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문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신간이 나왔다. <분노와 용서>(뿌리와이파리). ‘적개심, 아량, 정의‘가 부제다. 제목과 부제를 음미해보면 대략적인 주제를 가늠할 수 있다. 분노론과 용서론으로 읽을 수 있는 이 책에서 누스바움이 제안하는 것은 이행이다. 분노의 시대에서 용서의 시대로. 서론의 제목은 ‘복수의 여신에서 자비의 여신으로‘다. 한데 이건 제목과 목차를 통한 예측일 뿐이고 실제 논지도 그러한지는 확인해볼 문제다.

˝용서는 분노를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인가? 세계적인 석학 마사 누스바움의 옥스퍼드대학 ‘존 로크 강좌’를 기반으로 한 책. 누스바움은 정의라는 개념의 기저에 깔린, 겉보기에는 양극단에 있는 두 감정, 즉 분노와 용서를 탐구한다. 격변기를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분노는 늘상 끓어올라 넘칠 지경이다. 하지만 정치적 영역의 분노와 중간 영역의 분노, 친밀한 영역에서의 분노를 적절하게 관리하는 방법을 인지하며, 이행-분노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찾아간다면 혐오와 미러링이 넘쳐나는 우리 사회가 한결 미래지향적으로 변할 것이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누스바움은 ˝불행히도, 제 책은 주제가 지나칠 만큼 시의적절한 순간에 대한민국에서 출간됩니다˝라고 적었다. 대립이나 평화냐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한반도 정세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데(다음주 북미협상의 한쪽 당사자가 ‘화염과 분노‘의 트럼프다) 그게 ‘불행히도‘에 해당하는지는 두고봐야겠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므로.

누스바움의 책도 독서가 많이 밀렸다. 이미 번역돼 나온 책 가운데서는 <혐오에서 인류애로>(뿌리와이파리)와 짝을 지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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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가 넘쳐나는 시대이다 보니 어진간한 여행서에는 둔감하게 된다. 그러는 중에 한수 가르쳐주마라고 등장한 고수 같은 이가 후지와라 신야다. 후지와라의 트레이드 마크는 ‘방랑‘. <인도 방랑>과 <티베트 방랑>을 예전에 구한 듯한데(4년 전에 이사를 하면서는 소장도서라는 사실이 무의미해졌다) 이번에 방랑 결정판인 양 <동양 방랑>(작가정신)이 출간되었다.

˝압도적인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글과 사진으로 시대를 뛰어넘어 여행서의 전설이 된 <인도방랑>, <티베트방랑>의 저자 후지와라 신야의 <동양방랑>. 제23회 마이니치예술상을 받은 <동양방랑>은 작가이자 사진가, 사상가, 평론가 등 전방위적으로 활동해온 후지와라 신야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동양의 전모를 파악하고자 길을 나선 400여 일간의 기록이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시리아, 이란, 파키스탄, 인도, 티베트, 미얀마, 태국, 중국, 홍콩, 한국을 거쳐 일본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을 기록한 이 책은 사람 사는 세상의 거짓 없는 모습을 좀 더 적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작가 나름의 육체적, 정신적 훈련의 결과물이다.˝

저자의 방랑을 흉내내볼 형편이 전혀 아닌지라 그의 방랑이 나의 방랑이 될 수는 없지만 누군가 이런 방랑기를 남겼다는 사실 자체가 위안이 된다. 어줍잖은 여행길이 뭔가 허전한 독자라면 후지와라의 방랑기로 내실을 채워볼 수 있을 것이다. 후지와라와 함께 동양의 냄새를(향기가 아니다) 독하게 맡아보아도 좋을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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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여성 정치학자이자 이론가 <정의를 위한 정치적 책임>(이대출판문화원)을 구입했더니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이후)의 재간본이다. 구간정보도 있었지만 저자 이름만 보고 주문했다. 구간도 어딘가에 있을 테지만 찾는 일이 만만찮기에, 그리고 보완된 부분도 있다고 하기에 비용은 감수하기로.

사실 구입의도는 이 책보다는 저자의 대표작 <차이의 정치와 정의>(모티브북)를 가늠해보려는 것이다. 묵직한 미국정치학회의 상도 수상한 묵직한 이론서인데 제목만으로는 얼마나 신선한지 알기 어렵다. <정의를 위한 정치적 책임>은 저자의 유작이고 논문모음집이어서 좀더 편하게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란 계산이다. 게다가 마사 누스바움의 해제(여는글)도 수록하고 있어서 ‘아이리스 매리언 영‘ 입문으로 적합해 보인다.

