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철학자이자 미술평론가 아서 단토의 <일상적인 것의 변용>(한길사, 2008)이 '한길 그레이트북스'의 100번째 책으로 출간됐다고 하여 관련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알라딘에는 책도 아직 입고가 되지 않은 듯하다). 대신에 우연히 읽게 된 기사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아내로서 몇 권의 책을 공저하기도 한 앤 드루얀의 방한 소식이다. 이번에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사이언스북스, 2008)가 재출간된 것도 방한의 한 계기라고 한다(잊혀진 책이 다시 나온 것!). 예전에 나온 초판 번역본도 생각이 나기에 겸사겸사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뉴시스(08. 05. 07)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한글로 읽는다

미국의 과학저술가 겸 과학 다큐멘터리 제작자 앤 드루얀(59·사진)이 왔다. 8일까지 계속되는 ‘서울디지털포럼 2008’에 참석한다. 드루얀은 스타 천체과학자 칼 세이건(1934~1996)의 부인이다.‘코스모스’시리즈를 비롯해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를 남편과 함께 썼다. 할리우드 배우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영화 ‘콘택트’의 시나리오도 그녀의 작품이다.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한국어판을 낸 드루얀은 7일 “칼 세이건이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책이었다. 과학적인 부분은 대부분 칼이 썼고 역사라든지 문체에는 내가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따지고 보면 사실 50대 50 정도로 기여한 것”이라고 밝혔다.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는 오랫동안 종교와 철학의 영역에 숨어있던 의문들을 우주론과 진화론적 관점으로 파헤친다.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올라가 인류가 어떻게 현재까지 오게 됐는지, 인류의 공격성은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 살펴본다.



천문학 관련서를 많이 집필한 부부가 인류의 진화사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는 이렇다. “1980년대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경쟁과 위기 상황, 인류 문명이 멸망할 가능성을 느끼면서 현재 우리 문명이 갖고 있는 문제를 인류의 기원, 생명의 기원으로 돌아가 살펴보고 싶었다. 호모 사피엔스라고 하는 생물 종에 대해, 우리의 진화적 역사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인류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고 싶었고 어떤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들여다보고자 했다. 진화의 역사에서 보면 인류는 분명 우리 조상들의 폭력성을 물려받았지만 동시에 서로 돕고 평등한 관계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희망적인 전망을 얻을 수 있었다.”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는 1992년에 나왔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도 특별히 고칠 구석은 없다고 자부했다. “이 책처럼 ‘코스모스’도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 씌어졌다. 하지만 ‘코스모스’다큐멘터리는 수정도 없이 텔레비전 황금시간대에 편성돼 인기를 끌었고 여전히 인기 있다. 마찬가지로 책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과학 정신, 과학적 입장은 거의 수정되지 않았다.”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를 읽을 때 신경써야 할 점도 귀띔했다. “폭력성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진화의 산물이라는 측면에서 다뤘다. 우리가 가진 지금 모습이 진화를 통해 나온 최고의 결과라는 것을 이해하고 이런 신비를 가져온 우주와 자연에 감사하기를 바란다.”

그녀는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발명품으로 책을 지목했다. 자녀와 함께 독서하는 것은 단순 지식 전달 이상의 의미가 있다며 “지식을 경험케 하는 최고의 교육방법은 책읽기”라고 확언했다.(강경지기자)

08. 05. 07.

P.S.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는 예전에 <잃어버린 조상의 그림자>(고려원, 1995)란 제목으로 출간됐었다. '칼 세이건과 함께 떠나는 인류사 탐험'이 부제였고 500쪽 가량의 분량. 새로 나온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는 700쪽 분량이다. 저자가 특별히 고칠 구석이 없다고 자부하는 책이므로 개정판을 옮긴 건 아닐 테고 그냥 국역본 편집상의 차이가 200쪽 분량의 차이를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어디 박스에나 들어가 있을 책이니 내게는 소장도서의 의미가 전혀 없고, 필요하다면 도서관에서나 빌려볼 수 있겠다. 칼 세이건이 가장 좋아했던 책이라고 하니 왠지 다시 보이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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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파벨 2008-05-08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여전히 예쁜 할머니로 늙어가는군요.
안그래도 이 분이 방한한다는 얘기를 출판사 편집장님께 듣고...
이 할머님 보고 싶어서 서울 디지털 포럼 참가 신청하고픈 마음도 있었는데..
언젠가 책이나 읽어보는걸로 대신해야겠어요.
칼세이건 전기를 읽었는데...
앤 드루이언은 완벽한 여성으로 그려지더군요. 멀쩡한 가정을 깨고 자기 애인과 칼의 둘째 부인 린다에게 피눈물낸것만 빼고는...

로쟈 2008-05-08 11:43   좋아요 0 | URL
정념은 피눈물보다 진한가 봅니다...

qualia 2008-05-08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 세이건(Carl Sagan)을 매우 존경합니다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은 두 번씩이나 조강지처를 미련없이 버리고 새 애인과 새장가를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앤 드루얀(Ann Druyan)과는 피비에스(PBS) 텔레비전 연속물 《코스모스 Cosmos: A Personal Voyage》 13부 작을 같이 만들면서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했다고 하죠?

첫 부인 린 마걸리스(Lynn Margulis, 린 마굴리스)과 둘째 부인 린다 솔즈먼(Linda Salzman, 린다 살츠먼)도 정말 지적이고 아름다우시던데요. 셋째 부인이셨던 앤 드루얀 여사님도 정말 지적이고 아름다우십니다. 칼 세이건은 세 분을 모두 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토록 사랑했으니 결혼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혼하자니 이혼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하지만 그토록 사랑했던 조강지처를 새 애인 때문에 거침없이 버리다니... 도무지 이해를...

