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학술저널 '담비'(http://www.dambee.net/)에서 학술동향기사 한 편을 옮겨온다. '한국사회학'에 게재된 한 논문을 소개하고 있는데, 아마도 기사의 부제로 붙어 있는 '멜랑콜리와 모더니티: 문화적 모더니티의 세계감 분석'이 그 논문의 제목인 듯하다. 사회학 논문으로서는 이채로운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흥미로운 주제이고 분석이다.

담비(07. 02. 24) 멜랑콜리, 우울한 토성의 아이들

세계관, 인생관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다. 그런데 세계감(世界感)이라는 단어는 뭘까. 최근 문화적 모더니티를 연구하는 논문에 자주 등장하게 될 단어다. 프랑스에서 국내 사회학자로서는 드물게 영상사회학 이론을 전공하고 돌아온 김홍중 박사의 논문은 문화적 모더니티와 관련한 첨단의 인식론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그것도 매우 알기 쉽고 유려하게 인식의 깊이와 이론적 해박과 서술의 겸손함을 곁들여서 말이다. 그가 '한국사회학'  제40집 3호에 발표한 '멜랑콜리와 모더니티'는 이 '세계감'이라는 낯선 용어로 인간의 자기인식과 세계인식을 표현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그 길을 따라가 보자.

어느 날 파리의 한 유명한 신경전문의에게 환자가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세기병"에 시달려 살고픈 의욕이 거의 없으며, 기분이 늘 침울하고 항상 권태롭다고 털어놓았다. 의사는 걱정말라고 다독인뒤 잠시 휴식을 취할 것을 권유한다. 그리고 날을 잡아서 드뷔로의 공연을 보러가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인생이 달라보일 것이라고 말이다. 드뷔로는 19세기 프랑스 무언극 배우로 명성을 떨쳤는데, 천진하면서도 슬픈 웃음을 자아내는 현대적 광대의 원형을 창조한 배우다. 그런데 의사의 말에 대한 환자의 답이 가관이다. "하지만 선생님, 제가 바로 드뷔로입니다."

이상은 벤야민의 '파사젠베르크'의 '권태, 영겁회귀'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미하일 바흐친은 드뷔로의 선조라 할 수 있는 중세의 광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들의 신랄한 재담과 파괴적인 농담 그리고 과장된 몸짓과 가면 뒤에는, 종종 사태를 명증하게 파악하는 비판적 지성의 단초 혹은 이러한 지성의 소유자가 '어리석은' 세계에 대해서 가질 법한 깊은 상심이 은폐되어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김 박사는 위의 일화에 숨은 더 심각한 것을 지적한다. 그것은 우울을 풀어주는 광대마저 우울증에 걸린 난감한 상황이다. '세기병'이라는 표현은 우울이 이제 그 외부가 존재하지 않는 사나의 세계감(感)으로서 존재하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이다.

그 어떤 것에도 진정한 삶의 활력을 느끼지 못하는 '타성의 원천'으로서의 멜랑콜리. 이것이야 말로 무사태평한 웃음 속에서 메아리치는 이 시대의 질병이며, 우리로부터 명령과 복종과 행동과 희망의 용기를 앗아간다고 키에르케고르는 지적한 바 있다. 역설적인 것은 이러한 세계감이 사회의 모든 부면에서 성취된 전례 없는 혁신에 대한 자신감과 낙관 위에 설립된 근대의 진보적 세계관의 필연적인 그림자라는 것.

사회적 모더니티가 국민-국가, 자본주의 그리고 시민사회를 축으로 하는 공적 제도의 영역에서 '정신 없는 전문가'와 '가슴 없는 향락자들'(막스 베버)를 만들었다면, 그것에 저항하는 문화적 모더니티는 진보하는 부르주아의 공적 세계까 엄폐한 사적 공간에서 되살아난 우울의 신 사투르누스(Saturnus)의 힘에 복속된 '토성의 아이들'을 탄생시켰다.

그런데, 지금껏 온갖 학문들은 근대적 세계감의 가장 근본적인 차원인 이 토성적 감정의 발생과 구조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보여주지 못했다. 멜랑콜리는 대다수 문화적 산물들의 심정적 배경을 구성하는 문화해석학적 열쇠임이 점점 분명해지는데도 말이다. 김 박사는 이 지점에서 그것에 대한 체계적 접근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으로 하이데거의 '정조'(Stimmung) 개념을 끌어온다.

역시 서구 형이상학을 탈구축한 하이데거가 1929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겨울학기 강의에서 던진 질문은 참으로 멋드러진 것이었다. 그는 여기서 "철학적 사유를 뒷받침하는 감정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 이 질문은 무엇인가. 이성의 추리와 전개로 구축되는 철학의 기저에 특수한 감정의 상태가 놓여있다는 인식, 즉 로고스와 파토스의 위계를 전도시키는 시도가 담겨있다. 하이데거는 이 질문을 통해 '사유'와 '의지'에 늘 종속되어 있던 '느낌' 즉 감정의 질서를 학문적으로 복권시키고자 한 것이다.

하이데거의 가장 유명한 개념은 다자인(현존재, Da-Sein)이다. 세계-내-존재로서의 인간이 바로 그것. 세계 안에 던져진 유한자는 자신앞에 펼쳐지는 무한한 가능성과 직면하고 있는 자기형성적인 주체이다. 하이데거는 다자인을 다자인으로 만드는 것은 코지토가 아닌 정조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에서 권태, 환희, 불안의 정조를 분석했으며, 정조란 다자인이 세계와 화음을 조정하는 과정이며 세계의 객관적인 음조와 주체의 음조가 섞이고 부딪히고 조정되어 형성되는 일종의 음역(音域)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정조가 사유보다 근원적인 체험의 양식일 때, 사유라는 상부구조는 자신의 전(前)-사유적인 하부구조로서 감정적 차원을 갖게 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그리스 철학을 가능케한 것은 '경이의 감정'이었고, 데카르트적 근대를 가능하게 한 것은 '의혹의 정조'였다. 하지만 하이데거조차 20세기의 사유를 규정하는 본원적 감정이 무엇인가에 대해선 명확하게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이런 것이었다. 차갑고 냉정한 계산적 합리성에 의해 정조가 압살된 듯 보인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근대적 사유의 근원적 정조는 느낌의 불가능, 열정의 불가능, 파토스의 불가능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근대적 사유를 규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정조는 파토스의 분출이 아니라 그 퇴행과 은폐이며 감정의 원초적 폭발이 아닌 소멸이라고 말이다. 니체가 근대문화 일반을 데카당스라 부르며 그토록 폄하했던 이유도 "인간이 자신의 존재조건을 뛰어 넘어 초월적인 것과 소통하는 고양의 체험에 동반되던 비극적 감정이 소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세기 초엽의 인간들은 이러한 존재조건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물론 모든 인간이 그런 것은 아니다. 사회적 모더니티의 지배적인 주체는 합리적 이성에 근거해 세계와 대면하고, 세계를 분절하고 측량한다. 반면 권태롭고 우울한 우울자들은 그가 대면할 세계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알지 못하고, 세계를 분절할 수 있는 경계를 상실한 이들이다. 그는 정서의 욕동을 단호하게 억제하면서 미래를 투기하지 못하고, 토성적 정조에 사로잡혀 현실원칙으로 귀환하지 못하는 욕망의 노마드다.

근원적인 내적 결핍감을 채우기 위해서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파편들을 끊임없이 섭취하고 내면화하는 일종의 복합적인 식인증적 주체와 조응하는 멜랑콜리의 세계, 이것은 하나의 '기호학적 폐허'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물신으로 구성된 파편적이고 환몽적인 세계와 식인증적 주체의 변증법적 관계를 더 들여다보면 놀라운 역설이 발견된다. 토성적 정조의 근본적 징후인 '식인증'은 어떻게 보면 '우울증적 전략'이라 부를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

피에르 페디다(Pierre Fedida)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심화시키면서 "멜랑콜리는 대상의 상실에 따른 퇴행적 반응이라기보다, 오히려 상실된 대상을 살아있게 만드는 몽환적인(또는 환각적인) 능력"이라고 말한다. 김 박사는 이걸 좀더 명료하게 요약한다. 토성적 정조는 무언가의 상실로부터 비롯된  결과가 아니라, 사실은 상실을 인식하고 상실을 문제시하게 만드는 조건이라는 사실. 무언가를 상실해서 우울한 게 아니라, 우울하기 때문에 상실을 인지하고 상실을 회복하기 위해서 세계내의 기호들을 삼킨다는 것이다. 우울자는 그가 단 한번도 소유해 본적이 없는 '그것'의 상실을 연기(演技)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것'의 회복을 끝없이 '연기'(延期)한다고 말한다.

