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간판 작가 줄리언 반스와 이언 매큐언의 번역본이 나란히 나왔다. 지난해 두 작가를 강의에서 다룬 이후 친밀감을 갖게 돼 매번 신간이 나올 때마다 주목하게 된다(마틴 에이미스와 함께 동시대 영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이기도 하다). 기회가 닿으면 강의도 업데이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반스의 책은 신작 논픽션이다. 부커상 수상 작가이지만 국내에서는 논픽션(에세이) 작가로도 많이 읽힌다. 지난해 나온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이 2015년작이었다면 이번에 나온 <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다산책방)는 2019년작('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는 2003년작이다). 미술과 프랑스 문화사에 정통한 반스의 식견이 잘 발휘된 작품으로 보인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 문학의 제왕 줄리언 반스의 최신작. 2015년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 전시된 ‘빨간 코트’를 입고 서 있는 사뮈엘 포치의 초상화를 처음 본 반스는, 지금껏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19세기 외과의사 사뮈엘 포치에게 깊이 매료되어 이 책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뮈엘 포치는 전 세기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시절로 일컬어지는 ‘벨 에포크’ 시대에 살았던 인물로, 1901년 프랑스 최초의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전 세계적으로 ‘표준 교과서’로 인정받은 부인과학 논문을 쓴 저명한 의사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방대한 사료를 연구한 끝에 줄리언 반스는 그가 놀랍게도 당대 내로라하는 명성 높은 예술가들 모두와 연결되어 있던 핵심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벨에포크와 관련해서는 올초에 나온 메리 매콜리프의 책들 외에도 캐서린 카우츠키의 <드뷔시의 파리>도 참고할 수 있다. 반스의 책을 읽으면 자연스레 뒤적이게 될 듯하다. 
















매큐언의 신작은 <스위트 투스>(문학동네)는 2012년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솔라>(2010)와 <칠드런 액트>(2014) 사이의 작품이다. 안 그래도 <솔라>와 <칠드런 액트>를 강의하면서 궁금해 한 작품이기도 하다. 매번 예기치 않은 소재의 작품을 써온 터라, 소재만 봐서는 작가를 식별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읽기 시작하면 매큐언의 장인적 솜씨를 느낄 수 있으리라. 


"현대 영문학의 대표작가 이언 매큐언이 2012년 발표한 장편소설로, 1970년대 초 비밀 작전에 투입된 젊은 여성 MI5 요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냉전 시대 복잡미묘했던 ‘문화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스파이 서사의 서스펜스에 작전 대상과 첩보원의 위태로운 로맨스를 더했으며, 궁극적으로 문학 창작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는 메타픽션의 경지로 나아간다."
















확인해보니 매큐언의 소설 15편 가운데 이제 지난해 나온 <머신스 라이크 미(Machines like me)>를 제외하고는 모두 우리말로 번역된 상태다. 다만 절판된 책들이 몇 권 있는데, 특히 부커상 수상작 <암스테르담>이 아직 방치돼 있는 건 미스터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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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호밀밭의 파수꾼' 다시 읽기

11년 전에 쓴 글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이달에, 오랜만에 강의에서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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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한국문학 강의에서 읽은 작가는 최인훈이다. 데뷔작인 <그레이구락부 전말기><라울전>과 <광장><회색인>, 그리고 마지막 장편소설 <화두>를 읽었다. 분량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의의상으로는 최인훈 문학의 8할을 읽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작가 자신이 <광장>과 <화두>의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으니까. 
















개인적으로 <화두>의 완독에는 16년의 시간이 걸렸다. 1994년 초판이 나왔을 때 1권을 읽었고,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2권의 독서는 미뤄두었다가 흐지부지 되었다(여러 번의 이사를 하면서 1994년판은 어디론가 숨어버렸고).




























최인훈은 개작에 공을 들인 대표적 작가인데, 대표작 <광장>을 여섯 차례 이상 개작(보완과 수정)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마지막 작품 <화두>도 3종의 판본이 있는데, 1994년 민음사판을 개정하여 2002년에 다시 출간할 때도 주로 한자어를 우리말로 고치는 등 많은 수정을 가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문학과지성사의 전집판(2008년)으로 나올 때도 수정이 가해졌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교정되지 않은 오타나 착오가 남아 있어서 놀랐다. 이번에 처음 읽은 2권에서 나오는 대목으로 푸슈킨 시(뿌쉬낀 시)의 여름궁전을 방문한 일을 적으며 작가는 이렇게 썼다. 



