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에 한번 서점에 들렀을 때 좀 특이하다 싶었던 책은 로렌 포프의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 - 작고 강한 미국대학 40>(한겨레출판, 2008)이다. 미국 대학 가이드북이 나온 거야 특이하지 않지만 책을 낸 곳이 한겨레출판인 것은 의외였다. 책은 자세히 훑어보지 않았고 주말 리뷰에서 내막을 읽을 수 있겠거니 했다. 그 '내막'을 알려주는 기사를 옮겨놓는다(대학교육의 목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수능이 얼마남지 않았고 진로와 대학 선택 문제로 고민하는 고3 가족들이 적지 않겠다. 우리에게도 좀더 많은 '작고 강한' 대학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한겨레(08. 10. 18) 미국 지식인들은 어떤 대학에 자녀를 맡길까

‘이 책을 기어코 번역하고, 또 서평까지 써서 한국에 알려야 하는가.’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이 번역된 뒤 리뷰를 쓰기 위해 그것을 손에 쥐었을 때 맨 먼저 스친 생각이다. 이 책이 전하는 소중한 교육현장들이 한국의 흉물스런 입시교육과 명문대 진학 욕구 때문에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토플과 에스에이티(SAT·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를 시키며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 등 이른바 명문대 입학전형도 맞춤형으로 돌파해 내는 한국의 학원들과 극성 학부모들에게 이 책이 소개하는 학교들은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학교들이 정말 원하는, 또 이런 학교들을 정말로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 누려야 할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 않을까. <뉴욕 타임스> 교육담당 에디터를 지낸 로렌 포프가 쓴 이 책은 충실하고 인간적인 대학교육을 원하는 미국 사회의 학부모와 지식인들에게는 가장 유명한 대학입학 가이드이다.

이 책이 전하는 미국의 ‘작고 강한’ 40개의 대학 상당수는 명문 대학원 진학, 인명사전 <마퀴스 후즈 후 인 더 월드>에 이름이 오른 사회저명인사 배출, 교수 등의 학자 배출 등에서 아이비리그 대학을 능가한다. 동문 4명 중 1명이 박사이고 과학자 배출이 미국 전체 대학 중 1위인 리드대학(오리건주 포틀랜드), 졸업생의 70%가 명문대 대학원에 진학하는 말보로대학(버몬트주 말보로), 99%가 넘는 취업률의 가우처대학(메릴랜드주 타우슨), 최고경영자 배출에서 미국 전체 대학 중 4% 안에 드는 앨러게니대학(펜실베이니아주 미드빌), 여성지도자 배출 1위에다 과학자·학자 배출이 미국 대학 중 전체 10위권인 아그네스스콧대학(조지아주 디케이터) 등이 대표적이다.

학제 운영이 독특하고 다양해, 학생 스스로 전공을 설계해야 하는 대학이 있는가 하면 4년 동안 모든 학생이 똑같은 필수과목만 수강하는 대학도 있다. 대부분 대학은 해외 학기와 인턴십을 과감하게 운영하고 있다. 100권의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것으로 4년 과정을 마치는 세인트존스대학(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 뉴멕시코주 산타페), 학년·학과·학점이 없고 각자 맞춤형 전공을 설계하는 햄프셔대학(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 교수-학생 공동 연구 기회를 미국에서 가장 많이 제공하는 호프대학(미시건주 홀랜드), 인턴십과 해외 수업에 3학기를 할애하는 칼라마주대학(미시건주 칼라마주) 등을 꼽을 수 있다. 지은이는 이 책에 소개된 세인트존스, 리드, 뉴, 말보로 네 곳을 미국에서 가장 지성적인 대학으로 꼽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모든 학교는 캠퍼스 구성원들이 가족처럼 친밀하게 지내고, 소수민족과 외국 학생을 포함해 출신 배경이 다양한 학생들을 보듬어 안는 공동체다. 무엇보다 자신의 연구가 아니라 학생을 가르치고 돌보는 일에 전념하는 교수의 역할이 강조된다.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 대학들의 핵심가치이다. “이곳에서 가르침은 사랑의 행위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멘토이고, 하이킹 동료이자 스포츠 동아리의 팀원이며, 저녁 식사의 동반자이고 친구다. 배움은 경쟁이 아닌 협력의 작업이다.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더 커지도록 만드는 강력한 시너지 공간이다.”

