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대한 책 두 권을 '이주의 발견'으로 고른다. 음식을 가려먹어야 하게 된 이후로는 평소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 것들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음식책 역시 그렇다(욕망이란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이어서 그렇겠다).

 

 

레이첼 조던의 <탐식의 시대>(다른세상, 2015)는 음식과 요리의 문명사로 '요리는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었는가'가 부제. 원제는 <요리와 제국>(2013)이다. 식문화사를 통째로 다룬 책은 드물지 않았던가 싶다.

<탐식의 시대>는 출간 즉시 언론과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그 해에 요리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IACP 어워드를 수상했다. 여기에는 5,000년의 식문화사를 한 권에 담아낸 저자의 공력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저자가 단순히 과거의 문명사를 조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오늘을 진단하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요리계'란 표현도 눈길을 끄는데, 아무튼 요리책의 기준을 한단계 올려줄 만하다.

 

 

그리고 댄 주래프스키의 <음식의 언어>(어크로스, 2015).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을 표방한다. 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교양 강의 ‘음식의 언어’를 가르치는 스탠퍼드 대학의 언어학 교수이자 계량언어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라고 소개된다. "요리와 어원의 역사에 대한 다채롭고 진지한 연구로 엄밀성과 읽는 재미를 겸비한 훌륭한 책"(뉴욕타임스)이란 평.

TV도 SNS도 푸드포르노로 넘쳐나는 음식의 시대에, 언어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스탠퍼드 대학의 괴짜 언어학 교수 댄 주래프스키는 음식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 우리의 허기를 품격 있게 채워준다. 그는 고대의 레시피에서 과자 포장지 홍보 문구까지 다양한 음식의 언어들을 통해 케첩, 칠면조, 토스트, 밀가루, 아이스크림이 품고 있는 수천 년 인류 문명의 진보와 동서양의 극적인 만남의 순간들을 발굴해내고, 메뉴판에 담긴 레스토랑의 영업 전략, 앙트레의 용법에서 나타나는 문화의 계급, 포테이토칩이나 아이스크림 마케팅이 겨냥하는 우리의 취향, 맛집 리뷰에서 호평과 악평의 차이점을 분석하며 인간의 진화와 심리, 행동을 해독하는 은밀한 힌트를 던진다.

흠, 음식의 즐거움을 음식책의 즐거움으로 대체하려 한다면, 가장 유력해 보이는 책이로군...

 

15. 03. 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리버 스톤과 타리크 알리의 대담집 <역사는 현재다>(오월의봄, 2014)를 읽으면서 꼭 번역서가 나왔으면 싶었던 책이 생각보다 일찍 번역돼 나왔다. 동명의 다큐영화로도 제작된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들녘, 2015)다. 방대한 분량 때문에 두 권으로 분권돼 나왔는데, 지난해 이미 구해놓은 원서를 빨리 찾아봐야겠다. 이주에 나온 가장 반가운 책.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은 미국 현대사이기에 필독의 의의가 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시리즈. 미국이 제국으로 변질되어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추적해 들어간다. 저자들은 역대 대통령을 중심에 놓고 그 주변의 핵심 참모들이 정책 형성을 이뤄가는 길목을 예리하게 들추어내고 있다. 피터 커즈닉의 엄중한 역사적 검증 및 해석에다 올리버 스톤의 문학적 감수성이 어우러져 박진감 넘치는, 달리 찾아보기 어려운 흥미진진한 역사서가 창조되었다. 각 대통령과 중심인물들은 공개.미공개 자료들을 통해 마치 현실로 튀어나온 영화 속 캐릭터처럼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또한 정책과 사건의 유기적 인과관계와 흐름은 미국의 전모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미국의 대외정책 결과물로서 한국의 현대사를 더듬어볼 수 있는 것도 물론이다

 

찾아보니 원저는 청소년판과 축약판까지 나왔다. 무자막 DVD 타이틀도 출시됐는데, 이왕이면 한글 자막판으로도 나오면 좋겠다(공영방송에서 이런 다큐를 볼 기회가 있을까?). 미국의 '정상화'를 바라는 미국인뿐 아니라 세계인 모두가 읽고, 또 관람해볼 필요가 있다. 마땅히!..