"이 궁전의 주인이었던 예까쩨리나 여제의 초상이며, 1912년 나폴레옹 침공전쟁 그림 등이 기억에 남을 만한 큰 작품들이며 이 궁전은 소장품이 중심이 되어 있는 듯한 에르미따즈와는 달리 궁전 자체가 전시품인 성격이 짙었다."(465쪽)


민음사나 문이재판과 비교해봐야겠지만, 앞선 판본들에서도 '1912년 나폴레옹 침공전쟁'(1812년 전쟁이다)이라고 돼 있다면 작가의 착오이고(편집과정에서 걸러지지 않은 건 유감이다), 전집판에서만 오기돼 있는 거라면 담당 편집자가 엄중히 문책받을 만한 일이다. 인문서라면 눈감아줄 수 있는 일이지만 <화두>는 '작품'이다.  


그와는 별도로 나는 나폴레옹 전쟁 그림이 예카테리나궁(여름궁전)에 걸려 있었는지 의문이다. 두 차례 방문했지만 기억에 없어서인데, 인터넷상으로 둘러봐도 눈에 띄지 않는다. 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국립국어원 표기로는 '예르미타시', 최인훈의 표기로는 '에르미따즈')에는 걸려 있다. 확실치는 않지만 작가의 기억에 착오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1학년까지)를 다닌 최인훈은 북한에서 배운 러시아어를 뒤늦게 떠올리며 러시아어 단어들과 알파벳(키릴문자)을 상당수 본문에 적어놓기도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여러 곳에서 오타를 범했다. 추정으로는 육필 원고를 타이핑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실수로 보이는데(대표적으로는 러시아어 철자 П가 뒤집혀서 표기되었다) 소위 '정본'격인 전집판에 이런 오타나 오기가 남아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생전에 작가가 왜 체크하지 않았을까?). 설마 94년판에서부터 그랬다면 미스터리한 일이고. 


<화두>는 김명인 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한국 현대소설사에서는 참으로 찾아보기 힘든 깊은 지적 사유가 담겨 있는 지식인 소설"이다. 그렇지만 이 지극히 '독백적인' 소설(작중 화자 '나'는 최인훈 과 거의 일치하기에 소설은 회고록이나 자서전으로 읽혀도 무방하다)이 에세이가 아닌 '소설'로서 별도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유의 높이와 소설의 높이를 작가는 구별하지 않는 듯싶다. 이미 관념이 소설적 육체를 대신해온 최인훈 문학의 종착점이라고 하면 기대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아쉽게 여겨진다.   







 









최인훈 전집(전15권)에는 소설과 희곡 외에 세 권의 수필 내지 산문집에 포함돼 있다. <화두>는 그 뒤에 붙어 있는데, 공식으로 표현하면 <광장>과 이 산문집들의 확장 내지 융합 형태가 <화두>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떨어져 나간 것도 있는데, <광장>에 나왔던 사랑이다. 애초에 사랑이라는 주제가 최인훈 문학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온 터라 <화두>에서 '윤애'나 '은혜'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놀랄 건 아니다. 대신 <화두> 후반부의 러시아여행기에는 두 명의 통역사가 등장하는데, 알렉산드르와 블라디미르다. 특히 페테르부르크 가이드를 맡은 블라디미르는 작가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버스가 출발하자 앞자리에서 러시아 젊은이가 일어서서 한국말로 여러분을 모시게 되어 기쁘다면서 자기는 블라디미르라는 이름이며, 레닌그라드 대학 역사학과 4학년생이며 한국 역사를 전공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 역사의 어느 분야인가고 묻는 말에 가야 역사 전공이노라는 대답에, 차 안은 순간 차분해졌다. 알맞게 큰 키에 말랐으며, 금발에 유별나게 어려 보이는 젊은이다."(450쪽)
















블라디미르와의 첫 만남을 묘사하는 대목이다. 알려진 사실인데, 이 장면에 등장하는 블라디미르는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곧 (나중에 한국으로 귀화했고 현재는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에 있는) 박노자 교수다. 1973년생이기에 최인훈의 러시아여행(1992년 가을)시에 만 스무살이 안된 나이였다(유별나게 어려 보인 게 당연하다). <전환의 시대>(2018)를 내면서 가진 한 인터뷰를 보니 아직 <화두>를 읽지 않았다고 하는데(<광장>에 대해서는 학술발표를 한 적도 있다), 자신도 모르게 인물로 등장한 소설에 대해서 어떤 소감을 가질지 궁금하다(앞서 적은 오타들이 걱정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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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들뿐 아니라 다시 나온 책들도 매주 적지 않다(감당하기에 그렇다는 말). 지난주에 나온 책으로는 역사학자 시어도어 젤딘의 <인간의 내밀한 역사>(어크로스)가 다시 나왔기에, 다시 나온 책들을 찾아보았다. 네댓 권 정도를 적어두도록 한다.















프랑스사 전문가의 젠딘의 책은 <인생의 발견>과 <대화에 대하여>가 더 번역돼 있지만 주저급에 해당하는 건 <인간의 내밀한 역사> 정도다. 앞서는 2005년에 나왔던 책이니 15년만에 다시 나온 재간본(역자는 같고 출판사가 바뀌었다). 


