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가을에 프랑스문학과 러시아문학을 동시에 강의하고 있는데 일정에서 뒤늦게 아쉬움을 발견한다. 스탕달의 <적과 흑>(1830)을 다시 읽으며 러시아문학에 끼친 그의 영향이 궁금해져서다(스탕달의 수용에 대해서는 알아보아야 한다. 발자크와는 다르게 스탕달은 당대에 잘 알려진 작가가 아니었고 프랑스에서도 1880년대에 가서야 재발견된다).

그에 비하면 낭만주의 시인 뮈세(알프레드 드 뮈세)의 영향은 뚜려한 편이다. 유일한 소설 <세기아의 고백>(1836)이 레르몬토프의 <우리시대의 영웅>(1840)에 직접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두 작품을 비교해서 다루는 건 언제라도 가능한 일인데 매번 멍석 까는 걸 잊는다(확인해보니 푸슈킨은 <적과 흑>을 직접 읽었고, 레르몬토프는 간접적으로 영향관계가 추정된다. 푸슈킨의 <스페이드 여왕>과 레르몬토프의 <우리시대의 영웅>이 그래서 <적과 흑>과 비교될 수 있는 작품들이다).

단독으로 다루기에는 멋쩍기에 비교거리가 될 만한 작품을 더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일정을 보류하게 만들었고 그에 더하여 최근에는 러시아문학 강의에서 <우리시대의 영웅>을 다루는 일이 줄어들었다. 언젠가 그의 희곡 <가면무도회>까지 같이 강의에서 다룰 기회가 있었으면 싶다. 그 기회는 내가 만드는 것이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계기는 주어져야 하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미나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12년 전에 쓴 글이다. 미나리가 나오는 시 몇 편과 항께 미나리에 대한 사랑을 적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헤르만 헤세 다시 읽기‘에서 <데미안>을 다시 강의하면서 헤세 문학의 경로를 다시 생각한다. 알려진 대로 <데미안>(1919)은 헤세의 새로운 출발점이 된 작품. 당초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데 만약 신인문학상(폰타네상) 수상자로 지명되면서 커밍아웃하지 않았더라면 로맹 가리가 나중에 그랬듯이 에밀 싱클레어의 커리어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주로 <데미안> 이후 1920년대 작품들부터 강의에서 다루다 보니 헤세의 1910년대 작품이 강의목록에서는 빠지게 된다. 초기작 <페터 카멘친트>(1904)나 <수레바퀴 아래서>(1906)에서 곧장 <데미안>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보니 <게르트루트>(1910)와 <로스할데>(1914) 같은 예술가소설과 <크눌프>(1915) 같은 방랑자 소설을 정확하게 자리매김할 수 없었다(보통 주요작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분명 대표작을 다섯 편 이내로 한정하면 빠지게 되겠지먄 헤세 소설의 진화과정을 짚어보려고 하니 필히 검토가 필요하다.

<게르트루트>는 오래전에 <사랑의 삼중주>라는 번역본으로 읽었는데 중학생 때니까 대략 37년 전이다.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손에 들었던 것 같은데 음악 연주 장면이 나온다는 것 정도가 기억에 남아 있다. <로스할데>는 전혀 주목하지 않았던 작품이고. <요양객>과 <동방순례>까지 포함하면 내게 헤세 읽기의 남은 과제목록이다. 요즘 교양소설이 어떻게 예술가소설로 전화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서 강의하다 보니 <게르트루트>와 <로스할데>의 자리도 새롭게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게는 헤세 읽기의 마지막 퍼즐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12년 전에 올렸던 글이다.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때문에 적은 감상이기도 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로제트50 2019-10-29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십수년전 고민보다 지금의 고뇌가
휠씬 크고 복잡하지만 그래도 견딜 만하다는 것은 지혜로와졌기 때문이겠지요.
현악음과 낮은 음성, 오래된 인물들의
열망어린 감성들이
요즘 저의 위안거리입니다...

로쟈 2019-10-30 23:18   좋아요 0 | URL
네, 그게 지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버지니아 울프의 새 평전이 나와 바로 주문했다. 알렉산드라 해리스의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으로>(위즈덤하우스). 울프의 주요 작품에 대해 강의하고 지난번 영국문학기행에서 울프가 산책한 런던 시내를 뒤따라가 보기도 했지만 아직은 그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다. 나로선 절반 정도 파악했다는 느낌.

그렇지만 아직 읽을 책들이 있다는 게 즐거운 도전으로 여겨진다. 몇 권의 소설을 내년 상반기에 더 다루게 되면 목표치의 팔할에는 도달하지 않을까 싶다(후년에 다시 영국문학기행에 나설 때는 좀더 나은 해설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울프에 관한 책으로는 올리비아 랭의 <강으로>(현암사)도 있었는데 빼놓았었다. 울프의 마지막 소설(<세월>과 <막간>)들을 다룰 때 같이 읽어보려 한다. 내년 봄의 일정이다. 이택광 교수의 <버지니아 울프 북클럽>(휴머니스트)에도 몇 가지 참고할 내용이 들어 있다. 기대와 다르게 작품론과는 무관한 책이지만. 울프의 일부 작품에 대한 강의는 아마도 내년초쯤 강의책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전집도 출간된 김에 전작을 다뤄보는 건 어떨까도 생각해본다. 견적을 한번 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