사랑은 배신인가 봅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선 또 한 사람을 배신해야만 하니까요.

로쟈 2008-05-08 17:54   좋아요 0 | URL
공감하거나 동의하기 어려울지는 모르지만 지극히 이해 잘 되는 일 같은데요...

2008-05-08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08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09 2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심술 2008-05-08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소리 하면 미친놈 취급받을 수도 있지만 다부다처제가 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쟈 2008-05-08 22:20   좋아요 0 | URL
'가능한' 해답은 아니네요.^^

심술 2008-05-08 22:48   좋아요 0 | URL
일부는 이미 하고 있죠.^^
광마일기에 실린 '겉궁합 속궁합' 같은 작품도 이미 90년에 나왔었구요.
언젠가 알라딘에서 노닥거리다가 1950년대 쯤인가에 영국에서 이부일처로 산 사람들이 있다는 얘길 읽었는데 그 글 다시 찾아보려고 검색했지만 도저히 못 찾겠네요. 세 사람 가운데 하나가 꽤 이름난 작가였다는 기억은 나는데 누구 얘긴지 로쟈님 혹시 아십니까? 마태우스님 페이퍼였던 거 같기도 한데 마태님께 여쭤보니 자기가 그런 글을 썼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시대요.

로쟈 2008-05-09 11:06   좋아요 0 | URL
'법적으로' 다부다처제가 존재한 적이 있던가요? 실제적인 난교와는 별개의 문제로...

심술 2008-05-09 18:42   좋아요 0 | URL
법적으로 다부다처제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09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녀시대의 노래 kissing you같은 사랑이 좋아요.
어유...한 사람 비위 맞추기도 힘든데 어떻게 여러 사람을 데리고 산대요?

로쟈 2008-05-09 11:07   좋아요 0 | URL
동시에는 힘들겠지만, 시간차를 두면 가능하겠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05-09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균 수명 100세 시대가 되면 그 긴 세월을 한 사람하고만 산다는 것도 문제겠네요.

로쟈 2008-05-10 11:15   좋아요 0 | URL
왜 다들 처음엔 '영원히 사랑하겠노라' 맹세하잖아요.^^

노이에자이트 2008-05-10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에 너무 냉소적인 것도 좀 거시기하죠.
한동안 조용하던 전여옥 의원이 칼 세이건을 인용했는데...지금 광우병 괴담이나 촛불시위를 보면 칼 세이건이 말하는 거짓과학이라는 악령을 믿는 이들 같다고...전 의원 특유의 악의적 인용이네요.

로쟈 2008-05-11 11:19   좋아요 0 | URL
거짓과학이라는 악령이 아니라 유사정치라는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이죠...

김상호 2008-05-11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핑커의 새 책 보니 흥미로운 문구가 있더라구요. 일부일처제를 정면으로 독점시장으로 보는 식이었어요. 물론 일부일처제 자체가 남자들에게 오히려 유리한 제도이긴 하지만..대놓고 일부일처제를 까던데요. 제 전공 내지 직업과 관련있어서 더 흥미가 갔어요. 만일 그런식이었다면 세 여자가 칼 세이건을 공유했겠죠. 흐

로쟈 2008-05-11 22:29   좋아요 0 | URL
새 책이 또 나왔나요? 아니면 영어본 말씀인가요?..
 

'오래된 새책'이란 카테고리는 재출간된 책들을 위한 것인데, 요즘 부쩍 이에 해당하는 책이 많아졌다. 묻혀 있던 양서들이 다시 빛을 보거나 부실한 모양새로 출간되었던 책이 새롭게 개정되어 나오는 건 언제라도 환영이다. 다만 재출간이 무슨 '원죄'라도 되는 듯이 '몰래' 출간된다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독자에게 당연히 제시되어야 할 '정보'가 누락되는 것이기에 그렇다(보통 제목은 바뀐다. 그리고 별로 오래전 책이 아니어도 값은 뛴다). 그걸 꼬집는 기사를 옮겨놓는다(물론 기사에서 언급되고 있는 책들은 '재발견'의 긍정적인 사례들이다).

경향신문(08. 04. 12) [책동네 산책]재출간 떳떳이 밝히고 재평가 당당히 받아라

전화상의 그이는 자신있게 설명했다. 한 분야만을 파고든 저자의 열정을 얘기했고, 책이 다루는 주제의 참신함을 말했다.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용의 흥미로움도 강조했다. 그런데 분위기 파악 못하는 기자, 퉁명스럽게 물었다. “이 책 예전에 나왔던 거 아닌가요?” “아, 예, 사실은….”

언제부터인가 눈에 띄는 신간이 오면 책의 맨 앞장이나 뒷장, 심지어 책날개까지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출판사에서 보내온 보도자료를 훑거나 인터넷으로 검색하기도 한다. ‘재출간’되는 책들이 많아졌지만 그같은 사실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출판사의 의도’가 느껴질 만큼 ‘교묘한 곳’에 슬며시 밝히거나 아예 밝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재출간은 출판계의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일반적인 풍토로 자리잡은 느낌이다. “옛날 책을 잘 찾아라”는 말은 출판계에서 오래전부터 회자돼온 기획 원칙이다. 지난 달 경향신문을 통해서도 소개된 ‘승자독식사회’(웅진지식하우스)도 1997년 ‘이기는 자가 전부 가지는 사회’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책이다.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로버트 프랭크가 ‘이코노믹 씽킹’ 등을 통해 유명세를 탄 데다, 책의 내용이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에 더 맞는다는 생각에 재출간했다는 게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이 책은 출간 한 달 만에 1만부 가까이 팔리면서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절판된 책도 잘만 고르면 웬만한 신간보다 나은 경우가 심심찮다. 해서 소규모 출판사들이 ‘틈새 전략’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구간은 저작권료가 싸다. 눈만 밝으면 좋은 책을 싼 값에 낼 수 있다는 소리다. 지난해 황소자리에서 출간한 ‘욕망하는 식물’은 2002년 ‘욕망의 식물학’으로 소개됐던 것을 새롭게 번역한 책이다. 이 출판사의 첫 책인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도 다시 낸 책이다.

