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에는 2009년 인문·사회출판 지형도를 알려주는 기사가 실렸다. 일종의 2009년 출판 라인업이다. 물론 예고된 리스트가 100% 출간되는 건 아니지만 이런 책들이 출간 준비중이라는 걸 미리 엿볼 수 있다. 31개 인문·사회 출판사의 목록이어서 좀 길다. 틈나는 대로 관심이 가는 근간 도서들에 대한 기대와 촌평을 붙여놓도록 한다(촌평 혹은 이미지는 물론 번역 예정서들에 붙이게 될 듯싶다. 이미 나와 있는 책들이니까).    

시사IN(09. 01. 12) 2009년 인문·사회출판 지형도는?

혼돈의 시대가 ‘다른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만드나. 2009년 <뉴 레프트 리뷰> 한국어판의 발간 소식은 상징적이다. <뉴 레프트 리뷰>는 <먼슬리 리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함께 세계의 주요 진보 매체로 꼽힌다. 2009년 상반기에 <뉴 레프트 리뷰>에 실린 논문 18개를 번역한 한국어판이 도서출판 길에서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2009년도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출간 예정 목록을 들여다보면 몇몇 필자가 눈에 띈다. 2007년 <88만원 세대>(레디앙)부터 시작해, 2008년에만도 <촌놈들의 제국주의>(개마고원) <괴물의 탄생>(개마고원) <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시대의창) <직선들의 대한민국>(웅진지식하우스) 등을 펴낸 우석훈 박사(경제학)가 올해 다섯 권을 예비하고 있다. 개마고원에서 ‘생태경제학 4부작’을 펴낼 계획이고, 돌베개에서는 <시사IN>에 연재 중인 <문화경제학>(‘우석훈의 경제 프리즘’으로 연재)을 수정·보완해 펴낸다. 강준만 교수를 제외하고, 근래 그만큼 ‘지적 다산성’을 보여준 지식인을 찾기 어렵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 이정우 박사(전 서강대 교수·철학), 서경식씨도 각각 두 권씩 출간을 앞두고 있다. 김상봉 교수는 편집자가 손을 댈 일이 별로 없을 정도로 꼼꼼한 글쓰기로 유명한데, 2009년 <내부로의 망명>(길), 박명림 교수와 공저하는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웅진지식하우스)를 펴낼 계획이다. 이정우 박사는 <세계철학사 1-지중해 철학의 세계> <소수자의 정치학> 등을 출간한다. 재일 조선인 2세인 에세이스트 서경식씨의 섬세한 글쓰기도 기대해볼 만하다. <전쟁과 화가>(돌베개)는 예술과 정치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물음을 담는다. <서경식-다와다 요코 왕복 서한>(창비)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경계에 서 있는 저자와, 일본과 독일의 경계에 서 있는 소설가 다와다 요코가 서울과 베를린에서 주고받은 ‘경계의 대화’를 들려준다.

번역가 중에는 진태원 고려대 연구교수(철학)의 보폭이 크다. <뉴 레프트 리뷰> 한국어판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그의 이름이 여러 곳에서 눈에 띈다. 자크 데리다(<마르크스와 그의 적자들>), 자크 랑시에르(<불화>), 에티엔 발리바르(<세계화와 반폭력의 정치> <시민의 권리>), 루이 알튀세르(<정치와 역사>) 등 여러 사상가의 작품이 그의 번역으로 독자와의 만남을 대기하고 있다. 여기에 그가 집필하는 <스피노자와 현대성>(길)까지 더해진다. 진태원 교수는 2007년 <시사IN>이 31개 출판사의 편집 책임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인문사회 분야에서 신뢰할 만한 번역가’로 꼽힌 바 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전기도 여럿 준비 중이다. 가장 먼저 찰스 다윈과 관련한 책이 주목된다. 2009년은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이고,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50주년 되는 해다. 뿌리와이파리에서 펴내는 <다윈 평전>은 원서만 800쪽에 이르는 대작. 출판사 김영사도 3월께에 <종의 기원> 150주년을 기념하는 ‘다윈 전기’를 출간한다고 전해왔다. 여기에 휴머니스트는 ‘우리 시대의 진화론-다윈과 진화론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찰스 다윈 대담집’을 준비한다. 철학(최종덕), 생물학(전방욱), 진화의학(강신익), 역사(임지현), 동양철학(김시천)을 전공한 한국의 지식인들이 ‘찰스 다윈’과 관련해 릴레이 대담을 한 뒤 이를 재구성한다. 진화론과 한국의 지식인이 어떻게 만날지 궁금해지는 책이다.

이 밖에도 동서양의 역사적 인물을 조명하는 책이 여럿이다. <히틀러 평전>(교양인) <루소 평전>(교양인) <자술-풍우란 자서전>(산책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교차적 평전>(난장) <존 메이너드 케인즈>(후마니타스) <장개석 일기>(푸른역사) <공자전>(돌베개) 등.

휴머니스트에서 펴내는 <이옥 전집(개정판)>과 <이옥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옥은 문체반정에 시종일관 맞섰던 조선의 문인. 전집이 발간되고, <이옥 이야기>에서는 조선문학자 안대회 교수와 현대문학자 정여울씨가 각자 자기 시각에서 ‘이옥 이야기’를 교직해낸다. 한 ‘인물’에 대한 두 사람의 시각을 비교해보는 기회로는, 목회자인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가 쓰는 <예수 이야기>(한길사)와 ‘B급 좌파’ 김규항씨가 쓰는 <예수전>(돌베개)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쓰는 <안중근 평전>(시대의창)과 허경진 교수가 쓰는 <매창 이야기>(한길사)에서 과거를, 삼인에서 펴내는 <엄혹의 시대>와 <문동환 자서전>에서 현재를 돌아볼 수 있다. <엄혹의 시대>의 저자는 2000년 북으로 송환하지 않고 남한에 남은 비전향 장기수 신현칠씨. 두 책에서는 거칠고 험난했던 현대사를 겪은 두 인물의 내면을 읽을 수 있다.

사상가로는 푸코, 촘스키와 관련한 도서들이 꽤 많이 독자의 손에 닿을 수 있을 듯하다. <미셸 푸코의 파르헤지아>(사계절)와 <푸코, 인간의 초상>(산책자)이 나온다. 도서출판 난장은 프랑스 출판사 쇠이유와 독점 계약으로 푸코가 교육기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했던 강의록 전집을 출판할 예정이다. 푸코의 강의는 몰려드는 청강생 수를 제한해야 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어 프랑스 지식계에서는 ‘한 사건’이 되었다. 이들 출판에는 푸코 연구로 학위를 받은 심세광 박사가 관여한다.

미국의 지식인 촘스키에 대한 책들도 속속 출간을 기다린다. 사계절에서 펴내는 <촘스키에게 대들다>와 시대의창에서 출간하는 <촘스키 이펙트> <인사이드 레바논> <촘스키와 푸코> <에센셜 촘스키> <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 등이 그 목록이다.

성인이 즐겨볼 만한 ‘교양 만화’도 2009년 출판계의 작은 축이다. <십자군 이야기>로 역사와 만화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지식 만화’의 전범을 보여준 만화가 김태권씨가 이번에는 <한(漢)나라 이야기(전 9권)>(비아북)를 준비하고 있다. 한 제국의 역사를 동아시아 문명의 형성이라는 큰 틀에서 재해석할 예정이다. 전태일의 삶을 그리는 <태일이>(돌베개)가 전 5권으로 완간되고, 역사와 삶의 디테일에 강한 최규석이 ‘민주화 운동’을 그린 <100℃>(창비)도 출간된다.

이 밖에 주경철 교수(<문명과 바다>), 저술가 박천홍씨(<명태>), 사진집과 카툰집을 내는 봉준호 감독, 고전문학자 강명관 교수(<열녀의 탄생>), 돌아온 ‘지식 소매상’ 유시민 전 의원(<헌법 에세이>), 저술가 황광우씨(<철학콘서트 2>) 등도 올해 주목할 만한 저자군이다.(차형석기자)

2009년 출간될 주요 인문·사회 서적

개마고원

<스포츠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정희준)
<생태경제학 4부작:생태요괴전, 생태페다고지, 생태유토피아, 생태헤게모니>(우석훈)
<민주주의는 거리에 있다>(제임스 밀러/김만권)
<법을 보는 눈>(김욱)
<인권을 보는 눈>(오창익)
<평화를 보는 눈>(이대훈)
<그림으로 이해하는 생태사상>(김윤성)
<히로히토와 맥아더>(도요시타 나라히코/권혁태)

교양인
<살아 있는 번역 강의>(이희재)
<게임하는 사람들>(에릭 번)
<스페인 내전>(안토니 비버)
<혁명의 역사>(데이비드 파커 외)
<히틀러 평전>(이언 커쇼) 

 

<루소 평전>(레오 담로시)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매튜 스튜어트)
<용병들>(로버트 영 펠튼)
<축의 시대>(카렌 암스트롱)

궁리
<밤의 제왕 수리부엉이>(신동만)
<갈라파고스>(폴 스튜어트/이성호)
<인간과 분자>(프랜시스 크릭/이성호)
<중국의 과학과 문명>(조지프 니덤/장석봉 외) 

 

