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침신문을 미리 훑어보려니까 눈에 띄는 기사가 있다. '한국번역비평학회'가 출범한다는 소식이다. 우리 출판문화에서 번역서 갖는 비중(인문서의 경우 거의 절반 이상이지 않나 싶다)을 고려할 때 오히려 뒤늦은 감이 들 정도이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된 번역문화의 정착을 위해서 필요한 첫걸음이 내디뎌지기를 기대한다.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는 않지만, 번역문화에 대한 관심이 확장되면서 번역자에 대한 사회적 대우도 개선되고 번역 업적에 대한 학계의 인식도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찾아보니, 지난달초에 담비에도 소개기사가 게재되었었다.

   

한국일보(07. 03. 02) "번역 업그레이드” 학술적 비평 첫 시도

국내 발행 도서 중 번역서 비중이 30%를 훌쩍 넘었지만 번역의 질을 담보할 장치는 아직 미비하다. 최근 몇몇 교수와 연구기관이 국내의 낮은 번역 수준을 비판했고 일부 네티즌은 오역 사례를 꾸준히 지적하고 있지만 대체로 산발적·개인적 차원에 그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번역 비평을 표방한 첫 학술 단체인 한국번역비평학회(회장 황현산 고려대 교수)가 3일 창립학술대회를 열고 본격 출범한다.

◆ 단순한 오역 비평을 넘어

어문학 교수들이 주축을 이룬 번역비평학회는 번역학 체계 정립과, 문학을 포함한 인문학 전반의 번역물 평가기준 마련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번역 실무나 통번역 교육에 초점을 맞춘 기존 번역학회와는 성격이 다르다. 학회 이사인 이영훈 교수(고려대)는 “지금까지 번역은 학문적 활동보다 기술적 작업으로 평가 받아온 게 사실”이라며 “해묵은 오역시비의 덫에 걸린 번역비평 방법을 다양화·체계화해 번역 수준을 향상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학회는 번역자의 주체적 해석을 강조하는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번역 이론 발표를 맡은 전성기 고려대 교수는 “번역자는 원텍스트를 정보 차원에서 읽는 것을 넘어 보다 깊이 이해하려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며 작품을 재구축하는 번역문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문 번역가이자 또 다른 발표자인 정혜용 박사는 “(원문에 대한) 충실성과 가독성은 더 이상 번역의 규범이 될 수 없다”면서 “작품마다 지닌 고유한 논리를 읽어내 자신의 모국어로 되살리는 존재가 번역가”라고 주장했다.

국내 정상급 번역가들도 학술대회에 초청된다. 황보석(영어) 김난주(일본어) 이인숙(불어) 권미선(스페인어) 등 각 언어권 작품에서 손꼽히는 번역가들이 ‘번역 환경과 해결방안’ ‘번역의 어려움’ 등을 주제로 발표하고 참석한 학자들과 토론한다. 평소 번역 환경의 문제점을 비판해왔던 박상익 우석대 교수와 출판평론가 표정훈씨도 참석한다. 이에 대해 이영훈 교수는 “번역비평의 대상인 일선 번역자들에게 일방적 잣대를 들이대기보단 현장의 여건과 애로사항부터 살피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자리”라고 설명했다.

◆ 번역비평 무크지 발행

학회는 한국퀘벡학회와 공동으로 11월2~3일 ‘퀘벡과 번역’이란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영어·불어가 공용어인 캐나다는 일찍이 번역 이론과 실무가 발달했고, 특히 퀘벡은 번역비평 부문에서 가장 선구적인 지역이다. 또 학회는 올해부터 1년에 두 차례 정도 번역비평 무크지를 펴낼 계획이다. 학술이사인 조재룡 성균관대 교수는 “번역 관련 대담, 번역비평 에세이 등 딱딱하지 않은 내용으로 꾸밀 예정”이라며 “유명 고전작품의 여러 번역본을 비교 평가하고 신간 번역서를 비평하는 코너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번역 현장 일각에서 학회가 공언한 비평 활동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김난주씨는 “번역가의 언어 선별은 병아리 감별사의 작업과 닮았다”며 “번역가 개인의 감각적 역량에 획일적 기준을 적용한다면 결과적으로 무리가 따를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표정훈씨도 “학계에서 번역을 진지하게 다루겠다는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향후 학회의 비평 활동이 열악한 번역현장 여건을 도외시한 채 이뤄진다면 오히려 번역에 대한 신뢰만 더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이훈성기자)

담비(07. 02. 05)  번역비평학회 창립 기념 학술대회

번역과 비평이 만난다? 늘 쏟아졌던 번역물이지만, 지금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번역 교양물들이 쏟아지고 있는 시대다. 번역은 반드시 오역논란을 부른다. 번역이 어렵기도 하지만, 그만큼 불성실하게 이뤄진다는 증거는 날이 갈수록 더해져가는 느낌이다. 출판계의 대필관행과 학계의 표절관행으로 우울한 이 시점에 번역비평을 본격적으로 표방하는 학자들이 있어 반가운 마음이다.

오는 3월 3일 한국번역비평 학회가 공식 창립되면서 기념 학술대회가 열린다. “번역비평,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한국문학번역원, 고려대학교 언어문화연구원, 한국학술진흥재단 번역인문학 프로젝트 연구팀과의 공동 개최로 진행될 3월 3일 학술대회는 1부 ‘번역 이론’, 2부 ‘번역 실천’, 3부 ‘번역 현장’으로 구성되어, 국내 번역 현황을 점검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나아가 번역이론의 필요성과 출판 현황 전반을 살펴볼 예정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학회 창립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학술원 회원이신 원로불문학자 정명환 교수와 한국문학번역원 윤지관 원장의 기조강연으로 시작된다. 번역이론 정립을 위하여 마련된 1부에서는 다년간 번역문법과 번역학 정립을 위해 고군분투해온 전성기 고려대 교수와 파리 통번역대학원 박사로 번역 이론 및 실천에 왕성한 활동을 보여온 정혜용 박사의 발표가 마련되어 있다.

‘번역 실천’을 주제로 마련된 2부에서는 황보석, 김난주, 이인숙, 권미선 등, 국내 최고의 번역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번역의 경험과 어려움을 함께 논한다. 한편 3부에 발표가 마련된 표정훈 출판평론가와 박상익 교수는 정확한 진단과 날카로운 관점을 바탕으로 번역 전반의 문제점을 숙고해온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적인 논객들이다. 이와 아울러 분과별 발표가 진행되기 전, 한국불어불문학의 발전에 초석을 놓은 학자로 평가받는 정명환 교수와 윤지관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의 기조연설, 번역비평학회 초대 회장으로 추대된 황현산 고려대 교수의 축사가 마련되어 있다.  

한국번역비평학회에서는 학술대회와 동시에 학술발표회의 원고들을 수합하여 전문 무크지를 발간하기로 결정하였다. 대학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과 소장학자들의 번역전반에 관한 성찰을 중심으로 무크지를 운영할 것이며, 국내를 대표할 수 있는 번역가들과 번역이론가들의 대담도 기획 중에 있다.