재출간은 여러 이유로 아깝게 묻혔던 책을 ‘재발견’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래서 ‘리메이크’니 ‘리바이벌’이니 하면서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겉만 화려하게 바꿔 내놓고 그같은 말을 쓰는 건 쑥스러운 일이다. “재출간이 콘텐츠에 공을 들이는 대신 이미 검증된 책을 시기에 맞게 적당히 포장하는 식으로만 가고 있다”는 한 출판인의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책만 좋으면 됐지 그게 대수냐고 할지 모르겠다. 앞서 말한 기자의 ‘버릇’으로 돌아가보자. 그것이 ‘재출간된 책은 소개하지 않는다’라는 대단한 원칙 때문에 생긴 건 아니다. 출판사에 ‘낚였다’는 느낌도 부차적인 문제다. 적어도 책에 대한 기본 정보는 독자들에게 정확히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단 한 명의 독자라도 이중으로 책을 살 수도 있으니까.

아니, 그런 노파심까지 필요없다. 출판사가 재출간 사실을 밝히는 건 독자에 대한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출판사가 어떤 부분에 공을 들여 ‘재출간’했는지를 당당히 밝히고 ‘품질’로 승부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재출간된 책도 제대로 평가받는 풍토가 정착될 것이기에.(김진우기자)

08. 04. 12.

P.S. 독자가 '이중'으로 책을 살 우려는 '중복출판'의 경우에도 해당한다. 루소의 <에밀> 같은 고전이야 같은 출판사에서 <에밀>(한길사, 2003), <에밀 또는 교육론>(한길사, 2007)이라고 중복 출판되어도 역자가 다르고 또 '고전'이기 때문에 독자가 취향에 따라 읽을 수도 읽고 아예 비교해가면서 두 권을 같이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식투자의 심리학> 같은 책도 그러할까? "20세기 초엽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활약한 전설적인 투자분석가이자 저술가"인 조지 셀든의 이 책은 나름 '고전'이라고 하지만 '투자'를 위해서 두 번역본을 비교해가면 읽을 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역본은 <주식투자의 심리학>(휴먼&북스, 2006), <주식시장의 심리학>(서울출판미디어, 2007)이라고 각기 다른 제목으로 출간된 데다가, (인터넷서점들에서) 저자가 '조지 C 셀든'과 'G. C. 셀든'이라고 돼 있어서(두 명의 저자로 처리된다!) 주의하지 않으면 두 명의 저자가 쓴 두 권의 책으로 착각하기 쉽다. 출판사들에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전략을 쓰더라도 서점에서는 해당 도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독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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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4-14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류비셰프>는 참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었는데 재출간인지는 잘 몰랐네요. 당연한 말이지만, 기자의 마지막 결론에 동감을 표합니다. 그나저나 제 주요 관심 분야는 아니지만, <주식투자의 심리학> 번역과 <주식시장의 심리학> 번역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여러 가지 이유에서' 궁금해지는군요.

로쟈 2008-04-14 23:55   좋아요 0 | URL
저도 비교/검토해볼까란 생각을 잠시 가졌었지만, '2차'를 당할까봐(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그만두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라는 책이 출간됐다. 이름이 입에 익지는 않은데, H. D. F. 키토의 <고대의 그리스, 그리스인>(갈라파고스, 2008)이 그것이다. 알고 보니 저자는 그리스 고전 비극의 번역자로도 잘 알려진 학자이다(내가 갖고 있는 옥스포드판 소포클레스도 그의 번역이다). 1951년에 출간돼 그간에 수백만 부가 팔려나갔다고 하니까 '고대 그리스'에 관한 가장 저명한 책이기도 할 듯하다. 소개기사를 옮겨둔다.

조선일보(08. 02. 23) 그리스인, 지시에 따르는 삶을 거부하다

1951년 펠리칸 총서의 하나로 발간돼 수백만 부가 팔린 고대 그리스 입문서다. 그리스의 형성, 암흑기를 거쳐 폴리스 성립, 아테네 민주정, 융성과 쇠퇴 등을 풍부하게 그려낸다. 평생을 그리스 연구에 바친 저자는 '폴리스'를 '도시국가'로 부르는 것은 나쁜 번역이라고 비판한다. 폴리스는 도시와 비슷하지도 않았고 국가와는 완전히 달랐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리스의 보통 사람들은 '일리아스'가 시작되는 장엄한 장면을 외우다시피했다. 시인, 조각가, 철학자, 과학자는 물론 농촌의 수공업자도 그랬다. "인간의 왕인 아가멤논과 위대한 아킬레우스의 첫 다툼부터 노래를 시작하라. 이들을 적으로 만든 것은 어느 신의 작품인가? 제우스와 레토의 아들 아폴론이다…."

