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파문을 계기로 우리의 먹을거리에 대한 염려도 커지고 있다. 대개의 한국인들은 '잘먹고 잘사는' 일을 입버릇처럼 열망해온 터라 '잘먹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한데, 주변상황이 만만치가 않다. 그걸 또 보여주는 책이 최근 출간된 <독소 - 죽음을 부르는 만찬>(랜덤하우스, 2008)이다. 저자와의 인터뷰기사를 소개를 대신하여 옮겨놓는다.

한겨레(08. 05. 24) "미국인들이 쇠고기 안심하고 먹는다는 주장은 거짓”

미국에서도 자국산 쇠고기의 안전도를 의심해 풀로만 키운 소의 고기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으며, 인간광우병(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vCJD)의 심각성이 증세가 유사한 알츠하이머에 가려져 과소평가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미국에서 활동 중인 시사다큐멘터리 작가이자 식품 전문가인 윌리엄 레이몽이 밝혔다.

레이몽은 코카콜라의 신화 속에 은폐된 진실을 추적한 <코카콜라게이트>로 명성을 얻은 프랑스인으로, 미국 식품의 안전성 문제를 다룬 <독소-죽음을 부르는 만찬>(랜덤하우스 펴냄)을 최근 국내에서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23일 <한겨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과 관련해 “미국에서는 돼지나 닭 사료와 소 사료 작업이 같은 공장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뒤섞일 수 있다”며 이런 교차오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소에게 소를 먹이는 사료 정책을 폐지했다고 해도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이다.

-최근 광우병 논란은 미국산 쇠고기를 국제수역사무국(OIE) 등이 정한 뇌·머리뼈·척주 등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만 제거하고 먹으면 위험성이 없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광우병 특정위험물질만 제거하면 미국산 쇠고기는 과연 안전한가?

먼저 이 점을 말해 두자. 위험요소 제로는 있을 수 없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선 이런 점을 주의해야 한다. 우선, 미국 농무부와 쇠고기 생산업자들이 규제와 새로운 발견에 관한 정보를 모두 공유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산 소의 뼈와 고기로 만든 사료를 다른 가축들, 예컨대 돼지나 닭 같은 동물들 사료에 섞어 먹이는 게 여전히 허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서로 다른 사료 작업들이 같은 공장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돼지나 닭 사료가 소 사료와 뒤섞일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금지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다. (돼지나 닭의 사료가 소 사료와 섞여 일어나는) 교차오염의 위험성이 낮다고 주장하는 쪽은 사료 생산업자들과 공장식 축산업자들, 그리고 미국 정부 관리들뿐이다. 우리는 미국 사료공장의 약 5%가 관련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미국 정부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 것 아닌가?

“미국 상황을 좀더 잘 이해하려면 광우병 대책의 문제점이 드러나는 미국 회계감사원(GAO)의 2002년 보고서를 꼭 읽어 봐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내용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다. 이 보고서는 “공공보건 측면에서, 소비자들이 자신들이 이용하는 식품과 다른 제품들에 언제 중추신경 조직이 포함될 수 있는지 항상 알 순 없는 노릇이다. … 쇠고기와 쇠고기 추출물, 쇠고기 조미료와 같은 많은 식품들은 흔히 (척추를 포함한) 소 사체의 뼈 잔류물들을 삶아서 만들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핫도그와 햄버거, 피자 토핑(위에 얹는 크림이나 치즈)은 소 척수에 오염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티본 스테이크에 관해서인데, 티본 스테이크는 동물 척추가 붙어 있고 거기에 실제로 척수 부분이 포함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인들도 안심하고 먹는 미국산 쇠고기를 의심하는 것은 정치적 반사이익을 노린 반대세력의 선동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인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아무런 의심 없이 먹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풀로만 키운 쇠고기를 먹는 경향이 추세화하고 있다. 2주일 전 <뉴스위크>가 그에 관한 몇 가지 뉴스를 전했다. 설사 미국 소비자 다수가 자신들이 먹는 쇠고기의 안전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매일 의심하는 사람이 점점 더 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소 사육자들은 왜 동물사료에 집착하나?

“한마디로 돈 때문이다. 내 책(<독소-죽음을 부르는 만찬>)에 동물사료를 섞은 혼합곡물사료가 얼마나 비용을 절약하고 더 큰 소를 만들어 주는지에 대해 말하는 농부 얘기를 썼다. 이윤, 이윤, 이윤. 대부분의 문제는 결국 거의 돈 때문에 발생한다.”

-광우병 대책과 관련해 유럽연합의 조처는 광우병 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수준인가?

“다시 한번 얘기하는데, 위험요소 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럽이든 미국이든. 지금 유럽 상황은 광우병 소동으로 시장이 큰 타격을 입은 뒤에야 좋아졌다. 오직 강력한 대책만이 소비자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성장호르몬을 투여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거부한 유럽연합(EU)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고 세계무역기구는 미국 편을 들었다.

“미국 쇠고기가 광우병 문제만 안고 있는 건 아니다. 성장호르몬도 문제다. 에스트라디올(난소호르몬의 일종), 프로게스테론(황체호르몬),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의 일종), 트렌볼론 아세테이트, 그리고 제라놀과 같은 호르몬제도 문제다. 이들 중 일부는 사춘기를 앞당기고 호르몬 난조 등의 부작용을 유발한다. 일부는 장기적으로 암을 유발할 수 있다. 세계무역기구의 결정은 정치적인 것이다.”

-미국과 유럽 노인들이 흔히 걸리는 알츠하이머 증세도 광우병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들이 있다.

2006년 이후 몇 가지 의학연구 결과 그런 연관성을 주장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BSE 암모니아 마그네슘설’이라고 부른다. 기본적으로 이 이론은 광우병 발병 원인이 장기간의 단백질 다량 흡입 및 마그네슘 결핍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것은 알츠하이머 발병 원인과도 매우 유사하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인간광우병에 걸린 사람 수가 왜 적은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또다른 유력한 이론이 있다는 거다. 그것은 두 병의 증상이 거의 같기 때문에 인간광우병 환자 수가 지금 만연하고 있는 알츠하이머 환자 수에 가려 은폐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항생제와 살균·살충·제초용 농약, 포장용 가스, 유전자 조작 작물(GMO), 방사선 살균, 액상과당 등도 심각하다. 도대체 안전한 먹을거리는 없다는 얘긴가?

