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인에 실은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 우석훈의 <괴물의 탄생>(개마고원, 2008)에 대한 것이다. 몇몇 책을 두고서 내내 저울질하다가 결국은 지난주 목요일에 배송받은 이 책을 부랴부랴 읽고서 작성한 글이다. 분량상 요지만을 나대로 간추렸는데, 읽어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훨씬 더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진단서이자 고발장이다. 저자 자신의 표현을 빌면 '한국인을 위한 사회경제학'이나 '우석훈식으로 본 한국경제론'. 그의 '한국경제대안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지만 나는 맨 처음으로 읽는 게 전체 시리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결론을 미리 알면 싱거우려나)...

시사IN(08. 10. 04) 대한민국 경제 살릴 '위대한 선택'은?

‘희망’ 대신에 ‘명랑’을 말하는 경제학자 우석훈의 <괴물의 탄생>(개마고원 펴냄)이 출간됐다. 작년 여름에 나온 <88만원 세대>를 필두로 해 그가 쏟아낸 ‘한국경제대안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자 대단원을 장식하는 책이다. “하나의 불행이 끝나면 더 큰 불행이 온다”는 저자의 상황인식을 전제로 썼기에 이 시리즈에는 ‘공포 경제학’이란 별칭도 붙었다. 요즘 같아선 실감나는 공포다. 

저자가 보기에 ‘경제 대통령’ 이명박의 재임기간에 경제위기가 오지 않을 가능성은 0%이다. 그리고 만약 일본이 1990년대 겪은 것과 같은 장기 불황을 겪는다면 한국이 파시즘을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현재도 빈부격차는 점점 벌어지면서 주거공간에서부터 교육환경에 이르기까지 상류층과 하류층의 삶은 차츰 공고하게 분리돼 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듯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일반화하면서 탄생하는 것이 홉스가 말하는 ‘레비아탄’, 곧 ‘괴물’이다. 이 괴물의 다른 이름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자본주의’이다.

한국사회에서 이 괴물의 탄생은 2007년 ‘경제’란 구호와 함께 국민들이 이명박을 선택함으로써 빚어진 일이 아니다. 우석훈의 진단으로는 2004년 혹은 2005년 사이에 정부가 신자유주의에 투항함으로써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한국경제 자체는 지난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 “부자 되세요”란 덕담이 오가던 시기에 이미 붕괴하기 시작했다. 한국인이 ‘경제’라는 한마디밖에 모르는 좀비로 변해감과 동시에 한국의 국민경제는 죽은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늦게라도 돌이키지 못한다면, 이제 우리에게 도래할 가장 개연성 높은 미래는 중남미식 저성장 비효율 국가이고,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괴물로서의 ‘MB파시즘’이다.

이제라도 정상적인 국가로의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우석훈은 비록 상황은 절박하지만 그래도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 좁은 길”이 살짝 열려 있다며 명랑하게 충고해준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의 요체는 ‘제3부문’이다. 경제학에서 제1부문이란 기업을 말한다. 그리고 제2부문이 가리키는 건 정부 혹은 국가라는 공공 부문이다. 저자의 도식에 따르면, 이 제2부문이 제1부문을 자기 안에 포함시키는 것이 사회주의(혹은 ‘국가독점 자본주의’)이며, 거꾸로 제1부문이 오히려 정부를 장악하거나 해체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이다.

흔히 한국사회에서 좌파, 우파라는 이념적 견해는 이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어느 쪽을 지지하는가에 따라서 정해졌다. 하지만 ‘명랑 좌파’ 우석훈의 대안은 제3부문이다. 이것은 국가나 대기업에 환원되지 않는 또 다른 부문인데, 경제학에서도 잘 이론화되어 있지 않기에 ‘사회적 경제’ ‘증여의 경제’ ‘연대의 경제’ 따위로 불린다. 경제학자로서 우석훈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국민소득 3만 달러에서 4만 달러 사이의 선진국 국민경제란 바로 제3부문이 활성화돼 있는 국민경제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시급한 일은 이 제3부문을 빠른 시일 내에 만들어내고 강화하는 것이다. 