유럽 최초의 시인 호메로스가 쓴 문학작품은 이렇게 건조하다. 그는 '일리아스'에서 전쟁의 일부를 묘사하려 하지 않았다. 곧장 주제로 달려들었다. 이런저런 감상들로 이야기를 채색하려 하지 않고 자신이 고른 주제, 즉 전쟁의 한 국면을 마치 원재료처럼 사용했다. 이런 특징은 고전기 그리스 시인들 모두에게서 발견된다.

'일리아스'를 만든 것은 전쟁 같은 외적 요인이 아니었다. 두 인간의 분쟁이 수많은 이들에게 고난과 죽음과 불명예를 안겨준다는 비극적 개념이 이 서사시의 뿌리였다. 원인이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그의 주제였다. 트로이의 높이 솟은 성벽, 철썩거리는 스카만드로스강 같은 배경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스인들에겐 진지한 비극이 대중예술이었다. 그들은 지시에 따라야 하는 삶, 전문적인 기술에 몰두해야 하는 삶을 거부했다.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것 같지만 "역사상 처음으로 인생의 의미를 해석하고 지적 능력을 온전히 구사한 사람들"이다. 서양중심주의적인 표현들이 흠이지만 지식 너머에 있는 본질에 다가가려고 한 교양서다. 원제 'The Greeks'(박돈규기자)

08. 02. 25. 

P.S. 책을 '오래된 새책'으로 분류하는 것은 예전에 출간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화사: 그 역사와 문화>(탐구당, 1984)가 바로 그 책이다. 오래전에 서점에서 자주 보던 문고본인데 내가 소장하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현재 안 갖고 있는 건 확실하지만). '입문서'로서의 명성에 기대어 한번쯤 손에 들어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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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한겨레21에서 절판본에 관한 기획기사를 옮겨온다(http://h21.hani.co.kr/section-021015000/2008/01/021015000200801240695053.html). 인문서 절판본과 관련하여 몇 마디 보태기도 한 때문이다(그대로 기사회될 줄은 몰랐다!). 최근 일고 있는 재출간 붐이 저작권법상 계약기간의 주기와 맞물려가는 게 아닌가란 진단과 일본 등지에서의 ‘조직적인’ 절판책 복간 움직임에 대한 소개가 눈길을 끈다. 

한겨레21(08. 01. 24) 가혹한 절판의 운명을 거부하라

“우리는 어떤 책이 타고난 절판의 운명에 순응하기만 해야 하는가? 그 운명에 대한 심판을 다시 한 번 붙일 수는 없는가?” 이윤기는 <비밀의 계절> ‘개정판에 붙이는 말’에서 이렇게 썼다. <비밀의 계절>은 이렇게 ‘엄숙한 물음’과 함께 재탄생했다. 도나 타트의 <비밀의 계절>은 오랫동안 헌책방 탐사자들의 ‘쇼핑 리스트’에 올라 있던 ‘절판의 전설’이다. 1992년 까치에서 나왔던 이 책은 지난해 12월 문학동네 장르문학 시리즈 ‘블랙펜 클럽’의 1권으로 재출간됐다. “책은 그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 책의 운명은 절판이다, 라고만 하면 왠지 아쉽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이 로마의 작가 테렌티아누스 마우루스의 말을 따 붙인 ‘책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이, ‘절판본’에서는 ‘절박’하게 느껴진다.

표정훈은 ‘절판 도서 살리기’(kungree.com)의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비록 ‘그 나름’의 운명이라고는 해도, 절판이라는 운명은 책의 물리적 소멸보다 훨씬 더 가혹하다. 가치의 윤리학보다는 효율의 경제학이, 생각의 깊이보다는 생각의 속도가, 역사의 무게보다는 순간의 가벼움을 중시하는 풍토라면, 가혹한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되살아날 수 있는 책의 숫자도 그만큼 적을 것이다.”

최근 이 ‘운명’을 거역한 책들의 거대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새벽의 약속> <하늘의 뿌리> <대성당> <황금나침반> <황금노트북> <암스테르담>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핀란드 역으로> <연을 쫓는 아이>….

‘다시’ 플러스 새로운 의미
‘새 생명’을 부여받는 데는 명확한 ‘계기’가 있는 경우가 많다. <황금노트북> <황금나침반>처럼 ‘황금’ 붙은 세 권짜리 책들이 그렇다. <황금나침반>(김영사 펴냄)은 동명의 영화 개봉을 계기로, <황금노트북>(뿔 펴냄)은 저자 도리스 레싱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다시 나왔다. 길찾기에서 나온 권교정의 만화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1>은 월간 장르문화 매거진 <판타스틱>의 연재 재개와 함께 재출간됐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열림원 펴냄)는 같은 저자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현대문학 펴냄)의 반응이 좋자, 2005년 책을 표지갈이해서 ‘개정판’으로 나왔다.

그러나 ‘재출간’은 나왔던 작품을 ‘다시’ 펴낸다라는 뜻에 새로운 의미가 더해진다. 올 초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 <하늘의 뿌리>는 각각 고려원에서 1985년, 신구문화사에서 1968년 출간된 책의 재출간본이지만, 번역도 다시 했고 흩어져 있던 작품을 모았다는 의미도 더해졌다. 부커상 수상작인 이언 매큐언의 <암스테르담> 역시 미디어2.O에서 새로 나왔는데 1999년 현대문학에서 나왔던 작품을 새로 번역한 것이다. 최근 김연수 번역으로 나온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은 문학동네에서 재출간하고 있는 ‘레이먼드 카버’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이전에 나온 집사재의 ‘레이먼드 카버’ 시리즈(1996)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번역한 일본판으로 추정되는) 원본이 불분명한 ‘편집본’이었다면 문학동네에서는 미국에서 출간된 원본대로 펴내고 있다. 집사재 시리즈는 3권으로 끝났는데, 문학동네 시리즈는 여기에 더해 올해 말이나 내년 초 김연수의 번역으로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가제)가 나올 예정이다.