유작이라고 적었는데 저자는 2006년 비교적 젊은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남은 건 그녀의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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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먼 크르즈나릭의 <인생은 짧다 카르페 디엠>(더퀘스트)을 구입한 건 제목과 표지를 바꿔 재출간된 <역사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원더박스) 때문이다. 처음 나왔을 때 제목은 원서 제목대로 <원더박스>였고 출판사 이름도 원더박스여서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관심은 가졌으나 진득하게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그 사이에 재출간된 것. 제목의 원더박스는 저자가 역사를 비유한 말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호기심의 방‘이 원더박스인데 저자는 역사라는 원더박스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란 물음의 답을 찾고자 한다. 물론 그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저자의 내기다.

˝알랭 드 보통과 함께 ‘인생학교’를 대표하는 라이프스타일 철학자 로먼 크르즈나릭. 그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종교로, 심리학으로, 자기 계발로 몰려가는 사람들만큼 ‘역사’ 앞으로 다가오는 사람은 왜 없는 것인지 안타까워하며 이 책을 썼다.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살아온 방식을 탐구하다 보면, 오늘날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문제들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귀중한 교훈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게 바로 그의 생각이다.˝

‘인생학교‘ 시리즈의 책을 몇권 갖고 있는데 아직 평가할 만큼 읽지는 못했다. ‘라이프스타일 철학‘에 대해서도 판단은 유보. <역사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제목이 번거롭게 길어졌군)를 통해서 얼마간 가늠해볼 수 있겠다. <카르페 디엠>과 함께 손 닿는 곳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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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2018-06-02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의 인생학교 시리즈를 읽고 ˝원더박스˝도 읽고 있는데 제겐 눈여겨 볼 저자로 낙점됐습니다.^^

로쟈 2018-06-02 23:57   좋아요 0 | URL
네 확인이 필요하지만 다루는 주제는 흥미를 끕니다.~
 

‘이주의 발견‘은 덴마크의 경제사회학자 브룩 해링턴의 <국경 없는 자본>(동녘)이다. ‘전 세계 0.1% 부의 동선을 관리하는 자들의 이야기‘가 부제로 슈퍼리치들의 자산관리사들을 다룬 책이다. 상위 0.1%의 재정 담당 집사라고 할까.

어젯밤에 이창동의 <버닝>을 보면서 불만스러웠던 부분인데 ‘한국의 개츠비‘로 불리는 벤이 영화에서는 종수의 시점으로만 다뤄지고 있어서 끝까지 미스터리한 인물로만 그려진다(물론 일부 들여다보게 한 면은 있다. 용산참사를 다룬 그림 전시장에서 전혀 부담없이 식사하는 부르주아 가족의 모습). 그러면서 거대한 계급간 차이가 모호하게 신비화된다(종수가 이해하지 못하듯 관객도 진실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남겨진다). 발작적인 폭력은 그것이 실제이건 환상이건 간에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이창동의 다음 영화가 이 문제를 다시 다룰 수 있을까. 혹은 극영화라는 형식이 이 문제를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영화를 본 소감이다.

이 문제를 다루려면 작가지망생이 아니라 자산관리사의 시점으로 세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원작자 하루키에 대해서도 똑같은 지적을 할 수 있다). <국경 없는 자본>의 서두에서 언급되는 작품이지만 찰스 디킨스가 <황폐한 집>에서 성취한 것을 오늘의 작가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상대로 해낼 책무가 있다. <국경 없는 자본>은 그런 문제의식을 심화하는 데 요긴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가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금 회피, 불평등 문제를 다룰 때 언론과 정부는 부자와 과세제도, 공공 정책에 초점을 맞춰왔다. 확실히 이들은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제도, 정치, 자본 흐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자산관리사’라는 환원할 수 없는 요소가 여전히 남는다. 이들의 목표는 자신들의 존재뿐 아니라 고객(부자)과 고객의 자산을 대중의 시야에서 지우는 것이다. 

<국경 없는 자본>은 이렇게 투명 인간이나 다름없던 사람들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치며 독자가 이들의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게 한다. 그리고 부자들이 정당한 몫의 세금을 내고 법규에 따르도록 하고 싶다면 부유한 개인이 아닌, 그들에게 봉사하는 대리인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소개에도 나오지만 자산관리사의 역할은 ˝자신들의 존재뿐 아니라 고객(부자)과 고객의 자산을 대중의 시야에서 지우는 것이다.˝ <버닝>에서 벤의 존재가 수수께끼로만 재현되는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가 그 정체를 제대로 드러낼 수 없다면 영화 역시 더이상 현재성을 가질 수 없다.

<국경 없는 자본>과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은 국제 조세피난처를 다룬 니컬러스 색슨의 <보물섬>, 그리고 슈퍼리치들의 세계를 내부에서 들여다본 크리스티아 프릴랜드의 <플루토크라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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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5-27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닝의 원작이 하루키라는걸 알고나니
담주 영화를 보려던 마음이 싹 가시는~
(이창동 이름 하나로 보려고 했었는데)
책을 먼저 읽어볼까 생각중입니다.

로쟈 2018-05-27 20:02   좋아요 0 | URL
그래도 여러가지 생각해보게 만들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