그럼, 입시교육에 포로가 된 한국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사항을 말해보자. “그 학교 들어가기 힘들어? 입시성적이 얼마나 돼야 해?” 이 학교들은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 입학에 필요한 그런 높은 시험점수를 꼭 요구하지 않는다.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중위권의 에스에이티 점수로도 입학할 수 있다. “다양성의 혼합은 반드시 필요하다. A학점 학생들이 있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B학점 C학점 학생들이 모여 있을 때 보다 생산적인 토론이 이뤄진다.”

이 책은 단순한 대학입학 가이드가 아니다. 점수와 간판에 찌든 한국의 교육을 반성케 하는 생생한 현장사례를 담고 있다.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입시교육에서 좌절한 것이 결코 인생에서 좌절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이 책이 한국에 소개된 이유이다. 1996년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된 직후에는 비영리기관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www.ctcl.org)을 설립했다. 아흔여덟 살의 지은이는 최근까지도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학생을 보듬어 능력을 키우는’ 교육철학을 전파하다가 지난달 노환으로 별세했다.(정의길 기자)

08. 10. 19.

P.S. 봄에 나온 책 존 터먼의 <미국이 세계를 망친 100가지 방법>(재인, 2008)에는 100가지 리스트 외에 '미국이 그나마 제대로 하는 일 10가지(Ten Things America Does Right)'가 더 붙어 있다. 아니 붙어 있어야 했다. 원서에는 있지만 국역본에는 빠졌는데, 좀 유감스럽다(전체 목차는 http://www.johntirman.com/The%20List.html 참조). 그 '제대로 하는 일' 리스트의 첫번째가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이었다. 미국에 대한 냉정하면서도 신랄한 비판자인 저자가 그래도 미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내세운 항목이어서 인상적이었다. 물론 등록금은 독일이나 프랑스 대학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게 흠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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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08-10-20 10:52   좋아요 0 | URL
음..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요...우리사회에 대안초등, 중고등과정은 있는데 왜 대안 대학은 없을까? 정말 필요할꺼 같은데..특히 인문사회과학 분야는....쩝

로쟈 2008-10-20 18:51   좋아요 0 | URL
경제난 덕분에 혹 생길 수도 있겠죠. 어차피 먹고 살기 힘들다면 대안적인 공부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고요...
 

이번주 출간도서 중 개인적으로 의미심장하게 생각하는 것은 천병희 선생의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숲, 2008)이다. 이미 10년전에 단국대출판부판으로 나온 바 있으니 개정판이라고 할 수 있고, 당분간은 '결정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이번에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도 같이 나왔다). 출간작업을 맡았던 편집장의 소감을 스크랩해놓는다(역자 인터뷰 기사는 http://www.donga.com/fbin/output?f=M_s&n=200810180145&main=1 참조).

 

세계일보(08. 10. 18) [편집장과 한권의책]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소포클레스(기원전 497/6∼406/5)는 그리스 비극의 완성자로, 그가 쓴 비극 123편 중 전해오는 것은 7편, 그 중 최고의 비극으로 평가되는 ‘오이디푸스 왕(王)’이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는 이를 격찬하여 비극의 전형(典型)이라고 하였다.

국내에는 이미 여러 종류의 중역본이 나와 있고 ‘오이디푸스 왕’을 읽은 독자들도 많고 다양하다. 그러나 소포클레스의 전해지는 전 작품을 접한 독자는 몇이나 될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의 첫 번째 독자로서 ‘오이디푸스 왕’만 읽고 소포클레스를 놓아주기엔 그의 모든 작품이 한마디로 ‘주옥(珠玉) 같구나’하는 감탄 때문이다.

서양에서 줄곧 교재로 사용되었기에 그의 많은 작품 가운데 2500년을 살아남는 7편이다. 십수 년 전부터 그리스 비극을 원전 번역해오던 천병희 선생은 33편의 그리스 비극 전집을 목표로, 지금까지 발표한 번역들을 시대와 언어의 변화에 맞게 재번역하며 기존의 오류들을 바로잡았고,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을 번역하느라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그리스 문학의 원전 번역에 각고의 세월을 바친 노 교수의 쉼 없는 열정으로 우리도 곧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의 전집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을 갖게 된다.

