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이상-꽃나무-오렌지

13년 전에 옮겨놓은, 25년 전에 쓴 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로쟈 > 가와바타의 허무주의와 마르케스의 인생 예찬

6년 전, 베를린에서 포스팅한 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번주 한겨레에 실은 '언어의 경계에서' 칼럼을 옮겨놓는다. 최근에 강의에서 읽은 뮤리얼 스파크의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를 다루었다. 유일하게 번역된 스파크의 소설인데, 독특한 '성장소설'이어서 흥미를 끈다. 분량상 다루지 않았는데 브로디 선생과 '브로디 무리'의 가장 똑똑한 학생인 샌디와의 관계는 따로 다룰 수 있는 주제다(아래 글도 지면에서 약간 축소돼 실렸다). 
















한겨레(20. 08. 14) 성장소설 아닌 성장‘방해’소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출생의 뮤리얼 스파크는 버지니아 울프 이후의 영국 여성작가들에 대한 탐색 과정에 처음 읽게 된 작가다. 1918년생으로 1919년생인 도리스 레싱과 비슷한 연배다. 1951년에 작가로 데뷔하기에 1950년에 첫 장편소설을 발표한 도리스 레싱과는 작가로서의 경력도 비교된다(두 사람 모두 다작에다가 장수한 편이라는 점도 공통적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비교에는 제약이 따르는데, 주요 대표작이 번역된 레싱과 달리 스파크의 소설은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1961) 한편만 소개된 상황이어서다. 90년대 초에 나왔던 <느릅나무 밑에서의 수업>도 같은 원작의 다른 번역본이다.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가 작가 스파크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셈인데, 다행스러운 건 여러 매체가 ‘20세기 100대 영문소설'로 꼽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한 작품에 불과하더라도 뮤리얼 스파크라는 생소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가늠하는 데는 가장 요긴한 작품이라는 뜻이다. 더불어 이 독특한 성장소설의 독자라면 뮤리얼 스파크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않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론 작가와 함께 기억하게 되는 이름은 주인공 진 브로디다. 한 여학교의 교사 브로디가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쳤고 그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따라가게 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성장기 학생들을 가르치기에 자연스럽게 소설은 교육소설 내지 성장소설의 외양을 갖는다. 외양만으로 판단하자면 소설은 브로디 선생의 교육의 유익을 예찬하거나 해악을 폭로할 것이다. 학생들에게 미친 좋은 영향과 나쁜 영향 가운데 과연 어느 쪽일까. 영국의 “전후문학이 낳은 가장 기념비적인 인물”이라는 평판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브로디 선생은 좋은 교사라기보다는 반면교사의 사례다. 자기 인생의 전성기가 막 시작되었다는 확신하에 학생들을 ‘크림 중의 크림'(최고를 가리키는 프랑스어 표현)으로 만들겠다는 의욕적인 교사의 포부가 어째서 부정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가. 제목에서 힌트를 얻자면 ‘전성기'라는 자기도취적 생각에 있다.



처음 맡은 열살짜리 학생들을 데리고 브로디 선생은 역사수업 시간에 교정의 느릅나무 밑으로 향한다. 그녀는 자신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면서 “우리는 모두 전성기를 누리기 위해 태어난 거예요”라고 강조해서 말한다. 그런데 그에 덧붙여서 그녀가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건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약혼자 이야기다. 전쟁이 시작될 무렵 브로디는 여섯 살 더 적은 청년과 약혼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휴전 일주일 전에 전사하고 만다. 그녀가 스물여덟 살 때의 일이다. 약혼자의 비극과 브로디 선생의 불행에 아직 어린 학생들은 눈물을 훔친다. 1930년 가을의 장면인데 브로디 선생이 마흔줄에 들어선 때다.


짐작건대 브로디는 마땅히 전성기여야 했을 20대에 연인을 잃고 행복도 놓쳤다. 그렇게 지나가 버린 것 같은 전성기를 그녀는 다시 찾고자 한다. 아니, 40대가 자신의 전성기라고 주장하며 예술과 사랑에 관한 열정을 학생들에게 불어넣고 그녀를 따르는 여섯 명의 ‘브로디 무리'와 지속적인 사제관계를 이어간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보상심리라고 할 만한 그녀의 지연된 전성기는 자기도취가 그녀의 핵심 성격임을 시사한다.


브로디는 학생들에게 뭔가를 쑤셔 넣는 주입식 교육에 맞서서 자신은 학생들의 영혼에서 뭔가를 이끌어내고자 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그녀의 교육은 오직 자기 생각만을 강요하는 교육이었다. “아직 말랑말랑한 나이의 소녀를 내게 주면, 그 애는 영원히 내 것이 될 거야”라는 말은 이 소설이 코믹하면서도 섬뜩한 이야기라는 걸 예고한다. 여섯 학생들의 후일담까지 전개되는 뮤리얼 스파크의 독특한 성장소설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나쁜 교사에 의한 성장방해소설이라고 해야 할 듯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20-08-14 09: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Memento mori> 도 번역본이 나와있는걸로 알고 있어요. 저도 오래전에 읽었고요.

