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기독교)와 폭력, 무신론 등과 관련하여 최근에 읽고 있거나 읽을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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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기원
지크문트 프로이트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2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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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죽은 신을 위하여- 기독교 비판 및 유물론과 신학의 문제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정아 옮김 / 길(도서출판) / 2007년 7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2007년 08월 14일에 저장
품절
오소독시-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G. K. 체스터튼 지음, 윤미연 옮김 / 이끌리오 / 2003년 12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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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거룩한 테러- 9.11 이후 종교와 폭력에 관한 성찰
브루스 링컨 지음, 김윤성 옮김 / 돌베개 / 2005년 9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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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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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7-08-14 01:52   좋아요 0 | URL
Caputo의 책이 국역되어 있었군요... 몰랐던 사실!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로쟈 2007-08-14 16:44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 한데, 믿을 만한 번역자는 아닙니다...

자꾸때리다 2007-08-14 17:30   좋아요 0 | URL
지젝 책이 있네요. 번역 상태가 어떨런지...(도킨스 말고 이 사람 책을 읽어보고 싶네요.)

로쟈 2007-08-14 19:51   좋아요 0 | URL
휴가 다녀오셨군요.^^ 번역은 <혁명이 다가온다>보다 나은 편입니다...

바벨의도서관 2007-08-14 19:34   좋아요 0 | URL
[오소독시]의 번역 수준은 최악입니다. 원서를 대조하며 본다면 모를까 역서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지젝이 체스터튼을 끌어들인 연유는 알겠는데 일반 독자들이 직접 그의 진면목을 확인하려면 조금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년 쯤에 IVP라는 기독교 계통 출판사에서 새로운 번역의 출간계획이 잡혀있으니까요(물론 저는 그 출판사의 직원이 아닙니다^^;).

로쟈 2007-08-14 19:52   좋아요 0 | URL
<오소독시>는 영어본과 러시아어본을 갖고 있습니다. 아직 안 읽어봤는데 국역본이 그 정도로 최악인 줄은 몰랐는데요.--;

Jeanne 2007-08-14 19:52   좋아요 0 | URL
C.S.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도 읽어보실만 할거에요. 그리고 카이로스님 감사합니다. 사려던 참이었어요. ^^

로쟈 2007-08-14 20:15   좋아요 0 | URL
네, 루이스의 책도 집어넣으려다가 제가 당장 갖고 있는 책은 아니어서 뺐습니다.^^
 

주말 북리뷰들에서 크게 다루어진 책들 가운데 하나가 우석훈-박권일 공저의 <88만원 세대>(레디앙)이다. 이른바 '세대 경제학'적 차원에서 한국 사회를 다룬 '초유의' 책이라고. 리뷰기사에 보면 책은 "세대간 불균형 문제를 다루는 데는 좌파나 우파나 모두 미숙하다고 싸잡아 비판한다"고도 한다. 저자들의 판단에 따르면 "40대와 50대 남자가 주축이 된 한국 경제의 주도세력이 10대를 인질로 잡고 20대를 착취하는 형국"이 바로 우리의 자화상인데, 40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착취'당하는 부류가 있다면 분류상 20대인 건가?(하긴 요즘 다시 20대로 되돌아간 듯한 긴장감(!)은 자주 느낀다. 몸이 안 따라 주어서 그렇지.) 개인적으로 최근 '다윈주의 좌파'에 관한 리뷰를 쓰기도 했지만 저자들의 입장이 다윈주의 좌파의 전형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어 흥미롭다(왜 그런가는 시간이 나는 대로 적어보겠다). 주변에 10-20대가 있다면 권해볼 만한 책이다.

경향신문(07. 08. 11) 한국 20대의 슬픈 ‘알바 인생’

“20대여, 토플 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이성과 합리성을 존중하고 권면해야 할 책의 메시지가 마치 시위를 선동하는 듯하다. ‘88만원 세대’라는 기발한 제목이 붙은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실제로 가슴이 뛴다.

‘세대 간 불균형’이라는 구조적인 현안을 다룬 우리나라 초유의 ‘세대 경제학’ 책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88만원 세대’라는 도발적이고 상징적인 이름은 저자들이 짜낸 독특한 아이디어다.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 비율인 74%를 곱하면 88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 88만원이 기껏해야 편의점과 주유소를 전전하는 한국 20대의 슬픈 ‘알바 인생’을 표징하는 것이다. 현재의 20대는 상위 5%만이 그럴 듯한 일자리를 가질 뿐 나머지는 비정규직의 삶이 불가피하다고 전제한다.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비해 20대의 자립이 터무니없게 늦어지는 이유가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성과 경제 시스템의 문제라고 저자들은 진맥을 먼저 한다. ‘첫 섹스의 경제학’이라는 다소 야한 제목이 붙은 1장부터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의 불행한 10대를 다른 나라 사정과 조목조목 살갑게 비교하며 논점을 설파해 나간다.

저자들은 한국에서 가장 저급하면서 장기적으로 경제시스템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두 가지 악재로 ‘1318 마케팅’과 ‘다단계 판매’를 지목한다. 이 두 가지 모두 10, 20대에게는 마약 같은 존재이며,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급성장한 신규 산업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1318 마케팅’ 때문에 한국은 소녀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일찍 화장을 시작하는 나라, 가장 많은 화장품을 10대가 집단적으로 소비하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불법 다단계 판매’의 최대 피해자도 10, 20대다.

저자들은 ‘1318 마케팅’을 ‘세대 착취 자본주의’ ‘인질경제’라고 과격하게 몰아붙인다. 중첩한 경제적 불균형이 낳은 결과도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40대와 50대 남자가 주축이 된 한국 경제의 주도세력이 10대를 인질로 잡고 20대를 착취하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구조적인 문제 해결책으로 왜 하필 바리케이드이고 짱돌인가. 경제적 약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처음으로 갖기 시작한 것은 바리케이드라는 물리적 장치를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들이 10, 20대들에게 주문하는 바리케이드와 짱돌은 시위 현장에 필요한 실물이 아니라 상징적인 것이다. 독자적으로 설 수 있는 저항정신과 자세다.

책은 10대 문제를 다루는 한국 사회가 초보적인 까닭이 자본주의 운영방식을 서양에서 껍데기만 들여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제 노동자·농민 문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노하우가 축적돼 있지만 10대 문제는 그렇지 못하다. 세대간 불균형 문제를 다루는 데는 좌파나 우파나 모두 미숙하다고 싸잡아 비판한다.

저자들은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경제에 대한 접근 방식을 세대 간의 문제와 다음 세대의 문제라는 ‘새로운 축’으로 바꿀 것을 촉구한다. 기성 세대 대부분은 성장률이 낮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일부에서는 양극화 문제로 진단하지만 그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돈은 어디서 나오느냐고? 회의가 끝난 뒤 저녁 먹는 데 쓰는 사업집행비, 수조 원씩 아무 이유도 없이 사용되는 정부 예산만 합쳐도 상황을 훨씬 개선할 수 있고, 최소한 일본이나 프랑스 수준을 따라갈 수 있다고 장담한다.