정말 큰 문제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싸워서 우리의 음식을 되찾아야 한다. 될 수 있는 한 가공식품을 피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요리를 해야 한다. 자연식품의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깨달아야 하며, ‘적게 천천히’(small and slow)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비만 문제나 광우병 문제는 결국 최근 30여년간 미국 주도하에 진행돼온 민영화와 규제 철폐, 시장을 우선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핵심이 아닌가?

“명백히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나는 자유시장을 신봉하지만, 좋은 것만 취하고 위험한 것은 피해야 한다. 미국은 엄청난 상품들을 제공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들 중 일부 제품들에 대해서는 “안 돼”라고 말할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한승동 선임기자)

08. 0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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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5-24 19:40   좋아요 0 | URL
아 오늘 한겨레신문에서 봤어요. 크게 실었더라고요. 첨엔 책 광고인줄 알았어요. 큭큭.

로쟈 2008-05-24 20:04   좋아요 0 | URL
저는 아이 때문에 들른 치과에서 지면기사를 읽었습니다. 동네엔 한겨레를 파는 곳이 없더군요.^^;

마늘빵 2008-05-25 09:53   좋아요 0 | URL
저도 동네서 한겨레 사려면 부지런떨어야합니다. 한 두세부 정도밖에 안갖다놔요. -_- 아침 일찍 가야한다는. 이거사러 나가야돼요.

순오기 2008-05-25 07:57   좋아요 0 | URL
늘 올려주시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꾸벅!

로쟈 2008-05-25 11:23   좋아요 0 | URL
옮겨오는 거야 뭐 식은 죽 먹기죠.^^;

노이에자이트 2008-05-25 22:51   좋아요 0 | URL
광주 광역시는 어딜 가나 한겨레 신문 쉽게 구하는데...창간 초창기에 호남지역 아니었으면 한겨레 신문은 견뎌내지 못했을 거라고 하는 말도 있었어요.

로쟈 2008-05-26 22:55   좋아요 0 | URL
광주가 부천보다는 낫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5-27 00:31   좋아요 0 | URL
오...소사...요즘도 복숭아 과수원이 많은가요? 최무룡 씨의 노래 <외나무다리>에서 복사꽃 능금꽃이 피는 내고향 만나면 정다웠던...하는 가사가 소사를 배경으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최무룡 씨가 노래도 잘했거든요.저 빼놓곤 우리 또래들은 이런 거 몰라요.헤헤헤...

로쟈 2008-05-28 21:56   좋아요 0 | URL
소사쪽은 아니구요, 신도시쪽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28 23:43   좋아요 0 | URL
신도시는 모르겠네요...

로쟈 2008-05-29 00:18   좋아요 0 | URL
중동, 상동이 신도시라고 불립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29 23:22   좋아요 0 | URL
오호...그렇군요.
 

이번주 북리뷰들에서 크게 다루어진 책은 에이미 추아의 <제국의 미래>(바이북, 2008)다. 어제 지젝의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2008)을 먼저 손에 들었기 때문에 나로선 여력이 없었는데, 550여쪽에 이르는 국역본의 부피가 미리부터 의욕을 꺾는 면도 있다(지젝의 책은 587쪽에 이르지만 개인적으로 절반은 한번 읽었던 터라 부담이 덜하다). 그럼에도 관심도서로 올려놓고 리뷰를 챙겨둔다. 더불어 한겨레21에 연재되고 있는 '김창진의 제국의 그늘'도 연상이 되기에 이번주 꼭지도 같이 옮겨놓는다(http://h21.hani.co.kr/section-021165000/2008/05/021165000200805220711050.html).

경향신문(08. 05. 24) 힘의 오만, 미국이 흔들린다

고대 페르시아와 로마, 동양의 당(唐)과 몽골, 서양의 네덜란드와 대영제국, 그리고 현대의 미국까지. 이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군사·경제적으로 세계적인 패권을 휘두른 극소수 국가들이라는 것. ‘제국의 미래’(원제 Day of Empire)는 바로 이들 초강대국(제국)을 다룬 책이다. 미국식 세계화의 위험성을 고발한 전작 ‘불타는 세계’(2002년)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저자(예일대 법학과 교수)는 이 책에서 제국의 흥망성쇠를 추적하면서 한 사회가 어떤 경로를 거쳐서 초강대국이 되고 또 쇠퇴하는지를 탐구했다.

책의 논지는 간단명료하다. 성공한 제국들은 하나같이 다원적이고 관용적이었다. 역으로 제국의 쇠퇴는 불관용과 외국인 혐오, 인종·종교·민족적 순수성에 대한 촉구와 함께 시작됐다. 저자는 “한 사회가 세계적 차원에서 경쟁자들을 물리치기 위해선 인종·종교·배경을 따지지 않고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관용’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마을이란 마을은 죄다 쑥대밭을 만든 몽골이나 적들을 말뚝에 꿰어 죽인 페르시아가 관용적이라고? 저자가 말하는 관용은 ‘인권’과 관련된 현대적인 의미가 아니다. 인종·종교·민족 등에서 이질적인 사람들이 공존·번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자유를 뜻한다. 경쟁자들과 비교해서 더 관용적이냐, 아니냐 하는 ‘상대적’ 관용이다.

제국의 지배자들은 인종·종교·민족을 뛰어넘어 정치·문화적으로 피지배자들을 동등하게 대우했다. 최초의 패권국가 페르시아는 새로운 왕국을 정복하면 해당 지역의 법률과 전통을 포용하고 언어·종교·예식을 용인했다. 또 인종이나 종교에 개의치 않고 최고의 실력을 가진 장인·사상가·노동자·전사들을 동원했다. 이 같은 전략은 이후 등장한 제국들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시민권’을 통해 피정복민을 공동체의 충실한 구성원으로 바꾼 로마는 “피지배민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공통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가장 성공했던 제국”으로 평가된다.

