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문학기행 3일차 일정은 작품 <돈키호테>의 고장 탐사다. 비가 잠시 흩뿌리는 마드리드를 뒤로 하고 먼저 엘 토보소로 향했다. 두시간쯤 소요되는 거리. 마드리드의 시경계를 벗어나니 예의 너른 들판이 펼쳐졌다. <돈키호테>의 독자라면 예상할 수 있지만 엘 토보소라는 작은 농촌마을의 주인공은 둘시네아다.

우락부락한 농사꾼처녀를 돈키호테는 그가 숭배하는 귀족아가씨로 변모시키고 ‘엘 토보소의 둘시네아‘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렇게하여 얼핏 ‘돈키호테의 여인‘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지만 실제 둘시네아는 <돈키호테>에 등장하지 않으며 돈키호테와의 실제 만남도 일어나지 않는다(<돈키호테>를 영화화할 때의 맹점이다). 엘 토보소에는 그 ‘둘시네아의 집‘이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박물관으로 들어서는 작은 광장에는 돈키호테와 둘시네아의 철로 된 조각상이 미리 손님을 맞이했다.

둘시네아 집은 민속박물관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정작 작품속 돈키호테나 둘시네아와의 연관성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마치 둘시네아가 작품에서 눈에 띄지 않는 것처럼. 대신 박물관 안쪽 마당에서 돈키호테의 세계문학사적 의의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보기엔 스페인 국민문학으로서 <돈키호테>가 갖는 의의와 세계문학으로서 의의는 같지 않기에 그 차이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했다.더불어 세르반테스에서 도스토옙스키까지의 근대소설사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엘 토보소 다음 행선지는 돈키호테가 기사 서임을 받는 여관(돈키호테는 성으로 생각하고 여관주인을 성주로 오인하지만)을 찾아 푸에르토 라피세를 찾는 것이었는데 예상치못하게도 문을 열지 않아서 문틈으로 엿볼 수 있었다. 대신 풍차의 마을 콘수에그라에서 제법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사진으로만 봤을 때보다 훨씬 근사한 풍광을 보여주었고 바람도 세게 불어서 마치 스페인의 ‘폭풍의 언덕‘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로소 돈키호테 공간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풍차마을에서 현지식으로 점심식사. 우리는 이제 세비야로 향한다. 절반쯤 와서 들른 휴게소의 이정표를 보니 마드리드가 왼편이고 코르도바가 오른편이다. 세비야는 안달루시아의 주도이자 안달루시아 여정의 첫 도시다(이어서 론다와 그라나다를 방문한다). 카스티야에서 안달루시아로. 스페인문학기행도 이제 중반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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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4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틀 묵는 일정을 첫날밤과 마지막밤으로 나누는 건 우습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어제가 마드리드의 첫날밤었고 오늘은 마지막밤이다. 내일밤은 세비야에서 묵게 된다. 마드리드에 도착하자 마자 세르반테스의 생가박물관을 찾아 알칼라 데 에나레스 방문하기가 어제의 핵심 일정이었다면 오늘은 세고비아를 방문하고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와 (피곤해서 잠이 들어다가 이른아침에 일어나서 이어서 적는다) 로페 데 배가 박물관에 들르고 스페인광장의 세르반테스 동상까지 도심 워킹투어를 진행하는 일정이다(모두 어제의 일정이 되었다).

세고비아는 역사 유적(로마 수로교)과 중세 성(일명 백설공주의 성으로 불리는 알카사르), 그리고 대성당(후기고딕양식의 대표건축물)이 있는 도시다(기타리스트 세고비아와 무관하다). 둘러본 순서는 수로교, 대성당, 알카사르 순이었다. 오전일정을 마치고 수로교 광장의 전통식당에서 점심식사로 꼬치니오(새끼돼지구이)를 먹었다. 첫날저녁 양고기구이에 이어서 스페인의 육식여행 시리즈(이제 돼지 뒷다리 하몽이 남은 것인가?).

세고비아는 마드리드에서 북쪽으로 1시간반쯤 거리다. 점심식사 후에 마드리드로 돌아와서 들른 곳이 ‘죽기 전에 봐야 할 세계역사유적 1001‘에도 들어가 있는 로페 데 베가의 집. 스페인문학기행 강의를 준비하면서 그런 사실을 알게 돼 이번 일정에 포함했다. 내가 참고한 내용은 이렇다.

