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황야의 이리>(1927) 새 번역본이 나왔다. 국내에서는 <데미안>이 가장 많이 읽히지만, 통상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황야의 이리>다. 독일문학의 핵심 주제인 '시민과 예술가'의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서도 충분한 대표성을 갖는다. 자연스레 헤세 강의에서 자주 다루곤 했는데, 그간에는 민음사판을 주로 교재로 썼다. 새 번역본이 추가됨으로써 선택지가 넒어졌다. 

















흥미로운 건 번역본이 추가되면서 제목도 양파로 나뉘게 된 점. 을유문화사와 민음사판이 <황야의 이리>를 선택한 반면 현대문학과 최근에 나온 교학사판은 <황야의 늑대>를 선택했다. 독일어에서는 두 가지 번역이 다 가능한 모양이다. 하긴, 이리나 늑대나, 전문가가 아니면 식별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헤세 강의에서 주로 다루는 작품은 <데미안>부터 시작하면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순이다. 초기작으로 가면 <페터 카멘친트>와 <수레바퀴 아래서>를, 후기작으로 가면 <유리알 유희>를 다루게 된다. 주요 작품들은 모두 여러 번 강의했기에 나대로 헤세론을 쓰는 것도 가능하다.


 














연구서가 아닌 교양서로서 헤세를 다룬 책으로는 자타공인 헤세 전문가 정여울의 책들이 있다. <헤세로 가는 길>에 이어서 이번에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헤세>가 추가되었다. 올여름 독일문학기행은 무산되었지만, <헤세>로 대신해볼 수 있을 듯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벨상 수상 작가 강의에서 앨리스 먼로를 다루게 돼 다시금 점검해보았다. 앞서 두 차례 강의한 적이 있는데, 마지막 작품 <디어 라이프>(2012)와 첫 작품 <행복한 그림자의 춤>(1968)이었다. 먼로는 1931년생으로 2013년에 캐나다 작가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따져보면 82세 때의 일이다. 여성 작가로는 2007년 88세에 수상한 도리스 레싱에 뒤이은 최고령 수상자가 아닌가 싶다.


먼로와 마찬가지로 2012년 같은 해에 절필을 선언한(이런 경우에는 종료한다는 의미에서 '종필'이란 표현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작가로는 필립 로스도 떠올릴 수 있는데 로스의 수상은 끝내 불발로 끝났다(2018년 타계시까지 로스는 미국 작가로서는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였다. 밥 딜런 수상 해프닝의 가장 큰 '피해자'가 아닐까).


먼로의 소설집 14권 가운데, 국내에 번역된 건 7권이다. 주로 웅진지식하우스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고 일부는 리커버판으로도 나왔다.  


1968 <행복한 그림자의 춤>



1971 <소녀와 여자들의 삶>



1974 <내가 당신에게 말하려 했던 것>


1978 <거지 소녀>(캐나다판 제목은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1982 <목성의 달>


1986 <사랑의 경과>


1990 <젊은 날의 친구>


1994 <열린 비밀>


1998 <착한 여자의 사랑>



2001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2004 <런어웨이>



2006 <캐슬록에서 보는 풍경>


2009 <지나친 행복>


2012 <디어 라이프>



P.S. 14권 가운데 절반이 번역되었고, 나머지 절반이 아직 소개되지 않은 셈인데, 구간으로 보면 1980-90년대 중기작들이 더 번역돼 나오면 좋겠다. 이번 강의에서는 <거지 소녀>를 읽는데,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런어웨이>도 추가하고 싶다. 그리고 먼로의 작품은 아니지만 딸 실리 먼로가 쓴 회고록 <어머니들과 딸들의 삶>도 먼로와 관련하여 읽어볼 만한, 소개될 만한 책이다(먼로는 세 딸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가죽공장

14년 전에 한 소설을 읽고 적은 페이퍼다. 그런 소설을 읽고 이런 글을 적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기억해냈다. 까맣게 잊고 있었으니 우리는 각자에 대해서도 얼마나 모르는 것이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번주 한겨레의 '언어의 경계에서' 칼럼을 옮겨놓는다. 지난해에 속편 <증언들>이 나온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에 대해서 적었다. 34년만에 나온 속편이라는 이례성을 어떻게 볼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한겨레(20. 07. 17) <시녀이야기>, 34년 만에 속편이 나온 이유