<잭 런던 선집>
<왕의 우화>(이상하)
<한국의 민담>(임동권)
<True Believer:대중운동에 대한 단상>(에릭 호퍼/이민아)
<지구보다 넓은 지도>(이명석)
<건축의 아홉 가지 표정>(서윤영)
<이집트 신들의 사전>(스테판 로시니/신광순)
<상상계 사전>(알베르토 망구엘/최애리) 



그린비
<기다림 망각>(모리스블랑쇼/박준상) <정치논평 1953~1993>(모리스블랑쇼/고재정) <저 너머로의 발걸음>(모리스블랑쇼/이재형) <우정>(모리스블랑쇼/박규현)<도래할 책>(모리스블랑쇼/심세광) <카오스의 글쓰기>(모리스블랑쇼/박준상) 

 

<80년대 중국과의 대화>(자젠잉 외/이성현)
<거울 속에 있는 듯>(다이진화/주재희 외)
<네오리버럴리즘>(알프레두 사드-필류·데버러 존스턴/김덕민) <현대 맑스주의 경제학>(제라르 뒤메닐·도미니크 레비/김덕민)
<니체와 악순환>(피에르 클로소프스키/조성천) <니체에 관하여>(조르주 바타유/김전유경·전일성)  

<라틴아메리카>(월터 미뇰로/김은중) <혼종문화>(가르시아 칸클리니/이성훈) <1492년, 타자의 은닉>(엔리케 두셀/박병규)
<강도의 과학과 잠재성의 철학>(마누엘 데란다/이정우·김영범) <들뢰즈와 언어>(장-자크 르세르클/이현숙)


<뉴 레프트 리뷰ㆍ1>(페리 앤더슨 외/진태원)
<문화사 이야기>(로버트 단턴/김지혜)
<고전의 미래>(살바토레 세티스/김운찬)
<이론 이후>(테리 이글턴/이재원) 

 

<마르크스와 그의 적자들>(자크 데리다/진태원)
<세 깃발 아래에서-민족주의와 아나키즘>(베네딕트 앤더슨/서지원)
<파괴의 씨앗-유전자 조작 식품의 실체>(윌리엄 엥달/김홍옥)
<파리의 보들레르>(발터 벤야민/김영옥·황현산) 

 

<스펙트럼-20세기 사상의 궤적>(페리 앤더슨/안효상)
<빈곤의 역사>(브로니슬라프 게레멕/이성재)
<진보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베르토 웅거/이병천 외)
<공산주의자 선언>(카를 마르크스/송충기)
<공화주의란 무엇인가>(조승래)
<내부로의 망명>(김상봉)
<니체 1>(마르틴 하이데거/박찬국)
<글로벌 위험사회>(울리히 벡/박미애 외)
<거대한 변형>(칼 폴라니/홍기빈) 

 

<자본 2>(카를 마르크스/강신준)
<스피노자와 현대성>(진태원)
<고전학의 역사-서양은 어떻게 인문학을 부흥시켰는가>(파퍼/정기문)
<자본주의의 새로운 정신>(뤽 볼탄스키 외/이진홍 외)
<서양의 기원-인문정신의 힘>(김헌ㆍ안재원)
<알랭 바디우-철학의 도전>(서용순)
<중국은 왜 서쪽으로 갔을까>(피터 퍼듀/공원국)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지오반니 아리기/강진아)  

 

<시학>(아리스토텔레스/김헌)
<군주론>(니콜로 마키아벨리/곽차섭)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김덕영)
<세계철학사 1-지중해 철학의 세계>(이정우)
<철학을 위한 선언>(알랭 바디우/서용순)
<몸의 역사 1~3>(알랭 코르뱅 외/주명철 외)
<불화(不和)>(자크 랑시에르/진태원) 
<소수자의 정치학>(이정우)
<뉴 레프트 리뷰ㆍ2>(페리 앤더슨 외/정병선 외)

난장

<안전, 영토, 인구: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7~78년>(미셸 푸코)
<생명정치의 탄생: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8~79년>(미셸 푸코)
<목적 없는 수단: 정치에 관한 11개의 노트>(조르지오 아감벤)
<장치란 무엇인가?>(조르지오 아감벤) 

 

<세속화>(조르지오 아감벤)
<사물의 서명: 방법에 관하여>(조르지오 아감벤)
<신좌파의 상상력: 전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년(수정증보판)>(조지 카치아피카스)
<정치의 전복: 유럽의 자율주의 사회운동과 일상생활의 탈식민화(개정판)>(조지 카치아피카스) 

 

<알려지지 않은 봉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의 사회운동(1권: 한국, 2권: 동아시아)>(조지 카치아피카스)
<비오스: 생명정치와 철학>(로베르토 에스포지토)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교차적 평전>(최정우 옮김)

<이성의 군단:랜드연구소와 미제국의 등장>(유강은 옮김)
<고대 원자론 : 데모크리토스, 에피쿠로스, 투크레티우스>(장 살렘/양창렬)

돌베개
<공자전(가제)>(안핑 친)
<도굴로 읽는 중국사(가제)>(웨난)
<문화경제학>(우석훈)
<한국지성의 문명의식과 실학>(임형택)
<자유, 평등, 상생 및 사회발전>(이근식)
<사회의 도덕적 기초:자유의 윤리적 토대로서의 개인주의>(이진우)
<열녀의 탄생(가제)>(강명관)
<예수전>(김규항)
<전쟁과 화가>(서경식)
<태일이 1~5(완간)>(최호철 글·그림)
<헌법 에세이>(유시민)
<휴전>(프리모 레비) 

 

<현대 철학자들과의 대화(가제)>(움베르토 에코 외)
<십이지상>(허균)
<불화>(김정희)
<민화>(정병모)
<사군자>(이선옥)
<화조영모화>(이원복)
<한옥 시공>(김종남)
<한국 주거의 미시사>(전남일·양세화·홍형옥)
<민중미술>(성완경)
<그린디자인>(윤호섭)
<수목도감>(김태영·김진석)

마음산책
<드 니로의 게임>(라위 하지)
<코언 형제>(이선 코언·조엘 코언)
<책들의 조각보>(김진규)
<고아의식>(리디아 플렘)
<봉준호 사진집>(봉준호)
<봉준호 카툰집>(봉준호)
<카미유 클로델 서한집>(카미유 클로델)
<여행자의 아침식사>(요네하라 마리)
<엄마는 떠났다>(심재명)
<길들지 않은 땅>(줌파 라히리) 



문학과지성사

<기형도 20주기 추모 문집>
<현대시와 장르비평(김준오)>
<엄정식 산문집>
<김윤식 강연집>
<문학과 근대와 일본>(윤상인)
<함돈균 비평집>
<정과리 비평집>
<강계숙 비평집>
<청소년 서유기(전3권)>
<모자>(토마스 베른하르트)
<잔지바 또는 마지막 이유>(알프레드 안더쉬)
<이십억 광년의 고독>(다니카와 순타로)
<독서의 알레고리>(폴 드 만) 

 

<집단적 기억>(모리스 알박스)
<모던 포스트모던>(페터 지마)
<홍성원 1주기 추모 문집>
<정명환 깊이 읽기>
<영화와 논술>(강유정)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송기원 외)
<보들레르 산문집>
<후지이 사다카즈 시선집>
<아버지의 책>(우르스 비트머)
<어머니의 연인>(우르스 비트머)
<창려문초-한유문집>(한유)
<악에 관한 세 편의 대화>(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
<새로운 인생>(잉고 슐츠)
<반문화>(크리스티앙 생-장-폴랭)
<지배와 공간-식민지 도시 경성과 제국 일본>(김백영)
<상상적 기표>(크리스티앙 메츠) 

 

<성기완 문화비평집>
<내가 어른이 된 순간>(고종석 외)
<청소년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김기봉)
<제프가 집에 돌아왔을 때>(캐서린 아킨/류제분)
<손바닥>(가와바타 야스나리)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토마스 부르시히)
<골로블료프 가의 사람들>(니콜라이 시체드린)
<밤의 역사>(카를로 진즈부르그)
<오리온의 유산-사냥꾼으로서의 남자>(찰스 버그먼)
<공포의 역사>(장 들뤼모)
<리비돌리지>(맹정현)
<소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최시한)
<가정기도서>(브레히트)
<핸드폰>(잉고 슐체)
<작가 자신을 말하다>(오에 겐자부로)
<그들의 마지막 편지>(베르너 풀트)
<텍스트에서 하이퍼텍스트로, 하이퍼텍스트에서 하이퍼미디어로>(유현주)

민음사

<정치적 무의식>(프레드릭 제임슨/이경덕·서강목) 

 

<로마제국 쇠망사 5·6>(에드워드 기번/송은주 외)
<학자의 갤러리>(이스라엘 셰플러/김영건·이재춘)
<키워드>(레이먼드 윌리엄스/김성기·유리)
<불공정의 황무지>(가 알페로비츠 외/원용찬)
<저탄소 경제, 경제의 지도를 바꾼다>(김현진)
<선비의 사유와 삶>(김기현)
<대운하와 휘주 상인-명청 시대 물류와 도시 그리고 상인>(조영헌)
<인도와 파키스탄>(조길태)

랜덤하우스

<삶의 모든 변화를 위한 첫 30일>(아리안 드 봉브와젱)
<위너스 매뉴얼 52>(나카지마 다카시)
<호스트>(스테프니 메이어)
<조지의 우주보물찾기>(루시 호킹·스티븐 호킹)
<웃지마! 나 영어책이야 3>(문덕/스노우캣 그림)
<솔로이스트>(스티브 로페즈)
<뻔뻔한 영철영어 2(가제)>(김영철)
<디퍼>(로더릭 고든·브라이언 윌리엄스)
<떨림2>(김훈 외)