10, 20대가 맞은 위기상황이 386세대에게 상당한 역사적 책임이 있음을 엄중하게 추궁한다. 386세대는 어느 나라, 어느 세대보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강력하게 반영하는 사회적 장치와 흔들리지 않는 단결력을 지녔다. 하지만 프랑스의 68세대와는 달리 386은 대학개혁에 대해서도 아무런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물론 오히려 학벌사회를 강화시켜 역사에 대한 배신을 행한 세대라고 비판한다.

주 저자 우석훈은 프랑스에서 생태경제학을 공부한 진보적인 소장경제학자다. 스스로 C급 경제학자라고 늘 낮추지만 내공은 만만찮다. 그의 글쓰기에 매료된 독자들이 적지 않은 것이 방증한다.
저자들 스스로 밝혔듯이 10대 후반의 청소년들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세밀한 주의를 기울였다. 특히 차기 정부를 이끌어 보겠다고 나선 대통령 후보와 정책 참모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주류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방법론에 관한 생각이 다르다는 대목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의식에는 고개를 끄덕이리라 믿는다. 적어도 이 책이 세대 간의 불균형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의 토대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 대안 연작 시리즈로 ‘88만원 세대’와 함께 나온 같은 공저자들의 두 번째 책 ‘샌드위치론은 허구다’(개마고원)는 한국 기업의 위기 본질이 외부가 아닌 기업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고 호루라기를 분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과 후발 개도국 중국의 협공에서 원인을 찾는 샌드위치 위기론은 경제 논리가 아니라 정치적 담론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이 책은 조직론이라는 관점에서 한국 기업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역설한다. 캐비아 자본주의, 엘리트 신입사원만 선발하는 귀공자 자본주의, 여성들과 일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마초 자본주의, ‘토호들의 짝패’ 자본주의, 중소기업을 배려하지 않는 조폭 자본주의의 문제가 그것이다. 여기서 캐비아란 경제행위를 하는 개인들이 기대하는 경제수준으로 임금, 부동산, 조기유학, 과외 등을 의미한다.(김학순 선임기자)

한겨레(07. 08. 11) "40·50대가 10대를 인질로 20대를 착취”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한국의 20대를 가리킨다. 자칭 ‘C급 경제학자’인 우석훈 박사(사진)와 박권일 전 <말>지 기자는 최근 함께 펴낸 책 <88만원 세대>(레디앙)에서 직접 만들어낸 이 신조어를 둘러싼 사실과 해석을 펼쳐 놓는다. 비정규직 평균 월급여가 119만원이다. 이 액수에 20대가 전체 평균 급여에 견줘 받는 몫을 곱해보니 대략 88만원이 나왔다. 그러니까 이 용어는 20대 비정규직이 받는 월평균 급여다. 우 박사는 지금의 한국 경제를 “40대와 50대 남자가 주축이 된 주도 세력이 10대를 인질로 잡고 20대를 착취하는 형국”으로 본다. 20대와 50대가 전체 고용인구의 3분의 1인 800만명 비정규직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88만원 세대’인 20대에 대한 세대 착취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교육과 소비마케팅의 포로가 된 10대는 인질이라고 했다.

이런 현실이 가진 함의는 “16살부터 사랑을 시작하고 18살에 고교를 졸업하면서 독립을 희망하는” 유럽 젊은이들과 견줄 때 확연히 드러난다. 프랑스는 최근 대학 등록금을 크게 올렸으나 50만원에 불과하다. 학생들에게 주거보조금도 준다. 스웨덴에선 20살이 되면 생애 첫 창업자금으로 2000만원을 대준다. 하지만 이 땅에서는 “스무 살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학생의 동거권’이 경제적으로 원천 봉쇄되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행복지수’의 차이는 상상하기 힘들다.

더 심각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확산된 직업 불안정 추세가 더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현 10대들에 대해서, “지금의 비정상적인 변화가 계속되고, 또 그 속성상 가속이 붙어 나가게 된다면 단 10% 미만의 선택된 소수들만이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명목실업률이 높아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 비율입니다. 현 추세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1000만~1500만명 수준이 될지 그게 관심사입니다.”

최근 이랜드 사태를 촉발시킨 비정규직 보호법이야말로 비정규직을 양산시킬 ‘원흉’이다. “회사 고용의 몇%는 정규직으로 가야 하고 이런 체계를 갖춘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법안이어야 했습니다. 법 시행 이후, 취지와는 달리 기업들이 주나 일 단위 계약서를 쓰고 있습니다.”

이런 ‘세대착취’는 유독 한국에서 가혹하다. 일본만 해도 ‘알바’들은 대기업 초임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우리의 경우 시간당 최저임금 3480원이 급여 책정의 기준이 되지만 일본은 대법원 판결로 알바의 고임금을 보장해주었다. 비인간적인 저임금은 사회풍속에 반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의 몰락도 20대를 나락으로 몰고 있다.

그는 20대의 가혹한 운명이 사회의 파시즘화를 불러올 것으로 점쳤다. “황우석 사태 때 최대 98%까지 황 교수 편에 섰습니다. 이 정도 수치라면 우리 사회의 논의나 결정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이죠.” 그는 다음 정권이 파시즘 성격을 가질 것으로 단언했다. “개인 통제를 강화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젊은 세대는 배고픔의 열정 때문에 제국주의적 성격의 해외 진출이나 길게 보면 자원 부족으로 가상할 수 있는 한·중·일 사이의 전쟁 기류에 박수를 칠 겁니다.”

극단적인 과거회귀는 막아야 한다. 그는 우리 경제가 인간의 얼굴을 한 유럽이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일본형 경제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고 본다. “스위스와 덴마크의 중간 어디쯤”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했다. “스위스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강합니다. 국민들의 지식 수준이 높지 않아도 가볼 수 있는 모델이라고 봅니다.”

그는 ‘88만원 세대’의 고통을 덜기 위한 몇 가지 주문을 내놓았다. “그들을 스스로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 예컨대 세대 대변자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업 이사회의 ‘주니어 보드’ 같은 게 한 예다. “다 토플책만 보고 있으면 각개격파 당합니다.” 지식기반 사회의 젖줄인 창의력을 키우기 위한 독서도 강조했다. 그가 보기에 지금의 10대에는 두 가지 갈림길이 있다. 그들을 겨냥한 소비광고마케팅에 휩쓸려 가거나 아니면 독서를 통한 지식경제 1세대로 나아가느냐는 것이 그 선택지다. 이는 한국의 미래를 좌우하는 갈림길이기도 하다. 외부에는 △감원 대신 감봉을 택해 일자리를 나누는 스웨덴 볼보주의 정책 도입 △정규직화 비율을 높이기 위한 예산 지원 △2조원의 20대 창업지원금 확보 △자영업자를 위한 홍보 및 마케팅 지원 △지자체의 알바 보조금 지원 등을 제시했다.

