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발견‘에 해당하는 책은(페이퍼는 하루 늦춰서 쓴다) 카데르 코눅의 <이스트 웨스트 미메시스>(문학동네)다. 저자에 대해선 자세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지만(검색해보지 않았다) 터키계 독일 학자로 보인다. 책의 부제가 ‘터키로 간 아우어바흐‘다.

˝카데르 코눅은 터키와 미국에서 비교문학을 연구해온 학자로, 독일 국적의 유대인 망명객과 20세기 초반에 추진된 터키의 현대화, 그리고 인문주의 개혁의 연관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했다. 그는 이 책에서 아우어바흐 스스로 “터키에 자료를 풍부하게 갖춘 학술도서관이 없었다”고 말했던 것에 의문을 표하면서, 그것이 정말 사실이었는지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아우어바흐의 특별하면서 특이한 저작 <미메시스>(1946)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참고자료가 없어서 쓸 수 있었다는 전설이 회자되는 책인데 ˝그것이 정말 사실이었는지˝ 따져본다고 하니까 탐정소설적 흥미까지도 갖게 한다.

<미메시스>는 한국 문학에서도 서구 인문학(문학비평) 수용과 관련해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 저작이다(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다음으로). 이번 기회에 서양문학에서 미메시스(리얼리즘) 문제에 대해 나대로 정리해봐야겠다. 시작은 <미메시스>를 정독하는 것이다(예전에 번역되지 않았던 작품들이 뒤늦게 나온 경우들도 있어서 독서가 가능해진 게 얼마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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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기 전 책을 찾다가(며칠 전부터 찾는 책들이 있다) 다시 손에 든 시집이다. 구영미의 <나무는 하느님이다>(시와실천). 약력으로는 2018년에 등단해서 지난해에 펴낸 첫시집이다. 보통 시집을 읽는 독법은 첫시부터 읽거나 표제시부터 읽는 것이다(무작위로 읽는 걸 독법이라 칠 건 아니므로). 표제시를 찾아보니 이렇게 시작한다.

나무는 식탁이다
나무는 편지다
나무가 하늘 앞에 서 있다
나무에 앉아 있는 하느님을 만난다
하느님이 휘파람을 분다
새가 춤을 춘다
(...)

시상의 전개가 억지스럽지도 않지만 또 놀랍지도 않다. 이렇게 마무리된다.

나무에 기대 편지를 읽는다
나무에 기대 밥을 먹는다
나무에 기대 달을 본다
나무는 하느님이다

마지막 행이 제목이 되었고, 이 은유로 해명되는 시다. 시에서 ‘하느님‘을 호명하는 시로는 김춘수의 ‘나의 하느님‘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 어린
순결이다.
三月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 이는
연두빛 바람이다.

보통 시작법책에서 은유의 사례로 많이 적시되는 시이기도 하다. 표제시를 건너뛰고 마음이 가는 시를 찾아보았다. 병증(통증, 편도선염, 갑상샘 항저하증, 호스피스 병동)이 제목에 들어가 있는 시들이 눈에 많이 띄는데 시인 자신이 병치레 경험을 많이 갖고 있는 듯싶다. 그 가운데 나의 취향에 맞는 시는 ‘녹턴‘이다. 실제 경험이 실종되다시피 한 요즘시들과 확연히 다른, 실감의 시가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오후 열한 시 오 분쯤
대전대학교 부설 한방 병원
육인 실 커튼 사이로 간간
빠져 나오는 밭은기침 소리
운율이 불규칙한 코 고는 소리
화장실에서 들리는 물 내리는 소리
명치를 자박자박 두드리는 소리
스마트폰이 부들거리는 소리
미닫이문이 열리는 소리
복도를 오가는 슬리퍼 소리
몇 번이고 돌아눕는 이불 소리
옅은 벽 등을 켜고 따라온 시집 한 권
지문이 빼곡하게 새겨진 페이지마다
그리운 바람소리
수화기 저 편 당신 목소리
힘내자
야간 근무하는 이은미 간호사가
묻는다
좀 어떠세요?

병원 육인 실에 입원해 있는 시인에게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모아 한편의 ‘녹턴‘으로 구성해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실감의 시라고 불렀는데 일상의 시이기도 하다. 낯익은 경험과 자연스런 어법이 잘 어우러진 시의 사례다. 추천사를 적은 신달자 시인은 이렇게 평했다. ˝그의 시는 대체적으로 선명한 마음의 굴곡을 잘 따르는 인생론적 테마이며 그것을 바탕삼아 인간의 예술적 본성을 자신만의 언어로 충실히 그려내고 있다.˝

나대로 옮기면, 시인은 일상의 테마를 자신의 언어로 그려내고자 한다. 아직 습작기에 유명 시인들을 사숙한 흔적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나는 구영미 시인의 ‘녹턴들‘을 더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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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저자의 출신지를 관심의 계기로 삼는 건 드문 일이지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라면 그럴 만하다. 최근에 나온 두 책의 저자의 출신지가 바로 1990년대 내전으로 기억되는 보스니아다. 1964년생 알렉산다르 헤몬과 1978년생 사샤 스타니시치.

