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브의 몸값>(문학사상사)이 번역돼 나오면서 관심을 갖게 된 저자가 조기 기싱이다. <기싱의 고백>으로 알려진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수기> 저자로만 알고 있다가 영국 자연주의 작가로 다시 보게 되었고 대표작 <꿈꾸는 문인들의 거리>(김영사)를 중고로 구입하기도 했다. 강의에서 <이브의 몸값>을 다루면서 몇 작품이 더 번역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히기도 했는데, <꿈꾸는 문인들의 거리>의 원제대로 <뉴 그럽 스트리트>(코호북스)에 이어서 또다른 대표작 <짝 없는 여자들>(코호북스)가 이번에 나왔다. 영국문학 강의에서 토머스 하디와 균형을 맞춰서 다룰 수 있게 돼 반갑다.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사실주의 작가 조지 기싱은 이 소설에서 여성의 삶을 경제적, 정신적으로 황폐화하는 가부장제의 폐해와 이에 맞서 여성에게 자기존중과 경제력을 길러 주기 위해 노력한 페미니스트 선구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기싱은 디킨스론을 쓰기도 했는데, 디킨스와 조지 오웰을 연결시켜는 징검다리로서도 의미가 있다. 초기에는 밑바닥 노동자들의 삶을 다뤘는데, <군중>(1886), <밑바닥의 세계>(1889) 등이 더 소개될 수 있는 소설들이다. 
















내년 영국문학 강의에서 읽을 작품으로 <뉴 그럽 스트리트>와 함께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수기>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수기>는 <짝 없는 여자들>로 교체해야 할 듯하다.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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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오래된 책이다. 국내 초역의 <몽테뉴 여행기>(필로소픽)와 다시 나온 디드로의 <부갱빌 여행기 보유>(지만지).
















몽테뉴의 기본서는 방대한 분량의 <수상록>이고 국내에는 완역본과 여러 발췌본이 나와있다. 참고할 수 있는 책들도. 츠바이크와 사라 베이크웰의 책이 대표적이고 국내 연구서도 몇 권 있다. 그런데 따로 <여행기>도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제2의 수상록'으로 가치가 있다고. 궁금해서 주문했다. 


"에세이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수상록>보다 더 에세이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이 책은 현대어 판이 아닌 18세기 케를롱 판본을 완역한 것으로, 400년이 넘는 시대 차를 넘어 몽테뉴를 더 가깝게 만나볼 수 있게 우리를 안내해 준다."













<부갱빌 여행기 보유>는 앞서 2003년에 나왔다가 절판된 책이다. 다시 나온 건 반가운 일인데, 가격이 두 배가 되었다. 강의에서 다룰 수 있을지 미지수.


















디드로의 작품을 강의에서 다룬다면 1순위는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이고(쿤데라의 희곡도 있다) 그 다음이 <라모의 조카>다. 유럽의 18세기 문학을 언제 다루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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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문제적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마지막 대작 <풍요의 바다>가 번역돼 나오기 시작했다. 4부작 가운데 1권 <봄눈>이 나온 것인데, 완간까지 된다면 널리 알려진 초기작들과 비교해서 읽어볼 수 있겠다. 일본문학 강의에서도 <가면의 고백>과 <금각사>만 주로 다루었는데, 4부작이 다 소개된다면 이 작가의 전체 윤곽을 비로소 살펴볼 수 있겠다.  


















"일본 문학 애호가들 사이에서 전설로 회자되는 소설, 미시마 유키오의 '풍요의 바다' 시리즈 첫 번째 권. '풍요의 바다' 4부작은 메이지 시대 말기부터 1975년까지를 아우르는, 원고지 약 6000매 분량의 대작이다. 작가는 이 시리즈에서 환생을 거듭하는 한 영혼과 그를 추적하는 인식자의 궤적을 통해 20세기 일본의 파노라마를 펼쳐 냈다."

















미시마의 작품은 더 번역됐지만(다작의 작가로 분류된다) 현재는 대부분 절판된 상태라 <가면의 고백>과 <금각사>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도 하다. 


