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서 분야에서 이번주에 포커스로 다루어질 만한 저자는 단연 한형조 교수다. 조선 유학에 관한 논저 <왜 조선 유학인가>와 <조선 유학의 거장들> 두 권을 한꺼번에 출간했기 때문이다. 한겨레에서 자세한 리뷰를 옮겨놓는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13918.html).

한겨레(08. 10. 04) 조선 유학 그 끝에서 길을 보다

조선은 왜 망했는가? 지난 10여년간 독창적인 시각과 활달한 문체로 한국 유학을 천착해온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새 책 <왜 조선 유학인가>는 제1장을 이런 제목으로 시작한다. 이 물음은 조선 지배계급 건국이념의 토대였고 나라가 존속한 500여년 동안 백성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지배했던 조선 유학(주자학)이 왜 망했는가로 바꿔 놓을 수 있다. 왜 망했을까?

<조선유학사>를 쓴 현상윤은 문벌을 중시해 인재를 경시하고 계급을 고착시킨 것, 배타적 가족주의, 당쟁 격화, 무를 경시하고 문약으로 흐른 것, 상공업을 천시한 것 등을 ‘조선 유학의 죄’로 지목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유학의 말기적 폐단이 유학 자체의 잘못이냐, 아니면 조선사람의 잘못이냐고 물었다. 한 교수가 보기에 그것은 유학의 죄라기보다는 조선 주류 유학의 죄요, 결국 사람의 죄다. 조선 주류 유학은 점점 초기의 근본정신을 배반하고 적응력을 잃어갔으며, 이를 비판하고 문제를 제기한 비주류와 변경의 목소리들을 배척하면서 몰락의 길을 갔다. 이런 현상은 특히 임진·병자년의 침략전쟁을 겪은 뒤 돌이킬 수 없을 지경이 됐다. 상황이 바뀌었으면 이념의 지도도 바뀌어야 했다. 하지만 바뀌기는커녕 전쟁의 공포와 황폐에 짓눌린 주류는 더욱 경직되면서 기득권에 집착했다.

“허균의 한탄처럼 우연의 평화를 믿다가 왜적에게 강산을 유린당했고, 망해버린 명을 업고 정치적 이득을 챙기느라 오랑캐로부터 만고의 치욕을 당하고 백성을 어육으로 만들었으며, 이후의 역사를 혼란과 부패, 무능과 무질서로 끌고 갔다.” 한 교수는 여기서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경구를 떠올린다. “역사의 교훈을 잊은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하여 똑같은 일이 다시 한번 일어날 것이다.”

산타야나의 경구는 현실이 됐고 조선과 조선 유학은 결국 망했다. 현상윤이 말한 말기적 폐단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한 교수는 우선 유생들이 직업을 갖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직업이 있었다면 오직 과거급제 뒤 관직에 진출하는 것이었으나 대다수 유생들은 거기서 소외됐고, 그들은 상공업적 이익을 천시하고 금기시했으며 농사도 직접 지은 적이 없다. 절박한 생계문제를 비롯한 구체적 현실과 유리된 학문은 관념화하면서 “헛기침과 체면치레가 자랐고, 번잡한 허식을 절대의 이름으로 고수하는 완고를 키웠다.”지독한 가난 속에 귀천이 분열되고 지배와 저항이 갈렸으며, 지배계급은 그들이 떠받든 경전의 일자일구도 바꾸지 못하게 했고 어떤 이의도 달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학술을 죽이고 인재를 죽였으며, 지식과 학문과 경영이 부재한 가운데 부패와 무능 사이를 오갔다.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오히려) 학문을 살렸고, 이후의 활발한 주석이 학문을 죽였다”며 유교가 가진 자들의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전락한 현실을 한탄했던 정조는 거기에 칼을 대다 자신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조선 유학은 결국 자멸한 뒤에야 비로소 부활의 가능성을 열었다. 조선 유학의 르네상스를 꿈꾸는 한 교수는 그 실마리를 주류들이 배반하고 배척했던 초기 근본정신과 변경 비주류 유학에서 찾았다. 주자학의 전면적 재검토를 통해 기반 다지기 작업을 벌여온 한 교수가 지난 15년 동안 매만져온 또 하나의 새 책 <조선 유학의 거장들>이 율곡 이이부터 시작해 퇴계 이황, 남명 조식, 다산 정약용 등을 거쳐 혜강 최한기를 파고든 것은 그런 맥락 위에서다. <왜 조선 유학인가>는 자책, 방법, 스펙트럼, 지도 등 7가지 주제로 쓴 조선 유학에 대한 메타적 성찰들을 모은 것이고, <조선 유학의 거장들>은 조선 유학 최고봉들의 핵심적 아이디어와 그들 간의 사상적 격전을 통해 의외로 넓은 조선 유학의 스펙트럼과 뜻밖의 깊이를 드러내준다.


적어도 율곡·퇴계의 시대까지는 조선 유학이 열려 있었다. 이학(理學)의 틀 안에서 벌이는 주기(主氣)론 쪽의 율곡과 주리(主理)론 쪽 퇴계의 사단칠정 논쟁, 주리론 쪽에서 파생되는 북학파와 실학, 그리고 주자학의 토대를 무너뜨린 최후의 실학자 혜강의 기학(氣學) 간 길항이 날카롭다. 서인-노론으로 이어지는 정치지형 속에서 비록 권력에선 소외당했지만 독특한 빛을 발했던, 퇴계와 동갑이었던 단호한 실천가 남명이 빚어낸 무늬도 이채로웠다. 율곡은 16살 때 어머니 신사임당이 세상을 떠나자 삶의 허무를 이기지 못해 금강산 절로 들어갔다가 1년 남짓 뒤 하산한다. 바로 이 행적 때문에 율곡은 나중에 두고두고 이단 혐의를 받으며 고통을 당했으나 한 교수는 오히려 그 체험을 통한 실존적 자각이야말로 율곡이 “투명한 공적 자아로 사태의 원리를 탐구하고, 그 지식을 토대로 현실을 혁신해나가도록” 만든 더할 나위 없는 자산이었다고 본다.

1554년 그때 율곡이 한 암자에서 만난 노승과 나눈 선문답적 대화를 자세히 살피고 분석한 글은 불교와 유교의 동질성과 본질적 차이를 드러내는 글이지만, “유학의 르네상스는 아마 유교 문화권이 아니었던 곳에서, 혹은 전통의 격세유전을 통해서 기지개를 켤지 모른다”고 한 지은이의 남다른 의지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지은이 자신이 원래 유교 전통 바깥에서 성장했다. 기학의 근대를 거쳐 탈근대가 운위되는 지금 이학의 재발견, 근대가 잃어버린 인간 본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더 많은 사적 이야기들이, 편견과 독단을 무릅쓰고 풍성해지기를…. 조선 유학의 실체는,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현란한 언설들 사이에서, 무성한 변증과 격돌의 현장에서 피어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한승동 선임기자)

■ 지은이와 함께 /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한형조(50) 교수는 대학 철학과에서 불교 공부를 했으나 졸업할 때쯤 유교 쪽으로 바꿔 ‘다산의 인간관’으로 석사를, ‘주자학에서 다산으로의 철학적 전환’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왜 바꿨을까. “학부 초년 시절 휴학하고 무작정 절로 들어갔는데, 그쪽 얘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아무 문제도 아닌 걸 문제로 껴안고 고민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행적이 “율곡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공부를 마음의 본성에 낀 때를 벗겨내는 방편으로 삼는다는 점에선 불교가 주자학과 다를 바 없었으나, 불교엔 유교가 중시하는 플러스 알파가 없다는 생각을 그는 했다.

