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가지 지구 공습이 중단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상군까지 투입된 상태에서 이스라엘은 몇 차례 제시된 평화안을 모두 거부했고, 급기야는 유엔 구호차량까지 공격했다 한다. 좀 지나간 어법을 사용하자면 '깡패국가'가 따로 없다(이번 공습의 이유가 자국 주변의 '깡패'(하마스)를 소탕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이스라엘판 '최종적 해결’도 불가능하지 않겠다. '최종적 해결'은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집단 소각한 일을 가리킨다. 분석기사를 보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을 지지한 조지 부시 대통령이 물러나기 전에 유리한 전략적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나 다음 달로 예정된 총선 등도 고려해 군사작전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라 한다. 세상은 아직 지옥이다...   

경향신문(09. 01. 09) 이스라엘의 왜곡된 건국신화  

새해를 맞이해 희망의 노래를 합창해야 하는데, 올해는 벽두부터 마음이 무겁다. 대공황에 준하는 경제위기가 주요인이지만, 연말연시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무자비한 학살극이 스산함을 참담한 전율로 바꿔놓는다. 중동 사태의 근원을 캐다 보면 유럽의 모순을 엉뚱하게 해외로 수출한 제국주의와 유럽 중심주의 그리고 오리엔탈리즘의 칙칙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을 증폭시켜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막는 것 가운데 하나가 편향된 역사인식이다. 우리 사회 역시 기독교, 미국, 서방 여론의 영향 아래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아 중동 사태에 대한 공정한 이해를 심각하게 방해받고 있다.

민족의 유전학적 동질성 미약
이스라엘이 학교 교육을 통해 가르치는 ‘유대민족사’를 보면, 역사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이에 따르면 오늘날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토라’(율법)를 받은 이후 줄곧 존재해 온 유대 민족의 유일한 직계 후예다. 유대인들은 ‘출애급’ 하고 ‘약속의 땅’에 정착해 다윗과 솔로몬의 위대한 왕국을 세우나, 이후 왕국의 분할과 함께 결국 두 차례(기원전 6세기와 기원후 70년)의 유배생활을 경험한다. 2000년에 걸친 방랑(‘이산’)으로 유대인들은 예멘, 모로코, 스페인, 독일, 폴란드, 러시아 등지로 퍼져갔는데, 하지만 언제나 혈연적 관계를 유지해 민족성을 결코 상실하지 않았다.

이 역사 해석에 따르면, 19세기 말이 되면서 옛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나치의 대학살이 없었더라면 더 많은 유대인들이 오랜 염원을 실현해 성서가 말하는 ‘이스라엘의 땅’에 정착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무주공산이며, 애초의 주민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처녀지이다.거기에 살고 있는 소수의 아랍인들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며, 독자적인 역사를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은 유대인에 속한다. 유랑민족이 땅을 되찾기 위해 벌이는 전쟁은 정당하며, 그것에 저항하는 것은 범죄행위이다.

이 역사관이 신화에 불과한 것임을 입증하는 책들이 이미 국내에 소개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온 ‘신 역사가들’의 논지를 요약한다. 먼저 성경을 역사서로 볼 수 있느냐이다. 종교적 진리를 민족교육의 토대로 만든 것이 19세기 후반기의 시온주의 역사가들인데, 최근 ‘신 고고학’ 등의 연구는 출애급과 관련한 ‘모세 오경’의 사실적 근거를 의심하며, 솔로몬의 왕국도 ‘영화’를 운위하기에는 소왕국에 불과했음을 지적한다. 또한 ‘바빌론 유수’에 대해서는 소수의 지배층만이 유배당했고, 기원후 70년의 ‘제2차 성전 파괴’로 유다왕국의 주민들이 유랑생활을 겪기는커녕 그대로 살다가 일부는 4세기에 기독교로, 대부분은 7세기에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그렇다면 고대 이래 지중해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놀라운 사실은 고대에서 중세 초에 걸쳐 유대교 역시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기독교에 못지않게 중동과 지중해 세계에서 개종자들을 다수 확보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오늘날 쿠르드족의 거주지에 기원후 1세기에 있었던 한 왕국이 유대교를 받아들여 유대왕국이 되었으며, 5세기에는 예멘에 유대왕국이 들어서 그 후예들이 오늘날까지 신앙을 지켜왔다. 또한 7세기에는 북아프리카의 일부 베르베르족이 유대교를 받아들이고 아랍의 이베리아 반도 정복에 동참해 일종의 공동정권을 이루었다. 대규모 개종은 8세기에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던 하자르족에게서 일어났다. 여기서 유대교는 우크라이나로, 13세기 몽골 침입 이후에는 동유럽과 독일로 퍼져나가 ‘이디시 문화’의 토대를 제공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국사학계’는 건국신화에 어긋나는 사실을 애써 무시한다. 가관인 것은 과학을 동원해 유대민족성의 유전학적 근거를 찾으려는 노력이다. 그런 것이 발견될 리 만무하지만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인구의 약 4분의 1이 비유대인으로 간주되어 법적으로 국가에서 배제당한 상태인 반면에,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의 정식 시민임에도 전 세계 유대인들의 고국으로 자처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의 비서실장 내정자인 람 이매뉴얼은 미국 시민이면서 이스라엘 군에 입대해 아랍군과 싸운 바 있다. 이스라엘 군이 이런 건국신화를 내면화하고 있다면, 하마스에 대한 ‘최종적 해결’은 강력한 정신무장의 지원을 받는 셈이다. 참으로 상상조차 싫을 정도로 무서운 일이다.(최갑수 서울대교수·역사학)     

미디어오늘(09. 01. 08)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학살극, 즉각 멈춰야

이스라엘은 가자 사태와 관련한 언론의 취재를 철저히 제한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7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가자 지구에 대한 무차별 공격으로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은 해외 언론사 취재진들의 가자 지역 전투 취재 요구를 거부했다. 취재진들은 전투 상황에 대한 이스라엘 쪽의 일방적인 브리핑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신문은 가자 지구에 취재진을 들여보낼 수 없는 해외 언론들은 가자 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언론인들에게 현지 소식을 전해듣고 있다고 말했다. 가자 지구에서의 취재는 하마스에게 통제를 받지 않는다고 이 신문은 밝혔다.
이스라엘 보도통제로 실상 안 알려져
가자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전 세계의 관심사 이지만 이스라엘의 보도 통제 등으로 그 전모는 다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외신에 소개되는 사진 기사 등을 보면 이스라엘은 전투기, 헬기, 탱크 등을 앞세우고 군인들은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상태다. 반면 하마스는 로켓과 박격포로 무장하고 대항 중이라고 보도되지만 그 규모, 파괴력 등은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국내 일부 언론은 ‘가자 지구에서 치열한 전투가 발생했다’고 하는데 정작 희생자는 팔레스타인 쪽에서만 발생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지난 십여일 동안의 관련 보도를 보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은 어른이 어린 아이의 손목을 비트는 식의 공격으로 보인다. 양쪽의 무력이 큰 차이가 나는 것과 함께 가자 지구 아이들과 부녀자 등 민간인 다수가 피해를 입는 것을 볼 때 이 비극은 군사작전을 통한 학살극과 같다. 이스라엘이 어떤 이유를 댄다 해도 비인도적 무차별 공격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국제사회는 분노에 떨면서도 미국의 이스라엘 지지라는 벽앞에 가로막혀 발만 구르고 있다.   