˝로페 데 베가(1562~1635)는 스페인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하나다. 바로크 시대의 극작가이자 시인이었던 그는 매력적인 희극 작품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놀라우리만치 많은 작품을 집필했는데, 살아생전 1,500~2,500편에 달하는 장편 희곡에 단편 희곡과 시까지 썼다고 전해진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사랑과 명예 사이의 갈등을 그린 공통적인 테마를 다루며, 아마 가장 유명한 작품은 <푸엔테 오베후나>일 것이다. 작가는 마드리드의 그리 뛰어나지 않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삶의 대부분을 이 도시에서 보냈다. 1610~1635년까지 그의 가족이 거주했던 집은 박물관으로 보존되어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남긴 많은 진품 기념물을 소장하고 있다.

로페 데 베가가 1610년 이 집으로 옮겨 왔을 때, 그의 문학적 명성은 이미 절정에 달해 있었다. 열두 살이라는 나이에 첫 희곡을 쓴 이후 그는 육군에 종사하고 스페인 아르마다 함대에서 영국과 싸웠으며, 한 유명한 극장주의 딸과 부정한 연애 사건을 벌여 8년간 마드리드에서 추방당하기까지 했다. 1600년 로페 데 베가는 두 번째 아내인 후아나 데 구아르도와 결혼했으나, 그가 종종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두 사람의 관계는 순탄하지 못했다. 아내가 죽은 이후 그는 1614년에 성직자가 되었으나, 여전히 연애 생활에는 열심이었다.

로페 데 베가는 아마 스페인 작가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을 인물인, <돈 키호테>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1547~1616)와 같은 거리에 살았다. 이 거리에는 세르반테스의 이름이 붙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로페 데 베가라는 이름이 붙은 거리는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다. ‘로페 데 베가의 집‘은 스페인이 누렸던 황금시대에 전형적으로 볼 수 있었던 마드리드의 가정집을 충실하게 재창조해 낸 공간이다. 정원은 그의 시 한 편에 언급된 모습 그대로 다시 만들어졌고, 과일 나무 몇 그루는 그가 살아 있던 시대로부터 유래하는 오래된 것들이다. 로페 데 베가의 집은 스페인이 낳은 가장 훌륭한 작가 중 한 사람에게 바치는 찬사라 할 수 있다.˝

로페의 집에서 일행은 두 팀으로 나뉘어 현장가이드의 설명을 가이드의 통역을 통해 들었다. 연애사로도 유명한 작가이지만 로페의 연애스캔들은 자세히 들려주지 않았는데 아마도 너무 길고 복잡한 이야기여서이리라(관람 전후로 내가 보탠 건 연애사 아니라 로페와 세르반테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시와 극작에 있어서 동시대의 로페는 세르반테스 부러움을 살 만큼 천재적 재능의 작가였다. 다만 세르반테스는 근대소설의 출발점이 되는 걸작을 써냄으로써 사후에 더 큰 명성을 얻게 된다)

로페의 집 방문을 마치고 선택에 따라 절반은 프라도미술관으로, 나머지은 도심투어를 진행했다. 당초 프라도 미술관 관람 대신에 세고비아 투어를 선택한 거였는데 원하시는 분들은 둘다 가볼 수 있게 된 것(게다가 엊저녁은 저녁6-8시에 무료관람이었다).

미술관에 가신 분들을 제외하고 남은 일행은 마드리드 도심의 솔광장부터 마요르광장. 산미구엘광장, 그리고 왕궁을 거쳐서 스페인광장까지 워킹투어. 사실 숙소인 호텔(호텔마드리드플라자)이 스페인광장역 근처에 있어서 스페인광장까지는 5분거리다. 5분 걸어가면 되는 곳에 도착하기까지 하루해가 걸려서 어둠이 내릴 무렵에야 우리는 동상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돈키호테와 산초의 여정만큼 빡빡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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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비행 끝에 마드리드에 도착해서(인천공항을 떠나서 20시간이 넘어서야 마드리드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본격적인 문학기행에 나섰다. 스페인문학기행의 첫 일정은 고향 알칼라 데 에나레스의 생가 박물관을 찾는 일. 연보에는 마드리드 근교라고 해서 작은 마을인 줄 알았는데 인구 20만의 도시다(사실 직접 보고도 믿기진 않는다. 마드리드주에서 마드리드 다음으로 큰 도시라는데 비교 자체가 무리라서. 나는 인구 2만의 도시 정도로 생각했었다).

생가 박물관은 2층 건물인데 세르반테스 시대의 가옥 구조와 세간을 갖춰놓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번듯했던 괴테나 셰익스피어와 비교할 수준은 아니었다. 세르반테스가 스페인의 문호로 추앙된 것도 괴테와 세익스피어에 견주어 훨씬 나중이기도 했고(미겔 우나무노와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크게 기여했다).