11월 2일-3일 열리는 학술대회는 한국퀘벡학회와 공동으로 주관하여 국제학술대회로 규모를 확장할 예정이다. 인문학 위기 타개와 번역 비평의 활성화를 위해 지난 해 10월 고려대학교에서는 번역인문학 국제 학술대회가 개최된 바 있으며, ‘퀘벡과 번역’이란 주제로 열리는 11월 국제 학술대회는 그 연장선상에서 보다 폭넓고 다양한 국ㆍ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한 자리에 모을 예정이다.(리뷰팀)

학술대회 세부 일정

09:30-10:00 : 접수

1부 : 개막 행사 (10:00 - 11:20)  사회 : 한대균(청주대)
10:00 - 10:10 : 개회사 - 황현산(번역비평학회장, 고려대)
10:10 - 10:40 : 기조강연 1 - <번역에 관한 몇 가지 고찰>, 정명환(학술원회원)
10:40 - 11:10 : 기조강연 2 - <번역의 정치성>, 윤지관(한국문학번역원장)
11:10 - 11:20 : 휴식

2부 : 번역이론 (11:20 - 12:40)   사회 : 이영훈(고려대)
11:20 - 12:00 : <번역문학비평을 위하여>, 정혜용(서울대 불문과)
   토론자 : 김윤진(한국문학번역원)
12:00 - 12:40 : <인문학번역과 번역문법>, 전성기(고려대 불문과)
   토론자 : 송태효(고려대 레토릭연구소)

* 12:40 - 14:00 : 중식 (고려대 국제관 1층 교직원식당)

3부 : 번역 실천 (14:00 - 16:40)  사회 : 김재혁(고려대)
14:00 - 14:40 : <우리 번역의 현주소와 개선 방안>, 황보석(미국문학 번역가)
   토론자 : 정혜윤(기독교방송국 PD)
14:40 - 15:20 : <일본 문학번역의 함정들>, 김난주(일본문학 번역가)
   토론자 : 유숙자(일본문학 번역가)
15:20 - 15:30 : 휴식
15:30 - 16:10 : <한국문학 프랑스어 번역의 난점들>, 이인숙(한․불문학 번역가)
   토론자 : 고봉만(한길사 기획위원)
16:10 - 16:50 : <스페인어 문맥의 함축적 성격과 번역의 어려움>,
       권미선(스페인문학 번역가)
   토론자 : 송상기(고려대)
16:50 - 17:00 : 휴식

4부 : 번역 출판과 현장 (17:00 - 18:20)  사회 : 조재룡(성균관대)
17:00 - 17:40 : <번역자의 조건들>, 박상익(번역비평가)
17:40 - 18:20 : <출판제도 안에서의 번역>, 표정훈(출판평론가)

07. 03. 01.

P.S. 교수신문에 한국번역비평학회 초대회장 황현산 교수와의 인터뷰기사가 게재되었기에 마저 옮겨놓는다. 기사를 읽으면서 받게 되는 인상은 불문학자이면서 여러 권의 문학 번역서를 낸 역자답게 황교수의 고민은 상당히 고차원적이라는 것이다. '상투적인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대개의 경우 우리 번역서들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상투적인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번역의 미학이나 윤리, 철학을 따지기 이전에 일단 '번역' 자체가 제대로 안되고 있는 것이 내가 보고 겪는 현실이다. 아마도 읽는 책들이 서로 다른 모양이다...   

교수신문(07. 03. 02) 한국 번역, 오역시비에 그쳐…상투적 번역이 더 문제”

한국번역비평학회(회장 황현산)가 지난 3일 고려대에서 ‘번역비평,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창립 학술대회를 열었다. 번역에 관한 이론과 현장경험이 만난 의미 있는 자리였다는 평가다. 지난달 27일 학술대회에 앞서 학회장인 황현산 고려대 교수(불어불문학과·사진)를 만나 우리나라 번역의 문제점 및 번역비평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황 회장은 지난해 9월 학회 창립 이후 초대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번역을 이론화하고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계기를 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학회를 만들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일반적으로 번역을 ‘우리말로 돼 있지 않은 텍스트를 우리말로 바꿔 소개하는 작업’ 정도로 여기는데, 이는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번역작업을 하다보면 두 언어에 관해 어느 때보다 깊이 있는 성찰이 이뤄진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시나 소설 같은 언어창작물 보다 오히려 번역이 담당하는 역할이 커요. 언어의 모든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번역은 인문학의 모든 주제와도 연결돼 있습니다.”

번역을 둘러싼 잘못된 인식은 번역비평의 한계로 이어진다. 황 회장은 ‘번역담론’의 문제를 꼬집었다. “한국의 번역은 늘 오역시비에서 그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을 통해 탐구하고 알아야 할 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치게 되죠. 번역은 언어를 분석하기에 굉장히 좋은 재료인데, 아직 우리나라 번역은 그 단계에 이르지 못 했다고 봅니다.”

본지가 지난 2005년부터 연재한 ‘고전번역비평- 최고의 번역본을 찾아서’를 언급하자 황 회장은 칭찬과 함께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번역의 중요성은 물론, 번역을 객관화하고 공공연히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데 교수신문이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연재물을 보면서 “오역이 많다, 잘 읽힌다” 정도의 논의를 넘어 체계적인 번역 담론을 마련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무엇보다 오역시비에 앞서 우리나라 번역작업이 안고 있는 근본장애로 ‘상투적인 번역’을 지적했다. “우리말로 쓴 것보다 더 우리말 같은 번역들”은 번역의 중요한 힘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황 회장은 “상투적이지 않다는 것은 무한한 해석의 여지를 갖고 있다는 뜻인데, 소설이나 시에선 낯선 말도 용납하면서 유독 번역에서 낯선 용어가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고 비판한다. 이어 “낯선 것을 받아들이고 끌어안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상투적인 번역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번역에 대한 인식부터 바꾸기 위해 학회는 갈 길이 멀다. 황 회장도 “공개적, 객관적으로 번역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학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이번 학술대회는 번역이론가와 현장번역가가 만나 번역에 관한 인식을 같이 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자평한 그는 “1년에 두 차례 열리는 학술회의, 국제학술세미나, 월례발표회 등을 통해 번역에 관한 문제들을 다각도로 성찰해 나가겠다”고 학회의 향후 계획을 밝혔다.(김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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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0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문학에서는 논문 쓰는 것보다 번역이 훨씬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우리나라의 인식은 아직 한 참 먼 것 같아요. 미국의 명문대에서는 박사학위 논문 절반이 고전텍스트 번역이라고 하던데..

로쟈 2007-03-02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학계의 고질 같습니다. 대학원생들 시켜서 주로 대리번역들을 하다보니, '업적'으로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젠 좀 달라져야지요...

jouissance 2007-03-02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문제를 제일 앞서, 제일 줄기차게, 재기했던 사람이 김용옥이죠. 그래요, 이젠 달라지겠죠. 달라져야 하구요. 회장(황현산)은 제대로 뽑은 것 같네요. 황현산이 2005년에 출간한 말레르메 <시집>은 번역의 전범이라 할만하죠...

로쟈 2007-03-02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절차탁마 대기만성> 등에서부터 힘주어 강조했던 것이죠. 한데, jouissance님 전공이 불문학이신가 보네요.^^

jouissance 2007-03-02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문학을 좋아하긴 하지만 전공은 아니랍니다. 누가 전공을 물어보면 말하기가 조금 뭐해요. 하도 다닌듯 안 다닌듯 그럭저럭 다녀서 말입니다...^^

기인 2007-03-02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번역. 복잡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중간에 예기치 않은 펌질을 하게 됐지만 내가 찾으려고 했던 박노자의 칼럼은 '이슬람의 이광수, 루시디'이다. 그의 두번째 책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한겨레출판, 2002)에 재수록되어 있는데, 그맘때쯤 '강의자료'로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문득 이 칼럼이 생각난 것은 이달의 '사회적 독서' 목록에 이광수의 <무정>을 올려놓은 데다가 마침 루시디(루슈디)의 신간 <분노>(문학동네, 2007)가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박노자의 칼럼제목을 뒤집어 '한국의 루시디, 이광수'로 읽을 수 있다면 <분노>는 "만지면 만질수록 그 증세가 덧나는 그런 상처"(김현) 같은 이광수를 읽기 위한 자료로서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먼저, 칼럼을 다시 일독해본다.

한겨레21(01. 11. 04) 이슬람의 이광수, 루시디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의 사관에는 ‘도전과 응답’이라는 도식이 중심적인 위치에 놓여져 있다. 각 문명권이 그 역사의 전환기에서 내부적 모순이나 외부 세력의 ‘도전’을 받게 돼 있고, 그 ‘도전’의 형태·심도·규모와 자신의 능력에 따라서 그 ‘응답’을 제시한다는 논리다. 그 논리에서, 사회 현상들의 의미와 인과론적인 뿌리를 내외부적 상황의 ‘도전’에서 찾아야 한다는 역사 연구의 접근 방식이 성립된다. 필자는 토인비의 관념주의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않지만 세상의 표피만 보지 말고 ‘도전’이라는 ‘뿌리’를 중시하라는 신중한 논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완전히 무시된 ‘도전과 응전’

토인비의 ‘도전·응답론’ 이야기를 왜 꺼내게 됐는가? 지금 노르웨이를 포함한 북구사회에서는 반전의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경우에 평상시에 주로 우파를 두둔해주는 루터교회(노르웨이의 국교)마저도 주요 이슬람 단체와 공동으로 강한 반전 성명서를 낼 정도이다. 주요 좌익 정당인 노동당의 대중적 기반인 전국 노총(LO, 약 80만명의 노조원을 대표함) 등의 핵심적 단체들이 확고한 반전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보수적 일간지마저도 미국의 전쟁을 ‘중앙아시아의 자연자원에 접근하기 위한 인종주의적 민간인 말살·인권침해’로 보고 있는 만큼, 인종차별 방지·인권옹호 운동가들이 앞장서서 전국적으로 데모를 이끌어나간다. 보수적 일간지에서마저도 “내 식구들을 이유도 없이 죽인 미국을 나는 평생 용서못할 것”이라는 미국폭격의 희생자 유가족들의 인터뷰들을 선보인다.