이스라엘의 학살극 성격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이 지난달 27일 시작된 후 10여 일이 지나면서 알려진 양측의 사상자 숫자를 비교하면 그 참상의 정도가 한 눈에 나타난다. AFP 통신 등에 따르면 8일 현재(한국시간)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702명, 부상자는 3100명에 이르는 반면 이스라엘 쪽은 사망 10명, 부상 10여 인데 이 가운데 전투중 사망한 군인은 6명이다.

가자 지구 사망자 가운데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진격 이전 현지 사망자는 4백여 명이었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진격이 시작된 지난 3일이후 팔레스타인인 3백여 명이 사망했으며 이스라엘군은 6명이 사망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의 가자 지구 진격 이전에 이스라엘 쪽에 로켓 공격을 벌여 이스라엘 민간인 4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부상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6일 탱크를 동원해 팔레스타인 난민 다수가 피신해 있던 3개 유엔 학교를 공격했으며, 이로 인해 48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가운데는 다수의 부녀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스라엘군은 한 학교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군에게 발포했기 때문이었으며 사망자 가운데 하마스 부대원이 발견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유엔 쪽은 일차 조사결과 그럴 가능성은 99.9%가 없다고 부인, 공동 조사를 제의하면서 이스라엘의 공격에 분노를 표시했다.

유엔 학교 공격 이유는 하마스 발포 때문 주장에 유엔 그럴 가능성 99.9% 없어
가자지구에서 자행하는 무차별 공격에 대한 비난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바티칸 성당의 정의와 평화 장관은 이스라엘의 2주 간에 걸친 공격으로 가자 지구는 ‘거대한 수용소’로 변했다고 비판했다고 이탈리아의 한 온라인 신문이 보도했다. 바티칸 성당 쪽의 이스라엘에 대한 이런 비난은 2차 대전 당시 히틀러가 유대인을 집단 수용소에 감금하고 수백만 명을 살해한 것을 상기시키는 날선 내용이다.

바티칸 성당 쪽은 2차대전 당시에는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했지만 지금은 유대인이 가자 지구 공격을 통해 팔레스타인 사람을 집단 학살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한 것이다. 폴란드의 악명높은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는 유대인 150만 명 이상이 학살당했다. 나치는 수용소에 감금된 유대인을 처음에는 총으로 쏴죽였으나 나중에는 가스실에 몰아넣어 한 에 수십,수백 명씩 학살을 자행했다. 이스라엘은 바티칸 성당 쪽의 언급에 대해 하마스의 선전에 근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바티칸 성당 "히틀러가 유대인 학살하더니 이젠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사람 집단 학살" 비판
과밀의 빈곤 지역으로 주민 150만 명 가운데 80%가 유엔의 구호식량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이번 이스라엘 공격으로 이 지역은 식량과 연료, 약품 부족으로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 있다. 전기와 수돗물 공급은 끊기거나 턱 없이 부족한 상태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이 이런 상황을 고려해 비인도적인 공격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구호품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국제사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지난 7일부터 매일 오후 1시(현지시각)부터 3시간 동안 하마스에 대한 군사작전을 중단키로 했다.  

이스라엘은 프랑스와 이집트가 공동으로 제안한 하마스와의 휴전안 논의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지만 단시간 내에 타결될 가능성은 낮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무략화와 가자 지구로의 무기 반입을 중단시키는 조건이 총족될 때까지 휴전협상을 끌면서 공세를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을 지지한 조지 부시 대통령이 물러나기 전에 유리한 전략적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나 다음 달로 예정된 총선 등도 고려해 군사작전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참혹한 일이다. 비인도적 가혹행위는 피의 보복을 부른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대한 공격을 즉각 멈춰야 한다.(고동우 논설실장)  

09. 01. 09. 

 

P.S. 촘스키의 <숙명의 트라이앵글>(이후, 2008)은 최근에 새 번역본 개정판이 출간됐다. 이전 번역본에 제기된 불만을 출판사쪽에서 받아들인 결과인 듯싶다. 새로운 리뷰기사도 챙겨놓는다. 

한겨레(09. 01. 10) 촘스키의 ‘미국-이스라엘 커넥션’ 고발  

“폭격의 공포에 질린 아이들이 ‘아빠, 이스라엘이 왜 우리에게 이런 짓을 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이스라엘은 우리 땅을 빼앗으려 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이 모두 죽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왜 ‘세계가 이런 짓을 보고만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가 없다.”(가자지구 주민 림 알구사인의 2009년 1월 7일치 <가디언> 인터뷰 중에서)

팔레스타인이 다시 짓밟혔다. 이스라엘의 미사일과 폭탄에 찢긴 채 죽어간 어린아이들의 주검이 비탄에 빠진 부모 품에 안겨 묘지로 향하고 있다. 700명이 넘는 생명이 차가운 주검이 됐다. 지난 60년 동안 왜 이런 비극이 끝없이 반복되고, 세계는 이토록 침묵하는가? 개정증보판으로 새로 나온 노엄 촘스키의 <숙명의 트라이앵글>은 이 질문에 대한 묵직하고 진지한 대답이다. 세계적 언어학자라는 안락한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이스라엘 건국 이후 계속된 억압의 역사와 이를 지원해온 ‘끈끈한 동맹’ 미국의 태도를 날카롭게 고발해온 촘스키의 치열한 노력이 1075쪽에 이르는 이 책 곳곳에 배어 있다.  

미국 주류 언론과 이스라엘이 세계를 세뇌시켜온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의 야만적 공격에 맞서 안보를 지킬 권리가 있다. 이스라엘은 많은 것을 양보하고 평화를 유지하려 하지만, 팔레스타인은 이를 거부하고 로켓포를 쏘아댄다. 이스라엘은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하면서도 민간인들은 희생시키지 않으려 최선을 다한다.”