사실 우울자에게, 진정한 소유의 대상은 바로 상실감 그 자체이다. 이 대목에서 아감벤은 "식인증이란 이처럼 소유할 수 없는 것이 '상실된 것으로서' 나타나게 하고, 재현할 수 없는 것이 '재현불가능한 것으로서 표상되게 하며, 접근할 수 없는 것이 '알레고리적으로' 접근가능하게 해주는 토성적 정조의 전략"이라고 해석한다. 이는 사회적 모더니티가 빠른 속도로 일소해버린 초월적 가치들과 대상들, 즉 사유의 타자들을 문화적 모더니티의 영역에서 생존시키려는 일종의 전략이라고 김 박사는 부언한다. 신은 죽었지만 '죽은 신'은 하나의 형식으로 살아남고, 예술도 죽었지만 '죽은 예술'은 하나의 이상으로 남는다. 마찬가지로 소멸한 총체성은 가능성의 범주로서 살아남고 이들 앞에서 우리는 우울하다.

초월적 가치를 아직도 신앙하는 자는 우울하지 않다. 또한 이들이 완벽하게 소멸되었다고 믿는 자 역시 우울할 수 없다. 우울자는 그 중간에 머물면서 '소멸됨으로써 살아 있는 어떤 것'을 끝없이 추구한다. 이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시인이 바로 보들레르이다. 릴케 같은 이도 '두이노의 비가'에서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영웅은 존속한다. 영웅의 추락은 단지 존재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말했으니 말이다.

김 박사는 결론에서 "근대적 로고스의 타자를 '사유될 수 없는 것으로서' 사유의 형식 안으로 포섭하는 문화적 모더니티의 심연적 성찰성의 근저에는, 하이데거가 권태라고 불렀던 근대적 형이상학의 근본 정조, 즉 토성적 정조가 있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패기만만한 진보주의자들과는 달리, 어둡고 우울하지만 한층 더 심오한 정신적 역설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리뷰팀)

07. 02. 25.

 

 

 

 

P.S.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하이데거의 1929/30년 겨울학기 강의는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 세계-유한성-고독>(까치, 2001)로 번역돼 있다. '우울증'이란 주제와 관련하여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책은 크리스테바의 <검은 태양>(동문선, 2004)인데 기억에 딱히 '모더니티'를 특화시켜서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페디다의 <우울증의 유익>도 소개되면 좋겠다.

마침 '모더니티'와 관련해서 요즘 읽고 있는 책들은 앙리 르페브르의 <모더니티 입문>(동문선, 1999), 앙리 메쇼닉의 <모데르니테, 모데르니테>(동문선, 1999), 그리고 에른스트 벨러의 <아이러니와 모더니티 담론>(동문선, 2005) 등이다. 물론 모더니티 관련서들은 이보다 훨씬 많다(적어도 20여 권의 목록이 꾸려질 수 있다). 개인적으론 미술 관련서로 칼리니스쿠의 <모더니티의 다섯 얼굴>(시각과언어, 1998)까지 챙겼으면 하지만 아마도 박스에 들어가 있는 듯싶다(이 책은 일종의 사전이다). 그 다섯 얼굴에 모더니티의 주된 정조로서 '우울한 표정'을 더 보태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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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25 10:48   좋아요 0 | URL
이런 사이트도 있군요. 즐찾에 넣어놔야겠어요.

싸이런스 2007-02-25 12:24   좋아요 0 | URL
"근대적 사유를 규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정조는 파토스의 분출이 아니라 그 퇴행과 은폐이며 감정의 원초적 폭발이 아닌 소멸이라고 말이다" 감정이 소멸되면 인간은 판단할 수 있는 능력마저 불구화 되기 때문에 살아가기 어렵게 된다는 이론(Damasio, Antonio)을 생각한다면, 소멸이라기보다는 apathy의 정조가 아닐까요.

로쟈 2007-02-25 12:39   좋아요 0 | URL
아프님/ 일주일에 한번 정도 들어가보시면 됩니다.^^
싸이런스님/ 사실 분출구가 없는 건 아닌데요. 스포츠나 카니발 같은 걸 보면. 문제는 그러한 '폭발'이 '근대적 사유'에는 은폐/소멸돼 있다는 것이고, 말씀대로 그때의 '소멸'은 냉담과도 대치될 수 있을 거 같습니다(논문은 안 읽어봤기 때문에 맥락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포커 페이스 같은. 다른 얘기가 될 수도 있지만 '논문이라는 담론'의 형식이 요구하는 게 바로 apathy이죠...

싸이런스 2007-02-25 14:17   좋아요 0 | URL
그래서 논문 읽는게 글케 지루하나보군요. ㅠ.ㅠ

주니다 2007-02-25 20:31   좋아요 0 | URL
P.S.에서 언급하신 동문선의 책들 번역 상태는 어떠한지요? 멜랑콜리와 모더니티는 흥미롭고도 계발적인 주제인 듯 하네요. 이 주제와 관련된 로쟈님의 페이퍼를 기대하겠습니다.^^

로쟈 2007-02-25 20:45   좋아요 0 | URL
저는 페디다의 책이 재미있을 거 같습니다. 르페브르의 책은 영역본을 곧 구할 생각이구요, 메쇼닉의 책은 일부만 복사했습니다(영역본이 없어서요). 일견 번역이 나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검은 태양>은 원저나 영역본과 같이 읽어야 하구요, 벨러의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칼리니스쿠의 책은 읽을 만하지 않았나 싶은데 오래전 기억이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2007-02-26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2-26 12:25   좋아요 0 | URL
**님/ 감사.^^ 인문서가 잘 안 나간다는 건 거의 '기본조건'인지라 이유가 안 될 거 같구요, 책은 '고집'으로 내야 할 거 같습니다. '그 사장님'처럼 고집만 있어도 문제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TV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억지로 안 보는 건 아니지만 굳이 찾아서 보지는 않는 만큼 별로 볼일이 없다고 해야 맞겠다. 시트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데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는 '거침없이 하이킥'도 우연히 한 차례 20여 분 정도 본 게 전부이다. 그래도 덕분에 대강의 인물 구성은 알고 있다. 그건 아래와 같은 기사를 '재미있게' 읽는 수준은 된다는 얘기이다. 러시아/러시아어에 대한 홍보도 할 겸 어제 방영됐다는 '거침없이 하이킥'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뉴스엔(07. 02. 24) '하이킥’ 친절한 해미씨 러시아어로 신지에 복수 “푸틴과도 오케이?”

‘사육해미’ 박해미가 러시아어에 도전장을 던졌다. 23일 방송된 MBC 일일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완벽녀 해미(박해미 분)가 러시아어를 독파하는 내용이 그려졌다. 사연인 즉, 평소 해미와 앙숙인 동서 신지(신지 분)는 해미를 골리기 위해 러시아 유학 시절 친구와 러시아어로 해미의 험담을 한다. 하지만 눈치 백단인 해미가 이를 모를 리 만무하다. 러시아어로 험담을 하는 것에 기분이 상한 해미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독학, 러시아어 책을 펼쳐들고 완벽한 독파에 들어갔다.

러시아어에 빠져 드디어 말문까지 열게 된 해미. 복수의 기회는 예상 외로 빨리 찾아왔다. 신지가 러시아 친구를 데리고 해미의 병원을 찾은 것. 신지는 러시아 친구의 허리가 안 좋다며 치료를 해달라고 부탁하면서도 또 해미의 험담을 시작한다.

이 때 유창한 러시아어로 “내가 아무리 러시아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둘이 그러면 듣는 사람 기분 나쁘지 안 그런가요?”라고 쏘아대는 해미. “그런데 준이 엄마는 발음이 좀 아니다. 그래 갖고 자유롭게 대화가 돼? 공부 좀 더 해야겠어. 오케이?”라고 이어진 멘트는 신지를 넉다운 시키기에 충분했다.

