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책이 한권 눈에 띄어서 '이주의 발견'으로 적는다. 마크 바우어라인의 <가장 멍청한 세대>(인물과사상사, 2014). '디지털은 어떻게 미래를 위태롭게 만드는가'란 부제에서 내용을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중요한 건 이를 입증할 만한 데이터인데, "국가 규모의 방대한 조사·연구 결과와 다양한 전문가 의견은 그의 논지를 견고하게 뒷받침해준다"고 소개돼 있어서 믿어보기로 했다. 저자는 에모리대학 영문과 교수이고, 책은 2009년에 나왔다.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청림출판, 2011)과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원서는 카의 책이 한 해 더 늦게 나왔다). 소개는 이렇다.

 

오늘날 젊은이의 지적 능력은 미디어나 전자 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에 능통하고 정신없이 바쁜 고교 졸업반 아이들에게 몇 가지 지적인 질문을 던지면 어떨 것 같은가. 이들은 대체로 체크카드, 휴대전화, 마이스페이스 페이지, 파트타임 일자리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지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뭐든 잘 알 것 같은 당당함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 필립 로스가 2000년 <휴먼 스테인>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가장 멍청한 세대’라는 표현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인류 역사상 물질적 조건과 지적 성취 사이에 이토록 깊은 골을 만든 집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이토록 많은 기술 향상을 겪고도 이토록 보잘것없는 정신 발전을 이룬 이들도 없었다. ‘가장 멍청한 세대’의 탄생과 특징을 지식, 독서, 영상, 학습, 전통, 미래 등 총 6장에 걸쳐 상세히 기술한다.

문학비평가 해럴드 블룸이 추천사에서 한 마디 거들었는데, "독서의 종말이라는 우울한 주제를 다루었으며, 우리가 시급히 생각해보야야 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안 그대로 독서를 주제로 강연을 할 때면, 나도 비슷하게 우울한 어조 내지 냉소적 어투로 말할 수밖에 없는데 '가장 멍청한 세대'는 과연 자신의 '멍청함'을 알까, 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상황은 코믹하기까지 하다. 많은 걸 기대할 수 없지만, 책과는 담을 쌓은 젊은 세대가 좀 읽어봤으면 싶다...

 

14.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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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데이비드 랜들의 <잠의 사생활>(해나무, 2014)을 고른다. 원제는 <드림랜드>이고 대략 '잠과학의 특이한 모험'이 부제. 번역본의 부제는 '관계, 기억, 그리고 나를 만드는 시간'이다. 매일같이 피곤한 일정이 이어지다 보니 이런 책을 베개 삼아 자고픈 생각이 굴뚝 같다(아예 베개를 표지로 한 것이 맘에 든다).

 

 

저자는 '현재 로이터 통신사의 수석기자이자 미국 뉴욕 대학 저널리즘 겸임교수'. 잠에 대한 책을 쓸 일은 없어 보이는데, 소개에 따르면, "잠을 자다가 다치는 바람에 이 책을 쓰게 된 데이비드 랜들은 각계의 전문가들과 심도 깊은 인터뷰를 하고, 수백 편의 참고 문헌을 조사하면서 알게 된 정보를 바탕으로 실제로 자신의 수면 장애 개선 계획을 세울 수 있었고,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에필로그로 끝맺으면서, 잠자리 개선을 통해 인생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어떻게 해야 자다가 다치게 되는지 모르겠지만('잠버릇' 때문이라고 나오는데 자세한 건 읽어봐야 알겠다) 여하튼 수면 장애가 있는 독자나 잠이 부족한 독자들에겐 흥미를 끌 만한 책이다(그렇다고 잠을 줄여가며 읽을 책은 절대 아니고!). 더불어 수면과학 내지 수면의학의 세계에 대해서도 좀 들여다볼 수 있겠다(국내엔 <수면의 약속>(넥서스, 2007) 같은 책이 수면의학서로 분류될 수 있겠다).

저자의 충격적인 경험담을 시작으로 잠에 얽힌 역사, 문화, 심리, 과학, 진화생물학, 인지과학, 신경학, 정신의학, 수면의학을 파헤쳐 알게 된 신비로운 잠의 면모와 기이하고 흥미로운 사례를 다채롭게 엮어서 들려준다. 이를 위해 저자는 끈질기게 파고드는 집요함으로 적재의 수많은 전문가들을 인터뷰하고 수백 편의 참고 문헌을 조사했다. 넘쳐나는 유용한 정보를 특유의 재치가 돋보이는 경쾌한 필치로 독자들이 알기 쉽게 풀어냈다.

 

아무려나 참 다양한 책이 나온다 싶다. 책의 세계는 무궁하다고 할까. 여하튼 다시 밤이다. 모두들 수면장애 없는 행복한 잠자리가 되시길 바란다. 굿나잇!..