“주자학엔 2개의 코드가 있다. 심학과 예학인데, 심학은 주자학 쪽이 불교에서 받아들인 것으로 서로 공통이다. 하지만 인간관계나 현실, 곧 문명의 질서, 문명적 구상을 다루는 예학이 불교엔 없다.” 율곡이 노승과의 선문답에서 얘기한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한 교수가 한때 산으로 들어갔다가 하산한 뒤 유교로 옮겨간 행적이 율곡의 그것과 닮은꼴이다.

한 교수는 10여년 전 <주희에서 정약용으로>라는 책을 낼 때 “이제부터는 <정약용에서 주희로>가 필요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학위논문을 쓸 때는 다산이 고전 재해석처럼 경학을 통해 경학을 재검토하는 방식의 주자학 비판을 발전사적 관점, 진보적 시각에서 점검을 했는데, 논문을 끝낼 때쯤 다산의 그런 주자학 비판이 전적으로 옳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혹시 다산의 관심사, 곧 다산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주자학을 바라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내가 아직 주자학을 잘 모른다는 거였다. 주자학의 내면적 맥락과 가치들을 본격적으로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런 얘길 했다.”

조선 유학의 르네상스를 꿈꾸는 그는 “나도 퇴계처럼 개인주의자여서 소명의식 같은 거창한 건 없고 공부와 개인 성장을 위한 훈련 방법, 나름의 가치 추구와 그를 위한 고찰이나 반성에 유익하다는 생각을 했고, 또 그런 게 나만이 아니라 현대인 모두에게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중요한 것은 강압이 아니라 공감과 감화인데,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 아니겠느냐”고 했다.

한 교수는 “상자 바깥에서 달리 생각하는 법, 전혀 다른 사고가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 사회가 예전에 비하면 많이 자유로워졌고 풍요로워졌으나 개인적 공간은 별로 넓어진 것 같지 않다. 주류 바깥, 체제 바깥에서 생각해야 새로운 사고가 나온다. 특히 인문학은 공부해서 자기만의 것을 써낼 수 있으려면 30년은 걸린다. 좀 내버려뒀으면 좋겠는데, 논문 쓰기 위주 학사체계에 수업시간도 너무 많고 그것도 일방적인 수업이다. 학생들도 학교수업 소화하기 바쁘고 취직에 매달리니 성찰할 기회가 없다. 그러니 창의성도 없다. 이런 기업식 학문 추구 풍토에서는 주자학 연구자 같은 학계의 아웃사이더들이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다.”

최근 국내외에 ‘퇴계학’이 떠오르고 있는 이유는 뭘까. “퇴계는 노력가로 도산서원에서 오랫동안 충분히 주자학을 연마하면서 학자나 교사로는 최고의 수준에 올랐다. 그에 따라 제자들도 많다. 외국에서 특히 퇴계학이 환영받는 것은 퇴계가 심학 쪽을 받아들이기 쉽게 정리해놨기 때문이다. 예학 쪽은 외국인들로선 이해하기 어렵다. 이에 비하면 율곡은 천재과인데, 대개 그런 사람들이 제자나 후손이 약하다. 게다가 율곡은 노론의 종장으로서 정치적으로는 주자학 정통 주류가 됐으나 그만큼 비주류 쪽의 견제나 비판도 심했다.”

08. 10. 03.

주희에서 정약용으로

P.S. 기억에 내가 읽은 한형조 교수의 책은 <주희에서 정약용으로>(세계사, 1996)가 유일하다. 번역서로는 에드워드 콘즈의 <한글 세대를 위한 불교>(세계사, 1990)도 소장도서였다. 중간에 <왜 동양철학인가>(문학동네, 2000) 같은 책도 나왔었다는 건 이번에 알았다. 언제 도서관에서 찾아봐야겠다.

<조선 유학의 거장들>과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 백민정의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사계절, 2007)과 곽신환의 <조선조 유학자의 지향과 갈등>(철학과현실사, 2005)를 들고 싶다. 전자는 공자 이후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의 대표적인 유학자들의 사상을 정리해주고 있는 책이다. 후자는 살펴보지 못한 책인데, 다루는 범위가 <조선 유학의 거장들>과 유사하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푸른바다 2008-10-05 20:11   좋아요 0 | URL
한형조 교수님이 드디어 조선유학에 대한 책을 내셨군요. 사실 기사 내용은 좀 실망스럽다고 느껴지는게, 왠지 기자의 '편견'이 강하게 반영되지 않았나 싶어서입니다^^ 한형조 교수님 책을 직접 읽어보지 않아 뭐라고 하긴 그렇지만 기사에 쓰여있는 "주리론 쪽에서 파생되는 북학파와 실학"이라는 말을 한형조 교수님이 책에 정말로 쓰셨는지 일단 의심스럽군요. 역사적으로 북학파는 율곡 계열인 '주기론' 즉 노론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학'이라는 것이 실제로 있었던 사상운동이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문제가 제기된 바 있고, 현재까지 통용된 '실학'이라는 개념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 개념은 북학파를 포함하고 있는 보다 넓은 개념이기 때문에 '북학파와 실학'이라는 병칭에도 좀 의문이 드네요^^
"서인-노론으로 이어지는 정치지형 속에서 비록 권력에선 소외당했지만 독특한 빛을 발했던, 퇴계와 동갑이었던 단호한 실천가 남명이 빚어낸 무늬도 이채로웠다."는 말도 좀 정확성에 의문이 드는게, 남명 조식계열의 '북인'은 율곡계열의 서인과 퇴계 계열의 남인이 연합하여 인조반정을 일으키면서 동시에 소외시켰기 때문입니다^^

국내외로 퇴계학이 떠오르는 이유 (정말 그런가?^^)로 제시하셨다는 다음의 말씀 즉 “퇴계는 노력가로 도산서원에서 오랫동안 충분히 주자학을 연마하면서 학자나 교사로는 최고의 수준에 올랐다. 그에 따라 제자들도 많다. 외국에서 특히 퇴계학이 환영받는 것은 퇴계가 심학 쪽을 받아들이기 쉽게 정리해놨기 때문이다. 예학 쪽은 외국인들로선 이해하기 어렵다. 이에 비하면 율곡은 천재과인데, 대개 그런 사람들이 제자나 후손이 약하다. 게다가 율곡은 노론의 종장으로서 정치적으로는 주자학 정통 주류가 됐으나 그만큼 비주류 쪽의 견제나 비판도 심했다.” 도 정말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좀 의문이 드는게, 사실 율곡만큼 제자가 많은 유학자도 없지 않나 싶기 때문입니다. 율곡-김장생-김집-송시열로 이어지는 계보가 조선 시대의 사상면에서나 현실정치의 측면에서나 지방 토호로 남았던 퇴계-유성룡, 김성일 계열보다 훨씬 다채롭기 때문입니다.