유대인으로서, 이스라엘 건국 당시부터 이 문제를 깊이 추적해 온 촘스키의 설명은 완전히 다르다. 19세기 말 유럽의 시오니스트들이 2천년 동안 팔레스타인 땅에 살아온 아랍인들을 쫓아내고 자신들의 국가를 세우기로 결의하고 영국이 이를 지원하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 100만명 이상이 쫓겨나 주변국의 난민이 됐고, 고향 땅에 남은 팔레스타인인들도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군사점령한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가자에서는 2005년 이스라엘군 철수, 이후 봉쇄정책 계속)에서 ‘피정복민’으로 살아왔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빼앗아 정착촌을 세우고 팔레스타인인들을 저임금 노동력으로 착취하면서, 점령에 맞서는 이들을 잔인하게 탄압해 왔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이라는 현실에 적응하며 생존권을 찾기 위해 애써 왔으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모든 권리를 거부해 왔다.

중요한 진실은, 이스라엘의 가혹한 점령정책은 “특별한 동맹” 미국의 지원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은 ‘숙명의 트라이앵글’을 이루고 있다. 이스라엘은 중동의 막대한 부가 중동의 주민들이 아닌 미국과 서구로 흘러가는 데 방해가 되는 중동의 민족주의자와 저항세력을 소탕하는 ‘전략적 자산’이다. 이스라엘은 중동은 물론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 세계 곳곳에서 친미 독재국가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아 왔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등지에서 민간인들을 살해하는 데 사용한 무기의 대부분은 미국이 제공한 것이다. 1978~1982년 이스라엘은 미국이 전세계에 제공하는 군사원조의 48%, 경제원조의 35%를 차지했다. 유엔에서 이스라엘의 지나친 행위를 막으려는 결의안들은 모두 미국의 거부권에 좌절돼 왔다. 이스라엘의 학살을 고발하는 이들과 언론에는 ‘반유대주의’라는 딱지를 붙여 매장시킨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세계의 무관심 속에 죽어가고 있는 지금, 이스라엘·미국의 주장과 이 책의 주장 어느 쪽에 귀를 기울일지는 독자의 몫이다.(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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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9-01-09 17:49   좋아요 0 | URL
정말 너무들 하네요... 제가 너무 순진한 소리를 하는 걸까요?

저 처참한 풍경을 사진으로 보자니, 눈물만 흐르네요...

로쟈 2009-01-09 21:40   좋아요 0 | URL
사실 더 처참한 사진들이 많지요...--;

Kir 2009-01-09 19:18   좋아요 0 | URL
참 싫어하는 표현인데, 요즘 이스라엘의 행태를 보면 하도 기가 차서 절로 떠오릅니다. 악의 축... 히틀러와 일당들보다 더하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걸까요?;

로쟈 2009-01-09 21:41   좋아요 0 | URL
더하다는 할 수 없겠지만, 요즘은 덜한 거도 아닌 듯해요...

노이에자이트 2009-01-09 23:54   좋아요 0 | URL
고대 이스라엘에 대한 만들어진 정체성을 다룬 키스 휘틀럼<고대 이스라엘의 발명>도 추천합니다.우리나라에도 신학생들의 필독서로 잘 알려진 고대 이스라엘에 관한 명저들이 사실은 만들어진 고대에 기반하고 있다고 주장을 한 책인데 저도 읽고 나서 그 '명저'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더라구요.

로쟈 2009-01-10 00:00   좋아요 0 | URL
오호, 유익한 정보입니다.^^ 한데, 그 '명저들'도 몇 권 말씀해주시죠. 신학쪽 책은 뭐가 진짜고 아닌지 판별할 수 없더라고요...

노이에자이트 2009-01-10 23:28   좋아요 0 | URL
가장 대표적인 게 존 브라이트<이스라엘의 역사>전 2권입니다.이거 좀 괜찮은 신학대에선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이 보거든요.물론 유령 신학교에선 안 보지만요.

anathema 2009-01-10 10:24   좋아요 0 | URL
키스 휘틀럼의 책'만' 읽어서는 안됩니다. 키스 휘틀럼 같은 사람을 '코펜하겐 학파'라고 부르는데, 이들의 주장은 너무 극단적이고 설득력도 없습니다. 아래 책도 읽어보세요.
William G. Dever, What Did the Biblical Writers Know and When Did They Know It?: What Archaeology Can Tell Us About the Reality of Ancient Israel, Eerdmans, 2001.

로쟈 2009-01-10 13:37   좋아요 0 | URL
이스라엘의‘유대민족사’에 대해서 입장이 다른 건가요?..

노이에자이트 2009-01-10 23:53   좋아요 0 | URL
저는 휘틀럼의 책을 이성시<만들어진 고대>와 같은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이해했어요.그리고 그리스 문명에 대한 서구식 해석과 맞먹게 이스라엘 역사를 해석한 것에 대한 비판작업으로 이해했구요.에드워드 사이드가 호평했다니 그 성격을 알 수 있지요.서구 위주의 시각+시온주의의 공모를 파헤치는 작업이죠.핑켈슈타인 위의 책 읽은 뒤 보니까 좋더라구요.다음에 읽을 때 좀 더 정독해야겠어요.
논문집으로 <사회학적 성서해석>도 좋습니다.필자들이 성서해석 분야 일급학자들이에요.특히 게르하르트 타이센 논문이 좋아요.안병무 씨를 비롯하여 한국신학 연구소 쪽 신학자나 성직자들이 영향을 많이 받은 학자지요.

anathema 2009-01-11 19:44   좋아요 0 | URL
다시 말하지만 휘틀럼, 닐스 피터 렘키, 토머스 톰슨 같은 코펜하겐 학파 사람들의 주장은 극단적이고 설득력이 없기 때문에 인정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성경 기록을 불신하고 고고학에 무지한 이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이론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핑켈슈타인은(저를 가르친 교수님의 스승입니다) 기존 이론과 코펜하겐 학파의 이론에 거리를 두는 사람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1-11 22:10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성서 고고학의 최신학설이 실린 책들도 읽어봐야겠군요.

딸기 2009-01-12 16:31   좋아요 0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트라이앵글 다시 나온다는 소리 들은지 5년 쯤 됐는데 이제야 다시 나왔군요
그렇다고 또 사서 볼 수도 없으니... 처음에 번역을 좀 잘 해놓을 일이지 말예요.

휘틀럼 책만 읽고 핑켈슈타인 책은 좀 지겨울 것 같아 안 읽었는데...
그런데 로쟈님, 그냥 제 생각인데, 9.11과 이라크전 이후에
'이-팔 분쟁의 이미지'와, 세계가 그걸 받아들이는 방식도 상당히 바뀐 것 같기는 해요.
 