지은이들은 함께 펴낸 다른 책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개마고원)에서 삼성과 현대 자동차 등의 사례 분석을 통해 한국 기업 조직이 빠져 있는 함정을 집중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살길이 없는 ‘붕괴’ 모델입니다. 외부에서 굉장히 많은 돈이 유입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모델이죠. 돈이 끊기면 그 순간 불만이 쌓이면서 무너질 수 있죠.” 그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1~2년 이내에 창사 이후 가장 큰 위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면서, 이 경우 거액의 연말 보너스 보상 체계로 돌아가고 있는 삼성이 강성 노조가 버티고 있는 현대보다 더 격렬한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삼성의 강남 엘리트 중심의 채용 시스템도 위기를 키우는 요인으로 봤다. 창의성은 떨어뜨리고 조직원들의 소모적인 경쟁만 촉발시키고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글 강성만 기자)

07. 0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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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펌]다윈주의 좌파?
    from 영혼의 아까징끼 2007-08-13 14:19 
    '로쟈'라는 아이디는 눈에 익다. 예전에 그가 쓴 서평을 몇번 읽어본 적이 있었고 날카로운 시각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알라딘에서 꽤 유명한 소위 '스타급' 서평자라는데, 공부하는 분인 듯(러시아문학 같다) 하다. 얼마 전부터는 『한겨레21』에 칼럼도 쓰나 보다. 아래의 글은 그가 『88만원 세대』에 대해 포스팅한 글인데, "저자들의 입장이 다윈주의 좌파의 전형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어 흥미롭다"고 말한다. 그가  다윈주의 좌파에 대해...
 
 
philocinema 2007-08-13 13:09   좋아요 0 | URL
그 위대했던 88올림픽 근처의 세상에서 태어나 양육된 기운도 88한 우리의 젊은이들에겐 88만원의 현실이 기다리고 있군요.

람혼 2007-08-13 13:29   좋아요 0 | URL
센스 88만점의 댓글입니다!ㅎㅎ^^

philocinema 2007-08-13 13:51   좋아요 0 | URL
만점이 100점이 아니었군요!

람혼 2007-08-13 16:25   좋아요 0 | URL
9진법으로 읽어주시길! ^^

로쟈 2007-08-13 13:58   좋아요 0 | URL
88올림픽 즈음에 태어난 분들은 거의 '착취세대'에 들어갈 텐데요.^^

마늘빵 2007-08-14 00:39   좋아요 0 | URL
음 저는 다행히 70년대 마지막 열차를 탔는데 비껴갈 순 없을거 같군요. 흐흐.

섬나무 2007-08-14 12:48   좋아요 0 | URL
아들이 고1인데 '착취세대'란 살벌한 용어에서 썩 자유로울듯하지도 않은 현실이니 난 아들에게 스무살에 해야할 몇 가지.. 따위의 책들 대신 필히 이 책을 들려줘야겠습니다.
영혼의 아까징끼님이 소개한 로쟈님의 글도 잘 읽었습니다. 영혼의 아가징끼님은 그러니까 88만원 세대의 공저자 중 한 분이란 말씀이겠지요.
어떤 분 블로그를 보고 로쟈님 서재를 보는 오늘 아침엔 불쑥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온통 디워 난리통에 피랍사건이 묻혀버렸다는 그 분의 시니컬 멘트의 냄새가 디워 굿판에 일조한 지식인들의 정체성 아닌가 싶은.. 엊그제도 그분 열정적으로 디워 굿판에 참석하시던데.. 그깟 시시한 일로 왜 그렇게 열을 올리셨는지. 피랍사건이나 영화 한 편에 대한 시비는 한 발 떨어진 사람들에겐 뉴스거리 이상일리 없고 공허한 말들은 보태질수록 가난해지는 듯합니다.
그 속에서 돌부처처럼 독서하시는 감탄스러운 로쟈님!^^

로쟈 2007-08-14 13:53   좋아요 0 | URL
<디워>는 보지 않았기 때문에(보게 될 것 같지도 않구요) 저로선 할말이 없고, '미학적 비평'이 나오는 게 난데없이 여겨지는 것 정도입니다. 미학과는 무관한 사회적 현상일 뿐이라고 봅니다. '돌부처'처럼 독서할 만한 여유가 저도 좀 있었으면 싶습니다.--;
 

'어린이용 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지만((찾아보니 현재는 이가서에서 나온 2권짜리 어린이용 그림책이 있다) 나로선 기억에 없는 <위대한 왕>(아모르문디, 2007)이 출간됐다.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바이코프(1872-1958)의 '백두산 호랑이' 이야기라고 한다. 비록 이번에 나온 완역본은 불역본을 대본으로 한 것이지만 저자와 책에 대한 흥미 때문에 따로 페이퍼를 쓴다(아래 오른쪽 이미지는 바이코프의 호랑이 이야기도 포함돼 있는 책 <정글의 왕>. 바이코프의 책은 러시아 인터넷서점에서 거의 뜨지 않는다. 저자의 이미지도 찾지 못했다).

Владыка джунглей

한국일보(07. 08. 11)  러시아 작가가 그려낸 동물의 왕 '조선 호랑이'

지금은 동물원에 가면 쉽게 볼 수 있지만, 호랑이는 오랫동안 우리 민중들에게 영물(靈物)로 받들어져온 동물이다. 반면 서양에서는 동양만큼 호랑이가 상징성이 있는 동물은 아니기 때문에 어린시절 서양작가가 호랑이를, 그것도 조선호랑이를 소재로 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여겼던 기억이 새롭다.

Des tigres et des hommes : "Le Grand Van" et autres nouvelles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위대한 왕>의 완역본이 선보였다. 1936년 처음 발표된 소설로 광활한 만주의 침엽수림을 지배하는 조선 호랑이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어린이용 문고판이나 만화 등으로 여러차례 선보였지만 완역은 이번이 처음. 러시아어판을 옮긴 것이 아니라 프랑스어판(1938년)을 텍스트로 삼은 점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지명이나 묘사, 사건들을 많이 생략해버린 기존 번역서의 약점을 극복하고 원본의 아우라를 잘 살려주고 있다.