'조선이 왜망했나'는 처음 질문도 사실 좀 부적절한게, 신유학을 지도이념으로 선포하며 출발한 조선이 500년이나 지속하면서 흥한적도 쇄한적도 있는데 '왜 흥했나'는 질문은 묻어두고 '왜 망했나'는 질문만 던지는 것은 좀 어폐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리스도 망했고 로마도 망했는데, 그리스의 멸망원인을 플라톤 철학에 묻거나 로마 멸망의 원인을 기독교에 묻는 것과 유사하게 부당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좀 이런 '자학적인 질문'에 대해서 반성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형조 교수님 책은 흥미롭지만 왠지 기사를 쓴 기자가 부당한 편견을 많이 갖고 있지않나 하는 의심이 드네요^^ 현재 대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대중 역사서나 사극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말입니다. 한형조 교수님 첫책은 아마도 카마타 시게오의 책 '화엄의 사상' 번역본(1987년 초판, 고려원)일 것입니다. 그뒤로 콘즈의 책도 번역하셨고 '무문관 (여시아문)'이라는 불교책을 한권 더 내셨지요. 도올 김용옥 선생과 한국사상사연구소에서 함께 연구하시면서 '삼국유사와 한국통일'이라는 책에 논문도 내셨고 고사성어에 대한 책도 한권 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한국사나 한국사상사를 연구하시는 분들에게는 아직도 '사색당쟁'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하더군요. 대한민국에서 영남 정권이 득세하면서 조선시대 소외되었던 남인들의 '퇴계학'이 부각되고 노론에 의한 정조 독살설이 마치 역사적 사실인양 그려지고 있다더군요^^ 정약용의 붐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듯 싶습니다^^ 요즈음 정조의 왕권 강화 노력을 미화하면서 노론세력을 공격하는 대중 역사서들이나 사극들도 아이러니칼 한게, 이 설을 주장하는 분들 역시 영국 역사에서 있었던 의회파와 왕당파의 투쟁에서는 당연히 의회파를 지지할 테니까 말입니다. 영국 역사책에 그렇게 쓰여 있으니까... 사실 조선과 영국은 다른 정치 전통을 갖고 있고 정조=왕당파, 노론=의회파라는 도식에는 무리가 있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왕권 강화가 마치 무슨 정도인양 당연시 되고 있는 것도 좀 어이가 없고, 이러한 움직임들이 암암리에 박정희 독재의 정당화와 연결되고 있다는 것도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박정희 부활'의 풍조는 조선 시대 역사 해석의 문제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게 제 요즈음 판단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0-04 23:01   좋아요 0 | URL
근대화나 자본주의 맹아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실학이란 범주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상가들을 함께 구겨 넣은 느낌이 강하죠.흔히들 소외된 남인 계열을 실학으로 알고 정다산을 내세우지만 또다른 실학자 박지원 계열은 노론이니까요.요즘은 노론=보수,남인=진보 도식이 암암리에 유행되는 것 같은데 글쎄...좀 거시기합니다.
북한에서 나온 조선 철학사에서 제일 이상한 내용이 주기=진보 주리=보수 도식입니다.그래놓고도 정다산은 높이 평가하길래 이거 뭐 이러냐....하고 이상하게 여겼죠.사실 요즘은 주리 주기 도식이 하가 토오루가 분류한 것인데 이런 도식으로는 조선 사상사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학설도 나오고 있잖습니까...
남명학파는 지금도 비주류라고 봐야죠.남인 계열 향교에 가서 남명을 칭찬하는 말을 했더니 분위기가 험해지더라는 이야기가 지금도 있답니다.남명이 이퇴계와 문정왕후,보우 등을 싫어했다고 하니까요.남명 계열인 정인홍 파가 광해군 몰락 이후 멸문지화를 당하기도 했고...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의 아류들이 꽤 많습니다.영남 남인을 박정희와 연결하려는 우익들에는 이문열도 있죠.최근엔 송복이 유성룡 전기를 쓰면서 노론 때리기에 나섰는데,남인=실학=근대화=박정희 이런 식으로 강조하려는 것 같아요.그 매개로 정다산이 이용되는데,정조가 박정희라면 정다산은 누굴까요? 이선근? 박종홍? 여하튼 이런 작업이 꽤 먹힙니다.정조 독살되니 아쉽다...실제 독살되었다는 가정하에 쓰인 추리소설도 있고요.이러니,박정희의 죽음이 아쉽다...이렇게 되나요? 허허허...

로쟈 2008-10-05 08:53   좋아요 0 | URL
두 분의 댓글만 읽어도 재밌네요. 드라마 몇 편이 들어가 있군요.^^ '박정희' 숭배론/부활론이 조선조 당쟁에까지 연결된다는 것도 덕분에 알았습니다...

2008-10-04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5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0-05 16:06   좋아요 0 | URL
정조나 정약용은 보수,진보 양쪽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난리입니다만 저는 그다지...두 사람 다 주자학을 한발자국도 못 벗어난 것 같던데...

푸른바다 2008-10-05 19:08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지요... 보수던 진보던 조선시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조선시대를 이상향으로 미화할 필요도 없지만 현재 조선시대에 대한 인식은 보수 진보 모두 왜곡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정적으로만 볼려고 하니까 이른바 재야 학자들이 주목을 받게 되고 그 대표 주자로 떠오른 것이 바로 '정약용'이겠지요. 역으로 조선 시대의 주류 세력이었던 '노론'은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구요^^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서부터 '송시열과 노론'은 나라를 말아먹은 세력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소위 의식있는 선생님에게서 였죠^^

제가 보기에 정조는 참으로 흥미로운 군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류 역사상 군주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인물 중에서 가장 박식한 사람이 바로 정조였을 것입니다. 프레이져의 '황금가지'에도 정조가 언급되지요^^ 물론 단편적이지만^^ 아무튼 정조 시대의 조선 학인 중에서도 정조보다 학식이 깊은 사람은 없었고 아마 정조 본인에게는 노론이든 소론이든 남인이든 모두 유치하게 보였을 것입니다.정조 자신도 만인의 스승으로서 자임하면서 신하들을 가르칠려고만 하지요. 아무튼 조선시대 '聖學' 교육이 만들어낸 가장 성공적인 사례가 바로 정조일수도 있을 텐데 역설적으로 정조야 말로 '聖學' 혹은 성리학적 정치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인물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여기서 다 언급하기는 힘들지만...

정조도 송시열의 학문은 매우 존중해서 이퇴계나 이율곡에도 감히 부여하지 않았던 '자'의 타이틀을 송시열에게 부여하지요. 송시열의 문집에 '송자대전'이라는 명칭을 허한 것이 바로 정조였으니까요. 중국에서 공맹이래 '자'가 붙은 유학자는 '주자'가 유일하다면 조선 유학 역사에서는 '송자'가 유일한 셈입니다^^ 이와 같이 평가가 극으로 갈리는 우암 송시열은 조선 후기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인물 중의 하나로 생각되고 송시열과 그 일파 때문에 나라가 망했느니 하는 유치한 논쟁보다는 일단은 그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의 방대한 저서는 일부만이 번역되었고 그에 대한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합니다.

헌데 한국 미술사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간송의 최완수 선생은 우암 송시열로 대표되는 노론이야 말로 조선 성리학의 정화라고 이야기 하지요. 퇴계의 단계에서 주자 성리학이 이해되고, 율곡에 와서 주자성리학에서 벗어나 조선성리학으로 독자적인 사유의 전개가 시작되며 우암 송시열에 와서 완성이 된다는 것이죠. 이 분은 전공이 미술사이니 미술사를 통해 이를 예증하고자 하는데 겸재 정선의 진경 산수화가 가장 대표적인 예라는 것입니다. 겸재의 진경 산수에 와서야 중국 산수화풍을 벗어나게 되는데, 이 겸재야 말로 노론의 정통이요 진경 산수야 말로 조선 성리학의 독자적 전개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올 김용옥 선생은 퇴계가 주자학에 대해 다른 해석을 제시한 이단이요 (물론 주자학의 틀을 벗어난 건 아니고 퇴계 본인도 꿈에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율곡과 우암 송시열이야말로 주자학 정통이라고 이야기 하는 판이니 아직도 조선 사상사 연구가 가야할 길은 머나먼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한형조 교수님의 책을 주문해서 읽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자기의 연구 결과에 바탕을 두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몇 안되는 학자 중의 한분이나까요...