이 제3부문을 형성하는 경로에는 대략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종교기관 같은 전통적인 사회기관이 생활협동조합의 ‘구심점’이 되어 제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둘째는 미국에서 주로 그런 것처럼 대기업들이 공적이면서 사회적인 일에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금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스웨덴이나 스위스 혹은 독일의 경우처럼 정부가 일정한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제3부문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비로소 장기적인 평화를 담보하는 평화경제, 그리고 국민경제의 생태학적 전환이 가능해지리라고 우석훈은 전망한다. 그러한 전망은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을까? ‘위대한 선택’을 통해서이다. 저자가 힘주어 강조하는 위대한 선택이란 국민들이 경제에 대한 취향과 사회적 행동을 자신의 경제적 이해에 따라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자녀의 수만큼 물려줄 30평짜리 아파트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 집이 없거나 아파트 한 채 정도 가진 사람들의 생각과 선택, 대한민국의 미래는 거기에 달려 있다.

08. 09. 29.

P.S. 지면기사에 맞게 초고의 몇몇 대목을 수정했다. 하지만 마지막 문단의 '30평짜리 아파트'는 그대로 두었다. 책에 그렇게 적혀 있을 뿐더러 지면기사에서처럼 99m2라고 적는 것이 좀 어색해서다(나는 그런 식의 도량형 통일을 '선진화'라고 부르는 것이 못마땅하다). 개인적으로 <괴물의 탄생>을 지난 여름에 나온 <촌놈들의 제국주의>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잔뜩 우울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을 재미있다고 하면 어폐가 있지만 'May humor be with you...'라고 저자가 명랑하게 기원하고 있기도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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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다 보니 낯익은 유명인사들의 부음도 자주 접하게 된다. 현지시간으로는 엊그제(26일)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 배우 폴 뉴먼의 경우도 내겐 '낯익은' 유명인사다. 부음기사에서 그가 1925년생이었다는 걸 알고는 잠시 놀랐다. '멋진 악당' 혹은 '멋진 중년'을 상징하는 배우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기억에는 많이 잡아줘도 60대에서 멈춘 배우이건만). 그의 명복을 빌면서 부음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 1969년 만들어진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 출연한 폴 뉴먼(왼쪽)과 로버트 레드포드

한겨레(08. 09. 29) 행동하는 ‘멋진 악당’ 천상의 무대로

깊고 푸른 눈을 가진 인자한 얼굴의 노 신사는 담담하게 말한다. “이봐 마이클. 눈을 크게 뜨고 보게! 이것이 우리가 선택한 인생이고, 끌고 온 인생이야. 단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중 누구도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라는 거지.”(<로드 투 퍼디션> 중에서)

26일(현지시각) 숨진 할리우드의 노 신사 폴 뉴먼은 50여 년의 연기 인생 속에서 늘 세계와 불화하는 ‘악당’이자 ‘반 영웅’이었다. 1963년 <허드>에서 자신의 윤택한 삶을 위해 병든 소를 파는 이중적인 인간 ‘허드’를 연기했고, 67년 <폭력탈옥>에서는 삐딱하고 쿨한 자기 파괴적인 죄수 ‘루크’를 맡았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함께 주연을 맡은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는 유쾌한 은행털이 강도 ‘부치 캐시디’로 열연을 펼쳤다.

2002년, <로드 투 퍼디션>에서 77살의 노 배우는 젊은 톰 행크스를 앞에 놓고 1930년대 시카고 암흑가의 냉혈한 보스 ‘존 루니’를 섬뜩하게 재현해 낸다. <뉴욕타임즈>는 27일 인터넷판에서 그를 “어떤 배우도 그만큼 불완전한 인간을 많이 연기하진 못했다”고 평했다.

뉴먼은 스크린 바깥에서도 인상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열정적으로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으며, 인권을 적극 옹호했다. 그래서 리처드 닉슨의 ‘블랙리스트’(enemies list)에 오르기도 했는데, 뉴먼을 이를 두고 자주 “내가 이룬 가장 자랑스런 성취”라고 자부심을 보였다.