주인공인 조선호랑이는 “단 한번 성난 눈길을 던지기만 해도 모든 작은 육식동물들이 겁을 먹고 맹종하는 왕”이다. 탄생, 사냥, 숲의 지배자로의 성장, 숙적인 인간과의 조우, 비극적인 최후 등 왕의 일생은 실제로 30여년간 만주의 자연을 치밀하게 관찰했던 작가의 군더더기 없는 문장에 의해 생명력을 얻는다.“넓고 반듯한 이마에는 ‘왕(王)’이라는 글자의 윤곽이 선명하고, 허공을 가로지르듯 유연하고 가볍게 위로 튀어오르는 모습은 차라리 새의 비상에 가깝다”“왕의 힘과 날렵함, 뛰어난 솜씨, 아름다움을 따라올 동물은 어디에도 없었다”“왕의 강인한 모습 전체에서 타고난 엄청난 힘과 꺾이지 않는 의지가 느껴졌다” 존엄한 왕자(王者)의 삶이라는 소재와 만주라는 공간적 배경이 잘 조화돼 남성적인 힘이 느껴진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러시아가 동청철도(하얼빈철도) 부설권을 획득해 만주개발에 뛰어들고 일본역시 한반도를 거점으로 만주진출을 꾀하던 시기. 이런 저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사냥꾼에 의한 왕의 죽음을 식민주의자의 피식민자에 대한 침탈로 읽거나, 문명에 의한 자연파괴라는 은유로 읽어내는 시도도 흥미롭겠다.(이왕구기자)

문화일보(07. 08. 11) 서구 근대문명과 맞선 ‘백두산 호랑이’

어릴 적에 소년소녀세계명작전집에 들어있는 한국 호랑이 이야기인 ‘위대한 왕’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러시아 출신 니콜라이 바이코프(1872~1958)의 ‘위대한 왕’(김소라 옮김·아모르문디)이 국내에서 처음 완역돼 나왔다. 270쪽에 달하는 청소년과 성인대상 소설이다.

책을 보면 ‘원래 어린이용 책이 아니었어?’ 하는 생각이 든다. 이어서 주로 서구작가의 작품 위주였던 명작전집에 어떻게 이 책이 들어갔을까 하는 호기심도 생긴다. 그 이유를 재일조선인 학자인 서경식(56·도쿄게이자이대 법학부) 교수의 서문을 보니 알 것 같다. 그는 일본 교토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고단샤(講談社)에서 나온 세계명작전집에 수록된 이 책을 처음 보았다.

“‘조선’이라는 말에 경멸과 조롱의 울림이 진드기처럼 늘 들러붙어 다니던 일본에서, 비록 ‘조선호랑이’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이 말이 경의의 뜻으로 쓰이는 사례를 접한 것이 처음이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나온 어린이 명작전집이 일본 것을 베낀 게 대부분이었고, 그래서 나이가 지긋한 독자들도 ‘위대한 왕’을 보게 된 것이다. 일본에선 그 시절 어떻게 조선호랑이 이야기가 명작에 들어갔을까. 
 

저자 바이코프는 제정러시아의 장교로 만주에 파견됐다가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만주로 망명, 무려 30년이 넘는 세월을 만주의 밀림 속에서 보냈다. 그는 만주에서 생활하며 그곳의 동식물과 풍속을 세밀하게 관찰해 여러 편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에 ‘위대한 왕’은 1936년 당시 일본이 괴뢰정부를 세운 만주의 ‘만주일일신문’에 일본어로 번역돼 연재된 뒤 문예춘추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돼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것이다.

‘위대한 왕’은 신령스러운 백두산 호랑이의 후예로 태어나, 만주의 거대한 숲의 바다(樹海)를 지배하는 군주로 성장한다. 이 호랑이는 광활한 숲의 왕자(王者)이자 준엄한 자연 법칙의 현현이기에 타이가의 모든 동물들은 왕에게 복종한다. 인간들도 위대한 왕을 산의 신령으로 모시며 순종한다. 왕은 굴종을 모르는 순수한 자연의 힘과 태곳적부터 이어져 내려온 밀림의 법칙을 대변하는 존재다. 이 왕에게 경외심을 보이는 이는 타이가의 현자 퉁리 노인이다. 그러나 철도로 대변되는 기괴하고 무자비한 제국주의의 손길이 만주 타이가를 송두리째 파괴하기 시작하자, 왕을 비롯한 숲의 터줏대감들은 새로이 등장한 인간에 맞서 반격에 나선다. 왕은 끝내 인간 침략자들과 맞서다가 당당한 최후를 맞이한다. 퉁리 노인만이 무릎을 꿇고 왕의 임종을 지킨다.

서 교수는 “‘근대문명’으로 말미암아 파괴되는 대자연과 멸절의 위기로 내몰리는 야생동물은 구미열강의 침략 앞에 내던져진 아시아 피압박 민족으로 읽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며 “이것이 단순한 동물소설의 영역을 초월해 정치적 암유(暗喩)의 색채를 띠는 이유”라고 이 소설의 생명력을 설명한다. 책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38점의 삽화(그림)가 수록됐다.(엄주엽기자)

경향신문(06. 04. 10) [여적] 시베리아 호랑이

니콜라이 바이코프는 러시아혁명 당시 백군에 가담해 적군과 싸웠고 그후 중국 동북지방으로 망명해 원시림을 무대로 동물소설을 쓴 독특한 이력의 작가다. 그의 대표작 ‘위대한 왕’(1936)은 시베리아 호랑이 ‘왕대(王大)’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인간의 발길이 깊은 숲 속으로 침투할수록 점점 더 좁아지고 살기 힘들어지는 동물의 세계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렸다. 왕대는 자신의 영토인 숲이 철도 개발로 처참히 짓밟히는 데 분노해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

바이코프의 경고는 탐욕스러운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호랑이는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 동물이 됐다. 돌이켜보면 인간은 호랑이를 살육하고 그 터전을 파괴하는 일에 얼마나 열중해왔던가.
시베리아 호랑이는 아무르 호랑이라고도 하며 인도·수마트라 등 세계의 호랑이 가운데 가장 크다. 수컷의 몸길이는 2.7∼3.3m, 몸무게는 180∼360㎏이다. 백두산 호랑이도 여기에 속한다. 백두산 호랑이는 남한에서는 이미 멸종한 것으로 보이며 백두산 일대에 몇마리 남아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호환(虎患)같은 표현에서 보듯 한국인은 호랑이를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 친근하며 덕성이 있는 동물로 받아들였다. 단군신화에 조급해 금기를 지키지 못한 동물로 등장하는가 하면 산군(山君), 산신(山神), 산수(山獸)로 받들어지기도 했다. 호랑이의 용맹성을 들어 무반(武班)을 호반(虎班)으로 부르기도 했다.

멸종 위기의 호랑이와 관련해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세계야생동물보호재단(WWF)은 러시아 아무르주에서 시베리아 호랑이가 태어난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주로 연해주와 하바로프스크에 서식해 왔으며 아무르주에서 직접 새끼를 출산한 것은 1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또 중국이 ‘동북호(東北虎)’로 부르는 시베리아 호랑이의 개체수가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미세하나마 증가세로 돌아선 것으로 관찰됐다.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호성(虎聲)이 되살아날지 기대를 갖게 한다.(김철웅 논설위원)

07. 08. 12.