그리스 비극이 완성되던 기원전 5세기는 그리스 역사의 황금시대일 뿐 아니라 서양인들이 끊임없이 그 시대의 삶의 방식 등을 당대에 재현하고자 했을 만큼 모델이 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황금시대를 살면서도 그들이 인간의 고통을 직시하고 이해하고 비극에 담아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자유의 이념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기원전 5세기 아테네답게 자유인의 비극, 당한 자로서의 고통이 아니라 행한 자의 고통과 비극 속에서 그들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혹자는 정신의 크기라고 말하고, 혹자는 인간의 숭고(崇高)라고 말한다.

그리스 비극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기도 하거니와 고전 속에서 어떤 광맥을 찾든 그건 독자의 몫이다. 어느 누구도 ‘이것 캐시오! 저것 캐시오!’ 할 수는 없다. 읽다 보면 광맥과 만난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서양 고전을 쉽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길은 원전 번역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강규순 도서출판 숲 편집장)

08. 10. 18.

P.S. 예전 번역본으로 읽은 <오이디푸스왕>은 한두 군데 오역과 매끄럽지 않은 대사들이 흠이었는데, 새 번역본은 그런 흠들이 다 가려졌을 것으로 믿는다. 고전 읽기의 즐거움도 만끽할 겸 올 겨울에 한번 숙독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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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10-20 09:25   좋아요 0 | URL
하...반가운 소식이네요. 곧 에우리피데스도 나오겠군요.
책 표지가 세련되 진것과 가독성을 높이는 편집 외에 또 다른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숲과 이제이북스는 열심인 것 같습니다. 끊이지 않고 팔리기야 하겠지만 또 많이 팔리지는 않을 듯...

로쟈 2008-10-20 18:47   좋아요 0 | URL
스테디셀러라면 된다면 번역도 계속 이어질 텐데 기대 반 우려 반입니다...
 

몇달 전 한 대학저널과 가진 인터뷰기사가 뒤늦게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기자가 '로쟈'에 대해서 잘 아는 편이 아니고 짤막한 인터뷰여서 새로운 내용이 들어가 있지는 않다. 번역문화에 대한 몇 가지 질문에 답한 탓에 부제는 '블로거 ‘로쟈’, 번역 문화를 비판하다'라고 붙여졌다. 창고에 넣어둔다...

서울대저널 제90호(08. 03) [캠퍼스라이프]“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다!

‘로쟈’라는 필명은 낯설다. 혹자는 ‘로쟈 룩셈부르크’를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한겨레21>에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쓰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블로거 ‘로쟈’를 아냐고 물으면 이내 곧 ‘아!’하고 무릎을 치곤 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애칭을 따 필명을 ‘로쟈’로 지었다는 그는 바로 노어노문학과 강사 이현우 씨였다.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러시아 작가들의 두꺼운 책이 뭔가 있어 보여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다”는 그에게 서평을 올리게 된 연유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소탈하게 “자연발생적”이라고 답했다. 온라인 서점 등장 초기에 리뷰에 대해 제공된 마일리지를 적립할 겸 쓰기 시작한 서평이 모여 블로그가 됐다는 것이다. “어느 시점부터는 방문자 수가 늘어나 개인적이기보다는 공적 공간이 되어 조금은 의식하고 있다”는 그는 주로 인문 분야에 대한 서평이나 시사에 대한 정보나 이슈 등으로 그의 블로그를 채우고 있다.

최근 로쟈 씨의 블로그를 살펴보면 번역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띈다. 처음에 “비싼 돈 주고 산 책의 번역이 엉터리일 때 책값이 아까워서” 번역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 시작했다는 그는 역시 ‘오역(誤譯)’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책이라는 것이 일종의 ‘정신적 먹거리’이고, 외국에서 들어오는 책들과 그 번역물들이 외국산 음식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 몸이 유해 물질이 일부 들어와도 바로 죽지는 않듯, 독서생활도 적당히 오역이 섞여 있고 날림 번역된 책들을 소화시켰다”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오역에 대한 비판이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몰리는 현실을 비판했다.