그는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유일한 아들 스콧이 78년 알콜과 약물 과용으로 숨지자 ‘스콧 뉴먼 재단’을 설립하고 약물 반대 영화들을 위한 모금 활동을 벌였다. 또 1982년 만든 ‘뉴먼즈 오운’이라는 식품회사가 크게 성공하자, 여기서 번 수익금 2억달러를 자선사업을 위해 사용했다. 암과 같은 큰 질병에 걸린 아이들을 위해 여름 캠프도 만들었으며, 항암 치료 탓에 머리털이 빠진 아이들을 위해 카우보이 모자를 직접 골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뉴먼은 또 미국 자동차 경주대회를 여러 번 석권한 훌륭한 카레이서기도 했다.

뉴먼은 열정적인 배우였고, 행동하는 양심이었으며, 무엇보다 매우 유쾌한 사람이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부부는 성명을 내어 “미국의 아이콘이자 박애주의자, 어린이들을 위한 챔피언이었다”고 그를 기렸다.(길윤형기자)

 

경향신문(08. 09. 29) [여적]폴 뉴먼

영화사상 최고의 ‘라스트 신’을 꼽으라면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내일을 향해 쏴라’(원제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를 우선 떠올리게 된다. 1969년 개봉된 이 영화는 1890년대 전설적 갱의 실화를 토대로 한 것이다. 현금수송 열차와 은행을 터는 강도 행각을 벌이면서도 인간적 냄새를 풍기는 두 젊은이는 탄광촌 은신처에서 군대에 포위되자 ‘이번엔 호주로 가자’고 다짐하며 권총을 치켜들고 뛰쳐나온다. 순간 화면이 정지되고 빗발처럼 쏟아지는 총탄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비극적 결말의 갱 영화이지만 인간미와 유머 감각이 돋보인다.

폴 뉴먼이 암 투병 끝에 83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다. ‘스팅’ ‘상처뿐인 영광’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허슬러’ ‘컬러 오브 머니’ 등 숱한 화제작으로 이름을 떨친 그의 강렬하고도 우수에 찬 푸른 눈은 반항적 젊은이, 차가운 승부사, 정의로운 중년, 관조적인 노년 등 다양한 캐릭터를 낳으며 세계인들의 심금을 흔들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의 뉴먼은 더욱 멋진 매력의 소유자다. 무엇보다 그는 ‘초현실적 기업 모델’을 창시한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1982년 설립한 ‘뉴먼즈 오운’이 그것이다. 인공조미료나 방부제가 없는 친환경 드레싱을 제조·판매하는 이 회사는 초기 자본금 1만2000달러에 첫해 수익만 92만달러를 올리는 대성공을 거뒀지만, 다음해 수익금 100%를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뉴먼은 단 한 푼의 월급도 받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최근까지 미국과 해외에 기부한 금액은 2억2000만달러(약 2200억원). 이밖에도 난치병 아이들을 위한 산골짜기 캠프를 미국 31개주와 해외 28개국에 건설하고 가난한 예술가들을 돕기 위한 레스토랑 경영에 나서는 등 나눔과 베풂의 삶에 정열을 바쳤다.

그는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우리처럼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감세는 범죄와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지금도 충분히 사치스럽게 살고 있다.” “나는 무척 운이 좋았다. 행운을 타고난 사람들은 그들보다 불운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심을 갖는 기업이 늘고 있다지만, 뉴먼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투철한 원칙과 신념을 가진 기업인들이 얼마나 될까.(송충식 논설실장)

08. 09. 28.