한편, 해미는 러시아어의 매력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 듯하다. 3개월 후 해미는 ‘한방교류를 위한 재러시아 한방의료인 세미나’ 강단에서 유쾌 통쾌한 웅변을 토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특히 병원에 걸린 해미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기념사진은 마지막까지도 웃음을 멎지 못하게 했다.(고홍주 기자)

07. 02. 24.

 

 

 

 

P.S. 러시아어는 각 대학이나 학원별로 지정된 교재를 사용하기 때문에(러시아어나 영어로 된 교재도 많이 쓴다) 내가 알기엔 '강추' 교재라는 게 따로 없다. 또 '러시아어' 강좌를 맡은 적이 없어서(한두 번 맡을 뻔했지만 모두 인원 미달로 폐강됐다) 시중에 어떤 교재들이 나와 있는지 조사해본 바도 없다. 대략 '초급자'라면 열거한 교재들을 선택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몇 달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완벽녀 해미'처럼 '하이킥'은 못 날리더라도 '로우킥' 정도는 선보일 수 있으리라. 공부는 소질에 앞서서 얼만큼 흥미를 갖느냐의 문제, 혹은 해미처럼 복수심의 문제이다...   

참고로, 이종격투기에서 사용하는 러시아어 전문술어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이킥'은 (사전적으로 말하면) "븨소끼 우다르"라고 발음하면 된다('븨소끼'가 '하이'이고 '우다르'는 '타격'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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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24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저는 이거 딱 한편 봤는데 재밌더군요. 흐흐 이것도 보고 싶다. 로쟈님 대학에서 그럼 러시아어 말고 어떤거 강의하세요? 궁금.

하이드 2007-02-24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 동창회를 나가면, 전공도 아니면서 러시아어를 하는 애들이 꽤 있어요. ( 전공도 아닌데, 왜 그런지;;) 영어 제대로 하는 사람도 없는데, 러시아어로 얘기하는 애들 보면 신기. 배우기가 아주- 어렵단 것만 알고 있습니다. 흐- , 그러고 보니, 그중의 한 놈은 고려인과 결혼도 했네요. 카자흐스탄 호텔 카지노에서 일했었는데, - 일어, 독어, 불어, 더 나아가서 스페니쉬, 이탈리어까지도 공부해보고 싶지만, 원서로 읽어볼 엄두도 안나는게 러시아작가들이에요.

기인 2007-02-24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번에 후배 한명이, 러시아어로 논자시 보는데, 자기 혼자만 볼 것 같다고, 제발 쉽게 출제하라고 빌고 있었는데요 ㅎㅎ 이거 정말 요즘 상한가인데, 한번 봐바야 겠네요.

로쟈 2007-02-24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주로 문학과 문화쪽 강의를 합니다. 아르바이트로는 미학과 국문학쪽 강의도 하구요. 요는 닥치는 대로 다 합니다.^^;
하이드님/ 아랍어보다는 쉬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론 중국어보다도 쉬운 게 아닌가 싶고. 외국인들이 배우기엔 물론 한국어보다 훨씬 싶다고 하네요...
기인님/ 그 후배는 누군지 알 것도 같네요.^^ 논자시야 붙여주려고 보는 시험인데요...

2007-02-25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2-25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그런 '전설'이 또 있군요. 통쾌하면서도 좀 씁쓸한 '하이킥'입니다.^^;
 

지날달 초인가 소설가 김영현의 신작 <낯선 사람들>(실천문학사, 2007)의 출간을 알리는 기사와 함께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페이퍼에 올린 적이 있는데, 레디앙에 작가와의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기에 옮겨놓는다. 인터뷰를 통독해보니 김영현의 모든 것을 알 거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인터뷰어는 북매거진 '텍스트'의 조은영 편집장이다.

레디앙(07. 02. 24) 삶과 사회변혁 꿈의 본질을 찾아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결코 은신처로 삼지 못한다. 작품과 함께 작가 역시 세상에 발가벗고 선다. 그는 대답을 가진 존재로서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존재로서 유의미하다. 시절이 바뀌는 것과 더불어 작품 또한 다른 방식으로 숨 쉬려 든다. 1990년대 민중소설이 서 있는 자리의 가장 가운데에 있었던 김영현은 전작 『폭설』로 1980년대를 떠나보내고 『낯선 사람들』의 작가로 돌아왔다. 소설은 주제는 구원론을 향하고 있으며, 소설의 형식은 추리소설을 닮았다.

누군가는 “1980년대 문학으로 세상의 한복판에서 싸웠던 작가 김영현의 문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고 회의적으로 묻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의 새로운 시도가 과연 지금-이곳의 부박한 문학적 현실과 사회적 현실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귀를 세운다. 이러한 질문들은 한 사람의 작가가 당대의 현실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물음표로 귀결한다.



텍스트(이하 ‘텍’) 『낯선 사람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쫓는 소설이다. 추리소설적인 형식으로 씌어진 한편, 내용적으로는 인간의 선과 악, 종교적 구원과 삶의 태도 등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물음들로 가득 차 있다. 그간 ‘김영현 문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에 거리를 두고 있는 덕에 여러 가지 반응을 접했으리라 본다.

김영현(이하 ‘김’) 이른바 386세대, 혹은 올드한 독자들은 심리적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내가 바로 그런 세대이고 '올드한 독자'인가 보다). 내 소설의 성실한 독자들 중에서도 현실과 치열하게 싸웠던 작가의 외도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걸 알고 있다. 반면 젊은 친구들 중에서는 추리소설의 작법에 재미를 느끼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요즘 사람들은 긴박감을 좋아하지 않나. 두 가지 반응 모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우리 소설이 독자대중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소설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도입한 했다고는 하지만 굳이 장르 문학적이라고 말하는 건 무의미한 것 같다. 이를 테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도 모두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지 않나. 우리같이 나이든 작가들은 추리소설 쓰기 어렵다. 퍼즐처럼 들어맞는 구성을 만들기가 간단치 않은 일이다. 읽는 사람들은 쉽게, 대수롭지 않게 읽지만, 쓰는 사람은 그 고리를 놓치면 안 되니까 공력이 많이 들더라. 쓰면서는 그런 생각을 했다. 형식의 문제를 열어 놓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래야 우리 문학도 딱딱한 틀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내 이전 작품 중에 종교적인 물음을 담고 있는 것으로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있다. 거기엔 1980년대의 걸개그림을 그리는 화가, 사고를 아이를 잃은 아내가 등장한다. 변화를 그리면서 자기 삶을 성찰하는 과정을 다루었던 작품이다. 이번 소설 『낯선 사람들』은 가족 단위 안에서 일이긴 하지만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보다 훨씬 더 탐욕스러운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 인간의 그림자 혹은 악의 형태가 무엇인지를 소설적으로 탐색하려 했던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범죄가 바로 살인이다. 특히, 존속살해. 인간의 어두운 측면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존속간의 살인이나 근친상간이다. 융의 표현대로 하자면, 인간의 가장 오래된 그림자인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아버지를 죽인 것이 동생일 수도 있고, 자기 형의 아들일 수도 있다.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고, 인간의 가장 약한 부분, 인간의 가장 깊은 죄의식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아버지 살해’라는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것이다.

다른 인터뷰를 통해서 “김영현 문학의 2기” 혹은 “패배의 터널을 빠져나온 듯한 느낌”이라는 얘기를 했다. 하지만 정작 ‘김영현의 독자들’은 ‘패배의 터널을 빠져나왔다’는 사실보다는 그 터널을 ‘어떻게’ 빠져나왔는가 하는 것을 더 문제 삼을 수도 있다. 그것은 곧 문학적 성패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원래 니체 철학을 전공하려 했다. 막상 학교에서 공부를 해 보니 강단철학에 잘 안 맞는다는 걸 알았다(*김영현은 서울대 철학과 출신이다). 유신시대의 격동적인 시간에 대학시절을 보내다보니 졸업도 못한 채 감옥생활을 해야 했다. 10여 년의 시간을 감옥과 군대와 길거리에서 보냈다. 이른바 민주화운동에 휩쓸리면서 살아오게 된 거다. 하지만 내게는 기본적으로 투사적 성격도 정치적 성격도 별로 없다. 그보다는 작가인 한편 철학도로서의 일관성을 잃지 않고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내 작품 속에도 등장하지만, 과연 무엇이 행복이며, 행복한 사회란 또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고민이다.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내게는 두 가지 태도가 있었다. 하나는 자기시대의 모순과 싸우는 투사적 문학을 지향하는 태도였다. 민중문학을 필두로 1980년대의 문학은 현실과의 지독한 투쟁 속에서 자라났다. 이게 내 소설의 첫 번째 특징이라면, 다른 하나는 구도적인 태도를 들 수 있겠다. 문학을 통해서 당면 현실 뿐 아니라 인간이 근본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지향을 찾아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것이 두 마리의 말이다. 그걸 동시에 추구해야한다고 줄곧 여겨왔다.