뿌리와이파리
<미토콘드리아-박테리아에서 인간으로, 진화의 숨은 지배자>(닉 레인/김정은)
<요시카와 고지로의 두시 강의>(요시카와 고지로/조영렬)
<경제학 상식 뒤집어보기>(매튜 아미에 외/강상재)
<대서양사>(버나드 베일린/백인호)
<지중해의 역사>(존 줄리어스 노리치/이순호)
<Out of Thin Air>(피터 워드/류운)
<Social Influence and Social Change(가제:다수보다 강한 소수)>(세르주 모스코비치/문성원)
<다윈 평전>(에이드리언 데스먼드·제임스 무어/김명주)
<문명 속의 전쟁>(아즈라 가트/오숙은)
<강유원의 고전강의 경철수고>(강유원)
<자본주의의 역사>(미셸 보/민경현)
<스페인 문화사>(전기순)

비아북
<한漢 나라 이야기>(김태권 만화·역사만화 전9권)
<사진과 함께하는 중국 근현대사>(김명호)
<호모 임페리얼스>(김시천)
<숲에게 길을 묻다>(김용규)
<한국 신화>(김열규)
<초현실주의 게임>(멜 굿딩/이우일·이우성)

사계절
<욕망의 연금술사, 뇌>(모기 겐이치로/이경덕)
<논어, 공자와 시대와의 대화>(신정근 완역·해설)
<고민하는 힘>(강상중/이경덕 옮김)
<촘스키에게 대들다>(촘스키·질베르 아슈카르 대담/강주헌)
<미셸 푸코의 파르헤지아>(미셸 푸코/심세광)
<지식의 책>(콘스탄틴 발로웬/강주헌)
<도킨스 대 굴드>(킴 스티렐니/장대익)
<코끼리들의 후퇴>(마크 엘빈/정철웅)
<아틀라스 일본사>(일본사학회)

산책자

<사진과 함께 보는 한국 근현대 의료 문화사>(서울대학교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유동하는 공포(가제)>(지그문트 바우만) 

 

<아메리카>(장 보드리야르)
<촛불의 시대, 불안의 시대(가제)>(당대비평 기획위원회)
<로쟈의 인문학 서재(가제)>(이현우)
<자술-풍우란 자서전>(풍우란)

<음식과 사랑>(잭 구디)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빈곤으로부터 구할 것인가(가제)>(피터 싱어)
<푸코, 인간의 초상(가제)>(폴 벤느)
<자살의 자유에 대하여(가제)>(장 아메리) 

 

<굴드 자연사 에세이 선집>(스티븐 제이 굴드)

산처럼
<문학이 태어나는 자리>(이승수)
<문명과 바다>(주경철)
<한국의 수집이야기>(이광표)
<왕의 하루, 승정원일기를 읽다>(박홍갑·이근호·최재복)
<사유의 열쇠-과학>(이중원)
<명태>(박천홍)
<제사>(이욱)
<달력>(이창익)
<동경삼재>(류시현)
<조선시대의 죄와 벌>(심재우)
<전쟁사 사전>(조지 차일즈 콘/조행복)

삼인
<스마트 파워>(CSIS 스마트파워 위원회/홍순식·이원태)
<제국의 마지막 기회>(즈비그뉴 브레진스키/김명섭)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김영아)
<박상증과 에큐메니즘 운동>(강주화)
<노란 잠수함 이야기>(조원진·김양우)
<엄혹의 시대>(신현칠)
<문동환 자서전>(문동환)

새물결
<에크리>(자크 라캉) 

 

<마하바라타>(인도의 고대 서사시)
<대한민국 만들기>(정일준)
<근대의 정당성>(한스 블루멘베르크) 

 

<예외상태>(아감벤)
<히틀러로부터 칼리가리로>(지그프리드 크라카우어)
<특성 없는 남자>(로메르트 무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마르셀 프루스트)
<중력의 무지개>(토마스 핀천) 

 

<열정으로서의 사랑>(니클라스 루만) 



생각의나무

<길 위에서 띄운 희망 편지>(김형오)
<우리 시대의 고전 50>(한국일보)
<청조문화동전연구>(김규선 외)
<사고전서>(켄트 가이)
<중세의 도시:루와 정>(김석철)
<보디 북>(데이비드 보더니스)
<우리는 미래에 무엇을 배울 것인가>(장회익 외)
<디지로그 쉘법칙>(이어령)
<민회빈 이야기 1·2>(김용상)
<김성희의 세계주얼리브랜드)(김성희)
<상황 4>(사르트르>
<청년 대중문화를 읽는 4가지 키워드>(김용희)
<미래 융복합기술>(공학한림원)

서해문집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 시리즈(김성희 해설)
<히스토리아 대논쟁 도덕 & 지식인>(박홍순)
<히스토리아 대논쟁 정의론 & 제도>(박홍순)
<히스토리아 대논쟁 민주주의 & 시민 불복종> (박홍순) 

시대의창
<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데이비드 바사미언·노엄 촘스키)
<안중근 평전>(김삼웅)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이유리·임승수)
<탕나라 사람들>(신병근)
<2009 새사연의 한국경제 진단(가제)>(새사연)
<20대와 이야기하기>(조성주)
<오바마와 한반도>(정태인 외)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희망제작소)
<민영화>(새사연)
<오동명의 사진강의>(오동명)
<미국의 공공외교와 한미관계>(이상호)
<다극화체제>(임승수 외)
<식량은 주권이다>(장경호)
<산업재해>(김동재)
<불만합창단>(희망제작소)
<공정무역>(박창순)
<종자전쟁>(김은진)
<이명박의 나라에서 살아남기>(하재근)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미헬 레이몬·크리스티나 펠버)
<만화로 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정희용·길문섭)
<촘스키 이펙트>
<인사이드 레바논>
<촘스키와 푸코>  

 

<에센셜 촘스키>

 웅진지식하우스

<철학콘서트 2>(황광우)
<천자와 아큐>(이상수)
<영웅들>(폴 존슨) 

 

<제국의 수도에서 눈물을 흘리다>(리샹)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김상봉·박명림)
<중국신화사>(위앤커)

이매진

<씰리펀의 라오스 일기>(이영란)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김원)
<학출 ― 80년대와 공장으로 간 대학생들>(오하나)
<행복한 교육학>(최영란)
<전기에너지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유진 외)
<에코뮤니티>(김성균)
<희망제작소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총서>(희망제작소 지역희망찾기 총서)

창비
<한국 민족주의의 기원>(신기욱/이진준) 
<부자아빠의 몰락>(로버트 프랭크/황해선)
<압축적 근대성의 미시적 기초>(장경섭)
<프로메테우스의 경제학>(류동민)
<동아시아론>(최원식)
<21세기에 다시 보는 동아시아 3국 근대이행기 (전4권)>(김동노 외)
<근대 한국 사회과학 개념 형성사>(하영선 외)
<길 위에서 묻는다>(채민 만화)
<서경식-타와다 요오꼬 왕복서한>(서은혜 번역)
<조선시대 재난과 국가의례의 변화>(이욱)
<부인하는 국가들>(스탠리 코언/조효제)
<68혁명 시간여행>(잉그리트 길혀 홀타이/정대성)
<이식문학론을 넘어서>(배개화)
<100℃>(최규석 만화)
<프랑스혁명과 영국 낭만주의>(유명숙)
<일본의 역사인식 비판>(미야지마 히로시)
<사상경험의 교착>(윤건차/박진우 외)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개정판)>(박석무)
<라틴아메리카의 변환>(로버트 그윈·크리스또발 케이/박구병)

책세상
‘비타 악티바’ 시리즈(개념사 시리즈) <폭력>(공진성), <노동가치>(박영균), <IMF 위기>(은수미), <비정규직노동>(장귀연), <시민혁명>(박윤덕), <공공성이란 무엇인가>(조한상)
<우생학, 무엇이 문제인가>(염운옥)
<인터넷으로 소설을 읽다>(김명석)
<징병제의 역사와 전망>(최재희)
<한국의 문학권력>(이명원)
<자본의 본성에 관하여>(소스타인 베블런/홍기빈)
<여성 권리 옹호>(메리 울스턴크래프트/문수현)
<여성과 노동>(올리브 슈라이너/기계형) 

 

<사회학 논문들>(에밀 뒤르켐/민문홍)
<형이상학>(아리스토텔레스/김재범)
<여성, 섹슈얼리티, 국가>(이성숙)
<식민지 이후를 사유하다-차이의 정치학, 탈식민화와 재식민화의 경계>(권명아)
<니체, 실험적 사유와 극단의 사상>(이진우)
<번역된 철학 착종된 근대>(김시천·전호근)
<제노사이드와 기억의 정치>(허버트 허쉬/강성현)

<그들은 왜 히틀러에게 열광했는가>(스테판 막스/신종훈)

푸른역사
<우리 근대를 보는 두 시각>(박노자·허동현)
<남환박물지>(이형상/이상규·오창명 역주)
<개화기 인물론>(신동주)
<조선학설논쟁사전>(김동주)
<장개석 일기>(레이 황/구범진)
<그들의 새마을운동>(김영미)

