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루이 페르디낭 셀린(루이 훼르디낭 셸린느)의 대표작 <밤 끝으로의 여행>(최측의농간)이 재간되었다. 1932년작. 앞서 나온 동문선판(2004)을 갖고 있는데 절판된 터였다. 책값이 좀 비싸긴 하지만 강의에서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의 의사이자 작가, 루이-훼르디낭 쎌린느의 문제적 데뷔작, <밤 끝으로의 여행>. 고통과 절망 속에서 삶이라는 밤의 시간을 배회하는 비참한 인간의 모습을 전례 없는 스타일로 그려낸 이 충격적인 데뷔작 덕분에 저자는 20세기 프랑스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2004년 완역 발간되었지만 널리 이르지 못하고 이내 절판되어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쎌린느의 이 대표작을 최측의농간에서 역자와 함께 초판에 존재했던 일부 오기를 바로잡아 신판으로 발간했다."


사실 <밤 끝으로의 여행>보다도 앞서서 민희식 교수의 번역으로 나온 적이 있다. <밤의 끝까지 여행을>(1993)이라는 제목이었다. 책은 구한 듯한데, 제목은 불만이었다. 원제를 굳이 변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이형식 교수의 번역판도 제목이 왜 <밤의 끝으로의 여행>이 아닌지 궁금하다. 한국어 조어상 그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불어 표현도 그렇다). '의'를 빼려고 하니까 '밤의 끝'이 '밤 끝'이라는 어색한 표현이 되었다. 

















셀린의 작품은 과거에 <외상 죽음>이 세계문학전집의 한 권으로 번역된 적이 있지만 절판된 지 오래되었다(다시 나옴직하다). 그밖에 <제벨바이스><Y교수와의 인터뷰> 등이 소개된 상태. 계획으로는 2학기쯤에 <밤 끝으로의 여행>과 함께 한 작품 정도는 더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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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20-05-26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나왔네요. 중고본도 비싼 몸값 자랑하는 책이라 나와 준 게 고마운~
외상죽음은 진즉에 구해놨었는데 이제 읽기만 하면.
잘~읽을 수 있을지는~~

로쟈 2020-05-27 00:19   좋아요 0 | URL
외상죽음도 다시 나와야 다룰 수 있을 텐데요..
 

원로 문학평론가 김주연 선생의 신작 평론집이 나왔다. <그리운 문학 그리운 이름들>(문학과지성사). 몇년 전에 등단 50주년 평론선집이 나왔고(거의 전집에 육박하는 분량이다) 평론활동을 일단락짓는 의미가있는 걸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등단 55년차에 접어드는 여전한 현역 평론가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현역 비평가로서 꾸준히 집필할 수 있었던 그의 비결은 역동하는 문학장을 기민하게 감각하고 유연하게 이해해온 열정적 자세에 있을 것이다. 김주연은 비평을 통해 종교의 문화적 역할에 대한 깊은 해설을 제공하고, 온갖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문화적 상황을 기독교적 지성과 신앙으로 치유해왔다. 32편의 비평문과 한 편의 대담이 담긴 이번 비평집 또한 문학의 가치에 대한 신실한 믿음으로 높은 성취를 이룬 문학작품들을 치열하게 분석한 결과물을 한데 묶었다. 또한, 애정 어린 눈으로 한국 문학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며, 오늘날 문학의 가치와 역할을 진지하게 질문한다.˝

며칠 전 서가에서 고 김치수선생의 평론집(전집)을 꺼내들고서는 충실한 내용에 새삼 감동을받았는데, ‘문지 4인방‘ 평론가들이 활동하던 때가 한국문학비평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 덩달아 감회를 느끼며 바로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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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공 2020-05-28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5년동안 비평을 쓰신 분, 처음 알게 되었네요.
책 목차가 흥미롭네요. 고전 문학을 ˝깊이 있는 종교적 이해˝를 바탕으로 쓰셨다 했는데 어떤 관점에서 쓰셨을지 궁금합니다. 읽어보도록 할게요.
 