그런데 이번 사태의 책임을 전적으로 아랍·이슬람 세계에 물어 미국 행동의 ‘당위성’을 암시하는 한 저명한 지식인의 논문이 나와 반전 운동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그 논문의 영향력이 크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그 저자가 다름아닌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1947년생)라는 인도의 이슬람 출신 영국 문호이기 때문이다. 몇 작품이 각급 학교의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명성을 떨친 그는, <악마의 시>라는 이슬람의 교주 마호메트를 풍자한 포스트모던 소설로 1980년대 후반부터 이슬람 극우의 극단적인 노여움을 산 뒤에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는데, 미국의 <뉴욕타임스>(11월2일치)와 노르웨이의 <다그블라데트>(11월3일치)에 실린 그 논문의 비중은 매우 높다. 그러나 찬란한 문체로 쓰인 그의 논문을 읽어가면서 느낀 것은, 사회 현상의 표피 뒤에 숨겨져 있는 ‘도전에 대한 응답’이라는 인과론적 구조를 루시디가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루시디의 논문은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그게 바로 이슬람이 문제다”는 제목은, “이슬람과의 전쟁이 아니고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이다”는 식의 미국 지도부 궤변의 맹점을 찌른다. 루시디의 진단의 핵심은, 전쟁의 원인이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반(反)서구적·반(反)근대적 편집병’에 있다는 것이다. 루시디가 생각하는 ‘편집병의 증후군’은, 이슬람주의를 이질시·적대시하는 대부분의 서구의 보수 논객들이 많이 언급하는 신에 대한 공포심리의 강조와 여성인권의 부정, 성직자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의 강요와 현대 대중문화의 절대적 부정 등이다. 한마디로 루시디는 이슬람주의를 ‘근대에 대한 중세 복고적·정신병적인 반란’으로 규정하고 이 반란이 마땅히 패배해야 한다고 결론내린다.

반전운동 확산에 찬물을 끼얹다

루시디의 논리가 헌팅턴의 악명높은 ‘문명 충돌론’과 확연히 다른 점은, 그가 이슬람주의를 ‘문명’도 아닌 단순한 ‘집단 정신질환’으로 보고, ‘이슬람 문화권의 이슬람주의로부터의 해방’을 외친다는 것이다. 수백만명의 이슬람 신도들이 동시에 ‘집단 정신질환’에 걸린 이유로서, 루시디는 미국의 ‘부패한 독재정권에의 지원’도 빠뜨리지 않고 언급하지만, 주된 이유로는 ‘근대에의 적응 실패, 종교를 사생활적인 부분으로 보는 개인주의 수용에의 실패’ 등을 제시한다. 요약하자면 서구적 근대를 제대로 자기화하지 못한 자신들이 결국 ‘문명’한 인류를 위협할 만한 집단 정신질환이 생길 토양을 만들어낸 만큼, 반성하여 ‘근대화’에 좀더 힘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다.

아프간을 공격하는 미군과 영국군을, 루시디는 물론 공개적으로 ‘치료해주는 의사’로까지 칭찬하지 않지만 그가 이번의 전쟁에 ‘정신질환의 치유’라는 명분을 부여하는 것이 문맥상으로 파악된다. 지성인답게 루시디는 우선적으로 “우리의 공동적인 책임 유기에 대한 이슬람 세계 지성인의 반성”을 촉구하고 나선다. 식민주의 침략의 책임이 열등하고 잘 개화되지 못한 조선인들에게 있다는 개화 지상주의자 출신의 친일파 윤치호나 이광수의 논리와 놀랍게도 닮은 루시디의 논지는, 이미 일부의 보수 노르웨이 독자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이로 봐서는 그의 글이 반전 운동의 확산을 억제하는 쪽으로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까지 되지 않는다 해도, 적어도 “이 전쟁에 명분이 있다”는 주장을 펴고자 하는 일부 우파와 극우들의 위치를 크게 강화시킬 가능성이 많다. 그들 ‘주전’(主戰)쪽에서 루시디의 ‘근대화 실패론’이 귀중하게 평가되는 이유는 외부인인 서구인이 아니라 이슬람 문화권의 내부인이 이슬람의 ‘내재적 결함’을 논한다는 것이다.

루시디의 글을 읽으면서 필자가 안타까웠던 부분은, 이슬람권 출신의 작가가 중동 상황의 표피만 보고 근본적인 문제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피상성과 그 글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이용될지에 대해 관심없는 무책임성이었다. 루시디가 이미 글머리에 언급했던 토인비의 ‘도전·응답론’만이라도 인식했다면, “근대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기에 이슬람주의라는 집단 정신병에 걸렸다”는 자기비하적이며 단순한 논리를 펴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상이 다 아는 서구·미국, 그리고 그 첨병인 이스라엘의 노골적인 침략과 약탈, 제국주의적 착취에 의한 ‘강요된 빈곤’ 이외에도 이슬람권이 20세기에 직면한 ‘서구의 도전’이 과연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의 지적인 도전 정도였는가?

서구적 제국주의적 ‘근대’가 중동의 후진성 심화라는 결과를 가져다준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루시디 자신도 미국에 의한 ‘중동 독재들의 지원’을 간단히 언급했지만, 이를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대부분 이슬람 국가 정권들의 전반적인 예속화와 대미 예속관계에 의한 부패한 독재의 영구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중동·북아프리카의 친미 독재정권의 대다수는 그 주민들에게 약탈자·폭군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몇천명의 주민들을 “이슬람 게릴라 지원을 했다”는 혐의로 살육한 알제리의 군사정권, 고문의 기술로 전세계적인 악명을 떨친 이집트의 독재,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장군도 정상적인 정통성의 부재를 미국의 원조로 메우고 있다.

친미 약탈정권의 희생자인 주민들이 결국 반미 운동의 중심지인 사원과 이슬람주의를 구심점으로 결집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국가가 부재하는 상황에서 과연 ‘집단 정신병’만으로 취급할 수 있는가? 과연 민중 복지와 교육, 그리고 전통 풍속의 옹호에 주력을 경주하는 모든 이슬람주의자들이 다 테러리스트인가? 그리고 친미 압제하에서 약탈적 정권의 희생자들이 힘을 모을 수 있는 또다른 구심점- 예컨대 좌익 정당이나 독립적 노조- 이 존재하는가?

용서받을 수 없는 ‘오만한 귀족주의’

물론 현재 뉴욕의 고급 주택가에서 살고 있는 루시디는(*지난 2004년에 루시디는 인도의 모델 겸 여배우 파드마 라크시미와 네번째 결혼을 했다. '신여성'에 대한 취향에 있어서도 루시디는 이광수와 닮은 듯하다), 언제나 고문과 암살의 위험하에서 압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운동 방식을 ‘정신병’으로밖에 보지 않는 것은 그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오만한 귀족주의이다. 그리고 과연 그는 양민들을 죽이는 미국 폭탄들이 중동인들로 하여금 사생활과 여성인권, 그리고 개인주의의 중요성을 가르쳐줄 것이라고 믿을 만큼 순진한가? 미국의 침략이 중동의 오히려 ‘저항적인 종교적 극우’들의 영향력만을 키울 것이라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는 사실이다.

