방법인가 비판하고 싶다. 우선 국가에 영합하고 국가의 틀 속에서 그걸 접수해서 뭔가 내용적인 변화를 꾀한다는 벙법이 국가를 변형하고 해체시키는 방법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국가를 강화하고 국가를 보조하면서 마음속으로 비판한다는 건 국가개혁주의의 한 유형이다.

학진에 대한 정성진 님의 태도는 학진 시스템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고 해체시키는 것을 안 하는 것이다. 어떻게 좌파 색깔 가질 것인가 고민하며, 학진 재정 통한 학술 통제시스템에 문제제기 하지 않는 한 필연적이 될 수밖에 없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가 문제가 다시 나왔는데 전술을 결정할 때는 항상 단일한 것을 강조했다. 구체적 정세 구체적 행동방침 결정하는 것이고 당이 내리는 방침 앞에 객관적 현실은 하나였다. 당이 내리는 전술방침에 대한 현실 판단과 지침은 누구나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보편적 명령이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권리가 누구에게 있나. 생태주의, 패미니즘, 맑스주의자가 보는 현실은 제각기 다르다. 현실은 처한 맥락에서 규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현실에 대한 각각의 대응들 속에서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다함께라든가 특정 지도적 개인이 생각하는 것을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는 것을 현실관으로 삼아야 한다. 어떤 사람도 현실을 올바로 본다고 자임하고 강요할 권리는 없다고 본다.

플로어 : 학진, 재생산 이야기했는데 여기 대학원생들이 학진이나 교수 권력관계에 대해 비판적으로 봐야 한다. 석사과정에 있는데 학진으로 말미암아 학진과 교수와의 관계에서 문제의식이 상당히 기각되곤 한다. 학진 기금 활용해서 변혁적이고 진보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진실한 마음은 동의하지만, 우리 사유와 활동이 거기에 종속되어 기각되지는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

전체토론 두 번째 '분자혁명론'은 윤수종 연구자가 발제하고 이득재 연구자가 토론을 부쳤다. 윤수종 연구자는 "분자혁명이 국지적인 미시혁명, 미시적인 국지적 해방 기획의 합계가 아니라, 사회적 영역 총체, 주체화양식 총체에서 무의식의 형성을 있는 그대로 분석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레닌주의와 무정부주의의 두 '극단적인 모형'에 대해 이를 일방적으로 폐기처분하기보다는 이해관계에 근거한 기존의 계급투쟁을 다양한 사회투쟁과 결합하면서 장기적이고 복합적이며 누적적 혁명과정을 이루어 나가자는 가타리의 문제의식을 발표했다.

윤수종 연구자는 앞서 논란이 된 학진 문제와 관련, "최근 진보평론이 소수자투쟁을 인정투쟁으로 정리한 기고글을 싣지 않았는데 그 글이 학진에서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쾌감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수종 연구자의 발제에 대해 이득재 연구원은 토론에 부치는 열 개의 질문이 담긴 글을 제출했다.(코뮤날레 취재팀) 

07. 0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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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80년 광주'를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가 개봉되었다(가 아니고 다음주 25일 개봉예정이다). 지난주부터 언론과 잡지마다 시사회 리뷰들을 싣고 있는데 대체로 평이 좋은 편이다. 한국영화라서, 혹은 '광주'를 다룬 영화라서 띄워주는 분위기가 아니라 모처럼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춘 영화의 출현을 반기는 분위기이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극장나들이에 동참해보는 것도 좋겠다(돈이 많이 들어간 영화라니까 본전은 뽑을 수 있도록). 여기서는 컬처뉴스에 실린 리뷰를 읽어보도록 한다.

컬처뉴스(07. 07. 20) 영화 한편의 힘! - <화려한 휴가>의 대중적 흡입력

영화 한 편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는 이미 여러 번 경험한 바 있다. 대중들의 기억 속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희미한 북파공작원 사건의 비극을 다룬 영화 <실미도>가 엄청난 흥행을 하면서 사건의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일었다. 심지어 9시 메인 뉴스에서 연이어 등장할 정도로 대단했다. 실미도는 순식간에 명소로 떠올랐고 공작원이 처절하게 죽은 신대방 거리에서 추모인들이 노제를 지내기도 했으며, 실제로 북파공작원 출신들은 강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렇게 1200만 명이라는 대대적인 관객이 이 영화를 보면서 <실미도>는 하나의 신드롬이 되어버렸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영화의 힘은 세다.

요즘 한국영화의 주요 흐름 가운데 하나는 팩션영화인데, 팩션영화는 대부분 위에서 언급한 효과를 노린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나 인물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극적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바탕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대중들은 영화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을 혼동하기도 한다. 즉 영화적 상상력을 실제적 사건으로 혼동하는 것이다. 팩션영화가 흥행하면 역사적 사실을 추적하는 작업으로 이어지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신드롬이 되면 사소한 것으로까지 관심이 증폭되면서 역사적 사건의 실체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나는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화려한 휴가>가 이런 단계에 올랐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사실 광주민중항쟁을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었다. 기존에 제도권에서 만들어진 광주에 대한 영화는 대부분 지식인의 패배주의적 시각을 담고 있는 주변부적 영화였다. 단 한 번도 정면에서 다루지 않았다(<부활의 노래>를 제도권 영화로 보기는 어렵다). <꽃잎>이나 <박하사탕>을 보면서 왜 광주를 저렇게밖에 그릴 수 없는지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나는 <박하사탕>에 대해서는 생각을 달리한다). 그러다가 문뜩 한 가지 결론을 얻게 되었다. 지식인의 패배주의적 시각으로 광주를 그린 이들은 대부분 1980년 5월에 성인이었던 이들이다. 성인의 눈으로 양민이 무참히 학살된 사건을 바라본 그들에게 광주는 부채로 남았고, 때문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감히 광주를 정면에서 그리지 못하도록 한 것이라고.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다. 다음 세대가 등장해야 한다고. 1980년 광주의 원죄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세대가 등장해 정면에서 다루는 것을 보고 싶었다. 총칼 앞에서도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학수고대했다. 소시민이 영웅(또는 전사원형)이 되어가는 과정은 신화에서 이미 숱하게 보아왔던 익숙한 주제이다. 그러니 충분히 흥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광주민중항쟁이 점점 잊혀져가는 현실에서, 대자본이 들어가는 영화를 누가 만들려고 하겠는가. 광주민중항쟁을 다루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역사적 사건으로 잊혀지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도 했다.

사실 광주의 학살이라는, 너무나 무거운 짐으로부터 벗어나 객관적으로 그리는 작업은 매우 어렵고 고단한 작업이다. 피해자나 그의 가족이 엄연히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게다가 가해자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제 아무리 잘 재현한다고 해도 ‘잘해야 본전’인 게임이다. 때문에, 어쩌면 광주민중항쟁을 그린 영화를 영영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불안감을 한 번에 잠식시킬 수 있는 영화가 ‘화려하게’ 등장했다. <화려한 휴가>가 문제의 영화이다. 이 영화가 특이한 것은 1970년대생이 만들었다는 것이고, 대구 출신의 감독이 연출했다는 것이며, 광주를 정면에서 다루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결합하면 광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광주를 객관적으로 그리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있다. 이 영화의 순제작비가 100억 원이다. 홍보비를 합치면 120억이 된다. 말 그대로, 블록버스터인데, 이것은 흥행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다. 이 영화가 흥행에서 참패하면 제작사인 기획시대의 운명이 끝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영화의 위기가 가속화된다. 감독과 제작사는 분명 이 점을 명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광주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10일간의 광주를 대중적으로 그리는 것이다. 10일 동안 계엄군에 맞서 싸우지 않을 수 없었던 시민들의 내적 파노라마를 멜로적 감수성으로 그리는 것이다. 이름 없는 시민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캐릭터를 구축한 후 그들의 의리와 투쟁을 신화적 내러티브로 전개해 대중성과 현장성을 동시에 획득하는 것이다. 소시민이 영웅이 되어가는 신화의 구조를 이 영화는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한편으로 감독은 당시의 현장을 복원하는 것에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이 영화의 현장성을 위해 당시 사진과 다큐를 생생히 화면으로 다시 복원했다. 이미 광주항쟁 비디오나 사진을 본 이들은 한번쯤은 본 듯한 장면들이 영화에서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감독은 사실적인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 물론 사실적인 느낌의 복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대중적으로 재미있고 눈물 나도록 포장했다. 100억 원을 들인 영화가 사진이나 다큐와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또는 같아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인지 <화려한 휴가>는, 전혀 다른 사건이지만, <실미도>와 닮아있다. 군인이 등장한다는 점이나 냉전체제의 산물이라거나 주인공이 대거 희생된다는 점, 또는 액션 스펙터클의 볼거리라는 점을 떠나서, 관객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서적 동일시 효과가 이상할 만치 비슷하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서 각자의 개성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축하다가 마지막에 모두 전사한다는 이야기 구조가 비슷하고, 무엇보다 마지막 전사 시퀀스는 비교 분석이 가능할 정도로 닮았다. 죽어가는 시민군들이 자신의 이름과 하고픈 말을 무전기로 남기고 죽을 때의 모습은 <실미도>에서 병사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는 장면과 거의 비슷하다. 두 영화가 가지는 대중적 흡입력도 상당히 흡사하다. 이 말은 <화려한 휴가>는 대중적으로 흡입력이 크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영화는 의도한 바를 성취했다. 초반부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날들이 지나면 처절한 투쟁의 현장이 너무도 애절하게 이어진다. 사이사이 멜로적 코드의 여백이 배치되어 있고 여백을 넘으면 강한 템포의 학살과 투쟁이 이어진다. 때문에 이 영화를 보면 웬만한 이들이라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눈물을 통해 젊은 세대들에게는 불과 27년 전에 이런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교과서가 될 것이고,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의 원죄의식을 달래주는 한판 굿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5.18에 대한 속죄의 영화이자 뒤늦은 만가(輓歌)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대중영화다 보니 명확한 장점과 뚜렷한 한계를 지닌다. 대중적으로 알리 쉽게 캐릭터를 구축하고 내러티브를 전개해서 누구나 영화를 통해 1980년 광주의 당시 모습을 확인할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과잉된 정서로 사건을 다루다 보니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계엄군이 광주를 진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은 당시의 시국 인식보다는 특전사 대장의 충성의 발로처럼 보이고, 해방구를 접한 후 시민군들은 서로를 격려해주는 동지애만 강조할 뿐 그들의 갈등과 분열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투쟁하자는 입장과 투항하자는 입장의 대립이 거의 없다. 이런 불만은 이 영화가 시민군들의 입장을 철저하게 옹호한 영화라는, 때문에 대선 정국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할 영화라는 반대편의 비판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한계를 충분히 끌어안을 만큼 <화려한 휴가>는 대중적으로 몰입이 강하다. 이것만으로도 일반인이 광주민중항쟁의 실체에 대중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영화 한 편이 모든 것을 다 보여 줄 수는 없다. 영화는 단지 한편의 영화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목적한 바를 충분히 성취했다. 이제 남은 몫은 이후의 영화가 새롭게 다루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어차피 역사가 팩트에 대한 해석이듯이, 영화도 광주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나 재현에 지나지 않는다. 해석이 다양하고 풍부해지면 그만큼 우리의 현재가 두터워지는 것이고 현재가 두터워지면 과거와 미래도 두터워진다. 이 한 편의 등장으로 광주민중항쟁을 다양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강성률/ 영화평론가)

07. 07. 20.



