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원작의 영화 <엠마>가 다시 만들어졌기에 오스틴의 소설 <에마>(1816)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영화와 달리 소설 표기는 <에마>로 굳어진 느낌이다. <에마>는 오스틴이 생전에 발표한 마지막 작품. <노생거 사원>과 <설득>이 사후에 유작으로 발표되었고 <샌디턴>은 미완성으로 남았다. <이성과 감성> 이후 생전 출간작은 이렇다.

<이성과 감성>(1811)
<오만과 편견>(1813)
<맨스필드 파크>(1815)
<에마>(1816)

<맨스필드 파크>를 제외하고는 모든 작품을 강의에서 읽었는데(몇년 전에 영화 개봉과 함께 출간된 <레이디 수전>까지 다루었다) 한 작품만 다룰 경우엔 아무래도 <오만과 편견>을 고르게 된다. 두 작품을 선택한다면 보통 <오만과 편견>과 <설득>. 네 편 이상을 읽을 때에라야 <맨스필드 파크>와 <에마>까지 포함하게 되는데, 이는 번역본 출간 상황에 따라서 변경될 수 있다(현재로선 <맨스필드 파크>가 가장 적게 번역되었다).

<에마>가 선택지가 될 수 있는 건 영화뿐 아니라 새 번역도 나왔기 때문이다. 세계문학전집판을 기준으로 열린책들판 <엠마> 외에 세 종 이상의 <에마>가 나와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것은 펭귄클래식판이다.

강의에서는 오스틴 소설을 주로 여성소설, 결혼소설, 풍속소설, 사회소설 등의 맥락에서 다루는데 철학사와 경합하는 소설로 읽는 독법도 있다. 슬라보예 지젝의 언급이다. ˝문학에서 헤겔에 대적할 만한 인물이 있다면 이는 아마도 제인 오스틴일 것이다. <오만과 편견>은 <정신현상학>에, <맨스필드 파크>는 <논리학>에, <엠마>는 <백과사전>에 필적한다.˝ 

헤겔을 더 읽고 이해하게 되면 이런 언명이 어떤 뜻인지 강의에서 풀어줄 수 있겄지만 아직은 아니다. 게다가 헤겔의 <논리학>(보통 <대논리학>을 가리킨다)은 절판된 지 오래다. <백과사전>(<철학강요>로 나왔던가)도 마찬가지다(부분 번역이 있다). 해서 헤겔과 대적하는 오스틴은 아직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오스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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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오정희 소설에 관한 견적을 낸 김에 박완서 선생의 소설에 대해서도 정리해두려 한다. 정리라는 건 어느 만큼, 어떤 순서로 읽을 것인지 가늠해본다는 의미다. 다작의 작가여서 세 종의 전집이 현재 나와있는데(소설전집, 단편전집, 산문전집) 이 정도로 잘 정리된 전집이 나온 작가도 드물지 싶다.

나의 관심은 일단 소설인데 세계사에서 2003년(17권)과 2012년(22권) 두 차례 전집을 낸 바 있다. 현재 읽을 수 있는 건 물론 2012년 결정판이다. 무심코 지나쳤었는데 이제 보니 두 전집 목록에 차이가 있다. 2003년판 전집에 들어 있던 <욕망의 응달>(1979)이 빠졌다(<꿈엔들 잊힐리야>는 <미망>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드라마화의 영향일까?). 결정판 전집에 빠진 만큼 박완서 작품이면서 동시에 지워진 작품이 되었다.

22권 전집은 15종의 소설로 구성되었는데, <엄마의 말뚝>만이 장편소설이 아닌 소설집으로 포함되었다. 유일한 연작소설이어서다(거기에 단편이 몇편 더 들어가 있다). 이 가운데 여성문제를 다룬 ‘여성소설‘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은 1980년대에 발표한 세 작품이다.

<살아있는 날의 시작>(1980)
<서 있는 여자>(1983)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

내가 기억하는 건 당대 베스트셀러였던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이지만 그 시절에는 대수롭지 않은 대중소설로만 생각했다(중고등학교 시절 내게 박완서는 통속적인 ‘여성지 작가‘였다). 그리고 대학 초년시절 나는 ‘여성문제‘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내게는 여자형제가 없었고, 교회라도 나가지 않는 한 여학생을 만날 일도 없었다). 그러고는 30년이 지났다.

