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396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여러 차례 강의에서 다룬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 대해 간단히 적었다. 이번 가을 강의에서는 <오만과 편견>과 함께 그에 이어지는 <맨스필드 파크>와 <에마>를 다시 읽을 예정이다...

















주간경향(20. 09. 28) 신분에 의해 결정되던 결혼 관습에 대한 항변


지난 2017년 사후 200주년을 맞아 제인 오스틴 소설전집이 국내에서도 출간되었다. 이후에도 그가 남긴 여섯 편의 장편소설은 계속 번역본으로 나오고 있어 동시대 작가처럼 여겨진다. 고전이 갖는 시대 초월성은 오스틴의 소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나 할까. 하지만 사정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전성기가 아닌가 싶다. 정작 작가의 생전에 그의 작품들은 초판이 매진되는 정도였다. 인기가 있었다고는 해도 제한적이었고, 그마저도 사후에는 잊혔다.


오스틴의 복권과 부활은 19세기 말부터 이루어졌고, 20세기 중반에 저명한 비평가 리비스는 <영국소설의 위대한 전통>에서 오스틴을 그 ‘위대한 전통’의 출발점으로 지목했다. 사실 오늘날 세계문학사에서 최초의 위대한 여성 소설가의 영예는 오스틴에게 돌려진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효시로 삼고 있지만, 근대소설의 발달이 주로 영국에서 이루어진 걸 감안하면 특별히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 20세기 후반부터는 전 세계에서 셰익스피어 다음의 인기를 누리는 영국 작가가 오스틴이기도 하다. 오스틴 소설의 성취와 의의는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가장 널리 읽히는 <오만과 편견>(1813)을 사례로 떠올려보자. 이름 대신에 ‘한 숙녀’를 저자로 하여 <이성과 감성>을 발표한 오스틴이 그에 이어서 ‘<이성과 감성>의 저자’를 작가로 하여 발표한 소설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청춘남녀 주인공인 리지(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이르는 이야기가 줄거리다. 분류상으로는 통상 가정소설 혹은 구혼소설에 속한다(소설사에서 오스틴은 18세기 말부터 유행한 가정소설의 결정판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소설에서는 리지와 다아시 커플 외에도 여러 쌍이 등장하는데 자연스레 각 커플은 비교된다.

가령 리지의 친구 샬럿은 상대에 대해 아무런 애정도 갖고 있지 않지만, 경제적 배경과 사회적 지위를 고려해 콜린스와 결혼한다. 콜린스는 리지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남자인데 샬럿은 개의치 않는다. 자신은 나이도 많은데다가 낭만적인 성격도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샬럿과의 대화에서 리지는 비로소 결혼에 대한 생각이 자신과 다르다는 걸 알고 놀란다. 그렇지만 특이한 쪽은 샬럿이 아니라 리지다. 당시의 통념과는 다르게 리지는 조건에 따른 정략결혼에 반대했다. 비록 나중에 눈물까지 흘리지만 다아시의 첫 번째 청혼을 그런 이유에서 거절한다. 그렇다고 리지가 감정만을 중시하는 것도 아니다. 막냇동생 리디아는 위컴과 낭만적 사랑에 빠져 도주 행각 끝에 결혼하게 되지만, 결코 모범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재산과 사랑이 결혼의 중요한 요소인 건 맞지만 결코 전부는 될 수 없다는 것이 리지의 생각이다.



대신에 리지는 서로의 동등성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재산과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둘의 결혼에 반대하고 나서는 캐서린 영부인에게 리지는 이렇게 대꾸한다. “영부인의 조카와 결혼한다고 해서 제가 그 테두리를 벗어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분도 신사고, 저도 신사의 딸이니까요. 그 점에서 우리는 동등해요.” 자기 테두리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충고에 대한 대꾸다. 오스틴 자신은 20대 초반에 사랑했던 남자와의 결혼이 신분 차이를 이유로 남자 쪽 집안에서 반대해 무산되는 아픔을 겪었다. 직후에 쓴 소설이 <오만과 편견>의 초고 <첫인상>이었다. 남녀의 동등성에 대한 리지의 주장은 신분에 의해서 결정되던 결혼 관습에 대한 오스틴의 항변이면서 오늘날까지 그의 소설이 호소력을 갖는 이유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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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산문선이 나왔다. <조지 오웰 산문선>(열린책들). 처음은 아니어서 그간에 나온 산문집 혹은 에세이집을 찾아보았다. 시작은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2010)부터였다. 최초 번역은 아니지만(가령 <코끼리를 쏘다>는 2003년에 번역됐었다) 소설가 오웰이 아닌 에세이스트 오웰을 알린 책. 지난해에는 <코끼리를 쏘다>(반니)가 나왔었다. 
