루시디는 반전 운동의 무의미성을 암시하지만 사실상 그가 갈망한다는 ‘중동에서의 근대의 달성’은 반전 운동의 성공에도 크게 달려 있다. 반전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인 미국의 중동 독재 지원의 중지가 이루어져 중동에서도 민주화가 시작해야 그들이 공포·복종 심리를 떨쳐버리고 개인주의의 매력과 사생활의 귀중함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루시디가 이 단순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그가 속하는 포스트모던 문화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와 같은 ‘문화 귀족’들이 약자의 보호라는 문학인의 본연의 의무를 망각하고 제국주의에 대한 주구(走狗)적 역할을 하는 것이 사회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반제·반전 운동의 큰 흐름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교수·한국학)

칼럼에서 언급되고 있는 뉴욕타임즈 기고문(http://www.nytimes.com/2001/11/02/opinion/02RUSH.html?ex=1172898000&en=7a8a39033f2c46bf&ei=5070) 전문은 아래와 같다.

November 2, 2001

Yes, This Is About Islam

By SALMAN RUSHDIE

LONDON -- "This isn't about Islam." The world's leaders have been repeating this mantra for weeks, partly in the virtuous hope of deterring reprisal attacks on innocent Muslims living in the West, partly because if the United States is to maintain its coalition against terror it can't afford to suggest that Islam and terrorism are in any way related.

The trouble with this necessary disclaimer is that it isn't true. If this isn't about Islam, why the worldwide Muslim demonstrations in support of Osama bin Laden and Al Qaeda? Why did those 10,000 men armed with swords and axes mass on the Pakistan-Afghanistan frontier, answering some mullah's call to jihad? Why are the war's first British casualties three Muslim men who died fighting on the Taliban side?

Why the routine anti-Semitism of the much-repeated Islamic slander that "the Jews" arranged the hits on the World Trade Center and the Pentagon, with the oddly self-deprecating explanation offered by the Taliban leadership, among others, that Muslims could not have the technological know-how or organizational sophistication to pull off such a feat? Why does Imran Khan, the Pakistani ex-sports star turned politician, demand to be shown the evidence of Al Qaeda's guilt while apparently turning a deaf ear to the self-incriminating statements of Al Qaeda's own spokesmen (there will be a rain of aircraft from the skies, Muslims in the West are warned not to live or work in tall buildings)? Why all the talk about American military infidels desecrating the sacred soil of Saudi Arabia if some sort of definition of what is sacred is not at the heart of the present discontents?

Of course this is "about Islam." The question is, what exactly does that mean? After all, most religious belief isn't very theological. Most Muslims are not profound Koranic analysts. For a vast number of "believing" Muslim men, "Islam" stands, in a jumbled, half-examined way, not only for the fear of God ?the fear more than the love, one suspects ?but also for a cluster of customs, opinions and prejudices that include their dietary practices; the sequestration or near-sequestration of "their" women; the sermons delivered by their mullahs of choice; a loathing of modern society in general, riddled as it is with music, godlessness and sex; and a more particularized loathing (and fear) of the prospect that their own immediate surroundings could be taken over ?"Westoxicated" ?by the liberal Western-style way of life.

Highly motivated organizations of Muslim men (oh, for the voices of Muslim women to be heard!) have been engaged over the last 30 years or so in growing radical political movements out of this mulch of "belief." These Islamists ?we must get used to this word, "Islamists," meaning those who are engaged upon such political projects, and learn to distinguish it from the more general and politically neutral "Muslim" ?include the Muslim Brotherhood in Egypt, the blood-soaked combatants of the Islamic Salvation Front and Armed Islamic Group in Algeria, the Shiite revolutionaries of Iran, and the Taliban. Poverty is their great helper, and the fruit of their efforts is paranoia. This paranoid Islam, which blames outsiders, "infidels," for all the ills of Muslim societies, and whose proposed remedy is the closing of those societies to the rival project of modernity, is presently the fastest growing version of Islam in the world.

This is not wholly to go along with Samuel Huntington's thesis about the clash of civilizations, for the simple reason that the Islamists' project is turned not only against the West and "the Jews," but also against their fellow Islamists. Whatever the public rhetoric, there's little love lost between the Taliban and Iranian regimes. Dissensions between Muslim nations run at least as deep, if not deeper, than those nations' resentment of the West. Nevertheless, it would be absurd to deny that this self-exculpatory, paranoiac Islam is an ideology with widespread appeal.

Twenty years ago, when I was writing a novel about power struggles in a fictionalized Pakistan, it was already de rigueur in the Muslim world to blame all its troubles on the West and, in particular, the United States. Then as now, some of these criticisms were well-founded; no room here to rehearse the geopolitics of the cold war and America's frequently damaging foreign policy "tilts," to use the Kissinger term, toward (or away from) this or that temporarily useful (or disapproved-of) nation-state, or America's role in the installation and deposition of sundry unsavory leaders and regimes. But I wanted then to ask a question that is no less important now: Suppose we say that the ills of our societies are not primarily America's fault, that we are to blame for our own failings? How would we understand them then? Might we not, by accepting our own responsibility for our problems, begin to learn to solve them for ourselves?

Many Muslims, as well as secularist analysts with roots in the Muslim world, are beginning to ask such questions now. In recent weeks Muslim voices have everywhere been raised against the obscurantist hijacking of their religion. Yesterday's hotheads (among them Yusuf Islam, a k a Cat Stevens) are improbably repackaging themselves as today's pussycats.

An Iraqi writer quotes an earlier Iraqi satirist: "The disease that is in us, is from us." A British Muslim writes, "Islam has become its own enemy." A Lebanese friend, returning from Beirut, tells me that in the aftermath of the attacks on Sept. 11, public criticism of Islamism has become much more outspoken. Many commentators have spoken of the need for a Reformation in the Muslim world.

I'm reminded of the way noncommunist socialists used to distance themselves from the tyrannical socialism of the Soviets; nevertheless, the first stirrings of this counterproject are of great significance. If Islam is to be reconciled with modernity, these voices must be encouraged until they swell into a roar. Many of them speak of another Islam, their personal, private faith.

The restoration of religion to the sphere of the personal, its depoliticization, is the nettle that all Muslim societies must grasp in order to become modern. The only aspect of modernity interesting to the terrorists is technology, which they see as a weapon that can be turned on its makers. If terrorism is to be defeated, the world of Islam must take on board the secularist-humanist principles on which the modern is based, and without which Muslim countries' freedom will remain a distant dream.

Salman Rushdie is the author, most recently, of "Fury: A Novel

 

 

 

 

맨마지막 필자 소개가 최근작 <분노>의 작가라고 돼 있는데, 그 소설이 이번에 번역돼 나온 것이다. 소개에 따르면, "1988년 작 <악마의 시>로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오르는 동시에, 이슬람계의 격분을 촉발하며 사형선고를 받은 작가 살만 루슈디. 그가 영국에서의 도피 생활을 청산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집필한 첫 번째 작품이다. 2000년 뉴욕을 무대로 쓴 이 자전적 소설에서 루슈디는 '분노와 폭력의 21세기'를 냉소적으로 그려낸다."



소개된 줄거리에 따르면 "케임브리지 대학의 사상사 교수인 말릭 솔랑카는 학문적인 삶에 염증을 느끼고 종신 교수직을 포기한다. 학교를 그만둔 그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온다. BBC에서 그에게 대중적인 심야 철학사 시리즈 기획을 제안하면서, 방송계에 진출하게 된 것. 지식인 인형들이 나와 대담을 나누며 논쟁을 벌이는 '리틀 브레인의 모험'은 당대의 컬트 클래식으로 자리 잡고, 이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은 여자 인형 '리틀 브레인'은 신드롬 수준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인형 '리틀 브레인'이 곧 저속하고 속물적인 대중의 아이콘으로 변질되자, 솔랑카는 참을 수 없는 노여움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이 가족들을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다 도망치듯 미국으로 건너간다. 부와 힘이 절정에 달해 있는 곳, 모든 과거가 사라지고 현재만 있는 곳, 모두가 현대인이라는 익명 속에 살아가고 있는 미국 땅에서 솔랑카는 철저하게 은둔생활을 한다. 그러나 분노는 잠재워지지 않는다."