한길사
<함석헌 저작집(전 30권)>(함석헌)
<예수 이야기>(김민웅)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1·2>(이삼성)
<로마제국을 가다 2>(최정동)
<역사의 땅, 사상의 고향(가제)>(박석무)
<이오덕 우리글 쓰기(가제)>(이오덕)
<이상론>(조영남)
<매창 이야기>(허경진)
<한일역사공통교재-근대편>(한일공통역사교재 제작팀)
<프랑스 문화(가제)>(박혜숙)

한울
<의례, 상징, 정서적 에너지>(랜달 콜린스/진수미)
<바우만과의 대화>(바우만·테스터/이기홍)

<지젝과의 대화>(지젝·달리/주은우)  

<카스텔과의 대화>(카스텔·엥스/백욱인)
<네트워크사회>(카스텔 외/박행웅)
<사물의 성향>(프랑수아 줄리앙/박희영)
<현인에게는 고정된 관념이 없다>(프랑소와 쥴리앙/박치완)
<중국과 베트남: 비대칭의 정치학>(브렌틀리 워맥/함명식) 

 

<동아시아에서의 전쟁과 사회>(김귀옥 외)
<산업사회학>(비판사회학회)
<한국경제에 있어서 마르크스 가치량 측정 및 가치분배 구조변화에 관한 연구>(민주사회정책연구소)
<비판적 생태학과 환경정의>(최병두)
<환경과 사회>(찰스 하퍼/정대연) 

 

<미디어융합시대의 광고와 사회문화>(이희복 외)
<북한 일상생활 연구>(동국대 북한일상생활연구센터)
<학생권리와 학교사회복지>(이혜원 외)
<현상과 도구>(이상원)
<현실정보사회와 정보사회운동>(홍성태)
<새로운 뇌과학: 위험성과 전망>(스티븐 로즈 외/김재영 외)
<제도경제학>(Bernard Chavance/ 김재영 외)
<가정폭력: 여성 인권의 관점에서>(한국여성의전화)
<축제와 엑스터시>(박동준)

현실문화연구

<디자인 멜랑콜리아>(서동진)
<인터페이스 연대기>(박해천)
<빛의 건축>(김주연)
<중국의 디자인>(김대영)
<민주화의 민주화>(홍성태)
<중국문화연구>(임춘성 외)
<대중문화연구사전>(최기호·김기란)
<라루스 총서(오늘날의 미국/경제의 지도자들/석유 이후/돈의 역사/세계는 사건 현장/ 사라져가는 생물종/지구촌의 물 문제/새로운 지정학 등)
<박정희 시대>(김원)
<냉전 아시아의 문화풍경>(성공회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어린이도서관>(정기용)
<황하문명탐사>(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근대의 원초경>(김소영)
<새 이야기>(우용태)
<미드 시리즈란?>(남명희)
<개화기 여행기>(황호덕)
<이미지의 운명>(랑시에르) 



후마니타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하여>(이대근)
<석궁 사건과 한국 사법부>(서형)
<탐사보도란 무엇인가>(김용진)
<냉전의 추억>(김연철)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정치사상>(강정인)
<산업도시와 지역 발전>(조형제)
<세계 경제위기와 한국 경제의 진로>(이병천 외)
<한국 정치와 진보정당 운동사>(조현연)
<한국 민주주의와 개발동원체제>(조희연)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본 한국 현대사>(박찬표)
<금융 세계화, 자본주의 모델 그리고 한국경제>(전창환)
<재벌 개혁의 전개 과정과 과제>(김상조)
<한국의 지역주의와 지역정당체제>(박상훈)
<대출 권하는 사회>(김순영)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라클라우·무페/이승원) 

 

<민족과 서사>(호미 바바/류승구)  

<정치와 비전 2·3>(셀던 월린/강정인 외)
<세계화와 반폭력의 정치>(에티엔 발리바르/진태원)
<정치와 역사>(루이 알튀세르/진태원) 

 

<시민의 권리>(에티엔 발리바르/진태원)
<인민을 자유롭게 하기>(존 던/문지영)
<왜 그리스인가>(자크 로밀리/이명훈)
<인민주의의 근거>(에르네스토 라클라우/임승준) 

 

<암흑의 대륙>(마크 마조어/김준형)
<현대 팔레스타인사>(일란 파페/유강은)
<독일 정치사>(만프레드 슈미트/이선희)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카스 선스타인/송호창 외)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크랜슨&긴스버그/서복경)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로버트 달/김순영)
<권력의 병리학>(폴 파머/보건의료노조)
<근로 빈민>(쉽플러/나일등)
<젠더와 발전의 정치경제학>(샤린 라이/이진옥)
<자본주의의 이해>(보울스 외/최정규 외)
<시장 체제>(찰스 린드블룸/한상석)
<케인스>(스키델스키/고세훈)
<정오의 어둠>(아더 쾨슬러/문광훈) 

 

<시간의 목소리>(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민주주의의 경제 이론>(다운스/박상훈)
<서구 정당사>(피터 마이어/강우진)

휴머니스트
<신화 이야기 1·2>(김용호)
<대청제국>(이시바시 다카오/홍성구)
<서사철학>(김용석)
<이옥 전집(전 5권)>(실시학사고전연구회)
<한국과 일본의 근대 역사학>(박환무·윤해동·도면회 기획)
<서예가열전>(이동국)
<100권 클럽 이야기>(박문호 외)
<찰스 다윈 대담집>(최종덕 외)
<임지현의 세계사 편지:역사의 불순함을 위한 변명>(임지현)
<외국인을 위한 한국사(한국어판·영어판)>(김육훈·신용균)
<도정일의 위대한 상상력>(도정일)
<마루야마 마사오 1936-1957>(마루야마 마사오/김석근)

<조선의 오디세우스>(이승원)
<조선의 지식세계>(김호)
<반이정의 사물보기>(반이정)
<이옥 이야기>(안대회)
<노마드 철학과 서양건축>(이진경)
<한필원의 우리 도시 순례>(한필원)
<서양미술사 2>(진중권)
<소문사설-조선의 기술사>(부유섭 외)
<조선의 문자생활사>(심경호)
<동다기-차의 문화사>(정민)
<동아시아사>(제임스 팔레 외)

<인과성의 문화사>(스티븐 컨/장보혜) 

 

<명청산문산책>(김월회) 

09. 0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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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사IN] 2009년 인문·사회출판 지형도는?
    from 자기치유 2009-01-16 15:06 
    혼돈의 시대가 ‘다른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만드나. 2009년 한국어판의 발간 소식은 상징적이다. 는 와 함께 세계의 주요 진보 매체로 꼽힌다. 2009년 상반기에 에 실린 논문 18개를 번역한 한국어판이 도서출판 길에서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2009년도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출간 예정 목록을 들여다보면 몇몇 필자가 눈에 띈다. 2007년 <88만원 세..
  2. 히틀러와 함께 2009년을!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2-29 19:21 
    내일부터나 서재 활동을 정상화하려고 했지만, 2009년의 마지막 '대작'인 듯싶은 책이 눈에 띄기에 간단한 인사부터 적는다. 연초에 올해 출간될 주요 인문 사회과학 서적 목록에 올라와 있었던 이언 키쇼의 전기 <히틀러>(교양인, 2009)가 문제의 책이다. 당초 예고는 이랬다. 히틀러 연구에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요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이 이미 국내에 소개되었지만 그의 책은 1970년대에 씌어진 것이어서
 
 
하이드 2009-01-15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루룩 봤지만, 알베르토 망구엘과 요네하라 마리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이 있네요. 알베르토 망구엘의 책 <상상계 사전>이라고 번역되지 말고, 좀 다른 세련된 제목이길, 제목만으로도 사장될 것 같아요;;

그나저나 히틀러에 관한 책은 굉장히 꾸준히 나오는군요. 인물/평전 분야에서 이런저런 책이 가장 많이 번역된 인물이 아닐까 성급히 생각해봅니다.

로쟈의 인문학서재(가제)도 보이네요~

로쟈 2009-01-15 23:31   좋아요 0 | URL
'imainary places'를 옮긴 거더군요. 요네하라 마리 여사의 계속 나와서 저도 반갑습니다. 사실 제 책은 작년에도 리스트에 들어 있었어요...^^;

마늘빵 2009-01-15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이거 엄청나네요. 김상봉, 피터 싱어, 서경식, 우석훈, 김규항, 유시민, 움베르트 에코, 정민, 이진경, 이정우, 김용석, 김용규, 김시천 등 좋아하고, 한편으로 관심있는 분들도 눈에 많이 보이고, 번역서들도 그냥 저자와 제목만 봐도 막 행복해지네요. 로쟈님의 책은 산책자에서 나오는군요. ^^ 발마스님의 활약이 눈에 띕니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려운 한해가 될 거 같긴 합니다만, 책으로 위안을 삼아야겠군요.

로쟈 2009-01-15 23:31   좋아요 0 | URL
책으로만 위안을 삼기에는 상당히 험악한 한해가 될 듯해요...

jouissance 2009-01-15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엄청난 책 목록을 보고 있자니 구미가 당기기 보다는 마누라 잔소리가 먼저 들리네요.
저 책들 다 사면 얼마나 될까요? 정녕 인문학도 계급의 산물에 불과한 걸까요...ㅠㅠ

로쟈 2009-01-15 23:32   좋아요 0 | URL
책에 별 욕심이 없는 이들이 가끔은 부럽죠.^^;

twoshot 2009-01-15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기만 해도 풍성한 목록이군요....거기에 드디어 로쟈님의 책이 슬며시 끼어 있어서 반갑습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올해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로쟈 2009-01-15 23:35   좋아요 0 | URL
구정을 세는지라 아직도 세밑입니다. twoshot님도 새해 건강하시길...