이번주 한겨레에 실은 북칼럼을 옮겨놓는다. 최근 강의에서 읽는 모파상의 <삐에르와 장>(창비)에 대해서 적었다. 앞선 <여자의 일생>(<어느 인생>)과 <벨아미>와는 다른 종류의 소설로('심리소설'로 분류할 수 있겠다) 그에 이어지는 <죽음보다 강한 사랑>(백성)까지 읽어봐야 모파상 장편소설에 대해 해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파상이 남긴 여섯 편의 장편 가운데 국내에는 이들 네 편이 번역돼 있다...


















한겨레(20. 05. 20) 영웅 아닌 이들로 소설을 쓴다는 것


한국 독자가 기억하는 모파상은 단편 ‘목걸이'와 첫 장편 <여자의 일생>의 작가다. 그와 함께 두 번째 장편 <벨아미>도 수년 전에 여러 종의 번역으로 출간돼 모파상이란 이름을 다시 기억하게 했다. 단편작가로서 세계적인 명망을 얻었지만 모파상은 여섯 편의 장편도 남긴 작가다. <여자의 일생>이나 <벨아미>만큼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삐에르와 장>(1888)도 그중 하나로 빼어난 문체와 형식미를 자랑하는 수작으로 꼽힌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작품의 분량인데, 단편보다는 물론 길지만 당시 통상적인 장편소설보다는 짧은 편이어서 모파상 자신이 서문 격으로 실린 ‘소설’이란 에세이에서 ‘짤막한 소설’이라고 불렀다. 우리말로는 모순적이지만 ‘짧은 장편소설’에 해당한다. 모파상이 작품과는 별개로 소설에 대한 성찰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에세이 ‘소설’인데, 사실 <삐에르와 장> 역시 모파상 소설의 특징에 대한, 더 나아가 소설 장르의 본질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줄거리는 간단한 편이다. 파리에서 보석상을 하던 아버지 롤랑은 연금생활이 가능하게 되자 곧바로 가게를 접고 아내와 함께 노르망디의 르아브르에 정착한다. 항해와 낚시에 대한 넘치는 애정 때문이었다. 다섯살 터울의 두 아들 피에르와 장은 그 사이에 학업을 마치고 각각 의사와 변호사로서 사회 진출을 앞두고 있다. 이들 가족이 로제미유라는 젊은 미망인과 교제를 갖게 되는데, 미혼의 피에르와 장은 둘다 그녀에게 관심을 쏟는다. 통상 그렇듯이 형제는 우애와 함께 경쟁심도 품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롤랑 부부가 파리에서 친구로 지냈던 마레샬 씨가 사망하면서 막대한 유산의 상속자로 장을 지정한다. 형제 중 한 명만 특정한 것이기에 특이한 일이었지만 피에르만 제외하고 롤랑의 가족은 의심 없이 기뻐한다. 피에르는 동생의 횡재를 질투하면서 차츰 어머니와 마레샬의 관계를 의심하게 되고 결국 추궁 끝에 어머니가 그와 내연의 관계였다는 고백을 받아낸다. 아들 장에게 어머니는 마레샬이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었다고 토로하고 형 피에르로부터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장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피에르는 가족과 작별하고 주치의로 미국행 유람선에 오른다. 장은 로제이유 부인과 결혼을 약속한다.


이 ‘짤막한 소설’은 어떻게 가능했던가. 두 가지 경로가 가능하다. 단편소설을 확장하는 것과 장편소설을 축소하는 것. <삐에르와 장>은 단편소설을 확장한 쪽에 가까운데 두 주인공 피에르와 장의 심리를 묘사함으로써 모파상은 서사의 분량을 늘렸다. 다른 면에서 보자면 사회적 현실을 총체적으로 묘사하는 대신에 한 가족의 이야기만을 다룸으로써 서사의 범위를 축소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의 핵심 특징이 인물의 심리 묘사에 있다는 점은 주인공들이 영웅성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인물이라는 데서도 확인된다. 