고종석 한국일보 객원논설위원의 신간이 출간됐다. <어루만지다>(마음산책, 2009). 연초에 읽은 지면에서 '여자들'에 대한 새 연재가 예고돼 있길래 작년에 연재됐던 '고종석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이 마무리된 걸 알았는데, 바로 책이 나온 걸 보면 미리 준비가 됐던 모양이다. 그의 애독자로서 눈길이 안 갈 수 없다. 일단은 기사를 챙겨놓는다.

 한국일보(09. 01. 07) 고종석 새 산문집 '어루만지다' 출간

'그러나 어루만짐이라는 형태의 스킨십은 사랑의 처음이자 끝이다. 사람의 살은 다른 사람의 살과 닿을 때 생기를 얻는다… 나는 마음의 치유이자 사랑 행위로서 어루만짐이 되도록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234쪽)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고종석(50) 한국일보 객원논설위원의 새 산문집 <어루만지다>(마음산책 발행)가 나왔다. 그가 1996년 펴냈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의 맥을 잇는 한국어 단상록이다. 지난해 2월부터 12월까지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고종석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을 손봐 묶은 것으로 그의 21번째 책이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이란 책의 부제처럼 '어루만지다' '입술' '감추다' '혀놀림' '속삭임' '춤' 등 그가 엄선한 40개의 올림말은 사랑의 인력(引力)에 구속돼 있는 낱말들이다. 그 사랑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고, 모국어에 대한 사랑이다.

한국어의 미세한 결을 읽어내는 눈밝음과 고현과 동서를 넘나드는 박람강기가 어우러진 그의 문장은 말 그대로 한국어의 한 진경을 그려낸다. 가령 '손톱'에서 그는 조선 궁중사의 중요한 부분인 내명부 여인들의 질투를 읽어내더니, 기타 연주와 연관된 손톱의 효용성으로 연상의 가지를 뻗쳐 "그것은 사랑을 닮았다. 손톱처럼 사랑도, 굳세거나 잔약하다"는 통찰로 마무리한다. 막 지천명의 들머리에 선 그의 인생경험은 이제 글을 잠언의 경지로 밀어올리기도 하는데, 그것은 '가냘프다'라는 항목에서 "사랑을 낳는 것은 가느다란 신경일 테다.

사랑은 무딘 신경, 씩씩한 마음에서 나올 수 없다. 사랑은 가느다랗고 잘다. 모든 사랑은 잔정이다"와 같은 문장을 낳는다. '눈물'이라는 항목에서는 "아름다운 눈을 흔히 보석에 비유하는 관행에 기대면, 눈물은 액화한 보석, 액체보석이라 할 수도 있겠다"와 같은 시적 문장을 만들어낸다. 당대를 대표할 만한 이 미문가는 "이 책을 쓰며 새삼 절감했다. 한국어가 내 요람이자 무덤임을"이라고 자서(自敍)했다.(이왕구기자) 

09. 01. 08. 

P.S. '한국어가 내 요람이자 무덤'이라고 말하는 고종석이 내가 애호하면서 지지하는 고종석이다. 한데, 이건 '선호'가 아니라 '불가피'다. 이 '적들의 나라'에서 대한민국과 한국인에 대해 내가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특별한 염증은 점점 커가고 있지만). 하지만 한국어에 대해서만큼은 불가피한 애정을 감추기 어렵다. 이유는 단순무식하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말이 한국어라서다. 이건 떼 쓰고 고집부리며 미운 짓을 골라해도 자기 아이에 대한 애정이 불가피한 것과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편애이고, '운명애'다. 같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한다는 점에서 고종석과 나는 젠장, 그 '운명 공동체'다. 운명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그저 어루만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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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1-08 23:27   좋아요 0 | URL
^^ 로쟈님도 고종석과 한국어를 무척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나온거 알고 벌써 주문했답니다. 아직 읽지 않은 그의 책도 몇 권 있는데 고종석 건 나오자마자 자꾸 질러버리네요. 신문 연재는 옮겨다 놓긴 했어도 다 읽진 못했어요. 책으로 나올걸 알기에. 신문으로 보는 것보다는 책으로 읽는 걸 좋아해서. 좋은 밤입니다. :)

로쟈 2009-01-09 00:12   좋아요 0 | URL
네. 불가피한 편애입니다. 언젠가 문체론에 대한 글을 하나 더 써봐야겠어요...

Joule 2009-01-08 23:49   좋아요 0 | URL
딱 그만큼의 고종석을 좋아한다는 로쟈 님 말씀에 크게 동의하고 갑니다.

로쟈 2009-01-09 00:14   좋아요 0 | URL
저는 자유주의자 고종석도 지자하는 편입니다. 미식가적 취향은 제가 못 따라가지만...

푸른바다 2009-01-09 00:18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P.S.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고종석은 한동안 좋아한적은 있으나 요즈음 들어 보이는 그의 지리멸렬 때문에 관심이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로쟈 2009-01-09 00:26   좋아요 0 | URL
저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무던한 편입니다. 고정이 되면 메뉴를 잘 바꾸지 않지요.^^

비로그인 2009-01-09 00:55   좋아요 0 | URL
문체론에 대한 글을 써볼 생각이라고 하시니 기대하겠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1-09 14:44   좋아요 0 | URL
아주 애정이 묻어나는 PS네요. 다른나라 말을 아주 잘하게되어도 뭔가 미진하게 표현한듯한 느낌을 가지게 될 거 같아요. 제가 사투리 사용자로서 거의 완벽하게 표준어를 쓰지만 느끼는 약간의 답답함처럼 ^^
고종석님은 책보다는 다른 지면에서 자주 만나는데 참 감각이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청와대 지하 벙커에 '비상경제상황실'이 설치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든 생각은 아무래도 게리 슈테인가르트의 <망할 놈의 나라 압수르디스탄>(민음사, 2007)을 좀 읽어봐야겠다는 것이었다. 망할 놈의 나라, 내지는 망하기로 작정한 나라가 MB의 대한민국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거의 '압수르디스탄' 수준이 아닐까. 어이없어 하면서 읽은 기사들 중 사설 하나와 진중권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9. 01. 07) [사설]경제위기 확산된 뒤에야 설치된 ‘워룸’