물론 저자는 관용이 초강대국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말한다. 지리·인구·천연자원·지도력 등의 요소들이 합쳐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용은 초강대국의 ‘필수 조건’이다. 역사상 인종주의와 종교적 광신을 토대로 한 사회가 세계적인 패권국가가 된 사례는 없다. 20세기 독일과 일본이 대표적이다. 또 ‘이단 심문소’로 대표되는 16세기 스페인의 불관용 정책은 비기독교도 주민들을 억압하고 추방해 인적 자본과 금융·사회자본을 잃고 세계 재패의 기회를 날려버렸다. 반면 유럽 전역이 종교적 광신에 휩싸여 있던 1579년 종교의 자유를 건국헌장에 포함시킨 네덜란드는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전역으로부터 종교적 난민을 유인하는 ‘자석’이 되면서 초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저자가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지만 그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미국이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로는 처음으로 초강대국의 지위에 올랐다. 재능있고 진취적인 개인들을 배경에 관계없이 흡수해 그들에게 합당한 보수를 제공한 게 성공 요인이었다. 1990년대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끌어올린 IT혁명도 이민자들의 능력과 진취성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 덕분이었다.

저자는 그러나 “2001년 9월11일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단언한다. “미국 군사력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하고 “선제 행동”을 할 권리를 표명하는 등 강력한 개입주의·일방주의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미국의 이민정책이 불관용으로 돌아선 데 우려를 나타낸다. 역사상 초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진정한’ 혹은 ‘순수한’ 정체성을 거듭 단언하면서 동화가 불가능한 집단들에 대해 배타적인 정책을 채택하는 순간 무너졌다. 저자는 “이민자들을 모든 문제의 원흉으로 몰거나 미국의 성공을 앵글로색슨과 개신교의 가치관에서 찾으려는 시도들은 그릇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미국의 그늘 아래 살고 있는 수십억 사람들과 미국을 단단히 묶어줄 정치적인 ‘접착체’가 없다는 것도 제국으로서 미국이 직면한 문제다. 오히려 최근 미국은 자유시장과 민주주의를 포함한 서구적인 관용정책을 수출하려고 하면서 거센 ‘반미주의’의 저항에 직면해있다. 이 때문에 저자는 “미국이 다른 나라의 정권을 변화시키고 미국식 제도를 강제하는 일에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쓰”거나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세계의 패권을 지키겠다는 의도를 떠벌리고 다니는 것”에 우려를 표시한다. 나아가 미국이 전 세계를 자신과 똑같은 모습으로 개조하려는 무의미한 일을 자청하기보다는 ‘세계를 위한 본보기’가 되려고 노력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조언한다. “미국이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중단하는 것뿐”이라고도 꼬집는다.

책은 초강대국 후보라 할 만한 중국, 유럽연합, 인도의 가능성도 탐색한다. 그런데 중국은 뿌리깊은 외국인 혐오와 자민족중심주의에, 유럽연합은 이슬람교도에 대한 두려움과 큰 장벽이 존재하는 이민 정책에 발목이 잡힐 것으로 전망한다. 오히려 수십개의 언어와 수천개의 종교가 공존하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 인도에서 더 큰 가능성을 두는 느낌이다.

이 책은 중국계 미국인 2세인 저자가 자신의 부모와 가족을 이끌어온 “미국의 관용에 바치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이 “미국이 성공할 수 있었던 진정한 비결은 언제나 예외 없이 관용이었다는 것과 지금 그 비결을 잃어버릴지도 모를,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경고하는 경고문”이라고 밝혔다.(김진우기자)

한겨레21(08. 05. 22) '이민자의 나라’에 울리는 조종

이국 땅 시애틀에서 마흔한 살 생일을 맞던 날 이른 아침,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관리들의 기습 체포로 애나 레예스(41)의 아메리칸드림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와 함께 두 딸과 두 아들도 즉각 멕시코로 추방됐다. 만약 그의 수중에 밀수업자에게 건네줄 약간의 돈푼이라도 남아 있었더라면, 같은 처지에 놓인 다른 추방자들처럼 국경도시 티후아나에서 버텨보다가 미국으로 다시 들어갈 기회를 노려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7년간 농장 일꾼과 호텔 청소부로 일하며 근근이 네 자식을 건사하다 졸지에 내쫓긴 그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리하여 애나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고자 고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하고 탈출했던 시골 마을로 죽기보다 싫은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안 됐다. 지난 한 해 87만 명이 넘는 ‘동포들’의 행렬에 끼여 추방되는 것으로 그의 ‘불법 체류자’ 생활은 끝이 났다.

아스피린만 처방했어도…
용선 하빌(52)씨는 조국이 아직 가난에 허덕이던 지난 1975년 주한미군과 결혼해 ‘꿈의 나라, 풍요의 땅’ 미국의 플로리다에 합법적으로 정착했다. 하지만 33년이 흐른 지금, 그는 한국으로 추방될 신세로 전락해 애리조나의 감옥에서 세상과 거의 절연돼 있다. 암투병 경력이 있는 용선씨는 처음 감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다리가 퉁퉁 붓는 심한 육종에 C형 간염, 조울증, 고혈압, 공황장애 등을 앓고 있었고 복통 증세에다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지난 1년 동안 직계가족의 면회도, 변호사의 접견도, 심지어 의사의 진료마저도 봉쇄되고 있다. 미국 영주권자인 그는 바로 미국 땅 한켠에서 ‘우리에 갇힌 동물’ 대접을 받으며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승용차 안에서 마리화나가 발견돼 마약 소지 혐의로 13개월을 복역하고 지난해 3월 출소 예정이던 용선씨에게 닥친 불행은 어이없게도 ‘장물 취득’ 혐의였다. 이미 10년 전 일로서, 장물인지 모르고 귀금속을 구입했다는 진술이 참작돼 집행유예로 마무리 된 사건이었다. 그런데 뒤늦게 당국은 이 사소한 지난 일을 들추어 그를 추방대기자로 분류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제 다른 수많은 구금자들처럼 다시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감옥 안에 방치된 채 비극적인 생을 마감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프리카 가나 출신 미국 이민자였던 유시프 오스만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5년간 합법적인 신분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생활하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ICE에 체포돼 샌디에이고 외곽에 위치한 추방자용 구금자 감옥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동료가 위조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다가 체포된 뒤에 당국은 그에게 밀수 혐의를 씌웠으나 그는 부인했다. 그럼에도 힘없는 한 아프리카계 이민자가 ‘국가안보’라는 무시무시한 명분으로 ‘제국의 법’을 집행하는 관리들에 맞서 철창행을 피할 수는 없었다.

