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전격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전쟁이 내일이면 3주째로 접어든다. 여러 전망이 나오고고 있지만 확실한 건 러시아의 당초 계획과는 다르게 전황이 흘러간다는 것이고, 현재로선 러시아가 적당히 발을 빼거나(명분을 챙길 수 있을까?) 아니면 공세를 더 강화하면서 오히려 푸틴의 몰락을 자초하거나(핵전쟁까지 가지 않더라도 너무나 많은 희생자가 나올 것이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 듯싶다. 어느 경우이든 러시아가 기대했던 승리는 없을 것이다. 


러시아문학을 자주 강의하는 입장에서(나는 옐친에서 푸틴으로 이어지는 러시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이중적인 감정을 갖게 한다(우크라이나 자체가 친러시아적인 동부와 친서방적인 서부로 나뉘어 있기도 한데, 이번 러시아의 침공은 자연스레 반러 감정을 확산시키고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강화할 것이다). 그건 이번 학기에 우크라이나 출신의 러시아작가 니콜라이 고골의 전작 강의를 하면서도 느끼는 감정이다. 고골에게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분리하는 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송유관 문제로 양국관계가 나빴던 지난 2009년은 고골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였는데, 양쪽 모두에게서 고골은 멋쩍게 기념되었다). 이 문제는 한 학기 동안 내내 고심거리가 될 듯하다. 
















전쟁의 여파로 여하튼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관련서들에 주목도 생긴 듯싶다. 타이밍을 잘 맞춰 출간된 우크라이나 역사서가 나름 주목받고 있는 게 방증이다. 앞서 페이퍼를 적은 기억이 있는, 우크라이나 역사가의 두 권짜리 <우크라이나의 역사>가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한 것과 대비된다.   
















국내출판 쪽에서 우크라이나는 내게 <우크라이나>의 두 역자를 떠올리게 한다. 먼저, 주 우크라이나 대사까지 역임한 허승철 교수는 가장 적극적인 우크라이나 전도사다. 우크라이나어 사전과 우크라이나 역사서를 저술했으며 관련 주제의 번역서도 다수 펴냈다.  
















허승철 교수의 공저 가운데는 우크라이나의 민족시인의 생애와 문학을 소개한 <타라스 셰브첸코>도 있는데, 셰브첸코가 바로 우크라이나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한 시인이다. 
















국내에는 대표작 <유랑시인>을 포함해(역사학자 한정숙 교수의 번역이다) 시집이 번역돼 있다. 그밖에 우크라이나문학 전공자인 최승진 교수가 우크라이나 현대시인 선집으로 펴낸 <우크라이나의 젊은 여신들>이 우크라이나문학 관련서다. 















다시 허승철 교수로 돌아오면, 코사서스도 3국(조지아, 아르메이나,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책과 함께 번역서 <크림반도 견문록>도 펴냈는데, 우크라이나 관할이었던(사실 '영토'라고 하기엔 애매한 지역이었다) 이 크림반도가 지난 2014년 무력에 의해 러시아에 합병되었다. 
















크림반도에 있는 휴양지 얄타는 많은 러시아문학(특히 체호프 작품)의 배경이기도 하고 유명한 회담 장소이기도 하다(한국 현대사와도 관계가 깊군). 얄타 회담과 관련한 두 권의 책도 허승철 교수가 옮겼다. 우크라이나 역사와 문학과 관련해서는 이런 정도의 책들을 참고할 수 있다.


















다시 문제는 고골. 고골의 초기작들이(주로 1831-1833년에 쓰인 작품들) 우크라이나를 배경으로 한다(우크라이나는 '소러시아'로 불렸다). 작품집으로는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1,2>(1831-32)와 <미르고로드>(1835, <타라스 불바>가 수록) 등이다. 다행히 <디칸카>는 지난해에 완역본이 나와서 읽어볼 수 있지만, <미르고로드>는 수록된 작품이 분산 번역되었고 일부는 절판된 상태다. 






 


  








<미르고로드>의 수록된 작품은 네 편인데, 이 가운데 <타라스 불바>는 단행본으로 나왔고(개작본이다), <두 이반이 싸운 이야기>는 번역본에 <디칸카>에 수록돼 있다. <옛 기질의 지주>와 <비이>가 현재 읽어볼 수 없는 상태(<비이>는 절판된 <오월의 밤> 혹은 <외투>(생각의나무)에 수록돼 있다).


