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을 주제로 두권의 책이 나란히 나와서 눈길을 끈다. 제목만 보면 상반된 주장을 담고 있을 듯한데, 엘리자베스 시걸의 <사회적 공감>(생각이음)과 폴 블룸의 <공감의 배신>(부키)이다. 두 저자의 전공은 각각 사회복지학과 사회심리학이다.

먼저 <사회적 공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논지를 전개한다. 사회적 공감이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는 것.

˝이 책은 공감을 개인적 공감과 사회적 공감 모두를 포함하는 폭넓고 대단히 중요한 개념으로 정의한다. 개인적 공감은 대중적 차원이나 매체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공감’ 개념이며, 사회적 공감은 개인적 공감에 토대를 두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세상을 보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사회적 공감을 하려면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야한다고 말한다. 특히 우리와 외모가 다르고, 우리 주변에 살지 않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은 사람들의 입장에 서야 한다.˝

반면에 <공감의 배신>은 제목 그대로 공감에 반대한다. 부제도 ‘아직도 공감이 선하다고 믿는 당신에게‘다. 통념에 반하는 주장을 제시하기에, 더 흥미를 끄는 쪽.

˝세계적인 심리학자인 폴 블룸은 ‘나는 공감에 반대한다!‘라는 도발적인 선언을 던진다. ‘공감은 형편없는 도덕 지침‘이며, ‘우리는 공감이 없을 때 더 공평하고 공정한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공감은 극단주의나 인종차별주의로 우리를 몰고 갈 수 있으며, 비합리적이고, 근시안적일 뿐만 아니라 공감하지 않는 대상을 향한 폭력을 유발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상식에 반하긴 하지만 또 일리가 없는 견해도 아니다. 얼마나 탄탄한 주장을 펼치고 있는지는 실물을 봐야 알겠다.

공감이라는 주제 때문에 떠올린 화제작이었던(저자가 방한하기도 했다)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민음사)다. 긴가민가해서 주문하려고 하니 구입한 책이다. 다시 구입하기는 뭐하고 찾으려고 하니 일이다. 장서가라는 건 자신에게도 허울일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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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저공비행‘을 서재의 문패로 달고 있지만, ‘로쟈‘라는 주인장 이름을 뺐다면 ‘게으른 저공비행‘이 되었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낸 자작 문집 제목이기도 했다.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고른 것이 휴식에 관한 책이다. 로버트 디세이의 <게으름 예찬>(다산초당).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이 부제다. 원제를 보니 ‘레저의 즐거움‘이다.

저자는 호주의 러시아문학자인데, 번역된 책 이전에 <사랑의 황혼: 투르게네프와 함께 하는 여행>의 저자로 먼저 접했다(확인해보니 지난 5월에 구입한 책이다). <게으름 예찬>이 처음 번역된 책인데 <사랑의 황혼>을 포함해서 더 나오면 좋겠다. 호주의 러시아문학자이면서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엿볼 겸. <어느 어머니의 수치>라는 제목의 책이 자서전이다.

˝저자는 고전문학 작품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요시다 겐코의 <쓰레즈레구사>, 시트콤 ‘핍 쇼‘와 다큐멘터리 ‘스시 장인: 지로의 꿈‘ 그리고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까지,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경유하여 ‘진정한 휴식’이라는 키워드를 편안하고 위트 있게 풀며, 우리에게 지적 만족감까지 선사한다.˝

며칠전 로버트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강의하고 스티븐슨의 평전도 주문했는데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까지 썼는지는 미처 몰랐다(연보에 나오지 않았다).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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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중독에 대한 최고의 연구서‘(네이처)라는 평판의 책이 번역돼 나왔다. 애덤 알터의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부키)이다. ‘무잇이 당신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검색하게 만드는가‘가 부제로 저자는 테크놀로지 시대의 새로운 재앙으로 ‘행위 중독‘을 지목하고 그 문제점과 처방(해독)을 제시한다(그런 점에서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뒤를 잇는다).