감옥에 도착한 직후 시간제 간호사가 평소 의례적인 업무대로 유시프의 건강 상태를 컴퓨터에 입력했다. 하지만 그녀는 유시프의 상태에 관한 검사기록이 없는데도 실수로 ‘완료’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그리고 석 달 뒤, 유시프는 심한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같은 방 동료가 간수를 소리쳐 불렀으나 그는 건성으로 들여다보고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는 환자의 병력 기록이 없는 것을 보고 위급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유시프에게 진료 요구서를 작성하라고만 말했다. 아무런 조처도 취해지지 않았다. 상황이 심각한 것을 알아차린 유시프의 감방 동료가 다시 소리를 지르자 다른 간수가 왔고, 다시 간호사를 불렀다. 이번에는 그녀가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자고 했다. 그로부터 40분이 지나 간수가 휠체어를 가지고 왔으나, 너무 늦었다. 그때까지 간신히 헐떡거리던 유시프의 심장은 곧 멎어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검시 결과를 확인한 두 의사는 환자가 즉각 처치를 받았더라면, “아마도 아스피린 같은 기본 처방만 받았더라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합법 체류자까지
유시프의 어이없는 죽음도, 용선씨의 기막힌 불운도, 애나의 속수무책 추방도 오늘의 미국에서는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현재 미국 전역의 수용소와 감옥에 약 3만3천 명의 구금자들이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도 받지 못하면서, 마치 아무 예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축사로 옮겨질 짐승처럼, 추방될 날짜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와중에 지난 5년간 83명의 억류자가 야만적인 시설에서 귀중한 생명을 잃었다. 그중 대다수는 40살 미만의 젊은이였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앞으로 점점 더 악화될 조짐을 보인다는 데 있다. 9·11 이후 신설된 국토안보부 산하 ICE가 최근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캘리포니아 같은 남부 주들에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불법 체류자’ 단속 작전을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 공장, 학원, 가정집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합법 체류자들까지 마구잡이로 잡아들이고 있다. 지난 5월12일에도 ICE는 중부의 아이오와주에서 경찰과 함께 헬기까지 동원해 육류포장 공장을 급습했다. 그 결과 단번에 300명 이상을 체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대부분 멕시코와 과테말라 출신인 그들은 곧바로 지역 감옥에 넘겨졌고 조만간 추방될 것이다. 조지 부시 정권이 추진하는 ‘테러와의 전쟁’이 완전히 빗나가, 실상은 미국의 제조업과 농업, 서비스업의 밑바닥을 받쳐주는 가난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전면전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아메리칸드림의 파탄을 여실히 증거해주는 이들 수용소의 실태는,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 이후 12만 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이 황량한 억류시설에 강제 격리됐던 상황을 떠오르게 할 정도다. 일단 구금자 수용소에 갇히게 되면 심지어 확정된 살인범보다 변호사 접견이 더 어려울 정도며, 일부는 테러범으로 지목된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감금된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보다도 열악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법치국가’ 미국에서 법률·의료적 보호의 완전한 사각지대로 떨어지게 된다.

미국의 비참한 추방자 수용소 실태를 폭로한 <워싱턴포스트>는 이런 상황이 9·11 이후 부시 정권이 아무런 준비도, 결과에 대한 예측도 없이 갑작스럽게 밀어붙인 정책 집행의 결과로 보고 있다. 수용소 안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간수와 의료진의 업무태만, 행정관리의 미숙, 구금자 기록 관리의 어처구니없는 부실함, 의사·간호사·기술자의 태부족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인 것이다. 그럼에도 연방 관리는 “수용자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한다.

살인범보다 변호사 접견이 더 어려워
이렇듯 아메리카 제국의 안보를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는 ‘테러와의 전쟁’은 ‘이민자의 나라’라는 미국의 오랜 정체성에 종말을 고하는 조종처럼 보인다. 그것은 1950년대 매카시즘 광풍 이후 반세기 만에 다시 나타난, ‘내부의 적’을 색출하는 데 골몰하다가 자기 자신이 파멸에 이르는, 국가기관의 발작 증세라고 할 수 있다. 발작이 지속되면 국가기관은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그 결과 국가안보는 더욱더 취약하게 될 것이다.(김창진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

08. 0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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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5-24 22:51   좋아요 0 | URL
텍사스,아리조나,뉴 멕시코...다 예전 멕시코 땅인데 이웃 잘 못 만나서 다 뺏기고 이제는 국경 넘으려고 목숨 거는 처지...정말 안됐어요.20년 전엔가 한참 유행한 Don De Voy의 가사 번역한 것을 몇 년 전 알게 되었는데 정말 뭐라 말할 수 없는 느낌이었어요.

로쟈 2008-05-24 23:23   좋아요 0 | URL
Don De Voy가 그런 가사였군요. 덕분에 알게 됐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25 00:11   좋아요 0 | URL
그 노래 부른 티시 히노히사 누나가 정말 이뻤어요.로쟈 님도 본 적 있죠? 이제 40대 아줌마가 되었겠네요.

로쟈 2008-05-25 11:23   좋아요 0 | URL
얼굴은 본 적이 없는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05-25 22:49   좋아요 0 | URL
Don De Voy검색하시면 얼굴과 스페인어 원문 국역문 나옵니다.근데 50이 넘었다는 설도 있네요.