"이 책은 오웰의 가장 유명하고 높이 평가받는 20여 편의 산문들을 종류별로 골고루 엄선한 선집으로, 묵직한 정치 비판부터 생활 속의 소소한 성찰에 이르기까지, 오웰 특유의 명징하고 정직한 사유의 정수를 보여 주는 기록들이다."


영어판으로도 오웰의 에세이는 다양한 판본이 나와 있다. 중복되는 글들도 많기에 목차를 확인해보는 게 좋겠다. 
















<월든>의 저자 헨리 소로의 경우에도 에세이가 산문집으로도 나와 있다. <야생사과>가 대표적이었는데,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와 <겨울 산책>에도 들어 있다. 

















소로에 대해 덧붙인 건, 산문이 아니라 일기를 추가하기 위해서다. 일기 역시 초역은 아닌데, '청년 편'과 '전성기 편'으로 나뉘어 나온 건 처음이지 싶다. 그와는 별도로 <소로의 야생화 일기>도 나와 있다.


오웰의 산문이나 소로의 일기는 대표작은 아니지만, 두 작가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동시에 누가 애독자인가를 확인하게 해준다. 당신이 오웰과 소로의 독자라면 빼놓을 수 없는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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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위대한 몬느와 육체의 악마

코로나 상황으로 연기된 강의 가운데 하나가 20세기 초반 프랑스문학강의인데, 알랭 푸르니에의 <위대한 몬느>(<대장 몬느>)로 시작하는 강의다. 여러 차례 연기 끝에 11월부터는 진행할 예정이다. 레이몽 라디게의 <육체의 악마>도 같이. 오늘 아침에 일정을 확정했는데, 마침 6년 전에 페이퍼를 적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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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자음과 모음> 가을호가 나왔다. 드물게 계간지 얘기를 꺼낸 것은 이번 호 특집 주제 '다시, 고전'의 게스트에디터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특집은 좌담과 에세이, 평론으로 구성돼 있으며, '우리에게 고전은 무엇인가'가 좌담의 주제다. 소개의 말과 게스트에디터의 말 일부를 옮겨놓는다. 















소개

계간 <자음과모음> 2020년 가을호(통권 46)가 꾸려졌다. 편집권 자체를 다양한 사람들에게 개방하여 문학잡지 기획에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매호 독특하고 신선한 글로 채워질 게스트 에디터지면의 이번 기획자는 로쟈 이현우이며, 주제는 고전이다. 로쟈 이현우는 열정적인 서평가이자 성실한 인문학자이면서 러시아 문학을 기반으로 근현대문학을 깊이 있게 읽어내는 문학사가이다. 다방면의 고전들을 꾸준히 섭렵하고 그 독서의 결과를 많은 독자들과 공유해온 경험은 이번 기획으로 빛을 발했다.


로쟈 이현우는 이번 고전 특집을 좌담과 에세이, 평론으로 구성했다. 좌담에서는 주로 고전 독서 경험을 다루고자 했고, 평론에서는 고전과 관련한 쟁점들을 짚어보고자 했다. 먼저, 좌담에서는 한유주 소설가와 황유원 시인 그리고 김경은 편집자를 초대해 다양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에세이에서는 편혜영 소설가, 이원하 시인, 윤경희 평론가가 각자 고전 작품에 대한 경험과 견해를 자유롭게 기술해주었다. 평론에서 이지은, 신형철, 복도훈 평론가가 보내준 글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고전의 개념과 범주가 확장되면서 어떻게 다양한 하위 장르 혹은 타 장르와 접속하는지, 고전에 관한 질문을 또 어떻게 갱신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들로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게스트에디터의 말

다시, 고전은 고전과의 관계에 대한 하나의 정식, 그렇지만 표준적인 정식을 표현한다. 고전이란 언제나 다시 읽는 책, 다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정의에 준해서 말하자면, ‘다시는 고전의 본질적 속성을 지시한다. 고전은 반복되고 재생되며 재생산된다. 고전은 다시 읽히며 다시 쓰인다. 고전은 다시 사유되며 재발명된다. 때로 고전은 번복되며 탄핵된다. 고전으로부터 모든 문학이 탄생하고 이 문학은 다시 고전으로 귀환하기를 열망한다. 고전과 함께 열리고 닫히는 이 순환계 혹은 생태계에 대해서 다 말한다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다. ‘다시, 고전특집의 또 다른 몫은 그 불가능성을 환기시켜주는 것이다. 게스트 에디터의 말을 고전, 다시라고 마무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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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프랑켄슈타인' 다시 읽기

11년 전의 다시 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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