비상경제정부 체제하의 상황실 노릇을 할 비상경제상황실이 어제 설치돼 가동에 들어갔다. 청와대는 하루하루 급박하게 돌아가는 경제 상황을 점검하는 일종의 워룸(War Room)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정부 안팎에 긴장감을 불어넣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상황실 사무실을 전시(戰時)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청와대 지하 벙커에 두었다. 그러나 정부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흔적은 없고, 어딘가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지 벌써 4개월이 되어가고 있다. 금융위기 초기, 그 위기가 미국 국경을 넘어 전 세계 금융시장으로 번지자 영국 등 몇몇 나라들이 워룸 같은 비상기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분 단위, 초 단위로 바뀌는 금융 상황을 점검하고 대응책을 신속하게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국내 금융시장이 극도의 패닉 상태에 빠져 있을 때에도 관련 업무를 총괄할 비상기구를 설치하기는커녕 부처별 각개약진과 혼선, 한 발 늦은 대책 등으로 여론의 질책을 받았다. 그러던 정부가 금융시장이 얼마간 진정된 지금에서야 워룸을 운영한다고 하니, 뭔가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뒷북치기 식으로 만든 기구가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즉흥적인 업무 처리로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달 전 이른바 신빈곤층 대책 마련을 지시했으나 신빈곤층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놓고 부처 간 논란만 빚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 계획도 뒤죽박죽이다. 이 대통령이 연일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자 지난해 말 정부 부처들은 2009년 업무계획을 통해 너도나도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보고했다. 이때 나온 정부 부처들의 일자리 계획을 모두 합치면 43만개에 이른다고 한다. 실업자들의 절반 이상을 고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그러나 무슨 재원으로 어떻게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새로 운영되는 비상경제상황실이 이런 전시성 계획이나 ‘뒤죽박죽’ 정책의 양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노컷뉴스(08. 01. 07) 진중권 "녹색뉴딜? 군복이 녹색이면 군대는 환경단체?"  

▶ 진행 : 고성국 박사 (CBS 라디오 '시사자키 고성국입니다')
▶ 출연 : 진중권 중앙대 겸임 교수


▲ 청와대 지하벙커에 비상경제상황실이 설치됐는데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 한마디로 어이가 없죠. 서울이 지금 가자지구입니까. 이스라엘에 폭격을 맞고 있는 상황인가요. 그런 상황도 아닌데 왜 벙커로 들어가는지 모르겠고요. 이런 데서 우리는 집권층이 가지고 있는 구시대적 마인드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분들이 구사하는 수사법을 보면 정말 6,70년대의 남한 아니면 5,60년대의 북조선 같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예를 들어 집권하자마자 얼리버드 운동을 했는데 그건 북한의 새벽별 보기 운동을 연상시키고요. 대통령도 디지털 시대에 젊은이들을 향해서 에어컨 돌아가는 사무실이 아니라 공사장 나가서 땀 흘리라고 얘기하지 않습니까. 이건 천 삽 뜨고 허리 한 번 펴기 운동을 생각나게 하고, 또 정부와 여당에서 아주 공공연하게 속도전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속도전이야말로 전형적인 천리마정신인데요. 여당 대표도 공공연히 전국이 공사판처럼 느껴지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건 전쟁 직후의 전후복구사업을 연성시키거든요. 이걸 보면 정부여당의 마인드가 완전히 과거에 고착되어 있다는 느낌입니다.  

▲ 지하벙커 문제는 청와대에 공간이 없어서 기존시설을 활용하는 차원에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던데요?   

= 그런 식이라면 애초에 그렇게 나와야 하는데 지금 지하상황실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레토릭이라는 게 제가 볼 땐 그런 차원은 아닌 것 같아요. 정치적인 제스처가 있어서 자기들이 시시각각 전쟁 상황처럼 대응하고 있다는 발상 아닙니까. 저는 이렇게 경제를 운용하는 걸 워게임 모델을 도입하는 게 굉장히 시대착오라고 생각합니다.  

▲ 경제위기상황실 운영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도 그런 걸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 그런데 이분들이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약간 일종의 문화적 이벤트로 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너무 서두른다는 느낌이랄까요. 언제는 위기였다라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다가 또다시 했다라고 했다가 굉장히 서두른다는 느낌이 들고요. 지금 필요한 건 위기 자체에 대해 대응하는 것도 있지만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위기라는 것들이야 왔다가 또 언젠가는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부분 전문가들이 올해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쯤 되면 경기가 다시 풀릴 것이라고 예상하는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군사용어까지 남발해가면서 호들갑을 떠는 게 맘에 안 들고요. 더 중요한 건 이분들이 나중에 경기가 풀리게 되면 그때 우리가 이런 식으로 상황실까지 설치해서 대응한 덕이 아니겠느냐고 자화자찬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 정부가 어제 위기극복대책의 일환으로 녹색뉴딜을 발표했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 군복이 녹색이라고 군대가 환경단체가 되는 건 아니겠죠. 그리고 녹색이라는 게 원래 현 정권의 시장주의 코드와는 잘 안 맞는 색깔이거든요. 그런데 국제적 압력 때문에 할 수 없이 들여온 건데, 예를 들어 지구온난화 같은 환경파괴 때문에 세계 각 국에서 시장에 한계를 두려고 하지 않습니까, 탄소배출을 제한한다든지. 그러다보니 할 수 없이 들여온 건데, 그 낱말을 들여다가 자기식대로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가령 저탄소 에너지라면서 원자력을 강조한다든지 그런 식이라는 거죠. 그리고 녹색뉴딜이라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콘크리트 공사 위주거든요. 저는 그 말을 들으면 산 깎아서 콘크리트 치고 그 위에다 녹색그물 같은 걸 덮어두는 게 연상되더라고요.  

▲ 이번 녹색뉴딜의 핵심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거든요?  

= 그런데 오바마의 그린뉴딜과 정부의 녹색뉴딜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오바마의 것은 최첨단 재생에너지기술에 대한 연구와 개발로 녹색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 일자리들은 전문적이고 지속적이고 미래지향적이고, 또 일본이나 영국과 같은 나라들도 대개 그런 식으로 포트폴리오가 짜여져 있는데, 현 정권의 녹색뉴딜은 결국은 토목공사가 대부분입니다. 거기서 창출되는 일자리도 90% 이상이 건설일용직이고요. 또 공사가 끝나면 사라지는 일자리들인데요. 제가 볼 땐 경제에 대한 관념 자체가 너무 토목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에 50조라는 거금을 근시안적인 프로젝트에 쏟아 붓는 걸로 보입니다. 사실 경기는 부양해야 할 필요가 물론 있습니다. 그리고 건설 부문에서 일자리 창출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겠지만 50조라는 것도 결국 국민의 세금인데 조금 더 미래지향적이고 전문적이고 우리 경제를 위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지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여야가 극한대치상태를 벌이다가 합의를 했는데요. 여야합의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 저는 당연히 그렇게 됐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건 이렇게 합의가 이뤄질 바에는 뭐 하러 그런 충돌을 해야 했느냐는 겁니다. 어차피 합의가 이뤄질 바라면 서로 예상이 되지 않습니까. 자기들이 강행하면 저쪽에서 물리적으로 저항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예측되는 결과들이 있는데 한두 번 해보는 것도 아니고 왜 매번 이런 것들을 반복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여야 합의가 끝나고 나서 민노당 강기갑 의원의 의원직 사퇴결의안을 추진하겠다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이런 상황은 어떻게 보십니까?  