어떤 소설의 후속작이 34년 만에 나오는 건 분명 드문 일일 것이다. 당대 화제작이었던 <돈키호테>(1605)의 속편이 10년 뒤에 나온 것도 늦어진 것처럼 보인다면 한 세대를 훌쩍 건너뛰어 나온 속편에는 특별한 사정을 있지 않을까. 어림에 그 사정은 작가 내부의 것이기보다는 외부 사정일 가능성이 높다. 캐나다의 대표 작가로 평가되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1985)와 그 속편 <증언들>(2019)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그 두 작품을 연결시켜주는 건 작가의 내적 동기라기보다는 시대적 상황의 반복이고, 그 시대성에서 독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어떤 시대성인가. <시녀 이야기>가 출간된 1980년대 중반은 로널드 레이건의 집권기로 전세계적으로 보수주의가 팽배하던 때였다. 당초 스탈린체제의 소련을 겨냥한 조지 오웰의 <1984>(1949)가 정작 1984년에는 새로운 억압과 감시체제로 화살의 방향을 돌린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1960~1970년대의 자유주의적 여성주의 세대로 성장하고 작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한 애트우드에게는 그렇게 여겨졌다. 레이건 시대의 미국을 가상의 신정국가로 비유한 디스토피아 소설 <시녀 이야기>를 쓰게 된 동기다(두말할 것도 없이 <증언들>이라는 늦은 속편의 배경에는 트럼프 시대의 등장이 있다).


애트우드는 소설에서 묘사되는 가부장적 전체주의 국가 길리어드가 미래의 국가가 아니라 미국에 대한 알레고리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이 소설의 말미에 놓인 ‘<시녀 이야기>의 역사적 주해’에서(이 주해 역시 소설의 일부다) 22세기 말 한 역사학회 발표자의 주요 업적이 ‘이란과 길리어드: 일기를 통해 바라본 20세기 후반의 두 유일신정국에 대한 연구’라는 설정을 통해서 레이건 시대 보수화된 미국의 가까운 미래상이 이란과 같은 신정국가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렇지만 이슬람 신정국가 이란이 길리어드의 모델인 것은 아니다. 길리어드는 17세기 미국 청교도들이 세우고자 했던 기독교 신정국가를 그대로 실현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구약의 교리를 그대로 구현하고자 한 길리어드는 남성 권력자 사령관을 정점으로 모든 것이 위계화된 가부장제 사회다. 구성원들의 모든 활동이 철저하게 통제되며 여성은 가임과 출산으로만 역할이 한정된다. 그에 따라 여성은 아내와 시녀(대리모), 하녀, 아주머니 등으로 계층화, 위계화된다. 얼핏 <1984>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희망도 갖기 어려운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애트우드는 적어도 오웰만큼 부정적이지는 않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오브프레드가 자유를 박탈당하기 이전의 이름과 가족에 대한 기억, 그리고 정체성을 보존하고 있는 것도 희망을 갖게 하는 설정이다. 게다가 오브프레드 같은 시녀들뿐 아니라 길리어드 체제의 내부자들조차도 규칙에 대한 위반을 거리낌없이 제안하거나 저지른다. 주인공 윈스턴의 반란 기도가 철저하게 무력화되는 <1984>의 결말과 비교되는 점이다.


다만 <시녀 이야기>의 희망은 그 ‘역사적 주해’를 넘어설 때 가능하다. 17세기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에 의해 자행된 마녀사냥을 다시 소환하여 환기시키는 오브프레드의 기록을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식으로 ‘시녀 이야기’라고 이름붙이고 ‘이야기’(tale)에 여성을 비하하는 ‘꼬리’(tail)라는 뉘앙스를 얹어서 희희덕거리는 이들이 후대의 주해자들이다. 그들은 과거의 진실은 암흑에 갇혀 있기에 지금의 선명한 빛으로도 정확히 해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시녀 이야기>의 독서 혹은 해독은 이러한 역사 허무주의를 넘어서는 자리에서 가능하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역사는 두번 반복된다고 마르크스는 말했다. 여성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독자가 오브프레드의 증언의, 애트우드의 메시지의 정확한 수신자가 될 때에라야 이 반복은 중단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해럴드 블룸의 '일리아스' 읽기

9년 전에 쓴 페이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