다시 내려면 의미가 있어야 한다. 장단점을 살피고 의미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2005년 여름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새로 출간하고 ‘예상외’의 반응을 얻었던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의 말이다. ‘스테디셀러 복병’으로 자리잡기까지 ‘출간 결정’은 ‘재고·삼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1996년 까치에서 나온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재출간본은 제목이 살짝 바뀌었다)은 추리소설 동호회에서 “이런 책이 절판이라니 말이 안 된다”라는 말을 들었던 작품이다. “그래도 좀 망설여졌다. 그런데 김연수씨가 적극적으로 추천을 했다. 그렇게 되고 안 낼 이유가 없었다.” 마음산책은 <스밀라…>에 대한 좋은 반응이 있고 나서 4권의 ‘리메이크작’을 펴냈다. 로맹 가리의 <가면의 생>, 에프라임 키숀의 <개를 위한 스테이크>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그리고 박찬욱의 <오마주>다. 이런 리메이크 작품이 반응이 좋자 마음산책에서는 회의를 할 때 구간본 출간에 대한 논의를 병행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50~100권의 재출간 목록을 뽑아 에이전시에 문의한 적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70% 이상이 다시 저작권 계약이 이루어져 있었다.”

재출간 붐, 1996년부터 5년마다 주기로?
기획자들에게 “구간을 살펴라”는 자주 이야기되는 ‘기획 원칙’이다. 궁리 출판의 김현숙 편집장도 “최근 옛날 출판 잡지를 뒤지며 잊혀진 책들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인문서 시장에서 또한 마찬가지다. 산책자의 김수한 편집주간은 “지난해 인문 쪽 기획의 키워드가 ‘옛날 책을 찾아라’였다. 1980년대 정당한 계약 없이 봇물처럼 쏟아졌던 책들이 인문학의 보고다”라고 말한다. 산책자에서는 보드리야르의 <아메리카>(문예마당·1994), 롤랑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민음사·1997) 계약을 맺고 출간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해 11월 나온 에드워드 윌슨의 <핀란드 역으로>는 그 이전에 두 번 나왔던 책이다. 1962년 을유문화사에서 <근대혁명사상사>, 1990년 실천문학사에서 <인물로 본 혁명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정치학자 해나 아렌트의 책 역시 ‘민주주의’ 담론에 대한 연구 붐을 타고 거의 다 복간됐다.

이러한 ‘재출간’ 붐에 대해 김현숙 편집장은 “저작권법이 원활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시기를 기점으로 재출간 사이클이 형성되는 것 아닌가 한다. 요즘 2001년, 2002년에 나왔으나 책의 가치에 비해 호응이 적었던 작품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한다. 외국 저작물과의 계약은 보통 5년을 단위로 갱신된다. 우리나라에서 저작권법이 발효된 것은 1996년. 1987년 10월 가입한 세계저작권협약(UCC)이 먼저이긴 하지만, 1996년부터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와 8월 가입한 베른협약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외국과 계약 후 출간’이라는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관행’이 정착했다. 김 편집장의 말대로라면 2006~2008년, 1996년을 기점으로 하는 5년 단위의 새로운 ‘계약철’이 도래하는 것이다.

리메이크작의 성공은 기획자들을 자극해왔다. 그중 ‘고려원 리스트’는 복간의 주요한 대상이다. 파울루 코엘류의 ‘초베스트셀러’ <연금술사>(문학동네 펴냄·2001)는 고려원의 <꿈을 찾아 떠나는 양치기 소년>(1993)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 최종 부도처리된 고려원은 연평균 270여 종의 책을 펴내던 당시 ‘단독’ 매출 1위의 출판사였다. 당시 200억원 규모의 연매출을 기록했는데, 2위는 100억원 미만이었다. 고려원의 부도로 총 2만여 권의 문학, 인문, 실용, 여러 전집이 한꺼번에 ‘절판’됐다. 2004년 고려원북스가 고려원 재고와 판권에 대한 권리를 법원으로부터 인정받고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재출간이 순조롭지는 않다. <연금술사>처럼 재출간 형태로 다시 발간된 책도 적지 않다. 고려원북스의 편집자는 “소설 <캠든에서의 그 여름>과 아동책 몇 권을 재출간했다. 몇 권의 판권을 알아보고 있으나 신간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출판 환경도 재출간 붐을 이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팔린 책의 반 정도가 한 인터넷 서점 사이트를 통해서 판매됐다. 알파 블로그의 역할이 커진 것이다. 기술문명이 바뀌면서 소비구조가 바뀌고 있다. 소비에서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이런 블로거들의 활약은 장르문학에서 두드러진다. ‘일본 미스터리문학 즐기기’ 카페의 운영자이자 번역가인 권일영씨는 ‘장르 마니아’들과 ‘절판’의 상관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장르소설은 ‘품절’되는 사태를 겪는 일이 많다. 그래서 정보 교환을 위해 카페 활동이 활발하다. 품절이 자주 되니 소장 욕구도 강하다. 당장 읽지 않더라도 사다 쟁여놓는 경우가 많다.” 이런 소비자들의 ‘계속되는 애절한’ 요구는 재출간 결정으로 이어진다. 절판됐던 다카무라 가오루의 <마크스의 산> <석양에 빛나는 감>은 손안의책이, <영원의 아이>는 북스피어가 새롭게 준비하고 있다.