노이에자이트 2008-10-07 16:47   좋아요 0 | URL
실학 개념이 허구라고 주장하는 걸 보면 한형조 씨가 김용옥 씨와 비슷한 주장을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예전 한국사상연구원에서 같이 일하기도 했죠.요즘도 두 사람이 교유하고 있는지요?

푸른바다 2008-10-08 18:34   좋아요 0 | URL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보니 금요일이어서 언론사 북리뷰들을 훑어보았다. 눈길이 가는 책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주중에 '처리'한 책들이 여러 권 되는지라 따로 스크랩해둘 만한 리뷰는 많지 않다. 그 중에서 새 번역본으로 다시 나온 슈퇴리히의 <세계철학사>(이룸, 2008)에 대한 리뷰를 옮겨놓는다. 저자나 책보다는 박민수라는 역자가 눈에 띄어서다. 에른스트 벨러의 <데리다-니체 니체-데리다>(책세상, 2003) 이후에 믿을 만한 번역자로 꼽아두고는 있었지만 그새 독일에서 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활발한 저술/번역 활동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분량에서도 알 수 있지만 <세계철학사>는 저자뿐만 아니라 역자에게도 '역저(!)'라 할 만하다...

한겨레(08. 10. 04) 전공자들도 몰래 읽는 교양 철학사

독일 학자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의 <세계 철학사>는 수많은 철학사 책들 가운데 돋보이는 자리에 놓일 만한 책이다. 이 책은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구나 읽지만 아무도 언급해서는 안 될 책’으로 통한다고 한다. 철학사를 명료하고도 일관성 있게 알려주기 때문에 읽으면 큰 도움을 받지만, 한편 일반인을 독자로 삼아 쓴 교양서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모른 체해야 하는 책이라는 뜻이다. 1915년에 태어난 지은이는 철학과 법학 두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전문 연구자이면서 오랫동안 출판 편집인·번역가·사전 편찬자로 활동했다. 이런 독특한 이력이 대중성과 정확성을 동시에 품은 철학사 책을 쓰게 한 힘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1950년 처음 출간된 뒤 1999년까지 모두 17번이나 판을 갈았다. 그때마다 내용을 보충하고 확장했으며, 그 결과로 20세기 현대 철학 전반을 마저 아우르게 됐다.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마지막으로 나온 1999년 판이다.

이 책의 또다른 미덕은 인도·중국 철학을 주목한 데 있다. 지은이는 책의 제1부를 ‘동양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인도·중국 철학의 성립과 전개에 할애한다. ‘동양철학’에 대한 이런 관심은 초판이 나온 시점에서 보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런 공정성은 개별 철학자들의 사상을 객관적으로 소개하는 데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렇다고는 해도 지은이가 서술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철학자가 없는 것은 아닌데, 그 중심이 그가 ‘서양 철학의 정점’으로 평가하는 이마누엘 칸트(1724~1800)다. 칸트 철학을 설명하는 데 한 장(챕터)을 할당한 것도 그렇거니와, 철학사 서술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도 칸트는 나침반 노릇을 한다. 말년의 칸트는 자신의 연구가 세 가지 물음에 답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회고했는데, 그 세 가지 물음이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인식),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행위), ‘우리는 무엇을 믿어도 좋은가?’(믿음) 흥미로운 것은 “철학의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이 물음들은 칸트가 나열한 것과는 정반대의 순서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먼저 종교적 믿음이 출현했고 이어 인간 행위를 문제삼는 윤리학적 물음이 나타났으며, 세계 자체에 관한 앎의 문제가 마지막에 솟아났다는 것이다. 이 세 물음에 대한 나름의 답변들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 철학사 서술의 기본 방향이 된다.

명확성과 체계성이라는 이 책의 장점은 인도 철학사를 설명하는 부분만 보아도 분명해진다. “인도는 철학적 인간 정신의 탄생을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인간 문화 발상지 중 하나다.” 아리아족의 정복과 함께 성립한 브라만교는 철학적 사고의 첫 씨앗을 품고서 전개됐다. 고대 인도 철학의 모든 물음은 ‘브라만’과 ‘아트만’이라는 개념으로 응축됐다. 브라만이란 애초 지배자인 승려 계급의 기도·주문을 뜻하다가 이어 ‘신성한 지식’이란 뜻으로 확장됐고, 마침내 ‘세계 창조의 원리’로 승격됐다. “자신 안에 머물면서 모든 것을 탄생시키고 또 모든 것이 그 안에서 쉬고 있는 거대한 세계정신”이 브라만이었다. 브라만이라는 관념에 이어 아트만이라는 관념이 생성됐다. 본디 입김·호흡을 뜻했던 아트만은 ‘우리 자아의 가장 깊은 핵심’이란 뜻으로 진화했다.

인도 철학에서 결정적인 지점은 이 브라만과 아트만이 하나라는 인식에 도달했다는 데 있다. 이 놀라운 인식의 도약은 동시에 지배이데올로기 강화 기능을 포함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거기에 대항해 유물론이 나타나 오직 감각적 세계만이 있을 뿐이라는 주장을 설파했다. 브라만교에 가장 강력한 타격을 가한 것은 기원전 6세기에 출현한 불교였다. 불교는 브라만이니 아트만이니 하는 영원한 실체를 모두 부정하고, 무상한 감각적 세계만을 인정했다. 그러나 전 시대의 유물론처럼 이 감각적 세계를 즐기라고 하지 않고, 이 세계에 대한 애욕과 집착에서 벗어나라고 가르쳤다. 그 벗어남이 바로 ‘타던 불이 꺼진 상태’를 뜻하는 ‘니르바나’(열반)였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불교의 도전에 맞서 브라만교의 반격이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목숨을 걸다시피 한 이 사상 투쟁은 유례없이 풍요로운 사유의 마당을 열었다. “여러 정신사조가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이 시대의 인도만큼, 철학 문제에 대한 관심이 일반 민중에게까지 퍼진 경우는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찾기 어려울 것이다.” 도처에 철학 학당이 들어섰고, 철학 논쟁이 가는 곳마다 벌어졌다. 논쟁은 흡사 로마 시대 검투사들의 싸움판 같았고, 관중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인도 철학의 이런 장관은 비슷한 시기에 그리스 지역에서도 나타났다. 소피스트들의 활보와 함께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라는 3대 천재의 시대가 열렸다. 특기할 것은 페리클레스가 이끌던 아테네 민주주의의 황금기가 저물고 난 뒤에 철학이 만개했다는 사실이다. 지은이는 여기서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야 날아오른다”라는 헤겔의 명제를 확인한다.(고명섭기자)

08. 10. 03.

P.S. 슈퇴리히의 <세계철학사>는 예전에 저자가 '슈퇴릭히'로 표기되어 <세계철학사>(분도출판사, 초판1978)로 나온 적이 있다. 임석진 선생 번역에 상/하 두 권짜리였다. '세계철학사'나 '세계문학사'란 개념 자체에 대해서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런 류의 책들을 갖고 있지는 않다. 다만 기억만 하고 있을 따름이다. 단, 이번에 나온 슈퇴리히의 책에는 관심이 간다. 내용보다는 철학사의 개념과 용어들이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궁금해서다. '누구나 읽지만 아무도 언급해서는 안 될 책’이라고 하니까 이런 관심도 비밀로 해야할까?..

슈퇴리히의의 <세계철학사>와 함께 시중에서 같은 타이틀로 돌아다니던 책은 중원문화사에서 나온 10권짜리 <세계철학사>였다. '소비에트 과학아카데미 철학연구소 편'으로 돼 있었고 이을호 편역이었다.