В горах и лесах Маньчжурии: иллюстрация 1

P.S. 바이코프의 책으로 더 눈에 띄는 건 1915년에 출간된 <만주의 산과 숲에서>이다. 저자가 42살에 펴낸 책이다. 그러고 보면 <위대한 왕>은 64살에 발표한 것이나 말년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짐작에는 러시아에서보다 일본에서 더 주목을 받은 작품으로 보인다(그 영향이 우리에게도 남아 있는 것이고).

P.S.2. 바이코프에 관한 자료를 검색하다가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은 시인 백석이 그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었다는 점. 아래 연보에 보면 1942년에 바이코프의 작품 <밀림유정> 등을 번역한 걸로 돼 있다(짐작엔 <위대한 왕>을 옮긴 게 아닌가 싶다). 일역본을 옮긴 듯하지만 백석이 러시아어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러시아어본을 옮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호사가'들이 좀 확인해주었으면 좋겠다... 

본명 : 백기행 (白夔行 1912년~1963년)
학력 : 아오야마가쿠인대학교
데뷔 : 시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 (1935년)
화제 : 시로 데뷔해 소설로 두각을 보임
약력 :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
-1918년(7세) 오산 소학교 입학.
-1930년(19세) 조선일보의 작품 공모에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을 응모,
당선하여 소설가로서 문단에 데뷔함.
이해 3월에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 선발에 뽑혀 일본으로 유학.
도오쿄오의 아오야마(靑山) 학원 영어 사범과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함.
-1934년(23세) 아오야마학원 졸업.
귀국 후 조선일보사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서울 생활을 시작함.
출판부 일을 보면서 계열잡지인 여성(女性)지의 편집을 맡음.
-1935년(24세) 8월31일 시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이후 시작품에 더욱 정진함. 조광(朝光)지 편집부 일을 봄.
-1936년(25세) 1월 20일 시집 [사슴]을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발간.
1월29일 서울 태서관(太西館)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짐.
-1939년(28세) 1월 26일 조선일보에 재 입사.
-1940년(29세) 만주의 신찡(新京,지금의 長春)으로 옮겨 가서
'신경시 동삼마로 시영주택 35번지'의 중국인 황씨 집에 거처를 정함.
-1942년(31세) 만주의 안동에서 세관 업무에 종사함.
러시아 작가 바이코프의 작품 [밀림유정] 등을 번역함.
-1945년(34세) 해방과 더불어 귀국,
신의주에서 잠시 거주하다 고향 정주로 돌아와 남의 집 과수원에서 일함.
-1947년(36세) 시 [적막강산}이 그의 벗 허준에 의해 신천지에 발표됨.
-1948년(37세) 김일성 대학에서 영어와 러시아어를 강의했다고 전해짐.
-1949년(38세) 숄로호프의 소설 [고요한 돈강]을 번역 출간함.
숄로호프의 [그들은 조국을 위하여 싸웠다]를 번역 출간함(191면).
-1950년(39세) 국군이 평안도를 수복했을 때
주민들이 그를 정주 군수로 추대했다고 전함.
-1953년(42세) 파블렌코의 [행복]을 번역 출간함.
-1954년(43세) 러시아의 농민시인 이사코프스키의 시선집을
연변교육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함.

-1956년(45세) 아동문학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동화문학의 발전을 위하여]등의 평론을 발표함.
-1957년(46세)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발간함.
-1958년(47세) 시평 [사회주의적 도덕에 대한 단상]을 발표함.
-1959년(48세) 시 [이른 봄] 등 7편을 조선문학에 발표함.
-1960년(50세) 이해 12월 북한의 조선문학지에 시 [전별] 등 2편을 발표함.
-1963년(52세) 이해에 사망했다는 설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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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13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지면엔 글 올라오셨던데... :)

로쟈 2007-08-13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레21 말씀이신가요? 진작에 옮겨놨는데요...

마늘빵 2007-08-13 10:03   좋아요 0 | URL
헙. -_- 제가 못본거군요.

2007-08-17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8-18 01:14   좋아요 0 | URL
반가운 댓글이네요.^^ 백석의 <밀림유정>이 바이코프의 단편 <유로슈카>의 번역이라는 정보만으로도 유익합니다. 나머지 작품들도 곧 책으로 나오길 기대하겠습니다.^^
 

단테의 <신곡> 새 번역본들이 나온 김에 <신곡> 번역비평에 관한 예전의 기사를 다시 읽어보았다. 교수신문에 게재되었던 것으로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생각의나무) 1, 2권에는 아직 실리지 않았다(올 4월에 나온 2권에는 왜 빠졌을까?). 번역 비평의 필자가 이번에 열린책들에서 번역본을 낸 김운찬 교수이다. 적어도 지적된 내용들은 교정돼 있겠다. 그러니까 아래 기사는 이번에 나온 김운찬본과 박상진본에 대한 평가는 다루고 있지 않다(그건 당분간은 독자의 몫인 듯싶다).

교수신문(06. 12. 26) 고전번역 비평_최고 번역본을 찾아서 (57) 단테의 『신곡』 

아마 ‘신곡’ 처럼 번역자를 시험하고 힘들게 하는 작품은 드물 것이다. 가장 큰 이유로 상당한 분량의 백과사전적 지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신곡’ 은 중세 유럽의 지식을 총체적으로 집약하고 있다. 수백 명에 달하는 등장인물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에피소드들, 전설, 고전 신화, 중세의 철학과 신학, 천문학과 지리 등에 대한 이해 없이 단테의 저승 여행을 뒤따라가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원본이든 번역본이든 대부분의 판본에는 많은 역주와 해설들이 덧붙여져 있다.

또한 ‘신곡’ 은 다양한 알레고리와 은유, 다의적인 표현들을 특징으로 한다. 거기에다 3행 연구(聯句), 각운, 11음절 시행(詩行) 등의 운문 형식과 음악성, 리듬까지 작품의 일부를 이룬다. 훌륭한 번역은 당연히 그 모든 것을 고려하고 최대한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쉽게도 우리 나라에는 그런 번역본이 아직 나와 있지 않다.

단테는 개화기에 이미 소개되기 시작하였으나 ‘신곡’의 완전한 번역본이 나온 것은 1950년대 후반으로 최민순 신부가 옮긴 판본(경향잡지사, 1957-59년)이다. 그 이전에 혹시 부분적이거나 전체적인 번역본이 나왔는지 필자로서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최민순의 번역본에서 저본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탈리아어 원본이 아니라 영어나 스페인어 번역본에서 중역하였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 후 1970년에 들어와서야 임명방의 번역본이 나왔고, 뒤이어 여러 가지 번역본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거의 모든 세계문학 전집에 빠지지 않고 포함되었다. 대략 열거하더라도 유영(1972), 하병호(1974), 허인(1975), 이영숙(1976), 한형곤(1978), 강인웅(1977), 정인섭(1982), 문병선(1983), 최현(1988), 구자운(1991), 김의경(1991), 정노영(1993), 김문해(1997), 최현(1997), 유한준(1998) 등의 번역이 있는데, 출판 연도는 판본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때로는 한 번역자의 작업이 여러 출판사에서 간행되기도 하였다.

