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 강의에서 주로 다루는 건 근대소설이다. 자연스레 ‘근대‘와 ‘소설‘이 각각 어떻게 탄생하고 변모해나가는지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근대의 형성과정은 복합적이지만 나는 홉스봄의 견해에 따라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영국)과 시민혁명(프랑스)이라는 이중혁명의 결과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장기 19세기는 1789년에서 1914년까지이며 유럽 근대문학사는 이 시기 문학의 역사를 해명해야 한다.

근대 형성의 여러 지표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철도와 기차의 등장이다. 증기기관차에서부터 고속철도의 등장까지 철도의 역사는 곧바로 근대화의 역사가 된다(한국에서라면 1905년 경부철도의 개통이 중요한 분기점이다. 식민지 근대의 서막이었다). 근대소설에서도 철도와 기차가 나오는 장면들이 자연스레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에밀 졸라도 루공-마카르 총서의 한권을 철도에 할애한다. <인간짐승>의 주인공이 기관사인 것은 그 의도의 결과다). 근대소설에 대한 이해에 철도의 역사에 대한 참조가 필수적인 것은 그 때문이다.

철도의 역사를 다룬 책이 몇권 나와있지만, 크리스티안 월마의 <철도의 세계사>(다시봄)은 ‘결정판‘으로서 의미가 있다. ‘철도는 어떻게 세상을 바뀌놓았나‘가 부제. 각 대륙과 각국의 철도 역사를 망라하고 있어서 전체적인 시야에서 변화의 과정을 살펴보도록 해준다. 이 주제의 책들을 참고한다면 소설에서 철도가 나오는 장면들이 다르게 읽힐 것이다(러시아문학 가운데서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크로이체르 소나타>, 그리고 도스토옙스키의 <백치> 등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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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9-05-26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나카레니나의 기차와 역은 소설보다는 영화장면으로 떠올라 소설을 읽으면서도 영화에 의해 지배받았던 것 같아요 수증기와 두꺼운 외투 큰 가방 추위로 젖은 눈(eye) 흑백의 러시아..가짜에 의해 진짜가가려져버린걸까요는ㅎㅎ

로쟈 2019-05-26 23:05   좋아요 0 | URL
그레타 가르보를 떠올리게 되네요.^^
 

헤겔 전공자의 흥미로운 책이 나왔다. 남기호 교수의 <헤겔과 그 적들>(사월의책). 제목부터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패러디하고 있는데, 요지 역시 헤겔에게 들씌어진 그와 같은 오해를 교정하겠다는 것이다. 포퍼는 열린사회의 적들로 플라톤과 헤겔, 마르크스를 꼽았었다. 전체주의 사회의 철학적 원흉들이라는 것.

비단 포퍼만의 견해는 아닌데 프로이센의 ‘국가주의 철학자‘라는 게 헤겔의 전형적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헤겔 당대의 철학적 논쟁 상황을 복원하여 헤겔의 입장이 과연 무엇이었던가를 다시 검토한다. 주로 다루는 것은 헤겔의 <법철학 개요>를 둘러싼 논쟁이다.

헤겔 철학의 한 국면을 자세히 다룬 책이어서 곧장 읽기에는 난점이 있는데 미리 저자가 옮긴 헤겔 입문서 <헤겔: 생애와 사상> 정도를 참고하는 게 좋겠다. 그리고 헤겔과 마르크스를 겨냥한 <열린사회와 그 적들2>(민음사)도 오랜만에 다시 들춰볼 수 있겠고. 유감스럽게도 포퍼의 책은 아직도 개정되지 않았다(표지갈이 해서 다시 나온 1권과 견주더라도 2권은 방치상태다). 독자 입장에서는 방조자들이야말로 칼 포퍼의 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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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지신경학자 매리언 울프의 신작 <다시, 책으로>(어크로스)의 부제다. ‘읽는 뇌‘ 분야의 권위자로 독서와 난독증에 관한 첫번째 책 <책 읽는 뇌>(살림)로 우리에게도 알려진 저자다. 나부터도 관심을 갖던 주제로 디지털 매체가 읽는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연구결과를 담고 있는 게 <다시, 책으로>다.