어제 전집판 <살아있는 날의 시작>과 <서 있는 여자>를 주문했다(<그대 아직도>는 몇년 전에 구입). 박완서 강의에서 데뷔작 <나목>(1970)만을 다루고 넘어가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렇다고 15종 22권을 다 읽거나 강의에서 다룰 여력은 없다. 나의 개인적인 관심은 한국여성소설에서 박완서의 지분을 확인하려는 것 뿐이다(90년대 들어서면 공지영의 소설들이 뒤를 따른다).

기억에 1980년대와 90년대 평단에서 박완서 소설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았다. 단편들의 성과와는 별개로 장편소설들은 대개 통속적이라고 폄하되기 일쑤였다(사정은 다른 작가들도 비슷했다). 여성문제소설에 초점을 맞출 때도 박완서는 보통 ‘반면교사‘였다. 여성문제의 형상화가 도식적이며 진정한 여성해방과는 거리가 있다는 식. 그랬던 것이 이제 작가가 문학사적 연구대상으로 변모하면서 그 평가도 사뭇 달라지는 성싶다. 흠보다는 미덕이 치켜세워진다. 여하튼 실상은 어떠한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세 작품을 읽어보려 한다.

또다른 분류로는 ‘중산층 소설‘이 있는데 <휘청거리는 오후>(1977)나 <도시의 흉년>(1979) 같은 70년대 소설들이다. 전체적으로는 박완서 소설의 조감도와 분류학이 필요하다. 전공자도 많으니 만큼 그들의 작업에 기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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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율리시즈'를 읽기 위하여

13년 전에 쓴 글이다. 생각의나무판 <율리시스>는 이미 절판된 지 오래고(출판사가 문을 닫았다) 나는 지난해에야 동서문화사판으로 강의에서 읽었다. 제3의 번역본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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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김애란 소설에 관한 페이퍼를 적었는데 내친 김에 오정희 소설의 의의에 대해서도 적는다. ‘의의‘라는 말이 거창하게 들린다면 ‘윤곽‘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최근에 대표작품선으로 <저녁의 게임>(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된 게 계기다.

연구자에게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지만 문학강사에게는 이러한 ‘실물‘이 중요하다. 어떤 책, 어느 출판사의 책을 교재로 삼을 것이냐라는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저녁의 게임>이 당분간은 그런 교재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싶다. 물론 더 많은 작품을 읽고자 하는 독자라면 2017년에 나온(작가의 칠순기념이었겠다) ‘오정희 컬렉션‘(전5권)을 구비하면 된다. 그렇지만 모든 독자에게 요구하거나 기대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한국여성작가만을 다룬 문학강의를 히반기에 책으로 내려한다고 적었는데(목표는 늦가을이다) 실제 강의를 진행한 건 2017년 여름이었다. <인간문제>의 강경애를 제외하면 전후 대표 여성작가 10명을 선정하는 일이 일차적 과제였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작가가 내 생각에 세 명 있었다. 박경리와 박완서, 그리고 오정희(박경리와 오정희는 김동리 문하에 속한다).

박경리(1926-2008)
박완서(1931-2011)
오정희(1947-)

생각하면 얼마전까지 동시대 작가였던 박경리와 박완서, 두 분의 나이차가 많지는 않다. 다만 박완서 선생이 늦게 등단한 탓에 문학사적으로는 한 세대 차이가 난다. 초기 대표작이나 작품집을 기준으로 하면 세 작가의 순번은 이렇게 된다.

박경리, <김약국의 딸들>(1962)
박완서, <나목>(1970)
오정희, <유년의 뜰>(1981)

세 작가 모두 수십 년간 작품활동을 했기에 세대구분은 의미가 크지 않을 수 있지만 내게는 각각 60년대, 70년대, 70년대말과 80년대 한국여성문학의 진화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여성문학‘이라고 특칭할 수 있는 것은 공통적으로 여성 주인공의 운명을 다루면서 여성 주체의 모색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 오정희 소설을 자리매김할 수 있는데 그때 두드러지는 특징으로 지목할 수 있는 건 대표 장편의 부재다. <새>가 장편소설로 분류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중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오정희의 주요작은 이렇다(1968년 신춘문예로 데뷔했다).

<불의 강>(1975)
<유년의 뜰>(1981)
<바람의 넋>(1986)
<불꽃놀이>(1995)
<새>(1996)

이 다섯 권이 ‘오정희 컬렉션‘을 구성하고 있기도 하다. 2017년 강의에서는 이 가운데 <유년의 뜰>을 대표작으로 강의했는데 물론 특이한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다시 교재를 고른다면 <저녁의 게임>(2020)이 좋은 선택지다. 게다가 ‘오정희 컬렉션‘에 들어있지 않은 작품도 포함돼 있다.