만약 작가가 심리 대신 행동만을 묘사했다면 소설의 분량은 중편 이하로 축소되었을 것이다. 즉 피에르와 장 형제는 장편소설을 이끌어나갈 만한 주인공의 역량을 갖고 있지 않다. 피에르는 어머니의 부정을 응징하려 나서지 않으며, 장은 온당하지 않은 유산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조건에서 예기치 않은 유산 상속으로 빚어진 형제간의 불화와 어머니의 숨겨진 비밀 이야기는 장편 서사의 동력으로 부족하다. <삐에르와 장>은 ‘변변찮은 인물들로 장편소설 쓰기’의 어려움과 노하우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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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문학기행에 관한 원고를 제안 받고서 첫번째로 떠올린 주제가 프라하의 카프카여서, 프라하 여행의 기억을 상기하며 적은 글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20년 5월호) 프란츠 카프카의 도시, 프라하를 걷다


중부유럽의 아름다운 도시 프라하를 찾아가는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는 않다그렇지만 내게 프라하는 '카프카의 도시'였고(밀란 쿤데라까지 포함하면 ' 명의 K'), 카프카의 발자취를 따라가보기 위해 수년 전에 프라하를 찾았다 차례였는데한번은 가족과 함께한 자유여행이었고나중에는 카프카 문학기행을 이끌면서였다체코의 수도인 프라하는 현재 인구 130 명의 대도시이지만 언덕에서만 내려다보아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기에 아담해 보이기까지  도시다그건 아마도 내가 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서울에 익숙해서 갖게  착시일 것이다.

1883 프라하에서 유대인 가계의 장남으로 태어난 프란츠 카프카에게 프라하는 지금보다 훨씬 인구가 적었음에도 위압적인 느낌을 주는 도시였다그의 작품들을 통해서 읽을  있는  위압적인 분위기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나는 궁금했다가령 미완의 마지막 장편 <> 주는 인상을 떠올려보라궁금증은 쉽게 풀렸다처음 프라하를 찾을 때는 한밤에 프라하공항에 도착해서 미리 예약해둔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갔던지라  이튿날에야 프라하의 전경과 대면할  있었다한여름이어서 햇빛이 환하게 비쳐드는 아침에 호텔방의 커튼을 열어젖혔는데 비명과 경탄이 교차했다비명은 유리창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거미들을 보고 아이가 내뱉은 것이었고 경탄은  너머의 프라하성을 보며 내가 속으로 내지른 것이었다.



압도적 권위의 상징프라하 

프라하를 찍은 어떤 사진에서건 프라하성은 빠지지 않는다아마도 블타바강을 가로지르는 카를교와 함께 프라하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리라. 9세기 중반부터 건설되기 시작해 14세기에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는 프라하성은 현재도 대통령궁으로 사용된다그렇게 실제로 사용되는  가운데서는 전세계에서 가장  성이다관광객들에게는 매우 아름다운 야경을 제공하는 인상적인 건축물이 프라하성인데나는  아름다움과 함께 규모가 주는 압도감을 느꼈고 카프카문학을 이해하는 실마리라고 생각했다흔히 정신분석에서도 성을 남성 상징이라고 얘기하지만  구체적으로는 권력과 가부장적 권위의 상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그것은 카프카의 우화 ' 앞에서' 등장하는 법의 상징이기도 하다.

권력기계로서의 아버지와 그리고 그것을 매개해주는 상징적 형상으로서의 프라하성을 실물로 처음 보자마자 내가 이해하게  '커넥션'이다카프카의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는 동화된 유대인으로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상인이었다장사수완을 발휘해 자기 가게를 내고 교양시민계급의 여성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첫아들 프란츠에 이어서  아들이 태어났지만 일찍 죽고 이어서  딸이 차례로 태어났다부부 사이에 6남매가 태어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1 3녀가 되었고 카프카가 장남이자 유일한 아들이었다자연스레 아버지 헤르만의 기대는 아들 카프카에게 집중됐다그는 자녀들을 모두 독일학교에 보냈는데 당시 프라하의 상류층은 독일인들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4직장생활과 작품집필을 병행하다 
유대인도 체코인도 아닌 상류층 독일인이 되는 것이 헤르만의 목표였다독일학교를 다닌 까닭에 카프카가 일상에서는 체코어를 쓰면서도 작품은 독어로 썼으니 아버지의 영향이 결코 작다고   없다문제는 카프카가 아버지의 가업보다는 문학에  관심을  작가 지망생이었다는  있다김나지움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할  카프카는 문학을 공부하러 독일의 대학으로 유학을 가고자 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무산되고 프라하의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다카프카는 아버지의 뜻에 따르면서도 자기의 고집 또한 지키고자 했다절충책이 법학박사 취득 후에 노동자상해보험공사에 취업하여 직장인이 되는 것이었다카프카는  직장에 1908년에 입사하여 1922 건강악화로 사직하기까지 14년간 재직한다그런 장기간의 재직이 가능했던  카프카의 입장에서는 근무조건이  맞아떨어졌고공사 입장에서는 카프카의 근무성적이 좋았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아침 8시까지 출근해서 오후 2시에 퇴근했는데덕분에 직장생활과 작품집필을 병행할  있었다물론 이러한 '이중생활' 아무래도 그의 건강에 무리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고결국 그를 죽음으로 이끈 폐결핵의 중요한 원인이  것으로 보인다그렇게 건강이 상할 정도로 카프카는 문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지만 아버지 헤르만은 그런 아들에  한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가족 가운데서는 막내 여동생 오틀라만이 유일하게 카프카의 작품활동에 관심을 갖고 응원했으며 작은 작업실을 임대해 마련해주기도 했다프라하성에서 내려오는 (황금소로) 위치한  작업실이 지금은 카프카기념품 가게가 되어 있는데 카프카를 찾아 프라하를 방문한 여행자라면 반드시 들러봐야 하는 명소이기도 하다.


