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 이후 미국문학의 가장 중요한 작가의 한 명으로 꼽히는 토머스 핀천의 데뷔 장편 <브이>(민음사)가 다시 나왔다. 절판된 지 오래되었던 터라 재출간이 가장 기대되었던 책 가운데 하나였다. 핀천은 <브이>(1963) 이후에 <제49호 품목의 경매>(1966)과 <중력의 무지개>(1973) 등을 통해서 핀천표 소설을 발명한다. 이 세 편만 가지고도 문학사에서 지울 수 없는 이름이 되었는데, 지금도 이 초기작들이 핀천의 대표작으로 간주된다. <제49호 품목의 경매>를 중편으로 제외하더라도 핀천의 작품들은 주로 장편이며 <느리게 배우는 사람>이 유일한 단편집이다. 

















다시금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새물결에서 나왔다 절판된 <중력의 무지개>다. 번역돼 나온 건 반가운 일이었지만 99,000원이라는 책값 때문에 원성을 많이 들었고, 결국 초판이 소진되자 더 찍지 않았다. 다른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나왔다면 두 권 합하더라도 40,000원 이내의 책값이 책정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핀천의 대표작이면서도 한국의 소설독자는 범접하기 어려운 작품이 돼버렸다(<중력의 무지개>가 내가 미국문학에서 다룰 수 있는 마지막 도전작이었다).
















아무려나 <브이>가 출간돼 내년에는 토머스 핀천 작품을 강의에서 더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단편집 <느리게 배우는 사람>과 <중력의 무지개> 이후 17년만에 발표한 장편 <바인랜드>(1990)까지를 읽어보려는 게 현재의 계획이다. 국내에 핀천 연구자들이 좀 있기에 추가적으로 번역본이 나올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바인랜드> 이후에 네 편을 더 발표했기에 그 네 편과 (재번역이 가능하다면) <중력의 무지개>가 추가될 수 있는 작품 목록이다. 지난해에 필립 로스와 돈 드릴로, 코맥 매카시의 주요작을 강의에서 읽었기에 이제 내게 남은 과제는 핀천 읽기다(<제49호 품목의 경매>는 강의에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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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페터 한트케를 둘러싼 소동

14년 전에 옮겨놓은 기사다. 내주부터 노벨문학상 수상작 강의를 시작하는데, 이번 강의의 마지막 작가가 지난해 수상자 페터 한트케다. 유력한 수상 후보였으면서 왜 오랫동안 비껴갔는지 짐작하게 해준다(지난해 수상도 의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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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4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05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로쟈 > 맥주 회사가 만드는 우롱차

8년 전에 쓴 페이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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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20-07-03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네요. ‘이 달의 도서‘도
소환해주시면 어떨까요 ~^^*

로쟈 2020-07-04 10:22   좋아요 0 | URL
‘이달의 읽을 만한 책‘ 말씀이신가요? 그건 또 정기적인 일이 돼서..^^;

로제트50 2020-07-04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요, 예전에 올리신 거요...
놓친 구간 중에서 다시 건진 적이
있어서요 ;;
 
 전출처 : 로쟈 >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다니까!”

10년 전에 쓴 리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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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384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빅토르 위고의 초기 대표작 <파리의 노트르담>에 대해 적었다. 영화와 뮤지컬 원작으로도 널리 알려진 소설의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주간경향(20. 07. 06) 노트르담 대성당의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의의


빅토르 위고의 대표작은 <레미제라블>(1862)이지만 그만큼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파리의 노트르담>(1831)을 빼놓을 수 없다. 위고의 많은 작품이 영화나 뮤지컬로 만들어져 원작을 뛰어넘는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 쌍두마차에 해당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레미제라블>이 제2 제정에 맞서 망명 중이던 위고가 예순의 나이에 발표한 원숙한 작품이라면 <파리의 노트르담>은 낭만주의의 기수를 자처한 청년 위고의 패기를 담고 있다. 그렇지만 작가의 연보를 지우고 읽는 독자들에게 그 패기는 관록으로 읽힐 만큼 놀라운 식견과 입담을 자랑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흔히 집시 처녀 에스메랄다와 성당의 종지기 꼽추 카지모도의 사랑 이야기로 유명하지만 <파리의 노트르담>의 성취는 그런 이야기에 있지 않다. 문학사가 랑송의 평을 빌리자면 사랑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서 인물들의 심리묘사는 불충분하고 보잘것없다. 심리소설의 정수를 보여주는 스탕달의 <적과 흑>보다 한 해 뒤에 나온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약점은 치명적일 수 있다. 비록 중세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의 노트르담>은 이러한 약점을 상쇄해주는 미덕을 갖추고 있는데, 그것은 건축예술과 역사에 관한 작가의 식견이다.


지난해 안타까운 화재로 세계의 주목을 받은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의 랜드마크로서 대표적인 건축물이지만 위고가 이 작품을 쓸 무렵에는 방치된 상태였다. 14세기에 완공된 건축물로서 세월의 침식은 불가피했고,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일부 훼손돼 아예 헐어버리자는 여론도 대두했다. 이러한 여론을 반전시킨 이가 바로 위고였고, 그것이 <파리의 노트르담>의 업적이다. 위고는 소설의 여러 장을 할애해 노트르담 대성당의 공간적·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의의를 웅변한다. 이러한 관심의 환기 덕분에 10년 뒤 성당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1864년에 마무리된다. 건축가 외에도 이 건물에 산파가 있다면 의당 위고를 지목해야 하리라.

위고는 이런 건축물이 개인적인 작품이 아니라 사회적인 작품이라고 말한다. “천재적인 사람들이 내던져놓은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진통을 겪은 민중의 산아요, 한 국민이 남겨놓은 공탁물”이라는 것이다. 청년 위고는 정치적으로 왕당파에 가까웠지만, 역사를 보는 안목에서는 장래 공화주의자 위고를 미리 읽게 한다. 위고에 따르면 모든 문명이 신정에서 시작되어 민주주의로 끝난다. 그 각각을 상징하는 것이 건축술과 인쇄술이다.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에스메랄다를 탐하는 부주교 프롤로는 구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인데, 시대의 전환기를 맞아 책(인쇄술)이 건물(건축술)을 죽이리라고 예견한다.

15세까지는 건축이 ‘위대한 책’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 ‘돌의 책’은 차츰 ‘종이의 책’에 자리를 내놓게 될 것이다. 위고는 인쇄된 책에 의해 죽임을 당한 건축술을 애도한다. 그는 인쇄술의 위대함을 부인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대리석의 책장들에서 과거를 다시 읽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돌의 책과 종이의 책을 모두 사랑하며 존중한다고 할까. 15세기 말을 배경으로 한 <파리의 노트르담>에는 에스메랄다의 구애자가 여럿 등장하지만 누구도 그의 짝이 되지는 못한다. 부주교도, 시인도, 종지기도. 역사의 전환기는 누구도 주인이 아닌 시대여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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