우크라이나 풍속과 민담을 걸쭉한 이야기로 변형해낸 고골의 작품들을 다시 읽으며(셰브첸코와 다르게 고골은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에 대해, 문화적, 문학적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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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22-03-09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러시아가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우크라이나를 닥치고 침공하는 걸 보니 구소련 연방 시절의 좋았던 한 때를 아직까지도 못잊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저도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을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까지 만들어봤는데,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선 아는 게 너무 없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나마, 크림반도 남서쪽에 붙은 세바스토폴은 젋어서 톨스토이가 군복무를 했던 곳이고, <5월의 세바스토폴>, <12월의 세바스토폴> 등등 <전쟁과 평화>의 전주곡 같은 작품들도 쓴 것으로 알고 있어서 덜 낯선데, 이번 전쟁을 볼 때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다시 읽고픈 생각이 계속 맴돕니다. 어서 빨리 전쟁 대신 평화가 찾아와야 할 텐데, 참으로 걱정입니다.

로쟈 2022-03-09 19:06   좋아요 1 | URL
네, 통제받지 않는 권력자의 오만과 오판이 낳은 비극 같습니다. 러시아 국민들도, 국제사회도 그를 통제하지 않았어요..

Sosna 2022-03-13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골의 «미르고로드»가 분산 번역된 게 아쉬운데, <옛 기질의 지주들>은 다행히 아직 구해볼 수 있는 «러시아 단편소설 걸작선»(행복한책읽기, 2010)에 수록되어 있더라구요! 석영중 선생님의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의 한 챕터에서도 다루고 있어서 참고할수 있을것 같구요.. 문학 공부하는 학부생인데 항상 페이퍼 잘 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로쟈 2022-03-14 00:12   좋아요 0 | URL
네, 음식 얘기가 인상적인 단편이죠. 갖고있는 책인데 깜박했네요. 단편소설 걸작선을 찾아봐야겠어요.~

HDBGT 2022-03-27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책 구매에 도움이 될 거 같아요 :)
 

시학은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다. 다시 나온 건 프랑스어 주석판 <시학>. 앞서 펭귄클래식판으로 나왔던 주해판 <시학>이 이번에 그린비판으로 다시 나왔다. 
















"서구 문학이론의 역사는 ‘<시학> 해석의 역사’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이미 이견 없는 고전이다. 오늘날 철학의 기원이 되는 불멸의 고전들을 재조명하는 그린비 ‘고전의 숲’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소개하는 『시학』은, 프랑스의 두 고전문법 석학인 로즐린 뒤퐁록(Roselyn Dupont-Roc)과 장 랄로(Jean Lallot)의 풍부한 주해와 함께 ‘고전의 현대적 읽기’를 시도하고 있는 책이다."


짧은 분량이지만 문학이론의 시조가 되는 중요한 책인지라 나도 여러 번 강의에서 다뤘고 국내에 소개된 모든 주석서를 읽었다. 펭귄클래식판도 마찬가지. 이번 재간본에 어떤 수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절판된 책이 다시 나와 반갑다. 
















<시학> 번역판은 다수인데, 대개 희랍어 원전 번역과 중역본으로 나뉠 수 있다. 원전 번역으로 대표적인 천병희 선생의 번역본으로 몇 가지 선택지가 있다(달라진 부분도 있다). 
















영어판을 중역한 번역본으로는 이상섭 교수의 번역과 해설이 대표적이다. 거기에 레온 골든의 해설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도 유익한 참고가 된다. 




 












그밖에 참고할 만한 번역판들 몇 종. 이종오 교수는 <수사학>과 <시학> 합본판을 다시 펴냈는데, 아직 살펴보지 못했다. 
















한편 프랑스어판의 머리말을 쓴 토도로프는 러시아형식주의를 프랑스에 소개한 대표적인 이론가로 '시학'이란 개념을 현대화한 공로가 있다. <구조시학>을 필두로 여러 권의 책이 소개되었는데, 문학이론 분야의 책은 이제 별로 안 읽히는 듯하다. 주요 저작이 모두 절판된 상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강의할 때는 <구조시학>(기억에 원제는 '시학이란 무엇인가'이고, 영어판 제목은 '시학 입문'이다)이 절판된 게 유감이었는데, 이제 보니 나머지 책들도 전멸이다(특히 <환상문학 서설>은 환상문학의 기본 이론서임에도). 여기서는 그런 책들이 있었다는 사실만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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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분자생물학자이자 노벨생리학상 수상자 자크 모노의 대표작 <우연과 필연>(1970)이 다시 나왔다. 번역본은 이번 개정판의 초판(2010) 외 범우사판과 삼성출판사 세계사상전집판 등이 있었다. 반세기 전 과학책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1970년 출간 당시 격렬한 비판과 더불어 열렬한 호응이 끊이지 않았던 이 책에서 자크 모노는 생명의 출현은 분자적 차원의 미시세계에서 우연히 일어난 ‘요란(변이)’의 결과일 뿐이라고 선언한다. 분자생물학의 기본 지식을 철학, 종교, 정치, 윤리, 문화 등의 다른 영역으로 발전시킨 이 책은 인류 사상사의 진로를 개척한 명저로 손꼽힌다.˝

