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 고전 번역으로 이름이 높은 김덕영 교수가 ‘한국 자본주의 정신‘을 해부한 책을 내놓았다. <에리식톤 콤플렉스>(길). 이론사회학자의 드문 시도이기에 흥미를 끈다. 저자는 근대사회에 대한 이론적 해명작업에 주력하고 있는데 <환원근대>와 <루터와 종교개혁> 같은 전작이 사전 정지작업이라면 <에리식톤 콤플렉스>는 이론의 적용을 통한 실제 분석에 해당한다.

˝한국의 독특한 역사적 체험, 즉 한국의 근대화 과정 전반을 일제강점기인 식민지 시대부터 지난 이명박 정부 때까지를 사회학적 분석 대상으로 삼아 한국의 근대화가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개신교에 의해 시민계층적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기형적 자본주의화 과정을 밟아왔음을 밝혀내고 그것을 ‘에리식톤 콤플렉스’(에리식톤Erysichthon은 그리스 신화에 오만하고 불경스러운 부자로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느끼는 저주를 받아 끊임없이 먹어치우는 상징으로 등장한다)라는 새로운 개념 도입으로 구체화·명료화한다. 이는 곧 돈과 물질적 재화에 대한 무한한 욕망에 다름 아니며, 이것이 바로 한국 자본주의의 정신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자연스럽게도 저자에게 모델이 됐을 책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 대입해보자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 자리에 들어간 것이 한국의 경우에는 ‘에리식톤 콤플렉스‘라는 것. 하지만 ˝돈과 물질적 재화에 대한 무한한 욕망˝이 한국적 특수성에 해당하는지는 의문이다. 자본주의를 추동하는 보편적 욕망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에리식톤 콤플렉스‘라는 제목이나 개념도(‘에리직톤‘이 통용 표기 아닌가?) 이론을 전공한 학자의 제안으로서는 어색하다. 아무래도 비유에 해당하기 때문에. 부제 ‘한국 자본주의 정신‘를 살리는쪽이 낫지 않았을까. 읽기 전 소감이 그렇다는 것이고 저자의 분석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읽어봐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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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미래(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파멸과 몰락으로서의 미래)를 예언하는 두 권의 책이 나란히 나왔다. 앨프리드 맥코이의 <대전환>(사계절)과 크리스 헤지스의 <미국의 미래>(오월의봄)다. 먼저 <대전환>은 아주 노골적이게도 ‘2030 미국 몰락 시나리오‘가 부제다.

˝맥코이는 <대전환: 2030 미국 몰락 시나리오>에서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뒤인 2030년이면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가 끝날 것이라는 징표들을 좇으며, 1890년대의 미국스페인전쟁부터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대를 거쳐 21세기 사이버·우주전쟁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미국제국이 걸어온 한 세기를 돌아본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모든 제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미국제국 또한 걷게 될 몰락의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이미 여러 권의 책을 통해 소개된 미국의 진보 언론이 크리스 헤지스의 신작도 미국이 미래를 부정적으로 본다. <미국의 미래>의 부제가 ‘7개 키워드로 보는 미국 파멸 보고서‘일 정도다.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의 현실을 일곱 개의 키워드로 파헤친 르포르타주다. 쇠망, 헤로인, 노동, 사디즘, 도박, 증오, 자유라는 핵심 키워드로 구성된 이 책은 현대판 소돔과 고모라로 몰락한 퇴폐적이고 대중 착취적인 미국의 현실을 고발한다.˝

단지 미국의 파멸만을 예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는 거울도 제공한다. 저자의 ‘한국 독자를 위한 서문‘을 직접 참고할 수 있고, 책소개도 그 점을 놓치지 않고 있다.

˝크리스 헤지스는 함부로 희망을 얘기할 수 없는 미국의 현실에 개탄하며, 자본 친화적인 정부와 소수 거대 자본가들의 독점적 무대가 된 미국의 경제시장을 들여다본다. 기업 국가의 횡포에서 존엄을 착취당하고 삶을 저당 잡힌 개인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우리는 작금의 현실을 반추한다. 과연 미국에 희망이 있는가? 물신주의가 팽배하고 자본주의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이 세계에서 희망을 말할 수 있는가? 이는 과연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국한한 이야기인가?˝

미국의 대전환은 우리에게도 필연적으로 대전환의 시대다. 시대의 좌표와 향방을 가늠해보기 위해서라도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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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학 내지 문학 속의 여성을 주제로 한 강의도 자주 하기에(내년 봄학기에는 19세기 영국 여성문학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페미니즘 관련서를 챙기는 편이다. 그래도 하도 많이 나오고 있어서 빠뜨리는 책도 있다. 그러다 발견한 책이 조안나 윌리엄스의 <페미니즘은 전쟁이 아니다>(별글)다. 제목과 부제 ‘왜 우리는 젠더 전쟁에서 자유로워져야 하는가‘가 저자의 문제의식을 어림하게 해준다.