일본문학사에서 미시나는 탐미파 계열에 속한다. 나가이 가후와 다니자키 준이치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이 계보의 작가들이고, 그 뒤를 잇는 것(다자이 오사무와는 대척점에 있다). 병약했던 미시마가 근육질의 마초적 남자로 변신하고 1970년 자위대 궐기를 외치며 할복자살한 사건은 탐미주의와 정신병적 인격의 곤궁을 보여주는 일로 이해할 수 있다(기시다 슈의 분석이 유익하다). 코로나 상황 때문에 유동적이지만 하반기에는 일본근대문학 강의도 계획돼 있는데, <풍요의 바다>가 더 나온다면 내년쯤엔 미시마도 다시 다뤄볼 수 있겠다. 기대를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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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0-09-12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이 민음사 문학 전집 364번으로 나올 뻔 했는데 수수께끼처럼 사라졌어요. 현재도 364번은 비어 있는데 문제는 364번 봄눈이 중고책으로 거래가 몇 권 되었습니다. 무슨 사정인지 모르겠네요. 364번 문학전집으로 출간을 하려다가 거둬들였다가 한 참이 지나서 풍요의 바다 시리즈로 다시 낸 사정이 궁금합니다. ㅎ

로쟈 2020-09-12 21:37   좋아요 1 | URL
그랬나요?? 그랬다면 아마 표절 파문 때문이지 않을까 싶네요. 2015년에 터졌고, 미시마 소설은 그후에 새로 내기 어려웠을 듯...
 

토머스 핀천에 대해서 몇 차례 페이퍼를 적었는데, 그의 (현재까지는) 마지막 작품이 번역돼 나왔다. <블리딩 엣지>(창비). 2013년작인데, 1937년생인 작가가 76세 때 발표한 것이라 고령을 고려하면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단편소설집 <느리게 배우는 사람>(1984)를 제외하면 핀천의 장편소설은 모두 8편이며 통상 초기와 후기로 나뉜다. 절판된 <중력의 무지개>(새물결)를 제외하면(설사 절판되지 않았더라도 강의에서 읽기는 어려운 판본이다) 현재 읽을 수 있는 건 4편이다. 얼마 전에 <V>(민음사) 재간되었기 때문에. 


 
















<V>(1963)

<제49호 품목의 경매>(1966)

<중력의 무지개>(1973)














<바인랜드>(1990)

<메이슨과 딕슨>(1997)
<어게인스트 더 데이>(2006)
<타고난 악>(2009)
<블리딩 엣지>(2013)


"해마다 강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언급될 뿐만 아니라 영어로 글을 쓰는 현존 작가들 가운데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현대 문학의 거장 토머스 핀천의 장편소설. 2001년 봄의 시작부터 2002년 봄의 초입까지, 닷컴 버블로 호황을 누렸던 IT 기업들의 붕괴와 9·11 테러로 인한 세계무역센터의 붕괴 및 후폭풍이라는 역사적 사건 사이 뉴욕을 배경으로 9·11의 배후와 얽힌 음모를 파헤쳐나가는 여성 사기조사관의 활약을 그린 작품이다."


핀천 강의에서는 <제49호 품목의 경매>만 다루었는데, 다른 작품들은 내년 강의에서 읽어보려 한다. 난이도가 있기 때문에 다 다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첫 소설 <V>과 마지막 소설 <블리딩 엣지>는 읽으려고 한다. 


창비판 핀천 소설을 전담해서 번역하고 있는 박인찬 교수가 추가적으로 번역한다면 목록을 더 늘어날 수도 있겠다. 바람으로는 <중력의 무지개>가 다시 나왔으면(재번역으로라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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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한겨레에 실은 '이현우의 언어의 경계에서' 꼭지를 옮겨놓는다. 어제 도서관 강의에서도 다룬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의의에 대해서, <톰 소여의 모험>과 비교해서 적었다...


