로쟈 2020-08-14 10:58   좋아요 1 | URL
네 확인해보니 68년에 현대세계문학전집의 하나로. 무려 김수영 시인의 번역이네요!
 

이번주 주간경향(1390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여름학기에 <돈키호테>와 그 이후 스페인 현대문학을 읽었다. 그 가운데 에드아르도 멘도사의 데뷔작이자 대표작 <사볼타 사건의 진실>(1975)이 갖는 의의에 대해 적었다. 이 작품을 포함해 몇 권의 필독 작품을 이번 강의에서 다룰 수 있어서 부듯하다(강의는 오늘 종강했다)...


















주간경향(20. 08. 17) 바르셀로나의 근대화 과정과 그 결과


근대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출간된 건 17세기 초다. 스페인 문학사에서 궁금한 대목은 그 이후 소설 장르의 발전이 어째서 스페인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는가이다. 세르반테스 이후 스페인 소설의 거장을 바로 떠올릴 수 없어서인데, 근대소설의 전성기라 할 19세기에도 소설의 발전과 혁신은 주로 프랑스와 영국, 러시아의 작가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세르반테스의 뒤를 잇는 19세기 작가로 플로베르나 도스토옙스키에 견줄 만한 스페인 작가가 배출되지 않은 사실이 역설적으로 스페인 문학의 특징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거장의 부재와 같은 문학사의 특징적 양상을 작가적 역량의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다. 특히 소설은 근대사회의 형성과 발전과정에 정확히 대응해 탄생하고 진화해온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중세 로망스 문학(기사 로망스)이 마지막으로 유행한 나라가 스페인이고, 그런 배경에서

<돈키호테>의 탄생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후 스페인 소설의 빈곤은 스페인의 근대화 지체 현상에 원인을 돌릴 수 있다. 미국과의 식민지 전쟁에서 패배한 1898년을 기점으로 스페인 문학이 새로운 시대로 진입한다는 사실은 근대문학사와 사회사의 조응관계를 한 번 더 실증해준다. 소위 스페인 현대문학의 기점이다.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사볼타 사건의 진실>은 프랑코 시대의 마지막 해인 1975년에 출간되어 독재자 프랑코가 사망하면서 새로운 시대 개막의 신호탄으로 평가받은 작품이다. 앞서 스페인 근대소설사까지 언급한 것은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여서다. 제국시대 이후 몰락을 거듭하던 스페인은 19세기 말에 가서야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1888년)를 계기로 서서히 근대화의 시동을 걸게 된다(바르셀로나는 1929년 한 차례 더 만국박람회를 개최하며 스페인 경제의 중심도시로 부상한다. 멘도사는 바르셀로나 출신의 작가로 도시의 성장 과정을 <경이로운 도시>라는 소설에 담아내기도 했다). 근대화의 양상은 비슷하다.

공장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농민들이 대거 도시로 이주하고 이들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산업의 비약적 성장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자본에 의한 노동착취는 차츰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형성하게끔 하고, 이는 자본가계급과의 투쟁으로 이어진다. <사볼타 사건의 진실>에서 벌어지는 주된 사건은 두 가지다. 첫째로 총파업을 주도하려는 노동자들이 차례대로 테러를 당하면서 파업이 무산되는 것과 군수기업인 사볼타사의 사장이 암살당하는 것이다. 시골 출신의 변호사 사무실 직원 미란다가 이 두 사건의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이 소설의 기본 줄거리다.
















멘도사는 추리소설적인 기법을 통해서 독자의 흥미를 끝까지 잃지 않게끔 하면서(이야기의 재미는 무엇보다 세르반테스가 중요시한 미덕이었다) 역사적 진실을 포착하는 데도 성공한다. 소설은 스페인, 좁게는 바르셀로나의 근대화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어떤 범죄들이 저질러졌으며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잘 보여준다. 노동자들의 삶뿐만 아니라 그들의 속물근성까지 정확하게 묘사하며 자본가들의 부도덕과 함께 인간적 나약성까지 잘 보여준다. 노동자와 자본가, 어느 쪽도 편들지 않으면서 역사의 진실을 포착하고 소설적 재미를 놓치지 않는 모범적인 사례라고나 할까. 세르반테스가 작명한 ‘모범소설’은 멘도사의 소설에도 잘 맞는 것처럼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삶을 감상에서 구제하는 법

14년 전에 옮겨놓은 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