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작가의 책이 나란히 나와서 같이 적었다. 동시대 미국문학의 최전선으로 보이는 콜슨 화이트헤드의 올해 퓰리처상 수상작 <니클의 소년들>(은행나무)과 포르투갈 문학의 거장 주제 사라마구의 <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해냄)가 그것이다. 















화이트헤드(철학자 화이트헤드와 함께 두 명의 '백두'를 기억하게 되었다) <언더드라운드 레일로드>가 전미도서상과 퓰리성을 동시 수상했을 때만 해도 이례적인 사건으로 보였다. 하지만 연이은 후속작들을 통해서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문학이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문학사적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내년에도 미국 현대문학 강의가 계획돼 있는데, 2000년대 미국문학의 대표 작가로 언젠가 다루고 싶다. 
















주제 사라마구는 늦깎이 작가인데, 대략 <바닥에서 일어서서>(1980)부터 주요작으로 간주한다. 국내 번역된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앞선 소설이다. 그에 이어지는 소설이 <수도원의 비망록>(1982)이고, <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1986)가 뒤를 잇는다. 그러니까 사라마구 소설을 연대기적으로 읽는다면, 세번째로 읽게 되는 소설이 <히카르두>인 것. 
















가장 유명하고 많이 읽힌 <눈먼 자들의 도시>(1995)는 세번째 단계쯤 되서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는 <돌뗏목><리스본 쟁탈전><예수복음> 등의 작품을 발표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강의에서는 주로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게 되기에 아직 강의에서는 다루지 못한 작품들이다(포르투갈 문학이나 주제 사라마구 강의를 따로 기획해야 한다). 
















<눈먼 자들의 도시> 이후의 소설들은 초기작들보다 앞서 소개되었는데, <동굴>과 <도플갱어> 등을 거쳐서 <눈뜬 자들의 도시>(2004)까지다.
















그 이후가 노년의 작품들로 <죽음의 중지>(2005), <작은 기억들>(2006), <코끼리의 여행>(2008), 그리고 마지막 작품 <카인>(2009)까지다(사라마구는 2010년에 타계했다). 국내에는 열다섯 권 가량이 번역돼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절반 정도는 강의에서 다루면 좋겠다. 사라마구 탄생 100주년이 되는 후년쯤? 문학강사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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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까지면 올해의 일정이 대략 마무리된다. 여느 때 같으면 연말결산에 들어갈 때이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그럴 만한 분위기는 아니다(유럽은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방역단계를 조금 낮춘다고 하지만 그만한 대가는 지불하게 될 것이다. 백신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인류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궁극적인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불사의 꿈이 무망한 것처럼. 다만 더 많은 지혜와 겸손을 배울 수 있다면 최상이지 않을까). 


이달에는 주말 오후마다 온라인 강의가 있다. 코로나의 여파로 이제는 많은 강의가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고, 아마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런 추세이지 않을까 한다. 올해 계획했던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강의를 100퍼센트 진행할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2/3 가량은 소화하면서 대략 문학강의 전체 목표의 80퍼센트는 달성한 듯싶다. 비유컨대 마무리공사만 남은 상태(내년에는 그 결과물이 여러 권의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올해 밀린 것들까지 포함해서). 대략 5년간의 여정이었다. 러시아문학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시작한 여정으로 영국문학과 프랑스문학 강의가 출발점이었고, 아프리카와 동남아문학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나름으로는 세계일주를 달성했다. 
















지난주에 한 대학에서 '러시아문학과 세계문학'을 주제로 강연하면서, 그 주제로 5시간은 내리 강의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난 5년간의 강의 경험이 공력이 된 덕분이다. 돌이켜보건대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프랑스문학 강의였다. 특히 발자크와 스탕달의 소설들을 읽으며 근대세계문학 전체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가장 유익했던 책은 미셸 레몽의 <프랑스 현대소설사>로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의 기본 구도를 내 식으로 재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근대사회'와 '근대적 개인'이란 개념). '세계문학의 구조'에 대한 나대로의 설명은 내년부터 책으로 낼 예정이다(개괄적인 강의책이 먼저 나올 예정이고, 좀더 엄밀하게 다룬 책은 5년쯤 뒤를 목표로 하고 있다). 
















다양한 세계문학론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김욱동 교수의 <세계문학이란 무엇인가>(소명출판)가 출간되었다. 고리키가 주도한 소련의 세계문학전집에 관한 정보가 유익했는데, 덕분에 전거가 된 논문을 바로 입수했다(마리아 호팀스키의 논문). 세계문학을 주제로 한 논저들이 많기에 이들을 읽어보는 것도 상당한 견적의 일이다(자료는 대부분 입수해두었다). 
















도스토예프스키 강의와 톨스토이 강의를 내년에 출간하고 더불어 세계문학과 여성문학 강의까지 털어내면 걸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 같다. 코로나19로부터 벗어나게 될 시점과 비슷하겠다. 아, 가장 먼저는 한국현대문학 강의가 두 권의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올초 나왔던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의 개정판을 포함해서.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도 개정판을 낼 계획이다. 지난 10년간 무슨 일을 해온 것인지 나도 결과물들을 통해서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새해를 맞는 소감을 미리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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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0-12-19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되네요!