P.S. '폴 뉴먼'하면 <내일을 향해 쏴라>나 <스팅> 같은 영화를 단박에 떠올릴 수 있을 터인데, 개인적으론 장년의 그가 신예 톰 크루즈와 주연했던 영화 <컬러 오브 머니>(1986)의 인상도 강하다. 극장에서 폴 뉴먼을 본 최초의 영화였던 듯하다. 폴 뉴먼이란 배우의 존재감을 대형 스크린에서 맛보게 해준 영화(http://www.youtube.com/watch?v=U9rGDYjVr0c). 감독은 마틴 스코시즈였다. 그러고 보니 그맘때는 나도 당구를 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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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9-28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삶을 살단 간 배우군요. '우리처럼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감세는 범죄와 다를 바 없다'라는 구절이 콕! 박히네요.

로쟈 2008-09-28 22:44   좋아요 0 | URL
네, 있는 사람들이 탐욕만 버린다면 좀 멋지게 사는 건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요...

조선인 2008-09-29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이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ㅠ.ㅠ

로쟈 2008-09-29 22:33   좋아요 0 | URL
젊었을 때는 톰 크루즈보다 더 멋있더군요...

비연 2008-09-29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돌아가셨군요. 명복을 빕니다. 로쟈님의 브리핑으로 그의 생애를 한번 더 돌아보게 되네요. 이제, 그 옛날 제 마음에 추억으로 남겨진 명장면 속의 배우들이 하나둘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로쟈 2008-09-29 22:32   좋아요 0 | URL
한 세대가 가는 거 같습니다...

sophia49 2008-10-16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제 블로그에 담아갑니다.
올려주신 폴 뉴먼의 이야기...넘 좋아요.

로쟈 2008-10-16 21:18   좋아요 0 | URL
네, 이건 제가 책사랑에 안 옮겨놓았던가요?..
 

대부분 그렇겠지만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하는 책이 일치하는 건 아니다. 지난주 신간 중에 앤드류 달비의 <언어의 종말>(작가정신, 2008) 같은 책은 단박에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올려두었지만(물론 그렇다고 억지로 읽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아프리카 !쿵족 여성의 삶을 다룬 <니사>(삼인출판사, 2008)나 교양과학서 <보살핌>(사이언스북스, 2008)은 '읽고 싶은 책'이지만 당장에는 여유를 갖기는 어려운 책이다(하여 '그림의 책'이다). 두 책의 공통점이라면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본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될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리뷰들을 옮겨놓고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를 갈면서까지는 아니겠으나 속은 조금 쓰리다...

한국일보(08. 09. 27) 아프리카 '!쿵'族 여인들이 사는법

"대개 일생 동안 두 번 이상 결혼하며, 적어도 한 번은 장기간의 결혼을 경험한다. 이혼으로 결혼이 깨지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이혼은 보통 결혼 첫 몇년 사이 아이가 생기기 이전에 여성 쪽 주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187쪽)

이혼과 동거가 다반사처럼 돼가는 이곳 이야기가 아니다.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도 오지인 칼리하리 사막 북부의 흑인 부족 '!쿵' 족의 생활을 손금 보듯 기록한 인류학의 고전 <니사> 중 한 구절이다. '!쿵'이란 "쯧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를 나타내는 음성기호(!)를 사용해 표현한 아프리카의 독특한 발성법이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이혼이 자유로운 !쿵족이지만 첫 아이를 낳은 뒤로는 남은 일생동안 자녀를 키우는 일에 몰두한다.

이 책은 '서구 문명'이라는 형식은 세계의 극히 작은 일부라는 사실을 웅변하는 인류학적 연구의 보고다. 서구 문명과 전혀 다른 세계를, 현지인들의 시각으로 올곧게 재현한다는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그들에게도 문화의 형식이 있고, 사랑이 있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있다. 책은 구미 사회의 대격동기였던 1969년부터 1980년까지 전문가들이 펼친 인터뷰와 현지조사를 토대로 1981년 출간됐다.

저자는 여성주의의 시각을 감추지 않는다. "사랑, 결혼, 섹슈얼리티, 일, 정체성 등 여성성의 문제에 씨름하는 젊은 여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저자는 "그들과 나눈 수백여건의 인터뷰를 통해 인간의 감정은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서두에서 밝힌다. '니사'는 그 중 특히 입심 좋은 여인의 이름이다.