거기에 덧붙은 코멘트에 따르면 "인도 출생에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한 것, 아내와 어린 자식을 남겨두고 미국으로 도피한 것, 그리고 젊고 아름다운 연인의 흉터까지... 자신의 실제 이력과 매우 흡사한 주인공 솔랑카의 입을 빌려 루슈디는 21세기 미국의 표정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그런 점에서도 루시디판 <나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이광수의 <나의 고백>(1948)은 소설이 아닌 수필 형식의 회고록이라고 하지만 말이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서 덧붙이자면 루시디는 재작년에 부시 대통령과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

이슬람교를 풍자한 소설 ‘악마의 시’로 유명한 영국 작가 살만 루시디(58)가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의 일방주의 외교정책이 이슬람 테러리즘을 부추긴다고 비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12일 보도했다. 루시디는 “사람들을 반미로 뭉치게 하는 현 (미국) 행정부의 기묘한 능력이 이슬람 테러주의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며 “9·11테러 이후 세계가 미국에 느낀 엄청난 동정이 급속히 사라지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미국을 떠나자마자 미국의 적들과 미국의 우방들이 아주 비판적으로 미국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루시디는 미국에 대한 자신의 감정 변화 이유가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 정책들과 세계 다른 나라들과 진지하게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는 태도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따라서 “세계사의 이 특정한 순간에 일반 미국인들은 세계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감각을 넓히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면서 국제적 대화를 강조했다.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성장한 루시디는 전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툴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1989년 ‘악마의 시’를 불경하다며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이후 살해 위협을 받으며 수년 간 숨어 살아왔다
.(국민일보, 05. 04. 14)

그렇다고 루시디가 반미주의로 전향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은 이슬람을 '비하하는' 소설 <악마의 시>를 썼다고 해서 그를 반이슬람주의 작가로 매도하는 것만큼이나 성급한 일로 보인다. 문제는 그러한 불경과 분노의 '문학적 형식'이다(이 점에서 이광수는 적어도 '작가'로서는 철저하지 못했다. 물론 그에겐 '소설'보다 더 중요한 '대의'들이 많았겠지만). 루시디의 <분노>는 그런 점에서 흥미를 끈다. 그의 고백/분노는 미국이란 나라, 더 나아가 '이 세계'에서 한 (망명)작가가 어떤 삶을 살 수 있고 어떤 소설을 쓸 수 있는가에 대한 한 가지 척도를 제시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덧붙여 이광수에게 결여돼 있었던 게 무엇인지 확인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07. 0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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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찾느라고 한겨레21의 박노자 칼럼을 뒤적이다가 예전에 그냥 지나쳤던 칼럼들을 몇 개 읽게 되었다. 그 중 우리 근대문학과 톨스토이에 관련한 칼럼은 '러시아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육당과 춘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서 '문학의 뒷계단'에 옮겨놓는다. 딱 3년전쯤 칼럼이다(톨스토이에 대한 박노자의 평가는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평가와는 극명하게 대조된다. 그의 도스토예프스키론에 대해서는 예전에 정리해놓은 바 있으니 참고하시길). 최근 영어권 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작품에 <안나 카레니나>와 <전쟁과 평화>가 나란히 선정되어 '최고의 소설가'란 평도 얻은 톨스토이에 대해서 조금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물론 이 칼럼의 초점은 '소설가'가 아니라 '사상가' 톨스토이이지만...

한겨레21(04. 02. 26) 너희가 '톨스토이'를 아느냐

근대 초기 한국에서 서구 중심 세계 체제로의 정신적 편입의 한 중요한 통로는 ‘서구영웅 기리기였다. 공자나 맹자가 그 빛을 잃고 ‘나파륜’(拿巴倫·나폴레옹), ‘비사맥’(比斯麥·비스마르크) 등의 ‘제국주의의 영웅’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창간호(1908년 11월) 1면을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모습으로 장식하고, <나폴레옹 대제(大帝)전(傳)>을 연재한 육당 최남선의 잡지 <소년>과 같은 서구 중심주의적 계몽주의의 매체 자본은 물론, 황제 고종도 곽종석(郭鍾錫)과 같은 굳건한 유림들로부터 “나폴레옹을 고대 중국의 무왕(武王)보다 더 용맹스럽게 여긴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서구 위주의 세계관에 일정 부분 포획되었다.  

톨스토이 수용, 한가지 수수께끼

그럼에도 가끔 제국주의의 반대편에 선 소수의 서방인들이 세계적인 살육의 판도 속에서도 한국 지성인들의 주목을 받곤 했다. 대표적인 서방인으로 바로 현대의 평화주의와 반(反)국가주의의 원조로도 잘 알려진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였다. 1900년대 후반부터 시작돼 식민지 시기의 말기까지 이어진 톨스토이 붐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국에 톨스토이 소개의 매개가 된 메이지 말기의 일본의 경우처럼, 톨스토이의 가르침은 근대 미증유의 폭력성에 환멸과 절망을 느낀 이상주의적 젊은 지식인들에게 살육과 증오가 없는 ‘대안적인 근대’의 길을 보여주었다. 톨스토이가 보여준 길이 꼭 현실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약육강식’의 세계에 인도주의적 대안이 제시됐다는 것은 양심을 보유하는 지성인에게 반가운 일이었던 것이다. 또한 불굴의 독립운동가 양기탁이 <신생>(新生)이라는 잡지의 창간호(1928년 10월)에 쓴 논설이 보여주듯, 제정 러시아의 부패와 폭정에 도전하여 박해와 비방을 감수하고 빈농들과 살기를 실천한 ‘안빈낙도의 지사(志士)’, ‘직언(直言)의 선비’의 이미지와 부합된 톨스토이의 인격은 유교적인 심성에 젖은 근대 초기의 지성인들에게 크게 어필하였다.

한국 지식인들은 유교와 불교, 묵가(墨家) 철학 등의 동아시아 사상에 대한 톨스토이의 존경의 태도에 감탄하기도 했다. 예컨대 <조양보>(朝陽報) 제10호(1906년 9월25일자)에서 톨스토이를 한국 언론 사상 최초로 소개한 한 개신 유림은, 그가 “맹자의 이상을 이룩하려는 세계 일류의 사상가이니 한국의 유림들도 자애 자중할 수 있다”고 했다. 스스로 나폴레옹이나 비스마르크처럼 되자는 것이 대다수 개화파의 소원이었지만 한국이 부득이하게 ‘먹히는’ 쪽에 속하는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이 ‘약육강식’을 부정하면서 동아시아에 대한 보기 드문 존경심을 가진 톨스토이의 가르침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톨스토이 사상의 수용을 연구하자면 한 가지 수수께끼에 부딪히게 된다. 톨스토이의 저작 중 <기독교와 애국주의>(1894), <두개의 전쟁>(1898), <죽이지 말라>(1900), <러시아를 비롯한 기독교 민족들이 왜 곤궁에 빠졌는가?>(1907년 탈고) 등 말년의 논문들은 국가와 교회, 애국주의의 허상과 ‘문명’의 허망한 꿈, 과학의 권위 등을 이론적으로 부정할 뿐만 아니라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각자 군대나 학교, 교회 등의 살육·노예화·기만의 기구들을 등지고 살라는 실천적 요구를 담은 것이었다.

100년 전의 톨스토이 저작물들을 읽어보면 많은 성역들이 이미 깨져버린 오늘에조차 그 탈(脫)근대주의적 과감함에 놀라게 된다. “유럽 정부들은 국회에서의 자유주의적 궤변이나 거리에서의 사회주의적 시위들을 엄청난 양보를 하는 척하면서 용납해도 병역 거부나 군비로 쓰일 세금의 납부 거부는 절대적으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병역 거부야말로 모든 지배의 폭력적인 성격을 노골화하는 피지배자 해방의 첩경이기 때문이다. 군사 존폐의 문제를 지배자들의 의지에 맡긴다면 전쟁이 더 끔찍해지지 끝날 리는 없다. 전쟁을 없애려면 지배자에 대한 공포나 지배자들이 제시하는 이득 몇푼 때문에 살인자들의 대오에 몸을 팔아 자신의 자유와 존엄성을 스스로 짓밟는 자들이 사회의 지탄을 받는 동시에, 모든 박해에도 불구하고 병역 거부의 길로 가는 사람들이 선각자의 대접을 받아야 한다!”(<평화 회의와 관련해서>·1899)