결혼창작 활동의 기로에서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도 창작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았던 카프카가 창작의 결정적인 돌파구를 찾은 것은 1912 9월의 일이다  8 중순 친구인 막스 브로트의 집에서 처음 만난 펠리체 바우어에게 한달 뒤에 편지를 쓰고서 연이어 하룻밤 만에 '선고'라는 단편을 완성하는데 작품이 바로  돌파구에 해당한다펠리체는 당시 베를린에 직장을 갖고 있었고 프라하의 인척 브로트의 집에는 잠시 들른 것이었다카프카는 자신이 선망하던 도시 베를린의 직장여성이라는  호감을 느꼈고 그녀여게 열정적인 편지를 써보내기 시작했다결국  사람은 1914 6월에 약혼까지 하지만 불과 한달 뒤에 카프카의 변심으로 파혼하게 된다이후에도 카프카가 펠리체와 한번  약혼했다가 파혼하게 되기에  사람은 문학사에서도 드문 인연으로 기록된다.
 
카프카가  차례나 펠리체와 약혼한 것은 물론 결혼한 의사가 있었기 때문이고 그것이 또한 아버지의 바람이었기 때문이다아버지 헤르만은 아들이 번듯한 직장과 가정을 가짐으로써 중산층 가계를 이어주기를 바랐다카프카는  뜻에 따르려 했지만 동시에 결혼생활이 자신의 창작과 양립할  있을지에 대해선 자신이 없었다더구나 자식까지 갖게  집필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카프카에게 악몽이었다아버지의 뜻에 따르면서 동시에 창작에 대한 욕망도 포기할  없었던 카프카의 딜레마가 펠리체와의 두차례 약혼과 파혼의 배경이다사실 두번의 약혼과 파혼으로 모든 것이 일단락된 것도 아니다카프카는 이후에 율리에 보리체크라는 여성과도 약혼했다가 이번에는 아버지의 반대로 파혼하며나중에는 당시 유부녀였던 밀레나 예젠스카에게 구혼했다가 거절당한다.
 
아버지카프카 문학의 밑바탕이 되다
흥미로운  이러한 이력이 카프카 문학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다르게 보면카프카의 문학은 그의 실존적 상황의 문학적 번역 혹은 번안으로 여겨진다. '선고이후 '화부' '변신 작품을 연이어 완성한 뒤에 카프카가 이를 묶어서 '아들들'이라는 표제의 작품집으로 내려고 했던  시사적인데(성사되지는 않았다그의 문학의 핵심이 바로 아버지와의 관계 부자관계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그렇지만 1914 펠리체와 파혼 이후에 쓰게 되는 장편소설 <소송> 통해서 카프카의 문학은  단계 도약하게 된다인상적이게는 <소송>에는 '아버지' 등장하지 않는다그것은 아비지가  이상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법의 형상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프라하성은 그리한 변모의 배경이자 매개다카프카가 프라하의 작가가 아니었다면 그러한 변모와 도약이 가능할  있었을까카프카의 책을 끼고서 프라하를 방문하는 여행자들과 같이 토론하고 싶은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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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378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조지 기싱의 <이브의 몸값>(1895)에 대해 적었다. <뉴 그럽 스트리트>(1891)가 최근에 다시 나와서 반가운데, 두어 작품 정도는 더 번역되면 좋겠다...
















