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근무는 야간조
나는 오후 4시에 기상하여
카페로 출근한다
방탄소년단이 미리 와 있다
휴일이 없는 건 마찬가지구나
너희는 노래를 부르고
나는 책을 읽고
나는 야간조의 자세로 책을 읽고
하지만 퇴근은 주간조와 함께
휴일 근무수칙에 따라
나는 집에서 야근할 테지
이런 건 방탄이 필요 없을 테지
어디서건 총알이 날아올 거 같진 않아
하지만 어느덧 세뇌되어
나는 방탄소년단을 믿는다
카페는 참호가 되고
야간조는 야간전투조가 되어
나는 출근하다 말고 투입된다
나는 전투적으로 책을 읽고
가끔 신음소리를 듣는다
헤밍웨이와 함께 구급차를 운전하고
생텍쥐페리와 함께 야간비행에 나서고
나는 다리에 부상을 입고 쓰러지거나
정찰비행에서 귀환하지 않는다
이것이 전투가 아니면 무엇인가
흥얼거리다
책을 읽다가 죽는 것도
전사라고 믿는다
방탄소년단과 함께 책을 읽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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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7-08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근중 전투에 끌려나가
폭탄(책) 맞아(읽다가) 전사라.
책은 도끼도 되고 폭탄도 되고
책도 샘도 드라마틱하다는~

로쟈 2018-07-08 20:46   좋아요 0 | URL
드라마틱한 책들에 얹혀 있을 뿐이죠.^^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날인 것처럼
그렇게 살 수만은 없다
피곤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잠이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고
그렇게 오전시간을 보내고서야
오늘 하루가 인생의 마지막날이라니
오 하느님!
오늘이 그날이 아닌 당신의 축복
지리한 장마 사이 햇볕처럼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건 아무일 없는 하루
좋은 햇볕에 이불 빨래를 널면서
다시금 당신의 은총을 생각한다
완벽하지 않은 날
속 편하게 빨래를 널 수 있는 날
이 순간이 마지막 순간이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어서
조바심치지 않아도 좋은 날
그런 날은 일이 많아도
아무일 없는 날처럼 시간이 흘러간다
밀린 빨래에 세탁기만 여러 번 돌아가는 날
기분으로만 일하는 것 같은 날
나는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날이 아니어서
불현듯 흐뭇하고 축복에 감사한다
사랑의 순간이 아니어서
짜릿하지도 안타깝지도 않은 날
점심에 짜장면을 먹어도 아쉽지 않은 날
하루종일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 날
이런 날이 오늘이어서
오늘은
인생의 마지막날이 아닌 게 분명하고
오늘은 축복받은 날이 분명하고
오늘은 기념할 만하다
대체 얼마나 많은 날들이 아직 남은 것이냐
오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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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7-08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체 얼마나 많은 날들이 아직 남은 것이냐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드라마 대사가 생각나고.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체하듯 살다보니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 아니여서
축복이란걸 자꾸 잊어 버리네요.

로쟈 2018-07-08 20:47   좋아요 0 | URL
마지막날은 뭔가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죠. 어릴 적 생일날처럼...

로제트50 2018-07-09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두산 폭발이 일어나지 않아서
그가 아직은 혈액투석 받는 단계가
아니어서
감사하고 행복하게 살아요*^^*
지구, 인생 마지막 하루라도
리츄얼 하면 된거죠^^!
 