또한 대부분 번역의 저본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단테의 이탈리아어 원본에서 옮긴 것은 임명방, 허인, 한형곤의 번역뿐이다(*그러고 보니 나는 이 번역본들을 모두 갖고 있다). 유영이 10여 종의 영어 번역본과 이탈리아어 원본을 참조하였다고 밝히고 있으나 여전히 모호하다.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일부 번역본들은 서로 비슷하거나 때로는 완전히 똑같은 경우도 있다. 가령 강인웅과 정인섭의 번역본은 분명히 번역자가 서로 다른데도 글자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다.

그 외에 번안 작품들도 많다. 유한준(1998), 김혜니(1999), 정미옥(2005)은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해 축약하여 번안하였다. 최요한(1994)은 아예 제목을 ‘소설 신곡’이라 붙였으며, 최근의 번안 작품으로 박상진(2005), 최승(2005)을 들 수 있다. 번역과 번안을 구별하는 잣대는 원본에 대한 충실함일 것이다. 번안은 원본을 임의적으로 줄이거나 덧붙임으로써 기본 골격만 유지하고 나머지 부분을 자의적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물론 ‘신곡’ 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번역과 번안을 뚜렷하게 구별하기 어렵지만 간단한 기준이 하나 있다. 번안은 바로 원본의 시행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행의 숫자를 아예 표시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기본적인 요건을 무시하는 상당수의 번역본들은 번안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탈리아어 원본에서 옮겼다고 해서 언제나 중역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다. 최민순의 경우처럼 중역본이 오히려 원본에 충실한 경우도 있다. 거의 모든 번역본이 드러내는 문제점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우선 단테의 텍스트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하다. 번역에 앞서 해석의 단계에서 이미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많은 독자들이 ‘신곡’ 을 읽고 어렵다고 말하는데, 원본이 어려운 탓도 있지만 대부분 번역자의 이해 부족이나 미숙함이  원인이다. 그 결과 두 번째 문제점으로 우리말의 가독성이 떨어진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표현들이 많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최민순과 한형곤의 번역본이 무난한 편에 속한다. 최민순 역은 멋들어진 우리말 용어들과 함께 시인으로서 번역자의 모습을 보여주듯이 시적인 표현들이 돋보인다. 한형곤 역은 이탈리아어 원본에서 옮겼을 뿐만 아니라, 자세하고 풍부한 해설과 역주를 자랑하며 단테의 저승 구조를 보여주는 도해와 그림들까지 제공한다. 둘 다 비교적 원본에 충실한 번역이지만 이따금 가독성이 떨어지는 표현들이 눈에 띄는 것이 흠이다. 원본의 자구에 너무 충실하다 보니 우리말 표현이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다른 번역본들의 경우 판본마다 차이가 있지만 번역상의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여러 번역본에서 공통적인 실수나 오류가 반복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전의 번역본이 이후의 번역본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신곡’ 의 경우 그런 경향이 너무나도 뚜렷하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지적하자면 ‘지옥’ 21-22곡의 에피소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뜨겁게 끓어오르는 역청(瀝靑) 속에서 삶아지는 탐관오리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강둑에 있는 악마들이 고통을 가한다. 그런 악마들의 형벌 도구 또는 무기를 단테는 raffio, uncino, runciglio 등 세 가지 단어로 표현하는데, 모두 ‘갈고리’ 또는 ‘갈고랑쇠’를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말 번역본들은 거의 대부분 ‘(쇠)갈퀴’나 ‘작살’로 번역하고 있다.

최민순의 번역본은 ‘쇠갈퀴’, ‘작살’, ‘갈쿠리’로 옮기고 있는데, 여기에서 갈쿠리는 갈고리의 사투리 표현일 것이다. 어쨌든 이 세 용어는 분명히 서로 다른 것을 가리킨다. 한형곤은 주로 ‘쇠갈퀴’와 ‘작살’로 옮겼지만 뒤에 23곡 140행에서 ‘갈고리’로 표현하고 있다. 임명방은 ‘갈퀴’로 옮겼으며, 허인은 앞의 해설에서 ‘갈고리’로 설명한 다음 정작 본문에서는 ‘갈퀴’로 옮기고 있다. 유영은 ‘갈고리’로 번역하고 있지만, ‘쇠스랑’도 함께 사용한다. 또한 강인웅과 정인섭의 동일 판본이 ‘갈고리’로 옮기고 있지만, 지나친 생략과 축약으로 번역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그 외에는 거의 모두 ‘(쇠)갈퀴’ 또는 ‘작살’로 되어 있다. ‘갈고리’와 ‘갈퀴’, ‘작살’의 차이는 사소한 것이며 전체적인 흐름에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원본에서 벗어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때로는 사소한 차이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영어 번역본들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영어 번역본들은 여러 가지 용어로 옮기고 있는데, 롱펠로Longfellow는 rake, hook, grapnel, grappling-iron으로, 세이어즈Sayers는 prong, hook, grappling-iron으로 번역하였다. 1980년대 이후에 번역한 맨덜봄Mandelbaum은 prong과 hook으로, 코터Cotter는 여기에다 grappling-hook, fork, pitchfork 등을 덧붙여 옮겼다. 이탈리아어 원본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단어의 사용을 피하기 위하여 다양한 표현을 찾았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갈고리’보다 ‘갈퀴’에 가까운 rake와 prong을 사용하였다. 참고로 ‘신곡’ 의 탁월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꼽히는 구스타브 도레의 판화에서는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삼지창 모양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21곡 100-101행에서 악마들 중의 하나가 두려움에 떠는 단테를 가리키며 자기 동료에게 “Vuo' che 'l tocchi in sul groppone(내가 저 녀석의 어깻죽지를 건드려 볼까)?” 하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여기에서 groppone는 ‘어깨’를 가리키는데, 우리말 번역본들은 하나같이 ‘궁둥이’나 ‘엉덩이’로 옮기고 있다. ‘어깨’로 번역한 판본은 하나도 없다. 악마들의 천박하고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는 그런 저속한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분명히 원본에서 멀리 벗어난다. 이것도 분명히 영어 번역본들의 영향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영어 번역본이 ‘엉덩이’로 옮기고 있다는 점이다. 롱펠로, 세이어즈, 맨덜봄, 코터의 번역본도 하나같이 rump 또는 bottom으로 옮기고 있다.

