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자신이 고슴도치라고 생각한 여우

13년 전에 옮겨놓은 글이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이번 여름에도 강의할 예정이라 다시 손에 들 예정인데, 이사야 벌린의 <고슴도치와 여우>는 절판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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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380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최근 영국문학 강의에서 키플링의 <정글북>과 <킴>을 읽었는데, 키플링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킴>을 대상으로 삼았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비판적인 독해를 제시한 이후 많은 비평적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간경향(20. 06. 08) 작가 키플링보다 더 현명한 주인공의 선택


<정글북>의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은 영어권 작가 최초이면서, 역대 최연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다. 1907년 42세의 그에게 수상의 계기를 마련해준 작품이 <킴>(1901)이다. 당대를 대표했던 다작의 작가이자 시인이었지만, 오늘날 문학사에서 키플링이라는 이름은 주로 <킴>에 의존하고 있다. 대표작인 만큼 키플링의 작가적 세계관과 정치적 견해를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라 독자는 기대해볼 수 있다. 문제는 그가 영국 제국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라는 데 있다. 식민지 인도를 배경으로 한 <킴>이 한편으로는 영국의 식민통치를 은연중에 정당화하는 작품으로 의심받아온 이유다. 그런 만큼 주의해서 읽어야 할까.


제목의 ‘킴’은 주인공의 이름이다. 아버지는 아일랜드 출신의 인도 주둔 영국군 하사관이었고, 어머니는 연대장 사택의 보모였다. 세 살 때 어머니가 콜레라로 세상을 떠나고 이후 아버지는 아편중독자로 생을 마쳤다. 고아가 된 킴에게는 출생증명서를 포함한 세 종류의 문서만이 유산으로 남겨졌다. 비록 영국인이라는 이유로 또래 아이들에게 특권을 행사했지만 킴은 ‘가진 것 하나 없는, 지지리도 가난한 백인’이었다. 그렇지만 킴은 죽은 아버지의 기대대로 언젠가는 어엿한 남자가 되고 강력한 부대 연대장의 호위를 받게 되리라고 상상했다.

주인공의 설정만 보면 <킴>은 성장소설의 서사를 기대하게 한다. 독특한 것은 그가 티베트에서 온 라마승과 동행한다는 점이다. 라마승은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설의 강을 찾아 순례하던 길이었다. 킴은 그의 제자가 되어 펀자브 지역의 라호르에서 북부의 히말라야에 이르는 긴 여정에 나선다. 이 여정의 끝에서 결국 라마승은 깨달음에 도달하는데, 결말만 보면 <킴>은 전형적인 구도소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킴>은 킴의 성장소설과 라마승의 구도소설의 결합에 그치지 않는다.

소설의 배경인 19세기 말에 인도를 포함한 중앙아시아에서는 ‘큰 게임(그레이트 게임)’이라고 불리는, 영국과 러시아의 패권 쟁탈전이 치열하게 진행됐다. 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국 첩보요원의 심부름꾼으로 일하게 되면서 점차 ‘큰 게임’에 관여하고 <킴>은 스파이소설의 외양도 갖추게 된다. 여정 중에 킴은 3년간 학교 교육도 받으면서 첩보요원의 자격을 갖춰나간다. 성장한 킴은 정부기관의 요원으로 활약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다른 한편으로 깨달음을 얻은 라마승은 킴을 제자로 호명한다. “윤회의 수레바퀴는 공정하다! 우리는 온전히 해방되었다! 내게로 오너라!” 과연 킴의 선택지는 무엇이 될까. 영국의 제국주의를 세뇌하는 작품으로 비판받은 것과는 달리 <킴>은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킴은 백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다가도 한편으론 백인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어린 나이에도 러시아와의 첩보전에서 일익을 담당하지만, 라마승과 마찬가지로 존재의 수레바퀴에서 해방되려는 열망도 느낀다.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고통받는다는 점에서는 모든 인간이 공통적이다. 영국인이건 인도인이건 혹은 러시아인이건 차이가 없다. 비록 현실세계에서는 서로의 국익을 위해 각축을 벌인다고 해도 말이다. 키플링 자신은 제국주의자로서 비서구 지역을 문명화해야 한다는 ‘백인의 책무’를 믿었지만 <킴>의 결말이 그러한 믿음과 합치하는가는 의문이다. 적어도 그런 결론을 유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킴>은 작가 키플링보다 더 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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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관심을 가졌던 작품 가운데 하나가 샬럿 브론테의 <빌레트>였다. 샬럿이 생전에 발표한 세 편의 소설 가운데 마지막 작품. 사후에 첫 완성작 <교수>(1857)가 유작으로 출간돼 그녀의 작품은 모두 네 편이다. <제인 에어>(1847), <셜리>(1849), <벨레트>(1853), <교수>(1857).