특이하게도 그는 ‘이론수입상’이나 ‘기지촌 지식인’ 등의 문제가 “아직 외국의 이론이 덜 수입되었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많은 학문의 내용이 결국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것인 만큼 보다 제대로 연구되고, 자생적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이론과 내용이 정확하게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연과학에서는 ‘최초’가 중요하지만, 인문학은 그렇지 않다. 이미 새로운 건 없다”며 인문학의 내용이 대학에 갇히지 않고 사회에 널리 공유되는 ‘학문의 민주화’를 강조했다.

“10년 쯤 전에는 학생들에게 할 충고가 있었지만, 다시 10년이 또 지나니 다시 대학의 신입생이라는 백지상태가 된 기분”이라는 로쟈 씨. 하지만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려 “공적인 행위에 참여하는 가치 있는 삶”을 살기를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로쟈의 서재에서 삶의 ‘가치’를 음미해보는 건 어떨까.(조홍진기자) 

08.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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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10-18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공식적으로(?) 얼굴사진을 찍으셨군요!

로쟈 2008-10-18 22:58   좋아요 0 | URL
이미 시사IN 인터뷰때 팔린 쪽이어서요...^^;

merci 2008-10-19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뷰 뒤에 계속 블로그를 들락거리고 있었는데 제가 쓴 글을 이렇게 한참 뒤에 보게 되니 민망하네요 -_-;; ㅎㅎ 음.. 제가 '로쟈'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은 사실이죠. ㅠ_ㅠ

로쟈 2008-10-19 08:41   좋아요 0 | URL
기억엔 작년쯤에 가졌던 인터뷰 같은데, 기사는 지난달치로 돼 있어서 의외입니다. 착오가 있는 거죠?..

merci 2008-10-19 17:33   좋아요 0 | URL
올해 겨울이었습니다.ㅎ 3월호에 썼던 것인데 지금 서버가 불안정해서 9월로 종종 표기되더라구요.

로쟈 2008-10-19 18:24   좋아요 0 | URL
맞아요, 겨울이었죠...

람혼 2008-10-19 0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처음 로쟈님을 알게 된 '늦깎이' 블로거로서, 저도 로쟈님을 더욱 알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로쟈 2008-10-19 08:39   좋아요 0 | URL
제가 베일을 둘러치고 있나 보네요...^^

람혼 2008-10-22 01:49   좋아요 0 | URL
특별히 베일을 치고 계시다는 '은밀한' 느낌은 없지만, 언젠가 한 번은 꼭 차 한 잔 나누면서 담소도 나누고 고견도 듣고 싶습니다.^^

루쉰P 2008-10-19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이 어떤 분이신줄 실제 사진을 처음 봤네요.^^ 이제 얼굴이 알려지셔서 어떻해요. 로쟈님의 신비주의가 사라질까 걱정이 되네요.^^ ㅋㅋㅋ 사진 너무 잘보고 갑니다.

로쟈 2008-10-19 08:38   좋아요 0 | URL
검색해보면 사진이야 다 뜹니다. 어느 책 제목을 빌자면 '개인의 죽음(The End of Privacy)'이 대세인 시대인지라...

무스탕 2008-10-19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동안 로쟈님께서 저 이미지의 수염 덥수룩한 그런 외모이신줄 알았어요..;;
훨씬 이쁘십니다 ^^

로쟈 2008-10-19 18:25   좋아요 0 | URL
딸아이가 지젝 사진을 보고 아빠냐고 물어보긴 했습니다. 곧 아닌 것 같다고 하면서...^^;

파란여우 2008-10-19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굴이 좀 헬쓱해지셨습니다. 미모는 여전하시지만^^

로쟈 2008-10-19 18:25   좋아요 0 | URL
얼굴만 살이 안 찌는 편이어서요...^^;

바라 2008-10-19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오재미동에서 데리다 보러 갔던 일이 생각나네요.. 올려주신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로쟈 2008-10-20 18:47   좋아요 0 | URL
아, 벌써 몇년 전이군요!^^;