국가와 폭력을 ‘과도기의 필요악’으로 생각하는 100년 전의 ‘주류’ 사회주의자보다도 톨스토이가 훨씬 더 철저한 근대의 이단아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나폴레옹과 비스마르크 같은 군사주의적 ‘영웅’들이 ‘신민(新民)의 모범’ 대접을 받고 병역이 ‘국민의 신성한 의무’로 의식됐던 개화기나 일제 시대에, 어떻게 이와 같은 철두철미한 ‘급진파’ 톨스토이가 조선 지성계의 스타가 될 수 있었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톨스토이의 조선 초기 숭배자 중의 한 사람인 최남선의 사례를 들어보자. 나폴레옹의 신봉자로서 <나폴레옹 격언집>까지 잡지 <청춘>(제8호·1917년 6월)에 실은 육당이 어떻게 톨스토이를 동시에 숭배할 수 있었을까? 자본주의적 근대국가에 대한 육당의 시종일관적인 선망을 아는 사람이라면 톨스토이를 1908~10년에 ‘예수 이후의 최대 인격자’, ‘대선지자’(大先知者), 공자와 같은 ‘부자’(夫子)로 불렀던 그의 태도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톨스토이의 죽음에 대한 육당의 “톨스토이 선생을 곡(哭)함”(<소년>, 제9호·1910년 12월)이라는 일종의 톨스토이 평전을 읽어보면 최남선의 톨스토이관(觀)이 어느 정도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靈)의 철학가’ 이미지만 만들다

최남선이 본 톨스토이는 금욕적인 생활과 ‘원수까지 사랑하는 일’, 미신이 아닌 이성에 근거를 두는 ‘신봉’(信奉·신앙)을 예수처럼 가르쳐준 ‘종교인’이었다. 즉, 그의 탐욕·폭력 극복론은 현실적인 방안이 아닌 원론적인 종교적 이상이라는 것이 톨스토이 사상에 대한 육당의 근본적인 생각이었다. ‘영(靈)의 철학가 톨스토이’ 이미지를 만들려는 최남선은 병역 거부에 대한 톨스토이의 신념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일제의 대륙 침략을 어디까지나 불가피하고 필요한 것으로 보는 육당이었기에, 전쟁을 일으킨 러·일 양쪽 정부가 다 강도에 불과하다는 취지의 톨스토이 러일전쟁 반대의 서한(1904년 8월7일자로 일본의 사회주의자 기관 <평민신문>에 게재)도 이 글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친일적 성향의 신예 개화파가 톨스토이의 탈근대적 대안을 추상화·종교화해서 병역 거부·국가에 대한 불복종 호소와 같은 그의 정치·사회적인 핵심을 빼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소년>과 같은 개화 잡지에서 나폴레옹의 ‘격언’과 톨스토이의 ‘교훈’이 옆자리에 나란히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근대 지상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온건’ 지성인들에 의해 종교화돼 ‘개인 수양의 이념’으로 탈바꿈돼버린 톨스토이주의의 비극…. 물론 톨스토이주의의 주된 ‘강령’으로 “군직(軍職)에 들어가지 말라”(즉, 병역 거부해라)는 것을 든(<개벽>, 제9호·1921) 진보적 천도교인 박달성(朴達成·1895~1934)과 같은 급진적 언론인이나, 지배계급을 ‘기생충’에 비유한 톨스토이의 노동중시론을 선호했던 1920년대 국내외의 조선 아나키스트 등은 사회·정치 사상가로서의 톨스토이를 스승으로 생각했지만, 이광수와 같은 부류의 ‘주류’ 예속 부르주아층의 논객들에게 톨스토이주의는 다만 비정치적인 ‘인격 수양’ 또는 ‘개량된 기독교 윤리’에 불과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조선 지식인들에게 큰 호소력을 지닌 톨스토이의 대안 담론을 근대적 국가주의의 지배 담론에 종속시키려고 했다.

최남선과 이광수식 이해를 넘어

그들의 노력은 성공한 듯하다. 러시아 밖에서 톨스토이가 가장 잘 알려지고 가장 큰 권위를 지닌 나라들 중 하나인 한국에서 톨스토이 사상의 가장 핵심인 병역 거부와 국가주의에의 절대적 반대는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생소한 이단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문학작품들이 ‘교양인’에게 거의 필독으로 돼 있지만, 군대와 국가를 부정하는 그의 논문들을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최남선과 이광수식의 톨스토이 이해의 한계를 우리가 언제 넘을 수 있을 것인가? 21세기에 접어든 우리가 아직도 100년 전의 친일적인 근대주의자들이 만들어놓은 세계관의 경계선을 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참고 사이트 ]
1. 톨스토이의 주요 저서 디지털판(러먼)
http://www.lib.ru/LITRA/TOLSTOJ/
2. 톨스토이의 주요 저서 영역(英譯)의 디지털판
http://www.ccel.org/t/tolstoy/
3. 톨스토이 저서의 영문판과 여러 관련 영상들
http://www.selfknowledge.com/431au.htm
4. 톨스토이의 영문 전기와 일부 저서의 영문판
http://www.literatureclassics.com/authors/Tolstoy/
5. 톨스토이 학보(영문 학술지- 토론토대학교·캐나다)
http://www.utoronto.ca/tolstoy/

07. 03. 01.

P.S. 그러니까 좀 균형잡힌 톨스토이 수용을 위해서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같은 이야기만 읽을 게 아니라 <사랑의 법칙과 폭력의 법칙>(아웃사이더, 2004) 같은 책들도 읽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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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3-01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이것도 여러 친구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었는데, 이제 비교문학 협동과정이 개설되었으니, 많은 '협동'을 통해 탐구되어야 할 지점이겠지요.

로쟈 2007-03-01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협동과정'에서 톨스토이(러시아 근대문학)에 관심있는 대학원생이 있다는 얘기는 아직 못들어봤는데요.^^;

기인 2007-03-06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한국 근대문학 전공하는 친구들 중에, 무교회 운동 우치무라 간조와 톨스토이 등에 관심있는 친구가 있거든요. 저도 1920년대 톨스토이에 대한 인식에 관심 있습니다. :)

소경 2007-03-11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같은 이야기만 아는 처지가..부끄럽군요.
 

얼마전 '한국SF 100주년과 러시아SF'란 페이퍼를 올린 바 있는데, 기사에서 인용한 내용 중에 카렐 차페크의 <로봇> 얘기가 있었다. 쥘 베른의 <해저여행기담>(<해저 2만리>)가 1907년에 처음 소개되었고 그 뒤를 이어 1925년에 차페크의 <로봇>이 박영희에 의해 <인조노동자>로 번역된 바 있다는 것.

1907년 ‘해저여행기담’에 이어 1908년 이해조가 역시 번안작품 ‘철세계’를 출간했다. 1925년엔 박영희가 세계 최초로 ‘로봇’이라는 말이 나타난 카렐 차페크의 작품 ‘R.U.R’를 번역한 작품을 선보였다(*차페크의 <로봇>이 그렇게 일찍 소개되었다는 건 이번에 알았다! 한데 이 책 또한 품절이군).

거기에 내가 붙인 코멘트는 보는 대로이다. 이광수와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그 번역과 관련한 칼럼을 읽게 됐다. 자료삼아 옮겨놓는다. 정선태 교수의 '번역으로 만난 근대' 연재 중의 한 꼭지이다.

한겨레21(04. 02. 05) 카렐 차페크, <로봇>(RUR) - 계급투쟁이 로봇에 실렸네

“갈군! 갈군! 왜 인조인간을 만들기 시작하였나? 할레마이어군! 파브리군! 왜 자네들은 자네 머리 속에 그런 많은 계획을 생각하였었단 말인가? 왜 글쎄 자네들은 그 비법의 흔적을 남겨놓지 아니하였나? 아, 하느님 ― 나의 기도 소리를 들어주십시오 ― 만일 사람을 남겨놓지 않으시려거든 인조인이나 남겨주십시오 ― 아무렇게 하더라도 인간의 그림자뿐만은 남겨주십시오! (다시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다만 잠이나 자고 싶다. (일어나서 창 앞으로 간다) 아직껏 밤이다! 저편에서 아직껏 별이 반짝이고 있구나! 이 세상에는 벌써 한 사람의 인간도 살지 않는데 저 별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중략) 모든 것이 소용이 없구나. (시험관을 깨뜨려 부순다. 기계의 돌아가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린다) 기계! 또 기계로구나! (창을 연다) 인조노동자여, 기계를 정지하여다오! 너희들은 기계로부터 생명을 만들어내려고 생각하느냐?”