출처가 불분명한 번역도 있다. 21곡의 137-138행에서 악마들이 자신들의 두목을 향하여 신호를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드러낸 이빨 사이로 혓바닥을 내밀어 보이는 천박한 몸짓이다. 이상하게도 허인을 비롯하여 여러 번역본들에서 “신호로 눈까풀을 까뒤집어 보였다”고 번역하고 있는데, 그 연원과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분명히 번역본들 사이의 상호 영향이나 모방 때문일 것이다. 이런 예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거의 모든 번역본에서 오역과 비틀린 문장들이 넘친다. 특히 ‘신곡’ 의 경우 기존 번역본들의 그늘에서 벗어나 좀더 원본에 충실하고, 아울러 우리말 표현에 보다 잘 어울리는 새로운 번역본이 절실히 요구된다.(김운찬/ 대구가톨릭대· 기호학)

07. 08. 12.

P.S. 겸사겸사 동아일보의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 중 <신곡>에 대한 해제도 옮겨놓는다.

동아일보(05. 06. 15)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62>신곡-단테

2004년 11월 4일은 유럽 역사에 길이 남을 날이었다. 이탈리아 로마에 모인 유럽연합(EU) 가입 28개국 국가원수들은 이날 대통령궁에서 EU헌법 초안에 서명했다. 이 헌법은 각국 국회나 국민투표를 거쳐 2006년 11월 1일에 발효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화려한 행사가 교황청에는 참으로 씁쓸한 날이기도 하였으니, 유럽이 그리스도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문구가 헌법 서문에 들어가야 한다는 교황의 끈질긴 주장을 유럽 정상들이 묵살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헌법 서문에 “유럽의 문화적 종교적 인문적 유산”을 언급하는 것으로 그쳤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교황의 패권 다툼이 유럽 전체를 황폐하게 하던 중세에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이론을 정립한 인물이 다름 아닌 시인 단테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와 더불어 시성()이라는 월계관을 쓴 이탈리아 시인 알리기에리 단테는 겔프당과 기벨린당의 정쟁으로 내란이 끊이지 않던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며, 신성로마제국의 정치적 권위를 확립함으로써 유럽에 궁극적 평화의 기틀을 마련하려던 정치적 노력이 실패하자 역사의 지평을 넘어 세계사 전체를 종교철학의 시각으로 재정리하여 3부 100곡으로 이루어진 ‘신곡()’을 남겼다.

신곡은 단테라는 한 영웅이 육신을 입은 채로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는 종교적 서사시이다. 그가 탐험하는 명계의 처음 두 곳은 이성()의 상징인 로마의 서사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인도를 받고 세 번째는 신앙()의 상징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는다. 단테가 아홉 살에 처음 보았고 18세에 다시 해후하였으나 딴 남자에게 시집가 불과 24세의 나이로 죽은 한 여인이 구원의 여성이 되어 인류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된다.

서사시는 “여기 한숨과 눈물과 드높은 통곡이 별 없는 하늘에 메아리치는” 지옥에서 시작하여 “나는 보았노라. 조각조각 우주에 흩어져 있는 것들이 사랑으로 한 권에 엮여 있는 것을. 그리고 만사를 한결같이 움직이는 바퀴와 같이 해와 별을 움직이시는 사랑이 돌리고 있더니라”는 천국으로 끝난다. 인류사가 인간의 의지와 신의 사랑이 엮어내는 승리의 기쁨 속에 완성된다는 낙관적 역사관을 보여준다. 전의 중세인이 대자연()과 성서()라는 두 편의 책에서 인생과 신을 읽었다면 단테는 신과 인간이 함께 엮는 역사()라는 책으로 인생을 읽었다.

그래서 지옥의 멸망된 족속으로 드는 길은 인생과 자기 사회에 대한 역사적 태만과 해악이며, 실상 지옥은 인간 자유의지의 개별적 집단적 행사를 신이 영원히 존중함 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정의는 내 지존하신 창조주를 움직이어 그 극한 지혜와 본연의 사랑이 나를 만들었으며 나는 영겁까지 남아 있으리니 여기 들어오는 너희 온갖 희망을 버릴진저.” 그리고 “세계에서 세계로 이렇듯 내 길잡이의 자취를 따라 두루 찾게 해 주신 그 평화의 이름으로 나는 일을 하리라”는 시인의 동경대로 한반도에 평화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기에 우리는 오늘도 그의 시집을 펴든다.(성염 주교황청 대사·전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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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pus 2007-08-12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십니까. 한 가지 의문이 들어서 여쭙습니다.
로쟈님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실어주신 서평 내용 가운데 궁금한 것이 있어서요.
김운찬씨가 최민순 신부 번역본을 중역이라고 단정하는 근거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최민순본을 가지고 있지 않아 당장 확인을 할 수가 없어서 좀이 쑤시네요.
고 최민순 신부는 라틴어부터 로망스어 전반을 다 섭렵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굳이 중역을 해야 할 필요가 과연 있었을까 싶네요.
김운찬씨가 단순히 '짐작'으로 중역이라고 단정한다면 고인과 독자들에게 굉장히 큰 실례가 아닐까 합니다. 어찌됐든 최민순본 이후로 그 판을 뛰어넘을 만한 번역은 (제 생각엔) 나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참고로 최민순 신부의 다른 번역본들 <고백록> <시편과 아가> 등은 판본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두서없이 죄송합니다. 건필하시길 빕니다.

로쟈 2007-08-12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최민순본을 안 갖고 있어서(갖고 있더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사정은 모르겠구요, 김운찬 교수도 '짐작'을 적은 것이니 좀더 확인이 필요했을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쿠자누스 2007-08-15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을유문화사에서 1987년 9월 10일 초판 인쇄한 최민순 본 <하>권에 한 형곤 교수의 해설이 붙어 있는데, "이탈리어를 모르던 때 단테의 문학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최 신부의 번역서 덕분"이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2005년 한형곤 본은 " 1978년 처음으로 출판되어 1990년까지 널리 읽혀왔으나, 중간에 출판이 중단되어 독자들은 『신곡』을 이탈리아어판 완역본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고 "그 오랜 세월 동안 이 번역판 외에는 이탈리아어판을 번역한 다른 책이 나타나지 않[았다]"( http://www.libro.co.kr/Product/BookDetail.libro?goods_id=0100006070202 )고 합니다. 최 신부가 중역을 한 것이 아니라면 이런 글은 이해할 수 없네요. 을유문화사 최민순 본은 원본을 밝히지 않았씁니다.

로쟈 2007-08-14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을유문화사본의 해설이라면 평자도 참조했을 텐데, 중역 얘기가 나오는 건 의문이군요...