로쟈 2008-05-26 22:56   좋아요 0 | URL
네, 나이는 들어보이는데요.^^
 

에릭 홉스봄의 <혁명가 - 역사의 전복자들>(길, 2008) 출간 소식은 이미 다룬 바 있는데, 간단한 리뷰기사가 있기에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8. 05. 24) 혁명의 빈자리 채울 저항의 세계화 주창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세계적인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은 1917년에 태어났다. 공교롭게도 그가 태어난 해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했다. 공산주의 국가의 탄생과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본 이 노학자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저술활동을 하는, 지적으로 왕성한 정력을 지닌 인물이다.



자본주의가 태동한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역사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제시한 역사3부작,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를 저술한 홉스봄은 2002년 ‘미완의 시대(원제 ‘흥미로운 시간’)’라는 자서전을 내놓는다. 그리고 자서전을 출간하기 한 해 앞서 홉스봄은 ‘혁명가, 역사의 전복자들’을 재출간한다.

‘혁명가, 역사의 전복자들’은 1961년부터 73년까지 홉스봄이 마르크스주의와 관련해 각종 매체에 기고한 평론과 논문, 강연을 모은 책이다. 자서전 출간에 앞서 스스로의 지적 작업을 성찰하고 20세기를 되돌아 보는 과정을 담았다. 마르크스주의가 마치 사형선고라도 받은 양 치부되는 요즘, 이 책은 ‘구닥다리’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세계화가 진행되고 빈부격차가 한층 심화되면서 그의 통찰력이 다시 빛을 발하고 있다.

이 책은 유럽 각국 공산주의 정당의 성공과 실패 사례, 마르스크주의가 노동운동에 끼친 영향, 게릴라 활동과 군부의 정치개입, 1968년 유럽의 혁명운동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혁명과 관계하는 대부분의 주제를 망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광범위한 지적 활동이 가능한 이유는 그가 20세기를 온전히 관통했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집권을 경험하고 아바나에서 체 게바라를 통역하고, 소련에서 스탈린의 시체를 직접 목격했던 ‘역사의 참여관찰자’가 전해주는 통찰이다.

그의 성찰에 울림이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소련과 스탈린의 교조적 공산주의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하며 역사를 끊임없이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했다는 데 있다. 이 책의 11장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대화는 마르스크주의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런 탓에 홉스봄의 책은 소련에서 금서로 지정됐다.

전 세계 국경을 넘나들며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자본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책은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홉스봄은 더 이상 혁명이 가능하지 않은 시대를 맞아, 모든 피억압 계층이 연합해 자본에 대항하는 ‘인민전선’에서 해법을 찾아온다. 빈민과 중산층, 노동자와 농민과 샐러리맨, 좌파와 중도파를 아우르는 ‘저항의 세계화’가 필요한 시대라는 얘기다. 오늘 이 땅에서도 그가 말한 ‘저항의 연대’가 불가능한 것으로만 보이진 않는다.(김준일기자)

08. 05. 23.

P.S. 기사에서 눈길을 끈 언급은 홉스봄의 책이 소련에서 금서로 지정됐었다는 사실. 지금은 어떤가 궁금해서 검색해봤다. 그의 3부작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는 러시아어로는 지난 1999년에 출간됐고, 20세기사인 '극단의 시대'는 2004년에 번역되었다.

Эрик Хобсбаум Век революции. 1789 - 1848Эрик Хобсбаум Век капитала. 1848 - 1875

Эрик Хобсбаум Век империи. 1875 - 1914Эрик Хобсбаум Эпоха крайностей. Короткий двадцатый век 1914 - 1991 Age of Extremes. The short Twentieth Century. 1914 -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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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한겨레의 '우리시대 지식논쟁'에 기고한 글을 옮겨놓는다(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89298.html). '지젝 신드롬의 허와 실'이란 주제로 세 차례 정도 지면이 할애될 예정인 것으로 안다. 거기서 내가 맡은 역할을 지젝에 대한 '지지' 논변이다. 주제의 선정 취지는 아래와 같다. 

우리시대 지식논쟁 / 지젝 신드롬의 허와 실 ① 이유있는 열풍

철학에도 유행이 있다면, 오늘날 세계 철학계의 최신 유행은 슬라보예 지젝이다. 모든 첨단 유행이 그러하듯이 지젝 또한 시대의 상식을 파괴한다. 마르크스, 헤겔, 라캉을 접붙인 그는 독일 고전 철학에 바탕을 두고 정신분석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뒤, 이를 디딤돌 삼아 다시 현대 철학의 새로운 사유를 개척하고 있다. 그는 ‘급진적인 정치 실천적 철학자’의 전형이기도 한데, 고국 슬로베니아에서 1990년 대통령 후보로 선거에 출마했다. 국내에서도 지젝 열풍은 심상찮다. 90년대 중반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됐는데, 2000년대 들어 그가 직접 쓴 책만 10권 이상 번역·출판됐다. 대단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한겨레>는 이번주부터 이 ‘지젝 신드롬’의 속살을 파고들려 한다. 그의 사유에는 과연 새로운 영감으로 삼을 만한 자양분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난해함 빼고는 건질 게 없는 서구적 언어 유희에 불과한 것일까? 지젝의 저작을 국내에 번역·소개하고 관련 논의를 이끌었던 학자들이 그 물음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놓는다. 인터넷 서평꾼으로 유명한 이현우 박사가 첫 번째 글을 썼다. 그는 지젝의 사유로부터 우리 시대의 이념 지형을 이해하고 돌파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레닌의 혁명 전략마저 넘어서는 전복의 기운이 지젝에게 있다는 것이다.(안수찬 기자)

한겨레(08. 05. 24) 가장 어렵고 가장 대중적인 ‘철학계 괴물’