P.S. 검색해보니, 필자인 1970년대생 영화평론가 강성률씨의 책으론 <영화입문>(리토피아, 2005), <하길종, 혹은 행진했던 영화 바보>(이론과실천, 2005), <친일영화>(로크미디어. 2006) 등이 나와있다...

P.S.2. 생각난 김에 어제 읽은 인터뷰 기사도 옮겨놓는다. <화려한 휴가>의 주연을 맡은 배우 김상경씨와의 인터뷰이다. 내용중에 가장 인상적인 건 김지훈 감독이 이 영화를 일종의 '재난영화'로 찍고 싶어했다는 것. 이 영화의 성취가 그러한 발상에 힘입은 것이리란 생각을 했다.

문화일보(07. 07. 19) ‘5월 광주’… 그 억울함 함께 느꼈으면… 

‘화려한 휴가’의 주인공 김상경을 만났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혈육을 잃고 통곡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역사의 일부가 된 택시 기사 강민우를 맡은 그는 시사 이후 ‘화려한 휴가’에 쏟아진 호평에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배우야 고생해서 찍은 작품의 반응이 좋으면 그보다 행복한 일이 없겠지만 더군다나 5.18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어린 관객에서부터 우리 어머니처럼 나이드신 분들까지 모두 공감하고 눈물 흘리는 영화로 완성된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정치 이야기가 배제된 광주 영화다. 이런 영화로 완성될 것이라고 예상했나.

“시나리오를 받고 가장 좋았던 게,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정치색이 강하고 민주열사가 주인공인 영화일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읽기 시작했는데 보면서 좀 놀랐다. 초반에는 아주 평범하고 순진한 사람이 여자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얘기도 코믹하게 나오고. 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광주를 정치적 무게감 없이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에게 헌신하는 착한 민우는 그동안 맡아온 캐릭터와 많이 다르다.

“드라마에서는 의사나 변호사, 검사 등 전문직, 영화에서도 남루하긴 한데 그래도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좀 삐딱한 역할을 많이 했다. 이번 영화의 강민우처럼 순수하고 담백한 역할은 처음이다. 그래서 가장 보편적이고 평범한 사람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역사의 무게감을 많이 느끼지 않고 그냥 평범한 일상, 보편적인 감정을 담으려고 했다.”

―김지훈 감독이 어떤 부분을 가장 강조했나.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심리, 마음을 강조했다. 그냥 보통 사람들이 느꼈을 고통, 이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의 감정…. 감독은 ‘화려한 휴가’가 5·18을 소재로 하지만 정치 영화가 아닌 ‘재난 영화’로 찍고 싶다고 하더라. 갑자기 당한 사람들에게는 재난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

―‘재난 영화’라는 표현에 공감하는지.

“‘재난 영화’의 의미도 여러가지니까 공감한다. 갑자기 당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온 나라에 난리가 난 것 아닌가. 기자 시사 때도 반응이 좋았지만 일반 시사, VIP 시사 때는 정말 좋았다. 자막 올라갈 때까지 사람들이 안나가더라.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피해자들이 느꼈을 감정이 그만큼의 에너지를 갖고 전달된 덕일 것 같다.”

―영화에 가해자가 없다.

가해자나 총을 쏘라고 명령한 사람이 누구인지 하는 것은 다른 데서도 공부할 수 있다. 우리 영화는 그저 그때 광주 사람들의 그 심정, 억울함과 비통함을 공유하자는 영화다. 사실 나도 그랬지만, 타지역에서 5·18 광주를 진짜 가슴으로 느끼고 슬퍼한 사람이 많았을까? 영화를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억울했을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느끼고 공유했으면 좋겠다. 난 내가 나오는 영화를 못보는 편인데 이 영화는 계속 보게 되고, 볼 때마다 울게 된다. 그건 진짜 감정이 담겼기 때문인 것 같다.”

―왜 본인이 출연한 영화를 못보나.

“내가 출연한 것도 잘 못보고, 사실 영화를 잘 안본다. 고민인데, 이제는 내가 가진 이미지를 지우기에 바쁘다. 연기하려고 하면 내가 어디 어디서 연기한 것, 누구 누구의 연기가 떠오른다. 연기 시작한 지 벌써 10년인데 찌꺼기, 때가 많이 낀 것 같다. 순수한 감정에서 연기가 올라와야 할텐데 기술적으로 계산하지 않은 감정을 표현하기가 힘들어진다. 영화를 안보는 대신 다큐멘터리를 즐겨본다. 책도 소설보다는 인문과학서나 인간에 대한 분석이 담긴 책이 좋다. 어떤 내용이든 현실과 밀착되지 않은 이야기는 내 몸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무덤덤한 거 아닌가.

“무덤덤하다면 ‘화려한 휴가’에서 동생이 죽었을 때 그렇게 우는 모습이 나올까? 감수성은 예민한 편이다. 슬픈 다큐멘터리 보다가도 1초면 눈물이 난다. 그냥 믿기지 않는 인위적인 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배우로서의 이미지도 그런 것 같은데, 늘 옆에 있는 것 같고 아주 일상적인데 일상적이지 않은 것을 표현하는 게 난 재밌다.”(전영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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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7-20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개봉되었군요. 기다리고 있었는데...

로쟈 2007-07-20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극장에 간판이 다 붙어 있어서 이번주부터인 줄 알았는데, 다음주부터라는군요.^^;

twinpix 2007-07-20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들과 다다음주 쯤에 볼 예정이에요. 평을 읽어보니 괜찮을 것 같네요.

로쟈 2007-07-21 08:52   좋아요 0 | URL
단체관람을 하시는군요.^^

테렌티우스 2007-07-21 0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0년에 고1이었는데, 이 영화 '꼭' 잘되길 바라봅니다...^^

로쟈 2007-07-21 08:52   좋아요 0 | URL
되돌아보면, 험난한 세월을 사신 거지요.^^;
 

어쩌다 발목 잡히는 일이 간혹 생긴다. 한겨레에 실린 김영민 교수의 칼럼 '이소룡에게서 배우는 공부'와 그 문체에 대한 철학자 강유원의 비판을 옮겨놓았는데(http://blog.aladin.co.kr/mramor/1422055), 보기에 따라서는 '편파적'이란 인상을 주었을 법하다. 해서 내친 김에 최근 한겨레에 연재되고 있는 그의 공부론을 모아놓는다('공부론'은 '동무와 연인'에 이은 연재인데, 한겨레와 궁합이 잘 맞나 보다). 이소룡 편이 첫번째 연재였는지라 이어지는 건 그 두번째부터이며 나의 생각 간간이 적어놓도록 하겠다.

 

한겨레(07. 06. 02) 공부론 / (2) 이종범, 혹은 내야수의 긴장

검도 고단자이기도 한 양선규 교수의 소설 <칼과 그림자>를 보면, “내 검도가 육체를 얻었다”는 구절이 눈에 띈다. 쉬운 말로, 저절로, 허세를 부리지 않는 지경에 들게 되었다고 해도 좋다. 혹은, 자기 생각의 틀 속에서 오락가락하는 관념의 검도를 벗어났다는 뜻일 게다. 비록 관우의 청룡도를 얻었다고 해도 연습이 없으면 그것은 아직 ‘관념’이다.

자기 생각의 악순환 속에서 경화(硬化)하는 짓은 그 모든 공부의 지옥인데, 그 지옥을 뚫는 길은 타자(他者)의 지평을 얻는 길뿐이다. 근년의 많은 철학사상들이 필경 자기차이화(self-differentiation)의 체계에 귀속하는 변증법이나 대화주의에서 벗어나 타자의 문제에 깊이 골몰했던 것도 그 같은 시절 인연이 맺힌 풍경이다. 물론 어줍은 경험으로써 자기 생각을 박제화한 치들은 다만 절망 그 자체다. 그래서, 공부에 관한 한, 언제나 ‘조금 더’ 똑똑해지도록 겸허해야 한다. 가령 이윤기의 <아주 특별한 손님>(2006)이나 플로리안 헹켈 폰 도너스마르크의 <타인의 삶>(2006)과 같은 수작들은, 어떤 틈 속으로 스며든 우연찮은 타자성의 체험이 어떻게 내 생각의 탑을 허무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타자성은 일종의 폭력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폭력적 개입이 없이는 필경 공부에 이르지 못한다. 타자(打者)와 투수가 삼진과 홈런으로 주고받는 폭력적 개입, 주자와 야수의 충돌이 선사하는 새삼스러운 내 몸의 현실! 진정한 타자, 진정한 폭력과 만남(충돌)이 없는 문사들의 논쟁은 그런 뜻에서 대체로 사이비다. 피아의 구별도, 심지어 무기와 몸의 구별조차 없는 두루뭉술한 관념적 혼란과 혼동으로는 공부의 기본에도 이르지 못한다. 그들은 죽지 않으므로 살지도 못하며, 그렇기에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타자성의 체험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마치 도장격파(道場擊破)를 하듯이 각지의 지식인-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그 지식의 허구와 허세를 까발린 소크라테스야말로 지극히 무사적이지 않은가?