초기에는「벌레」에서처럼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현실을 많이 다루었다. 그러는 한편 나의 작품들에는 늘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이 있었다. 인간 삶의 본질에 대한 고민,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꿈의 내용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고민,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썼던 것이다. 내 안에서는 그러한 고민들이 멈춘 적이 없다. 아마 그런 요소들 때문에 ‘김영현 논쟁’ 같은 게 생기지 않았나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현실이 급격하게 바뀌어 버렸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싸우고 살아왔는데 그 끝이 대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묻게 되었다. 눈 내리는 공장 담벼락 아래를 걸어가며 가슴에 품었던 꿈이 있었다. 더불어 행복해지는 좋은 세상에 대한 꿈을 끈질기게 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지금의 현실을 보니 세상에 희망이라는 게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민주화가 되었다고는 하는데, 과연 이런 식의 세상을 위해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던가 싶은 거다. 어떻게 보면 황당하지만 참혹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런 현실과 부딪혀 나가려는 어떤 의지 같은 게 메말라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어떤 측면에서는 둘러가고 싶어지는 거다.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검토하지 않으면 어쩌면 사회변혁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묻게 되고,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으로 환원하고 싶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설이 현실에 대해서 무엇일 수 있으며, 무엇이어야 하는가 등의 질문에 대해서 문학적으로 예민하게 고민해 왔음에도, 어느 시기 이후부터는 피로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게 관조의 태도로 변모하게 된 것 같은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에 작품 활동을 하면서 평단의 조롱 섞인 언사를 많이 들었다. 이른바 후일담 문학에 관한 것이다. 사실 모든 문학은 후일담이지 않나? 하지만 우리 문학에서 후일담 문학이라고 할 때 과거완료형이라는 뜻으로 쓰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규정이 우리 문학을 도리어 죽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후일담 문학이 더 많았어야 했다는 뜻이다. 1980년대를 거칠게 살아온 그들이 지금-이곳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작가들이 어떤 식으로 변모하는지를 집요하게 정리하려는 문학적 경향이 더 풍부했어야 하는데 너무 일찍 청산해버리고 말았다. 시대가 급변하면서 그에 발맞추어 신세대 작가들이 포스트 모던한 작품들을 들고 나왔는데, 그러면서 그 사이에 문학적 단절, 문학적 공백이 생겨버렸다.

내 작품을 둘러싸고 ‘김영현 논쟁’이 나오면서 고민이 상당히 많아졌다. 1990년대 초반, 우리 사회가 질적으로 변화하고 해체를 겪게 되는 시기가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폐기처분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고, 나 자신을 어두운 과거로부터 거둬들이고 싶은 욕구 또한 강해졌다.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면 죽은 사람도 너무 많았고 피 흘린 사람도 너무 많았다. 정말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되돌아보기가 싫었다. 김영현의 성실한 독자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다. 내가 피로하게 보이고 뒤로 물러서려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개다리 영감의 죽음」, 「김문갑전」 등과 같은 작품을 통해서는 역사적 흐름과 무관하게 건강한 정서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고 싶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지식인들의 변해가는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 변화를 그저 어떤 현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틀 속에서 바라보고 문학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공동체의 성격이 무엇인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물신주의적 사회, 이 미쳐 돌아가는 사회, 이런 세상을 정말 살 가치가 있는지 회의감에 빠질 때가 많다. 휩쓸려서 살고는 있지만 아무 의미가 없는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걸 버텨내는 게 정신적으로 상당히 고단하다. 간혹 나의 생애가 나의 정신병력과 다름없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자기분열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자기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무진장 노력을 한다. 명상도 해보고, 단전호흡도 해보고, 여행을 떠나보기도 하고….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세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것 같다.

나는 나의 문학에 대해서 그 모든 비판을 감당하면서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고 여긴다. 이 단계를 거쳐 가면 다음에는 더 나아지겠지 싶다. 그래서 사실상 문학의 2기, 3기를 논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한평생을 구도하는 승려의 모습과 작가의 생애는 거의 동일한 것 같다. 아마 다음 창작집은 훨씬 더 현실적이 될 것 같다. 세상을 완전히 다르게 바라보는 그런 작품을 준비 중에 있다.

후일담 문학이 너무 빨리 청산되었다고 했는데, 어떤 점에서는 후일담 문학의 작가들이 문학적으로 덜 치열했던 게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런 혐의가 우리 작가들에게 많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작품이 안 나왔던 것도 독자들이 후일담 문학을 잘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일 것이다. 나도 지금에 와서는 옹호를 하지만, 그 당시에는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었다. 독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1980년대를 낮은 폭으로 지내왔으니 그걸 되돌아보기 싫었을 것이다.

우리사회는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이루었고, 경제적으로는 양극화가 분명해졌다. 자본주의가 확실히 자리를 잡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사회변혁에 대한 건강한 열정과 순수한 의지를 갖고 있던 사람들의 열망이 거의 휘발되면서 패배감을 가지고 사회에 편입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이 사회에서 자기 열정을 다 펴지 못하고 한꺼번에 청산되면서 일괄적으로 조롱당하는 경험을 겪었다. 몇몇은 출세도 하고 그랬지만…. 정치적으로는 386세대라는 것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과연 386세대가 존재하는가 싶다.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소설 쓰는 후배들은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을 가지고 새 소설 쓰는데 결국 그 중간, 허리가 되는 세대가 없는 셈이다. 몇몇만 살아남았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후일담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일찍 청산된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낯선 사람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예비 사제인 성연은 수도원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을 한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라네’ 라는 요한 신부의 이야기와 안나의 미소 띤 얼굴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근본적인 죄의식이나 선악의 문제로 고뇌했던 성연이 ‘사랑’을 언급하는 순간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갈등이 통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결이 너무 손쉽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분명 소설적 재미를 반감시키기도 한다. 전작 『폭설』에서도 운동권이었던 형섭의 고뇌는 핍진하게 그리면서도 결국에는 사랑으로 마무리 지었다.

결국 싱겁다 혹은 진부하다는 평인데…. 『폭설』은 1980년대를 떠나보내는 내 나름의 연가 혹은 송가였다. 1980년대를, 그 지긋지긋한 시절에 대한 사랑을 이제는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소설에서는 사랑을 주제로 삼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 와서는 조금 후회하기도 한다. 맥 빠지는 듯 느꼈을 수 있으리라 본다. 성연이 수도원 돌아가지 않고 이 진흙바닥 같은 세상에 남겠다는 선택을 한 것, 사실 나는 그것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물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사랑이었다.

성연의 외삼촌과 요한 신부의 유신론-무신론 논쟁을 격렬하게 이끌고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요한 신부와 외삼촌은 내가 정성스럽게 그려보고 싶었던 인물이었다. 무신론자인 외삼촌은 자기 신념과 이념에 충실한 사람으로, 요한 신부는 그야말로 순결하고 거룩한 영혼을 가진 존재로 그리고 싶었다. 그랬으면 그 둘의 대립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소설 속의 장 반장은 50대 초입으로 그 바닥에서 범인 잡는 걸로 인간의 선과 악을 평생 지켜본 인물이다. 성연과 그 형제들의 운명을 모두 다 바라봐 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마지막에 가서 “내 삶이 의미 있는 것인가?”라고 묻는 건, 참 가슴 아픈 아픈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고. 사실상 장 반장의 이런 질문으로 끝을 냈어야 했던 건 아닐까 싶다. 사실 성연이 그에 대해 굳이 답할 필요는 없었다.

『낯선 사람들』에서 모든 이야기를 다 걸러내고 나면 결국 누가 남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안나일 것 같았다. 제목도 ‘안나’로 하고 싶었다. 편집부에서 반대하는 바람에 누구나 다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는 뜻에서 실존주의적인 의미로 ‘낯선 사람들’로 하게 됐는데…. 아무튼 안나는 성연이 머무르기로 한 이 삭막한 세상에서 계속 리바이벌되고 성연의 마지막 가능성을 확인하게 하는 존재다. 궁핍하고 괴로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안나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성연에게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이 된다.