비로그인 2009-01-15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자님의 <인문학 서재>는 어떤 구성인지 또 언제 출간 예정인지 궁금하네요. ^^ 그리고 제가 번역했고 다음주초에 출간되는 <드 니로의 게임>도 보이니 반갑네요.^^

로쟈 2009-01-15 23:36   좋아요 0 | URL
구성은 편집자와 계속 고민중에 있습니다.^^; <드니로의 게임>은 어떤 게임인지 궁금한데요.^^

비로그인 2009-01-17 00:34   좋아요 0 | URL
네, <드 니로의 게임> 제목은 영화 <디어 헌터>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보인 러시안 룰렛 게임을 가리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1-15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기존의 글들에 다른 글도 첨가해서 내는가요?

로쟈 2009-01-15 23:48   좋아요 0 | URL
그간에 온/오프라인에 쓴 글들을 약간 수정 보완해서 내려고 합니다...

2009-01-16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6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r 2009-01-16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성해서 벅차긴 한데, 잔고를 생각하면; 로쟈님 저서 기대하겠습니다^^

로쟈 2009-01-16 11:46   좋아요 0 | URL
그나마 한꺼번에 나오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죠...^^;

앨런 2009-01-16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의 인문학 서재도 기대할게요^^

로쟈 2009-01-16 17:31   좋아요 0 | URL
이거 참 부담 백배인데요.^^;
 

헤겔 사전이 출간됐다. <헤겔사전>(도서출판b, 2009). 이미 예고된 책이긴 하나 막상 나오고 보니 반갑고 놀랍다. 비록 번역이긴 하나 '사전'을 낸다는 일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온 사전은 일본의 헤겔 연구자 100명이 쓴 <헤겔사전>(고분도출판사, 1992)을 완역한 것이다. 이미 서양철학의 수용사에서 한일간의 격차가 상당한 만큼 '번역'의 흠을 잡을 수는 없다. 다만 생각에 국내 학계에서 10년내에 이만한 사전을 낼 수 있을는지는 좀 의문이다(이건 좀 유감스러운 일이다). 헤겔의 주요 저작만 하더라도 임석진본을 대체할 새로운 (세대의) 번역이 아직 나오고 있지 않다. 그러니 일반 독자들에게 이 사전이 어느 정도의 효용을 가질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각급 도서관에서라도 빠짐없이 비치해놓았으면 한다. 사전은 학문과 공부의 '기본'이고, 또 한편으론 그래야지만 '현대철학사전'으로 예고돼 있는 나머지 리스트(칸트, 마르크스, 니체, 현상학)도 빛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지젝의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도서출판b, 2007),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인간사랑, 2004)와 헤겔의 <정신현상학>(한길사, 2005), 회슬레의 <헤겔의 체계1>(한길사, 2007) 등을 읽는 데 활용할 수 있을 듯싶다(회슬레의 책은 2권이 언제 나오는 것인지?). 참고로 영어로는 인우드(Inwood)의 <헤겔사전>이 있다. 내친 김에 최근 출간된 헤겔 관련서의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1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헤겔사전
가토 히사타케 외 지음, 이신철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9년 1월
80,000원 → 72,0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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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
테리 핀카드 지음, 전대호.태경섭 옮김 / 이제이북스 / 2006년 7월
48,000원 → 43,200원(10%할인) / 마일리지 2,400원(5% 적립)
2009년 01월 14일에 저장
구판절판
헤겔입문
황세연 지음 / 중원문화 / 2007년 5월
15,000원 → 14,250원(5%할인) / 마일리지 43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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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헤겔
로이드 스펜서 지음, 윤길순 옮김, 안제이 크라우제 그림 / 김영사 / 2007년 6월
6,900원 → 6,210원(10%할인) / 마일리지 340원(5% 적립)
2009년 01월 14일에 저장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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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EAV 2009-01-15 01:19   좋아요 0 | URL
하지만 가격이 너무 충격적이더라고요. ㅠ,.ㅠ

로쟈 2009-01-15 09:19   좋아요 0 | URL
들으니 그렇게 밖에는 수지를 맞출 수 없다고 하네요...

paul 2009-01-15 11:27   좋아요 0 | URL
이런 사실은 몰라야만 실현될 수 있을텐데.....

로쟈 2009-01-15 12:4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노이에자이트 2009-01-15 23:43   좋아요 0 | URL
요즘 중원문화사가 황세연 황태연 형제들이 80년대에 쓴 책과 마르쿠제<이성과 혁명>등 헤겔 및 독일 사상 관련서들을 다시 내더라구요.

로쟈 2009-01-15 23:53   좋아요 0 | URL
네, 한데 워낙 고가로 나와서 소장할 엄두가 안 나던데요. 공간도 문제지만...

노이에자이트 2009-01-17 16:39   좋아요 0 | URL
헌책방에서 사길 잘했죠.소련시절 나온 세계철학사 10권도 제목만 살짝 바꿔 내던데,그 값이...
 

이번주에 나온 책 <인문학 스터디>(라티오, 2009)와 인문학 '교양'의 문제에 대해 몇 마디 적으려고 했지만 계절강의 준비 등으로 시간을 내지 못한다. 써야 될 아이템들만 쌓이고 있는데, 언제 다 방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늘 읽은 기사들을 옮겨놓을 시간도 부족하기에 대신 어제 읽은 기획연재를 옮겨놓는다. 고종석의 새로운 연재 '여자들'이 그 첫 번째로 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를 다루고 있다. 나는 간혹 '로쟈'라는 닉네임이 '로자'에게서 온 게 아니냐란 질문을 듣곤 해서 '친근감'을 갖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그녀에 관해 진득하게 읽은 것도 없다. 이 참에 읽을 만한 거리들도 챙겨놓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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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09. 01. 12) [고종석 기획연재 여자들] <1> 로자 룩셈부르크

혁명의 희망이 가뭇없이 사라진 시대에 새된 목소리로 혁명을 구가하는 것만큼 허영심을 채워주는 일도 찾기 어렵다. 그 허영 놀이에는 아무런 위험도 뒤따르지 않는다. 비밀경찰의 감시도, 구사대의 폭력도, 고문의 공포도, 생명의 위협도.  



그 혁명은 현실 바깥의(차라리 중심부의) 패션이고 놀이다. 체 게바라의 초상을 아로새긴 티셔츠가 한 시절 세상을 휩쓴 것도 그런 '안전한' 허영 놀이였을 테다. 그 옷을 입은 누구도 실제로 체 게바라처럼 되고자 하지는 않았을 게다. 되고 싶어도 될 길이 (거의) 없었다. 혁명은 과거사다. 그것은 일어날 수 없는 가상의 서사다. 그래서 아무리 과격한 혁명의 언어를 발설해도 잡아갈 '에이전트'가 없다. 외려 유행에 민감한 '에이전트'라면, 제 아이에게 게바라 티셔츠를 입힐 것이다.

티셔츠에 아로새겨진 게바라는 체제의 안녕을 전혀 위협하지 않으면서, 진보, 혁명적 낭만주의, 세련된 지성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것은 지적 도덕적 데커레이션이었고, 이상주의자의 거짓 신분증이었다. 그래서 체제는 게바라 바람을 내버려두었다. 대학 강단의 '좌익' 교수가 우익 신문에 게바라를 기리는 글을 써도, 젊은이들이 그 '과격한' 혁명가의 '티셔츠 동지'가 되어도, 체제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자본에 빨려 들어간 게바라라는 이름은 임박한 혁명의 표징이 아니라 사라진 혁명의 전설이었으므로. 그것도 벌써 한 세대 전 얘기다. 

게바라 티셔츠를 팔아 돈을 번 의류업자에게 나는 또 하나의 세련된 아이콘을 소개하고 싶다. 게바라 못지않은, 아니 게바라를 넘어서는 소비사회의 매력적 혁명 아이콘을. 이번엔 여자다.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라는 이름의 여자. 명민한 자본가들이 아직까지 이 여자를 그대로 놓아둔 것이 신기하다. 우선 나부터도 허영심이 '체'보다 '로자' 쪽에 훨씬 더 쏠리는데 말이다. 그녀는 파리코뮌의 해, 그 코뮌의 달에 러시아령 폴란드에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베를린의 스파르타쿠스단 봉기(고대 로마의 노예봉기 지도자 이름에서 따온 공산주의자들의 봉기다) 때 죽었다. 그 죽음도 게바라보다 더 극적이다.  

'체'는 미국 비밀경찰이 지휘하는 볼리비아 군인에게 총살당했지만, '로자'는 한 때의 동지가 집권한 '제2의 조국'에서 군인의 개머리판에 이마를 맞고 확인사살을 당한 뒤, 베를린의 운하에 내던져졌다. 그 죽음을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노래했다. "붉은 로자도 사라졌네/ 그녀의 몸이 쉬는 곳마저 알 수 없으니/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말했고/ 그 때문에 부유한 사람들이 그녀를 처형했다네." 몇 달 후 로자의 시체가 물 위로 떠올랐을 때 그녀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패했다. 그 '붉은 로자'는 '피투성이 로자'였다.