공부하지 않는 이들, 자기 생각과 경력의 오연(傲然) 속에 자의식의 깃발을 꽂은 이들, 싸워도 영영 죽지 않는 이들, 그리고 타자의 세계를 오직 자기 생각을 번식시키기 위한 뻐꾸기의 둥지로만 여기는 이들에게 세상은 오직 자기 생각의 표상으로만 의미 있는 관념의 덩어리다. 그들에게 모든 인식(cognition)은 재인식(re-cognition)의 동화체계 속으로 내재화시키는 짓이며, 이때 타자는 자신의 거울방에 다만 그림자를 남길 뿐인 풍경이다.

문제는, 관념과 그림자의 거울방을 깨고 나가서 실전(實戰)으로 공부하는 방식을 묻는 일이다. ‘어떤 틈 속으로 스며든 우연찮은 타자성의 체험’에 자신을 넉넉히 노출시킬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다. 자기체계의 안정화가 아니라 늘 새로운 변화에 기민하도록 탄력 있는 긴장의 상태로 스스로를 부단히 조율해가는 일이다.

일본 최고의 무사 미야모토 무사시(1584~1645)가 쓴 병법서인 <오륜서>(五輪書)는 ‘차림새가 있는 듯이 없고 없는 듯이 있는 상태’를 유독 강조한다. 문사들이 지행병진(知行竝進)을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형(型)을 뚫어내고 자기표현으로 나아간 단계로서, 이른바 검선일체(劍禪一體)에서 멀지 않을 것이다. 무사시의 해설을 덧붙이면, “몸이 정지해 있을 때에도 마음은 정지하지 않아야 하며, 몸이 민첩히 행동할 때에도 마음은 평정하게 하여 몸의 움직임에 끌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요컨대, 움직임 속에 머무름이 있고 머무름 속에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나는 지난 30년 이상 매일 몇 시간씩 버릇처럼 글쓰기를 계속해오면서 의도와 결실 사이에서 번득이는 바로 이 정중동동중정(靜中動動中靜)의 이치에 매우 익숙해졌는데, 그것은 마음이나 몸, 생각이나 손가락, 혹은 문사나 무사의 경우가 따로 나뉘지 않는다.

민활한 긴장의 일상적 배분이 생활화되는 가운데 ‘차림새가 있는 듯이 없고 없는 듯이 있는 상태’는 찾아온다. 시쳇말로 바로 그것이 ‘연습을 실전처럼, 실전을 연습처럼’ 할 수 있는 경지다. 야구의 천재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종범 선수의 말이다: “내야수는 투수의 공 하나하나를 놓쳐선 안 된다. 투수가 공을 던지고 그게 맞아 나가고 하는 것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집중력이 생긴다. 그런 적당한 긴장감이 타석에도 이어지게 되면 타자로서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수비할 때에도 공격하는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 이승엽이라면, 수비가 곧 공격인 사람이 이종범인 것이다.(김영민/철학자)

공부인(工夫人)의 두 가지 모델이 제시된다. "마치 도장격파(道場擊破)를 하듯이 각지의 지식인-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그 지식의 허구와 허세를 까발린 소크라테스"와 전설적인 사무라이 야마모토 무사시이다. 김영민은 문사와 무사를 나누지 않으며 오히려 문사의 모델을 무사에게서 찾는다. 그것이 '몸으로 하는 공부'이다. 한데, 그가 말하는 타자는 우리를 윤리적 주체로 정립시키는 레비나스적 타자가 아니다. "진정한 타자, 진정한 폭력과 만남(충돌)이 없는 문사들의 논쟁은 그런 뜻에서 대체로 사이비다."라고 말하지만, 그때의 타자는 '과부와 고아와 이방인'이 아니라 내가 '격파해야' 하는 강적으로서의 타자이다. 내가 그를 베지 않으면 내가 베이게 되는. '살벌한' 공부론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겨레(07. 06. 16) 공부론 / (3) 변덕이냐 변화냐

영리한 인간은 그 근본에서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내가 조형해온 ‘현명한 인간’이란 이미,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공부의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이다. 사과나무는 ‘돌이킬 수 없이’, 그리고 충실히 사과를 맺으며 그 시절인연을 소중히 하는 법이고, 가령 일단 소크라테스를 만난 사람은 ‘돌이킬 수 없이’ 그의 자장(磁場)에 휩쓸려 들 수밖에 없다. 나는 20대의 어느 순간 키르케고르를 ‘만나’(나는 그를 ‘읽지’ 않았다!)기성의 제도 기독교로부터 섭동(攝動)했는데, 아, 실로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공부란 실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다. 이에 비하면 영리한 것은 ‘변화’가 아니거나 혹은 기껏 ‘변덕’이다. 아, 우리의 세속은 바잡거나 반지빠른 변덕의 세상이다! 물론 변덕은 몸이 아니라 생각이 주체일 경우에 가능한 삶의 태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가 변화의 비용이고 그것이 결국은 몸의 주체적 응답의 방식일 수밖에 없다면, 공부란 삶의 양식을 통한 충실성 속에 응결한 슬기와 근기일 수밖에 없다.

영리한 인간들은 학같이 긴 다리로 물가를 노닐면서 솜씨있게, 날름날름 물고기들을 쪼아먹는다. 학은 자신의 깃을 물에 적시지 않는다. 칸트를 비판하는 헤겔의 유명한 말을 임의로 차용하자면, 물에 들어가지 않고도 영법(泳法)을 배우는 사람은 참으로 영리한 인간인 셈이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세속인 자본제적 삶의 형식은 이처럼 영리한 인간들을 체계적으로 재생산한다. ‘대학(大學)’이라는 자못 무서운 이름을 붙인 곳마저 그 영리한 인간들이 자신의 영토로 점유하고 말았다. 그러나 우두커니 서거나 이드거니 걸으면서 현명한 인간, 혹은 공부하(려)는 인간은 물속에 몸을 잠근다. 그리고 너무 오래, 너무 깊이 잠근 탓으로 혹간 몸에는 지느러미가 돋고 아가미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과거의 생활로부터 ‘돌이킬 수 없이’ 단절하며, 마침내 ‘변덕’이 범접할 수 없는 지경으로 ‘변화’하고 마는 것이다.

영리한 인간들은 공부조차 상품으로 대하며, 값없이 냉소하는 가운데 그 필요한 부분을 발밭게 뽑아 먹는다. 그래서 공부를 ‘퀴즈화’시켜 벼락치기를 일삼는다. 임금의 호의도 무시한 채 스스로 과거시험을 피해 다니곤 했던 연암도 학술-문장-과거로 서열을 매긴 바 있고, 다산도 과거제의 폐해가 없는 일본을 한편 부러워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실학자들은 과거를 아예 공부로 치지도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학의 안팎을 막론하고 온통 현대판 과거시험들로 북새통이다.

이 수험생들은 자신의 몸으로써 공부와 만나지 않는다. 자신의 생활양식으로써 공부를 뚫어내지 않는 것이다. 아니, ‘만날 때라야 배운다(It is when we meet someone that we learn something)’(서양 속담)지만, 이들에게는 ‘만남’ 그 자체가 송두리째 빠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디우(A. Badiou)의 말처럼, 만남이 아니기에 아무런 ‘사건’일 수도 없는 것! 이들은 선생도 만나지 않고 구경하며, 책도 만나지 않고 절취(截取)할 뿐이다.

공부가 나를 지배하지 않고 내가 공부를 지배하려 할 때 변덕은 변덕스럽게 기승을 부린다. (내 용어로 풀면, 앞의 것은 ‘하아얀 의욕’이고 뒷놈은 ‘박잡한 욕심’일 뿐이다.) 물론 그 변덕이 상업주의적 차이의 문화와 결탁하고 ‘결코 물리지 않도록 해야 하는 상품의 전략’(아도르노) 속으로 되먹임된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공부가 나를 지배하는 사건을 일러 변덕이 아닌 ‘변화’라고 부른다. 그것은 바울이 예수를 만난 사건, 엥겔스가 마르크스를 만난 사건, 조영래가 전태일을 만난 사건, 그리고 뉴턴이 사과를 만난 그 사건 속의 ‘돌이킬 수 없음’처럼, 그 만남 속에 개시된 공부의 물줄기는 돌이킬 수 없이 그 학생들을 휘어잡는다.

얼마 전, 사진가 정주하 교수의 소개로 전직 불교 승려였던 바라춤과 차(茶)의 명인을 만나게 되었다. 전주 인근의 외진 곳에 한옥을 개축한 집은 상당한 규모의 정원을 보듬고 있었는데, 갖은 꽃나무들이 시절을 좇아 왕성했고, 한가운데의 조촐한 연못도 주인의 기색을 닮은 듯 소담스러웠다. 2천만원의 전셋집이라는데 서울이라면 그 100배를 준다 해도 얻기 어려운 운치와 깊이가 자못 그윽했다. 두어 시간 가량 차를 대접받으면서 환담하는 사이, 그 주인 부부가 ‘녹차방’으로 쓴다는 작은 문간방을 구경하면서 나는 또 한번 그 ‘돌이킬 수 없음’의 기미에 젖는 작은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현란하고 번드레한 만화경적 도시의 공간과는 다른 공간, 돌이킬 수 없이 그 ‘깊이’와 부딪칠 수밖에 없는 공간, 도시적 영리함만으로는 도무지 지배할 수 없는 공간, 드나드는 사람들의 인문(人紋)이 아로새겨진 공간, 인간 존재의 다른 차원을 불현듯 일깨우는 공간, 그리고 변덕이 없을 공간이었다.

나는 한동안 그 방안을 조심스레 바장였다. 그리고 ‘욕심 없는 의욕’을 키우며 내 몸을 그 공간 깊숙이 풀어놓고 있었다. 그리고 오직 영리한 변덕으로 일관하는 이 시대를 돌아보며 ‘어떤 공부’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었다.(김영민/철학자)

그에 따르면, 공부란 돌이킬 수 없는 만남이 가져다주는 '변화'이다. 이로써 연애만한 공부가 없다는 걸 다시 확인하게 된다. "과거의 생활로부터 ‘돌이킬 수 없이’ 단절하며, 마침내 ‘변덕’이 범접할 수 없는 지경으로 ‘변화’하고 마는" 연애!.. 그리고 그로부터 짐작해볼 수 있는 '공부'의 유형학: 사건, 사고, 스캔들...