= 제가 볼 때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합의가 이뤄졌고요. 거기서 민노당이 계속 반발하다보니까 일종의 왕따를 시키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민노당 의석이 작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사건이 다 끝난 다음에 이어지는 일종의 희생양 제의처럼. 물론 강기갑 의원이 잘못한 행위가 있는데 그것에 비해선 과도하게 중요성들을 부여하면서 상징적인 사건으로 만들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 어떤 식으로 처리하는 게 현명할까요?  

= 강기갑 대표가 사과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그분이 부상을 당하고 상황에 대해 분노하는 건 이해하지만 의원으로서 적절한 행동은 아니었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선 이미 대국민사과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기갑 대표를 공적 1호라고 하면서 제명을 추진한다는 얘기까지 들리는데요. 제가 볼 때 강기갑 대표가 공적 1호라면 한나라당과 민주당 그분들은 공적 0순위들입니다. 과거에, 또 현재에 했던 일들을 생각해보라는 거죠. 자기들도 의사당에서 분말소화기 쏘는 것도 폭력 아닌가요.  

▲ 여야 합의는 됐지만 한나라당 내에선 후폭풍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야당의 떼법에 한나라당 원내지도부가 굴복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 것 같은데요?  

= 그건 잘못된 생각인 것 같습니다. 만약 국회에서 다수당이 맘대로 한다면 굳이 총선한 다음에 의회를 구성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굳이 야당 의원들에게 뭐 하러 세비를 줍니까, 여당 의원들이 하자는 대로 다 하면 되는 거죠. 보시면 아시겠지만 합의처리라는 용어도 있고 협의처리라는 용어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이 분명하게 다수와 소수의 의견을 절충하는 절차라는 게 그동안 국회에 있었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 그런데 한나라당은 대선민심, 총선민심을 승복하라는 주장을 계속 하는데요?  

= 그럼 촛불민심도 승복해야죠. 지금 한나라당과 특히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어느 정도 나옵니까. 일본의 경우라면 내각의 사퇴, 내각을 다시 구성해야 할 정도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국민들이 대선 때 자기들을 뽑아줬다고 대선의 모든 공약을 다 동의했다고 생각하는 건 정말 논리적인 오류죠. 특히 대운하 같은 것들을 국민들이 그때 동의한 건 아니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까지. 그리고 방송법에 대해서도 국민들의 여론은 다르게 나오고 있고요.  

09. 0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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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1-08 17:45   좋아요 0 | URL
원래 신자유주의,특히 미국의 신자유주의는 뉴딜 반대파가 그 뿌리인데...그래서 우리나라 뉴라이트 경제학자인 이상돈(중앙대 교수)씨는 루스벨트 비판,뉴딜 비판에 몰두했지요.그런데 대통령이 뉴딜의 명성을 빌려 저렇게 나오니 어떻게 볼지 궁금해요.뉴딜이 실패한 정책이라고 그렇게 강조했거든요.

로쟈 2009-01-08 22:53   좋아요 0 | URL
기회주의적 비판이 아니었다면, MB식 뉴딜도 비판해야겠죠...
 

드디어, 자크 라캉의 세미나 시리즈가 출간되기 시작했다. 세미나 11권이 제일 먼저 나왔는데,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새물결, 2008)이 타이틀이다. 출간일자는 작년으로 돼 있지만 배본은 최근에 된 듯싶다. 사실 이 세미나 시리즈는 수년 전부터 예고돼 있던 터이므로 출간 소식 자체가 놀랍진 않지만 과연 나오는 것인가란 의혹을 불식시켜준 것은 평가할 만하다. 물꼬가 트인 만큼 나머지 세미나와 <에크리>까지도 곧 한국어본을 얻으면 좋겠다. 이걸 어떻게 읽고 소화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이제 숙제로 남는다. 

 

자세한 책소개는 상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출판사 소개를 참조하면 되겠다. 일부만 발췌하여 옮기면 이렇다.  

라캉의 세미나는 1953년 시작되어 그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행해졌으며, 매 해의 세미나를 제자이자 사위인 자크­알랭 밀레가 편집해 책으로 발간하고 있다. 출간되어야 할 권수는 27권이고 프랑스에서도 아직 모든 세미나가 출간되지 않고 계속 발간 중이다. 그렇다면 총 27권의 라캉 세미나들 중에서 ‘세미나 11권‘이 최초로 번역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1973년에 발간된 ’세미나 11권’은 프랑스에서도 라캉의 세미나 가운데 최초로 출간된 것으로서, 1963~1964년에 행한 열한번째 ‘구술’ 세미나를 책으로 옮긴 것이다.(...) 말하자면 ‘세미나 11권’은 라캉의 정신분석이 프랑스 정신분석학계뿐 아니라 프랑스 사상계 전반에 걸쳐 본격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출발점에 위치한 세미나이다. 

다른 한편 ‘세미나 11권’은 1950년대의 라캉과 일종의 ‘단절’을 시도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프로이트로의 회귀’를 외치면서 언어, 주체, 기표, 상징적인 것 등에 관심을 기울였던 그가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상징적인 것을 넘어서는 것들을 구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완전한 구조주의자는 아니었지만 1950년대만 해도 라캉은 자신의 이론을 구축하면서 구조주의와 언어학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세미나 11권’에서 라캉은 ‘구조의 완결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더욱더 많은 노력을 할애하게 되고, 그러면서 ‘실재’와 ‘대상 a’ 개념을 정립하기 시작한다. 이런 의미에서 ‘세미나 11권’은 라캉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의식을 개념화하고, 상징적인 것 너머의 것을 이론적으로 구성하고자 한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세미나 11권은 진작에 영어로 번역돼 있으며 <세미나 11권 읽기>(1995)까지 출간돼 있다. 한국어본이 출간되었다고는 하나 사실 여러 번역본과 주석을 참조하여 '교차적 읽기'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부득이 라캉의 미로를 헤맬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20세기의 가장 난해하면서 가장 중요한 이론가의 한 사람을 한국어로 읽는 '모험'은 도전해볼 만하다.  

 

 

 

 

 

 

  

특히 이번 번역은 이미 <라캉과 정신의학>(민음사, 2002)과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인간사랑, 2002) 번역을 통해서 라캉주의에 대한 이해를 선보인 역자들이 맡고 있어서 안정감을 준다(짐작에 라캉의 언어를 우리말로 옮길 수 있는 역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여하튼, 간만에 이론 읽기의 독서욕을 부추기는 '물건'이 나와서 반갑다(지난 연말에 나온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문학동네, 2008) 정도가 이에 견줄 수 있다)... 