이 책은 인류학 민족지의 모범을 구현한 고전으로 대접받고 있다. 오랫동안 무시돼온 토착민ㆍ문맹자ㆍ여성의 입장에 충실, 세계를 보는 전혀 다른 시각을 제공했다. 저자가 현지인들의 바람대로 담배를 줄 것인지, 인터뷰에 응한 대가로 돈을 줘야 하는지, 고유 문화를 보존한다면서 알게 모르게 오염시키는 것은 아닌지 등을 두고 고민하는 모습 등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보편성은 특수성과 어떻게 결합하는가? 예를 들어 섹스 문제를 보자. "!쿵 사람들은 사람이 섹스에 굶주려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365쪽) 거기 대한 책의 풀이는 이러하다. "식량 자원을 예측하기 힘들고 식량이 끊임없는 관심사인 사람들" 특유의 세계관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의료인류학자인 남편의 현지조사를 따라 현장에 갔다가 원주민들의 삶에 매료돼 이 책을 썼다. 1990년 다시 니사를 만나러 현지에 갔던 저자는 장시간의 인터뷰를 남겼다. 그러나 1996년 세상을 뜨는 바람에 그 기록은 2000년에야 <니사에게 다시 가 보니>라는 유작으로 빛을 보았다.(장병욱기자)

문화일보(08. 09. 26) 인간 본성은… 따뜻하다

1948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의학연구자 엘지 위도슨은 식생활이 아이들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실험에 들어갔다. 고아원 두 곳을 택해 한 곳에만 6개월간 빵과 잼 등을 추가로 지원했다. 그런데 연구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추가로 식품을 지원받지 않은 A고아원의 아이들은 잘 자란 반면, 식품을 지원받은 B고아원의 아이들은 거의 자라지 않은 것. 머리를 갸웃거리며 위도슨은 그 다음 6개월간 두 고아원의 조건을 바꿨다.

연구 결과는 또다시 연구자를 놀라게 했다. 더 이상 추가 식품을 지원받지 못한 B고아원의 아이들은 빠르게 자라기 시작한 반면, 새롭게 지원받은 A고아원 아이들의 성장은 오히려 둔화되었다. 위도슨은 이유를 찾기 위해 고아원에 대한 직접 조사를 벌였고, 원인을 알아냈다. 이유는 식품이 아니라 원장이었다. 연구를 시작할 당시 B고아원의 원장은 엄격하고 강압적인 여성이었는데, 그녀가 6개월 후 A고아원으로 옮긴 것. 추가 식품의 지원 여부에 따라 아이들의 성장이 달라진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원장의 강압적인 양육태도가 아이들 성장을 방해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사례다. 그런데 사랑과 관심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또 하나의 사례인데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저자는 보살핌이라는 긍정적인 힘에 대한 인정을 넘어 보살핌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보살핌 본성론’의 출발은 두 가지 과학, 사회적 흐름에 대한 반격으로 시작한다. 하나는 인간의 공격성, 이기심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며, 인간 사회는 전쟁터라는 ‘투쟁’론이다. 또 다른 하나는 보살핌을 여성의 모성애와 연결시키고 모성애를 여성의 활동을 옥죄는 이데올로기 기제로 작용시키는 것이다. 이어 저자는 보살핌 본능을 ‘스트레스 상황’을 통해 설명한다.

즉 기존의 공격적인 인간 본성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도피해버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보살핌의 본성이 작용, 사람들은 오히려 서로 어울려 보살피는 행동을 통해 스트레스에 효과적으로 대처한다고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어미와 아기의 강렬한 애착부터 차모임, 계모임 등 문화권에 따라 형태는 다르지만 여성들간의 사회적 유대를 강화시키는 각종 모임에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보살피려는 인간 본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 적의 위협과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남성이 맞서 싸우거나 도망치는 데 비해 여성, 특히 어머니는 자식들을 품에 안고 오히려 침착하게 다독이며 애정을 쏟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남성은 공격성을 증가시키는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받는 반면, 여성은 옥시토신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저자는 육아, 결혼, 사회생활 등을 넘나들며 보살핌의 본능을 추적한 뒤, 결국 인간이 태곳적부터 지니고 있는 보살핌 본성을 사회적 시스템화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건강해질 수 있다는 긍정적 바람으로 끝을 맺는다.(최현미기자)

08. 09. 28.