˝저자 조안나 윌리엄스는 다양한 통계와 세밀한 분석을 통해 페미니즘이라는, 가장 현대적인 동시에 가장 오랫동안 옛 유령에 사로잡혀 있는 사상을 해부한다. 오늘날 페미니즘은 남자를 태생적인 악마이자 파괴자로 간주해, 여자들에게 지나치고 그릇된 피해의식을 심어줌으로써 도리어 여성의 지위를 더욱 격하한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성별 간 불만을 가중할 뿐, 영광스러운 페미니즘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진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외면하고 있다.˝

아마도 관건은 현재 혹은 현단계 여성의 상태에 대한 진단이리라. ˝페미니즘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진 긍정적인 변화˝를 어떻게 평가할지, 그래서 전선을 어떻게 구성할지의 문제. <페미니즘은 전쟁이 아니다>가 여성을 향한 제안과 호소라면 최근에 나온 마이클 코프먼의 <남성은 여성에 대한 전쟁을 멈출 수 있다>(바다출판사)는 젠더 전쟁에 임하는 남성들을 설득하는 책이다. ‘젠더 평등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가 부제. 젠더 평등을 위하여 더 격화된 젠더 전쟁이 필요한지, 아니면 전쟁의 종식이 요청되는지 생각해볼 문제다.

최근 개봉한 영화 <82년생 김지영>도 원작과 마찬가지로 이 문제에 대한 토론거리를 제공해준다. 소설과 영화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생산적인 토론의 화두를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아야 할 것이다(어제 본 영화는 생기가 부족한 소설(나는 ‘자료소설‘이라고 불렀다)에 현실감을 불어넣고 있어서 사줄 만했다. 다만 간접광고가 주연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몰입을 방해해 아쉬웠다. 거실과 침실 서가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만 꽂아놓은 것은 과도한 설정 아닌가. ‘상업영화‘라는 걸 그렇게 노골적으로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던 건지).

다른 한편으로 크리스틴 앤더슨의 <여성혐오의 시대>(나름북스)는 여전히 ‘전쟁상황‘임을 웅변하는 책이다. ‘페미니즘은 끝났다는 모함에 관하여‘가 부제. ˝교육, 문화, 직업, 성적 지향, 사회 계급 등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서 성 평등이 달성되었다는 통념은 급기야 성차별의 희생자가 남성이 되었다는 주장으로 발전했다. 이 책은 대중문화와 미디어에서 개인주의가 페미니즘을 대체하고 안티 페미니즘 정서가 사회에 확산한 현실에서 현대 여성혐오의 본질과 함의가 무엇인지 고찰한다.˝

제1세계에서 도착한 두 권의 정세판단이 이처럼 상이하기에 독자로서도 어려운 판단에 몰리는 것 같다. 젠더 전쟁은 과연 어디쯤에 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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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명철 교수의 프랑스혁명사 10부작이 완결되었다. 2015년말에 청 두 권으로 발을 뗀 여정이 최근 마지막 두 권이 추가되면서 만 4년이 되기 전에 마무리되었다. 9권 <공포정으로 가는 길>(여문책)과 10권 <반동의 시대>가 그 마지막 두 권이다. 프랑스문학을 강의하면서 아무래도 자주 언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 프랑스혁명의 경과와 의의인데 이만한 규모의 국내서가 나온 것은 이례적이면서 반가운 일이다. 게다가 무탈하게 완간되어 다행스럽다. 출간의 의의는 이렇게 소개된다.

˝세계 모든 혁명의 맏형 격이자 민주주의의 첫 실험장이었던 프랑스 혁명에 대한 역사적 의미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퇴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 양의 피를 뿌리며 진행된 프랑스 혁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반면 230년이나 흐른 현재 우리 민주주의의 수준이야말로 가히 세계 제일이라 할 만하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민주시민이 프랑스 혁명의 실패 요인을 밑거름 삼아 세계사에 길이 남을 ‘촛불혁명’을 완수하는 데 매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국형 혁명의 여정을 나는 민주주의 제도의 도입(1948)부터 지난 촛불혁명(2016)까지 장기적인 과정으로 본다. 프랑스혁명에서라면 대혁명(1789)부터 제3공화정 수립(1870)까지의 여정이다. 대락 80년 안팎의 스케일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하나의 표준형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 사이 각 국면에 대해서도 비교해볼 수 있는데 향후 그런 비교에 도움이 될 만한 책도 나오면 좋겠다. 프랑스혁명사와 관련하여 이 10부작 외에 요긴하게 참고할 수 있는 책은 가와노 겐지의 <짧게 쓴 프랑스혁명사>(두레)다. 분량 대비 가성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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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 좀바르트의 <전쟁과 자본주의>(문예출판사) 덕분에 자크 파월의 책들을 소환한다. 앞서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오월의봄)가 소개된 저자인데 최근에 <자본은 전쟁을 원한다>(오월의봄)가 추가되었다. 내용은 제목으로 어림되는 책이다.

˝자크 파월은 전작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에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유는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의 이상을 수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자본가들과 특권층들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 수없이 많은 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또 다른 얼굴을 고발한 바 있다. <자본은 전쟁을 원한다>에서 자크 파월은 전작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파시즘과 자본주의의 기막힌 밀착 관계를 파헤친다. 미국 및 독일 대자본과 히틀러 사이의 협력 관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책이다.˝

다시 말해 나치 독일과 미국 재개(자본)의 협력관계를 폭로하는 책이다. 이런 내용은 영상으로도 만들어져 많이 알려지면 좋겠지만 아마도 어렵겠다. 자본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에. 원서를 찾아보니 원제는 <빅 비즈니스와 히틀러>다. 파월의 또다른 책은 1차세계대전을 다룬 <거대한 계급전쟁 1914-1918>이다. 내친 김에 마저 번역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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