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민 교수의 <한국현대문학사>(민음사) 개정판이 나왔다. 초판은 2002년에 나왔는데 다룬 시기가 1권(1896-1945), 2권(1945-2000)을 합해서 100여년의 역사였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2010년까지로 10년이 더 추가되었고 그에 따라 2권의 분량이 200쪽 이상 늘어났다(1권도 50쪽 가량 늘어났다). 그런 이유만으로도 재구입이 불가피해서 오늘 주문했다(일단 2권만).

아주 오래전 일지만 나는 <한국현대문학사>가 나오기 전에 대학에서 ‘한국현대문학의 이해‘라는 강의를 일부 청강했다. 김윤식 교수의 ‘한국근대문학의 이해‘와 마찬가지로 대형강의실에서 이루어진 교양강의였다(내가 들은 한국문학사 강의의 핵심이다). 이 정도 수준의 문학사 이해는 대중교양이란 뜻도 되고 내가 <로쟈의 한국현대문학 수업>(추수밭)에서 염두에 둔 것도 바로 그런 점이었다. <한국현대문학사>의 독자가 읽어주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다. 소위 표준적인 문학사 이해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어야 조금 다른 시각도 의미가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해방 이후 한국문학의 대표작 목록도 일부는 내가 들은 강의와 문학사책을 참고한 것이다. 최인훈의 <광장>부터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까지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거라는 판단은 거기에 근거하는데 나는 책에서 이병주의 <관부연락선>을 추가했다. 80-90년대 작가로 이문열, 이인성, 이승우를 선택한 건, 충분히 이견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어찌하다 보니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 뿐이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어떤 작가와 작품에 주목하고 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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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출신의 영문학자이자 흥미로운 이론가 프랑코 모레티의 신작이 나왔다. <그래프, 지도, 나무>(문학동네). ‘문학사를 위한 추상적 모델‘이 부제인데, 그래프와 지도, 그리고 나무가 그 모델들이다.

˝프랑코 모레티는 문학사 연구 분야의 독보적인 학자다. 그는 19~20세기 세계문학사, 독서사, 소설과 내러티브 이론 분야에서 폭넓은 시야와 심도 있는 분석을 제시해왔다. 특히 모레티 연구의 가장 독특하고 중요한 점은 문학사 연구에 정량분석을 도입, 적용한다는 것이다. <그래프, 지도, 나무>에서 프랑코 모레티는 계량사학에서 그래프를 지리학에서 지도를, 진화론에서 계통도를 끌어와 방대한 문학사를 정리하는 ‘과학적인’ 방법론을 펼쳐 보인다.˝

작품에 대한 해석과 판단 대신에 데이터에 대한 정량분석을 통해서 문학사를 구성해보겠다는 참신하면서도 파격적인 발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 물론 이를 뒷받침하는 실제 사례가 충분한 설득력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대인적 문학사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연구자들에겐 신선한 자극이 될 만하다.

‘신간‘이라고 적었지만 원저는 2005년에 나왔다. 기억에는 그 전후로 저자가 방한하기도 했었다. 강연 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그래프, 지도, 나무‘였던 것 같다. 직접 들어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어렴풋한 기억이다. 근대소설론의 집성이라고 할 엔솔로지 <소설>(전2권)을 포함해서 모레티의 책은 대부분 갖고 있다. 번역도 이번 책을 포함하면 네권이 나와있는데 <세상의 이치>와 <근대의 서사시>는 절판된 상태. 그만큼 문학이론서의 독자층이 줄어들었다는 뜻인가.

이번 책을 옮긴 이재연 교수는 실제 모레티의 방법론을 한국근대문학사에 적용한 논문도 발표한 바 있다(어제 프린트아웃했다). 소위 디지털인문학 분야의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데 ˝디지털 인문학 이론과 사례연구에 관심이 있고, 매체를 통한 한국근대문학의 형성을 디지털 문학 방법론으로 살펴보는 저서를 집필중˝이라고 소개된다. 조만간 읽어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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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택배로 받은 책의 하나는 샬럿 메리 브레임의 <여자보다 약한>(필맥)이다. 책은 작년말에 나왔는데, 며칠 전에야 존재를 알게 되어 주문했었다. 저자나 작품 제목은 생소하다. 샬럿 메리 브레임(1836-1884)는 19세기 영국 여성작가로 생계를 위해 다작의 작품을 쓴(200편 이상이라 한다) 대중소설가다. 빅토리아 시대 대중문학에 관심을 두지 않는 한 읽을 일이 없을 작가인데, 문제는 조중환의 번안소설 <장한몽>의 원작 <금색야차>의 저본이 된 소설이라는 점. 
