˝매리언 울프는 역사와 문학, 과학을 넘나드는 다양한 자료와 생생한 사례를 토대로 오늘날 기술이 읽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이 인류의 미래에는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나아가 문자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가장 커다란 공헌인 비판적 사고와 반성, 공감과 이해, 개인적 성찰 등을 지켜나가기 위해 우리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도 살펴본다.˝

핵심 요지 가운데 하나는 ˝‘순간접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뇌가 인류의 가장 기적적인 발명품인 읽기(독서), 그중에서도 특히 ‘깊이 읽기’ 능력을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독서 현장에서의 추정과 다르지 않은데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제공한다는 점이 책의 의의로 보인다. 제목을 보완하자면 이렇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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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곡한 강의일정 때문에 관심도서들을 제때 못 읽고 지나치곤 하는데 롭 리멘의 <정신의 고귀함>(오월의봄)도 그 가운데 하나다. 저자는 네덜란드의 ‘공공 지식인이자 작가‘라고 소개되는데 <정신의 고귀함>이 처음 번역된 책이라 생소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 대한 관심은 순전히 책의 제목 혹은 주제에 대한 반응이다.

˝네 편의 짧은 에세이로, 문명의 본질은 무엇인지,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지, 어떻게 문명과 인간성이 상실되어가는지, 지식인의 책무는 무엇인지, 자유란 무엇인지, 문화와 예술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책이다.˝

아무튼 나로선 제목에 끌려 영어본까지 구했는데 막상 읽을 읽어볼 여유가 없었다. 다시금 떠올리게 된 건 <존엄하게 산다는 것>(인플루엔셜)이란 책이 눈에 띄어서다. 저자 제럴드 휘터는 독일의 저명한 신경생물학자(뇌과학자)라고 한다. 뇌과학자가 품격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답한다고 하니까 흥미를 갖게 된다.

˝인간다운 삶, 품격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게랄트 휘터가 필생의 연구에서 길어 올린 통찰을 담은 이 책은 신경생물학과 발달심리학의 관점에서 21세기 복잡한 세계를 헤쳐나가기 위한 방법으로 ‘존엄’을 제시한다.˝

독일 아마존의 베스트셀러였다고 하는데 독일 독자들은 어떤 책에 반응하는지 참고할 수도 있겠다. 덕분에 다시 상기하게 된 <정신의 고귀함>과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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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강의중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이 점차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언급했는데 그런 추이에 딱 어울리는 제목의 책이 나왔다. 스튜어트 제프리스의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삶과 죽음>(인간사랑)이다. 제목으로만 보면 ‘프랑크푸르트학파 평전‘에 해당한다. 부제는 ‘21세기 비판이론‘. 흔히 ‘비판이론‘으로 불리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이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짚어보려는 시도겠다. 목차와 자세한 소개가 뜨지 않아서 가늠하긴 어렵지만 제목과 부제만 보자면 그렇다.

발터 벤야민이 책들이 상대적인 주목을 받은 적이 있지만 대체로 프랑크푸르트학파를 다룬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은 없다. 대중과 문화산업에 지극히 비판적인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기본 입장을 고려하건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론적 주장의 타당성이 다수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다. 어느덧 비판이론도 한때의 이론으로 사라져가는 듯싶지만 무엇을 기억하고 남길 것인지 꼼꼼하게 되새겨봐야겠다(개인적으로는 지난 겨울에 아도르노의 평전을 몇 권 구입했다).

‘프랑크푸르트학파 평전‘에 해당하는 책으로는 과거 마틴 제이의 <변증법적 상상력>이 소개됐었지만 절판된 지 오래인 것 같다. 제프리스의 책이 그 공백을 채워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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