그랬던 책이 올해 임석진 감수로 재출간됐다. 10권짜리 한 질의 정가가 30만원이니까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출판사 제공의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은 <철학사전>(임석진외 20여명 지음)과 함께 출간한 책으로 2년간의 번약과 편집을 거쳐 완성된 책이다. 본래 이 <세계철학사 History of Philosophy>는 러시아연방 사회과학 연구소에서 30여년의 연구를 걸쳐 완성하여 방대한 세계철학을 일목요연하게 실천적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는 '철학사'를 이을호씨가 재편집하였으며 임석진박사께서 책임가수 하셨다. 이 책은 유럽을 기점으로 하여 인도, 중국, 한국은 물론 아메리카 철학까지 폭넓게 저술하고 있으며 철학을 공부하는 모든 이에게 많은 자양분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설마 이런 교정 상태일까?

История философии. В четырех томах

짐작에 러시아어판에서 바로 옮긴 것은 아닐 테지만, 원 대본이라 할 소련과학아카데미판 <철학사>(1957)는 4권짜리다. 전체분량은 2720쪽이고, 현재 가격으로는 10만원 정도.

Бертран Рассел История западной философии. В 3 книгах History of Western Philosohy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철학사>는 무엇일까 알아보니, 한 인터넷서점을 기준으로 러셀의 <서양철학사>다. 올해에 새 판이 다시 나온 걸 보면 신빙성이 없지는 않다(러시아어판을 구해오려다 참았었는데). 대학 1학년때 집문당 번역본으로 읽은 기억이 난다...


댓글(26)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노이에자이트 2008-10-03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도출판사 책이 좋은 게 많죠.저는 몇 년전 가톨릭 서점에서 분도 출판사 할인행사할 때 많이 샀어요.일반 인문사회과학 서적도 좋은 게 많죠.

로쟈 2008-10-03 23:14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론 <철학의 뒷계단> 같은 책을 구해놓지 않은 게 아쉽습니다...

푸른바다 2008-10-04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다시 번역되어 나왔군요. 분도출판사에서 나온 임석진 교수 번역의 세계철학사는 소장하고 있습니다. 분도출판사 책은 마지막 장이 분석철학에서 끝나고 있는데 새로 번역된 책은 표지를 보니 데리다나 푸코까지 포함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구판을 보면 중국철학이나 인도철학을 다루고 있기는 하나 그 비중이 서양철학에 비해서 극히 낮고, 중국 외에 한국이나 일본, 베트남 등은 전혀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과연 '세계철학사'라는 타이틀을 가질 자격이 충분한가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직 인류가 '세계철학'을 논할 만큼 상호이해가 성숙하지 않았다는 회의도 있구요. 아무튼 서양철학만을 다루었으면서도 '철학사'란 타이틀을 내걸었던 코플스톤보다는 낫겠지만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자기의 시각과 한계를 당당히 밝힌 버트란드 럿셀의 '서양철학사'를 좋아합니다. 이책은 교과서적인 권위로 다가오기 보다는 오히려 개별적 철학자들에 대해 독자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를 마련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현재까지 출판된 책 중에 '세계철학사'에 가장 가까이 오는 책은 소련과학아카데미에서 출판된 10권짜리 '세계철학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학부에 다닐 때 중원문화에서 번역되기 시작했는데 소련 사회과학 서적들 번역본이 거의 절판된 지금까지 판과 제본을 달리하며 출판되고 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그 내용의 우수성이 검증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옛날에 책이 저렴할 때 한두권씩 사둘껄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하는데, 그 당시에는 '세계철학'이 가능하지 않다는 회의와 소련에서 편찬된 책이라 이념적으로 경직되어 있지 않을까하는 편견이 있었던 것 같네요.

로쟈 2008-10-04 01:10   좋아요 0 | URL
네, 10권짜리로 재출간됐더군요. 러시아에서는 절판됐을 책인데요... 찾아보니 1957년판이 아직 절판되지는 않았네요.^^

Joule 2008-10-04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를 위한 책이군요, 이거. 근데 이상하게 철학사 책은 아무리 재미있게 읽었어도 시간이 흐르면서 존재감이 흐릿해져요. 근데 왜 난 여전히 바보인 거지? 뭐 그런 거.

로쟈 2008-10-04 09:21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은 걸 정리해서 쓰시면 '존재감'이 좀 오래가지 않을까요.^^;

푸른바다 2008-10-04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히 세계철학사가 러시아에서도 아직 나오고 있군요^^ 그나저나 중원문화사 번역본은 러시아어 본을 옮긴 것인지 아니면 다른 나라어로 옮겨진 것을 중역한 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암튼 한질을 집에 갖다놓고 싶은 맘이 있긴 한데, 책값이 만만치 않아서(할인해도 27만원!) 내년에나 고려해 봐야 할 것 같군요^^ 아니면 헌책방에서 구판본으로 한두권씩 사 모으던지^^

그나저나 슈퇴리히 세계철학사는 일독을 할만한 좋은 책이기는 하지만, 암암리에 전제되어 있는 서양 중심주의는 반드시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위 기사에 쓰여진 대로 슈퇴리히는 칸트의 질문에 따라 철학사를 배열했다고 하면서, 현실적으로 인류 의식의 발달이 믿음 (종교) -> 행위(윤리) -> 인식의 단계로 진보해 왔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인도철학=종교, 중국철학=윤리, 서양(희랍)철학=인식으로 각기 배당하고 있는데, 이는 영락없이 헤겔의 철학사를 모방한 것입니다. 진정한 철학은 희랍에 와서나 시작된다는 헤겔류의 진보사관을 무반성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셈이지요^^

로쟈 2008-10-04 11:06   좋아요 0 | URL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세계철학사'란 말 자체가 '허구'입니다. '철학'이란 말 자체가 특정한 발생사적 연원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과거'에 투사하고 '세계'에 덮어씌운 것이니까요. 어떤 경우든 중국이나 인도 '철학'은 들러리밖에 안되는 것이죠. '철학들의 역사'라고 하면 조금 더 정직한 것이 되겠죠...

노이에자이트 2008-10-04 22:43   좋아요 0 | URL
중원의 세계철학사에 대해서 러시아 철학사 (녹두) 역자해설에 엄청난 비난을 했더군요.발췌번역이라는 거죠.특히 러시아 철학 다룬 쪽이 심해서 그 책 원본의 러시아 철학사만 다시 완역했다고 밝혔더군요.
중원 세계철학사를 찾는 분들이 많으시군요.저는 약 10년 전에 헌책방에서 한권 1000원 씩 10000원에 샀는데...색인이 잘 되어 있어서 인터넷 검색하듯 찾아볼 때 편해요.중동이나 제 3세계 사상도 나와 있어서 서양철학사에서 접하지 못한 사상가들도 알게 되었죠.

로쟈 2008-10-05 08:59   좋아요 0 | URL
헌책방에서도 인기 없던 책들이 다시 주목받는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10-05 15:52   좋아요 0 | URL
요즘은 광주 헌책방도 그 책 10권 다 나오지는 않아요.저는 운이 좋았죠.

푸른바다 2008-10-05 17:54   좋아요 0 | URL
녹두 러시아 철학사도 예전에 서점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초록색 표지^^ 비록 읽지는 않았지만... 그게 중원 세계철학사와 같은 책을 번역한 것이었군요. 이번에 신장개업한 중원 세계철학사는 완역인지 여부가 궁금하네요^^ 헌책방을 검색해보니 구판본 전질은 지금도 4 ~ 5 만원이면 구할 수 있는 것 같네요. 언제부턴가 임석진 감수라는 말이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임석진 교수의 권위를 이용해서 학계에서도 인정을 받고자 하는 모양입니다.

