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도 버스가 오지 않는
안성공도터미널 승차장 바닥에
죽은 듯 붙어 있는 나방 한 마리
죽은 건가 건드려 보려다
내게 무슨 권한이 있나 싶다
그러다 버스에 몸을 실으니
인연도 아니구나
그렇게 죽은 듯 붙어 있는 나방이었으리
죽은 건가 건드려 보려다
인연이 아니구나 떠나갔으리
그대 떠나고 나는 남은 건가 싶다
안성공도터미널 승차장 바닥에
승천을 기다리 듯 나는 숨죽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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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sdud5789 2018-09-13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께서 직접 쓰신 글인가요? 어제 저녁에 안성에서 쿤데라,농담 강의 들은 공도주민인데 괜히 반갑네요^^ 유익한 강의 너무나 고맙습니다. 다음주가 마지막이라니 너무 아쉽네요

로쟈 2018-09-13 23:13   좋아요 1 | URL
네, 주민이시군요.^^ 다음주에 뵐게요.~
 

마리에게서 연락이 없다
연락의 수단이 없는 것인가
마리에게는 아무도 없는 것인가
마리는 그럴 마리가 아니다
우리 사이는 고작 몇 광년
눈대중으로도 갈 수 있는 거리다
그럼 마리가 아니란 말인가
마리에게 전할 말이 있었다
마리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마리와는 그런 사이가 아니다
마리에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다
마리가 떠나기 전이었다
마리가 가져갈 꽃들이 한껏 피어 있었다
마리는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내가 마리라도 그랬을 것이다
마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마리는 말했다
어쩌면 마리는 이제 누구의 이름도 아니다
누구의 이름으로 마리를 부르는 것인가
마리는 어디로 떠난 것인가
마리는 누구의 마리도 아니다
마리가 보고 싶다
마리를 떠나야 하는가
마리라고 부르면
마리가 빛의 속도로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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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에서 일어난 기적에 대해서
나는 말하지 않겠다
캐리어 가방을 놔두고 한 여자가
갑자기 뛰어갔다는 얘기가 아니다
내가 어쩌다 그 가방을 감시하게
되었다는 얘기도 아니다
주인 없는 가방은 그냥 주인이 없어도
되는 가방인지 나도 기차시간이 있기에
가방 주인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도 없다
이제 아무나 들고 가도 되는 건지
이 가방은 분실물로 소속을 바꾸게 되는 건지
그런 게 뭐가 중요하다는 말인가
그러자 사라진 가방
그게 주인이 다시 찾아간 것인지
그냥 누군가 밀고 간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기적은 기척도 하지 않은 순간에
한갓 가방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는 얘기다
대전역에서 일어난 기적은
평범한 기적이다 평범하기에 기적이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얻을 수 있는 기적
가방만 하더라도 그렇다
기적은 언제든 얼마든지 적들을 만난다
무슨 일이건 일어나는 게 세상이다
얼마나 많은 걸 포기해야 기적은 달성되는지
기차가 제 시간에 도착하는 기적을 보라
기차라고 욕심이 없겠는가
여차하면 뛰어가는 건 일도 아니다
이 순간이 오기까지의 기적
그런 것 빼고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대전역을 떠났다
분명 대전역에서 일어난 기적에 대해서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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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saint 2018-09-05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모두 아직 살아있는 것이..기적이지요.
이 세상을 떠나도...기적이지요..
奇蹟이던, 汽笛이던 간에....

로쟈 2018-09-05 23:36   좋아요 0 | URL
네 일상의 기적.

2018-09-07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9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9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9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둠이 내렸다 어제는
빗길이었지 보고싶은 사람이
떠오를 것도 같은 날씨라고 생각했다
떠오르다가 가라앉는 것도
흔한 일이지 그대는 익사자

바람이 불었고
한 편의 시도 읽지 않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진 건
시도 아니고 그대도 아니었으니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더는 잃을 것도 없었다
바람은 어디에 묻히는지 궁금했다

무슨 글자라도 적고 싶었다
옆좌석의 타인들처럼 낯설었다
얼만큼 친해야 묘비명이 될 수 있는지
얼만큼 사랑해야 눈물자국이 될 수 있는지
눈물자국은 수술로 지운다는군

비가 내린다고 쓴다
비가 내릴 때까지 기다린다

누군가를 기다릴 때
나는 자유다 무슨 일을 해도
일이 아니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나는 열중한다
나는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보고싶었다고 적는다
더는 그대를 알아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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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saint 2018-09-05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내 몸에..다시 내 영혼이 깃들기를 기다린다.

로쟈 2018-09-05 23:37   좋아요 1 | URL
네 다의적으로 해석가능합니다.

물들래 2018-09-07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에 그림은 어느 작가의 작품인지요? 그림이 말을 걸어오네요.

로쟈 2018-09-09 11:05   좋아요 0 | URL
작가는 모르겠습니다. Waiting for Godot를 구글에서 검색하면 뜨는 이미지입니다.

dmsdud5789 2018-09-13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참 마음에 드네요.
 

지난번 폭염은 잘 받았니
땡볕이 요즘은 안 나와서 폭염으로 보냈다
마음은 뙤약볕인데

아쉬운 마음에 물폭탄도 보낸다
며칠을 잠 못자고 준비했다
전깃줄에 앉아서 맞아보면 더 좋을 거다

한결같은 사랑이 어디 있겠니
다음 생에 다시 만나려면
우리 원한은 품지 말도록 하자

아낌없이 모든 걸 주고 싶었다
모두 지나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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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9-01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 끝자락에 납량특집 시인가요?ㅎ
헤어지는 연인의 마지막말보다 더 무섭네요.
잘가라 우리 다시는 보지말자 하고 싶네요~

로쟈 2018-09-01 11:39   좋아요 0 | URL
여름과 작별도 겸하여. 원한을 갖지 않으려면 다 풀어야죠.~

dmsdud5789 2018-09-13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 기분이 한결 나아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