영이 2008-10-20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 간 이 곳을 종종 들러 보았지만 사진은 처음 뵙습니다.
쓰시는 글에서 느껴지던 이미지와 비슷하세요^^
정말 반갑습니다^^

로쟈 2008-10-20 18:48   좋아요 0 | URL
댓글도 처음이신 듯한데요.^^

순오기 2008-10-20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시로 들락거리는 저는 예전에도 로쟈님의 사진과 실명이 공개된 걸 봤어요~ 그래서 더 반가운 얼굴이고요.^^

로쟈 2008-10-20 18:4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드팀전 2008-10-20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사진을 보니 예전의 어떤 분이 남겼던 스캔들적인 촌평이 떠오르는군요...
박지원을 닮았다는

제 결론은 별로 안닮았어요.

로쟈 2008-10-20 18:49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0-20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본 사진에선 강의하고 있는 모습이었어요.박지원 씨보단 눈이 더 크네요. 안경 벗은 사진은 없나요?

로쟈 2008-10-20 18:50   좋아요 0 | URL
관상도 보시나요?^^ 대충 사람꼴이면 되지 않나요?^^;

Koni 2008-10-20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전 로쟈님 얼굴을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로쟈 2008-10-21 08:29   좋아요 0 | URL
성자는 아니죠?^^;

마노아 2008-10-21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사진을 클릭하니 엄청 커져요! 잡티 없는 얼굴의 면모를 확인했습니다. 눈매가 깊으시네요. 안경 탓일까요, 분위기 탓일까요? ^^
 

바슐라르의 과학철학서 얘기가 나온 김에 지난달에 있었던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거대강입자충돌기(예전엔 그냥 '입자가속기'라고 불린 듯한데) 실험과 관련한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이후 소식을 접하지 못했는데 실험 자체가 연기된 듯싶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여된 장치인 만큼 그 실험결과의 사회적 효용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는 어떠한 물리학이 필요한가?'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지난 9월 초 완공된 거대 강입자충돌기(오른쪽)와 건설 전 조감도. 현재 LHC는 연결 장치의 문제로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내년 봄 재가동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 제공.

한겨레21(08. 10. 17) 어떠한 물리학이 필요한가

지난 9월 초 과학계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막 가동을 시작한 ‘거대 강입자충돌기’(LHC·Large Hadron Collider)에 관한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14년 동안 순제작비만 55억달러가 소요된 세계 최대의 입자가속기인 LHC는 이전까지 가장 큰 가속기였던 미국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의 ‘테바트론’(Tevatron)보다 7배나 큰 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 둘레 길이만도 27km에 달하는 거대한 장치다. 고에너지 물리학자들은 높은 에너지를 가진 양성자를 서로 충돌시킬 때의 반응을 ‘관찰’함으로써 1964년 영국의 물리학자 피터 힉스가 예측했던 ‘힉스 입자’(Higgs boson)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HC의 실험 소식은 ‘빅뱅 실험’이니 ‘우주 탄생 순간의 재현’이니 하는 수식어들과 함께 대중 매체에서도 높은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LHC 가동에 관한 언론 보도들은 이번 실험이 갖는 과학적 의미에 대한 소개와 전례없는 규모의 실험에 대한 호기심만이 가득 차 있을 뿐, 그러한 대규모 과학의 배경이 되는 정치사회적 맥락에 대한 설명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SSC. 미국 주도 패권주의 과학의 실패
사실 1960년대에 완성된 테바트론을 넘어서는 거대 입자가속기를 만들자는 계획은 LHC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에 이미 미국의 물리학자들은 테바트론의 20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거대 입자가속기인 ‘초전도 슈퍼콜라이더’(SSC·Superconducting Supercollider)의 건설을 추진한 적이 있다. 1983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서 약한 핵력을 매개하는 입자인 W입자와 Z입자의 발견 사실을 공표하자 미국 내에서는 소련과 유럽에 맞서 미국이 고에너지 물리학의 주도권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는 주장이 부각되기 시작했고, 이듬해 제안된 SSC는 그러한 패권주의적 발상의 산물이었다. SSC는 완성될 경우 둘레 길이가 87km에 달하는 거대 장치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계획을 승인한 1987년에는 건설에 44억달러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됐다.