“나는 인간이 아닙니다. 괴물입니다”라고 말하는 철학자가 있다. 자신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의 책을 경탄과 함께 읽어본 독자라면 ‘당신도 인간인가?’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세계 철학계의 이단아’라고도 하는 슬로베니아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가 슬라보예 지젝이다. 아예 그의 이론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술잡지가 나올 정도로 지난 20년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엠티브이(MTV) 철학자’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을 정도로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 그리고 아마도 가장 많은 책을 써낸 철학자, 그가 지젝이다. 그래서 열광하는 독자들까지도 그의 책을 다 따라 읽는다는 건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매년 두어 권씩 번역돼 나오는 ‘한국어 지젝’에만 한정하더라도 그렇다. 그런 이유만으로도, 한 비판자의 표현을 빌리면, ‘지젝주의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젝은 흔히 ‘슬로베니아 라캉주의 헤겔주의자’라고 불리지만 거기에 마르크스와 대중문화가 이론적 틀로 더해진다. 어떤 저자를 읽기 위해서 독일 관념론과 라캉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와 현대 대중문화에 ‘정통’해야 한다면 보통은 다른 저자를 알아보는 게 낫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지젝은 매혹적이다. 그는 가장 난해한 두 사상가, 헤겔과 라캉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헤겔을 어떻게 라캉으로 읽을 수 있으며, 반대로 라캉은 어떻게 헤겔로 읽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독해가 우리 시대의 이념적 지형과 대중문화를 이해하고 돌파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매혹은 동시에 그에 대한 혐오를 낳기도 한다. 그의 담론이 세련된 라캉적 분석과 덜 해체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사이에서 정신분열적으로 분열돼 있다는 비판은 그의 이런 작업방식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비판 옆에는 그의 철학 ‘퍼포먼스’가 고상한 철학을 대중문화로 더럽힌다는 비난도 빠지지 않는다. 독창성도 진정성도 없는 ‘철학적 재담꾼’ 정도에 불과하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세기적인 ‘재담꾼’을 갖는다는 게 과연 불행한 일인지? 가령, 급진적 철학자로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그가 제시하는 ‘유토피아’에 관한 재담은 어떠한가?

지구의 종말을 상상하기는 너무도 쉽지만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점점 더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우리 시대의 패러독스라고 지적하면서, 지젝은 그럼에도 우리가 유토피아를 발명해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그것이 우리 시대의 긴급한 요구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유토피아란 무엇인가? 그것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유토피아, 곧 ‘불가능한 이상적 사회’와는 무관하다. 유토피아는 어원 그대로 ‘자리가 없는’ 공간의 건설이다. 왜 자리가 없는가? 기존의 사회적 좌표계 내에서는 자리가 할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토피아적인 제스처의 사례로 지젝이 자주 드는 것은 1917년의 레닌이다.


레닌주의의 핵심은 자유주의적 ‘선택의 자유’ 대신에 선택 자체를 선택하는 데 있다. 곧 정치적 ‘활동’이 아닌 ‘행위’란 현 상황이 제시하는 강요된 선택 대신에 그러한 ‘정치적 계산’을 돌파하는 어떤 광기이다. 러시아 혁명을 가능하게 한 것은 불가능을 돌파한 레닌의 바로 그러한 ‘광기’였다. 하지만 레닌도 혁명 이후에는 대중의 창조적 역량에 대해 불신하면서 전문가 집단의 역할을 강조했고, 그것은 곧 스탈린주의로의 길을 예비하지 않았던가? 거대 은행이 없다면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 자본주의적 기구인 중앙은행을 더 크게, 더 민주적으로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젝은 이 지점에서 국가의 관리에 대한 레닌의 ‘전체주의적’ 프로그램을 우리 시대의 상황에 맞게 다시 읽기를 제안한다. 중앙은행의 자리에 오늘날 ‘일반 지성’의 상징인 월드와이드웹을 갖다놓아 보자는 것이다. 자본주의 신경제의 첨병처럼 보이는 월드와이드웹에는 동시에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폭발적인 잠재력이 있지 않은가? 따라서 이 경우 레닌적 제스처는 국가기구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과 싸우는 대신에 그것을 사회화(국유화)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사회주의=전력화+소비에트 권력’이라는 레닌의 공식은 ‘사회주의=인터넷 무료접속+소비에트 권력’으로 변형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소비에트 권력’이라는 두 번째 요소이며, 그것을 통해서만 인터넷은 해방적 잠재력을 전개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중앙은행 사회주의’에 대한 레닌의 전망을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의 월드와이드웹에서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지젝의 ‘재담’이다.

물론 그의 재담은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젝은 또한 ‘소유의 종말’이 예견되는 디지털시대의 ‘탈소유 사회’에 대한 첫 번째 모형을 바로 스탈린시대 소련 사회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알다시피 원칙적으로는 아무런 서열관계도 없는 평등한 사회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계급사회인 자본주의 사회와 달리 스탈린주의 사회는 계급이 없는, 무계급 사회였다. 하지만 동시에 ‘권력서열’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특권층인 노멘클라투라와 기술관료, 군대 등의 순으로 정확하게 서열화된 사회였다. 거기서 지배계급은 소유가 아니라, 사회적 권력과 통제수단, 물질적·사회적 특권에 직접 접근이 가능한가라는 ‘접속 가능성’으로 결정되었다. 바로 오늘날 현 단계 자본주의에서도 특권이 직접적인 소유가 아니라 뒤에서 조정하고 교육과 경영·정보 등에서 각종 특혜를 누리는 것에서 확인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가 당면하게 된 선택지는 사적 소유(사유재산)와 사적 소유의 사회화(국유화) 사이의 낡은 마르크스주의적 선택이 아니라 ‘위계적인 탈소유 사회’와 ‘평등한 탈소유 사회’ 사이의 선택이다. 여기서 선택은 물론 자명하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이다. 지젝은 다시 레닌적 제스처를 끌어온다. 그가 보기에 레닌주의의 핵심적 교훈은, 당이라는 조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정치는 ‘정치 없는 정치’, 말로만 하는 정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비판은 ‘혁명 없는 혁명’을 원하는 것과 다름없는 ‘신사회운동’에도 가해진다. 과연 폴리페서(정치교수)들처럼 체제에 편승하거나 페미니즘에서부터 생태주의와 반인종주의에 이르는 신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 말고는 ‘사회적 개입’의 방법이 따로 없는 것일까? 지젝이 보기에 이러한 운동의 한계는 보편성이 결여된 ‘단일 이슈 운동’이라는 데 있다. 곧 사회적 총체성과 연관돼 있지 않다는 것이며, 중도좌파와 좌파 자유주의에 대한 지젝의 비판은 이러한 맥락에서 제기된다. 백포도주냐 적포도주냐 하는 선택은 ‘근본적인’ 선택이 아니다.