 

 

 

 

 

 

P.S. '쿵족'이 아니라 '!쿵족'이다. 예전에 인류학 관련서를 읽다가 '!쿵'이란 표기 때문에 인상에 남았던 부족이라서 이번에 출간된 <니사>가 반갑다. 언젠가는 나폴레옹 샤농의 <야노마모>(파스칼북스, 2003)와 함께 꼭 비교해서 읽어보고 싶다(오래전부터 미뤄놓은 '숙제'다). 한편, 셸리 테일러의 '보살핌 본성' 혹은 '보살핌 본능'이 떠올리게 해주는 책은 '보살핌의 윤리'에 관한 것들이다. 얼른 생각나는 건 한국현상학회에서 펴낸 <보살핌의 현상학>(철학과현실사, 2002). 레비나스의 윤리학 등이 다뤄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이미 절판된 것으로 나오는데, 캐롤 길리건의 유명한 책 <다른 목소리로>(동녘, 1997). 저자는 남성과 여성의 도덕적 정향이 각기 다르게 설정돼 있다고 주장한다. 보편성 대신에 관계지향성을 내세우는 여성은 '보살핌'에 더 적극적인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나온 <보살핌>과 같이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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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출간됐지만 무심코 지나쳐버렸다가 오늘에서야 '발동'이 걸린 책이 있다. 과학저술가 필립 볼의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까치, 2008)가 그것이다. 책 표지만 보고 그렇고 그런 교양과학서겠거니 생각했지만 목차를 보니 좀더 근사한 책이란 걸 알 수 있다('사회물리학'이라니!). 최근에 나온 교양과학서들 가운데서는 가장 먼저 읽고픈 책이다(우울한 것은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이지만). 아니 사회학 책인가?! 지난주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08. 09. 20) 인간행동·관계 속에 존재하는 물리학법칙

물리학은 물질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다. 그런데 지난 20여년 동안 이 분야에선 특별한 일이 진행되어 왔다. 물질세계를 이해하려고 개발했던 방법과 아이디어들이 뜻밖의 분야에 응용되기 시작했다. 물리학이 사람들의 상호작용과 사회적 행동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는 ‘사회의 물리학’(physics of society)이 부상한 것이다. 물리학은 열린 공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결정하고 투표하며, 어떻게 집단과 조직을 형성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틀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금융시장의 움직임이나 사회적·상업적 네트워크에 숨겨진 구조를 밝혀내고 갈등과 협력의 정치학을 분석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는 이처럼 물리학을 사회학·정치학·경제학 등에 결합시킨 새로운 사회물리학의 역사적 궤적과 최근 동향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저명한 과학저술가인 저자는 토머스 홉스와 애덤 스미스에서부터 게임이론과 인터넷 네트워크에 대한 현대적 연구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을 통해 사회를 이해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을 풍부하게 제시하는 한편 사회물리학의 한계와 위험성에 대해서도 살폈다.

사회물리학을 모색했던 최초의 인물은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였다. 그는 더 이상 단순화할 수 없고 자명하다고 믿는 공리(公理)로부터 인간의 상호작용, 정치, 사회에 대한 과학을 정립하고자 했다. 대표작 ‘리바이어던’은 갈릴레오의 역학을 근거로 삼았다. 이 같은 홉스의 사상은 로크 등을 통해 후세의 사상가들에게 전해졌다. 책에는 애덤 스미스, 칸트, 콩트, 밀 등 홉스와 같은 아이디어를 추구했던 이들과 함께 사회물리학의 정립에 기여한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물리학을 통계적인 것으로 만든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 사회통계학을 이용해 정치경제학을 연구한 윌리엄 페티.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이해라는 개념을 널리 확산시킨 천문학자 아돌프 케틀레, 역사 자체를 과학으로 본 헨리 토머스 버클 등이다.