˝저자는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낳은 이 모든 강렬하고 매혹적이지만 치명적인 체험에 대한 강박적 사로잡힘을 ‘행위 중독‘이라고 부르면서, 흥미진진한 동시에 심각한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테크놀로지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것이 편리와 유익을 가져다주느냐 아니면 중독과 약탈, 해악을 유발하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테크놀로지 산업은 중독 유발 쪽으로 현저히 기울어 있다.˝

분명 편익과 유해성 사이의 대차대조가 필요하지만 스티브 잡스를 포함해 뉴미디어와 스마트폰시대의 구루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이러한 기기의 사용을 엄격히 제한했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마약상의 원칙을 따른 것. 곧 ˝자신이 공급하는 물질에 절대 취하지 마라˝는 것. 물론 ‘포노사피엔스‘ 시대에 스마트폰과 여러 온라인 플랫폼은 매우 강력한 수익창출원이다(마약이 그러하듯이). 바야흐로 세계는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중독자들)과 그들을 통해서 막대한 부를 챙기는 사람들(테크놀로지 마약상)로 양분되는 게 아닌가 싶다.

너무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데 쓰고 있는 나부터도 중독 레벨이 어느 정도인지 따져봐야겠다. <포노 사피엔스>의 독자라면 필독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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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08-27 0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프로이트>(마리서사)를 누워서, 그리고 앉아서 슬렁슬렁 읽다가 최근에 나온 에드워드 호프먼의 <아들러 평전>이 생각났다. 몇년 전에 화제작 <미움 받을 용기>를 계기로 몇 권 읽은 기억이 있는데 뭔가 마무리는 짓지 못한 느낌. 찾아보니 <삶의 의미> 같은 책을 읽지 않아서였는지도(최소 두 종의 번역본이 있는 듯싶다).

일차적인 건 책을 찾는 일인데, <아들러 평전>은 최근 책이어서 어렵지 않겠지만 <삶의 의미>에 대해서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두권 다 갖고 있음에도 그렇다. 삶의 의미에 앞서 책의 의미에 대해 묻게 된다.

프로이트와 융의 경우에도 대표 평전들이 소개되어 있기에 <아들러 평전>으로 구색이 맞춰진 느낌이다. 책소개는 이렇다.

˝알프레트 아들러라는 인물과 그의 개인심리학 이론을 새롭게, 그리고 깊이 있게 다룬 책이다. 아들러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전기이며, 현장 심리학자이자 전기 작가로 미국 예시바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대중을 상대로 긍정 심리학에 대한 강연을 펼치고 있는 에드워드 호프먼 교수의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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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을 한주 앞두고 한일관계가 ‘경제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아베 정부의 오만과 오판이 사태를 불러일으키고 또 악화시키고 있는데 장기적으로 한일관계 재정립의 좋은 계기가 될 듯싶다. 역설적이지만 그렇다. 은닉해 있던 ‘친일파‘(매국세력)가 커밍아웃하고 있는 것도 이번 사태의 소득이다. <파우스트>에 나오는 메피스토펠레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베는 ˝항상 악을 행하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선을 행하는 힘의 일부˝다. 후쿠시마 원전 폐기물의 꼼수 처리 시도만 빼고.

이번주에 나온 가장 묵직하면서 시의에 잘 맞는 역사서가 ‘걸작 넌픽션‘ 시리즈로 나온 존 톨런드의 <일본 제국 패망사>(글항아리)다. 거의 1400쪽 분량. 원제가 ‘더 라이징 선‘이니까 ‘떠오르는 태양‘(욱일)이어서 번역본 제목과 무관할 듯싶지만 부제가 ‘일본제국의 몰락과 패망1936-1945‘다. 간단히 말해서 ‘일본 제국 패망사‘. 사실 우리보다도 아베와 그 무리들이 정독하고 교훈을 얻어야 하는 책이다.

저자 톨런드는 괴력의 전쟁사학자로 평전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페이퍼로드)의 저자이기도 하다. 독일과 일본 현대사에 두루 정통하다는 것인데 2차세계대전사를 중심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희소한 사례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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