<금색야차>(1897-1903)는 일본 메이지시대 소설가 오자키 고요(1868-1903)의 최고 히트작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로 번안하여 1913년 '매일신보'에 연재한 것이 <장한몽>이다. <금색야차>와 <장한몽>의 관계는 잘 알려져 있는데, 오자키 고요가 <여자보다 약한>의 영향을 받아 <금색야챠>를 썼다는 사실은 다소 늦게 밝혀졌다. 그건 오자키의 기억 착오 때문인데, 그가 <금색야챠>를 쓰면서 힌트를 얻은 작가와 작품을 대면서, 샬럿 브레임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미국 여류작가'로, <여자보다 약한>은 <백합>(미국 작가 앨리스 킹 해밀턴의 소설)이란 작품으로 적어놓았다. 짐작에 그 시기 미국에서 나온(<여자보다 약한>도 작가 사후에 미국에서 출간되었다고) 대중소설들을 뒤죽박죽으로 읽다가 착상한 게 아닌가 싶다.  


<여자보다 약한>이 <금색야차>의 유일한 저본은 아니지만 연관성은 가장 높은 작품이라 한다. 아무튼 한국적 신파(성)의 원형을 제공한 <장한몽>을 이해하기 위해서, <금색야차>를 읽을 필요가 있고, 또 <금색야챠>를 읽기 위해서는 <여자보다 약한>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 나로선 근대문학을 이해하는 데 흥미로운 사례여서 관심을 두고 있다. 한데, 어렵사리 <여자보다 약한>을 읽어보게 되었지만, 정작 <금색야챠>와 <장한몽>은 절판된 상태다. 범우사판이 유일본이었던 <금색야챠>는 지난해말 '아시아 교양총서'의 하나로 다시 나왔는데, 분량상 현재는 상권만 선보인 상태. 게다가 연구소에서 펴내는 책이 책값도 비싼 편이다. 대중독자보다는 연구자를 위한 판본인 셈. '한국의 번안소설' 시리즈로 나왔던 <장한몽>도 마찬가지다. 
















한국근대소설사를 이해할 때 나는 번안소설의 의의가 과소평가되었다고 생각한다(박진영 교수의 책들이 번역과 번안소설의 중요성에 대해서 예외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에서 이광수의 근대장편소설 <무정>으로 바로 넘어갈 수 있는 경로는 없다. 중간에 <장한몽> 같은 번안소설이 필수적인 매개로 끼어 있어서다. <장한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인데, 그러다보니 브레임의 <여자보다 약한>에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더 상세히 살핀 책이 나오면 좋겠다...


20. 0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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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낭만주의 창시자로 알려진(슐레겔 형제 가운데 동생)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미학 철학 종교 단편>(먼빛으로)가 번역돼 나왔다. 독일문학을 강의할 때 가장 애를 먹는 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낭만주의 작품들인데(괴테와 실러의 바이마르 고전주의와 슈토름, 폰타네 등의 사실주의 문학은 상대적으로 강의가 용이하다) 그 ‘운동‘의 실상을 가늠하기 어려워서다.

주창자와 대표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되지 않은 것도 한몫하는데, 이론/철학 쪽으는 프리드리히 슐레겔이 소개되지 않은 게 치명적이었다(내가 마련해준 핑계다). 그러던 차에 몇년 전(2015)에 이병창 교수의 번역으로 <그리스문학 연구>(먼빛으로)가 처음 소개되었고 이번에 <미학 철학 종교 단편>이 나왔다.

˝독일 낭만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슐레겔이 초기(1797-1800) 낭만주의 운동을 전개할 때 작성한 단편을 번역했다. 여기 실린 단편은 그가 1797년부터 1800년에 이르기까지(초기 낭만주의 운동 시기) 작성한 여러 단편인데 낭만주의 문학 기관지인 <리케움>과 <아테네움>에 발표되었다. 이 단편은 문학 이론에 관한 저서인 <그리스 문학 연구>와 함께 프리드리 슐레겔의 문학, 예술, 철학, 종교에 관한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저서이다.˝

거기에 더하여 <초월철학 강의>(마인드큐브)도 소개되었다. 확인해보니 주섬주섬 구입한 책들이다. 참고할 만한 이차문헌으로는 프레더릭 바이저의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그린비)와 라쿠 라바르트/낭시의 <문학적 절대>(그린비)가 있다. 아마도 대학원에서라면 ‘독일 낭만주의론‘ 같은 강의가 꾸려질 만한 견적이다.

나로선 독일문학사 몇종과 해설서들을 참고해서 읽어봐야 하지만 당장은 여유가 닿지 않기에 준비만 해두려한다. 낭만주의의 몇몇 작품은(가령 횔덜린의 <히페리온>이나 노발리스의 <푸른 꽃> 등) 강의에서 한번 다룬 적이 있는데 나중에 다시 읽게 된다면 좀더 심도있게 다뤄보려 한다. 슐레겔의 책들도 모아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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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클래식이란 무엇인가

12년 전에 쓴 글이다. 그맘때 단테의 <신곡>을 읽고 강의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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