 

15. 03. 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 분야의 책 두 권을 '이주의 발견'으로 고른다. 프랑스 철학자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의 <노예의 역사>(예지, 2015)와 미국의 인류학자 에릭 울프의 <유럽과 역사 없는 사람들>(뿌리와이파리, 2015)이다.

 

 

당초 <20세기 서양 철학의 흐름>(이제이북스, 2006) 같은 책으로 알려진 들라캉파뉴는 <인종차별의 역사>(예지, 2013)에 뒤이어 <노예의 역사>까지 소개됨으로써 오히려 역사학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게 되었다. <인종차별의 역사>나 <노예의 역사>는 그 문제의식은 연속적이며 상통하는 바가 있다.

프랑스 철학자 들라캉파뉴가 노예제도의 요람 고대 수메르 문명부터 역사상 최대 규모로 전 세계적으로 노예가 거래되었던 계몽시대를 거쳐 노예제도의 철폐가 실질적 성과를 이루기 시작한 1960년대 미국의 흑인민권운동 그리고 아동병사.아동매춘, 스웻숍 노동자 등 현대판 노예에 이르기까지 5천 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나타난 다양한 형태의 노예제도를 상세히 살펴보며 어떤 범주의 사람들이 어떤 이유에서 인류에서 배제되어 멸시와 착취를 당해왔는지 밝힌다.

소개의 '스웹숍'은 공장을 가리킨다. 여하튼 노예제가 폐지됐다 하더라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현대판' 노예 노동의 현실까지 아울러 다루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현대판 노예 노동'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노예의 역사에 대한 인식과 그 확산이 필요하다는 것. 전적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견해다.

 

 

<유럽과 역사 없는 사람들>의 부제는 '인류학과 정치경제학으로 본 세계사 1400~1980'이다. 원저는 1982년에 나왔는데, 찾아보니 2010년판도 있다. 절판되지 않고 꾸준히 읽힌다는 뜻.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세계사는 어떻게 전개돼 왔는가. 저자는 유럽의 팽창과 자본주의의 수립, 확산의 역사로 본다.

서기 1400년 이후, 채 두 세기가 안 되는 동안 유럽은 교역 활동의 범위를 모든 대륙으로 확대하고 세계를 싸움터로 만들었다. 18세기 이후로는,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확산되면서 상품의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산업 중심지를 향한 사람들의 대규모 이동이 일어났다. 이처럼 유럽 팽창의 역사는 그 안에 포섭된 각 인간집단의 역사 하나하나와 얽혀 있으며, 자본주의가 수립돼 확산되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유럽과 역사 없는 사람들>은 인간집단들이 지구적 규모로 연결되는 과정을 구체적인 역사서술을 통해 전달하며,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을 도입해 이 연관관계들의 발달과 성격을 해명한다.

초점은 유럽의 상대항으로 놓인 '역사 없는 사람들'이다. "이 책은 유럽인이 역사를 만든 유일한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 생각을 따르는 사람들이 ‘역사 없는 사람들’로 규정했던 ‘미개인’, 농민, 노동자, 이주민 등 소수집단들의 역사를 서술한다." <노예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유럽과 역사 없는 사람들>도 '배제된 자들'의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같이 묶을 수 있겠다. 두 권을 나란히 꼽은 이유다...

 

15. 03. 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주의 책'을 고르기 위해 새로 나온 책들을 훑어보다가 두 종의 책은 따로 빼서 다룬다. 각각 중국사와 일본사에 관한 책으로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의 셋째 권으로 나온 디터 쿤의 <하버드 중국사 송: 유교원칙의 시대>(너머북스, 2015)와 개정판으로 다시 나온 앤드루 고든의 <현대 일본의 역사>(이산, 2015)다.