헤몬은 27세에 미국 시카고를 방문했다가 내전의 발발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천신만고 끝에 미국에 안착하여 현재는 대학의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작가와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나의 삶이라는 책>(은행나무)는 그의 회고록. 조너선 사프란 포어와 록산 게이 등의 작가들이 강추하고 있다.

헤몬보다 한 세대 아래인 스타니시치는 14살 무렵에 내전과 만났고 부모와 함께 탈출해 독일로 이주한 경우다. 2006년에 첫장편 <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를 발표하면서 등단했고(놀랍게도 번역됐던 작품이다. 현재는 절판된 상태이지만) 지난해에 자전적 장편소설 <출신>(은행나무)를 출간했다. 독일 문단의 대표작가로 우뚝서고 있다고.

반년 정도의 터울이 있지만 두 작가의 책이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걸로 보아 의도적인 계획의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나로선 보스니아 내전기의 삶에 대한 기록으로 관심을 갖게 된다. 구유고연방의 영화감독 에밀(에미르) 쿠스투리차의 영화들이 그간에 내가 접해본 전부였다. 책이 더 나와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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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성작가 앨리스 워커의 <컬러 퍼플>(문학동네)이 재번역돼 나왔다. 스필버그의 영화로 유명한 1982년작이고 이 작품으로 워커는 흑인 여성 최초의 퓰리처상 수상작가가 되었다(1983년 수상). 그래서 떠올린 작가가 두 명이다.

먼저 여성 최초의 퓰리처상 수상작가 이디스 워튼. 대표작 <순수의 시대>(1920)로 수상했다. 백인 여성작가의 수상에서 흑인 여성작가 수상까지 62년이 걸린 셈. 그리고 워커의 뒤를 이어서 <빌러비드>(1988)로 수상한 토니 모리슨. 지난해 타계한 모리슨이 1931년생으로 1944년생인 워커보다 나이는 더 많다. 다만 두 사람은 1970년에 나란히 첫 장편을 발표하면서 작가활동을 시작한 동시대 작가다(모리슨의 데뷔작 <가장 푸른 눈>도 다시 나오면 좋겠다).

미국문학을 강의하면서 20세기 여성작가로는 이디스 워튼과 토니 모리슨만 다룰 수 있었는데 앨리스 워커를 추가할 수 있게 돼 반갑다. 워커의 작품은 데뷔작 <그레인지 코플랜드의 세번째 인생>(민음사)도 출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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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생각이 나서 서가에서 찾은 책은 조동일 선생의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이다. 세계문학과 문학사에 대해 강의해오다 보니 주제상으로는 말 그대로 ‘소설의 사회사 비교‘가 주된 관심사가 되있다. 다만 동아시아권의 전통적인 ‘소설‘과 달리 나의 관심은 근대소설(Novel)에 한정된다.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에서 말하는 소설이란 장르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현대세계에서의 운명이 나의 관심사이고 강의의 레퍼토리다.

이런 주제를 가장 폭넓게 다룬 학자로 조동일 선생이 대표적이다. 세계문학사와 한국소설의 이론에 대한 관심도 내게는 모범과 전례가 된다(구비문학에 대한 관심만은 선생과 공유하지 않는다). 직접적인 인연은 학부 1학년 때 들은 한 학기 강의(대학국어)에 한정되지만 당시에도 몇권의 책을 읽었더랬다. 춘향전과 홍길동전 등을 제외하면 한국고전문학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주제를 갖고 있지 않아서 <한국문학통사>도 나는 일부만 읽었을 뿐인데, 이제 ‘소설의 사회사‘란 주제로 다시 만나게 된다.

확인해보니 책은 2001년에 나왔고 나는 9년 전인 2011년에 구입했다(서고에 가 있을지 모르겠다). 나로선 책을 구하고도 거의 10년만에, 출간으로 치면 거의 20년만에 정색하고 대면하는 게 된다(물론 책을 먼저 찾아야 하지만). 그 사이에 이에 견줄 만한 책이 더 나오지도 않았다. 책이 아직 절판되지 않아서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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