소수의 인간과 인조 노동자의 대결

로숨 유니버설 로봇회사의 건축주임인 알퀴스트의 절망으로 가득 찬 독백이다. 그는 이 회사의 대표인 도민, 기술담당 이사 파브리, 생리학 연구부장 갈, 로봇 심리연구소장 할레마이어와 함께 외딴 섬에서 인조인간을 대량 생산하여 세계 각 지역에 판매하던 인간들 가운데 ‘기계들’의 반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였다.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생명체를 복제하는 데 성공하고, 이 ‘영혼도 감정도 없는 인간’을 팔아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던 로숨 유니버설 로봇회사의 인간들은 그들이 만든 ‘로봇들’의 반란에 직면해 죽음으로 내몰리고 만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 알퀴스트는 이제 인간을 제치고 인간의 지위에 오른 로봇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스스로 내동댕이쳤던 하느님과 별을 찾으며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때는 너무 늦었다. 공상과학(SF) 문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카렐 차페크(Karel Capek·1890~1938)의 희곡 <로봇>(원제는 Rossom’s Universal Robots)은 인조인간이 인간을 대신해 새로운 아담과 이브로 탄생하면서 막을 내린다.

SF소설의 효시로 알려져 있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비롯하여 올더스의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 아이라 레빈의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등 이 분야의 뛰어난 작품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초래한 음울하고도 비극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 이에 따른 인간의 진보에 낙관적인 믿음에 빠져 있을 때, 이들은 인간의 탐욕과 오만이 야기할 비극적인 결말을 경고하고 나섰던 것이다.

1920년에 발표되어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체코 출신의 작가 카렐 차페크의 <로봇>도 예외가 아니다. <로봇>은 화학적 결합을 사용하여 원형질이라고 알려진 생명체를 무한 복제하는 기술을 터득한 인간들이 어떻게 인간 자신을 파괴하는가를 예고하고 있는 희곡 작품이다. 과학기술을 장악한 소수의 인간들과 그들이 만든 인조인간 로봇의 대결,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개념이 결국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버리는 ‘과학의 희극’이 <로봇>을 관통하고 있다.

카렐 차페크(*왼쪽 사진)의 희곡 <로봇>이 이 땅에 처음으로 번역·소개된 것은 1925년 2월호 <개벽>을 통해서였다. 1925년을 전후하여 문단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신흥문학=계급문학의 ‘선봉장’이었던 회월 박영희(1901~?, 오른쪽 사진)가 이 작품을 <인조노동자>라는 제목으로 네번에 걸쳐 완역한다. 이른바 ‘병적 낭만주의’에 빠져 있던 박영희의 사상적 변신은 놀라울 정도인데, 1924년 이후 그는 평론과 소설 등을 통해 계급문학과 사회주의적 이념을 전파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 특히 그가 엮은 ‘중요술어사전’은 네 차례 <개벽>의 부록으로 실렸으며, 이는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잉여가치설, 공산주의, 유물사관, 과격파, 자본주의, 제국주의 등 새로운 사회주의적 개념들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소개한 중요한 자료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신흥사상’에 관심을 쏟고 있던 그의 눈에 카렐 차페크의 <로봇>은 어떻게 보였을까?

사회주의 이념 우회적 전파 통로

<인조노동자>라는 제목만 보아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듯이 번역자 박영희는 이 희곡을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을 그린 작품으로 보았던 듯하다. 자본가에 의해 비인간적으로 착취당하는 노동자를 ‘인조기계’, 즉 로봇으로 파악하고, 기계로 전락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고취하고자 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기계에 불과했던 ‘인조노동자’들이 공포와 고통의 과정을 통과하여 자신을 지배하던 인간들을 살해하고 새로운 주권자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이야말로, 사회주의를 비롯한 ‘신흥사상’에 대한 감시자들의 검열이 더욱 촘촘해지던 상황에서, 계급사상을 우회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다시없는 통로였을 터이다.

예컨대 인조노동자의 반란을 이끈 로봇 라디우스가 ‘최후의 인간’ 알퀴스트에게 던지는 다음과 같은 말에서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역사를 보십시오. 사람의 서적을 읽어보십시오. 당신도 사람답게 살려하면 주권자와 살육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힘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수는 번식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완전무결한 세계를, 또 없는 세계를 만들고, 남극에서 북극으로 가는 운하와 또한 새로운 화성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책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해서 우리들은 과학과 미술을 연구하였습니다. 인조노동자는 인간의 문화를 완성하였습니다.” 로봇의 인간선언, 또는 기계와 다름없던 노동자의 인간선언!

<로봇>의 번역 <인조노동자>는 더 이상 ‘SF’가 아니었다. 테크놀로지를 전유한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영혼도 감각도 없는 ‘인조인간’으로 내모는 비극적 현실을 타파하라고 ‘선동’하는 팸플릿이었다. 반란의 지도자 라디우스는 바리케이드 위에 올라서 이렇게 외친다. “전 세계 인조노동자 제군! 전 인류를 우리는 죽여버릴 것이다. 한 사람일지라도 용서함이 불가함. 각 공장, 철도, 기계, 광산과 그 외에 모든 원료를 남기고, 그 외에 것은 모두 파괴할 일. 그러고는 다 각각 노동에 돌아갈 일이다. 노동은 중지함이 불가함.”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는 저 유명한 ‘공산당선언’의 ‘선언’을 떠올릴 필요조차 없다. 인간, 즉 자본가들을 몰아내고 노동자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팸플릿의 기능을 <인조노동자>는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로봇처럼 살았던 식민지 조선인들

유니버설 로봇회사 대표 도민의 말처럼 ‘인간에게 가장 끔찍한 것은 다름 아닌 인간 자신’인 것이 현실이라면,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에는 어떠한 공존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라면, 그리고 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피착취자 역시 인간임을 선언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으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1924년 일본에서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을 보았을 조선의 청년 지식인 박영희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의 소설들과 평론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박영희는 사회주의에서 그 희망을 찾았고, 그 이념을 담은 작품으로 차렐 차펙의 <로봇>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암울한 식민지 근대를 살고 있던 조선인들이 강제노역자를 뜻하는 로봇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처럼 <인조노동자>와 함께 실려온 새로운 사상은 많은 ‘맑스보이’와 ‘엥겔스걸’을 낳으면서 저항의 근거지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바야흐로 러시아혁명의 성공에서 희망을 보았던 사회주의 사상이 식민지 조선의 암울한 현실을 비추는 한 줄기 빛으로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정선태 | 연구공간 수유 + 너머 연구원)

07. 03. 01.

 

 

 

 

P.S. 참고로, 근대/문학과 번역 등에 관련된 정선태 교수의 흥미로운 논저들은 <심연을 탐사하는 고래의 눈>(소명출판, 2003), <근대의 어둠을 응시하는 고양이의 시선>(소명출판, 2006) 등에 갈무리돼 있다. 더불에 근대에 관한 여러 번역서들도 노작이다. 한달 정도 '큰방'에 간다면 다 읽어볼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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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3-01 14:55   좋아요 0 | URL
참. 정말;;
퍼갑니다. 식민지 시기를 전공하면 할수록, 식민지 시기 사람들을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어요. 내 친구 박영희, 임화, 이런 식으로 ^^; 동네 형 이광수 이런 식으로 ㅋ 어쨌든 내 친구 박영희라기 보다는, 저보다 '어린' 25살 박영희 군의 고뇌와 투쟁으로서의 문학... 안쓰럽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네요.
 

장르소설을 잘 읽지 않는지라 '앨러리 퀸(Ellery Queen)'이란 작가가 "사촌형제간인 맨프리드 리와 프레데릭 더네이의 이름을 합쳐서 만든 필명"이라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우리라면 '듀나' 같은 경우일 텐데, 그래도 필명/가명이란 티가 나는 '듀나'에 비하면 '앨러리 퀸'은 감쪽같다!). 지난달 컬처뉴스에 실렸던 한 '만담'기사를 읽으면서인데, 지난 연말에 터졌던 대필 사건들과 관련해서 읽어볼 만한 만담이기에 옮겨놓는다. 아는 사람은 다 알 만한 내용이지만 '내부자'의 진술이기에 흥미롭다. 