 

14.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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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쌀쌀한데다 감기라도 걸릴세라 집밖으로는 한 걸음도 나가지 않은 채 주말을 보냈다. 도서관에 반납할 책들이 있었지만 한주 연장하고서. 그러고 지금은?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문학동네, 2014)에서 인용하자면 "독자에게 과거란 어떤 책을 읽지 않은 상태를 뜻하고, 미래란 어떤 책을 읽은 상태를 뜻한다. 그렇다면 독자에게 현재란? 어떤 책을 읽고 있는 상태다."(11쪽) 정확하게는 '어떤 책들을 읽고 있는 상태'라고 해야겠다. <데리다 평전>에서 <삶은 다른 곳에>까지 오늘도 십여 권의 책을 펼치고 덮었다. 그중 두어 권은 내일까지 완독하게 되리라. 곧 '읽은 상태'가 되리라.

 

 

아직 읽지 않은 상태이고 조만간 읽은 상태 모드로 바뀔 거 같지 않지만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책 두 권이 새로 출간되었기에 같이 묶었다. 데이비드 하비의 <자본의 17가지 모순>(동녘, 2014)과 자크 비데/제라르 뒤메닐의 <대안마르크스주의>(그린비, 2014)다.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로 알려졌지만 근년에 소개되는 책들로만 보자면 하비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불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겠다.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창비, 2011)와 <자본이라는 수수께끼>(창비, 2012)에 이어서 <자본의 17가지 모순>까지 펴냈으니 말이다. 원제는 <자본주의의 17가지 모순과 종말>이다. 번역본의 부제는 '이 시대 자본주의의 위기와 대안'이라고 돼 있지만, 제목만 보자면 17가지 모순 때문에 자본주의가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는 걸로 읽힌다. 소개는 이렇다.

세계적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이자 사회이론가인 데이비드 하비는 이 시대의 위기를 제대로 진단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여전히 자본을 잘 알아야 한다고 설파한다. 적을 알아야 적을 이길 수 있는 방법도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비는 이 책을 통해 자본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자본의 작동이 우리 삶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지 많은 사례를 통해 명쾌하게 분석한다. 문화평론가 문강형준의 평을 빌리자면 “이 책은 신자유주의의 전면화로 인한 생활세계의 황폐화와 반복되는 경제위기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자본의 동학’이라는 거대한 문제에 접근할 수 있게 도와준다”. 

'자본의 동학' 바깥에 있는 게 아닌 이상, 이런 책을 안 읽는 건 우리의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

 

 

<대안마르크스주의>는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비데와 경제학자 제라르 뒤메닐의 공저다. 자크 비데의 책은 <'자본'의 경제학, 철학, 이데올로기>(새날, 1995)가 오래전에 소개된 바 있고, 제라르 뒤메닐은 도미니크 레비와의 공저 <자본의 반격>(필맥, 2006),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그린비, 2009), <신자유주의의 위기>(후마니타스, 2014)로 국내 독자들에겐 나름 친숙하다. <대안마르크스주의>는 2007년작.

마르크스주의를 역사적 동역학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신자유주의 체제의 흐름을 분석하며 마르크스주의가 갖는 현대성을 드러내는 책이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각자 활동해 온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비데와 경제학자 제라르 뒤메닐의 오랜 시간에 걸친 토론을 통해 구성된 작품이다. 철학자와 경제학자의 각각 색다른 시선은 마르크스주의에 내재된 다채로운 맥락을 독자들에게 선명하게 드러낸다. 저자들은 마르크스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생산관계나 계급들에 대한 명제들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수정하고 재정식화하며, 마르크스주의가 가진 한계와 공과(功過)를 분명히 한 후 새롭게 갱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의 현재성을 드러내기 위해 현대 사회의 변화 과정과 경제위기마다 나타났던 현상을 철저하게 분석하면서 오래된 이론처럼 느껴지는 마르크스주의가 여전히 현대 자본주의 비판의 주된 틀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은 책들이 드물지 않게 출간돼 있지만, 프랑스의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와 경제학자의 견해니 만큼 참고해볼 만하다.  부제대로 '새로운 세계를 위한 마르크스주의적 대안'에 눈뜨게 해줄지도 모른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은 책'이란 말을 꺼낸 김에, 다다 마헤슈와라난다의 <자본주의를 넘어>(한살림, 2014)도 보탠다. <건강한 경제모델 프라우트가 온다>(물병자리, 2008)란 제목으로 처음 소개됐던 책인데, 그 개정판이다. 원제가 <자본주의 이후>. 저자 마헤슈와라난다는 미국 출신의 출가 수행자로 인도의 철학자이자 경제사회 이론가인 P.R. 사카르의 계승자다. 사카르가 계발한 프라우트 모델은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개발이 가능한 비전, 자급자족경제, 협동조합, 환경보존, 보편적인 영적인 가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사회적·경제적 모델"이라 한다.