 

 

하버드 중국사는 <청: 중국 최후의 제국>(너머북스, 2014)을 출발점으로 하여 <원.명: 곤경에 빠진 제국>(너머북스, 2014)을 거쳐서 이제 <송: 유교 원칙의 시대>에 이르렀으니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아마도 두 권 정도가 더 남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런 페이스라면 올해 마저 출간될 것도 같다. 완간된다면 원서도 구입해볼까 싶다.

송 왕조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문명이었다. 인구는 인류 전체의 절반 정도였으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1인당 소득을 누렸다. 이 시대의 창조성은 유럽의 르네상스를 능가했다. 특히 신유학은 송대와 동아시아 사회의 정치와 공적 영역은 물론 일상생활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물질문화와 기술사 분야의 전문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학자 디터 쿤(독일 비르츠부르크대) 교수는 혁신의 시대 송을 이끌어간 원동력은 유교라는 원칙이었음을 주지하며, 유교의 가치를 중국의 발전을 방해한 족쇄였다고 보는 근대의 견해를 재고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수년 전에 남송의 수도였던 항저우(항주)를 잠깐 여행한 기억이 있는데, 당시에는 중국사에 대한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지 않았더랬다. 이제는 <송>이라도 읽은 연후에 다시 둘러보고 싶다.

 

 

<현대 일본의 역사>는 초판이 2005년에 나왔으니 10년만에 나온 개정판이다. 찾아보니 원저가 2013년에 3판이 나왔다. 거기에 맞춘 듯싶은데, "도쿠가와 시대 말기부터 21세기 초까지 약 200년에 걸친 일본의 근현대사를 개관적이면서 포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일본 현대사를 다룬 책이 더러 있지만, 이 책만큼 포괄적인 건 드물지 않나 싶다. 게다가 이산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라는 데 대한 신뢰감이 있다. 2005년판을 갖고 있으면서도 개정판을 다시 구입한 이유다...

 

15. 03. 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주의 책이나 저자를 고르려고 하다가 '이주의 발견'을 먼저 고른다. 알랭 쉬피오의 <법률적 인간의 출현>(글항아리, 2015)은 아무래도 따로 다루어야 할 것 같아서다. 부제는 '법의 인류학적 기능에 관한 시론'. 제목과 부제가 책의 내용을 어림하게 해주는데, 소위 법인류학 분야의 책이 국내에 희소하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저자는 국내 처음 소개되는 줄 알았더니 <필라델피아 정신: 시장 전체주의를 넘어 사회적 정의로>(한국노동연구원, 2012)가 먼저 나와 있었다(지금은 절판된 상태). 1949년생으로 보르도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2012년부터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재직중이라고 하니까 프랑스의 석학이다.

 

 

"쉬피오의 연구는 법학, 인류학, 사회학 등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있으며, 특히 사회적 관계의 교의적 기초에 관한 분석을 중요한 주제로 삼고 있다"고 소개된다. 책소개도 간단하다.

인간사회의 삶은 과학적 연구의 결과에 따라 그 방향이 제시될 수 없다. 이에 서구에서는 법률에 교리적 힘을 실어줌으로써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성적 소통의 관계로 이어주었다. 인간이란 존재의 의미에 대한 믿음, 법률의 절대적 권위에 대한 믿음 혹은 뱉어진 말의 힘에 대한 믿음이 모두 법전에 담겨 있다.

법률적 인간의 출현 시기를 언제쯤으로 잡고 있는지도 언급이 없으니 직접 읽어보는 수밖에 없겠다. 사사키 아타루의 책 때문에 알게 된 르장드르도 같은 분야의 학자일 텐데, 더 번역되면 좋겠다.

 

특기할 만한 것은 책을 낸 출판사다. 글항아리에서는 매주 묵직한 인문사회 분야의 책을 두 권씩 펴내고 있다. 대단한 속도이자 열정이다. 연말까지는 100권이 넘어갈 듯싶은데, 단일 출판사로선 기록을 세우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이것도 피케티 효과일까?). 독자 입장에서는 한껏 응원을 보낸다...

 

15. 03. 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