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의 <과거와 미래 사이>가 다시 나왔다. '정치사상에 관한 여덞가지 철학연습'이 부제. 2005년에 나왔던 번역본이 재간된 것이니 18년만이다(요즘 '다시 나온 책'들로 세월을 가늠한다). 내겐 아렌트 입문서 가운데 하나였던 <정치의 약속>도 다시 나오면 좋을 듯싶다. 2007년에 나왔던 책이다. 















책의 출간이 계시는 아니라도 계기는 된다. 책이 나온 김에 일정을 잡거나 강의도 계획해보는 것이다. 부제대로 '정치사상 연습 8강' 같은. 당초 1954년에 나온 초판에는 여섯 편의 에세이가 수록됐었으나 나중에 증보되면서 '여덟 가지 철학연습'이 되었다. 번역본에도 원서 개정판에 실린 제롬 콘(아렌트의 제자)의 서문이 실려 있다. 


미국에서 한나 아렌트 붐(재평가)이 이루어지면서 국내에서도 여러 전공자가 앞다투어 연구저작과 번역본을 펴내오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으론 김선욱, 서유경, 홍원표 교수를 꼽을 수 있다. 이분들의 책만 하더라도 너무 많아서 한번에 다루기 어려울 정도. 


 














대표작을 몇권씩만 꼽자면, 김선욱 교수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공화국의 위기>를 옮겼고, <한나 아렌트와 차 한 잔> 등 다수의 안내서를 출간했다. 















홍원표 교수는 <혁명론>,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을 옮겼고, 입문서로 <아렌트>를 펴냈다. 
















모두 한길사에서 나왔는데, 이즘에는 독자적으로 '홍원표의 한나 아렌트 시리즈'를 따로 내고 있다(영브륄의 아렌트 전기가 이 시리즈로 다시 나왔다). 
















그리고 <과거의 미래 사이>를 옮긴 서유경 교수는 아렌트의 박사학위논문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책임과 판단>, 그리고 안내서로 <아렌트 읽기>를 옮겼다. 


여러 전공자가 경합적으로 번역서를 펴내는 건 독자로서 고무적인 일이지만, 핵심개념(용어)들이 각기 다르게 번역되는 건 골치아픈 일이다(한국어판 칸트전집 번역이 대표적이다). 생산적인 경햡이 될 수 있지만, 독자의 부담은 그만큼 커진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도 아렌트의 저작에서 보통 정치와의 대비관계 속에서 '진리'로 옮겨지는 'truth'가 '진실'로 옮겨져서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7장의 제목이 '진실과 정치'다).


"지금껏 그 누구도 진실과 정치가 서로 좋지 않은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고..."(403쪽)


비록 truth가 우리말로는 진실과 진리, 둘다로 옮겨지지만, 이 경우 진실과 진리의 의미차는 크다. 


(1)진실과 정치는 사이가 좋지 않다

(2)진리와 정치는 사이가 좋지 않다

















과연 어느 것이 아렌트의 견해인가. 아렌트 전공자들 사이에도 이견이 있는 모양인데, 나로선 김선욱 교수의 견해에 따라 truth가 '진리'로 옮겨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리를 정치와 무관하다고 보는 게, 그래서 철학을 정치에서 분리하고자 하는 게 아렌트 정치이론이기 때문이다(아렌트는 '정치와 철학'의 결합으로서의 '정치철학'에 반대한다). 넘겨짚자면, 아렌트 전공자들끼리도 사이가 좋지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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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그렇게 적었지만, 정확히는 그렇지 않다. 이번에 대표적 빅히스토리언들인 신시아 브러운과 데이비드 크리스천 등의 <빅히스토리>가 나와서 곧바로 개정판이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확인해보니 특이하게도 제목이 다르다. '빅히스토리'를 타이틀로 내건 책이 많아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일단 3인 공저의 <빅히스토리>는 2014년작으로 이번에 처음 번역되었다 신시아 브라운의 <세상이 궁금할 때 빅히스토리>는 2017년작으로 이 역시도 처음 번역되었다. 
















내게 기시감을 느끼게 해준 <빅히스토리>는 2013년에 처음 번역됐던 신시아 브라운의 <빅히스토리>. 출판사를 바꿔가며 두 번 더 출간된 이 책은 신시아 브라운의 <빅히스토리>는 2007년작 원서를 옮긴 것으로 '빅뱅에서 현재까지'가 부제다. 반면 크리스천과 공저한 이번 <빅히스토리>는 '낫씽과 에브리씽 사이'가 부제다. 
















빅히스토리 연구의 창시자로도 불리는 데이비드 크리스천의 책도 앞서 여럿 출간되었다. <빅히스토리>가 강연이고, <시간의 지도>가 입문서로 모두 원저가 이번에 나온 <빅히스토리>보다 앞서 나왔다(크리스천은 옥스퍼드 세계사의 편자 중 한명이기도 하다). 