"옥스퍼드의 역사학 석학 시어도어 젤딘은 독창적인 역사 연구로 역사학계에 우뚝한 발자취를 남긴 역사가이자 사상가다. <인간의 내밀한 역사>는 그의 대표작으로 지금까지 27개 언어로 번역되며 전 세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이 책에서 그는 고독, 사랑, 공포, 호기심, 연민, 우울, 대화법, 섹스와 요리법, 이성애와 동성애, 운명 등 독특한 주제를 중심으로 ‘인간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류의 경험’을 고찰한다."


구입하고도 제쳐놓았던 책인데, 막상 다시 나오니 찾게 된다. 어디에 두었을까?
















설혜심 교수의 <그랜트투어>도 7년만에 다시 나온 책. 유럽문화사에 대한 이해를 도울 뿐더러 문학 이해에도 유익하다(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같은 책을 이해하는 데에도 필수적이다).  
















저자는 독특한 주제의 문화사 책들을 연이어 펴내고 있는데, 가령 첫 책인 <온천의 문화사>를 비롯하여 <서양의 관상학>이나 <인삼의 세계사> 등은 독보적이지 않나 싶다. 독특한 주제와 시각의 책을 대중교양서로 펴내는 작업이 계속 이어지길 기대한다. 
















철학서로는 존 라이크먼의 <미셸 푸코, 철학의 자유>(그린비)가 오래만에 다시 나왔다. 인간사랑판(1990)이 무려 30년 전 판이었다(이런 책을 읽은 게 언제적인가!). 당시에도 요긴한 푸코 입문서로 꼽히던 책이었다. 절판된 상태지만 저자의 다른 책으로는 <들뢰즈 커넥션>(현실문화)도 있었다. 이건 15년 전에 나온 책이군.
















이번에는 재간본이라기보다는 새 번역본이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 개략>(소명출판)이 '후쿠자와 선집'의 첫 권으로 나왔다. 일본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근대 수용과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이라 음미해볼 만한 고전이다. 기존 번역본과는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기에 살펴보려 한다. 


"<문명론 개략>이 출간되던 1875년 당시 일본은 그야말로 혁명과 문명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이처럼 긴박하고 혼란스러운 정세 아래에서 후쿠자와 유키치는 동도서기와 같은 방식을 단호하게 부정한다. 새로운 국가, 독립적인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서구의 기술뿐만 아니라 사상과 문화, 무엇보다도 자유’ ‘독립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독립자존하는 개인을 강조하며 봉건체제에서 근대국가체제로의 정치사상적 전환을 촉구했던 그의 주장은 김옥균, 서재필, 윤치호 등 조선의 개혁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으며, 이후 일본이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는 커다란 한 발짝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이 책은 근대 일본의 사상을 형성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 개략> 원본을 저본으로 하여, 현대일본어 번역본으로는 알 수 없는 메이지 초기 서양개념어의 한자번역어(신한어)를 정확하게 살리고 후쿠자와 유키치만의 독특한 문체와 문장 스타일도 생생하게 번역한 것이 특징이다." 
















후쿠자와 유키치 관련서로는 자서전을 포함해 다수가 소개돼 있다. 대부분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데 몇 권 빠진 게 있어서 이번에 보충하려 한다. 한국 근대문학과 일본 근대문학에 대한 강의가 이번 가을겨울에 예정돼 있다는 핑계로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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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의 시장>의 작가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의 또다른 작품이 번역돼 나왔다. <신사 배리 린든의 회고록>(문학과지성사). <허영의 시장>을 강의에서 읽으면서 다른 작품이 번역돼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봤지만, 예상이 빗나갔다. 소설은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배리 린든>의 원작이어서 궁금하기는 했던 작품이다(<신사 배린 린든의 회고륵>은 새커리의 첫 소설이자 역사소설, 그리고 피카레스크소설로 분류되는 <배리 린든의 행운>의 이본으로 보인다).


 














"새커리의 작품 가운데 최초의 본격 역사소설로 꼽히는 이 작품은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중산계층의 속물근성과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 특히 주인공을 7년전쟁이라는 역사의 현장으로 데리고 나오는 과정에서 당시 유행하던 악한소설과 뉴게이트 소설의 요소를 활용했는데, ‘악한소설’은 말 그대로 악당을 주인공으로 해서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소설이며, 흉악범 형무소로 악명을 떨쳤던 런던의 ‘뉴게이트 감옥’에서 이름을 따온 ‘뉴게이트 소설’은 범죄자의 삶을 그리는 소설을 말한다. 새커리는 이 두 양식을 자신의 작품에 녹여내어 중하층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냄과 동시에 새로운 도덕관을 제시하고자 했다."


아무려나 이왕 번역본이 나왔으니 19세기 영국문학강의를 다시 진행할 때 읽어보려 한다. 혹은 피카레스크 소설 강의를 따로 꾸려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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