 

마헤슈와라난다는 베네수엘라에 프라우트연구소를 설립하고 프라우트의 이론과 실천 방법을 전 세계에 보급하고 있다. 책은 제목으로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 이후의 세상, 어떻게 바꿀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더욱 분명해진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들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짚어 준다." 책에는 '점령하라!' 운동이 한창이던 시점에서 촘스키와 나눈 영상 대담도 수록돼 있는데, 촘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점령하라 운동이 주는 또 하나의 효과는 작은 규모의 사회적 연대 체제, 상호부조, 협동, 협동조합 식당, 도서관, 건강 서비스, 모든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는 총회 등을 동시에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거의 상실해 가고 있는 것들이다. 이 운동이 가져다줄 잠재성을 생각해 보자면, 이러한 운동 전략이 성공한 이후에도 위와 같은 사람 간 연대와 같이하는 정신을 무엇보다도 중시하게 되는 것이 잠재성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너머'를 고심하는 독자들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일 성싶다...

 

14.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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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프레데리크 시프테의 <우리는 매일 슬픔 한 조각을 삼킨다>(문학동네, 2014)를 고른다. 안 그래도 낮에 '올해의 에세이'로 고를 만한 책이 뭐가 있을까 잠시 생각해봤는데, 바로 떠오르는 책이 없었다. 철학 에세이로는 최근에 나온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의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웅진지식하우스, 2014)과 함께 시프테의 책이 유력한 후보가 되지 않을까 어림해본다. 원제는 <센티멘탈 철학>(2010)이고 부제는 '삶에 질식당하지 않았던 10명의 사상가들'이다. 어떤 책인가.  

 

 

삶에 점철된 고통과 부조리를 냉철하게 직시하고자 했던, 이른바 모럴리스트로 불릴 만한 사상가 10인의 문장들로 빚어낸 ‘생의 슬픔’에 관한 철학 에세이다. 그 사상가들은 프리드리히 니체, 페르난두 페소아, 마르셀 프루스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미셸 몽테뉴 등이다. 저자는 이들의 문장에 기대어 현대의 노예적 인간, 우울과 애도의 차이, 권태와 쾌락, 이성이라는 환상, 상실과 죽음, 사랑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철학적 사유를 펼친다. 2010 데상브르 상 수상작.

아래가 불어본의 표지다. 비교해보니 한국어판의 표지가 좀 심심해 보인다.

 

 

생각해보니 프랑스 철학자들의 철학 에세이로 앙투안 콩파뇽의 <인생의 맛>(책세상, 2014), 프레데리크 그로의 <걷기, 두발로 사유하는 철학>(책세상, 2014) 등도 올해의 에세이 후보로 검토해봄직하다. 한데 모아서 읽어보면 좋겠다...

 

14.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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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철학자 승계호 교수의 <철학으로 읽는 괴테 니체 바그너>(반니, 2014)가 출간됐다. 개인적으로는 기획에 일조한 인연이 있어서 더욱 반갑게 여겨진다. 'T. K. Seung'이란 이름으로 처음 접할 때는 나는 그가 한국계 철학자인 줄도 몰랐었다. 기호학과 해석학 관련서로도 유명하지만 나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독해인 <니체의 영혼의 서사시>를 읽고서 '승계호의 모든 책'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번에 나온 <괴테 니체 바그너>를 계기로 그의 책들이 몇 권 더 소개되기를 기대해 본다. 어떤 책인가.

 

세계적인 철학자 승계호는 스피노자의 범신론에서 괴테, 니체, 바그너로 이어지는 자연주의 철학의 맥을 짚는다. 이에 세 작품을 <파우스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벨룽의 반지>로 선정하여 주제학적 방법으로 새롭게 풀어낸다.

 

승계호 교수의 학문세계 전반과 주제학이라는 독창적 방법론에 대해서는 <서양철학과 주제학>(아카넷, 2008)을 참조할 수 있다. 그밖에 <직관과 구성>(나남, 1999), <구조주의와 해석학>(전남대출판부, 2010)이 번역되었지만 모두 절판된 상태. 그밖에 칸트 입문서와 플라톤 연구서(<플라톤 재발견>) 등이 더 소개됨직한 그의 책들이다.

 

일단은 <철학으로 읽는 괴테 니체 바그너>가 많이 읽히기를 기대한다. <파우스트>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벨룽의 반지>에 대한 탁월한 해석의 향연이 우리를 기다린다. <니벨룽의 반지>에 대해선 정본 번역이 없어서 아쉽다...

 

14.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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