로쟈 2020-12-20 12:47   좋아요 0 | URL
감사.~

행복한책읽기 2020-12-19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십니다~~~^^

로쟈 2020-12-20 12:46   좋아요 0 | URL
^^;

2020-12-19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다립니다^^!

로쟈 2020-12-20 12:46   좋아요 0 | URL
감사.~

손글 2020-12-19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교수님.

로쟈 2020-12-20 12:46   좋아요 0 | URL
그냥 하는 일입니다.^^

빛과소금 2020-12-20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올해도 서재의 달인 되셨네요.
알라딘 사이트 들어와서 책 검색해 보며 항상 로쟈님 서재 들립니다.
어쩜 그렇게 책을 많이 보시나요. 부럽습니다.
한 해 잘 마무리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로쟈 2020-12-20 12:4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길.~

2020-12-21 1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21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22 0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23 0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최근 이상의 <날개>를 강의에서 읽으면서 아주 오랜만에 이상 문학과 관련한 참고문헌들을 읽었다(한국 작가로는 연구논문이 가장 많지 않을까 한다. 과도해보일 정도다). 연구서와 연구논문이 너무 많아서, 일단은 시보다 소설에 주안점을 두고 거리를 좁혀가는 중이다. 


















사실 <날개>만 하더라도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짐작에는 고등학생 때, 그리고 학부 때 읽은 듯싶다) '교과서적인' 인상만 갖고 있다가 작품에 프롤로그(도입부)와 본문이 나뉘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인지하게 되었다. 더불어서 그 두 파트간의 관계에 대한 해명이 여전히 불충분하다는 점도(20여 편의 논문을 읽었지만 만족할 만한 해명은 보이지 않았다). 내친 김에 이상 소설을 전작으로 읽는(그래봐야 한권 분량이다) 강의도 내년에는 시도해보려고 한다. 
















덧붙여서, 이상 소설과 일본 작가들과의 비교문학적 연구도 꽤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코미쓰 리이치와의 관계는 이번에 처음 알았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의 관계는 다시 환기하게 되었다.  

















이상과 박태원을 중심으로 하여 한국 모더니즘문학만 다룰지, 일본 모더니즘 작가들과 함께 다룰지는 고민해봐야겠다(강의에서 다룰 만한 마땅한 판본이 물론 필요하다). 

















그리고 더하여, 도스토예프스키와의 관계. <날개>만 하더라도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비교되는 작품이다(그런 논문도 나와 있다). 실제 도스토예프스키는 위고와 함께 <날개>의 프롤로그에서 직접 이름이 언급되고 있기에 이상이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느 정도 범위까지 읽었을지가 궁금하다. 물론 일본어 번역을 통해서 읽었을 터이고, 동시대 일본 작가들의 도스토예프스키 수용양상도 참고가 되었을 터이다. 아쿠타가와와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비교연구들도 찾아볼 필요가 있다. 내달에 아쿠타가와의 단편들을 강의에서 다룰 예정인데, 겸사겸사 이상과의 관계도 따져봐야겠다. 


다종의 이상 전집과 연구서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될 때 언급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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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한겨레에 실었던 '언어의 경계에서' 칼럼을 옮겨놓는다. 일본문학 강의차 다시 읽은 모리 오가이의 <아베 일족>에 대해 적었다. 순사를 소재로 한 오가이의 역사소설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비교거리인데, 일본문학에서 근대적 개인의 형상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한겨레(20. 12. 11) 중세와 근대의 충돌이 빚어낸 것


모리 오가이는 나쓰메 소세키와 함께 일본 근대문학의 대표 작가다. 두 사람은 신분과 작품세계에서 많은 차이점을 보여주는데, 그 차이보다 중요한 공통점도 갖고 있다. 서구 유학의 경험이다. 유학 시절 접한 서구의 문학과 사회상이 두 사람의 작가적 출발과 지향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근대문학을 ‘근대의 문학’으로 이해한다면 자연스레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적 사회적 조건의 형성이 근대문학의 탄생 조건이다. 그리고 그러한 근대가 서구에서 먼저 형성되고 발전돼온 사정을 감안하면 오가이나 소세키의 유학경험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그 경험에서 두 작가 모두 근대적 개인으로서의 자각을 갖게 되는데, 그 자각이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는 흥미로운 비교 거리다. 예컨대 오가이의 데뷔작 <무희>(를 포함한 ‘독일 3부작’)와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오가이의 <학생>과 그보다 앞서 발표된 소세키의 <산시로>가 자연스럽게 비교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오가이의 <아베 일족>(을 포함해 순사를 주제로 한 역사소설들)과 소세키의 <마음>은 공통의 계기를 갖고 있으면서 두 작가가 살았던 메이지 시대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좋은 비교 대상이다. 공통의 계기라고 한 것은 메이지 천황의 장례식 날 노기 마레스케 육군 대장 부부가 순사한 사건(1912)이다.(노기는 사무라이 전통에 따라 할복자살한다) 가신들이 주군의 죽음을 뒤따른 데서 비롯한 순사는 분명 중세적 생사관의 표현이다. 근대적 개인주의의 관점에 서자면 시대착오적인 행위로까지 치부된다. 그렇지만 위로부터의 급진적인 근대화가 추진된 메이지 시대는 전통적인 가치와 서구에서 유입된 근대적 가치가 혼합돼 있던 시기다. 황국의 신민이라는 의식과 개인이라는 자각은 서로 충돌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두 가지는 그들의 동시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오가이와 소세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였다.