한겨레(07. 06. 30) 공부론 / (4) 차붐, 적지(敵地)에서 배운다

그간 이런저런 학술모임에 초청받아 강의나 강연을 한 것이 줄잡아 수백 건은 되겠다. 1990년대에는 이른바 ‘심층근대화’를 위한 인문학 운동 차원에서 열심을 부리기도 했던 것인데, 막 개화되고 있던 대중들의 문화적 활성을 인문학적 가치와 연계시키려고 애를 썼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낯선 학인들과의 대화적 만남과 그 창의적 긴장 속에서 내 공부를 점검할 수 있는 ‘현장’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 숱한 강연들의 풍경, 그 명암과 득실을 일괄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강연들을 돌이켜볼 때 가장 의미심장하게 남은 인상으로는 아무래도 ‘오인과 어긋남’일 것이다. 한마디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부분의 강연장은 늘 오해의 잔치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리처드 로티나 헤럴드 블룸 등이 말하는 오인의 역설적 창의성도 있었을 테고, 자크 라캉의 말처럼 대화적 관계 그 자체의 조직 속에 각인된 어쩔 수 없는 오인도 있었을 테다. 그러나 강연장에서 횡행하는 의사소통적 오해는 이런 식으로 변명할 수 없는 병통들로 들끓었고, 그것은 명백한 인재(人災)였다.

우선 세태를 그 배경으로 거론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보면, 2000년을 고비로 청중들의 관심이나 열의 그리고 현장의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철학과 인문학의 텍스트는 사용설명서나 리모컨만 달랑 달고 나오는 제품이 아니다; 좋은 글과 말일수록 한 쪽 한 쪽, 한 문장 한 문장, 한 자 한 자씩을 자못 고통스럽게 읽고 듣고 이해하는 ‘비용’은 필수적이지만, 세태와 대중은 이런 식의 비용에 날이 갈수록 적대적이다. ‘작은 차이의 나르시시즘’을 위한 얼토당토않은 화폐의 비용은 앞다투어 치르면서도 좋은 책의 해득을 위한 정신의 비용은 좀처럼 치르려 하지 않는다. 학문 일반의 기능주의와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의 상업주의적 키치화, 그리고 퀴즈화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이며, 이는 강연장의 기운과 분위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돈을 벌게 해준다거나 웃기기라도 못하면 주목을 받기 어려운 세속 속에서, 진지한 공부는 점점 자신의 영토로부터 내몰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게다가 강연 그 자체가 한갓 이벤트로 끝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진지한 교학상장의 배움터가 되기는커녕 기성의 제도를 유지하려는 반복강박적 장치가 된 채, 서둘러 질문과 토의를 닫아 버리고 뒤풀이랍시고 술담배 속에 갖은 잡담이나 일삼는 게 예사였다. 더 이상의 얘기는 오직 각설, 각설, 하겠다

내가 특별히 주목하려는 것은 학술행사나 강연에 참가하는 학인/지식인들의 행태다. 그리고 그 요점은, 결코 적지 않은 수의 문사들은 유독 학술적 대화에 만연한 오해와 오인 속에 덤으로 묻힌 채 스스로의 무능과 나태를 손쉽게 숨길 뿐 아니라, 아예 왜장치듯 실없이 떠벌리기만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대화술에 대한 몽테뉴의 고전적 권면과는 달리, 강연자를 위협하는 정신의 힘을 만나는 쾌락(!)은 점점 드물어만 간다.

인문학적 대화는 그 속성상 꼼꼼한 준비와 섬세한 접근, 죽도록 경청하기와 아는 것을 다 말하지 않기, 그리고 동정적인 혜안과 합리적인 대화술이 필수적이기에 일회성의 극장식 만남에 따르는 한계는 만만치 않다. 우선 강연의 형식 자체가 비인문학적이기도 하려니와 강사를 대하는 문사-청자들의 태도에서 그런 실천적 지혜와 배려, 혹은 근기를 찾아보기는 차마 어렵다. 발표할 문건을 미리 숙독하고 참가하는 이들조차 소수인데다, 그저 제 시간에 자리를 지켜주는 이들마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일본 최고의 무사였던 미야모토 무사시가 그의 병법서에서 ‘차림새가 없는 듯이 차림새가 있는’ 이치를 거듭 강조한 것은 무사의 삶이란 곧 일생일대사의 승부의 현장이고, 상대를 놓치는 순간 곧 죽음은 임박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수없이 많은 학술행사를 겪으면서 뼈저리게 자탄하는 것은 우리 문사들의 세계에서는 상대를 극진히 공대해야만 살아남는 긴박하고 위태로운 만남의 현장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무사들이 정직한(!) 피를 뿌리면서 스스로의 무능을 자인하며 죽어가는 순간에도, 문사들은 좀비처럼 끝없이 부활한다. 자신의 실수와 더불어 죽을 수밖에 없는 냉혹한 무사들/스포츠인들의 세계와 달리, 문사들은 ‘(나쁜) 모방적 상호성의 메커니즘’(르네 지라르) 속에서 오해의 잔치와 실수의 파티를 벌이면서도 단 한 사람 죽었다는 소식이 없다. 물론 칼과 펜의 이치 사이에 놓인 어떤 심연을 까탈스럽게 모른 체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말(어휘)로 행복해지는 세상’(리처드 로티)은커녕 각자의 실력조차 제대로 점검할 수 없는 문사들의 제도화된 학술행사와 그 곤경을 더불어 성찰하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먼 이국에서 낭보를 띄워주곤 했던 갈색폭격기 차범근의 활약을 기억한다. 적지(敵地)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뛰고 피하고 부딪치고 넘어지면서 이룬 그 정직한 성취를 기억한다. 말없이 정직하던 그의 근육을 기억한다. 적들을 기민하게 공대해야만 살아남는 승부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공대하던 그의 정직한 몸을 기억한다. 오직 실력만이 통하던 그 현장의 열기를 여태 생생히 기억한다.(김영민/철학자)

다시 무사시다. 정중동동중정. 인문학 학술모임과 강연에 대한 실망감을 적으면서 필자가 되새기고 있는 것은 '무사들의 '정직한' 죽음 vs 좀비 같이 되살아나는 문사들'이다: "무사들이 정직한(!) 피를 뿌리면서 스스로의 무능을 자인하며 죽어가는 순간에도, 문사들은 좀비처럼 끝없이 부활한다." 문사들도 좀 죽어줬으면 하는 게 필자의 바람이겠다. 물론 당초의 기대는 "막 개화되고 있던 대중들의 문화적 활성을 인문학적 가치와 연계시키"고 "낯선 학인들과의 대화적 만남과 그 창의적 긴장 속에서 내 공부를 점검할 수 있는 ‘현장’으로 활용하"하려는 것이었지만 실없이 떠벌리기나 좋아하는 학인/지식인들의 행태에 환멸을 느낀다는 것. 그리하여 "오직 실력만이 통하"는 무사들/스포츠인들의 세계가 그립다!

한겨레(07. 07. 14) 공부론 / (5) 생각은 공부가 아니다

생각은 공부가 아니다! 어쩌면 이 한 문장만 새겨보고 여겨들어도 공부의 벼리를 휘어잡을 수 있을 테다. 물론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데카르트)는 식상한 말처럼 인간은 무엇보다도 ‘생각하는 존재(ens cogitans)’다. 무념무상이 대체로 공염불에 빠지고 생각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또 다른 공상으로 미끄러질 때, 생각하기와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생각 사이의 사이길을 뚫어내기란 실로 어렵다. (내 지론을 서둘러 반복하면, 생각의 바깥은 역시 생활양식의 충실성을 통해서 드러날 뿐이다.)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다(學而不思卽罔)’(논어)는 격언을 우리는 여태도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면 씨알이 되고, 생각을 못하면 죽정이!’라고 절규하시면서 ‘생각하는 민족이라야 산다’는 국훈(國訓)을 남겨주시기도 했다.

‘쯧쯔, 저 놈, 도무지 생각이 없어!’라고 하시던 이런저런 어르신들의 추억도 여전하다. 옛날, 아주 옛날, 내가 속했던 핸드볼 팀의 코치는 우리들을 개잡듯이 패면서 ‘이 X탱구리들아, 생각 좀 해라, 생각!’이라고 시합에서 질 때마다 볼멘 소리를 내뱉곤 했다. 미국에서 만난 영리한 초등학교 교사 헤이즐은 그녀의 학생들을 향해서, ‘말하면서 생각을 해요!(Think as you speak!)’라고 버릇처럼 외쳐댔다.

이 모든 삽화 속에 등장하는 ‘생각’이란 한결같이 긍정적인 무엇으로 제시된다. 데카르트주의의 통속적인 변명처럼,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긍지에 부합하는 활동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잘라 말해서 공부하는 인간이 그리 많지 않듯이, 생각이 곧 공부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각’이라면 장삼이사 그 누구나의 것일 뿐 아니라 필부필부라면 오히려 멈출 수도 없을 지경으로 늘 과잉하지만, ‘공부’는 그처럼 값싸게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치 그것은 해방적 ‘상상’의 근기가 ‘공상’의 백일몽적 변덕과 그 근본에서 다른 차원의 활동이라는 사실에 조응한다. 현명한 선인들은 ‘어디 가든 공부가 아닌 것이 없다(非往而無工夫)’며 아마추어들을 유혹하지만 오히려 눈여겨 살펴야 할 대목은 그들이 남모르게 치른 비용이다.

한때 내가 있던 대학에는 유달리 만학도가 많았는데, 그 중의 일부는 철학-공부를 자신들의 나이와 경력과 고민(‘생각’)으로 대체할 수 있으려니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의 바벨탑은 공부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면 대체, ‘생각’이란 무엇일까? 우리 모두가 경탄해 마지 않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한 토막을 인용해서 살펴보자: “평소에 나는 금방 자려고 하는 대신, 지나간 옛날 우리집의 생활, 콩브레의 왕고모 댁에서, 발베크, 파리, 동시에르에서, 베네치아, 또는 그 밖의 고장에서 보낸 생활을 회상하거나 그러한 장소, 거기서 알게 된 사람들, 그 사람들에 대해서 보고 들은 일 따위를 머릿속에 그리며, 밤의 대부분을 지새우곤 한다.”(<스완네집 쪽으로>)

이 작품에 대한 은하수 같은 상찬과는 별도로, 꼭 이런 짓-“…따위를 머릿속에 그리며, 밤의 대부분을 지새우곤” 하는 짓-을 일러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그간 이런 식으로 자기-생각에 빠지는 짓을 일러 ‘자서전적 태도’라고 불러왔는데, 그 요체만을 지적하면 자기동일성을 심리적으로 강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밤을 지새우면서 ‘생각’ 따위를 일삼지 말라는 게 또한 순자(荀子)의 말씀이다. 요컨대, 하루종일 방안에 틀어 박혀 생각만 하느니 다 쓸 데 없고 책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는 게 낫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다(思而不學則殆)’는 말인데, 이 위험이란 곧 자기-생각을 ‘자연화’시키는 것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좋다.