'빅히스토리'에 관해서는 예전에 한번 주제서평에서 다룬 바 있다. 새로운 역사서로 주목받을 때였는데, 그때도 나는 일부 새로운 시각에도 불구하고 좀 미심쩍다는 느낌을 가졌는데(역사의 시간적 스케일을 확장하게 되면 인류사, 특히 현대사는 그만큼 비중이 줄어들게 된다) 그런 의구심이 타당한지 한번더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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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악에서 벗어나기>가 들어왔나 싶어서 동네서점에 갔다('지역서점'이란 말이 더 정확할 듯싶지만, 편의상 동네서점이라고 부른다). 다시 확인해보니 예판도서. 루틴대로 인문/과학 코너를 둘러보다가(동네서점의 장점은 한눈에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분야 신간으로 나온 책들에 눈길이 갔다. 이주의 픽은 세 권의 세계사다. 동네서점 픽이라고 해도 되겠다(연휴기간에는 배송이 안되기에 동네서점을 이용함직하다). 
















먼저, 이번에 처음 소개되는 페트라스 남매의 <몸으로 읽는 세계사>. '사소한 몸에 숨겨진 독특하고 거대한 문명의 역사'가 우리말 부제다. 눈, 귀, 코 등을 담은 표지가 보여주는 대로 우리 몸 각 부분과 관련한 역사적 기억과 사례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이 책의 저자인 페트라스 남매는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낮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수학자 파스칼의 의문에 답을 구하고자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몸’을 통해 바라본 역사 속에서 과거의 이념이나 사상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얻어냈다."

















두번째 책의 저자도 이번에 처음 소개된다(그렇지만 영국에서는 '시간여행자의 가아드' 시리즈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저자다). 이언 모티머의 <변화의 세기>. 제목에는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데, 11세가부터 20세기까지 천년의 역사를 훑는 책다. 그래서 부제가 '서양 천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이다.  


"<변화의 세기>는 지난 천 년간의 서구 사회를 ‘변화’라는 키워드로 해석하는 독특한 역사책이다. 11세기부터 20세기까지 각 세기별 가장 중요한 변화들을 제시하고 변화의 주체가 되는 인물들을 꼽는다. 지난 천 년간, 서양을 뒤흔든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세계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좋은 보교재가 되겠다. 

















세번째 책도 영국의 대중 역사가라는 그레그 제너의 <경이로운 역사 콘서트>. '역사가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50'이란 부제대로 일반 대중의 질문 50가지 답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제너의 책은 앞서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가 번역됐지만 절판됐다). 


"<경이로운 역사 콘서트>의 저자 그레그 제너는 역사와 관련된 영화, 다큐멘터리, TV 시리즈 제작에 참여한 대중 역사가로 사람들에게 직접 받은 50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누구나 궁금해 할 법한 질문부터 대놓고 물어보기 민망했던 질문까지, 저자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흥미진진하고 노골적인 이야기를 풍부한 지식과 유머러스한 문체로 풀어내고 있다."


고르고 보니 이 역시도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책이다. 부담 없이 아무 장이나 펼쳐서 읽을 수 있으므로. 성인 독자는 두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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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수상작가 어니스트 베커(1924-1974)의 책이 한권 더 나왔다. <악에서 벗어나기>(1975). 대표작 <죽음의 부정>(1973)과 나란히 놓을 만하다. 확인해보니 10권의 저작을 남겼는데, <죽음의 부정>과 <악에서 벗어나기>가 마지막 두 권이다.

˝1974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인 <죽음의 부정>의 후속편에서, 문화인류학자 어니스트 베커는 죽음을 초월한 불멸에 대한 추구, 완전한 세계에 대한 열망 속에서 만들어지는 삶의 의미나 영웅주의 같은 자기초월의 문화적 상징 장치들이 인간악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문화는 영웅적 죽음 부정의 양식이며, 각 사회는 악과 죽음에 대한 승리를 약속하는 영웅 시스템이다. 불멸을 가져다줄 영웅의 모습은 제사장과 왕, 정치지도자를 거쳐 국가와 자본, 이데올로기에 이르기까지 형태를 바꿔가며 가지를 뻗어나간다. 죽음에 대항한 승리의 가능성에 관한 ‘거짓말’인 문화적 기제로서의 영웅 시스템을 만든 대가는 폭정과 전쟁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타자의 생명을 희생으로 삼아 결국 인간 자신뿐 아니라 자연과 지구에도 크나큰 해악을 불러온다.˝

매우 공감할 만한 탁견이다(존 그레이의 <불멸화 위원회>를 떠올리게 한다). 악의 기원에 관한 탐구로서 필독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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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낯선 사람들과의 불화

5년 전 페이퍼다. 조금 읽다가 멈춘 책인데(이글턴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정독을 요한다) 얼마전에 눈에 띄어서 빼놓았다(독서도 운이 좌우한다). 쇼펜하우어와 니체 강의도 계획할 겸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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