알칼라 데 에나레스 한복판에는 세르반테스 광장이 있고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마드리드의 대형 동상에 비하면 귀여워보이는 수준. 알칼라대학과 주변을 둘러보고 자유시간을 가졌다. 스페인은 만성절 휴일이라 도시 전체가 한가해보였는데 늦은 오후가 되니 조금씩 활기를 띤다. 이제 저녁을 먹으러 이동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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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공항에서 환승대기중이다. 두바이 도착이 40분가량 늦어져 대기시간은 그만큼 줄었다. 세계적인 도시라지만 두바이의 모습이라곤 면세점과 게이트, 그리고 간유리창 바깥으로 흐리게 보이는 공항풍경밖에 보지 못한다(아라비아반도에 또 올 일이 있을까?). 기내에서 두바이공항은 ‘조용한 공항‘으로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는다는 방송을 들었는데 그런 이유인지 정말 조용한 것 같다. 환승객들의 담소 소리만 조곤조곤하게 들린다.

내친김에 해보는 생각. 아랍문학기행도 가능할까? 당장은 어렵지 않을까 싶다.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건, 이란문학과 이집트문학의 몇몇 작품뿐이어서. 이슬람권이라고 하면 파키스탄 작가들도 조금 소개되었다. 사우디문학?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 소개가 안된 것이 아니라 근대소설 자체가 이슬람권에서는 발달하지 않았다고 읽은 것 같다. 다른 장르와 달리 근대소설은 문학시장과 독자층의 형성을 조건으로 한다. 멍석이 깔려야 발달할 수 있는 것. 세르반테스 <돈키호테>가 근대소설의 효시라고 할 때는 그런 점도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돈키호테>는 출간시 꽤 팔린 책이다(3만부 이상이던가?). 비록 세르반테스 자신이 재미를 본 건 아니지만.

곧 두바이를 떠난다. 마드리드행은 만석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세르반테스의 나라까지는 아직도 8시간 넘게 더 날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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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an 2022-11-01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페인 문학기행 건강하게 잘 다녀오십시요~
두바이는 저도 몇 번 가봤는데 도심에만 있었어서 그런지 아랍이라는 느낌을 별로 받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이란에서는 거리부터 옷차림, 가게의 가격표시까지 확실히 아랍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로쟈 2022-11-03 05: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슬람권 항공편으로 아랍어 방송을 들으며 스페인에 입국하는게 나름대론 말이 되는것 같았어요. 이슬람 스페인의 역사를 한번더 생각하게 해주어서.~
 

탑승을 10여분 남겨놓고 있다. 막간에 스페인사 책 세 권. 가장 최근에 나온 <스페인의 역사>(브라이언 캐틀러스 저)는 ‘8세기부터 17세기까지의 신앙의 왕국들‘이 부제인데 원제는 ‘신앙의 왕국들: 새로 쓴 이슬람 스페인사‘다.

˝8세기 초 무슬림들이 이베리아반도에 처음 들어온 때부터 약 900년 후 17세기 초 완전히 쫓겨나갈 때까지 스페인, 특히 알 안달루스에서 일어난 역사를 새로운 시각과 관점 아래 서술한다.˝

스페인문학과 관련해서는 주로 레콩키스타(재정복) 이후 근대 스페인사에 관심을 갖고 있어서 책은 구입만 해두었는데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을 가보려니 스페인의 종교문제에도 주의를 두게 된다. <돈키호테>에서도 기독교로 개종한 이슬람인(모리스코) 얘기가 많이 나온다. 두 종교, 두 문화의 혼종성이 스페인의 특징인데(더불어 스페인의 강점이 될 수도 있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카를로스 1세를 포함한 스페인왕들은 강력한 기독교(가톨릭) 순혈주의를 고집하면서 이슬람교와 유대교 등에 매우 배타적인 태도를 취했고 이것이 결국은 스페인의 쇠락을 가져온다(이 종교 문제를 ‘스페인 문제‘라고 부르고 싶다). 나중에 시간이 날 때 ‘이슬람 스페인사‘에 대해 더 읽어봐야겠다.

나머지 두권은 영국 옥스퍼드대의 레이먼드 카 등이 쓴 <스페인사>와 존 엘리엇의 <스페인 제국사 1469-1716>이다. <스페인사>는 교과서적 통사이고,절판된 <스페인 제국사>는 스페인 전성기의 역사. <스페인 제국사>는 <스페인의 역사>에 잇대어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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