헬빙과 몰나르는 물리학을 바탕으로 보행자들의 움직임에 대한 수학적 모델을 개발했다. 하나의 문을 지나가려는 사람들은 일부가 한쪽으로 통과한 후에 다른 방향으로 통과하는 일이 번갈아 일어난다.

사회적 행동을 정량화하려고 시도한 현대 연구자들의 연구와 실험들도 풍부하게 소개된다. 사회물리학은 보행자들의 흐름에서 전기 전하를 가진 입자들에게 작용하는 전자기 힘과 비슷한 사회적 압력을 읽어내고, 도시 팽창의 복잡한 유기적 성격의 실마리를 박테리아 군체의 비평형 성장과정에 대한 연구에서 찾는다. 덩어리가 커질수록 더 빨리 성장하고 작은 덩어리들은 사라지거나 다른 덩어리에 의해서 삼켜지는 ‘오스트발트 성숙’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기업인수와 세계화와 연결된다. 물리학은 왜 정체가 생기는지를 이해하고 주가의 움직임 등 경제를 예측하려는 시도들에도 개입한다.

책에는 상전이, 멱법칙, 자기조직화 패턴, 집단적 움직임, 무규모 네트워크 등 낯선 개념들이 등장하지만 흥미로운 실험 사례들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미국 배우 케빈 베이컨이 다른 배우와 몇 단계를 거치면 아는 사이인지 파악하는 ‘케빈 베이컨 게임’의 다양한 ‘버전’들이 나오기도 하고, 2차 세계대전 당시 17개 국가들의 제휴관계를 거의 흡사하게 재현해내는 실험도 소개된다.

저자는 “인간이 자신의 의사대로 행동하는 이유를 전혀 모르더라도 그들이 집단적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렇지만 사회물리학이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단언한다. “개인적 책임과 집단적 책임을 어떻게 정의하며, 삶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가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는 사회물리학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김진우기자)

08. 09. 27.

P.S. 알라딘에서 검색되는 원서의 표지는 국역본 이상으로 심심하다. 찾아보니 좀더 근사한 다른 표지가 있다.

표지에 국역본에서와 마찬가지로 '2005년도 아벤티스 과학저술상 수상작'이라고 적혀 있다. 그게 어떤 상인지 일반독자로선 알 수가 없지만, 스티븐 호킹의 <호두껍질 속의 우주>(2002년)와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2004년)가 이전 수상작이라고 하니 허튼 상은 아니다. 역자인 이덕환 교수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까치, 2003)도 우리말로 옮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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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한국일보에 실린 글을 옮겨놓는다(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809/h2008092702460884210.htm). '책과 인생' 코너에 5매짜리 원고를 청탁받고 쓴 것이다. '거창한' 주제를 짧게 쓰려고 하니 특별히 떠오르는 기억도 드물어서 어제 새벽에 책장 가까이에 있는 니진스키의 책을 펴놓고 예전에 쓴 글도 참고하여 몇 자 적었다. '눈물의 바다 러시아 문학'이란 '과장된' 제목은 물론 나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일보(08. 09. 27) [책과 인생] 눈물의 바다 러시아 문학

능글맞기도 하지만 괜히 잘 우는 사람들이란 고정관념을 나는 러시아인들에 대해 갖고 있다. 물증을 대라고 하면 내가 만났던 러시아인들이 아니라 내가 읽은 러시아인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으니까. 하지만, 가령 전설적인 무용가 니진스키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울고 싶은데 신은 내게 쓰라고 명령한다. 그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바라지 않는다. 아내는 울고 또 운다. 나 역시 운다."