그러나 무릇 인문학의 공부란 자기 자신의 생각들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사실을 사뭇 뼈아프게 깨치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혹은 (괴델을 원용해서 말하자면) 그 생각의 일부로써 그 생각의 틀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부딪쳐서 자빠지는 일이다. 혹은 내 ‘생각’만으로는 영영 너의 ‘사실’에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 그래서 내 생각의 막(膜)을 찢고 나가는 모종의 실천적 근기가 없이 들먹이는 관념적 상호소통의 이상이 종종 공소하다는 사실을 느리지만 지며리 깨쳐가는 과정들이다.

문제는, 자기-생각이라는 게 워낙 타인을 배제하는 속성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실은 생각이 적어서 공부가 모자란 것이 아니다. 실없이 생각이 많은데다 결국 그 생각의 틀 자체가 완고한 테두리를 이루는 게 오히려 결정적인 문제다. 이 경우에 전형적인 증상은 냉소와 허영이다. 냉소와 허영이란 타인들이 얼마나 깊고 크게 자신의 존재에 구성적으로 관여하는지를 깨닫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현대의 많은 철학자들이 나/너(주/객)의 인식론적 이분법을 비판하고 둘 사이의 구성적 연루를 밝혀 온 것에 귀기울여 볼 노릇이다.

생각은 그 외래적 기원을 잊고 무서울 정도로 자기 자신만을 돌아본다. 그리고 그 잡다한 생각의 다발들로 테두리를 짓고 벽을 쌓아 올리며 일희일비하는 것이다. 일찍이 하우저는 ‘심리학은 은폐되고 불철저한 사회학’이라고 갈파하기도 했지만, 좋은 심리학은 늘 심리의 바깥에서 조언을 구하는 법이다. 그것은 마치 나의 모든 생각이 애초에 그 생각의 바깥에서 움터왔음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일과 같다. 공부도 조직적인 생각이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생각은 아직 공부가 아니다.(김영민/철학자)

요는 ‘어디 가든 공부가 아닌 것이 없다(非往而無工夫)’는 말은 어불성설이며 제값의 공부는 지극히 드물다는 것. (잡)생각들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가 공부인바(그 많은 수험생들은 다 무엇을 하는 것일까?) 이러한 정의에 따르자면 대한민국에서 공부하는 사람은 필자를 포함해서 몇 안되는 것이겠다. 하니 어중이떠중이들은 공부란 말을 입밖에 내는 일도 삼가할 일이다. 대중으로선 장정일식 공부가 상식에 맞는 게 아닌가 한다(http://blog.aladin.co.kr/mramor/1000883  참조).

07. 07. 19-20.

P.S. 요는 공부의 길이란 게 고고한 무사도와 같은 것이며 공부의 세계는 오직 실력만이 통하는 세계라는 것. 이 다른 차원의 공부가 대중이나 범상한 학인들이 고작 '퀴즈화'하는 공부가 아닐 것임은 당연하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만남이 가져다주는 '변화'의 궁극이다. 하니, 니들이 공부를 아느냐?..

P.S.2. 김영민에 이어서 지젝에 관한 페이퍼를 쓰다 보니 예전에 읽은 칼럼이 생각나 옮겨놓는다. 김영민 교수의 칼럼 중에 지젝이 언급된 것이어서 예전에 옮겨놓을 뻔했던 칼럼이다.

한겨레(07. 01. 12) [동무와연인] 스승의 기운이 현신한 제자

출근할 때마다 현재 김흥호(1919~) 선생의 방을 지날라치면 '사각사각', 늘 먹가는 소리와 함께 진한 먹물 내음이 코를 찔렀다. 그 사이, 그는 묵향(墨香) 가득한 작은 서재의 창 밖으로 먼 눈길을 보내고 있곤 했다. 나는 그의 연구실에서 먹가는 기계를 난생 처음으로 보았고, 그를 통해서 일식주야통(一食晝夜通)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으며, '도(道)는 실천'이라는 그 진부한 얘기가 한 사람의 생활 양식을 통해서 진득하고 이드거니 구체화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유학을 마치고 막 귀국한 1990년대 초에 나는 현재 선생과 같은 학교에 재직했는데, 우연찮게 그의 연구실은 바로 옆 방이었다. 근 3년간 옆집살이(!)를 하면서 매일같이 스치고 대하는 중에 이런저런 인연을 쌓을 수가 있었다. 산행을 같이 했고, 일식(一食)하던 어느 자리에 운좋게 동석하기도 했으며, 일본어책을 읽다가 궁색한 곳이 생기면 냉큼 찾아가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촉급하게 상경해서 이사할 곳을 얻지 못해 난감했을 때에는 이화여대 후문 쪽에 있던 그의 집에서 근 보름간을 기숙하기도 했는데, 그 정갈하고 소담한 정원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어느 학기엔가 그가 강의하던 <선(禪)과 철학>이라는 수업 중에 들어가 몇 차례 서양철학을 강의하면서부터 그는 내게 특별한 관심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내 강의의 인상을 얹었다면서 <유심현묘(幽深玄妙)>라는 붓글씨를 써서 액자에 담아 선물로 보내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이후로 그는 내게 편지를 보낼라치면 꼭 나를 “천재”라고 칭하곤 했고, 위당 정인보나 다석같은 분을 스승으로 두었으면서도 학생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이 학교에서는 내가 김 교수를 스승으로 여긴다!”고 정색을 하곤 했다. 불과 손자뻘의 나이였던 나는, 아마도 ‘내가 몹시 귀엽게(!) 보이는가 보다’라고 여겼을 뿐, 그 드문 인연에서 내 공부길의 새로운 진경(進境)을 탐문할 지혜도 깜냥도 요량도 없었다.

근현대 한국 지식계의 근원적 불행처럼, 내게도 스승이 없었으며 스승을 찾을만큼 현명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당신(학생)이 나(스승)처럼 나이가 들면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가다머(H.G. Gadamer) 식의 해석학적 권위가 사라진 세상, 그것이 표절과 짜깁기의 천국, 한국 지식계의 비밀이다. “철학의 전수(傳授)는 스승-제자라는 제한되고 형상화될 수 없는 형상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바디우(A. Badiou)식의 철학관이 오히려 타매되는 냉소와 권력욕망의 지옥, 그것이 한국 철학계의 비밀이다.



물론 내가 그의 스승인 다석(多夕) 유영모(1890~1981)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필시 그같은 인연 덕분이었을 것이다. 함석헌을 비롯해서 다석 선생을 따른 제자들이 여럿 있지만, 특히 그는 스승의 자취를 진득하고 충량하게, 조용하고 지며리 따른 것으로 유명하다. 일식(一食)도 결국 다석 선생을 모방한 버릇이었지만, 그가 여든이 넘도록 일반 청중을 상대로 동서양의 경전과 사상을 넘나드는 강의-증여에 열심이었던 것도 역시 스승 다석을 모방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다석 선생을 뵐 기회조차 없었지만, 만 3년간 현재 선생의 일상을 그 편린이나마 지켜보는 가운데 글로 읽은 그 스승의 기운이 현신(現身)하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논문 한두 편만 썼다 하면 냉소와 객기가 하늘을 찌르는 이 토끼들의 마을- 호랑이들은 모두 파리나 런던, 베를린이나 뉴욕에 있다는 신화! -속을 살아가면서 가장 놀랐고 또 부러웠던 것은 그 도저한 권위와 그 신뢰였다. 그가 스승을 회고하는 글이나 말 속에는 스승의 권위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태고의 것처럼 어둑하지만 깊다. 가령, 이런 식이다: “선생님이 너무 여러번 한글에 신비가 있다고 하셔서 요새는 나도 무엇인지 한글에 신비가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때가 있다.”(<유영모 선생과 더불어 30년>. 김흥호)

스승의 길을 무턱대로 모방할 수 있는 쾌락은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행운이 아니다. 우리같은 표절과 짜깁기의 천국에서는 언감생심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교학(敎學)의 경지일 것이다. 청산주의와 따라잡기로 일관한 한국의 정신문화적 근대가 겪었던 가장 큰 불행은 무엇보다도 마음놓고 본받을 수 있는 ‘생산적 권위’들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실질적이며 창의적 긴장의 원천으로서 후학들의 삶과 앎의 행로를 부단히 채근하거나 계고(戒告)할 수 있는 권위있는 참조인간들(Bezugspersonen)이 없었던 것이다.

수입된 종이 호랑이들이 판치는 세상! 그같은 세상 속에서는 진검승부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먼 나라 맹수들의 소문만을 먹고 사는 토끼들의 마을에서는, 160㎝의 단구였던 다석 선생 앞에서 함석헌, 김교신, 김흥호 등이 숨을 죽이며 죽도록 경청했던 것과 같은 진검승부의 공부와 사귐이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죽도(竹刀)를 든 토끼들의 표절과 짜깁기 싸움판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것은 스승의 권위만으로 가능해지는 진정한 모방의 힘이다. 과연, 한국의 근현대 학문사는 스승들의 주검과 무덤 위에 초고속으로 뻗어올라간 눈치보기와 베끼기의 고층 아파트.

진정한 모방의 힘은, 충실하고 충실해서 마침내 그 모방을 뚫어내는 길(왜 일본은 모방의 천국이되 표절이 적은가?) 속에 있다. 가령, 라캉의 생산성이 그러하고, 지젝의 생산성이 그렇지 않던가? 지적 식민성이란 이 모방의 시대, 혹은 근대라는 번역과 인용의 시대를 충실하게 뚫어내지 못한 사정을 가리키는 것이니, 부박과 냉소가 판칠 일은 당연지사.