로자의 삶도 게바라 못지않게 극적이었다. 그녀는 러시아 국적을 지닌 유대계 폴란드인으로 태어났고, 바르샤바의 중학생 시절 '프롤레타리아당'의 세포에 가입했고, 대학에 여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조국을 떠나 스위스의 취리히로 건너갔고, 위장 결혼을 통해 독일 국적을 얻었고, 러시아와 폴란드와 독일 세 나라의 혁명 운동에 발을 담갔다.

그녀는 친구보다 적이 훨씬 많은 사람이었다. 그 적은 부자들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도 있었다. 사회민주주의운동을 폴란드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수행하려는 움직임을 비판함으로써, 그녀는 폴란드 동료들에게서 미움을 받았다. 로자가 선택한 '진짜' 조국은 폴란드도, 독일도, 러시아도, 가상의 시오니스트 국가도 아니었다. 로자의 조국은 프롤레타리아였고, 그녀는 죽을 때까지 철저한 국제주의자로 일관했다. 자신의 당, 독일사회민주당이 국방예산 증액을 거들자 그녀는 이를 격렬히 비판함으로써 당 동료들로부터 소외되었다. 애국주의가 모든 것을 삼켜버린 세계전쟁 시기에 반전주의자로 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독일에서도 프랑스에서도,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국제주의를 버리고 애국주의에 투항했다.  



로자는 감옥 안팎에서 그런 훼절을 통렬히 비판한 극소수의 사회주의자에 속했다. 그녀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한쪽 발을 저는 유대인이었는데, 이것마저도 (반동진영으로부터만이 아니라 소위 혁명진영으로부터) 야비한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그 시절 사회주의의 지도적 혁명가들이 흔히 그랬듯, 로자도 학자와 기자를 겸했다. 그는 <자본축적론>과 <사회민주주의의 위기>를 쓴 경제학자였고, <노이에 차이트> <라이프치히 폴크스차이퉁> <로테 파네>를 비롯해 여러 매체에 쉴 새 없이 글을 써댄 기자였다.

그러나 그녀의 펜은 혁명을 선동하는 글보다 사랑을 갈구하고 고백하는 글에 훨씬 더 많은 잉크를 소비했다. 그 연애편지들의 수취인 가운데 로자가 제 가슴 가장 깊이 담은 사람은 그의 스승이자 동지이자 애인이자 사실상의 남편이었던 리투아니아 출신 유대인 레오 요기헤스였다. 로자의 친구였던 루이제 카우츠키(카를 카우츠키의 아내)의 레토릭에 따르면 "로자의 불같은 성격은 레오라는 기름을 만나 타오를 수 있었다." 



계급의 적에게 돌덩이처럼 단단했던 로자는 레오 앞에서 수줍은 아가씨가 되었다. 로자가 품었던 여러 모순 가운데 첫 번째가 레오와의 관계였다. 사민당의 가까운 동료들에게까지 가차없었던 그의 필봉은 레오에게 쓴 연애편지에선 한없이 말랑말랑한 응석으로 무뎌졌다. 그녀가 '디오디오'라는 애칭으로 불렀던 레오는 운동의 선배였지만 주로 지하활동에 종사해 사회주의자들 사이에 로자만큼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독립 여성의 상징이라 해도 좋을 로자가 레오 앞에서만은 순한 양이 되었다. 외면적 사회민주주의 운동에서 로자의 공적(公的) 짝은 한 날 거의 같은 시각에 살해된 카를 리히프크네히트였지만, 로자의 로맨스 속에서 그 자리는 그들보다 두 달 쯤 뒤에 처형된 레오의 것이었다.

그 시절엔 사회민주주의라는 말을 오늘날과 같은 의미로 쓰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베른슈타인 같은 수정주의자들도 자신을 사회민주주의자라 일컬었지만, 대체로 사회민주주의는 혁명적 사회주의, 곧 공산주의를 뜻했다. 독일 사민당의 전쟁 지지에 환멸을 느껴 탈당한 동료들과 함께 독일 공산당을 창건한 로자는 내심 공산주의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타협적, 혁명적, 국제주의적 사회주의자였다는 점에서 로자는 일생동안 공산주의자였다

 

1907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사회주의자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는 로자 룩셈부르크.

나는 로자의 만년에 러시아에서 실현되기 시작한 공산주의를 혐오한다. 그 점에서 나는 로자주의자가 아니다. 그런데 로자의 사회적 전망에는 모호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는 레닌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지였지만, 10월혁명을 전후한 레닌의 독선적 행태에 부정적이었다. 이를테면 레닌이 독일군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로 잠입한 것이나, 제국주의 독일과 굴욕적 정전협정을 맺은 것 따위는 로자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거기서 그녀의 반전주의는 흐릿해졌다. 주로 선전선동의 일을 맡았으면서도, 로자는 레닌의 전위당 이론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말하자면 로자에게는 민중주의 편향이 있었다.

그러나 레닌이 로자를 가장 크게 실망시킨 일은 10월혁명 이후에 일어났다. 실질적 소수파였던 볼셰비키(다수파)를 이끌고 혁명에 성공한 뒤 실시한 총선에서 패배하자 레닌은 이를 힘으로 무효화했고, 로자는 서유럽의 부르주아 정치인들 이상으로 신랄하게 레닌을 비판했다. 그녀는 그 때 "일당의 당원들만을 위한 자유는, 그 당원들 수가 아무리 많아도, 결코 자유가 아니다"라고 일갈하며 소비에트 체제의 경직화를 우려했다. 로자에게 자유란,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었다. 그 점에서 그녀는 '위대한 반대자'라 불렸던 미국 법률가 올리버 홈스의 동지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녀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사회는 자신이 죽은 뒤 70년간 존속했던 사회주의 사회와는 크게 달랐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녀를 죽인 것은 공산주의자들이 아니었다. 그녀를 죽인 것은 군부와 결탁해 정권을 장악한 사민당 우파였다. 전쟁에 찬성하고 군부와 결탁한 사민당 우파는 여전히 자신을 사회민주주의자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1919년 상황에선 독일 대통령 프리드리히 에베르트도 사회민주주의자였고, 그가 살해한 로자 룩셈부르크도 사회민주주의자였고, 그녀가 비판한 레닌도 사회민주주의자였다. 그 세 사회민주주의의 내실은 전혀 달랐는데도 말이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자유'의 한계라면, 나는 잠재적 로자주의자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충실한 로자주의자는 못될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이 이상주의자이며 이상주의자로 남고 싶다고 되뇌었지만, 나는 현실주의자이며 현실주의자로 남고 싶기 때문이다. 

09. 0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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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1-14 00:00   좋아요 0 | URL
고종석씨의 새 칼럼 기대되네요.

로쟈 2009-01-14 00:18   좋아요 0 | URL
'여자들'을 너무 밝힙니다.^^

릴케 현상 2009-01-14 00:14   좋아요 0 | URL
아내가 너무 재탕이라고 전해 달래요^^

로쟈 2009-01-14 00:18   좋아요 0 | URL
고종석씨가 어디 썼던 건가 보죠? 제가 '재탕'한 건 아닐 테니까요.^^

2009-01-14 0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4 0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4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9-01-14 22:33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PhEAV 2009-01-14 17:20   좋아요 0 | URL
로자 티셔츠라면 저라도 거부할수가...;;;;

로쟈 2009-01-14 22:45   좋아요 0 | URL
'상품성'이 있군요.^^

노이에자이트 2009-01-15 23:41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 지에서 벌어진 룩셈부르크,카우츠키,베른슈타인,쿠노 간의 대논쟁이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사실 제 변명도 그래서 따왔는데요.물론 박호성,강신준 양인의 연구서도 좋습니다만 원자료를 직접 읽고 싶군요.

로쟈 2009-01-15 23:55   좋아요 0 | URL
강신준 교수도 이쪽으로 책을 썼나요?..

노이에자이트 2009-01-17 16:32   좋아요 0 | URL
예.베른슈타인 저서 번역도 했구요.그리고 박사학위 논문이 노이에자이트에서 벌어진 논쟁을 연구한 거예요.그게 단행본으로 <수정주의 연구1>(이론과 실천)로 나왔지요.

로쟈 2009-01-16 11:48   좋아요 0 | URL
그랬었군요...

2009-01-16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6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번주 시사IN에 실은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엊그제 스크랩한 기사(http://blog.aladin.co.kr/mramor/2516936)에서도 언급된 <희망의 인문학>(이매진, 2008)이 서평의 대상이다. 인문학의 활로와 관련해서는 예전에 쓴 '시민 가까이의 인문학'(http://blog.aladin.co.kr/mramor/2374561)도 같이 참조해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시사IN에 실은 마지막 서평기사여서 기억에 남을 듯싶다.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학사, 2007)을 다룬 것이 맨처음이어서 얼추 아귀도 맞는다(http://blog.aladin.co.kr/mramor/1729882). 해서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행복한 인문학'까지로 일단 매듭을 지어놓는다. 가뿐하게 이젠 다른 여정의 가방을 꾸려야겠다...      

시사IN(09. 01. 17) 배곯는 소외자들 인문학으로 배불리다 

“누군가 내게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참 좋았어요, 행복했어요, 그리고 많이 배웠어요,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값지고 소중한 시간들을 내 입에서 너무 쉽게 가볍게 내뱉는 것만 같아 침묵으로써 모든 말을 대신하고 싶다.”  