˝데뷔작 ‘완구점 여인‘(1968) 등 초기 소설과, 시대적 어둠을 통해 현재의 여성적 삶을 비추는 대표 작품인 전쟁 3부작 ‘유년의 뜰‘(1980), ‘중국인 거리‘(1979) ‘바람의 넋‘(1982)을 포함해 총 11편의 중단편소설이 실렸다. 특히 오정희 소설에서 두드러지지 않았던 아버지를 좀더 선명하게 재현한 ‘저 언덕‘(1989), 작가 특유의 모순적 존재론이 두드러지는 ‘얼굴‘(1999), 떠돌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원천을 조망한 ‘구부러진 길 저쪽‘(1995)은 <오정희 컬렉션>(문학과지성사, 2017)에 미수록된 작품들로, 작가와 해제자, 출판사의 면밀한 검토와 협의를 통해 새롭게 다듬어 실었다.˝

다른 여성문학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주체 형성과정에서는 이버지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관건이다. 오정희적 특이성도 그 관계의 특이성에 대한 해명을 필요로 한다. 이미 한차례 강의에서 다룬 것이지만 책으로 내기 전에 한번 더 검토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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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의 <달려라, 아비>(창비)가 리마스터판으로 다시 나왔다(다시 보니 머쓱하게도 작년 9월에 나온 것이다). 리카버판과는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지만(표지 말고도 더 많은 걸 바꿨다는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작가의 한 주기가 일단락됐다는 느낌도 준다. 데뷔는 2002년이라지만 작품집으로는 <달려라, 아비>가 첫 작품이고 이제 15년이 흘렀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에는 첫 산문집도 묶어냈다. <잊기 좋은 이름>(열림원).

<달려라, 아비>가 2005년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이래 김애란은 한국문학의 기대주이자 젊은 문학의 간판이었다(1980년생이다). 나이로는 이제 중년으로 접어들었으니 그가 무엇을 이루었고 무엇을 이루게 될지 검토와 전망도 필요해 보인다. 작가로서의 자취를 살펴보면 이제까지 네권의 단편집과 한권의 장편소설을 펴냈다.

<달려라, 아비>(2005)
<침이 고인다>(2007)
<비행운>(2012)
<바깥은 여름>(2017)

<두근두근 내 인생>(2011)

작품집을 통독하지 않고 띄엄띄엄 읽었지만(통독한 건 <바깥은 여름>과 <두근두근 내 인생>이다. 2000년대 한국문학에 대해 강의하거나 책을 내게 될지 아직 모르겠으나(여성작가 강의에서 황정은은 다루었고 강경애부터 황정은까지 읽은 여성작가 편의 ‘한국현대문학 수업‘은 하반기에 출간될 예정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김애란을 건너뛸 수는 없다. 강의하는 입장에서 관심은 무엇을 대표작으로 꼽을 것이냐는 문제다. 실제적인 문제로 한권을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달려라, 아비> 리마스터판은 그런 문제를 다시 상기시켜주면서 전체적으로 재검토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간의 잠정적 인상이 달라질 수도 있고 더 굳어질 수도 있을 텐데, 내게 김애란이 던진 수수께끼는 단편과 장편 사이의 격차다. 자기 세대의 가장 뛰어난 단편작가가 재난에 가까운 장편을 쓰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문제(<두근두근 내 인생>에 대해 주례사 비평을 아끼지 않은 비평가들의 얼굴을 나는 다시 보게 된다. 상식적이게도 뛰어난 대중성이 작품의 질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베스트셀러 <두근두근 내 인생> 이후 아직 새로운 장편이 나오지 않고 있는데, 나로선 다음 작품이 중요한 변곡점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장편으로도 뛰어난 성취를 보여줄지, 아니면 빼어난 단편작가로 남을지. 그렇다고 반드시 두 장르 모두에서 성취를 보여주어야 하는 건 아니다.

모파상은 단편과 장편 모두에서 기량을 발휘했지만, 체호프는 단 한편의 장편도 쓰지 않았다. 체호프의 사례를 따르자면 극작 전공의 김애란은 희곡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도 있겠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장르를 선택하는 일은 작가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대사다. 김애란도 그 선택의 기로에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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