이런 식의 생각은 아마도 우리 세대가 갖고 있는 낭만성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소설을 쓰면서 줄곧 그런 안나의 존재와 의미에 골몰하다보니까, 안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나름대로 합리화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 사랑이라는 걸 어떻게든 걸치고 가고 싶어서 결국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얘기를 쓰게 됐다. 결과적으로는 그게 맥 빠지게 만든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가 진부하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소설을 쓰면서 사랑에 대해서 새롭게 느끼게 됐던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보잘것없는 세계에 사랑이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공룡의 시대와 우리의 시대가 정말 뭔가가 다르다면, 인간 속에는 뭔가 표현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사랑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그게 소설 속에서는 다소 진부하게 마무리되는 바람에 아쉬움이 남는 거다. 몇 줄 묘사되지 않지만 안나를 쓰는 장면이 가장 어려웠다.

그렇다면 차라리 사랑 이야기를 정면으로 써 보는 것은 어떤가.

지금 나에게 가장 큰 결핍이 있다면 그리움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제 사랑 이야기는 쓸 수 없을 것 같다. 모든 사랑의 밑바닥에는 그리움의 정서가 있다. 사랑이 뇌파적으로 베타파라면 그리움은 알파파라고 할까. 밑바닥을 선회하는 감정 말이다. 우리는 누구도 “그리웠습니다”라고 인사하지 못한다. 너무 깊은 감정이라 그렇다. 그런데 그 그리움이라는 것이 나의 감정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걸 느낀다. 단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 세상이 그렇게 가는 것 같지 않나? 그리워 할 것이 세상에서 점점 더 사라지는 것 같다. 그리움에 대한 열망이 인간에게 마지막까지 품격을 지키면서 살도록 하는 것일 텐데 말이다. 우리 사회는 정말 품격이 바닥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아, 정말 사랑 이야기는 못 쓸 것 같다(*그에겐 <풋사랑>이란 소설도 있지 않았나?).



품격 없는 시대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그 방향을 좀 바꾸어서 그걸 문학작품과 출판의 관계라는 맥락에서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를 테면 이제는 ‘창비’의 고유함, ‘문지’의 고유함 같은 것들이 거의 사라졌다고도 할 수 있다. 시장과 타협하는 모습들을 너무 쉽게 포착할 수 있다.

문학의 다양화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일본 문학과 비교해 봤을 때, 나는 우리 문학이 더 치열하다고 본다. 문학적 전통도 탄탄하다. 그런데 지금 대중들이 열광하는 문학은 거의 일본 문학이다. 다양한 재미, 넓은 작가군 같은 것들이 부러울 지경이다. 우리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얼마만큼 경쟁력을 확보하고 버틸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젊은 작가들이 힘겹게 분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문학의 기본은 리얼리티다. 자기의 리얼리즘을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다. 물론 그걸 표현하는 작가들의 목소리는 저마다 달라야 하겠지. 하지만 현실의 문제와 동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학이 오락으로 넘어가고 독자들을 잃어버리는 것은 그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안다. 출판 시장 자체가 급격하게 상업주의의 길로 돌아선 것은 출판 문학계의 현실이다. 짜르와 싸운다, 혹은 일본과 싸운다, 혹은 전두환과 싸운다, 이런 식의 구체적인 당면 목표가 없는 상황이고, 따라서 자기의 아이덴티티를 확보할 만한 그 무엇인가가 없다. 생활양식이 변화하고 삶이 다양해졌지만 어떤 선택도 쉽지가 않다. 예를 들어, 시골로 내려가 자급자족하면서 농사짓고 산다고 해도 그것은 개인적인 선택일 뿐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다.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전선’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그러니까 문예지나 출판사가 뭘 표방하려야 할 수가 없다. 내가 있는 ‘실천문학’에 대해서도 똑같이 얘기할 수 있다. “‘실천문학’의 칼라가 뭐냐?” 이렇게 물었을 때, 반미자주 혹은 민주화 이런 것들이 충분한 대답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난감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통합한 것이 바로 상업주의다. 살아남아야 하는 게 최대의 목표가 됐다. 어떻게 살아남을까 이것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왜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아무도 묻지 않고 그걸 물을 수도 없는 상황이 온 거다. 그러다보니 전반적으로 질적인 하락을 면할 수가 없게 되고….

누구 스타 작가 하나가 뜨면 서로 끌어가려고 혈안이 된다. 예전에는 어떤 작가가 괜찮다고 하면 그에 대해서 비판적인 목소리들이 함께 나와서 견제를 해 줬지만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없다. 사회가 에너지를 상실하면 문학도 애매모호해 진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자본주의적 가치, 돈이 없으면 곧 죽은 목숨이라는 것, 이런 단일한 가치가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통합을 이룬 적이 있던가. 이런 상황들이 나에게도 끊임없는 배신감을 안겨준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찌됐든 ‘작가들의 몫’을 이야기해 봐야 할 것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거치면서 좋은 작품들이 많았고, 좋은 작가들도 많았다. 지금 젊은 후배 작가들 중에서도 눈여겨 볼만한 작가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는 오늘날의 작가들은 뭘 써야 하는지, 자신의 고민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손가락을 앓고 있는 것인지 심장을 앓고 있는 것인지 구별을 못한다. 그러다보니 독자들도 읽을 게 없다는 볼 멘 소리를 하고. 작가로서 실험적인 것을 계속 시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요즘 실험적인 시를 쓰는 시인들을 '미래파'라고 부르고 있는 것 같더라. 작가들은 이렇게 계속 돌파구를 찾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소득을 거두는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작가들의 몫이라는 점에서 그걸 계속 과제로 안고 가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김영현의 이후 소설’에 대해서 듣고 싶다.

나는 정통적인 문학수업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외국소설을 읽으면서 문학적 자양분을 섭취했다.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도 물론 좋지만 체호프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체호프처럼 쓰고 싶다.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주제는 이번으로 끝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번 소설 『낯선 사람들』은 딱히 구도소설이라고 할 만하지는 않다. 나는 성연이 ‘성인聖人’이 되는 과정에 대해서 쓰지 않았다. 여기에 뭔가를 더 할 수 있었다면, 사회성이나 역사성에 대한 이야기를 썼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쓰면 또다시 후일담이라고 할까 싶어서 그런 부분들은 다 걷어냈다. 최문술의 과거 삶에서 살짝 언급은 하지만 그걸 주도적으로 밀고 가지는 않았다. 이런 종류의 소설 배경에도 사회적인 이야기가 풍요로워야 한다. 그걸 못한 건, 내가 타협했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그러지 않으려고 다짐했다.

작가는 혼자서 춤을 추는 존재다. 마치 무당이 혼자서 제를 드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부족한 점들을 느낀다. 한 작품을 쓰고 나면 언제나 아쉬움이 많기 때문에 다시 돌아보기가 겁난다. 독자들이 좋다고 해도 불안하고, 나쁘다고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그런다. 그게 또 작가의 운명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의 일관성을 평생 유지하면서 글을 쓴다는 게 만만치가 않다는 걸 새삼 느낀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살면서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작가는 자신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 것 같다. 자신을 모르모트로 삼는다. 자기 온 몸을 작품에다 바친다. 나이가 들수록 그걸 더 절실하게 깨닫는다. 삶의 전체적인 모습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것 같다. 가령, 김성동이 어떻게 사느냐, 이문구가 어떻게 사느냐, 이건 작품과 직결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현실과 어떻게 싸우고 타협하며 버티고 살아가는지 독자들은 그런 걸 기대한다. 작가의 초기 작품부터 시작해서 작가의 작품에 의탁하며 한 시절을 보내는 것이다.(조은영/ 텍스트)

07. 02. 24.