09. 01. 07.  

Лакан Ж. Четыре основные понятия психоанализа. Семинары: Книга XI (1964). Кн.11

P.S. 참고로 러시아어로는 라캉의 세미나가 현재 여섯 권이 번역돼 있다. 그 중 11권은 지난 2004년에 출간됐다. 모스크바의 서점에서 기쁜 마음으로 집어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책도 책상맡으로 옮겨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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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9-01-08 04:00   좋아요 0 | URL
오호, 드디어 나왔군요!!! 멀리서 반가운 소식 접하니 그 반가움이 더욱 배가됩니다.^^

로쟈 2009-01-08 22:52   좋아요 0 | URL
'멀리' 나가 계신가요?^^

푸른바다 2009-01-08 21:43   좋아요 0 | URL
전 개인적으로 인간의 정신을 설명하는 라깡의 다양한 개념들이 상당히 흥미롭기는 하지만 지적인 유희가 너무 심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라깡은 물론 알튀세르, 푸코, 데리다 등이 폭로하는 즉물적 현실 이면에 놓여 있는 또 다른 진실에 물론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만 과연 이들이 주장하는 대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늘 아리송할 따름입니다.

로쟈 2009-01-08 22:52   좋아요 0 | URL
저도 라캉의 매력은 잘 모르겠지만(그는 자신을 직접 교주처럼 신비화하기도 했지요)지젝이 읽은 라캉이 흥미로워서, 그리고 '생산적'이어서 관심을 갖습니다..

yoonta 2009-01-08 23:55   좋아요 0 | URL
읽을수있는 리캉인지 아닌지..궁금하네요.
러시아에서는 라캉이 벌써 많이 번역되었나 봐요? 러시아어의 라캉이나 지젝번역들은 어떤가요?

로쟈 2009-01-08 23:59   좋아요 0 | URL
현재로선 최선의 번역이라고 봐야죠. 최상은 아니더라도. 라캉의 <에크리>도 아직 러시아어판이 없습니다. 세미나 6권과 <텔레비전>, <로마강연> 등이 소개돼 있어요. 지젝은 한국에서 더 많이 소개됐구요. 다만 <시차적 관점>은 러시아어판이 먼저 나와 있습니다. 러시아어 번역을 제가 품평할 정도는 안되고요, 영어나 한국어가 막힐 때 독해에 도움은 줍니다...

Poissondavril 2009-01-09 09:11   좋아요 0 | URL
이 책의 교정에 참여한 사람입니다. 저의 본업은 번역이지만 워낙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서 (사실은 역자들의 지명을 받아서...-_-;;) 교정에 참여했었습니다.
저 역시 현재 기대할 수 있는 번역으로서는 최선... 이라고 생각하고, 저 자신도 불어판, 영문판, 일어판을 모두 비교해가며 교정 작업을 했습니다. 제 작업 이후에도 몇 년 동안 수정과 검토가 이루어진 것으로 압니다.
다만, 자크 알랭 밀레가 굉장히 까다로운 번역 원칙을 부과하고 있기 때문에 독해가 녹록치 않을 겁니다. 문화적 차이 때문에 반드시 설명해야 하는 용어가 아니면 역주를 달 수도 없고, 정신분석학적 주요 개념에 대해 설명하거나 역자의 해설을 달 수도 없도록 모든 번역본들에 대해 엄격한 원칙을 세우고 있거든요. 독자들은 좀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건 역자나 출판사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부분입니다. 라캉의 세미나는 원래 그런 책이니까요.

로쟈 2009-01-09 21:37   좋아요 0 | URL
저도 <에크리> 교정에 참여할 뻔했습니다.^^ 그래도 <세미나>는 구술이어서 <에크리>보다는 사정이 나을 듯싶은데, 이게 계기가 되어 한국어 라캉이 연착륙하면 좋겠네요...

푸른바다 2009-01-09 00:13   좋아요 0 | URL
저도 한 동안 아주 머얼리 있었습니다. 한동안 한국 소식도 끊고 살았는데, 다시 접속한 순간 아니나 다를까 더 악화되 있어 모르는게 약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암튼 로쟈님 덕분에 저도 지젝이라는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되긴 했으나 아직 가진 책이라곤 '삐딱하게 보기'밖에 없군요. 지젝이 기본 입장이 잘 기술되어 있다는 '이데올로기라는(의) 숭고한 대상'은 이미 절판되어 구할 수 없고, 다른 책들은 번역이 미심쩍다 하니 손이 안가고...

제 생각에 고전적인 사상들, 예를들어 유교, 불교, 플라톤 사상 등등은 비교적 뚜렷한 목적성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유교는 성인되기를 추구하고, 불교는 해탈을, 플라톤 역시 단견(doxa)을 초월하는 에피스테메에 이르를 것을 주장합니다. 헤겔의 매력도 아마 '절대지'에 이르는 여정을 투박하나마 제시한 데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맑스를 존경하지만, 그는 물질적이고 객관적인 삶의 여건의 개선에만 집중했을 뿐 인간이 가지는 궁극적인 관심에 대해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투박한 질문인지는 모르나 지젝이 철학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로쟈 2009-01-09 00:22   좋아요 0 | URL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것'이 철학입니다. http://blog.aladdin.co.kr/mramor/1545343 참조하시길...

글샘 2009-01-15 04:03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하우투리드 시리즈의 지젝이 쓴 라캉을 읽고 있는데요...
라캉은 너무 다양한 데서 개념들을 빌려다 혼용하는 통에...
저는 프로이트의 성도착적 개념도 맘에 안들지만, 거기서 더 나간 라캉을 읽기란 만만치가 않군요. 휴... 라캉을 제대로 읽을 날이 오긴 할까 모르겠습니다.

로쟈 2009-01-15 09:19   좋아요 0 | URL
뭔가 도움이 된다면 읽는 것이죠. 누구 말대로 책이란 기계장치 같아서, 작동하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 '제대로'보다 중요한 건 그 작동 유무 같습니다...
 

지난 연말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모티브북, 2008), <장기 20세기>(그린비, 2008) 등의 책이 출간된 조반니 아리기에 관해서는 몇 차례 포스트를 올려놓은 바 있는데, 이를 계기로 세계체제론의 계보를 짚어보는 기사도 올라왔기에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8. 01. 08) 14년전 ‘금융위기 예언’ 조반니 아리기 환한 조명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체제론자 조반니 아리기(71·사진)가 뒤늦게 주목받고 있다. 자본주의의 반복되는 호황과 위기를 세계 패권의 순환이란 틀에서 분석한 그의 대표작 <장기 20세기>(그린비 펴냄)와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모티브북 펴냄)가 19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간다는 세계경제의 위기국면에 때맞춰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덕분이다. 