쿠자누스 2007-08-15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책이 '중역'일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신부님의 다른책에는 판본이 밝혀져 있는데 그 책에만 없으니까요. 중역이 아니라면 한형곤 본을 첫 번째 원전 번역이라고 소개한 글이 문제가 되겠고요.

로쟈 2007-08-15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핏 스페인어본 얘기들이 나온 듯도 합니다...
 

한 댓글에서 '이 세상에 옛애인은 없어요'란 시구를 인용한 김에 출처도 밝혀놓는다. 러시아 시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1933- )의 시집 <이 세상에 옛애인은 없어요>(열린책들, 1989)를 염두에 둔 것이다(소장시집이지만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는 알지 못하며 아래 인용은 인터넷에서 찾은 것이다). 보즈네센스키는 옙투센코와 함께 1960년대 가장 인기있었던 대중 시인의 한 사람이었다. 생각난 김에 박정대 시인의 패러디시("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애인이지요")도 같이 옮겨놓는다. 한 영화에 삽입된 시낭송("옛애인에게 돌아가지 마세요")은 http://www.youtube.com/watch?v=WhaW4MRwrwg 참조.

이 세상에 옛애인은 없어요

옛 애인에게 돌아가지 마세요.
이 세상에 옛애인은 없어요.
그들이 수년 동안 살아온
잘 정돈된 작은 집처럼,
사본이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짖어대는 하얀개를 만나고
언덕위에 늘어 선
양쪽의 숲은 - 왼쪽, 오른쪽에-
어둠속에서 서로를 향해 짖어댄다.

숲속의 두 메아리는 따로 살아간다.
마치 두개의 스테레오 스피커처럼,
당신이 해온 내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그들은 큰소리로 세상에 퍼뜨린다.

집안에서 메아리가 찻잔을 떨어뜨리고,
거짓 메아리가 차를 권하고,
울어야만 할 밤을 위해,
거짓 메아리는 당신을 남겨둔다:

<사랑하는 사람아, 나에게 돌아오지 마오.
이세상에 옛 애인은 없어요.
두개의 멋진 건포도는
당신 생각에 부풀어 오르네...>

내일 저녁, 떠나가는 기차를 따라가며,
당신은 개울가에 열쇠를 던질거요.
오른쪽 숲과 왼쪽의 숲.
당신의 목소리로 외칠거요:

<당신의 애인을 떠나지 마세요.
이세상에 옛 애인은 없어요.....>

그러나 당신은 충고를 듣지 않을 것이오.

Не возвращайтесь к былым возлюбленным,
былых возлюбленных на свете нет.
Есть дубликаты —
                как домик убранный,
где они жили немного лет.

Вас лаем встретит собачка белая,
и расположенные на холме
две рощи — правая, а позже левая —
повторят лай про себя, во мгле.

Два эха в рощах живут раздельные,
как будто в стереоколонках двух,
все, что ты сделала и что я сделаю,
они разносят по свету вслух.

А в доме эхо уронит чашку,
ложное эхо предложит чай,
ложное эхо оставит на ночь,
когда ей надо бы закричать:

«Не возвращайся ко мне, возлюбленный,
былых возлюбленных на свете нет,
две изумительные изюминки,
хоть и расправятся тебе в ответ...»

А завтра вечером, на поезд следуя,
вы в речку выбросите ключи,
и роща правая, и роща левая
вам вашим голосом прокричит:

«Не покидайте своих возлюбленных.
Былых возлюбленных на свете нет...»

Но вы не выслушаете совет.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애인이지요
- 박정대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애인이지요
나의 가슴에 성호를 긋던 바람도
스치고 지나가면 그뿐
하늘의 구름을 나의 애인이라 부를 순 없어요
맥주를 마시며 고백한 사랑은
텅 빈 맥주잔 속에 갇혀 뒹굴고
깃발 속에 써놓은 사랑은
펄럭이는 깃발 속에서만 유효할 뿐이지요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애인이지요
복잡한 거리가 행인을 비우듯
그대는 내 가슴의 한복판을
스치고 지나간 무례한 길손이었을 뿐
기억의 통로에 버려진 이름들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는 없어요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애인이지요
맥주를 마시고 잔디밭을 더럽히며
빨리 혹은 좀더 늦게 떠나갈 뿐이지요
이 세상에 영원한 애인이란 없어요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애인이지요

07. 08. 11.

P.S. 보즈네센스키의 이미지를 찾다보니 레이건 대통령과의 면담 사진까지 뜬다. 그의 활발한 대외 할동을 짐작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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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의 죽음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6-04 01:22 
    몇 시간 전 일이지만 어제는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의 현대철학강의 종강일이었다. 가라타니 고진의 사상과 비평에 관해 다루고 강의 뒤에는 몇 분과 간단한 뒷풀이를 가졌다. 어제 아침에서야 서울에서 선거 '패배' 소식을 접하고 수도권의 경우 고작 0:3(예상)에서 1:2(결과)란 말인가 싶었지만, 밤에 귀가하면서 한겨레를 보다가 2% 부족한 승리를 '관대한 승리'로 간주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비로그인 2007-08-11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로쟈님 로맨티스트(싱긋) ^^

좋은 페이퍼예요 :)

로쟈 2007-08-12 01:11   좋아요 0 | URL
'로맨티스트'란 말은 한 십 몇 년 전에 들어본 것 같네요.--;

philocinema 2007-08-11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글에 대한 댓글의 출처를 이리 따로 페이퍼로 정리해 주시는 로쟈님의 센스! 감사합니다. 댓글 보면서 의미가 궁금했었는데... 이리 따로 출처를 밝혀주셔서 감상하게 되는군요! 제 기억의 사본으로 고이 간직된 첫사랑의 이미지가 떠오르며 조금은 감상적 낭만에 빠졌다가는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며(!) 얼른 정신 차리고(ㅎㅎㅎ) 이렇게 감사의 글 남깁니다.

로쟈 2007-08-12 01:11   좋아요 0 | URL
센스라기보다는 그냥 '의무'죠.^^; 말을 꺼냈으니까요...

수유 2007-08-12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라공의 시에 프라소아즈 아르디 언니의 노래, 아주 좋죠. 물론 제 블록에 있지요마는...
시들은 그러하고^^ 노래들은 좋습니다..

로쟈 2007-08-12 14:12   좋아요 0 | URL
아르디 언니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요.^^

2007-08-12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12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8-12 22:44   좋아요 0 | URL
아, 오종의 영화를 보지 못해서 귀에 덜 익을 수도 있겠네요...

필라멘트 2007-08-12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회되시면 <티무르 키비로프>의 시도 한번 소개해주시죠. <시인세계>에 로쟈님이 번역하신 그의 시들이 다 마음에 들더군요.^^

로쟈 2007-08-12 22:44   좋아요 0 | URL
제가 얼떨결에 맡은 글이고 키비로프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짐작엔 2년쯤 뒤에 번역본이 나올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