푸른바다 2008-10-04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공화국이 현실화 된다면 이른바 '세계철학'이라는 것도 구체화되겠지요^^ 역으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세계철학이 구상되면 세계공화국이 현실성을 갖추게 될지도 모르겠지요^^

다른 이야기지만 예전 운동권의 필독서였던 녹두출판사 '세계철학사'가 떠오르네요^^ 이 책은 소련에서 어느 시절에 교과서로 사용되었던 책이라고들 이야기 했지만 정확이 어떤 책의 어떤 판본을 번역한건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죠^^ 그래서 아직도 모르고 있습니다. 혹시 아시는 지요? 개인적으론 변증법적 유물론을 다룬 제 2권은 지금 읽어봐도 상당히 잘 쓰여졌다고 생각합니다. 1권과 3권은 너무 편향되있다고 생각하지만...

로쟈 2008-10-04 13:27   좋아요 0 | URL
저도 알 수는 없구요. 편집분 편이라 일어본을 번역/중역한 게 아닌가 짐작만 하고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0-04 22:42   좋아요 0 | URL
마르크스와 엥겔스 다룬 것은 랴쟈노프스키 저서라고 하더군요.정문길<니벨룽엔의 보물>에 한국의 마르크스 주의 연구목록이 나와 있으니 한 번 참고하십시오.1980년대에 번역된 마르크스주의 문헌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요.

로쟈 2008-10-05 09:00   좋아요 0 | URL
80년대에 워낙 조급하게 나온 책들이 많아서 아직도 유효한 책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10-05 15:57   좋아요 0 | URL
그런데 그때는 나오다가 지금은 안 나오는 책들도 많으니까 헌 책방에서 구하는 수밖에 없죠.조잡한 번역이라고는 하지만 다들 그런 책을 통해서 공부도 했고,그런 사람들이 이젠 학계에도 많이 진출한 것도 사실이지요.그때 번역한 이들 중 지금 뉴라이트 쪽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구요.세계적인 명저인데도 절판된 책들은 다시 냈으면 좋겠어요.

푸른바다 2008-10-05 18:09   좋아요 0 | URL
정문길 교수님도 정말 집요하게 한 우물을 파시는 분이군요^^ '소외론 연구'와 '에피고넨의 시대'는 소장하고 있지만 완독하지는 못했네요. 니벨룽의 보물 검색해 보니 책값이 무려 3,5000원... 책을 쓰고 만드는 수고에 비해 큰돈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정서상으론 요즈음 책값은 왜이리 비싼지 모르겠습니다. 암튼 언젠가 한번 읽어봐야 할 것 같네요^^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자 불명의 책 중에서 지금 읽어봐도 잘쓰여졌다고 생각하는 책은 녹두 세계철학사 II (변증법적 유물론)과 거름 출판사 '변증법적 논리학'입니다. 특히 '변증법적 논리학'은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읽었던 책이라 남다른 애착이 있는 책입니다^^

그러고 보니 세계철학사를 펴낸 녹두 출판사 김영호 전대표(현 성신여대 교수)도 뉴라이트로 전환했지요. 사상적 전환이야 개인적 자유지만 뉴라이트로 전향한 사람들의 '전향의 변'들은 왜 그리 유치하고 전향 이후의 말과 행위들도 왜 그리 엉성한지 모르겠습니다. 그 유치함과 엉성함이 먹히고 있는 사회도 문제긴 하지만...

노이에자이트 2008-10-07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원문화에서 옛날 책을 새로 단장해서 내놓는데 너무 가격을 올려서 우와!!!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도 엄청난 값을 붙였더라구요.그러고 보니 이 출판사에서 독일 철학 번역서를 많이 냈던 황태연 씨도 2000년 이후 행보가 상당히 울퉁불퉁했죠.

노이에자이트 2008-10-07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겔 논리학 입문서 중에서 거름에서 나온 그 책과 한마당에서 나온 헤겔 논리학 입문을 정독했답니다.저는 서른이 넘어서 봤어요.고교시절은 교과서와 참고서 외에 본 책 기억이 없네요.

로쟈 2008-10-07 20:5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아니 제가 읽은 정신현상학 입문서예요. 역자가 황태연으로 돼 있던...

푸른바다 2008-10-07 23:39   좋아요 0 | URL
변증법적 논리학을 읽고 헤겔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다음에 구매한 책이 바로 한마당 출판사 헤겔 논리학 입문이었죠^^ 일본헤겔철학회(소판 진 등)에서 출판한 책을 권오걸이 번역한 것이었지요. 최재희 교수님이 감수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로쟈 님이 기억하시는 책은 아마 리차드 노만이 쓰고 오영진이 번역했고 한마당에서 출판한 헤겔 정신현상학 입문이 아닐까 싶네요^^ 그러고 보니 황태연도 헤겔 '정신현상학 해설'이라는 편역서를 이삭 출판사에서 낸 적이 있지요^^

로쟈 2008-10-08 17:32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이거 갑자기 80년대 정담 모드네요...^^

푸른바다 2008-10-08 19:52   좋아요 0 | URL
이 참에 '로쟈의 사랑방'도 하나 만드시죠 ㅎㅎㅎ

노이에자이트 2008-10-08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오걸 번역본 뒤에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쓸 때 헤겔 논리학을 어떻게 적용했는지 쓴 논문이 있죠.황태연,세연 형제가 독일 철학에 대해 번역을 많이 했죠.

로쟈 2008-10-08 17:32   좋아요 0 | URL
그런 듯싶긴 했는데, 두 사람이 형제였군요...
 

여성들의 완소남 배우 소지섭의 재기작 정도로만 알고 있던 영화 <영화는 영화다>가 '문제작'이란 사실은 최근에 영화/시사 잡지의 기사들을 보고서야 알았다. 데뷔작을 찍은 장훈 감독이 김기덕 감독 연출부 출신이란 것도. 게다가 이 액션영화의 시나리오를 김기덕 감독이 썼고, 이 저예산 영화에 100만 관객이 들었다는 것도! 그래서 정작 김기덕 감독의 최신작 <비몽>보다도 더 관심을 갖게 됐다(기회가 주어진다면 <영화는 영화다>를 먼저 보겠다는 얘기다). 주초에 읽은 시사인의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비몽>과 관련한 인터뷰기사는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312776.html 참조).   

시사인(08. 09. 30) “영화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생사람 잡지 말고 호구조사부터 들어가자. <영화는 영화다>를 만든 장훈 감독(34)은 영화 전문지 <KINO>에서 기자로 일하다 독립영화 감독으로 두각을 나타낸 그 장훈 감독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혼동한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영화 학자조차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 고백하자면 기자도 그 장훈과 동일인물이라고 짐작했다.

그만큼 장훈 감독은 영화판 안에서조차 베일에 싸인 사람이다. 유일한 ‘정보’라고 해봐야 김기덕 감독 아래에서 오랫동안 조감독 생활을 했다는 것 정도. 미술을 공부했고, 별다른 배경 없이 영화계에 등장했다는 점도 김기덕 감독과 닮았다.