노벨상 수상자인 리언 레이더먼과 스티븐 와인버그를 포함한 저명한 과학자들은 SSC를 통한 빅뱅 직후 초기 원시 우주 상태의 재현을 ‘신의 음성’에 비유하거나 입자가속기를 성당에 비유하는 식의 종교적 수사를 동원해가며 프로젝트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캠페인에 나섰다. 특히 레이더먼은 힉스 입자를 ‘신의 입자’(God particle)라고 부르면서 SSC의 건설이 곧 신성(神性)에 이르는 첩경이라는 식의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SSC는 이내 불운한 종말을 맞았다. 애초 44억달러였던 예상 건설비는 눈덩어리처럼 불어나 공사가 시작될 즈음인 1990년에는 79억달러로 상향조정됐고, 1993년 일반회계국 조사에서 또다시 110억달러로 뛰어오르자 미국 의회는 1993년 결국 프로젝트를 백지화했다. SSC가 실패를 맛본 데는 규모와 체제 경쟁에 집착하는 냉전적 사고방식과 미국 중심의 국가주의적 태도가 크게 작용했다. 계획 초기에 SSC를 국제적인 과학 프로젝트로 만들 것을 주장했던 일본 물리학자들은 “SSC는 미국의 시설”이라는 면박을 들어야 했는데, 미국의 이러한 오만함은 이후 예산 부족에 허덕인 SSC를 구해내는 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SSC보다 조금 늦게 시작한 LHC 역시 추진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LHC가 처음 제안된 것은 1981년으로 SSC보다 오히려 앞서지만,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서 LHC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시작된 것은 한참 뒤인 1988년부터였다. 당시에는 규모가 훨씬 큰 SSC 계획이 미국에서 추진 중이었기 때문에, LHC 건설을 주장한 사람들은 LHC가 SSC가 잘 안 될 때를 대비한 일종의 ‘보험’으로서, 또 여러 가지 종류의 실험을 할 수 있는 다용도 충돌기로서 가치가 있다는 주장을 폈다. 1991년 11월 유럽입자물리연구소 이사회는 LHC가 “고에너지 물리학의 발전과 연구소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기계”라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LHC 건설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완공 예정 2002년으로부터 6년 더 걸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모이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 이사회에서 LHC 건설 계획안이 승인되는 과정은 험난했다. 1993년에 1차로 계획안이 제출됐지만, 예산 증가에 비판적인 일부 회원국들은 비용의 추가적인 감축을 요구했다. 특히 영국과 독일은 LHC가 위치해 더 많은 혜택을 보게 될 스위스와 프랑스가 추가로 더 많은 금액을 기부할 것을 요구하면서, 제안된 예산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994년에 유럽입자물리연구소는 LHC에 설치될 전자석의 3분의 1 정도를 일단 제외해 건설 비용을 절감한 뒤 나중에 예산이 확보되면 빠진 전자석을 채워넣는 임시변통 방식을 제시함으로써 이사회의 최종 승인을 얻었다. 이러한 상황은 1995년 비회원국인 일본이 상당한 액수를 기부하기로 약속하고, 러시아·인도·캐나다·미국 등과의 협상이 긍정적으로 진행되면서 조금씩 호전됐다. 예산이 웬만큼 확보되면서 1996년에는 LHC 전체를 한번에 건설하는 쪽으로 수정 계획안이 다시 제출됐다.

그러나 LHC의 어려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동·서독 통일에 수반된 엄청난 비용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독일이 국제적 과학 프로젝트에 지원하는 예산을 대폭 삭감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 들어가는 예산을 감축하기 위해 기회를 계속 엿보고 있던 영국도 여기 가세했다. 결국 연구소는 1997년 이사회의 동의를 얻어 차관을 들여와 부족한 공사비를 메우는 길을 택했다. 적자 운영은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당시로서는 LHC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던 것이다. LHC는 애초 2002년 완공 예정이었으나 예산 문제로 여러 차례 연기돼 결국 올해 들어서야 완성이 됐다.