언젠가 나는 늦은 오후의 사양(斜陽)을 끼고 앉아 그와 담소하다가 문득 선문답같은 어투에 다소간의 호기심을 얹어 물었다: “선생님, 다석 선생님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진인(眞人), 진인이었지요!” 대답도 역시 선문답처럼, 그것, 뿐이었다.(김영민/전주한일대 교수·철학)

어제오늘 그의 공부론을 읽다보니 "수입된 종이 호랑이들이 판치는 세상! 그같은 세상 속에서는 진검승부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란 문구가 비유적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먼 나라 맹수들의 소문만을 먹고 사는 토끼들의 마을"에서 필자가 갑갑증을 느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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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tiker 2007-07-20 03:2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위의 로쟈님의 코멘타르들은, 아래 글에 이어, 눈앞의 텍스트만을 대상으로 누군가의 글과 사상을 이해한다는 것이 그리 '상식'처럼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네요.
시간마다 보충되고 있는데, 공부론 (4)까지의 로쟈님의 비평은 감정적으로 동요된 사람이 글의 논지를 얼마나 곡해해서 읽게 되는지에 대해 래디컬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솔직히 어떻게 이런 글을 로쟈님처럼 읽을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감정이 한 인간의 텍스트 독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찰‘ 같다고나 할까요.

동무론 (2)의 요지가 "(김영민의) 타자는 '과부와 고아와 이방인'이 아니라 내가 '격파해야' 하는 강적으로서의 타자이다. 내가 그를 베지 않으면 내가 베이게 되는. '살벌한' 공부론"이라는 어이없는 독해에 이어,
동무론 (5)의 요지가 " '무사들이 정직한(!) 피를 뿌리면서 스스로의 무능을 자인하며 죽어가는 순간에도, 문사들은 좀비처럼 끝없이 부활한다(k의글).' 문사들도 좀 죽어줬으면 하는 게 필자의 바람이겠다." 라는 독해는 어떻게 나온 것인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요.

레비나스 타자론 말씀하셔서, 그것이 님이 지적하는 것처럼 김영민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음만 지적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김영민의 학문적 궤적 중에 하나가 90년대 중,후반의 '탈식민성 비판''글쓰기 비판'에서 자기 나름의 '보행'의 철학으로 가게 된 계기 중의 하나가 레비나스 독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그 당시 그가 레비나스를 읽었고, 그의 타자론 역시 유사합니다.

지금 레비나스에 대해 상술할 순 없고--솔직히 레비나스 리스트까지 mapping하신 로쟈님만큼은 모릅니다만-- 위 김영민의 공부론의 논지를 따라가자면, 김영민의 '타자'는 그의 '섭동'이라는 개념(?)과 연관됩니다. 사전적 의미의 '섭동'은 김영민이 이전에 한참 가다듬었던 용어였습니다.
그 요지는, 개인이 동일성의 자장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타자가 필요한데, 그것은 단지 자기 동일성으로 타자를 단순히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변화시켜 가는 과정이지만, 그것 역시 시간성을 벗어날 순 없다는 것입니다. 변화의 과정은 타자의 개입--폭력성으로 언급되는--이 없이는 수행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타자에 대한 폭력성에 대한 언급으로만 보는 로쟈님의 이해는 오독입니다.
그로 인해 이어진 공부론 (3)에서 '타자성'을 말하면서도 '변덕'을 부릴 뿐 '변화'하지 않는 학인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필연적 전개입니다. '타자성'을 읊조리면서도 '자기 동일성'을 포기하지 않는, 모든 대상을 자기 귀속적으로 갈무리, 정리해버리는 공부하는 인간들. 그들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을 봅니다!

타자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름지기 그 타자들에 대한 조그마한 애정 정도는 품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애정은 고사하더라도 상대방을 대놓고 무시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비판이란 상대방에 대한 애정(공대)없이는 나올 수 없습니다.
데리다는 자신의 해체론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내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라고 권하며, 해체론은 사랑(Love)라고 했다죠.
지적 현학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이지 비판의 허울을 쓴 턱없는 비난들이 무섭게 느껴지는 한국의 현실입니다.

아래 글에 이어 공부론을 왜 모아놓으셨고, 감정섞인 오독을 하셨는지 알 수는 없으나, 아래의 로쟈님의 '메타-상식'의 허구성에 대한 반론을 전개하기에는 이 코멘트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보입니다.

로쟈 2007-07-20 09:03   좋아요 0 | URL
제 '주석'은 기사의 액면을 제식으로 풀어쓴 것인데, 거기에 편향이 있더라도 텍스트가 허용하는 범위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영민의 공부론에 대해서는 저보다 정통하신 듯하니까 뭇사람들의 어설픈 오해를 까발리고 격파할 수 있는 글을 풀스케일로 쓰시면 좋겠습니다(댓글 정도로는 공대가 아닐 테니까요). 물론 딜레마는 대중들의 수준이겠지만...

마늘빵 2007-07-20 09:02   좋아요 0 | URL
저는 이 분 글이 와닿지 않더군요. 최근에 <산책과 자본주의>라는 에세이(?)를 내셨는데, 허 어렵습니다. 이 공부론도 마찬가지에요. 소재는 가벼운데 내용이 너무 어려워요. 쉬운 것도 어렵게 쓰시는거 같아요.

로쟈 2007-07-20 09:15   좋아요 0 | URL
쿵푸, 혹은 무사도로서의 공부는 급수가 있기 때문에 같은 레벨끼리 소통하는 것이지요...

kritiker 2007-07-20 13:0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로쟈님, 저번 제임슨 비판할때도 심각하게 느꼈는데, 갈수록 빈정거리는 급수가 높아지시는 것 같습니다.
1200즐찾 분들께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너무 노력하시는 것 아닌가요^^?

기회가 되면 '김영민론'에 대해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없다가, 새삼 생겼습니다.
죽어도 죽지 않고 끝없이 살아나는 좀비의 전형을 어제 오늘 보여주셔서 놀라웠지만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님의 코멘타르의 수준이 '기사 액면을 제식으로 풀어쓰고, 편향이 있지만 텍스트가 허용하는 범위안"인지는 여기 오시는 분들이 판단하겠지만요.

근데 여전히 이해가 안되는 것은, 수잔 손택의 <우울한 열정>정도의 책에는 주석까지 달아가면서 정독하시는 분들이 왜 동시대 한국의 저자의 책에는 그렇게 시큰둥한 관심들만 보이시는 것인지...

로쟈 2007-07-20 13:45   좋아요 0 | URL
나름대로 노력은 하지만 이 정도 '급수'는 어디 내밀 수도 없는 수준이죠(하다못해 학계 일반에 대한 김영민의 냉소와 비교하더라도). 약간의 오해가 있으신 듯한데, 저는 김영민에 대해서 특별한 악감정을 갖고 있지 않으며(이건 강유원에 대해서 특별한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그의 문체가 읽기에 불편하다는 것뿐입니다(더구나 대중이 읽기엔 불친절하고). 덕분에 그의 최신 공부론도 읽게 됐지만 제겐 특별히 인상적이진 않습니다. 안목이 없어서일수도 있고 취향이 달라서일 수도 있겠지만, 저로선 같은 기회비용이라면 장정일을 읽겠습니다(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사실 모든 책을 읽을 수는 없지요). 암튼 김영민론을 쓰신다고 하니까(김영민식으로 쓰진 마시길) 그가 '우리시대의 철학자'로 '재발견'될 수 있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혜덕화 2007-07-20 15:15   좋아요 0 | URL
"공부란 실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저는 김영민이 누구인지, 여기서 언급되는 철학자(?)들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고, 글이 어려워 끝까지 읽는 것도 매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것은 남회근의 <논어>에서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에서 공부를 어떻게 봐야하는지을 읽고 감동받았던 일입니다. 생각은 공부가 아니지요. 또한 변덕도 공부가 아닙니다. 몸으로 실체화 되지 않는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온갖 어려운 말은 다 건너 뛰고 공감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글 남깁니다. 잘 읽었습니다._()_

로쟈 2007-07-21 10:10   좋아요 0 | URL
'몸으로 하는 공부', '쿵푸로서의 공부'가의 장점과 함께 한편으론 함정도 갖고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저는 '공부'보다는 '학습'을 지지하는 쪽이어서요...

yoonta 2007-07-20 17:0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로쟈님이 "빈정"거리신 것 같지는 않은데..^^ kritiker님이 좀 예민하게 받아들이신 것 같네요. 요는 이런 것 같습니다. 쉽게 쓰건 어렵게 쓰건간에 중요한건 그 속에 무언가 건질만한 알맹이가 있느냐 여부 아닐까요? 로쟈님도 기실은 김영민씨의 텍스트의 어려움자체보다는 그 내용의 부실함을 지적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도 kritiker님의 "김영민론" 한번 기대해 보겠습니다. ^^

로쟈 2007-07-21 10:13   좋아요 0 | URL
빈정거림 같은 건 정말로 '수용미학'의 문제이죠. 김영민 철학에 끌리지 않는 건 그가 언제나 '나 vs 남들'이란 대립구도를 설정하기 때문입니다. 둘러보면 공부 제대로 하는 놈 아무도 없다, 차라리 이종범, 차범근이 하는 게 공부다, 라는 식이니까요.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란 생각이 듭니다...
 

김우창 교수의 칼럼에 대해서 몇 마디 적으려고 검색하다가 지난달에 세상을 떠난 미국 철학자 리처드 로티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나는 부랴부랴 마이리스트 하나 작성하는 걸로 추모를 대신했었다). 기사 끄트머리에 사회적 독서목록에 올려놓은 <인문정신과 인문학>(아카넷, 2007)에 실린 김우창 교수와의 서신대담이 언급되고 있어서 이 페이퍼 또한 '사회적 독서'로 분류해놓는다(대담 내용은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로티에 대해서는 기사를 읽어가면서 몇 마디 덧붙이도록 한다.

동아일보(07. 07. 17) 리처드 로티 교수 “보편적 진리는 없다” 플라톤에 반기

지난달 8일 미국 철학계의 이단자 리처드 로티(사진) 스탠퍼드대 교수가 췌장암으로 숨졌다. 향년 76세. 그는 ‘미국의 데리다’라 할 만큼 포스트모더니즘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주요 외신에선 그의 죽음을 보도하지 않았고 국내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그는 분석철학 중심의 미국 철학계에서 이단적 존재였다.(*그 정도로 조용했었다면 의외이다. 철학계에서야 이단적이었다 하더라도 그는 저명한 '철학자'였는데 말이다.)