일본의 9개 출판사 ‘공동 복간 프로젝트’
외국에서는 더 ‘조직적인’ 절판책 복간 움직임을 만날 수 있다. 일본의 복각닷컴(www.kinokuniya.co.jp)은 독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복간작 리스트를 모으고 의견이 많이 모이면 출판사에 의견을 전달한다. ‘서물복권(書物復권) 프로젝트’는 출판사 쪽에서 진행한다. 도쿄대학출판회, 호세이대학 출판국, 미스즈출판사, 기노쿠니야, 미라이샤, 게이소 출판사, 하쿠수이샤, 이와나미 등 8개 출판사에 2006년부터는 신요사(新曜社)가 참여하고 있다. 사이트를 통해 복간작을 예고하고 독자들이 신청한 도서를 종합해 최종 복간을 결정한다. 영어권에서는 에이어 컴퍼니(Ayer Company Publishers)가 ‘책의 형태로 남아 있어야 할 목록’을 정하고 재출간을 단행한다. 어떤 형식이든 언제라도 한국에서 가능한 형태로 보인다.

김현숙 편집장은 이런 재출간 붐에 대해 “쉽게 기획을 하려는 건 아닌가 하는 자기 반성이 들기도 한다”고 말한다. 한 문학 출판사의 편집자는 “판권을 보유한 출판사가 오랫동안 출판을 하지 않는 경우를 더러 볼 수 있다. 독자들의 기다림을 헤아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한기호 소장은 이러한 재출간 기획이 한 걸음 더 나갈 것을 요구한다. “한때 서점에 나가 있는 책 중 95%는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다닌 적도 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책이 정보의 제왕으로서 경쟁자가 없었다. 지금은 무료 정보와 경쟁해야 하는 입장이다. 새로운 물성을 탐구하고 책의 신체성을 새롭게 하는 재출간 기획이 필요하다.”(구둘래 기자) 
 
열렬복간 리스트
2007년 신간 출간 종수 5만3226종(대한출판문화협회 자료). 벌써 사라진 책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열렬한 복간의 선택을 받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알라딘 서재 리뷰어 로쟈와 문학평론가 신형철씨에게 재출간을 바라는 책 3권을 부탁했다. 장르문화 매거진 월간 <판타스틱>은 ‘올해는 이 번역소설을 읽고 싶다’라는 주제로 다음카페 ‘일본 미스터리 문학 즐기기’, 행복한책읽기 출판사 사이트 ‘해피SF’, 네이버 ‘SF카페안드로메다’ 카페에서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를 ‘절판’본만으로 한정해 정리해보았다. 설문조사 결과와 추천작들은 <판타스틱> 2월호 특집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로쟈의 선택 3: 첫 번째는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인류학>(종로서적). 이전에 2권짜리의 절반 분량이 나왔는데, 다시 나온다면 당연 완역·완간돼야 한다. 레비스트로스가 워낙에 연로하기 때문이고 한편으로 그의 주저를 서점에서 구경할 수 없다는 건 좀 ‘쪽팔린’ 일이다. 레비스트로스와 절친했던 로만 야콥슨의 <문학 속의 언어학>(문학과지성사)도 다시 나와야 할 책이다. 나온 책은 발췌역이었는데 다시 나온다면 완역돼 나와야 한다. 야콥슨 전집은커녕 이 정도 책도 시중에서 못 구한다면 역시나 ‘쪽 팔린’ 일이다. 두 번째 책은 일본의 A급 학자 이마무라 히토시의 <역사와 인식>(한실·1992). 그의 <근대성의 구조>도 품절인데, 절판됐다면 다시 나와야 할 책이다. 얇고 재밌는데, 왜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 세 번째 책은 제이 레이다의 <소련영화사1>(공동체·1983). 1권이 나오고 그걸로 절판됐다. 80년대 초반에도 이런 책들이 나왔는데, 요즘은 왜 그럴까. 이왕이면 최근의 러시아 영화사들도 소개되면 좋겠다.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 같은 책도 ‘품절’ 혹은 ‘절판’으로 뜨는데, 이것도 창피한 일이다.

신형철의 선택 3: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 젊은 날>.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동시대 코즈모폴리턴들의 소설을 읽느라 우리가 놓친 일본 소설들 중 하나. 전공투 세대의 ‘후일담’소설이다. 내가 읽은 가장 아름다운 후일담 소설. <청춘>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된 적이 있으나 반드시 원래 제목으로 다시 나와야 한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 비트제너레이션의 성서. 그러나 그런 얘기는 이제 그만 듣고 싶다. <전후미국문제소설집>(신구문화사·1962)에 수록돼 출간된 적 있으나 그 이후로는 본 적이 없는 물건. 실물을 보여달라. 이세룡의 시집들 <빵> <채플린의 마을> <종이로 만든 세상> 등. 김종삼의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시가 애틋할 것이다. 평균 열 줄을 넘지 않는 짧은 시들이 주는 맑고 슬픈 여운들. 이 시인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일본 미스터리 문학 즐기기’의 선택: 오사와 아리마사의 <신주쿠 상어> 시리즈. 우리나라에선 3부까지 나오고 절판됐는데, 일본에선 계속 나오는 것 같더군요. 흔한 형사물인 줄 알았는데, 뒤로 갈수록 그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일단 속도감 있는 재미가 일품이죠.(몬스터) 일본 최고의 문학가 다카무라 가오루 <마크스의 산> <석양에 빛나는 감>. 두 작품은 소개가 되었으나, 절판된 뒤 컬렉터들의 제1표적이 됐습니다. 생생한 상황묘사와 사실적인 캐릭터, 결말의 큰 감동. 이렇듯 최고의 요건들을 두루 갖춘, 고다 시리즈 전작이 출간됐으면 합니다.(이웃 변태) 재닛 에바노비치의 스테파니 플럼 시리즈 코미디와 추리의 즐거운 만남, 제 취향에 딱 맞는 소설입니다. 시공사에서 펴낸 2편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시리즈가 10편이 넘는 걸로 아는데 모두 나오길 희망합니다.(다크 워크) 아야쓰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가 재출간됐으면 합니다. 시계관, 십각관, 암흑관 제외하고는 너무 구하기가 힘드네요. 발품을 팔아도 보이지 않는 그 소설들! 정말 저를 너무 애태우더군요.(가을이/ 사요코/ whitebong7)