이 소박하면서 지극한 인문학 예찬론은 대학의 인문학자나 인문학도의 것이 아니라 자활지원센터 인문학과정 졸업자의 것이다. 가난한 살림 때문에 일찍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이분의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3학년이다. 뒤늦은 배움과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었고 공부에 대한 열정도 다시 지피게 되었다고 말한다.  

2006년 방한하기도 했던 미국의 교육자 얼 쇼리스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인문학강좌’, 곧 ‘희망의 인문학’을 모델로 하여 국내에 여러 인문학 강좌가 만들어졌다. 노숙자를 위한 인문학, 교도소 수용자를 대상으로 한 재소자 인문학, 자활근로자와 지역주민을 위한 인문학 등 갈래는 다양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모두가 사회적 빈곤층이면서 인문학 소외계층에 속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은 그 인문학 코스의 강의를 수강한 사람의 사연과 성취에 대해서도 들려주지만 오히려 이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운 ‘교수님’들의 체험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장 끼니 한 끼가 절실한 사람에게,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보는 것이 소망인 사람에게 한 줄의 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두들 그런 의문과 함께 강의를 시작했지만 인문학의 희망과 새로운 가능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어떤 깨달음인가. 다른 삶과 다른 사회를 꿈꾸려는 근원적인 충동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점, 그리고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과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점 등이다.  

흔히 인간의 욕구에는 위계가 있어서 생리적 욕구와 소속감, 자존심에 대한 욕구 등이 먼저 충족된 후에야 비로소 자아실현에 관심을 갖는다고 말한다. 도덕적인 삶과 문화적 향유는 경제적 성장 이후 생각해보자는 ‘성장 이데올로기’가 기대는 것도 그런 단계론이다. 불만의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돼지가 먼저라는 얘기다. 과연 품위 있는 삶에 대한 욕구는 다른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된 이후에야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 ‘세상과 소통하는 희망의 인문학 수업’ 참여자들은 생각이 다를 듯싶다. 시인을 꿈꾸는 한 노숙인이 이런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니까 말이다. “교수님, 제가 시를 썼는데, 여기에 쉼표를 찍어야 할까요, 마침표를 찍어야 할까요?” 

09. 01. 13.  

P.S. 주간지 서평은 편집팀의 교열을 거쳐서 실리게 되는데, 그간에 가장 많이 교정을 받은 것은 복수접미사 '들'이다. 시사IN 편집팀은 좀 어색하다 싶을 정도로 '-들'이나 '-적'이란 접미사를 기피한다. 덕분에 불필요한 접미사를 나도 많이 경계하게 됐지만 그럼에도 매번 몇 군데씩 교정됐고 이번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사안의 대부분은 수용하는 쪽이다. 하지만 교정에도 '미스'가 날 때가 있다. "도덕적인 삶과 문화적 향유는 경제적 성장 이후 생각해보자는 ‘성장 이데올로기’가 기대는 것도 그런 단계론이다"는 문장이 지면에서는 "도덕적인 삶과 문화적 향유는 경제적 성장 이후 생각해보자는 ‘성장 이데올로기’가 기대되는 것도 그런 단계론이다"로 수정됐다. '기대고 있는'이라고 적으려다가 간결하게 쓴답시고 '기대는'이라고 했더니 오히려 오해를 유발한 듯하다.  

 

말하고자 한 바의 요점은 '일단 배부르고 보자'는 식의 성장 우선주의 이데올로기와 인격 발달 단계론이 '공모'적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탈피해야 할 것은 그런 공모이고 결탁이다. '시는 영혼의 끼니'라고 프랑스 시인 르네 샤르는 말했다. 우리의 영혼 또한 우리의 위만큼이나 풍족함을 요구한다. 인간은 돼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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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ice 2009-01-13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로쟈님. 처음 글을 남기네요. 반갑습니다.
지금 노트북 앞에 시사인이 있는데, 이 글을 읽고 서평기사를 찾아봤습니다.
'이 글을 로쟈님이 쓰셨구나'하는 반가운 마음에 글을 남깁니다.
올 한해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_ _)

로쟈 2009-01-14 01:03   좋아요 0 | URL
네,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

비로그인 2009-01-13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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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의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시리즈를 챙겨서 본다. 오늘이 여덟번 째인 걸로 보아 매번 챙겨 읽은 건 아니지만 읽을 거리는 많다. 다 옮겨오진 못하고, 현 미국발 금융위기를 마르크스와 하이에크, 두 경제학자의 시각에서 비교 분석한 기사를 옮겨놓는다. 여전히 이번 위기의 본질이 정부의 지나친 개입에 있다는 '신자유주의론자'의 시각이 놀랍긴 하지만, 참조는 할 수 있겠다...   

경향신문(0. 01. 12)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금융위기를 보는 두개의 시각  

 

노동·자본간 불평등 심화…금융 독재는 역사적 침몰

금융위기 속 ‘마르크스의 반격’
“역사는 종말을 고했다. ‘우파의 이념적 승리’는 완료됐고, 모두가 만족한 가운데 자본주의는 사회구조의 결정적 형식으로 굳어졌다.” 우리를 거의 설득시킨 이 담론은 2008년의 금융 대지진으로 무너졌다. 런던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2008년 10월13일은 영국 자본주의 시스템이 실패한 날로 기록될 것”이라 평가했다. 뉴욕 월가의 시위대는 “마르크스가 옳았다!”라는 팻말을 치켜들었다.

<자본론> 등 한 세기 반 이전 마르크스의 저작 모두를 현 상황에 직접 대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늘날과 다를 바 없는 사회상을 제시한다. “금융 귀족이 법을 명하고 국정을 지도하며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넣어 여론을 지배한다. 이들이 전 영역에서 생산에 의하지 않고 타인의 부를 강탈하면서, 매춘, 사기 등을 재생산하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이는 1848년 혁명 직전 프랑스의 묘사다.

금융위기 원인으로는 복잡한 금융 상품의 휘발성, 자체 규제 불능의 자본시장, 금융계의 도덕적 해이 등이 거론된다. ‘실물경제’에 대한 ‘가상경제’의 시스템 붕괴가 원인이란다. 하지만 ‘가상’의 비극은 ‘실물’에 뿌리를 둔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은행 융자를 안고 집을 산 수백만 미국 가계의 부채상환 불능 상태에서 야기됐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축적의 일반 원칙’을 보자. 그는 자본가 계급이 생산의 사회적 조건을 사유할 경우 “생산 발전의 모든 수단이 지배 수단, 생산자 착취 수단으로 전복된다”고 설명한다. 생산자들이 희생되는 동안 축적된 자본은 자체 동력을 얻어 광적으로 비약한다. ‘한 극점에서의 부의 축적’은 정반대 극점에서 ‘비례적 빈곤 누적’을 초래, 격렬한 상업·금융위기를 낳는다.

신용위기의 파괴력은 생산위기로 전화됐다. 이는 노동·자본 간 분배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최근까지만 해도 시장 자유주의의 적실성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용납하지 않던 자유주의자들이 자본의 ‘도덕화’, 금융 ‘규제’ 등 위기 해결책을 들고 나선다. 자본의 도덕화란 블랙코미디다. 자유경쟁 체제가 망친 사회 미덕은 바로 ‘도덕을 고민하는 것’이었다.

진정 도덕적 경제생활을 원한다면, 악덕 기업주의 잘못 따위 지엽이 아닌 근본을 바로잡아야 한다. 모든 개인적 행위들 너머 자본주의 원칙, 그게 문제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부를 창출하는 수단, 상품으로 전락시킨다. 물론 국가의 규제 기능으로 사회의 비도덕을 개선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자 감세, 우정 민영화를 벌이는 사르코지 등 우파 정권에 규제자 역할을 기대하는 일은 순진하거나 위선적인 짓이다. 



사회적 관계가 근본적으로 재고돼야 한다. 마르크스는 <1844년 수고>에서 ‘소외된 노동’의 개념을 고안했다. 임금 노동자가 자신의 물질적, 도덕적 결핍을 감수하면서까지 남을 위해 부를 창출하는 저주스러운 상황을 뜻한다. 산업재해, 정리해고, 저임금 등 오늘날 임금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이 이 개념을 뒷받침한다. 자본은 생산자들을 끊임없이 생산 수단에서 괴리시키고, 무한경쟁 상태로 내몬다. 기술적, 경제적, 정치적, 이념적 과정으로 생산자를 포섭, 종속시킨다.

금융위기는 인간소외의 단면을 보여준다. 아무도 위기를 원치 않았지만 모두 위기에 노출된다. 자본주의는 ‘일반화된 규제 철폐’를 극단적으로 몰아붙여 규제 부재의 황무지를 만든다. 스스로 규제할 능력이 결여된 체제는 구성원에게 엄청난 대가를 요구한다. 우리는 즉시 자본주의를 초월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대안은 동유럽에서 실패한 공산주의 ‘실험’ 탓에 왜곡당한다. 스탈린-브레즈네프식 사회주의가 공산주의로 오인되는 동안 사람들은 진정한 ‘공산주의’의 의미를 도외시한다. “다른 사회란 파멸적 유토피아일 뿐이다. 우리는 인간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라는 냉소가 퍼진다.