지젝이 “레닌을 반복해야 한다”고 말할 때 그 반복이 뜻하는 것은 레닌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레닌을 반복하는 것은 레닌이 했던 것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실패한 것, 그가 잃어버린 기회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들이 한갓 ‘혁명을 연기하는 배우’의 제스처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레닌을 전체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 ‘괴물’의 광기와 열정을 지지한다.

08. 05. 24.

 

 

 

 

P.S. '가장 어렵고 가장 대중적인'이란 수식어구가 타이틀에 붙었는데, 지젝을 수식하는 거라면 절반만 옳다. 그는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이지만, '가장 어려운' 철학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어려운 것은 헤겔과 라캉 같은 가장 난해한 철학자/정신분석가를 다루기 때문이지 그의 탓은 아니다(그들과 비교하자면 지젝은 너무나도 쉬운 철학자다! 나도 읽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게다가 지젝은 기본적으로 계몽주의자이다. 일부러 어렵게 말하지 않는다. 좀더 깔끔한 번역본들이 나온다면 지젝 독해의 어려움은 상당 부분 해소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본문에서 레닌과 관련하여 다룬 부분은 주로 <혁명이 다가온다>의 10장 '탈정치에 반대하여'를 정리한 것이다. 지젝의 혁명론에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는 애초의 주문도 있었고, 국역본의 이 대목이 부정확하게 번역돼 있어서 교정 차원에서 언급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지젝이 만난 레닌>이 곧 나올 줄 알았다면 생각을 달리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12장 '사이버 스페이스 레닌?'이 내가 이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다. 쉽게 번역돼 있기 때문에 이해에 어려움을 주지 않는다. 만약 번역본이 좀더 빨리 나왔더라면 나는 다른 대목에 초점을 맞추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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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지젝인가?
    from Dia's time capsule 2008-07-18 22:58 
    도착증자는 정신분석의 주체(환자)가 아니다. 그들의 도착적 향락은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인권이거나 자본에 의해 개발되어야 할 상품이지 결코 치료의 대상이 아니다.6 우리의 모든 개별적인 특징과 특정한 욕구, 관심, 믿음을 제거했을 때 남겨지는 것이 바로 주체이다. 37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토니마이어스 도서관에 다녀오니, 집이 잠겼다. 열쇠도 없고해서 극장엘 왔다. 5시에 인디아니존스를 본다. 지금 여긴 극장. 인디아나 존스에대한 기억?..
 
 
김상호 2008-05-23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앙은행에 대한 논제는 흥미롭군요. 제가 중앙은행에 다녀서 그런거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중앙은행의 지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당히 기괴하다고 생각하고 있읍니다. 국가/시장의 이분법에서 양자 모두 혹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게 바로 중앙은행이죠.
예전에 제가 술먹고 혼자 망상을 한적이 있어요. 주인 담론은 고전적인 경제학 담론(빗금친 주체의 자리엔 추상적인 합리적 개인, 주인기표는 보이지 않는 손, 균형이라는 이데올로기) 등등이죠. 문제는 삑사리가 났다는 ㅠ.ㅠ

로쟈 2008-05-24 00:06   좋아요 0 | URL
라캉-지젝을 좋아하시는군요.^^

김상호 2008-05-24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지 않는다면 책을 어찌 번역하겠읍니까 ^^

로쟈 2008-05-24 00:37   좋아요 0 | URL
아, '히치콕을 포기하고 라캉을 구할 사람'이시군요.^^

송연 2008-05-24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과 생각>에서 이 주제로 다음주부터 진행한다고 했을때 로쟈님이 나오시겠구나 하고 예상했었지요.^^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로쟈 2008-05-24 14:30   좋아요 0 | URL
제가 적격자라고 하긴 어렵지만, '전문가주의'라는 게 또한 反지젝적이란 생각에 나서게 됐습니다...

yoonta 2008-05-24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공개적인 논쟁의 중심에 서시는 군요^^

지젝의 혁명론은 저에게도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지젝이 소환하고있는 레닌은 그러니까 월드와이드웹을 국유화된 중앙은행처럼 사용하는 그러한 레닌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인터넷과 같은 소통수단을 사용하면 기존사회주의국가가 가졌던 국유화의 문제점을 극복할수있다는 주장인데 그런데 결국 문제는 혁명이후 권력을 누가 가지게 되는가가 아닐까요? "물론 중요한 것은 ‘소비에트 권력’이라는 두 번째 요소이며, 그것을 통해서만 인터넷은 해방적 잠재력을 전개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본문에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신사회운동과같이 지엽적이지 않은 "보편적 사회운동"이 되려면 '당'을 통한 정치활동이 필수적이라는 논리가 도입되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결국 권력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당에 의해서 독점되게 된다는 건데 이건 결국 구사회주의의 "당"들이 했던 행태를 반복할수있게 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월드와이드웹"을 통한 권력/당이기 때문에 그러한 집중화된 권력은 제어가능하다라고 이야기할수있을런지는 모르겠으나 이 지점에서 의문은 여전히 남네요. 권력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집중화되고 견제받지 않으면 부패하기 때문이지요. 지젝이 이야기하는 당이 정확히 어떤 당인가요?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된 레닌주의적 전위당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주장을 수용할 수 있는 민주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확보한 당인가요? 아닌가요? 그렇지 않다면 맑스주의나 레닌주의의 이러한 비민주적 성격을 비판했던 아나키즘적 조류로부터의 비판을 면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물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중앙집중적 당이 없이 어떻게 체제를 전복하는 혁명을 이룰수있는가? 하는 반론이 있을수 있죠. 저도 이런 반론에는 일정부분 동의합니다. 지엽적이고 이슈화된 조직화되지 못한 힘으로 이런 운동을 성공시키기는 거의 불가능죠.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조직화되고 집중화된 당이 권력을 잡은 이후에 이를 견제할 수단은 또 무엇인가하는 문제가 대두된다는 겁니다. 여기에 혁명의 아포리아가 있는 것 아닐까요?