‘해피SF’의 선택: 올래프 스태플튼의 작품들. <이상한 존>은 70년대쯤에 어린이용으로 한번 나오긴 했지만, 어린이용이고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어린이용이 아닌 완전 번역본으로 보고 싶습니다. <스타메이커>나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구요^^(HAMANE) <지저 세계 펠루시다>를 추천합니다. 아동용 축약본 외에는 제대로 출간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인간은 누구나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지요. 그것이 종종 외부로 나아가는 것만 떠올리게 하는데,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해준 작품입니다. 우리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지구를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답니다.(펠루시다) 국내에서 출간 중이지만 자꾸 지연되는 어슐러 K. 르귄의 책들을 어서 보고 싶습니다. 절판된 책도 그렇지만 아직 출간되지 못한 책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철학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한 르귄만의 공상과학(SF), 판타지에 맛을 들이면 헤어나올 수가 없어요.(whitfume) 존 윈덤의 <트리피드의 날>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어릴 적에 아동용 축약본으로 감명 깊게 읽었던 SF소설인데 아직까지 국내에 완역본이 소개된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dopeLgangER)

‘SF카페 안드로메다’의 선택: 존 윈덤의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아동용으로 나온 걷는 식물 트리피드 정말 재미있게 봤었는데, 그의 다른 작품 <저주받은 마을>도 침략을 테마로 한 SF 스릴러라고 하네요. (엽기부족)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 재간을 바랍니다.(이다)

08. 01. 25.

Клод Леви-Строс Структурная антропология

P.S. '로쟈의 선택' 목록과 관련하여 덧붙이자면, <구조인류학>과 <소련영화사1>은 대학시절에 손에 여러 번 들었던 책들이지만 결국 구입하지는 않았고 이제는 도서관이나 이용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좀 유감스럽다. 그나마 <구조인류학>의 영어본(2권)과 러시아어본, 그리고 <소련영화사>의 영어본을 갖고 있는 걸로 위안을 삼는다(사진은 러시아어본 <구조인류학>). 이마무라 히토시의 <역사와 인식>은 <근대성의 구조>를 재미있게 읽고 나서 찾았던 책인데 알튀세르 연구서이다. 뜻밖에도 국역본이 있었지만 몇몇 도서관에만 소장돼 있다. 나도 아직 실물을 보지는 못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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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1-25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절판본의 매력이란... 참 저도 이번에 시공사 로고스 총서를 급히 모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답니다. 다행히 절판 후 두달만에 소식 듣고 찾은 덕에 한권(프로이트)을 제외하곤 모두 갖추었지만... 읽는 속도보다도 판이 끊기는 속도가 빠르니 왠지 서글퍼지네요...

로쟈 2008-01-25 23:00   좋아요 0 | URL
비교적 저렴하고 괜찮았던 총서였는데요...

비로그인 2008-01-25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가격도 저렴하고, 내용도 철학사 전체를 한번 훑기엔 제격이었는데 말이죠.. 문지 스팩트럼도 한권 두권 판이 끊겨 가고... 역시 믿을건 내 책장과 도서관 뿐이군요... 서점의 책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웃음)

로쟈 2008-01-25 23:1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생각이긴 하지만 '민폐'도 만만찮습니다.^^;

드팀전 2008-01-25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한겨레 21 봤는데...안그래도 구석에서 로쟈님 이름을 보았답니다.인터넷에서는 크게 보이지만 실제 잡지에서는 조그맣게 편집되었다는 ㅋㅋㅋ

로쟈 2008-01-26 00:01   좋아요 0 | URL
저도 지면기사는 오늘 읽었습니다.^^
 

지난달 구스타프 야누흐의 <카프카와의 대화>(문학과지성사, 2007)이 출간되어 카프카 읽기 목록(http://blog.aladin.co.kr/mramor/1757923)을 만들어놓았었다. 책은 아직 구입하지 않았는데(예전 번역본을 갖고 있어서) 시사인에서 이에 관한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50). 과문한 독자들에겐 길잡이가 될 듯하다.

시사인(08. 01. 22) 죽은 카프카와의 ‘소리 없는 인터뷰’

남한의 정치학자 K는 북한에서 열린 남북 교류 학술대회에 참가하고 막 돌아온 참이다. 우연히 펼쳐든 신문에서 자신에 관한 기사를 발견하고 그는 경악한다. 신문 기사는 정치학자 K가 북한에서 남한 체제를 강하게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북한에 남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지 않은가. 때마침 연구실에 들른 조교는 K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교수님, 어떻게 여기에!