 

미국의 신경제가 호황을 누리던 1994년 펴낸 <장기 20세기>에서, 아리기는 당시 미국 경제의 부활이 세계 패권의 쇠퇴기에 등장하는 일시적 호황에 불과하며, 머잖아 최종적 위기를 맞게 되리라는 사실을 앞선 네덜란드·영국 패권 쇠퇴기의 호황 국면과 비교해 제시함으로써 적잖은 파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예언’은 14년이 흐른 지난해 가을 월스트리트발 금융 공황과 더불어 현실화된 것처럼 보인다.  

아리기는 1960년 밀라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좌파 노동운동과 연계된 ‘그람시 그룹’에서 활동했다. 1979년 미국 뉴욕주립대에 자리를 잡은 뒤에는 ‘세계체제론의 지휘부’ 격인 페르낭브로델센터를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이매뉴얼 월러스틴(78), 안드레 군더 프랑크(1929~2005), 사미르 아민(77)과 함께 ‘세계체제론 4인방’으로 불렸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세계체제론이 주목을 받았던 1990년대 말에도 월러스틴의 그림자에 가려 있었고, 10여년이 흐른 최근까지 10권이 넘는 저작과 100여편에 이르는 논문들 가운데 금융화와 미국 패권의 향방과 관련된 몇 개의 단편만 번역됐을 뿐이었다.  

최근 백승욱 중앙대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된 <장기 20세기>는 제목과 달리 15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자본주의의 장기 역사를 다룬 책이다. 이 점에서 아리기의 작업은 월러스틴이 집필 중인 <근대세계체제> 시리즈와 중첩된다. 다만 세계체제의 팽창과 순환을 설명하면서 월러스틴이 중시하는 콘드라티예프 순환이나 중심-주변부의 수직적 분업 대신 ‘체계적 축적 순환’이라는 개념을 앞세운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아리기에가 보기에, 자본주의는 네덜란드 패권기(17~18세기), 영국 패권기(19세기), 미국 패권기(20세기)를 거치며 진화해 왔는데, 각각의 시기는 패권국이 주도하는 독특한 축적체제를 갖는다. 이런 축적체제는 새로 등장한 패권국 안에서 형성돼 세계적 규모로 확장된 뒤 전성기를 누린다. 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이윤율 하락과 체제유지 비용의 증대로 위기를 맞게 되고, 결국 새로운 국가-기업 복합체가 주도하는 경쟁력 있는 축적체제로 대체된다. 

체계적 축적 순환에 대한 아리기의 분석에서 주목되는 것은, 모든 세계적 축적체제가 최종적 붕괴를 맞기 전 금융부문이 일시적으로 팽창하면서 ‘반짝 호황’을 누린다는 점이다. 축적체제가 활력을 잃게 되면 자본이 과잉축적되면서 생산·유통 부문의 이윤율이 금융수익률보다 하락하고, 유동자본을 얻으려는 국가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는데, 그 결과 실물부문의 자본이 금융으로 이탈하면서 두 부문 모두에서 이윤율이 일시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영국의 ‘벨에포크’(아름다운 시절), 1990년대 미국의 신경제 호황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나 이런 호황은 금융부문의 투기적 활황과 생산부문의 부분적 경쟁 완화를 통해 달성된 것이기에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이런 분석은 정보기술(IT) 거품과 과열된 주택경기 덕에 지탱되던 미국 금융호황이 최근 파국을 맞은 것에서도 입증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금융팽창이 경쟁력 있는 예비 패권국들로 자본을 이전시키면서 기존 패권국의 몰락을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아리기가 보기에, 18세기와 19세기 금융팽창의 수혜국은 다음 시기 패권국으로 등장하는 영국과 미국이었다. 그렇다면 위기에 빠진 미국으로부터 패권을 넘겨받아 새로운 축적 순환을 주도할 주인공은 누구인가?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아리기는 일본이 중심이 된 동아시아 경제권에 주목했다. 하지만 그는 10년 새 급속히 성장한 중국 경제로 시선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최근 집필한 <장기 20세기>의 한국어판 서문에서도 확인된다. 여기서 아리기는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빠진 사이 중국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금융자산을 획득했고, 동아시아와 그 너머에서까지 미국을 대체해 상업적 팽창과 경제 팽창의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고 기술한다. 그런데 아리기가 중국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런 외형적 성과 때문만이 아니다. 2007년 펴낸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에서 그는 중국의 경제시스템을 사회주의 복지제도에 기반한 ‘노동 집약-에너지 절약적’ 축적체제로 규정하고, 이것을 ‘자본-에너지 집약적’인 서구식 축적체제를 대체할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의 미래’로까지 격상시킨다.  

하지만 이런 아리기의 주장에 대한 서구 좌파학계의 평가는 냉담하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가 지난해 11월 <교수신문>에 소개한 영미권 학자들의 반응은 아리기의 관점이 “초기 자본주의와 다르지 않은 중국 자본주의의 착취구조에 대한 무지”(데이비드 하비 뉴욕시립대 교수)에서 비롯된 “현실과 동떨어진 희망적 가설”(마크 엘빈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 명예교수)에 가깝다는 것이다.(이세영 기자) 

09. 0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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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1-08 17:39   좋아요 0 | URL
분과 사회과학을 뛰어넘어 역사학까지 아우르는 이런 학자들...문사철하는 이들의 꿈이죠.
저 도표를 보면서 정성진 씨가 화내겠군요.트로츠키는 왜 빠졌느냐고...

로쟈 2009-01-08 22:50   좋아요 0 | URL
문사철은 좀 다른데요.^^ 그 안에서도 '데이터(팩트)'를 다루는 이들이 있고, '언어(글)'을 다루는 이들이 있으니까요. 사회과학의 꿈일 텐데, '역사적 사회과학'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딸기 2009-01-08 22:01   좋아요 0 | URL
재닛 아부루고드도 안 보여요...

로쟈 2009-01-08 22:48   좋아요 0 | URL
'4인방' 중심이어선가 봅니다...

딸기 2009-01-08 22:02   좋아요 0 | URL
그런데 유럽중심주의 절판이었는데... 다시 나왔나봐요?

로쟈 2009-01-08 22:47   좋아요 0 | URL
절판된 거 맞습니다. 개정판이 나올 거라고 하네요...

딸기 2009-01-12 16:32   좋아요 0 | URL
헤구구... 언제나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