요는 우연과 필연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현재로서도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해준다는 것. 말이 나온 김에, 노벨상 공동 수상자인 프랑수아 자콥의 책들(특히 <생명의 논리, 유전의 역사>도 다시 나오면 좋겠다(알라딘엔 이미지가 뜨지 않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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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투표를 마쳤다. 투표소가 (횡단보도를 건너야 해서) 5분 거리인 가까운 장소였는데, 유권자들이 줄을 잇고 있었지만 대기할 정도는 아니어서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빠져나오기까지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유권자 1인으로서의 권리 행사는 마쳤고 이제 수요일의 결과를 기다릴 따름이다(1919년 만세운동 이후 한 세기, 도약의 다음 세기로 넘어갈 것인가 다시금 30년 뒤로 퇴행할 것인가, 중대한 갈림길이 될 것이다).   
















그런 생각에 손이 닿은 책은 지지 파파차리시의 <민주주의 그 너머>(뜰북)다. 생소한 출판사에서 나왔고 책의 장정도 어수룩하지만(대학가의 제본도서 같은 인상이다) '이상한' 책은 아니다. 처음 소개되지만 저자는 일리노이대학의 정치학과 교수이고 원저는 예일대출판부에서 나왔다(원서를 구하는 김에 저자의 다른 책 <네트워크화된 자아, 그리고 탄생과 삶, 죽음>도 같이 구했다). '우리의 정치 미래를 상상하라'가 부제.


"민주주의는 국가를 지배하는 가장 이상적인 체제로 평가되어 왔다. 하지만 더 이상 그게 아니라면? 민주주의는 최종목표가 아니라 무언가 더 나은 것을 향한 과도기적 단계일 수 있다. 저자는 30개 이상 나라의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민주주의가 무엇이고 시민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의미는 무엇인지, 나라의 운영 강화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본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정부가 시민들을 더 잘 보살피고, 또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동시에 일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애쓴다. 자본주의, 미디어, 교육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생각과 그것을 몸소 경험한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미래 국정 운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예측해 본다."


 















최근 강의에서 다룬 사이토 고헤이의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덕분에(혹은 탓으로) 탈성장에 관한 책들도 몇 권 구했는데(사이토 자신은 라투슈 같은 구세대 탈성장론자들의 입장을 비판한다. '탈성장 자본주의'는 불가능하며 궁극적으로는 '탈성장 코뮤니즘'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사이토의 주장이다) 파파차리시의 책과 같이 읽어보려 한다. 
















말이 나온 김에, 사이토 고헤이의 책들. 화제작 <마르크스의 생태주의>(2018)에서 <지속불가능 자본주의"('탈성장 코뮤니즘'이란 제목이어도 무방했다)로의 급속하고 급진적인 이행이 인상적이다. 두달 동안 강의에서 읽은 <공산주의라는 이념>도 더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궁굴리게 된다. 


 














사이토 고헤이와 마찬가지로 기후변화(혹은 인류세) 시대의 마르크스와 사회주의(로도 부족하다는 의미에서 코뮤니즘이라고 적어야 하지만)에 대해 고민하는 책들도 여럿 나와있다. 같이 모아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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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22-03-05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정말 다음 세기로 넘어가길 간절히 바랍니다ㅠ
30년전이라하면 6월민주화운동 전 시대를 말씀하시는거죠? 생각만으로 암담합니다

로쟈 2022-03-06 10:31   좋아요 1 | URL
공든탑이 무너지면 안되죠.~

육포 2022-04-08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bokov 가 두 분의 댓글을 볼 수 있다면 뭐라고 할까?
Fraud(Freud)! Toilet(Eliot)! ....
 

그 자신이 하나의 장르로도 불리는 영국 작가 제프 다이어의 책이 '제프 다이어 3종'으로 다시 나왔다. 처음 국내 소개되었던 <지속의 순간들><그러나 아름다운> 등이 새 번역으로 나온 것. <인간과 사진>을 포함해 세 권이다. 
















앞서 나온 판본들이 번역에도 문제가 있었고 이미 절판된 터였다. 이번에는 제프 다이어를 제대로 음미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사진에 관해서라면 다이어는 존 버거의 후예다. 곧 존 버거의 독자라면 제프 다이어의 독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그간에 제프 다이어의 책은 모두 모아놓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행방들이 묘연하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들도 포함해서 다시 챙겨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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