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문학의 개척자로 평가되는 워싱턴 어빙의 대표작 <스케치북>(1819-20)의 완역본이 처음 나왔다. <스케치북>(동서문화사). 미국문학 강의도 앞두고 있어서 참고삼아 구입했는데(예상대로 최초의 완역본이다), 사실 <스케치북>은 단편소설과 수필이 혼재돼 있는 특이한 구성의 책이어서(어빙이 장르의식을 안 갖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반드시 완역본을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다. 문학사적 의의가 있는 작품을 꼽자면 '립 밴 윙클'과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 두 편이다. 그 두 편은 몇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이전 강의에서는 펭귄클래식의 <슬리피 할로의 전설>을 교재로 썼다. 
















다시 강의에서 다룬다고 해도 그 두 편만 읽겠지만, 완역본이라고 하니까 다른 작품들(수필들)도 구경해볼 수는 있겠다. 
















어빙의 다른 작품으로는 <알함브라>(1832) 내지 <알함브라 궁전의 이야기>가 더 번역돼 있지만(그리고 구입하기도 했지만) 나로선 읽을 생각도, 강의에서도 다룰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 어빙은 <스케치북>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다. 미국문학 강의에서는 바로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으로 넘어가거나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장편들로 넘어가야 한다. 어물쩍거릴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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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서정적 바람둥이와 서사적 바람둥이

10년 전에 쓴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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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388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이번 여름에 세르반테스 이후 스페인문학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카밀로 호세 셀라의 대표작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을 강의에서 다시 읽은 김에 그에 대해 적었다. 셀라의 작품으로는 <파스쿠알 두아르테> 외에 <벌집>과 <두 망자를 위한 마주르카>가 더 번역돼 있다...


















주간경향(20. 08. 03) 스페인 내전 시기 귀족 살해범의 수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이후 가장 많이 읽힌 스페인 소설이라고 소개되는 작품이 카밀로 호세 셀라의 데뷔작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1942)이다. 스페인 내전 이후의 문제작으로 전후 소설의 출발점으로도 일컬어진다. 특이한 것은 작가의 경력인데 셀라는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 장군의 반란군 편에 가담했다. 공화국을 지키기 위한 국제연대하의 인민전선과 국민전선(반란군)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내전은 반란군의 승리로 끝나고 이후에 스페인은 프랑코의 철권통치 시대로 넘어간다. 셀라는 바로 그 프랑코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은 일견 그러한 역사나 정치적 상황과는 무관한 작품처럼 읽힌다. 연쇄 살인을 저지른 가난한 농민 파스쿠알 두아르테의 수기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는 술을 마시다가 시비가 붙은 동네 친구를 칼로 찌르더니 여동생의 남편이자 아내의 정부를 죽이고 자신의 어머니마저 살해한다. 이력만 보면 사회로부터 완전한 격리가 필요한 범죄형 인간이다. 그렇지만 제목이 ‘파스쿠알 두아르테’가 아니라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인 것은 그의 범죄 행각의 배경에 가정환경이 있음을 시사한다.


포르투갈 사람인 파스쿠알의 아버지는 무시로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한 위인이었다. 성격이 사납고 거칠었으며 말대꾸를 참지 못했다. 어머니 또한 성격이 난폭하고 욕지거리를 잘해서 집안은 화목할 날이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재수 없는 놈이라든지 털보, 거렁뱅이 포르투갈 놈이라고 욕을 해댔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허리띠를 풀어서는 부엌에서 어머니를 지칠 때까지 족쳐댔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성장한 파스쿠알이 폭력적인 성향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럽다. 결과적으로 파스쿠알의 통제되지 않는 야만적 폭력성은 존속살인까지 저지르게 만든다.

