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미잘의 장례식이라고
적어내려가던 시를 날렸다
고작 몇 줄이라도
말미잘이 화낼 일이다
말미잘의 결혼식 아니고 장례식이다
특별한 날 말미잘은 아침부터 들뜨고
말미잘은 진작 초청자 명단을 작성했지
이미 죽은 것들은 사절이지
귀신 사절
멍게와 성게는 기필코 와야 하지
언제부터 단짝이었나 멍게와 성게
그리고 말미잘이 있었지
네가 바다의 꽃이었잖니
바다의 아네모네
그런 게 학창시절이던가
너네는 요즘 식당에도 나가더라
내가 마산에서 멍게비빔밥을 먹었어
제주에서는 성게비빔밥이지
해삼은 요즘 어떻게 지내니
전복만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우리가 명동에도 진출한 적이 있던가
바닷속처럼 수족관도 활보하고
그때가 좋았지
우리도 멋졌어
이렇게 모이니 해물 장례식인가
말미잘수육에 말미잘매운탕이라니
말미잘도 이런 날이 오는 거지
붕장어와 함께 듬뿍 끓으면서
여름보양식 되는 날
우리 기쁜 젊은 날
다 보내고 나면
말미잘의 장례식
말미잘은 잠을 설치고
말미잘은 특별한 날을 맞이하지
그리고 나는 이런 기념시를 쓴다
말미잘이 기쁜 날 나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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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7-13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물장례식 초청자 명단에 소주가 왜 빠졌나 했더니
말미잘은 아직 식당에 진출하지 못~ㅋ
말미잘수육 말미잘매운탕은 무슨 맛일지 궁금.

로쟈 2018-07-14 15:23   좋아요 0 | URL
소주는 해물이 아니어서.~ 기장의 별미라네요.
 

이대로 시간이 멈춘다면
심장도 따라 멈추어야겠지
손끝도 멈추고
시도 여기까지 이대로 멈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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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7-13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일에 맺음은 있겠죠~
전 일생에서 2번 경로이탈이 있었죠.
초등 때 2년 30대 후반에 11년.
그 시기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힘들고도 좋았던 기억이 제게 강함을
주었습니다. 제 여럿 아이디 중 하나인 로제트도 이 시기에 만든 거죠. 로제트는 식물의 겨울나기 형태죠^^ 20여년만에 시작한 시쓰기는 로쟈쌤에게 어떤 의미가
될런지요~~^^

로쟈 2018-07-13 09:51   좋아요 0 | URL
여러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입막음용이죠. 폭발하지 않게.~

two0sun 2018-07-13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멈추다를 끝나다로 읽었다
다시 읽어보니 멈추다이다
멈추다가 끝나다보다 슬퍼 보인다
시의 마지막 한마디를 미쳐 쓰지 못한것처럼
이대로 시간이 끝난다면 한톨의 미련도 없으련만
이대로 시간이 멈춘다면...
한번쯤 뒤를 돌아봐야 할것처럼
 

게으른 달팽이의 노고를 상상한다
느리게 느리게 기어가는 달팽이
보다도 더 느리게 전력을 다해
느리게 기어가야 게으른 달팽이
전력을 다한 게으름이란 무엇인가
남보다 절대로 앞서서는 곤란한
이 곤란한 게으름을 등에 지고
게으른 달팽이는 일생을 다해
기필코 느리게 기어간다
가기는 가는 것인지 기진해가는 것인지
그래도 꿋꿋한 자세로
게으른 달팽이는 한 뼘의 세월을
전력을 다해 통과한다
서서히 느려터져가는 달팽이
온몸이 부서져라 느려터져가는
궁극의 게으름을 향한 사투
오늘도 느리게 느리게 기어가는
게으른 달팽이의 노고를 상상한다
고단한 여정을 마칠 그날까지
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미친듯이 느리게 기어가는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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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7-13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겨운 달팽이네요.
한뼘의 세월을 전력을 다해 통과하는 달팽이 화이팅!
전력을 다해, 온몸이 부서져라, 미친듯이 해본것이
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로쟈 2018-07-13 09:50   좋아요 0 | URL
달팽이보다야 다들 빨리빨리.~
 

내 이름은 이슈메일
이스마엘이라고 불러주게
아니 이쉬미얼이라고 해두자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구나
흰고래 모비딕은 누가 쫓는가
에이해브 선장이 등장하자
아합 선장이 뒷갑판에 나타난다
에이헙의 한쪽 다리는
향유고래를 갈아서 만들었다
에잇, 누가 누구를 쫓는 것인가
나는 일개 선원
이 세상에 노예 아닌 자가 있느냐고
나는 묻는다
이슈메일이 묻는다
바다로 나갈 때면 우리는
돛대 앞에 서 있거나
앞갑판으로 내려가거나
돛대 꼭대기로 올라가야 한다
우리는 일개 독자
늙은 선장이 아무리 후려갈겨도
참아야 하듯이 출항한 다음에는
모든 것이 숙명이다
한 번 펼친 책의 뱃머리는
다시 돌리지 못한다
무엇이 우리를 잡아끄는가
고래잡이가 어떤 건지 알고 싶다고?
네 이름을 이슈마엘이라고 불러주마
이슈메일이라고?
이쉬미얼은 어디 간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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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한 번도 뛰어본 적 없는 마라톤이 인생이면
나는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인생
작별도 필요 없는 인생

하지만 인생이 마라톤 같은 것이라면
나는 인생 같은 걸 살아보았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일이 잦았어도
어제도 걷고 오늘도 걷고

그렇지만 걷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마라톤은 그게 아니지
마라톤전투의 승리를 전하고
숨을 거둔 아테네 병사를 생각하자

쉼없이 달려 한마디 전하고 쓰러지기
마라톤의 정신은 쓰러지기의 정신
장거리의 정신이 아니라 탈진의 정신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에야 마라톤

그리고 전해야 할 한 마디 승전보
그게 승전보가 아니어도 좋다
마지막 숨과 바꿔서 토해놓을 한 마디 말
평소에 할말이 많았다면 한 권의 책

마라톤은 목숨을 건 달리기와
한 마디 말의 콤비네이션
가끔 숨이 찰 때마다 나는
마라톤 벌판을 떠올리고
나의 마지막 책을 상상한다

누군가 인생이 마라톤이라고 말할 때
한 번도 뛰어본 적 없지만
나 또한 마라토너였다고 털어놓으며
쓱 꺼내서 건넬 한 권의 책

작별의 말은 하지 않겠다
바라건대 제때 탈진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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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7-09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때에
한마디의 말(한권의 책)을.
누구나 원하는 인생의 마지막 날.
그러나 아무나 누릴수 있는 것은 아닌듯.
때를 못맞추거나
한마디의 말을 전하지 못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