컬처뉴스(07. 01. 26) 무림 출도를 고민하다: 출판시장과 유령작가

깜짝 퀴즈를 하나 내보겠다. 『Y의 비극』, 『Z의 비극』 등으로 유명한 미스테리 작가의 엘러리 퀸이 사망한 해가 1971년일까 1982년일까? 성급하게 답하자면 이 퀴즈에는 답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둘다 정답이며 둘다 정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엘러리 퀸은 실존 인물이 아니다. 엘러리 퀸은 사촌형제간인 프레드릭 더네이와 맨프레드 리가 창조한 가상의 인물이다. 그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작품의 필명으로 사용했으며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후 버나비 로스라는 또다른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공식석상에서 한 명은 엘러리 퀸을, 한 명은 버나비 로스의 행세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엘러리 퀸과 버나비 로스는 서로의 작품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이 모든게 독자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한 전략이며 일종의 ‘장난기’였다고 한다. 여하간 엘러리 퀸과 버나비 로스 뒤에 숨었있던 ‘실존인물’ 더네이와 리는 각각 1982년과 1971년에 사망했다. (이 두 사촌 형제는 공교롭게도 둘다 1905년에 태어났다.) 그러니 엘러리 퀸의 사망년도는 모호한 노릇이다

제법 길게 예전에 죽은 미스테리 작가에 관한 사설을 늘어놓은 까닭은 최근에 책, 혹은 글과 저자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름아닌 정지영 아나운서가 번역했다고 알려졌던 『마시멜로이야기』와 화가이자 방송인인 한젬마가 썼다고 알려졌던 일련의 미술관련 책이 불러일으킨 논란이다. 이 사건들에 대한 상세한 소식들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졌으니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으리라. (혹시라도 이 소식을 못 접하신 분들이 있다면 주요 포탈 사이트에 들어가셔서 검색창에 ‘표절’이라고 쳐보시라. 뉴스란에 뜨는 내용도 재미있지만 각종 게시판을 떠도는 말들이 더 재미있다.)

그런데 출판계에 잠시 몸담았던 박서방의 경험에 비춰보자면 이 사건들은 그리 낯설거나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들어온 원고를 면밀히 잘 검토해서 책을 만들거나 좋은 원고를 발굴해서 책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잔인한 얘기지만 출판 기획자에게 좋은 책이란 잘 팔리는 책이다. 물론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누구나 하고 있다. 하지만 영세하기 짝이 없는 출판업계에서 당장 현금이 안 도는 책이란 재앙이다. 책 한두권 대박 치면 1년이 편안하게 갈 수 있지만 책 몇 권 죽 쒀버리면 당장이라도 문을 닫아야 하는 출판사들이 적지않다. 그러니 당장 현금화 할 수 있는 책을 ‘제조’해 내기 위한 경쟁에서 자유로울래야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필자 이름 정도 빌리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되버렸고 글 팔며 먹고사는 ‘고스트 라이터’ (유령필자, 실명을 밝히지 않고 출판물 집필을 대행해주는 이들) 들의 맹활약이 시작되었다. 박서방도 출판계에 있을 때 명색이 초보 기획자였지만 실상 가장 많이 했던 역할은 필자들의 글을 만들어 주는 역할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완성단계에 있는 원고를 다듬어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그 중에는 전직 대통령의 자서전도 있었다).

여담이지만 선거철 직전은 고스트 라이터들에게 가장 일거리가 많은 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금뱃지에 눈이 먼 이들의 선거용 출판물 (자서전, 정치평론 등) 작업에 임할 때는 주의할 사항이 있다. 일단 믿을만한 경로로 들어온 일을 받아야 하며 되도록 돈을 빨리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의 결과가 안 좋을 경우에 원고를 의뢰한 자들이 얼렁뚱땅 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실제로 한번 이런 경우를 당한적이 있는데 당시 박서방의 경제상황이 극도로 불량했기 때문에 치명적인 피해로 돌아왔으며 (한동안 박서방을 몹시 괴롭렸던 소위 ‘카드돌려막기’의 원인이 되었다.) 박서방은 그 정객(인지 사기꾼인지)에게 강력한 신체적 보복을 행사하기 위해 한동안 그 인물이 출마했던 지역구 주변을 배회하곤 했었다.

얘기가 옆 길로 샜는데 지금의 고스트 라이터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겠지만 실명을 사용하지 않는 작가의 존재는 꽤 오래됐다. 소설이 지금의 영화 만큼이나 대중적으로 인기있던 19세기에만 해도 한 명의 작가 이름으로 여러 필자가 협업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특히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이 대중문학의 전성기였는데 이렇게 대중문학의 인기가 급증했던 원인은 흔히 노동자 계층의 교육 수준이 올라가고 사무직 노동자 계층이 증가하면서 사회의 문맹률이 낮아졌던 것과 출판 기술 및 통신, 운송 수단이 화끈하게 개선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800년대 중반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흥밋거리를 담은 타블로이드판 형태의 ‘소설신문’(?)이 등장하게 되는데 양장본 소설책에 비해서 역시 화끈하게 싼 가격이었다고 한다.

타란티노의 영화 제목이기도 한 ‘펄프픽션’은 바로 이런 매체에 연재되었던 대중소설들을 지칭하는 것인데 주로 다루어졌던 내용들은 황당무계한 연애담(아마도 박서방이 불타는 사춘기 시절 즐겨읽었던 ‘하이틴 로맨스’ 류의 원조리라)이나 잔인한 범죄 이야기, 환상담 등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이런 소설을 주로 썼던 작가들의 특징은 엄청나게 다작을 했다는 것인데 그래서 대부분 이런 소설은 한 작가의 이름으로 여러 명이 작업했을 것이라는 강력한 혐의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본소 만화 전성기 때 유명 작가들이 사실상 만화공장장 노릇을 했던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렇듯 예전부터 상업 출판물에서 필자의 이름은 상표다. 실제로 그 사람이 그 글에 개입한 부분이 얼마나 되는지가 중요한 일이 아니라 그 필명이 출판시장에서 발휘하는 힘에 대해서 더욱 관심이 많은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앨러리 퀸을 탄생시켰던 두 작가가 버나비 로스라는 또 다른 작가를 탄생시켰던 이유는 아마 앨러리 퀸이라는 상표가 갖고 있는 이미지를 극복하고 작품의 스타일을 변화시켜야 하는 상황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문제가 되었던 두 개의 (혹은 서 너개의) 사건은 상표가 너무 강하게 부각되었었으며 그 상표 덕에 상품을 너무 많이 팔았던 게 사건이 일파만파 커져버린 원인이었다. 한편으로 한젬마 씨의 경우는 대외적으로 해당 분야 전문가란 타이틀을 갖고 있었기에 당초부터 고스트 라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부담스러운 경우기도 했다. 기획출판물이란게 대개 그렇지만 그 콘텐츠에는 상표 외에는 실상 별 게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 그런데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했던 상표가 좀 과하게 작용한데다 그 바람에 상품이 너무 팔려버린 것이다. 상표를 보고 샀는데 상품이 짝퉁이라면 소비자들은 열 받는 게 당연하다. 그래봐야 이런 사건이들은 들불처럼 분노를 일으켰다가도 바람처럼 잊혀져 갈 것이 뻔한 노릇이며 이미 발 빠른 기획자들은 또 다른 상표를 찾아내고 있겠지만 말이다.

한편으로 보면 그런 출판물들도 있어야 고스트 라이터들도 먹고 살 것이 아닌가라는 한심한 생각도 해 본다. 박서방도 정말 아주 가끔이지만 직장생활의 스트레스 수치가 한계 이상으로 치솟을 때면 글 팔며 연명하던 고스트 라이터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긴 하다.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상이었지만 나름대로 자유분방했던 측면도 있긴 했다. 이렇게라도 자위하지 않으면 청춘의 기억이 너무 서글퍼진다.) 그래서 ‘천마신군’이나 ‘초혼객’ 같은 이름으로 무협지나 쓰며 사는게 어떨까 하는 백일몽에도 잠겨본다. 몇 년간 글을 자주 안 썼더니 글이 너무 심하게 구려져서 별로 자신이 없지만.(박서방 _ 인터넷 만담가)

07. 0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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