로티 교수는 진리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서구 철학 전통을 맹렬히 비판해 상대주의자, 현대의 소피스트, 반()철학자로 공격받았다. 다른 한편으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실상 멸실된 프래그머티즘의 전통을 부활시킨 네오프래그머티즘의 기수라는 점에서 진정한 미국 철학자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그의 주저에 속하는 <실용주의의 결과>(민음사, 1996) 등이 모두 품절 상태라는 게 아쉽다.) 



한국 사회는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 속에 서구 합리주의 전통을 비판한 그의 이론 수입에만 급급했다. 1996년과 2000년, 두 차례나 그를 초청할 만큼 호기심은 컸으나 독일 철학이 강세인 한국에서 그의 철학은 여전히 겉돌았다. 별세를 계기로 그의 철학 세계를 들여다본다.

○ 로티는 왜 문제적인가
1931년 뉴욕에서 태어난 로티 교수는 14세에 시카고대에 입학할 만큼 조숙한 천재였다. 일찍부터 궁극의 진리를 추구했던 플라톤에 심취했던 그는 20세에 플라톤 철학의 한계를 파악하고 결별을 선언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철학계는 논리와 언어를 중시하는 분석철학이 지배적이었다. 그 역시 분석철학으로 25세 때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30세에 프린스턴대 교수가 되면서 분석철학의 총아로 떠올랐다.(*그가 분석철학계에서 받은 주목은 저명한 논문모음집인 <언어학적 전회>의 편집을 맡았다는 점에서도 암시된다.)

 

그러던 그가 1979년 ‘철학과 자연의 거울’을 발표하며 플라톤 철학과 분석철학에 반기를 들었다. 그의 첫 주저로 꼽히는 이 책에서 그는 플라톤, 데카르트, 칸트로 이어지는 철학 전통을 본질주의, 정초()주의, 표상주의라고 비판하며 철학은 보편적이고 객관적 진리를 담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발 더 나아가 ‘철학하기’와 ‘문학하기’를 동렬에 놓고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얼마나 참신한가가 중요하다고 설파했다.(*국내에는 <철학 그리고 자연의 거울>이라고 어색한 제목으로 번역된 책이다.)



이는 연암 박지원이 정조에 의해 문체반정으로 몰린 것과 같은 파문을 미국 철학계에 가져왔다. 그는 결국 동료 교수와의 갈등 끝에 버지니아대로 옮겨야 했지만 문학과 철학을 아우르며 자신만의 철학을 펴 나갔다.(*로티는 프린스턴대 철학과에서 쫓겨나다시피 하여 버지니아대의 '인문학교수'로 자리를 옮기고 이후에 스탠포드대학의 '비교문학과'에 재직했다.) 

○ 로티는 상대주의자인가
로티는 참된 지식으로서의 진리는 언제든 오류 가능성이 있으며 인간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역사적 조건 하에서만 진리라는 프래그머티즘의 계승자를 자처했다. 이는 프래그머티즘이 실용주의로 번역될 때 발생하는 오류,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적당주의 내지 결과만 중시하는 도구주의에 빠졌다는 오해를 낳았다. 그러나 프래그머티즘 사상가인 찰스 퍼스, 윌리엄 제임스, 존 듀이는 자신이 믿는 진리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근본주의의 위험성을 가장 정교하게 이론화한 실천철학가로 재조명되고 있다.(*미국의 프래그머티즘이야말로 우리식으로 하면 '실학(實學)' 아닌가?) 



로티의 네오프래그머티즘은 여기에 공()과 사()의 구분을 도입했다. 타인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실천이 공이라면 자신의 신념을 이론화하는 것은 시를 쓰는 것과 같은 사적 행위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이런 관점은 그의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민음사, 1996)에 잘 나타나 있다. 알라딘에는 아예 서명도 뜨지 않지만). 이는 반()철학자라 불릴 만큼 급진적인 로티 철학의 진면목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실제 로티는 이론적으론 포스트모던 문예철학을 펼쳤지만 이를 정치 현실에 바로 적용하려는 ‘문화적 좌파’를 비판하며 의료·교육·조세 개혁과 같은 구체적 민생정책을 지지했다.



로티 밑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친 이유선 군산대 연구교수는 “객관주의와 상대주의라는 철학의 기존 담론구조를 버리자는 로티의 말을 상대주의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달은 보지 못하고 이를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이유선 교수의 <리처드 로티>(이룸, 2003)은 가장 평이하면서도 요긴한 로티 입문서이다. 객관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해서는 리처드 번스타인의 <객관주의와 상대주의를 넘어서>(보광재, 1996)가 아주 잘 씌어진 책이다.) 



○ 관련 저술
로티의 저술은 민음사에서 번역 출판된 ‘철학 그리고 자연의 거울’ ‘실용주의의 결과’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 등이 있다. 로티의 사상을 다룬 개론서로는 ‘리처드 로티’(이유선·이룸), ‘로티의 신실용주의’(김동식·철학과현실사), ‘로티’(데들레프 호르스터·인간사랑) 등이 있다.(*거기에 덧붙여, 로티가 추천사까지 쓴 마크 에드먼드슨의 <문학과 철학의 논쟁>(문예출판사, 2000)이 로티의 입장과 정신에 충실한 책으로 읽어볼 만하지만 국역본 번역은 암호문 수준이다.) 



한국학술협의회 학술지 ‘지식의 지평’ 최근호까지 2회에 걸쳐 실린 김우창 고려대 교수와 서신대담 ‘아시아의 주체성과 문화의 혼성화’에선 투병 중임에도 진지한 논쟁을 펼친 노학자의 정열을 확인할 수 있다.(권재현 기자)

07. 07. 19.

P.S. 로티에 관한 책으로 두 권만 더 언급하기로 한다. 하나는 <로티와 그의 비판자들>(2000)로 블랙웰출판사의 시리즈물 중 하나이다. 오래전에 교보에서 구입한 책인데 로티의 쟁점들에 대한 다양한 비판과 그의 답변들을 싣고 있다. 다른 한권은 내가 안 갖고 있는 책인데, <자유를 돌보아라, 진리는 스스로 돌볼 것이다>(2005)란 제목의 인터뷰집이다. 원제는 'Take Care of Freedom and Truth Will Take Care of Itself: Interviews with Richard Rorty'. 아마도 로티 입문서로는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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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7-19 19:57   좋아요 0 | URL
허...14살에 대학에, 30살에 교수가...

로쟈 2007-07-19 20:40   좋아요 0 | URL
미국에서야 대학에 조기입학 하는 경우가 드물진 않으니까요. 30살에 교수가 된 것도 특별히 이른 건 아니죠. '정교수'가 된 거라면 얘기는 좀 다르지만...
 

 공부론 얘기가 나온 김에 '진짜 공부'에 대한 기사들을 스크랩해놓는다. 찾아보니 작년에 한림대에서 실학을 주제로 학술대회가 개최됐었고, 그 발표문들을 모은 책이 지난 2월에 <다시, 실학이란 무엇인가>(푸른역사, 2007)로 출간됐었다. 국사학계의 원로인 한영우 교수가 이끈 이 학술대회에서는 실학에 대한 그간의 통설에 이견을 제시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사실 진작부터 김용옥 등이 제기했던 문제이다). '실학(實學)'이란 말이 고유명사라기보다는 보통명사로 보아야 한다는 것으로 주장을 간추릴 수 있을 듯한데, 이채로운 것은 한교수가 '실학의 선구자' 지봉 이수광에 관한 연구서도 올해 같이 펴냈다는 점. 실학을 한편에서는 해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재구축하고 있는 것 같아서 흥미롭다. 말 그대로 실학의 '디컨스트럭션' 아닌가?.. 

 

중앙일보(07. 02. 23) "실학, 조선 후기만의 사상 아니다"

"이 나이에 내가 누구 눈치 보겠어요, 평생 한국 역사를 연구해오면서 언젠가 꼭 교통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올해 고희를 맞는 한영우 한림대 특임교수가 한국사의 교통정리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그의 정리를 기다리고 있던 분야는 이른바 '실학(實學) 개념'논쟁. 흔히 정약용하면 실학자란 수식어가 붙는데, 그때의 실학이 조선 후기만의 독특한 사상 유파가 아니라는 주장을 그가 내놨다. "조선 후기에만 실학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어느 시대나 개혁적 성향의 흐름은 있게 마련이고 그런 이들이 실학이란 용어를 썼어요. 성리학조차도 실학이라고 불렸을 정도입니다."



그에 따르면 실학은 하나가 아니다. 실학하면 조선 후기의 고유명사로 간주하는 것이 우리 학계의 통설. 하지만 그가 주도해 최근 펴낸 '다시, 실학이란 무엇인가' (푸른역사, 1만6500원)에서 그는 어느 젊은 학자 못지않게 젊은 목소리로 통설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 7월 한림대 한국학연구소가 주최한 학술대회의 성과를 담은 책이다.



한 교수는 이 책의 총론격인 '실학 연구의 어제와 오늘'이란 글을 통해 조선 후기의 고유명사로 알려진 실학을 보통 명사로 전환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통설에 따르면 실학의 대칭에는 주자학이 설정된다. 주자학이 유행했던 조선은 봉건시대며 실학은 봉건을 극복하고 근대를 지향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같은 통설은 '조선=봉건시대'라는 대전제가 참인 것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다고 한 교수는 주장한다.

"조선은 서양사에서 나타나는 봉건사회가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중앙집권이 확립되었고, 세련된 관료제도가 운영되었으며, 토지에 대한 사유재산제도도 확립되었어요. 시험에 의한 능력주의 관리등용제도가 있는 사회를 어떻게 서구적 봉건사회와 동일시할 수 있습니까."

한 교수는 '조선=중세 봉건주의''실학=근대 자본주의'로 나누어 보는 방식은 근대화를 지상 과제로 생각했던 시대의 시각이라고 했다. 실학연구는 1930년대 정인보.문일평.안재홍 등 당대의 석학에 의해 출발한다. 50~60년대에 천관우.홍이섭.한우근 등이 실학 연구 붐을 재점화한 이후 실학은 한국학계의 골격을 형성했다. 실학을 빼놓고 한국학을 얘기하기 힘들 정도다. 그렇게 된 배경엔 우리 역사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소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이 없었더라면 우리 힘으로 실학을 통해 근대화와 자본주의를 이룰 수 있었다는 사관이다. 이른바 내재적 발전론의 뼈대가 실학이다.