K는 신문사 편집국장을 찾아가 항의한다. 편집국장은 진심으로 미안해하지만 이번 경우만은 정정 보도를 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국정원에 가보길 권한다. 국정원에서도 뭔가 착오가 있었음을 인정하지만, 당장은 어떠한 조처도 취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별일 없을 테니 그저 조용히 지내고 있으라는 식이다. 그러나 조용히 지낼 수가 없다. 도청과 미행 때문에 악몽에 시달리던 K는 마침내 정치적 망명을 시도한다. 오보가 결국 사실이 되고 만 것. 



이 이상한 이야기는 밀란 쿤데라가 쓴 카프카에 관한 에세이(‘저 뒤쪽 어디에’, <소설의 기술>)에 있는 원본을 가져와 우리 식대로 다시 각색한 것이다. ‘카프카에스크(Kafkaesque)’라는 형용사가 있다. ‘카프카적인’이라는 뜻이다. 저런 이야기가 ‘카프카적인’ 이야기다. 한 작가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사례다. 조빔(A.C.Jobim)이 곧 보사노바이고 피아졸라(Piazzolla)가 곧 탱고인 것처럼.



카프카 월드로 초대하는 유용한 가이드가 출간됐다. 구스타프 야누흐가 쓴 <카프카와의 대화>가 그것. 1920년 3월 어느 날, 17세의 문학 소년 구스타프 야누흐는 ‘변신’의 작가 카프카를 직접 만나게 된다. 소년의 아버지가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것. 그곳은 카프카의 직장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이 억세게 운 좋은 소년에게 카프카는, 부러워라, ‘아빠 친구’였던 것이다. 카프카 역시 이 문학 소년을 총애하여 두 사람의 만남은 꾸준히 지속된다. 1924년 6월3일 카프카가 사망할 때까지.

구스타프 야누흐, 4년간의 만남 기록해
삶의 가장 불안정한 시기에 카프카를 만난 것은 구스타프 개인의 행운이겠지만, 그가 그 만남의 기록을 보존해두었다가 막스 브로트에게 보내 이 책이 출간된 것은 우리 모두의 행운일 것이다. 카프카는 어느 편지에서 ‘책은 우리의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트리는 도끼여야 한다’라고 쓴 적이 있다. 이 책은 카프카의 그 ‘도끼’ 같은 소설들이 어떤 맥락에서 탄생했는지를 카프카의 육성으로 들을 수 있게 한다. 이것은 마치 ‘죽은 작가와의 인터뷰’ 같지 않은가.

인간 카프카의 모습을 지인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카프카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거의 결벽증적으로 엄격했다. 그는 자기 책이 출판되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았다. 친구들의 강권으로 출간했을 뿐. 구스타프가 그의 단편 세 편을 가죽 장정으로 제본해서 갖다 주었을 때는 숫제 화를 내기까지 한다. 이 따위는 불에 태워 없애버려야 한다고. 

“… 내 서투른 글은 모두 없어져야 해요. 나는 빛이 아니에요. 나는 그저 내 자신의 고통의 근원으로 빠져들 뿐이에요. 나는 막다른 골목이에요.”(341~342쪽) 그러니 카프카가 이 책의 존재를 반기지 않을 것임은 명백하다. 그러나 카프카라는 ‘막다른 골목’이 누군가에게는 출구로 나아가는 ‘빛’이 되기도 하는 것을 어쩌랴. 

그 빛에 눈이 부셨던 경험이 필자에게도 있다. 10여 년 전에 이 책을 처음 읽었다. 소설가 오정희 선생이 어느 글에선가 이 책이 당신의 젊은 날에 버팀목이 되어주었다고 회고하고 계셨다. 곧장 도서관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고 거기서 한 권의 책을 찾았다. G. 야노욱흐, <카프카와의 대화>, 가정문고, 1976. 한동안 그 책을 파먹었다. 그 책이 다시 나왔다. 반갑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신형철_문학평론가)

08. 01. 24.

P.S. 필자가 읽은 <카프카와의 대화>는 전희수 역으로 원래는 신양사(1960)에서 출간된 것이다. 알고 보면 거의 반세기 전에 나온 책인 셈. 그리고 내가 (빌려)갖고 있는 책은 정규화 역의 <카프카와의 대화>(녹진, 1988)이다. 카프카 평전으론 클라우스 바겐바하의 <카프카>(홍성사, 1986)가 기억나는 책이고(이후에 개정판과 또다른 번역판이 나왔다), 내가 예전에 도서관에서 복사한 책들은 엘리아스 카네티의 <카프카의 고독한 방황>(홍성사, 1978)과 막스 브로트의 <프란츠 카프카 평전>(문예출판사, 1981)이다.

Макс Брод О Франце Кафке Uber Franz KafkaФранц Кафка Неизвестный Кафка

브로트의 이 평전은 <프란츠 카프카에 대하여>란 제목의 러시아어본으로도 출간돼 있는데 분량은 국역본의 두 배다(러시아에서 오래 망설이다가 구입하지 않은 책이다). 그의 <알려지지 않은 카프카>도 러시아어본이 나와 있다.  

Вальтер Беньямин Франц Кафка Franz Kafka

그나마 내가 챙겨둔 건 발터 벤야민의 <프란츠 카프카>이다. 길출판사에서 나오고 있는 '발터 벤야민 선집'의 7권이 <카프카와 현대의 미로>인데, 그의 카프카론을 포함하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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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 2008-01-25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문한 독자, 보관함에 집어넣고 갑니다.
카프카 책보다 항상 카프카에 대한 책이 더 재미있어요. -.-

로쟈 2008-01-25 00:24   좋아요 0 | URL
야누흐가 꾸며적기도 했다는 의혹도 제기돼 있습니다. '카프카에 대한 책'들만으로도 한 트럭은 될 듯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