아침에 체리 한 종지를 먹고도
기운이 나지 않는다
한 접시를 먹어야 했나
아니면 한 사발
아니면 체리라고 먹은 것이 앵두였나
작은 건 앵두고 큰 건 체리라지만
자두에 비할 바는 아니다
각자가 자기 수준으로 먹는다
앵두생활자, 체리생활자, 자두생활자
그런데 버찌와 체리는 뭐가 다른가
벚나무가 동양종과 서양종이 있어 다르단다
국내산은 버찌고 수입산은 체리인가
더 달달한 게 체리여서
우리는 주로 체리를 먹고
나도 아침에 체리를 먹은 것이지만
여물이 아니어서 쟁기질할 기운이 없다
그럼 시는 무슨 기운으로 쓰는가
없는 기운으로 쓰는 게 시
체리 먹고 쓰는 시
누구는 이슬만 먹고도 쓴다지만
나는 그 수준에는 이르지 못해
꼬박꼬박 체리를 먹는다
그리고 이렇게 값을 치른다
체리 먹고 쓰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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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7-07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리__20대 딸아이가 지금도 말해요- 엄마, 미국에서 먹은 체리,
정말 맛있었는데!
딸 6학년때 뉴욕을 갔었지요. 한낮의 여름 센트럴파크와 미술관을 찾아
걸어다니던 때. 거리의 가게에서 산
체리 한 팩. 체리가 원래 이렇게 달고
맛있냐며 감탄했던 기억이 나요^^*
쌤! 체리로 기운 나나요?^^
여름엔 <맘스 터치 삼계탕>이죠!
Try! *^^*


로쟈 2018-07-07 15:07   좋아요 0 | URL
요즘 체리가 다 수입산이라는데, 신맛이 없더라고요.~
 

책은 도끼다
라스콜니코프는 옆구리에 책을 끼고
전당포 노파를 찾아간다
전당포에서는 책도 받아주는가
가진 게 책밖에 없는 가난한 대학생
라스콜니코프는 책 잡히러
전당포에 가는가
그러나 책은 도끼여서
라스콜니코프는 책등으로
전당포 노파를 내려치고
전당포 노파는 고개를 수그리며 쓰러진다
전당포 노파는 너무 아프다
전당포 노파는 머리를 긁적인다
이복동생 리자베타가 나타난다
당황한 라스콜니코프는 급하게
책을 집어던진다
리자베타도 이마에 책을 맞고 쓰러진다
이마가 얼어붙는다
가진 게 책밖에 없는 라스콜니코프는
두 여자를 책으로 쓰러뜨린
라스콜니코프는 기진하여
하숙집으로 돌아온다
전당포에는 왜 갔다온 것인가
라스콜니코프는 머리를 싸매고 눕는다
이건 아니잖나
라스콜니코프는 머리맡 책장을
다시 펼친다
죄와 벌을 다시 읽는다
라스콜니코프가 하숙집을 나선다
찌는 듯한 칠월 초순이다
얼어붙은 바다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라스콜니코프는 책에 고개를 묻는다
라스콜니코프는 열이 난다
라스콜니코프는 중얼거린다
책은 도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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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7-06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카프카가 죄와 벌을 읽고 남긴 말은 없나요?

로쟈 2018-07-07 00:13   좋아요 0 | URL
읽은 건 확실하고 <소송>과 비교도 많이 되는데, 구체적인 언급은 안 보이네요.~

syo 2018-07-0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쟨 왜 도끼를 거꾸로 들고 저러고 있냐 싶었다가 다시 확인해 보니까, 실제로 최초 타격은 도끼날이 아니라 도끼뿔이었네요. 당연히 도끼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세 번이나 읽어놓고.....

로쟈 2018-07-07 15:06   좋아요 0 | URL
네, 첫번째 살인은 날이 아니라 등으로.~
 

의미에게 꽃을 묻는다
살 만하냐고 묻는다
피우는 것 없이도
열매 맺는 것 없이도
노골적으로 말하면
뿌리 없이도
의미는 의미로 서 있는가
누구도 본 적 없는 의미는
누구 못지않은 자세로
의미를 구가하는가
날렵한가
절묘한가
의미의 안부를 묻는다
꽃보다 다급하게
의미의 안녕을 근심한다
꽃들은 무탈하다
꽃들은 무관하다
의미의 의미를 묻는다
항복할 만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래도 버티겠느냐고 묻는다
묻는다
묻어버린다

비로소 꽃이 아름답다
모양도 향기도 없는 꽃이다
누구도 본 적 없는
무의미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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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7-06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미의 안부는 모르는 척 하기로합니다
잘 있데도
잘 못 있데도
불편한 마음일테니...
이렇게 또 비겁해집니다

로쟈 2018-07-07 00:14   좋아요 0 | URL
불편하게 만드는 질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