문제가 있는 건 파스쿠알의 마지막 범죄다. 1922년에 저지른 모친 살해죄로 수감돼 있던 파스쿠알은 스페인 내전 상황에서 출소한다. 그는 마을의 지주 돈 헤수스 백작을 살해하고 사형선고를 받는데, 그의 수기는 사형 집행을 앞두고 백작을 추모하는 의도로 쓴 것이다. 파스쿠알은 돈 헤수스 백작을 죽이러 갔을 때 그가 “가엾은 파스쿠알”이라고 부르며 미소를 지은 사실을 회상한다. 파스쿠알의 지주 백작 살해가 내전기에 벌어졌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한데, 중범죄자를 방면함으로써 공화국 정부가 그의 범죄를 사주하거나 방조했다는 의심을 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심은 자연스레 프랑코의 반란에 명분을 더해주는 의미가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소설에서 셀라는 ‘무산계급(농민) 대 유산계급(지주)’의 투쟁이라는 내전의 대립구도를 ‘어머니까지도 죽인 범죄자 파스쿠알 대 자비로운 명문가 귀족’의 대립으로 바꿔치기한다. 이에 따라 지주들의 폭정과 착취에 대한 저항이라는 내전의 성격은 지워지고 자비로운 질서에 도전하는 야만적 폭력성이 부각된다. 청년 셀라가 인민전선이 아닌 국민전선에 투신한 것은 그러한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아이러니한 것은 이 작품이 스페인에서 1946년까지 금서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친프랑코적인 작가가 쓴, 백작 살해에 대한 파스쿠알의 참회를 담은 소설조차 검열에서 제재를 받았다는 사실은 이중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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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트래블러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인스피레이션' 꼭지로 쓴 더블린 문학기행 얘기다. 지난해 가을의 영국문학기행이 어느새 아득하게 느껴진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2020년 7월호)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을 문학의 도시로 만든 작가는 단연 제임스 조이스(1882-1941)다. 조이스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여럿 배출한 문학 강국이지만(버나드 쇼와 예이츠만 떠올려봐도 그렇다) 조이스의 작품들을 빼놓고 더블린을 상상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 경우에 조이스의 문학이 더블린에 빚지고 있는 것인지 더블린이 조이스 덕분에 후광을 입고 있는 것인지 모호하다. 더블린에서 태어나 더블린을 배경으로 한 걸작들을 남겼지만 동시에 조이스에게 아일랜드와 더블린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그려지듯 그는 악착같이 더블린을 떠나고자 했고 결국 객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아일랜드가 아닌 스위스 취리히에 묻혔다.


지난해 가을 조이스의 더블린을 찾았다. 조이스가 더블린을 떠난 지 100년도 더 지난 뒤였지만 더블린의 거리를 거닐며 조이스의 작품 속 공간으로 들어가보고 싶었다. 암스테르담에서 환승하여 더블린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일정에 들어갔다. 보통은 오후나 저녁에 목적지에 도착하여 하룻밤 휴식을 취하고 일정에 돌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제한된 시간에 최대한 많은 곳을 둘러보고자 일부러 빡빡하게 잡은 것이었다. 더블린의 첫 일정은 세인트 패트릭 성당을 방문하는 것이었고(<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무덤이 있기도 한데 스위프트는 이 성당의 주교였다) 이어서 도심에 있는 피닉스공원을 둘러보았다. 도심 공원으로는 세계최대 공원으로 더블린의 자랑거리인데 피닉스란 말은 성수(성스러운 물)를 뜻한다고 했다. 점심은 현지식으로 감자구이와 돼지갈비(립)를 먹었는데 예상 밖으로 맛이 좋았다. 비슷한 메뉴를 독일에서 먹은 것과 비교해서 그랬다.


오후 일정은 본격적인 문학기행으로 더블린 작가박물관을 둘러보고 조이스기념센터를 방문했다. 작가박물관은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을 소개하면서 관련자료를 전시하고 있는데 예상보다는 작은 규모였다. 조이스센터는 독일 뤼벡의 토마스 만 하우스(정확히는 토마스 만과 하인리히 만 형제의 기념관)를 떠올리게 했는데 그래도 이름값은 하는 기념관이었다. 뤼벡의 상류층 곡물상 집안 출신이었던 토마스 만과 비슷하게 조이스 역시 넉넉한 중산층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집에는 가정교사가 있었고 여섯 살에는 상류층 자제들이 다니던 클롱고우즈우드 학교에 입학했다. 예수회에서 운영하던 학교로 규율이 엄격했지만 당시로선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아일랜드에서 성장한 주인공 스티븐 디덜러스가 예술가의 길을 선택하고 유럽 대륙으로 떠나기까지 과정을 그린 자전적 소설인데, 첫 장에 그려지고 있는 것이 바로 조이스 자신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1891년 불행이 닥치게 된다. 당시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지도자 찰스 파넬이 부관의 아내 캐서린 오세이와 동거중이라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카톨릭 신자가 많은 아일랜드의 여론이 양분되었고 결국 파넬은 실각하고 말았다. 파넬은 아내와 별거중이었고 이혼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캐서린의 남편 오세이의 묵인하 동거하면서 자녀까지 둔 상태였다. 두 사람의 내연관계가 폭로된 배후에는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무력화하기 위한 영국의 음모가 있었다. 영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폭로 작전은 성공적이어서 파넬은 정치적 실각 이후 죽음을 맞게 되고 아일랜드 독립은 수십 년 늦춰진다.


파넬의 파문이 불거졌을 때 조이스는 아홉살에 불과했지만 격분하여 '힐리, 너마저!'라는 시를 쓴다. 카이사르가 자신을 배신한 브루투스를 보면서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탄식하며 내뱉었다는 말을 패러디한 것이다. 파넬의 실각과 때를 같이하여 조이스의 아버지 역시 직장을 잃었고 가세는 급격히 기운다. 조이스의 아버지는 자신의 갑작스런 추락을 파넬의 추락과 동일시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동일시는 아들 조이스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힐리, 너마저!'에 감동한 아버지는 아들의 시를 출간까지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만약 남아있다면 조이스의 첫 작품에 해당한다.