P.S. 비유컨대, 김영현은 러시아의 1840년대 인텔리겐치아 세대를 닮았다.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1862)에서 그려지고 있는 아버지 세대가 40년대 세대이며 이 자유주의 인텔리겐치아를 특징짓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낭만성'이다. 반면에 60년대 인텔리겐치아는 소설에서 주인공 바자로프가 보여주는 것처럼 무엇보다도 과학주의와 유물론으로 무장한 세대이다. 이러한 대비는 한국문학에서 1960년대 4.19세대와 80년대 운동권 세대와의 대비에 상응한다. 1954년생인 김영현은 70년대 학번인데 그 문학적 후배들보다는 선배들과 더 많은 것을 공유하는 듯싶다.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경도 같은 게 그 증거이다.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건 이제 그가 도스토예프스키적인 것에서 체호프적인 것으로 이행해가고자 한다는 것.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도 물론 좋지만 체호프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체호프처럼 쓰고 싶다." 문학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로 투사적 태도와 구도적 태도를 꼽은 김영현이 '체호프처럼 쓰고 싶다"고 고백하는 건 의외이다. 그건 투사적 태도나 구도적 태도 모두와 무관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런 세계로 진입할 수 있을까? 삶에 대한 낭만적 태도 대신에 냉정한 관찰자적 태도를 견지할 수 있을까? 장담하지 못하겠다. 아마도 전혀 다른 김영현의 세계이어야 하겠기에. 그렇지 않다면 '김영현'이란 이름은 작가 체호프가 아닌 다만 '체호프적인 인물'을 연상시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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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mer 2007-02-25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호프처럼 쓰고 싶다'는 의미가 그의 '범죄의 형식'을 추적해 가고 싶다는 것으로 들리네요. 범죄를 저지르지는 못하고 다만 그 자취를 '추적'할 뿐인 탐정말이죠...

로쟈 2007-02-25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뷰에 그렇게 '구체화'돼 있는 것 같지는 않구요. 제가 보기에 김영현과 체호프(의 인물들)를 연결시켜줄 수 있는 건 삶의 좋은 날들이 지나가버렸다는 회한으로서의 후일담이나 대책없는 그리움 같은 겁니다. 범죄나 탐정, 같은 게 요구하는 어떤 의지나 집요함은 체호프과는 아주 낯선 게 아닌가 싶네요...
 

윌리엄 도울링의 <'정치적 무의식'을 위한 서설>(월인, 2000)의 서문 읽기이다. 원서는 <제임슨, 알튀세르, 마르크스(Jameson, Althusser, Marx)>(코넬대학교출판부, 1984)이고, '<정치적 무의식> 입문(An Introduction to the Political Unconscious)'이 부제이다. 국역본은 그 부제를 제목으로 삼았다. 원저는 147쪽의 '가벼운' 책인데, 번역본은 하드카바에다가 저자의 사진까지 (표지뿐만 아니라) 서장을 장식하고 있어서 좀 격에 맞지 않는다(우리 같은 경우 회갑논총이나 정년퇴임기념논총 등에나 그런 사진을 집어넣는다). 자신의 책도 아니고 제임슨 '입문서'에 그런 치장을 한 걸 알면 저자도 좀 부끄러워하지 않았을까 싶다(독자로선 책값이 비싸지니까 유감스럽고).

"주제 넘는 일이지만, 이 책은 프레드릭 제임슨의 <정치적 무의식>에 대한 하나의 안내서이다."라고 서문의 첫문장이 시작할 때 내가 떠올리는 '주제 넘는 일'은 이러한 외형과 장정에 관련된 것이다. 말 그대로 '찍찍'읽어보고 치워야 할 입문서를 하드카바로 펴내는 것부터 불만스러운데, 번역이 그런 '하드함'을 전혀 받쳐주지 못하기에 더더욱 유감스러운 것이 이 <서설>이다. 과연 저자가 원하는 바대로 <정치적 무의식>을 위한 서설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책을 읽는다는 게 단지 '뒷걸음질'에 불과한 건지 이 '서문'에 대한 브리핑을 읽고 판단해보시길(보통 서문은 '곁다리텍스트'에서 다루지만 제대로 된 서문이 아니어서 '브리핑'에 집어넣는다. '곁다리텍스트'도 격이 있어야 한다).

저자는 먼저 책의 용도와 의의에 대해서 규정한다. 이게 연구서나 비평서도 아니고 당대 마르크스주의 비평 혹은 거기서 제임슨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대한 고찰도 아니라는 것. "다만 이 글은 <정치적 무의식>의 중요성에 대해 익히 들어왔지만 그것으로 인해 지금까지 좌절을 맛보고 있는 독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단순히 태생적으로 중요성을 지닌 한 권의 책에 관해 매우 부담스러운 논의를 시도하려는 것일 뿐이다."(17쪽)

책은 그러니까 <정치적 무의식>에 대해서 '지끔까지 좌절을 맛보고 있는' 영어권 독자들을 위한 것이다(그럼에도 내가 읽은 도울링의 문체는 만연체여서 제임슨만큼이나 읽기 뻑뻑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한국어 독자들에겐 해당사항이 없다. 아직 <정치적 무의식>조차 번역돼 있지 않으니까(해서 <서설>이 먼저 나오는 상황 자체는 코믹하다). <정치적 무의식>? '태생적으로 중요성을 지닌 한 권의 책'이다. '태생적으로'는 'seminally'의 번역인데, 직역하는 '씨눈이 될 만한'이란 뜻이다. 풍부한 열매를 거기서 기대할 수 있다는.

'매우 부담스러운 논의'는 'the very demanding argument'의 번역인데, 여기서 'demanding'의 사전적 의미는 '벅찬'이란 뜻이다. 제임슨의 논의를 압축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일이 저자의 능력에 비해 벅찬 일일 수 있다는 겸양의 표현으로 읽힌다. 물론 '매우 부담스러운 논의'는 오역이 아니며 사실에 부합한다. 실제로 이 번역서를 완독하는 건 상당히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어서 저자는 왜 이런 류의 '안내서'(introduction)가 필요한가에 대해서 설명한다. 물론 복잡한 이유는 아니다. 아주 중요한 책이지만 그만큼 난해한 책이라는 단순한 이유에서이다. <정치적 무의식>은 과연 어떤 책인가? 왜 중요한가? "실로, 이 책은 서로 다른 다음의 두 가지 입장 가운데 어느 하나에 근거하게 됨으로써 발생적인 중요성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원문은 "Indeed, the book could claim a seminal importance on either of two separate grounds:"

번역문은 우리말로도 비논리적이다. <정치적 무의식>은 두 가지 서로 다른 근거에서 각각 '배아적 중요성'을 갖는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즉, '어느 하나에 근거하게 됨으로써'가 아니라 '어느 쪽으로도'란 뜻이다. 그 두 가지 입장/근거란 무엇인가?

"그 두 가지 입장이란, 알튀세르 저작으로부터 비롯된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부활을 영어로 된 문화적 연구물들에 확대하고자 한 최초의 지속적 시도로서, 그리고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질 들뢰즈 같은 사상가들이 경쟁적으로 전개한 여러 프로그램들을 확장된 마르크스주의 속에 포함시키고자 하는 독창적이고 강력한 시도로서의 입장 그것이다."

요컨대 (1)알튀세르적 마르크수즈의를 영어권 문화연구로 확장시키고자 한 시도로서, (2)데리다와 푸코, 들뢰즈 등의 경쟁적인 프로그램을 확장된 마르크스주의 속에 포섭하고자 한 시도로서 <정치적 무의식>은 의의를 갖는다는 것. 거기에 "지금까지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자들에 필적할 만한 사람으로서 영어로 글쓰기 작업을 하는 사람은 제임슨이 유일하다."(18쪽)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워낙의 그의 책들이 난해하기 때문에("최근 그의 사상은 계속해서더 해결하기 어려워지고 복잡해졌으며,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더욱 우회적이고 압축적인 것이 되고 있다") 안내서가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하지만, 제임슨이 어렵다는 단순한 사실, 혹은 영어로 저술하는 사람들에게 좀더 평이한 영어로 된 안내서가 필요하다는 단순한 사실이 데리다와 라캉 같은 저술가들의 난해함에 대해 몹시 화가 나 있는 사람들을 격분케 할는지 모른다. 그러한 저술가들에 대하여 항상 질문받게 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영어로 저술하는 사람들은 왜 자신이 의미하는 바를 밝히고 말할 수 없는가?"(19쪽) 

그러니까 데리다나 라캉의 난해함도 부족해서 제임슨까지 머리 아프게 하느냐란 불평이 나올 만하다는 것. "왜 그 인간들은 그런 식으로 쓰는 거야?"(버럭) 거기에 한술 더 뜨는 건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이다. '평이한 한국어'로 옮겨질 수는 없었던 것일까? 원문은 이렇다: "Why, to ask the question that always gets asked about such writers, can't he just come out and say what he means?"(10쪽)

번역문은 'to ask-'하는 삽입문을 목적을 가리키는 부정사구문으로, '질문(question)'를 '문제'로 오독함으로써 혼란을 자초했다. 다시 옮기면, "데리다나 라캉 같은 저자들에게 항상 던져지는 질문을 그에게도 묻자면, 제임슨은 왜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순명쾌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인가?" 