주간경향(20. 05. 25) 열정이 아닌 재산에 따라 정해지는 운명

영국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로 통상 토머스 하디를 꼽지만, 그의 소설들은 주로 영국 남서부 농촌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다른 무엇보다 ‘런던의 작가’로 평가할 만한 찰스 디킨스의 적통을 잇는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자본주의 근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근대소설의 핵심 공간은 아무래도 런던과 같은 대도시여야 하기 때문이다. 역동적인 변화의 공간으로서 도시야말로 산업화의 중심이며, 이 도시의 다양한 군상들이 자연스레 근대소설의 주인공이 된다. 그러한 기대로 주목하게 된 작가가 19세기 말에 정력적으로 작품을 써낸 조지 기싱이다.


무려 23편의 장편소설을 포함해 다양한 장르의 글을 발표했지만, 국내에서 기싱이라는 이름은 주로 자전적 에세이 <기싱의 고백>(원제는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이다)의 저자로만 알려졌다. 대표 소설들의 번역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였는데 그나마 지난해에 <이브의 몸값>이, 그리고 올해는 <뉴 그럽 스트리트>(‘꿈꾸는 문인들의 거리’라는 제목으로 한 차례 나왔다)가 다시 나와서 궁금증을 조금 덜었다. <뉴 그럽 스트리트>가 19세기 말 후기 빅토리아 시대 생계형 작가들의 실상을 다룬 일종의 예술가소설이면서 세태소설이라면, <이브의 몸값>은 연애소설이다. 주인공은 미술교사의 아들 모리스 힐리아드. 예술가가 되기를 갈망했지만 아버지의 불운과 죽음으로 포기하고 기계 제도공이 되었다. “손재주로 돈을 버는 직업과 빈털터리 예술가 사이의 타협책”이었다.

어느 날 힐리아드는 사업에 실패하고 파산을 선언함으로써 채권자였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그렇지만 다시금 재기하여 부자가 된 사업가로부터 뒤늦게 436파운드의 빚을 상환받는다. 그에게는 형이 죽은 뒤 부양해온 형수와 조카가 있지만, 재혼을 결심한 형수가 도움을 마다하면서 그 돈을 온전하게 자신을 위해 쓸 수 있게 된다. 그는 그 돈을 통해서 단 2년이라도 삶다운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파리로 떠나지만 혼자만의 여유로운 생활은 생각만큼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는 런던으로 돌아와 사진으로만 알고 있던 동향 출신의 이브 매들리라는 여자를 찾아나서고 만남을 갖는다. 가난한 집안 출신의 이브는 런던에서 장부를 정리하는 저임금의 노동자로 어렵사리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과 처지가 비슷하다는 생각에서 힐리아드는 이브에게 파리 여행을 제안한다. 짓눌린 일상에서 탈출하여 그녀에게도 휴식과 만족을 선사하고 싶어서다.

이브가 힐리아드의 제안을 수용하고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면 통상적인 연애소설이 되었겠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힐리아드는 차츰 열정에 빠져들지만, 가난에 대한 공포감을 갖고 있는 이브에게 장래가 보장되지 않는 힐리아드와의 결혼은 미더운 선택지가 되지 못한다. 힐리아드의 관심과 도움에 고마워하지만, 그 이상의 감정은 품고 있지 않던 이브는 삼촌에게 상속받은 5000파운드의 유산을 바탕으로 사업가로 변신한, 힐리아드의 친구 나래모어로부터 구혼을 받자 허락한다. 힐리아드와의 관계가 장애가 될 수 있었지만 힐리아드는 이브의 행복을 가로막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힐리아드는 친구의 초대로 상류 사교계의 지적인 숙녀로 변신한 이브를 만나게 되고, 이브는 그의 관대함에 사의를 표한다. 자연주의 소설답게 주인공들의 운명은 열정의 강도가 아닌 재산의 규모에 따라 정해진다. ‘이브의 몸값’이란 제목에 어울리는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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