태초의 비밀·신의 마음… 수사들의 향연
SSC의 ‘실패’와 LHC의 ‘성공’은 거대한 실험 장치의 존재에 결정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거대과학 분야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SSC는 냉전기의 체제 대결 의식에 뿌리를 둔 거대과학 프로젝트가 변화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에 비해 LHC는 일견 성공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자금 압박과 프로젝트의 의미에 대한 회의적 태도가 계속해서 위기의식을 조성했음에도 국제적 공조와 여러 임시변통 수단을 동원해 어렵게나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LHC는 탈냉전 시기에 거대과학이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는 한 방법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LHC의 ‘성공’은 다른 점에서는 더 큰 물음을 낳고 있다. 과연 LHC가 추구하는 목표들이 그것의 실현 가능성 여부와 무관하게 그토록 엄청난 지출을 정당화할 만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 그것이다. 고에너지 물리학자들은 태초의 비밀을 밝혀낸다느니, ‘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느니 하는 수사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연구를 정당화해왔지만, 갈수록 엄청난 비용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연구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인지는 논의의 여지가 많다. 그런 점에서 이번 LHC의 가동은 “우리에게는 어떠한 물리학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깊은 숙고가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웅변해주고 있다.(김명진 성공회대 강사)

08. 10. 18.

P.S. 내친 김에 한겨레의 관련기사도 옮겨놓는다. '김명남의 과학책 산책' 꼭지인데, 정재승 교수의 연재를 김명남 번역가가 이어받은 듯하다. 앞에서도 언급된 '힉스 입자'가 무엇인지 설명해준다. 정확히는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책을 소개해준다.

한겨레(08. 10. 18) 도대체 ‘힉스 입자’가 뭐길래

지난주는 노벨상 수상자가 줄줄이 발표되는 이른바 노벨상 주간이었다. 평소에는 그에 앞서 발표되는 기상천외한 ‘이그노벨상’에 더 흥미를 쏟는 나지만, 올해만은 본상에 관심이 갔다. 일본 출신의 과학자들이 네 명이나 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픈 심정인 것은 아니다. 물리학상의 세 수상자들은 줄기차게 0순위 후보로 거론되었던 사람들이고, 올해 드디어 수상을 하게 된 것도 생각해보면 놀랄 일이 아니다. 올해는 유럽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가 가동을 시작한 해로서 입자물리학 분야의 전기가 될지도 모르는 시기인데, 수상자들은 현 시점에서 입자물리학의 모범답안이라 할 수 있는 표준모형을 완성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표준모형은 더는 쪼갤 수 없는 17개의 기본 입자들로 자연의 모든 물질과 힘을 설명한다. 여기에 쿼크 6개도 포함되는데, 이번 수상자 중 마스카와 도시히데와 고바야시 마코토는 마지막으로 발견된 한 쌍의 쿼크를 예측했다. 한편 난부 요이치로는 표준모형을 뛰어넘는 끈 이론에서까지 중요한 기여를 했지만, 노벨상의 대상이 된 연구는 자발적 대칭성 깨짐이라는 현상을 발견함으로써 표준모형의 기틀을 다진 업적이다.

그런데 표준모형이라는 퍼즐은 마지막 한 조각, 곧 열여덟 번째 입자가 아직 맞춰지지 않았다. 힉스 입자라는 조각이다. 9월10일에 역사적인 가동을 시작한 (비록 이후 고장이 나 두 달여간 중단된다고 하지만) 거대강입자가속기는 여러 과제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이 힉스 입자 확인에 초점을 맞춘다.

대체 힉스 입자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수천명의 과학자들이 수조원의 돈을 써서 둘레 27킬로미터의 가속기를 지어서 확인해야 할 정도인가? 거기에 정말로 물리학의 미래가 달렸을까? 이런 궁금증들이 떠오를 때 <신의 입자를 찾아서>를 펼쳐야 한다. 고등과학원 연구원인 물리학자 저자가 표준모형에서 정점을 이룬 현대물리학의 발자취와 전망을 풀어냈다. 5장을 읽으면 힉스 입자가 왜 ‘신의 입자’라고 불리는지, 어째서 그것에 표준모형의 명운이 걸렸는지 알 수 있다. 거대강입자가속기의 실험 결과에 따라 어떤 식으로 물리학의 행보가 나아갈지도 짐작해볼 수 있다.