순사의 모티브를 간접적으로 다룬 <마음>과 비교하면, <아베 일족>에서 오가이는 아예 17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이를 직접 다룬다. 주군의 허락을 받지 않은 순사가 결국에는 일족의 몰살까지 가져오게 된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오가이는 순사를 둘러싼 이해관계와 순사자의 내면을 묘사함으로써 이 역사소설이 역사적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갖게 한다. 일례로, 영주의 음식 시중을 들던 초주로라는 청년은 영주의 병상에서 간곡하게 청하여 순사의 허락을 받는다. 그렇다고 주군에 대한 충의에서만 순사를 조른 건 아니었다. 주변의 시선을 고려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족이 될 노모와 아내가 순사자의 가족으로서 받게 될 상향된 처우를 계산했다. 그러한 계산 속에서 죽음의 슬픔과 비장함은 무게를 잃는다.



그렇지만 그러한 개인적 내면과 계산은 여전히 제한적으로만 나타난다. 아베 일족 몰락의 계기가 되는 아베 야이치에몬의 경우도 그러한데, 임종을 앞둔 영주에게 여러 차례 순사 허락을 받고자 했지만 얻어내지 못한 그는 비록 주군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도 자기 운명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무사이고 무사는 첩과는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야이치에몬의 이러한 자각에 오가이는 근대적 개인의식을 살짝 겹쳐놓는다. 하지만 이는 곧 화를 부르게 된다. 주군의 허락을 받지 않은 야이치에몬의 순사는 비록 중세 무사도를 따른 모양새이지만 주변의 험담과 조롱에 맞서는 것이면서 동시에 자발적인 의지의 표명이다. 그렇지만 그의 순사는 새 주군의 불만을 사고 그에 대한 장남의 항의는 일족의 몰살을 가져온다. 새롭게 고안한 ‘역사소설’을 통해서 오가이는 메이지 시대 근대인이 처한 모순과 곤궁, 그리고 한계를 우회적으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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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미국 소설'의 작가(자연스레 위대한 미국 소설가가 된다!) 필립 로스의 작품이 하나 더 번역됐다(계산해보니 전체 29권 가운데 대략 절반이 나온 듯하다). <새버스의 극장>(1995). 바로 앞서 나온 <위대한 미국 소설>(1973)과 마찬가지로 '주커만' 시리즈나 '케페시' 시리즈, '네메시스' 시리즈 혹은 자전적인 '로스' 시리즈에 속하지 않는 '기타 소설'로 분류되는 작품이다. 1995년 전미도서상 수상작. 
















국내 번역된 작품들 가운데 8권을 강의에서 읽은지라 나로선 할만큼 했다고 생각하지만, 욕심을 부리자면 내년에 최소한 이 두 권은 추가적으로 읽어볼 계획이다(미번역 작품을 고려하면 내년에 번역 작품 수도 좀더 늘어날 수 있겠다).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필립 로스가 <미국의 목가>와 더불어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는 이 소설은 1995년 전미도서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데뷔작 <굿바이, 콜럼버스> 이후 필립 로스에게 두번째 전미도서상 수상의 영예를 안겼고, 이듬해 퓰리처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이 책의 주인공 새버스는 죽음과 생명이 있는 그대로 외설적으로 드러나는 듯한 인물, 평범한 삶을 규정하는 어떤 범주로도 포착할 수 없을 것 같은 인물로, 소설은 새버스가 스스로 죽을 자리와 묻힐 자리를 찾는 과정을 그린다."


<미국의 목가>가 '미국 3부작'(모두 주커만 시리즈에 속한다)의 첫 작품으로서 로스를 당대의 역사가로 자리매김하게 해주었다면, <새버스의 극장> 같은 작품을 통해서 필립 로스는 자신이 "모던 에로티시즘의 훌륭한 역사가"(밀란 쿤데라)라는 사실도 보여주고자 한다. 이미 <포트노이의 불평>(1969)에서부터도 대단한 외설적 입담을 과시한 로스는 아마도 이 분야의 미국 대표 작가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이 분야의 문학상이 따로 있다면 로스가 꽤 노렸음직하다).  
















욕망과 에로티시즘을 다룬 작품으로는 '케페시' 시리즈도 떠올릴 수 있는데, 언젠가 적은 대로 <죽어가는 짐승>의 전작이 되는 <욕망의 교수>(<에로스학 교수>로 번역됐다가 절판됨)와 <유방>도 마저 번역되면 좋겠다. 필립 로스 전작 읽기를 목표로 하거나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절반은 읽고 강의에서 다루는 게 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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