그런 그가 ‘사고’를 쳤다. 7억원도 안 들인 저예산 작품인 <영화는 영화다>가 관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제작비의 열 배 가까운 수입을 벌어들인 것이다. 평단의 반응도 뜨거웠다. 최근 지속된 한국 영화의 불황 속에 내린 단비였다. 무엇보다 그 감독이 글자 그대로 무명의 ‘신인’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감독이 배우를 조립할 순 없어

그런데 직접 만나본 장훈 감독은 영 뜻밖이었다. 혈기와 패기 넘치는 신인 감독의 풍모를 기대한 건 오산이었다. 말수가 적었고, 목소리는 낮았다. 액션 장면 난무하는 장편영화 촬영을 겨우 47일 만에 끝마친 열혈 감독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뜻밖인 건 겉모습만이 아니었다. 이 젊은 감독은 현장을 장악하려 들지 않았다. 

“어떤 배우나 스태프라도 결국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더군요. 몸이 안 될 때도 있고, 마음이 안 열릴 때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영화 속 봉 감독처럼 무리하게 주문하지는 않아요. 각자가 할 수 있는 능력에 한계가 있는데, 그 이상을 요구하다보면 어떤 경우엔 그 사람이 가진 정체성을 완전히 무너뜨려야 하는 일도 생기잖아요.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영화는 찍을 수 있을지 몰라도 제가 그 사람을 다시 조립해줄 수는 없잖아요.”



장 감독에게는 김기덕 감독의 후광이 서려 있다. <영화는 영화다> 시나리오의 원작을 김기덕 감독이 썼고 영화 제작도 김기덕필름에서 맡았다. 영화 촬영 때 배우와 스태프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것도 김기덕 감독의 영향 때문이다. 혹여 김 감독의 ‘그늘’에 갇히는 것이 아닌지 걱정될 법도 한데, 스스로도 김기덕 감독의 후광을 마다하지 않는다.

“김기덕 감독님에게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더 배울 것이 많지요. 특히 김기덕 감독은 다른 사람 돈으로 영화를 만들 땐 결코 손해를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어요. 영화는 로또가 아니기 때문에 대박을 꿈꾸진 않더라도 손해 보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다음 영화를 또 준비할 수 있으니까요.”

장훈 감독과 김기덕 감독의 만남은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술대학에 다니던 시절, 학교 강연에 김 감독을 초빙한 인연으로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다. 졸업할 무렵인 2003년, 취업과 영화를 고민하던 그에게 김 감독이 <사마리아> 연출부에서 일할 것을 권했다. ‘한번 일해보면’ 영화판 일을 계속할지 결정할 수 있으리라는 조언이었다. 그 뒤 연출부 막일부터 시작해, 첫 영화로 ‘입봉(첫 작품 데뷔를 뜻하는 영화계 은어)’할 때까지 둘은 햇수로 6년 동안 한 배를 탔다.     

첫 작품부터 화제를 몰고 온 걸출한 신인이지만, 그의 ‘히스토리’는 평범하기 짝이 없다. 영화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누구처럼 장안에 소문난 ‘시네마 키드’도 아니었다. 대학 시절 학내 신문에 만평을 그린 것 정도가 제법 특출난 이력이다. 

제가 원래 나서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에요. 학창 시절에도 존재감 없이 사는 게 좋았어요. 유명해지고 싶어서 영화한 것도 아니고…. 다만 영화 공부는 나름 열심히 했어요. 제가 약간 메모광인데, 영화 볼 때 늘 수첩을 옆에 끼고 이런저런 메모를 했습니다. 어두운 극장에서 메모를 해놓고, 집에 돌아와 다시 옮겨 적곤 했지요. 그러다 보면 영화에 대해 갖는 저의 생각이 좀더 구체화되고 발전하더군요. 그런 생각의 실마리를 잡아내기 위해서, 더 열심히 메모를 했습니다.”

중요한 건 영화가 아니라 삶

장 감독은 주변 동생들이 더러 영화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오면 일단 고개부터 젓고 본다. 속으로는 그들이 영화 쪽에서 일하기를 바라면서도 그렇다. 현직에 있는 선배가 ‘하지 말라’고 말리는데도 끝내 하겠다고 나서는 각오가 있어야 ‘사람답게 살기 힘든’ 영화판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일이란 게 어렵지요. 직장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촬영 들어가면 명절 때도 집에 못 가기 일쑤고…. 어떤 감독님은 작업 공간이 없어서 PC방에서 컵라면 먹으면서 시나리오 작업을 한답니다.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들 사진을 모니터 화면에 깔아놓고, 힘들 때마다 그 사진 보고 힘내서 시나리오를 쓰는 거죠.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하는 걸 보면 설명하기 힘든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는 영화다>에서 영화배우 수타(강지환)가  “당신이 연기가 뭔지 알아?”라고 묻자 주인공 강패(소지섭)는 이렇게 답한다. “연기란 게 별 거 있나, 인생 잘 만나서 편하게 남 흉내나 내면서 사는 거지.” 장훈 감독에게도 똑같이 물었다. 당신, 영화가 뭔지 아느냐고.

“아직은 ‘삶을 위한 은유인 것 같다’는 대답밖에 할 수 없네요. 삶이 중요하지요. 하지만 영화 작업을 더 하다보면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어떤 영화를 만드느냐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것이겠죠. 그래서 매번 새로운 해답에 도달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영화다’라고 당차게 선언한 젊은 감독의 해답 찾기는, 실은 이제 막 시작인 셈이다.(이오성기자)

장훈 감독 : 1975년생. 대학에서 시각디자인 전공하고 졸업 뒤 김기덕 감독 연출부 생활.  2003년 <사마리아> 연출부 / 2004년 <신부수업> <빈집> 연출부 / 2005년 <활> 조감독 / 2006년 <시간> 조감독 / 2008년 <영화는 영화다> 연출.

08. 10. 0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노이에자이트 2008-10-03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나서 영화평 멋지게 써주세요.소지섭,강지환은 정말 훤칠하고 길쭉길쭉하죠?

로쟈 2008-10-04 00:56   좋아요 0 | URL
조만간 볼 기회는 없을 듯싶은데요.^^;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나는 부산영화제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외지인'도 물론 그런 축제에 손님으로 참여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부산 시민들(만)의 '특권'이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서울에는 없는 것 하나씩을 지방도시들이 다들 나눠가진다면 좋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오늘 개막한 제13회 영화제에도 개막작 <스탈린의 선물>을 비롯해서 눈길을 유혹하는 영화들이 많다. 모두 그림의 떡이라 생각하지만, 왕가위의 <동사서독 리덕스>는 '떡 중의 떡'으로 특히나 침이 고이게 만든다. 기본 골격은 달라지지 않았을 법한데, 어떻게 새로 편집됐는지 궁금하다. 게다가 홍콩 최고배우들이 총출동하는 영화이니만큼, 허무하고도 허무한 인생사를 주제로 함에도 불구하고 호사스럽고도 호사스러운 영화가 아니었던가(나는 첫 개봉 당시 명보극장과 명보아트홀에서 연거푸 본 기억이 있다. 같은 날 저녁에). 정식으로 개봉되기를 기대한다.

한국일보(08. 10. 02) '동사서독…' 부산서 놓치면 후회할 영화들!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는 필리핀과 중앙아시아 등 그 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아시아권 영화들에 주목했다. 카자흐스탄 영화 <스탈린의 선물>(감독 루스템 압드라쉐프)가 개막작으로 지정된 것이 그 방증이다. 아시아권 23개국에서 초청된 50여 편의 영화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색다른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인 필리핀-프랑스 합작 영화 <서비스>(감독 브리얀테 멘도사)는 현대를 사는 인간의 위선을 비판한 수작이다. 여성들에게는 죽어가는 커리어우먼의 마지막 100일을 그린 필리핀 영화 <100>(감독 크리스 마르티네즈)를 추천한다. 이 외에도 필리핀 영화 <고해><제이>와 카자흐스탄 영화 <무당의 춤>도 눈에 띈다.