입자물리학을 깊이 알고자 한다면 분량에 아쉬움이 있는 이 책보다 다른 책을 집는 게 좋을지도 모르지만, 이 책은 가장 최근에 씌어졌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 땅에서 연구하는 과학자의 시각이 담겼다는 점이 중요하다. 관련 주제의 책을 이미 여럿 읽은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어봄 직한 이유는 그것이다. 정부는 5년 노벨상 계획이 어쩌고 하며 옆집의 노벨상을 부러워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1949년에 첫 물리학상 수상자를 냈고 54년에는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 첫 수상자를 배출했던 오랜 저력의 일본 기초과학을 단기적 대책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김명남 과학책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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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에 인상적으로 읽은 기사는 경향신문의 '책읽는 경향' 코너였다. 바슐라르의 <새로운 과학정신>(인간사랑, 1990)을 소개하는 것이었는데, '한국 지식사회의 편식증'을 꼬집고 있어서 눈길이 갔던 것. 오랜만에 바슐라르 과학철학의 의의를 상기시켜주는 글이기도 해서 옮겨놓는다. 사실 <새로운 과학정신>은 절판된 지 오래된 책이다.  

 

경향신문(08. 10. 17) [책읽는 경향]경기·인천에서-새로운 과학정신

한국에서 가스통 바슐라르의 과학적 세계관을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의 지식 사회는 편식증에 지독히 걸려 있다. 편식증의 핵심은, 문과형 지식에만 근거해 세상을 바라보려는 아집이다. 그들에게 바슐라르하면 물, 불, 촛불, 꿈, 상상력과 같은 단어들이 주로 연상될 것이다. 기하학, 유기화학, 진화생물학 같은 학문에 등장하는 언어들이 바슐라르를 이해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을지, 그들은 생각해볼 겨를이 없다.

바슐라르, 조르쥬 캉길옘, 미셸 푸코로 이어지는 프랑스의 사상적 계보는 바슐라르의 또 다른 차원 때문에 형성됐다. 과학사와 과학철학이 이런 계보를 가능하게 한 학문적 기둥이 됐다. <새로운 과학정신>(인간사랑)에서 독자들은 그의 전복적인 사고를 만날 수 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 비뉴턴 역학, 비아르키메데스 측정학, 비맥스웰 물리학, 비피타고라스 논리학, 비데카르트적 인식론 등 기존의 과학적 세계를 뒤집어보려는 그의 독창적인 사유가 이 작은 책을 관통하고 있다. 이런 전복적인 사고를 이해할 때, 바슐라르의 문학적 세계도 더욱 명료하게 밝혀진다.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한국의 지식 문화에서 바슐라르는 허공을 맴돈다.

계량적 업적과 성과만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그를 흉내내다가는 숨도 쉬지 못하고 바로 매장된다. 바슐라르는 단호히 말한다. “새로운 과학 정신이 가능하려면, 새로운 정치·경제적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이 부러운가. 선결 과제가 무엇인지 이 책은 말하고 있다.(이종찬 아주대 의대 교수)

08. 10. 18.

P.S. 바슐라의 과학철학서로 <새로운 과학정신>과 함께 나왔던 책은 <부정의 철학>(인간사랑, 1991)이다. 개인적으론 복학한 이후에 야심을 갖고 구입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두 권 다 나로선 읽을 수 없는 책이었다. 독해력/이해력이 부족했던 것인지 번역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결론을 보진 못했는데, 언제 시간이 나면 확인해봐야겠다. 짐작으론 기사의 필자도 국역본으로 읽지는 않았을 성싶다. 바슐라르의 또다른 과학철학서로는 <현대물리학의 합리주의적 활동>(민음사, 1998)이 이후에 더 출간됐다. 서두에서의 흥미로운 구절을 자주 인용했던 기억이 난다(입자설과 파동설에 관한 것이었다). 몇 차례 언급한 적이 있지만, "바슐라르, 조르쥬 캉길옘, 미셸 푸코로 이어지는 프랑스의 사상적 계보"를 다룬 책은 도미니크 르쿠르의 <프랑스 인식론의 계보>(새길, 1996)이다. 이들 대부분이 품절/절판된 상태인데, <부정의 철학>만이 아직 구입가능한 것으로 돼 있어서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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