파넬의 실각과 아버지의 몰락은 조이스의 삶과 문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다시 토마스만과 비교하자면, 만 집안의 가업도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정리된다. 그렇지만 토마스 만이 이미 성년이 된 이후였다. 그는 뮌헨으로 이주해 자기 몫의 유산을 바탕으로 생활하면서 작가로서 새로운 출발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조이스 집안의 몰락은 너무 이른 것이었다. 자신의 몰락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아버지는 음주와 폭력으로 시간을 죽였고 조이스는 학비 때문에 다니던 클롱고우즈우드를 자퇴하고 기독교 형제학교로 옮겼다가 장학금 혜택을 통해 겨우 벨비디어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다. 사춘기에 접어든 조이스는 작문대회에서 받은 상금의 일부로 더블린의 사창가를 찾고 처음으로 성경험을 한다. 1896년의 일이고 이때의 경험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도 자세히 묘사된다.
















유니버시티 칼리지를 졸업한 조이스는 처음엔 파리로 건너가 의학공부를 하려고 했으나 잘 적응하지 못하던 차에 1903년 봄 어머니가 위중하다는 전보를 받고서 귀국한다. 그해 8월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조이스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준비하면서도 한편으론 <율리시스>에 등장하는 스티븐 디덜러스처럼 무력감에 빠져 있다가 1904년 6월 노라 바너클이란 여성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노라는 아일랜드 서부의 골웨이 출신으로 한 호텔의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6월 16일에 첫 데이트를 하게 되는데 이 날짜가 나중에 대작 <율리시스>의 시간적 배경이 된다.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의 이름을 따서 오늘날 6월 16일은 '블룸스데이'로 불리며 더블린에서 조이스와 <율리시스>를 기념하는 여러 가지 행사가 펼쳐진다.


더블린이 조이스의 도시로 기억되는 것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조국 아일랜드를 “제 새끼를 잡아먹는 늙은 암퇘지”에 비유하면서 더블린을 떠나 파리로 향하는 스티븐 디덜러스를 떠올리자면 아이러니로 느껴진다. 스티븐은 “살고, 실수하고, 타락하고, 승리하고, 삶으로부터 삶을 재창조하는" 과제를 떠안고 더블린을 떠났었다. 그렇지만 조이스의 삶을 참고하면 이 떠남은 두 번 반복되어야 했다. 조이스는 노라와 함께 1904년 10월, 다시 한번 더블린을 떠나며 이후 많은 시련을 겪게 되지만 결국 예술가로서 자신이 목표를 성취하게 된다.



조이스 기념센터에서 조이스의 삶과 문학에 대해 회고해본 뒤에 우리는 아일랜드 독립 추모공원을 들러 오코넬 거리의 유명한 조이스 동상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한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한쪽 다리는 꼬고 서 있는 도도한 예술가 조이스가 거기에 있었다.


그렇게 첫날의 일정이 종료되었고, 더블린에서의 둘째날이자 마지막날 일정은 호텔 가까이 메리언 스퀘어에 있는 오스카 와일드 동상(바위에 누워 있는 모습이다)을 찾아보고 국립도서관에 들렀다가 트리니티 대학 방문으로 마무리되었다. 트리니티 대학은 오스카 와일드와 사뮈엘 베케트의 모교이지만 조이스와는 관련이 없다. 대신 국립도서관은 <율리시스>에서 스티븐 디덜러스가 햄릿에 대한 견해를 발표하고 다른 인물들과 논쟁하는 장면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점심식사는 <율리시스>에도 등장하는 식당 오닐의 펍에서 먹었다. 나는 <율리시스>에도 나오는 유서깊은 서점 호지스피기스를 둘러보았는데 4층짜리 대형서점이었다. 오랫동안 책구경을 하다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나온 <율리시스 컴패니언>을 구입하는 것으로 더블린 방문을 기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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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9 0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29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30 12: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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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1 21: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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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les 2020-07-31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기행 가실때마다 직장때매 시간을 못 냈어요. 샘이 하신 문학기행들이 책으로 나온다면 나중에 시간내서 그대로 따라가보고 싶어요.

로쟈 2020-07-31 22:06   좋아요 0 | URL
후년쯤에는 다시 문학기행이 가능할지..^^;

해오라비 2023-09-02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임스조이스 문학기행 계획은 다시 있으신지요?
 
 전출처 : 로쟈 > “그리고 어쨌든 날씨는 이상적이었다”

10년 전 연재 글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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