보다 상업적인 영화를 원하는 팬들에게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 리덕스>가 제격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도 특별 상영됐던 <동사서독 리덕스>는 고(故) 장국영의 모습을 비롯해 홍콩 유명배우를 한꺼번에 만들 수 있는 작품이다. 또한 영화 <참새>(감독 두기봉)는 오랜만에 홍콩 누와르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아시아 각국 영웅의 이야기를 다룬 섹션인 '아시아의 슈퍼히어로'로 빼놓을 수 없다. 한국 영웅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홍길동의 이야기를 다룬 1967년작 <홍길동전>(감독 신동헌)을 비롯해 <머큐리맨>(태국) <라스틱맨>(필리핀) <치착맨2>(말레이시아> 등 다양한 '맨'을 만나볼 수 있다. 끝으로 영화제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개막작 <스탈린의 선물>과 폐막작 <나는 행복합니다>(감독 윤종찬)은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안진용기자)

08. 10. 02.

P.S. <동사서독 리덕스>의 예고편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Oos8-vS6Dz4 참조. 더불어, 칸느영화제에서의 특별시사회에 관한 뉴스보도는 http://www.youtube.com/watch?v=2MKW28H1xHI 참조.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8-10-03 0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3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8-10-03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참 좋아했던 영화입니다. 이번 영화제에서도 제일 먼저 표가 동났다고 하더군요.
시간이 되어 다시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로쟈 2008-10-03 21:08   좋아요 0 | URL
아, 부산이시죠?!^^
 

귀가길에 잠깐 들른 서점에서 눈에 띈 책은 바버라 오클리의 <나쁜 유전자>(살림, 2008). '왜 사악한 사람들이 존재하며, 왜 그들은 성공하는가?'란 부제는 왠지 실감나지 않는지? 목차를 보니 사이코패스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스티븐 핀커가 "인간적인 통찰과 세세한 설명으로 채워진, 인간이 가진 사악성의 근원을 놀라울 정도로 과학적이고 개인적인 안목으로 탐구한 책"이라고 평하고 있으니 사이비 과학서는 아닐 테고 사악한 놈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때 유심히 읽어볼 만하다(리뷰기사는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810031704465&code=900308 참조). 이 참에 사이코패스를 테마로 한 책들을 한데 묶어서 읽어봐도 좋겠다. 요즘 같아선 한두 놈이 아니다...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나쁜 유전자- 왜 사악한 사람들이 존재하며, 왜 그들은 성공하는가?
바버라 오클리 지음, 이종삼 옮김 / 살림 / 2008년 9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08년 10월 02일에 저장
절판
Evil Genes: Why Rome Fell, Hiltler Rose, Enron Failed and My Sister Stole My Mother's Boyfriend (Hardcover)
바버라 오클리 지음 / Prometheus Books / 2007년 10월
50,730원 → 41,590원(18%할인) / 마일리지 2,08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7월 1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08년 10월 02일에 저장

당신 옆의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의 또 다른 이름
마사 스타우트 지음, 김윤창 옮김 / 산눈 / 2008년 4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08년 10월 02일에 저장
구판절판
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
폴 바비악, 로버트 D. 헤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1월
14,800원 → 13,320원(10%할인) / 마일리지 740원(5% 적립)
2008년 10월 02일에 저장
절판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푸른바다 2008-10-02 21:27   좋아요 0 | URL
아직 전 만나보진 못했지만 정말 사악한 인간들이 존재하긴 하는 모양입니다. 인간 보편성과 소통 가능성에 대한 철학적 신념과 사이코패스가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 까요? 이런 책에 눈길이 가신 걸 보니 오늘 고약한 사람 때문에 속깨나 끓으신 모양이군요^^

로쟈 2008-10-02 21:24   좋아요 0 | URL
주로 신문 보면서 속이 끓습니다.--;

푸른바다 2008-10-02 21:38   좋아요 0 | URL
신문지상에 자주 등장하며 사악한 발언과 행동을 서슴지 않는 그 사람들의 행동 동기를 유전자에서 찾는 것은 너무 안이한 것이 아닐까요?^^

로쟈 2008-10-02 21:45   좋아요 0 | URL
인간에게 '본성'이 아니라 '본성들'이 있는 거라면 이건 일종의 내기입니다. 사이코패스는 '본성들' 쪽에 거는 것이죠. '본성들'이 안이하다면, '본성'은 나이브하다고 할까요...

푸른바다 2008-10-02 21:55   좋아요 0 | URL
사실 '본성'이 옳은지 '본성들'이 옳은지 과학적으로 밝힌다는 것은 영원히 가능하지 않을 듯 싶습니다. 사실 '선한 본성'은 과학적인 검증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인간으로서 사회를 이루고 살기 위한 하나의 철학적 요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인간의 본성은 궁극적으로는 선하지만 인생이라는 짧은 시간 스케일 내에서는 교정이 가능하지 않은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타협안은 어떨까요?^^

로쟈 2008-10-02 22:11   좋아요 0 | URL
그래서 내기인 것이죠. 그리고 저로선 "인간의 본성은 궁극적으로는 선하지만"에는 걸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요.^^;

푸른바다 2008-10-02 22:3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생각보다 냉소적이시군요^^ 여기서 '선하다'는 것은 일상어의 '착하다' 말보다는 인성의 보편적인 구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본성들을 사악한 본성과 선한 본성으로 같은 레벨로 이분화 하게 되면 결국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사악한 본성'을 가진 자들을 제거하는 것을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우려됩니다^^ 인간의 본성이 궁극적으로 선하다고 말씀드린 건 성리학에서 인성을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레벨로 구분한 것을 참조한 것입니다. 본연지성은 선하지만 악은 기질지성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성리학적 전통에서의 화두는 '변화기질'이었지요^^ 사실 조선조를 지배했던 사단칠정 논쟁도 이와 무관하다고 볼수는 없을 것 같네요^^ 암튼 전 동아시아 전통에서의 해결책에 걸고 싶습니다^^ 라깡이나 지젝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설명할까요?^^

로쟈 2008-10-02 22:39   좋아요 0 | URL
그래서 단일한 본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본성들'이 있다는 쪽에 내기를 걸고 싶은 것이죠. 역사와 현실 속의 '악'과 대면하여 섣불리 낙관하지 않는 태도를 냉소적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게 자연스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푸른바다 2008-10-02 22:54   좋아요 0 | URL
쉽게 끝날 수 없는 논쟁이겠지요^^ 각자 실천 속에서 검증해 나가는 수밖에 없겠지요^^ 초면에 너무 진지한 대화를 나눈 것 같네요. 사실 제가 구매하려고 검색하는 책마다 로쟈님의 서평이 붙어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실 한두번은 그냥 참고하고 넘어가다가 찾는 책마다 연달아서 계속 서평이 발견되는 통에 어떤 분인가 하는 궁금함이 생겼죠^^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저와 거의 동시대의 경험을 공유하는 분이라서 반가왔습니다^^

로쟈 2008-10-02 23:01   좋아요 0 | URL
징검다리 건너서 오신 거군요. 종종 방문해주시길.^^

쥬베이 2008-10-03 13:33   좋아요 0 | URL
요즘 한둘이 아니죠 정말.
어쩌면 내 안에 사이코패스가 숨쉬고 있는 건 아닐지 무서운 생각도 듭니다ㅋㅋㅋ

로쟈 2008-10-03 21:12   좋아요 0 | URL
우리도 '나쁜 유전자'를 보인자로 갖고 있는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