자유주의 사상에서 ‘인간’은 사회로부터 유래되지 않은 자생체이고, 오직 자신의 이익에 충만한 동물(호모 에코노미쿠스)이다. 따라서 인간 사회는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지배하는 사유 재산의 사회만 가능하다고 한다. ‘경쟁적 인간’ 이데올로기는 ‘살인자가 되자’는 비인간적 교육을 권장한다. 일확천금의 광풍 속에 전방위적 탈문명화를 진행한다. 하지만 결국 금융독재의 역사적 침몰 맨 밑바닥에 자유주의적 인간 담론이 깔려버렸다.

마르크스는 자유주의 담론에 대항할 혁명의 초안을 제시한다. 그는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자신의 여섯 번째 테제에 “인간의 본성은 개별적으로 분리된 개인의 고유한 어떤 추상물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 속에서 전체 사회적 관계의 총체이다”라고 썼다. 자유주의 담론과 반대로 ‘인간’은 ‘인간의 세상’에서 유래한다. 인간과 사회는 서로 상대방을 발달시킨다. 그렇다. 우리는 인간의 삶을 바꿀 수 있으며, 이는 사회를 바람직하게 바꾸는 조건하에서 가능한 것이다.(루시앙 세브 프랑스 공산당 중앙위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발췌(www.ilemonde.com)) 

 

 ▲마르크스

자본주의는 내재적 한계를 끊임없이 극복하려 노력하지만, 극복 수단들이 결국 더 큰 한계를 새로 만들어낼 뿐이다. (자본론 3권)

금융거래 활동이 스스로 가치를 생산해낸다는 생각은 ‘가장 바보 같은 망상’일 뿐이다. (자본론 3권) 



시장실패 아닌 정책 잘못…위기본질 지나친 개입 탓 

신자유주의는 실패했나?
최근 비우량 담보 시장에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로 경제가 혼란에 빠지자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시장 개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금융위기의 원인이 규제 완화와 작은 정부 때문이라고,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선언하면서 큰 정부의 도래를 환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같은 진단과 해법은 금융위기의 본질에 대한 잘못된 접근에서 나온 것이다.

그 본질에 접근하는 중요한 단서는 상환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에 대한 주택 담보 대출이다. 이 담보 대출의 부실화에서 부동산 시장의 거품 붕괴가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저소득층에 대한 주택 담보 대출을 늘려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야기한 원인이다.

그 원인은 세 가지이다. 첫째로 1995년 지역재투자법(CRA)을 대폭 개정해 은행들로 하여금 저소득층에 대한 담보 대출을 늘리도록 했다. “누구나 내 집 갖기”라는 주택 보급 정책을 위해서였다. 의회와 정부는 연방주택청(FHA)이나 주택도시개발부(HUD) 등 정부기관을 동원해 은행들에는 대출심사 기준을 대폭 낮추도록, 패니메이(Fannie Mae)와 프레디맥(Freddie Mac)에는 비우량 주택 담보와 이에 근거한 유동화 증권을 구매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그러자 은행들은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위험한 담보 대출을 늘리고 이를 유동화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주택가격의 버블을 야기한 두 번째 요인은 서민들의 주택보유를 확장하기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모기지 전문회사의 도덕적 해이다. 정부와 의회는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손실에 대한 보증을 약속했다. 그래서 그들은 손실은 생각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비우량 담보 구입과 이에 기반을 둔 유동화 증권의 규모를 늘려갔다. 그 결과는 서민층 주택구입의 활성화와 주택가격의 버블이다.

금융위기의 세 번째 원인은 연방준비은행의 방만한 통화정책이다. 심지어 1%라는 초저금리정책을 통해서 유동성을 확대시켰다. 은행들은 늘어난 유동성을 소화하기 위해 저마다 대출처를 찾아 나섰다. 이것이 주택시장의 과열로 연결되었다.  



이 세 가지 요인은 자유와 책임, 작은 정부를 국정원리로 하는 신자유주의를 저버린 정책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의 금융위기는 시장실패가 아니라 정부정책의 잘못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시장규제와 손실의 보증이 없었더라면, 유동성을 과잉 공급하지 않았다면 지금 같은 위기는 없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위기가 월가의 탐욕 때문에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접근법은 옳지 않다. 탐욕은 자기 이익추구로서 특수한 사람이나 상황에서 관찰되는 것이 아니라 늘 어디에서나 목격되는 인간의 불변적인 심성이다. 따라서 이것을 가지고는 평시와는 전적으로 상이한 금융충격의 발생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탐욕을 위기로까지 몰고 간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 시장에 거침없이 풀린 돈과 정부의 시장 개입이 그 이유다.

금융위기가 규제 완화의 탓이라는 주장도 터무니없다. 80년대 말 이래 지속적으로 규제가 증가해왔는데 규제가 가장 많이 늘어난 부문은 주택 부문이고 그 다음이 금융 부문이다. 99년 ‘그램-리치-브릴리 법’으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업이 허용됐다. 이런 규제 완화가 금융위기의 원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겸업이 금지됐더라면 이번 금융위기로 상업은행들이 신용위기에 몰려 있던 투자은행을 흡수 합병하지 못해 위기의 여파가 더욱 극심했을 것이다.

감독부실이 위기의 원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지식 문제 때문에 정부의 시장에 대한 감독이 어렵다. 감독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언제, 그리고 왜 감독해야 하는지에 관한 지식이 필요한데 정부는 그런 지식을 전부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정부의 감독은 늘 부실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감독에 필요한 지식과 관련해 시장이 정부보다 현명하다. 시장은 그 같은 지식을 발견하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시장이 교란되면 ‘발견의 절차’가 작동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시장을 교란시킨 요인이다. 그것은 방만한 통화 공급과 정부의 시장 개입이다.

금융위기의 원인이 정부의 개입임에도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문제의 해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한 때문이다. 시장 개입은 경제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고 지금의 고통을 미뤄 나중에 더 큰 고통을 겪을 위험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다고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손놓고 뒷짐지고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시장경제의 원리를 확립하는 일이다. 개인의 책임과 경제활동을 방해하는 제도와 규제들을 걷어 내고,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고 세금을 낮춰야 한다. 그러면 우리 경제는 지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안정적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정도(正道)다.(민경국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하이에크

국가의 경제 개입은 모든 개인을 노예로 만든다. <노예의 길>(1944)

정부의 시장 개입은 문제이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자유의 헌법>(1961)

세상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은 치명적 자만이다. <치명적 자만:사회주의의 오류>(1988) 

09. 01. 12.  

P.S. '마르크스냐 하이에크냐'라는 이분법적 문제설정에 대한 비판은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50840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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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1-12 23:50   좋아요 0 | URL
오...민경국 씨가 경향신문에 글을 쓰다니...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군요.요즘 민 씨와 같은 주장을 하는 해외인사들의 글이 세계일보에 자주 실리고 있지요.하지만 한국판 뉴딜이라면서 전형적인 정부개입형 경기부양책을 쓰고 있는 현정부의 경제정책엔 뉴라이트 경제학자들이 별다른 말을 안하던데요.

로쟈 2009-01-13 01:25   좋아요 0 | URL
특이하게도 강원대에 (신)자유주의 학풍이 있습니다. 신중섭 교수 같은 양반도 있고...

비로그인 2009-01-13 00:15   좋아요 0 | URL
"위기의 본질이 정부의 지나친 개입에 있다는 '신자유주의론자'의 시각"은 정말 놀랍군요. 아무리 보아도 반론을 위한 반론 제기, 그 이상으로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정치경제에 대한 제 상식이 얕은 수준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만 보더라도 금융과 기업에 대한 정부의 신자유주의적인 방임 정책을 자성하고 비판하는 소리가 높지요. 미국 정치의 본질이 금권 정치임을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 현재의 위기를 초래한 것이 그릇된 정책이라면, 이 그릇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힘을 행사한 것이 금권이고, 이 금권이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지를 안다면, 이 금권의 출처가 되는 거대 기업이 정부를 비판한다는 것은 제 꼬리를 무는 격이 아닐까요? 의식 있는 미국 국민의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난은 대기업, 특히 초국적 거대 기업에 대한 비난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한국의 실정에 대한 직접적인 포섭 기제로 적용하여 설명할 수는 없겠지요. 정부의 규제가 너무 강력해서 불행을 초래했다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사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이 규제의 제정과 적용이 편파적이었고, 이 편파적인 규제의 밝은 편에 선 무리가 힘 있는 쪽이고 어두운 편에 선 무리가 금융권을 비롯한 피해자들이라면 말입니다.

그냥 제 관찰과 소견일 뿐입니다. 극구 주장할 것을 못되지요. 다만 신자유주의 자체에 아무런 잘못이 없으며, 가야 할 길인듯 하는 경향신문의 뒤의 사설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기가 힘이 듭니다. 로쟈님 말씀대로 참고나 할까요...

로쟈 2009-01-13 01:27   좋아요 0 | URL
경제학계에서도 소수의견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아랫글은 '사설'은 아닙니다. 경향에서는 두 가지 상반되는 시각을 소개하고 있을 뿐이예요...

비로그인 2009-01-13 04:47   좋아요 0 | URL
네, 그렇군요.

PhEAV 2009-01-13 00:2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시장의 정부개입에 대해 쓴소리를 해야 할 때인 것입니~! (변사풍으로)

로쟈 2009-01-13 01:2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시장의 정부개입은 왜들 자연스럽게 여기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