저자는 "데리다가 여기서 말하려는 게 뭐지?"라고 친구들이 물었을 때 설명하고자 애를 쓰면서 느꼈던 피로감을 되새기면서 이렇게 정리한다. "나는, 의미에 대한 허위이론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만 자기가 의미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다고 진술할 수 있다는 것이 데리다가 말하고 있었던 바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코 제임슨은 그 점을 직접 말하지 않았으며, 그리고...(이것들이 우리가 느꼈던 좌절이다.)"

그 '좌절감'을 그대로 전달해준다는 점에서 번역문은 정서적인 '직역'에 가깝다. 마지막 문장의 주어가 '제임슨'이 아니라 '데리다'란 사실만 빼면. 원문은 이렇다: "What Derrida was saying, I later realized, was that  you can come right out and say what you mean only if you've got a false theory of meanng, but even so, he never said that directly, and...(There are the frustrations one felt.)"(11쪽) 그리고 다시 옮기면, "내가 나중에 깨달은 바이지만, 데리다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가 의미에 대한 잘못된 이론을 갖고 있을 경우에만 단순명쾌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정리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실상 데리다는 결코 직접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으며, 게다가...(이런 것이 우리가 느끼는 좌절감이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 것인가? "<그라마톨로지> 그리고 <정치적 무의식>에 똑같이 제기된 문제는 다름 아닌 법규로서의 문체 문제이다: 알리고자 애쓰고 있는 것을 말해줄tells 뿐만 아니라 보여주기도shows 하는 글쓰기 방식." 여기서 '법규로서의 문체'는 'style as enactment'의 번역인데, 이후에도 여러 차례 등장하는 이 문구에서 'enactment'는 '법규'가 아니라 '연기(演技)' 혹은 '공연'이란 뜻이다. 메시지를 "말해줄 뿐만 아니라 보여주기도" 한다는 게 그런 '연기로서의 문체'를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체는 데리다의 경우 지시적/도구적 언어관에 근거하고 있는 '단순명쾌하게 말하기'에 대한 회의/의문에서 비롯된다. "반면에 제임슨에게 있어서 법규(*연기)로서의 문체 문제는 이론과 실천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문제이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그 평이한 문체는, 모든 진실들이 미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불분명해야 할 어떤 필요성도 없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투명한 문체이다."(20쪽) 곧 '평이한 문체'에 대한 요구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라는 것. 

"어떤 책을 통해 인간의 정신이 이루어내는 진보에는 기쁨보다 고통이 훨씬 많다고 제임슨 박사가 말했다. 그는 소설이나 미스터리 이야기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지적 산문이라 부르고자 하는 것에 관해서 18세기적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변증법적 충격에 의해 제임슨이 의도하는 바에는 그러한 종류의 고통, 즉 어떤 어려운 논의를 따라가고자 하는 경우 우리 모두가 느꼈던 고통이 포함되어 있다."(21쪽)

'그러한 종류의 고통(that sort of pain)'에서 'that'이 강조돼 있어서(번역문에는 누락돼 있어서) 굵게 처리했다. 한데, 이런 번역문에서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어려운 논의를 따라가고자 하는 경우'에 느끼는 고통과 무관하다. '존슨 박사(Doctor Johnson)'가 난데없이 '제임슨 박사'로 오기돼 있어서 겪는 어리둥절함이 그 원인이기 때문이다.   

'존슨 박사'란 별명으로도 흔히 불리는 이는 영문학의 거장 새뮤얼 존슨(1709-1783)이다(국내에는 그의 풍자적 산문집 <라셀라스>(민음사, 2005)가 번역돼 있다. 번역/소개된 걸로 치면 '거장'이란 말이 무색하군). 잠시 소개를 옮겨오면, "1709년 영국의 중부 지방인 스태퍼드셔 리치필드에서 서적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옥스퍼드의 펨브루크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가난으로 중퇴했다. 1737년 작가로서의 삶을 꿈꾸며 런던으로 거처를 옮기고 <산사의 잡지>에 의회 기사를 써주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잡지 <산책자>를 냈다. 풍자시 '런던', '욕망의 공허', 비극 <아이린> 등을 발표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1747년 방대한 사전 편찬 작업을 시작하여 <영어사전>을 혼자 힘으로 팔 년 만에 완성시켜 사전편찬자로서 명성을 떨쳤다. 이러한 문학상의 업적을 인정받아 이후 '존슨 박사(Dr. Johnson)'라 불렸다."

"그의 어머니가 사망한 해인 1759년 <라셀라스>를 집필하고, 1765년에는 셰익스피어 전집의 편찬을 완성하여 출간했다. 이후 십여 년간 정치 논설문 등을 발표했다. 만년에는 17세기 이후의 영국 시인 52명의 전기와 작품론을 정리하여 열 권의 <영국 시인전>을 펴낸 것으로 유명하다. 1784년 런던에서 숨을 거두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되었다. 1979년 그의 열렬한 추종자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제임스 보즈웰은 그의 전기를 출판했다. 저술뿐 아니라 재치 있는 논객으로도 유명했던 그는 셰익스피어 이후 영국 문학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인물로, 1995년 '워싱턴포스트'는 그를 지난 천 년의 역사에서 최고의 저자로 선정하였다."

이 만한 인물을 '제임슨 박사'로 오기하는 건 무성의의 소치로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다. 이런 불유쾌한 고통과 달리 제임슨이 염두에 두고 있는 고통은 보다 고차적이다. "헌신적인 마르크스주의자가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또 한 가지 종류의 고통, 즉 유일한 탈출구가 정치적-사회적 혁명에 있을 뿐인 하나의 악몽이 역사라고 생각하는 그런 고통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고통 역시 제임슨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읽는 대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 이 같은 안내서가 그 효과를 파괴하는 것은 아닌가?" 물론 그렇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문학형식으로서의 시에 대해 말한 바와 같이, 변증법적 충격은 해석을 함으로써 소멸되는 것이다." 원문은 "dialectical shock is, as Robert Frost said of poetry, what is lost in translation." 프로스트는 물론 '가지 않은 길'의 시인 프로스트를 말한다. 내 기억에 그는 "시란 번역하면 잃어버리는 것"이란 식으로 정의한 바 있다(그러니까 '해석'이 아니다. 왜 임의로 번역하는가?). 도울링이 얘기하는 것은 만약 읽기 어려운 제임슨을 읽기 편하게 옮겨놓으면 고통이 경감되는 만큼 그 효과도 상실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이어지는 문장은 저자의 당부로 읽어도 무방하겠다.

"하지만 이 안내서를 통해서 <정치적 무의식>에 다가온 독자는 보다 어려운 제임슨의 논의를 있는 그대로 계속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곧, 이 <서설>을 읽고 나서, 혹은 이 <서설>과 함께 반드시 <정치적 무의식>을 읽어야 한다는 것. 결코 안내서가 원저를 대신할 수는 없으며, 그렇게 읽는 것은 원저에 대한 배반이 될 것이다. 배신, 배반...  

이제까지 읽은 것은 8쪽 짜리 서문의 절반 정도이다. 이런 식으로 뒤뚱거리면서 나머지 절반쯤을 더 읽어가야 '서문'을 다 읽게 된다. 그런 수고를 감내할 용의는 있지만 시간은 나의 편이 아니어서 '브리핑'은 이만 줄인다. 책을 덮으려다가 잠시 훑어본 '옮긴이 해설'(저자 서문보다도 앞에 위치해 있다).

"여러 문헌의 도움을 받아 도울링의 저술 의도에 부합하는 번역이 되고자 했으나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역자에게도 이 번역은 'demanding work'였던 것.