"근대화와 산업화는 달성해야할 꿈이자 이상이었습니다. 50~60년대 지식인들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실학을 요청했던 시대적 역할은 존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 근대를 넘어 탈근대를 이야기하는 21세기에 더 이상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한 교수는 중세와 근대라는 이분법을 바탕에 깔고 조선시대와 실학의 성격을 규정하려는 태도를 지양하자고 제안한다. 조선후기 지성사 흐름에 대해선 "자본주의 사회를 지향했다기보다는 현실적으로 부국강병을 추구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유교적 이상주의에 입각한 대동(大同)사회를 꿈꾸었다"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아직 우리 역사의 발전 과정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의 틀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환경과 생태 문제 등을 반영한 우리의 '21세기 실학'을 만들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배영대 기자)

중앙일보(06. 07. 05) '탈 실학` 바람… `학파로서 실학은 존재했던가` 부터 다시 묻는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이름 앞에는 흔히 실학자라는 설명이 붙는다. 대개 조선시대 주류 이데올로기였던 주자학을 비판하며 조선후기에 발달한 일련의 개혁사상을 '실학(實學)'이라고 불렀다. 이는 실학을 주자학에 대립하는 또 하나의 학파적 개념으로 본 것이다. 이 같은 실학에 관한 통념이 근원적으로 의심받기 시작했다. 20세기 후반부터 관련 학자들이 사석에서 주로 논의해 왔다. '실학은 없다'는 주장까지 나왔었다.

그같은 '실학 해체'논의가 공식 석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림대 한림과학원 한국학연구소(소장 한영우)가 12일 서울 대치동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에서 개최하는 학술대회는 그같은 징후를 뚜렷이 보여준다. 이날 토론회에선 실학이 조선후기에만 특별하게 쓰인 고유명사가 아니었음이 공식적으로 논의된다. '탈(脫)실학 시대'로 진입하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실학의 건축'에서 '실학의 해체'로=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를 정년퇴임한 후 한림대로 적을 옮긴 한영우(68) 소장의 기조발표는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실학의 해체'에 가까운 발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사학계의 원로로서 실학의 개념이 형성되어 오던 '실학의 건축'시대를 산 인물로서는 파격적 발언이다. 시대와 학문에 대한 진솔한 고민이 배어 나온다.

실학에 관한 기존의 통념은 '조선시대=봉건시대=주자학'을 한편에 놓고, 다른 한편엔 '조선후기=자본주의 맹아=실학'을 대립시키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각은 봉건시대의 주자학을 실학이 극복하면서 자본주의 근대를 여는 내재적 흐름을 형성했다는 관점으로 이어진다. 당연히 주자학과 실학은 선악의 이분법으로 구분된다.

한 소장은 이에 대해 의문점을 던졌다. 조선시대가 봉건사회인가라는 문제부터 제기했다. 조선시대는 봉건이 아닌 중앙집권적 사회였다는 것. 과거시험으로 관리를 뽑는 관료제와 사유재산이 있었던 조선은 근세의 유럽과 비교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런 지적은 그간 학계 일각에서 나오던 주장들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1930년대 이후 실학은 만들어졌다= 조선 후기의 학술적 경향의 뼈대를 실학으로 본 것은 1930년대 이후다. 위당 정인보가 다산 정약용을 집중 조명하며 실학 개념의 초석을 놓았다. 주자학을 비판한 대안적 개념으로서의 실학은 해방 이후 더욱 주목받으며 한국학의 기둥으로 자리잡아 갔다. 특히 일본의 식민사관을 극복하면서 우리 학계가 내세운 자본주의 맹아론을 실증해주는 흐름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조선도 일본과 같은 자본주의를 자체적으로 형성해낼 수 있었다는 자긍심의 표현이었다. 이같은 흐름은 한국 학계의 20세기를 관통했다.

이 같은 통념에 대해 한 소장은 이렇게 반박한다. "조선시대가 봉건사회라는 대전제가 증명되지 않는 한 실학 개념은 가설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실학이란 용어가 실제로 '실학자'라고 규정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었는지도 실증적으로 증명된 바 없다"고 했다.

한 소장은 조선시대 역사에서 실학을 특수한 용법으로 논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조선 초기 주자학자들도 주자학을 실학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당시 유학자들은 불교나 도교를 비판할 때 흔히 허학(虛學:공허한 학문)이라고 지칭했다. 유학은 공리공담이 아닌 실질을 중시하는 실학이라는 것이다. 조선 후기에 실질을 중시하는 흐름이 있었다면 그것은 유학의 본령을 회복하자는 것이지 자본주의 근대화 등과는 무관한 주장이었다.

탈(脫)근대, 탈(脫)실학의 21세기= 한국 학계의 20세기는 '실학의 건축'시대였다. 그리고 21세기 한국 학계의 관점은 '실학의 해체'로 이동하고 있다. 실학 개념의 해체가 논의될 수 있는 배경엔 우리의 자신감이 배어 있다. 근대화를 절대선으로 여기던 시절에 우리는 실학이란 개념으로 우리의 역사를 설명해야했다. 하지만 이제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뤘고, 나아가 환경과 생태 문제 등 근대화의 역효과가 제기되는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배영대 기자)

중앙일보(06. 07. 05) 실학 개념 어떻게 변해왔나

1930년대 국학 운동의 일환으로 등장한 '실학'개념은 80년대에 이르러 한국학 전반을 꿰뚫는 핵심 키워드로 자리잡는다. 역사학.철학.문학.사회학.경제학 등 거의 전 학문 분야에 걸쳐 실학 연구는 붐을 이뤘다. 당시 민주화운동의 민중지향적 성격과 맞물려 상승작용을 했다. 그 논리적 근거는 '중세 봉건 조선시대'가 실학의 개혁운동을 거쳐 근대사회로 가는 터를 닦았다는 것이다.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근거로도 큰 몫을 했다.

이 같은 경향은 90년대 들어 반성의 계기를 맞는다. 실학 개념이 지나치게 확대해석되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반성적 주장이 공식 석상에서 논의되기 어려웠다. 이유는 파괴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통설적인 실학 개념을 가르쳐준 스승의 학설을 부정해야 하고, 또 그에 기반한 근대 한국학의 체계를 뒤흔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대화가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비판을 받으면서 실학 개념에 대한 의문도 본격 제기되기 시작했다. 근대지향의 실학 개념을 되돌아볼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국사학자 한영우 소장의 용기있는 기조발언은 이같은 시대의 흐름과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고 있다. 진보적 사관의 해체와도 맞물린다. 문제는 실학이 해체된 자리를 무엇으로 메우냐하는 점이다.

대안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최근 한국학계에선 실학 개념에 기대지 않고 조선시대사를 서술하는 방식을 선보이고 있다. 발전사관 중심의 윤리적 서술을 배제하고 시대마다의 삶의 특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실학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것인가. 이에 대해 한영우 소장은 실학이란 용어 자체까지 없앨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조선시대의 유학자만 실학을 얘기한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고 당대의 과제를 고민하는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실학적 자세를 지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소장은 "서구화 시대가 끝나고 시작된 세계화 시대에 '신(新)실학'을 모색해보자"고 제안했다. 그가 말하는 신실학은 민족.민주.산업화.과학화를 지향한 기존의 실학 위에 생명과 평화의 관점을 추가하는 것이다.

실학 연구의 대세가 탈(脫)실학의 방향으로 모두 넘어온 것은 아니다. 12일 학술대회에 발표자로 참여하는 정호훈(연세대 국학연구원).유봉학(한신대) 교수 등은 기존 실학 개념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완전한 해체에 대해선 유보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날 학술대회의 주제는 '실학의 재조명'이다. 실학 패러다임의 변화까지 반영한 실학 연구는 이제부터다.

실학 개념의 형성과 해체 과정

▶1930년대

-정인보, 문일평, 안재홍 등 민족주의 국학자들이 '조선학 운동'의 일환으로 처음 '실학'이란 용어 쓰기 시작

-조선후기 사상가 다산 정약용을 돌출적으로 강조

-실학은 주자학의 '반민족적, 반민중적, 비실용적 학풍'에 대비되는 학풍으로 규정

▶1950년대

-천관우, 홍이섭 등이 해방 후 실학 연구를 이어감

-실학을 봉건과 근대의 대칭 구도 속에서 파악

-주자학은 봉건적 사유로 전제되고, 실학은 봉건적 주자학에서 벗어나 근대로 가는 과도기적 사상으로 구체화

-실학을 근대사상의 맹아(萌芽:싹)로 보는 관점은 우리 역사 자체에서 자생적 근대화의 맹아를 찾으려는 후배 학자들에 의해 통설로 받아들여짐

▶1958년

-한우근이 처음으로 실학 개념에 대해 문제제기

-한우근은 실학이란 말이 조선후기의 용어가 아님을 밝힘

-고려 말 이후 조선시대는 물로 중국 송나라 때도 주자학을 실학이라고 불렸음이 밝혀졌으나 이런 주장은 주류 학계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함

-한우근은 조선후기에 주자학을 비판한 학자와 학문을 '경세치용의 학'이라고 부르자고 제안

▶70~80년대

-70년대 이우성은 실학을 경세치용, 이용후생, 실사구시의 세 분야로 나눌 것을 제안하며 실학 연구의 바톤을 이어받음

-80년대 지두환은 북학파를 실학으로 보자고 주장

-이때까지 실학 개념은 근대를 지향하는 관점으로 본다는 점에서 50년대 천관우의 설을 근본적으로 뛰어넘지는 못함

▶90년대

-김용옥이 '실학은 없다'는 파격적 주장 내세움

-한우근에 이어 실학이란 용어가 전통시대의 보통명사였다고 주장. 자생적 근대화를 지향하는 염원이 실학 개념을 요청했다고 함

-냉전이 해체되고 탈근대주의(포스트모더니즘)가 확산되며 실학 개념 해체 주장이 소장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되기 시작

▶2006년 7월

-원로 국사학자 한영우, 실학 개념의 해체 가능성 공식 제기

-조선시대를 중세와 근대, 주자학과 실학의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통설에 의문 제기

07. 07. 19.

P.S. 참고로 한영우 교수는 조선전기 정치사상사, '정도전 사상' 연구의 권위자로서 <정도전 사상의 연구>(서울대출판부, 1987),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지식산업사, 1999) 등의 연구업적을 갖고 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건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효형출판, 1998; 개정판 2007)과 이후의 <다시 찾는 우리 역사> 시리즈를 통해서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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