<니진스키 영혼의 절규>란 책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제목은 조금 과장된 것이다. 정신질환을 앓으며 요양원에 입원해 있던 니진스키가 아예 정신을 놓기 전에 쓴 일기이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나온 같은 역자의 첫 우리말 번역본에는 그냥 <니진스키의 고백>이란 제목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몇년 전 모스크바에서 구한 러시아어본의 제목은 <감정>이다. 물론 이 제목들이야 편집자의 작품일 것이다.

20대 초반의 어느날 나는 지방의 한 시립도서관에서 <니진스키의 고백>을 빌려 읽은 적이 있다. 이렇게 시작했다. "나는 울고 싶은데 신은 내게 계속 쓰라고 명령한다. 그는 내가 빈들거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 내 처는 줄곧 울고 있다. 나 역시 운다." 이건 뭐 달리 대책이 없다. 읽으면서 같이 우는 수밖에.

니진스키는 고기를 먹으면서 울고, 사랑의 시를 적으면서 울고, 아내의 울음 때문에 또 운다.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위대한 예술가' 이전에 '너무나 많은 고통을 받은 단순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 고통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신조차도 가여워한 한 영혼의 고통이다. 어느 시인을 위해 울어주던 버드나무처럼 그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운다. 그 생각만 하면 나도 눈물이 난다.

아직 능글맞은 중년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빈들거리는 일이 잦은 나는 그런 때마다 반쯤 정신 나간 무용가의 눈물을 떠올리곤 한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러시아문학은 그런 눈물의 바다이기도 하다. 그들은 삶을 너무 사랑한 것이 아닐까?

08. 09. 27.

P.S. 니진스키의 일기 얘기를 꺼낸 김에 관련서들의 이미지도 옮겨놓는다. 먼저 내가 제일 처음 읽은 <니진스키의 고백>(문예출판사, 1975).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발췌본의 번역이어서 <니진스키 영혼의 절규>와는 번역대본이 다르다. 제대로 된 완역본이 1995년 파리에서 처음 출간되었고 1999년에 영역본이 나왔다. <절규>는 그것을 옮긴 것이어서 <고백>과는 차례도 다르다. 내가 아는 러시아어본이 나온 것은 2000년이 돼서다.

이 <고백>은 나중에 구하려고 하니 눈에 띄지 않아서(지금이라면 구할 수 있을 듯싶지만) 한 시립도서관의 책을 복사해서 갖고 있다. 그의 여동생이자 안무가 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의 책 <나의 오빠 니진스키>(문예출판사, 1988)와 아내 로몰라 니진스키가 쓴 회고록 <천재는 어디로: 무용의 신 니진스키>(까치, 1981)도 이덕희씨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니진스키 3종 세트'라 할 만하지만, 나는 따로 갖고 있지 않다.

  

러시아에서 출간된 니진스키 관련서를 오래만에 검색해보았다. 먼저 그의 일기의 러시아어본인 <감정>(2000).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표지는 두 종이 있다. 왼쪽이 더 마음에 들지만 내가 갖고 있는 건 오른쪽.

Вацлав Нижинский ЧувствоВацлав Нижинский Чувство

그의 아내 로몰라의 회고록도 두 종이 눈에 띈다. 그밖에 전기 작가 리처드 버클의 전기 번역서 등이 더 있다. 관련서가 많지는 않은 것이다.

Ромола Нижинская Вацлав Нижинский. Воспоминания NijinskyРомола Нижинская Вацлав Нижински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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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7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27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람혼 2008-09-27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의 저공비행'에서 러시아어 책 표지들을 보니까 더욱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이야말로 '러시아 문학도의 뜨거운 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글 잘 읽었습니다(글을 읽고나니 제목을 붙인 편집자의 선택이 결코 '과장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로쟈 2008-09-27 23:24   좋아요 0 | URL
원인 제공은 했지만 포커스가 거기에 맞춰질 줄은...^^;

Ritournelle 2008-09-28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서재는 러시아적 세계의 전도사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 러시아어를 배우고 싶은 욕망이 불끈불끈 쏫기도 한답니다.

로쟈 2008-09-28 20:36   좋아요 0 | URL
1년만 배워도 니진스키는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