로쟈 2008-05-24 20:13   좋아요 0 | URL
'논쟁'이란 표현은 과하구요, '지젝 신드롬'이란 표현 자체에 문제는 다 제기돼 있는 것이죠(이 또한 '한국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마디즘' 논쟁과 마찬가지로). 지젝이 이야기하는 당이 정확히 어떤 당인가는 지젝에게 물어보셔야 하는데요.^^ 제가 생각해보는 것은 1000만의 대의원을 가진 소비에트가 인터넷시대에는 가능하지 않느냐는 것이고요, 그것이 현행 대의제 민주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건 많이들 지적하는 것이죠. 더불어 '혁명의 아포리아'에 대해서는 그러한 '실패' 혹은 '부패의 가능성'을 의식한다는 게 일단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그걸 의식하고 있다면 집중화된 권력도 조금 다른 식으로 움직이지 않을까요? 레닌이 실패한 지점에서, 그가 잃어버린 기회를 반복한다는 것을 저는 그런 쪽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마늘빵 2008-05-24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한겨레에서 로쟈님 글 봤습니다. :) 사진이 알라딘에 올라왔던 것보단 못하게 나왔어요. 알라딘엔 살짝 귀엽게(?) 나오셨는데. 전에 딸기님이 찍으셨던.

로쟈 2008-05-24 20:15   좋아요 0 | URL
워낙 사진을 잘 안 찍는데가 증명서 사진을 피해달라고 해서 강의하는 모습을 찍은 스냅사진이 들어가게 됐습니다...

드팀전 2008-05-26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젝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전적으로 로쟈님 덕분이었습니다.물론 여전히 어렵고 스스로 이해의 폭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늘 의문이 생깁니다만 다 이해하지 않고 가면 또 어떡겠나 싶습니다. 창문을 열어 놓으면 언제였나 싶게 먼지가 덮이는 것처럼 낙천적으로 받아들이고 넘어갑니다.
제가 지젝을 만난 시점은 개인적으로도 시의적절했습니다. 왠지 예상치 않았던 뒤에서 날아오는 크로스카운터처럼 짜릿하더군요.^^ 로쟈님이 대중적인 지젝 책을 좀 써보심은 어떨지 모르겠어요.더 많은 팬클럽 가입을 위해 쉽게 쉽게....

로쟈 2008-05-26 22:53   좋아요 0 | URL
저도 기여한 바가 있군요.^^ 일단 발을 들여놓게 되면 일년에 두세 권씩은 읽어줘야 합니다!^^; 책을 쓰고 싶은 욕심은 저도 있지만 지젝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아직 감이 안 와서요.--;
 

지젝이 편집하고 후기를 쓴 <문앞에 다가온 혁명(Revolution at the gate)>이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2008)으로 번역돼 나왔다. 그의 후기는 2부 '레닌의 선택'으로 옮겨졌는데, 이 부분의 독어본 번역이 이전에 나온 <혁명이 다가온다>(길, 2006)이다. <혁명이 다가온다>의 경우 이런저런 오역들 때문에 불만스러웠는데, 이번에 나온 번역본은 깔끔하다. 게다가 영어본처럼 '레닌 선집'(주로 1917년에 씌어진 글들)을 겸하고 있어서 반갑다. 두툼한 하드카바에 만만찮은 가격인 게 흠이지만. 그런 부담만 던다면 지젝 입문으로서도, 레닌 입문으로서도 최적의 책이다. 같이 읽을 만한 책들을 꼽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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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김민하 지음 / 텍스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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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2일에 저장
품절
코민테른- 레닌에서 스탈린까지,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
제레미 애그뉴, 제레미 애그뉴 지음, 황동하 옮김 / 서해문집 / 2009년 10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09년 11월 22일에 저장
절판
레닌과 미래의 혁명- 자본주의 위기 시대에 레닌과 러시아혁명을 다시 생각한다
금민 외 지음, 진태원 외 옮김 / 그린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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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이 만난 레닌- 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슬라보예 지젝.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레닌 외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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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5월 23일에 저장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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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5-23 22:41   좋아요 0 | URL
^^ <혁명이 다가온다>를 볼 바에는 비용과 시간이 허락한다면 <지젝이 만난 레닌>을 만나는게 낫다는 결론이겠군요.

로쟈 2008-05-24 00:02   좋아요 0 | URL
최소 두 배 정도는 읽기 편할 거 같은데요.^^

열매 2008-05-24 00:47   좋아요 0 | URL
그런데 이렇게 중복출판이 가능한 건가요? 독어판과 영어판이 달라도 판권은 하나 아닌가요?
저번에 최생열씨가 번역한 지젝의 <믿음에 대하여>가 판본란에 독일출판사 Suhrcamp로 되어있는 걸 보고 의아했었는데 말이죠. <혁명이 다가온다>가 굳이 독일어에서 번역된 것도 이상하구요. 일종의 중역인데 말입니다.

로쟈 2008-05-24 00:56   좋아요 0 | URL
판권은 서로 다른 책 같습니다. 독어본과 영어본이 정확하게 일치하진 않구요, 독어본에는 레닌의 글들이 빠져 있습니다...

군자란 2008-05-24 13:26   좋아요 0 | URL
지젝이라는 인물이 누구이기에 이렇게 로쟈님이 열렬한 신도인지 저에게는 상당히 생소한 인물입니다. 그렇다고 로쟈님의 글을 읽어봐도 애매모호하고,뭐라고 하는지도 도대체 누구입니까?
가장 간단하게 저 같이 초보자가 알기쉽게 간단히 설명해주시면.......
죄송합니다.무식한게 용감하다고........

로쟈 2008-05-24 14:25   좋아요 0 | URL
저널적인 표현을 빌면, 철학계의 '이단아'이고 '괴물'입니다. 간단하게는 그냥 위키피디아의 '지젝' 항목을 찾아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지젝교가 따로 있는 건 아니고, 다만 저는 그의 팬이고 지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