'전지적 강사 시점'에 따라서, 나는 주로 작품을 언제 어느 강의에서 다룰지 궁리하게 되는데, 올 가을에 19세기 영국 여성작가들을 다루면서 브론테 자매의 작품을 읽어볼 계획이다. 샬럿과 에밀리, 앤, 세 자매가 남긴 작품(소설)은 모두 일곱 편으로, 샬럿 4편, 에밀리 1편, 앤 2편이다. 그 가운데 샬럿의 <셜리>(1849)와 앤의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1848)이 (분명치 않은 이유로)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다. 
















강의에서는 그 일곱 편 가운데 네 편을 다루려고 샬럿의 작품으론 <교수>와 <제인 에어>를 골랐는데, <빌레트>가 마음에 걸렸다. 번역본이 없지 않았지만, 새 번역본이 없다는 핑계를 대려고 했다. 그런데, 절판됐던 창비판 <빌레뜨>가 세계문학전집판으로 이번에 다시 나왔다. <빌레트>를 포함하면 다른 작가의 작품을 한 편(내지 두 편)을 빼야 하는 일정이라서 고심이 된다. 
















굉장히 많은 번역본이 나와 있는 <제인 에어>에 비하면 <교수>는 한 종, 그리고 <빌레트>는 이제 두 종이 되었다. 이런 쏠림 현상이 강사 입장에서는 유감인데, 네 편의 장편소설 가운데 이가 하나 빠진 것처럼 된 <셜리>도 조만간 번역돼 나오면 좋겠다. 
















샬럿의 경우, 가장 널리 알려지고 중요한 작품은 물론 <제인 에어>이지만, <제인 에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나머지 작품들에 대한 독서가 필요하다. 무엇이 다르고 작품간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전지적 강사 시점에서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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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강의를 마치고 귀경하는 길이다(오며가며 기차안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한여름에는 곤혹스러울 것 같다). 마침 카뮈의 <페스트>를 다루게 돼 겸사겸사 오늘 새벽에는 국내에 소개된 아프리카 작가들을 꼽아보았다( <페스트>의 배경이 알제리다). 대략 15명의 작가를 추릴 수 있었는데 한 학기 강의라면 이 가운데 최대 10명까지 다룰 수 있겠다 싶다. 작가당 작품 수를 늘리면 5-6명 정도이지 않을까.

국적으로 분류하면 나이지리아 작가와 남아공 작가가 가장 많다. 그밖에 이집트와 알제리, 수단, 케냐, 세네갈 등의 국적을 갖고 있고, 언어는 대부분 영어이거나 불어다. 나지브 마흐푸즈나 존 쿳시 같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도 있고, 치누아 아체베나 응구기 와 시응오처럼 근년의 유력 후보도 있다(예상대로 쿳시의 작품이 가장 많이 소개되었다). 강의를 진행하게 되면(빠르면 올 하반기부터다) 좀더 정밀하게 살펴보고 작품의 우선순위도 정해야 한다. 

















아쉬운 것은 몇몇 주요 작품이 절판되었다는 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나딘 고디머의 <거짓의 날들>과 <보호주의자>, 벤 오크리의 <굶주린 길> 등이 대표적이다. 쿳시의 <마이클 K>도 아직 재출간 소식이 없다.

세계문학 강의에서 아프리카는 그동안 관심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르 클레지오나 도리스 레싱 같은 아프리카 태생 작가들의 작품을 읽었더라도 통상 ‘아프리카 문학‘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백인 작가이지만 쿳시의 일부 작품이 아프리카문학에 부합하는 특징과 문제의식을 보여주었다. 백인 문학을 넘어서 흑인 문학의 성취와 의의를 가늠해보려 한다. 















아프리카문학까지 둘러보게 되면 유일하게 동남아문학이 남는다(인도와 터키문학도 다룬 적이 있지만 보강은 필요하다). 그렇게 늦어진 건 이 지역만 근현대문학이 충분히 소개되지 않아서다. 베트남과 필리핀의 몇 작품 소개돼 있을까. 가렴 태국 현대문학에 대해서 나는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다. 다행히 참고할 만한 역사서(<동남아시아사>)는 몇 권 나와있다. 이 지역의 문학사와 대표작이 소개되면 좋겠는데 과도한 바람인지?

아무려나 그래서 가까운 동남아 대신에 나는 아프리카로 향할 수밖에 없다. 소개된 작가와 작품에 한정된 그림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세계문학(사)의 얼개에 대해서는 조만간(늦어도 내년까지는) 보고서를 제출해볼 수 있겠다. 사반세기의 강의 경력이면 그 정도는 해낼 수 있고 또 그래야 하리라. 여생으로 진입하기 전에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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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문학은 혁명의 힘이다"

8년 전에 쓴 리뷰다. 사사키 아타루의 <야전과 영원>(자음과모음)은 이후에 번역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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