한겨레(20. 09. 11) 지옥으로 가는 윤리적 모험


“미국의 모든 현대문학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는 책 한 권에서 비롯하였다.” 널리 알려진 헤밍웨이의 말이다. 통상 아동문학으로 분류돼 읽힌 <허클베리 핀의 모험>만 떠올리는 독자라면 선뜻 공감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전편 <톰 소여의 모험>과의 관계를 떠올려봐도 그렇다. 마크 트웨인의 “책 두 권”이 아니라 어째서 “한 권”인가? 자연스레 ‘두 모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묻게 된다. 더불어 대중성에 있어서 각자 당대를 대표했던 두 작가, 트웨인과 헤밍웨이 문학은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물을 수 있겠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완역판으로 읽을 때 던져볼 만한 물음들이다.


















<톰 소여의 모험>(1876·이하 ‘톰 소여’)과 그 속편 <허클베리 핀의 모험>(1884·이하 ‘허클베리 핀’) 사이의 공통점은 바로 지적할 수 있다. 1840년대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피터스버그(가상의 마을이다)라는 시공간 배경이 동일하고 개구쟁이 소년 톰과 그의 친구 헉이 등장한다는 점도 같다. 제목 그대로 그들의 모험담을 담고 있다는 점도. <톰 소여>의 대중적 성공에 힘입어 트웨인이 바로 속편 집필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자연스럽다. 특이한 것은 그 완성에 무려 8년이나 소요됐다는 점이다. 집필이 순탄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외형만 보자면 그러한 지체는 이해하기 어렵다. 주인공이 톰에서 헉으로 바뀌지만 이야기 자체는 연속적이기 때문이다. 트웨인이 8년의 시간을 쏟아붓지만 작품 속에서 톰과 헉의 나이는 12∼14살 정도다. 작품 속 시간과 집필시간 사이의 이러한 간극은 무엇 때문에 빚어진 것일까.



뭔가 어림하게 해주는 대목은 <허클베리 핀>의 하이라이트로 지목되는 장이다. 주정뱅이 아버지에 의해 오두막에 갇혀 있다가 탈출한 헉은 왓슨 아줌마댁에서 도망친 흑인 노예 짐과 우연히 마주친다. 둘은 한동안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내려가며 뗏목 생활을 함께한다. 그리고 나이와 인종을 넘어선 우정을 자연스레 나눈다. 그리던 차에 헉은 짐에게 이백 달러의 현상금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이었기에 헉이 알고 있는 도덕에 따르면 마땅히 짐의 소재를 왓슨 아줌마에게 알려야 했다. 도망 노예와 같이 지낸 헉의 행동은 불쌍한 노파에게서 검둥이를 훔쳐낸 것과 다를 바 없으며 지옥의 유황불 속으로 떨어질 일이었다. 고민에 빠진 헉은 결국 짐의 소재를 알리는 편지를 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지옥에 떨어지는 일을 면했다고 안도하는 헉에게 짐과 같이했던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짐이 친절하게 대해준 일들과 함께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이자 하나밖에 없는 친구”라고 불러준 일을 떠올렸다. 그런 짐을 배신하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 햄릿의 고뇌를 연상하게 하는 고심 끝에 헉은 편지를 찢어버리며 중얼거린다. “좋아, 난 지옥으로 가겠어.” 헉의 인생의 대사이면서 ‘미국의 셰익스피어' 트웨인의 유명한 명구는 그렇게 탄생한다.


이 장면에서 시사받을 수 있지만 <허클베리 핀>의 두 주인공은 톰과 헉이 아니라 헉과 짐이라고 해야 한다. 비록 <허클베리 핀>에서도 톰은 여전히 등장하고 짓궂은 장난을 꾸미지만, 그리고 톰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헉은 다시금 그의 조역으로 떨어지지만, 톰의 모험과 헉의 모험은 분명 성격을 달리한다. 톰의 모험이 악동적 상상력에 빚지고 있는 반면에 짐과의 우정을 지키기 위해서 지옥을 선택하는 헉의 모험은 윤리적 모험에 값한다. 공동체적 도덕을 넘어 보편적 윤리의 세계로 나아가는 모험! 바로 그러한 모험을 현대 미국 문학은 <허클베리 핀>에서 배울 수 있고 배웠어야 했다. 그렇게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은 헤밍웨이 문학에서 헉과 짐이라는 짝을 떠올리기 어려워서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산티아고 노인과 청새치를 사례로 들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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