"이 번역서를 읽을 때, 문맥의 흐름이 자주 끊어지는 짜증스러움을 누구나 가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번역의 난삽함도 난삽함이지만 당혹스러울 정도의 (:)과 (;)의 사용은 독서의 매끄러움을 방해할 것이 분명하다." -->역자는 '귀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본 의도를 살리기 위해 특별히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최대한 원문의 문맥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잘 되진 않았다?

"곳곳에 산재하고 있을 오역은 전적으로 역자의 책임이며 관심 있는 선학과 동학의 질정으로 꾸준히 바로잡아 걸 것을 약속한다." -->2000년 가을에 책이 나왔지만 그간에 '관심 있는 선학과 동학의 질정'은 전혀 없었던 모양이다(짐작엔 이 책을 구입한 사람도 드물겠지만 완독한 사람은 아예 없을 것이다. 차라리 <정치적 무의식>을 완독한다면 모를까). 아직 초판도 다 나가지 않은 듯하니 '꾸준히 바로잡는' 일은 언제 가능할는지...

07. 0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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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2-24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로쟈님의 예리한 메스로 분해되기 직전이네요! 원서는 제본해 놓았습니다만. 로쟈님의 분해가 기대됩니다. :)

로쟈 2007-02-24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도 빠르시네요(말씀드린 대로 대조해서 읽지 않으면 곳곳에서 난감한 번역서입니다). 두어 주 전에 꺼내놓았다가 책정리하면서 다시 치우려고 하는데, 번역이 좋지 않다고 뱉어놓은 말이 있어서 잠시 주워담으려고 합니다. '기대'하실 것까진 없구요.^^;

기인 2007-02-24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불유쾌한 고통과 달리 제임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고통은 보다 고차적이다.
-> 제임슨이
What Derrida was saying, I later realized, was that wou can come right out and say what you mean only if you've got a false theory of meanng, but even so, he never said that directly, and...
에서 wou -> you 입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후배들이 석사논문 발표하는 것을 보러 갔는데, 후배들 공부하는 것 보니까, 공부할 맘 나던데요 ^^ 선배 중에 김동인으로 박사논문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서 김윤식 선생의 '콤플렉스론'에 대한 비판으로서의 훌륭한 김동인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ㅎ (파란 여우님 김동인 글에 대한 댓글을 보고 ^^ )

로쟈 2007-02-24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정했습니다. 훌륭한 '김동인'인가요, 아니면 '김동인론'인가요?^^
 

이번주 언론의 북리뷰에서 가장 크게 다루어진 책은 프랑스 사회학자 이브 드잘레이와 미국의 법학자 브라이언트 가스가 공저한 <궁정전투의 국제화>(그린비, 2007)이다. 며칠전 한 지인으로부터 책을 얻었는데, 제목은 생소하지만 리뷰기사를 하나만 읽어봐도 무슨 내용인지 다 짐작된다. '궁정전투'란 말이 "국가권력을 둘러싼 지식투쟁의 양상"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새로울 것도 없고 남의 나라 얘기도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의 의의는 그러한 '상식'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는 것(그러니까 이런 건 '머리'로 쓰는 책이 아니다). 경향신문의 리뷰기사를 '조감도' 삼아 읽어두기로 한다. 보다 자세한 리뷰는 한겨레의 기사를 참조할 수 있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192298.html)

한국일보(07. 02. 24) 美유학파들이 재생산하는 '세계의 미국화'

정치학 강사 A씨는 어느 술자리에서 끝내 본심을 들키고 말았다. “내가 박사를, 프랑스가 아니고 미국에서 했어야 했는데…”라는 푸념과 함께.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학자들이 즐비한 강단에서 몇 년째 자리를 못 잡고 강사직을 전전해야 하는 현실에서 ‘소수자’의 비애를 느꼈기 때문이다. 대학가라면 어디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jacket image]

‘세계의 미국화’를 논하는 게 새삼스럽지 않은 요즘이다. 여타 국가의 제도와 인적 구성이 미국적인 것을 표준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학문 체계와 지식 엘리트 계층도 예외가 아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이브 드잘레이는 미국의 학문을 수용한 유학파 지식인이 자국에서 특권 엘리트 계층으로 자리잡는 과정을 남미 사례를 통해 자세히 보여준다.

2002년 별세한 사회학의 거장 피에르 부르디외를 사사한 드잘레이는 지배 계급 자체보다는 위계가 발생하는 원칙에 주목했던 스승의 지론을 계승, 거시적 논의보다 미시적 관찰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두 공저자는 연구 대상국의 정부 대학 로펌 싱크 탱크에 소속된 주류 지식인을 300명 넘게 인터뷰하는 공을 들였다.

미국 시카고대학 경제학파가 길러낸 칠레의 ‘시카고 보이스’를 살펴보자. 1950년대까지 국내에서 열세를 보이던 시카고 학파는 공화당 보수주의자들과 연합해 학문 수출에 나섰다. 이들은 국제 개발처와 거대 재단들을 활용, 칠레 산티아고 가톨릭대학에 투자했다. 자연스레 이 대학 경제학도들은 시카고대학으로 건너가 하이에크, 프리드먼 등이 기초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공부하며 세력을 키운 뒤 1973년 쿠데타로 집권한 피노체트 정권과 손을 잡았다. 국가 개입 축소, 민영화 등 정책 아젠다를 생산하며 이들은 옛 엘리트들을 붕괴시키려는 군부 독재 정권에 기여했고 스스로 특권 계층의 공석에 올랐다. 1980년대 외채 위기 이후 브라질에 불어 닥친 탈규제·투자 개방 바람도 칠레 사례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경제학과 더불어 가장 잘 팔리는 미국의 학문 체계는 법률이다. 미국 법률의 장이 지닌 특징은 법률가들이 대형 로펌 및 대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도 시민 운동이나 무료 법률상담 같은 공익적 활동을 중시하며 존재의 정당성을 확보해왔다는 점이다. 이를 습득한 일군의 남미 법률가들은 1970, 80년대 비민주적 자국 정부에 맞서 국제사면위원회와 손잡고 국제인권법을 무기로 삼는 등 미국식 인권 운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군부 독재가 속속 무너지면서 헤게모니를 쥐게 된 이 엘리트 법률가들은 금세 표변하며 보수화됐다. 여기에 더해 외채 위기를 계기로 남미에 신자유주의 체제가 급속히 도입되자 미국식 경제 관련법에 정통한 법률가들 역시 국가 권력의 한 축으로 부상했다.

저자 드랄레이는 한국판 서문을 통해 자신의 논의가 아시아에도 유효하리라 조심스레 예상한다. 일례로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권과 결탁한 ‘버클리 마피아’의 출세 경로는 칠레의 ‘시카고 보이스’의 경우가 고스란히 겹친다는 것. 저자들은 전문 지식인들이 국가 권력을 놓고 벌이는 투쟁이 옛 궁정 귀족들의 정치 다툼과 닮았다며 제목에 ‘궁정 전투’(palace wars)라는 단어를 넣었다. 한국의 현대 정치사를 새삼 돌아보게 하는 분석틀이다.(이훈성 기자) 

07. 02. 24.

P.S. 찾아보니 두 공저자가 <궁정전투의 국제화> 이전에 쓴 전작으로 <미덕의 거래(Dealing in Virtue)>(1996)란 책이 있다. '국제 무역 중재와 초국가적 법질서의 구축(International Commercial Arbitration and the Construction of a Transnational Legal Order)'이 부제인데, 얼추 책의 내용을 짐작하게 한다. 아래는 그 내용소개이다. <궁정전투의 국제화>가 좋은 반응을 얻어서 마저 번역되면 좋겠다(로펌들은 싫어하려나?).

In recent years, international business disputes have increasingly been resolved through private arbitration. The first book of its kind, Dealing in Virtue details how an elite group of transnational lawyers constructed an autonomous legal field that has given them a central and powerful role in the global marketplace.

Building on Pierre Bourdieu's structural approach, the authors show how an informal, settlement-oriented system became formalized and litigious. Integral to this new legal field is the intense personal competition among arbitrators to gain a reputation for virtue, hoping to be selected for arbitration panels. Since arbitration fees have skyrocketed, this is a high-stakes game.

Using multiple examples, Dezalay and Garth explore how international developments can transform domestic methods for handling disputes and analyze the changing prospects for international business dispute resolution given the growing presence of such international market and regulatory institutions as the EEC, the WTO, and NA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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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2-24 23:13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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