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에 실은 '언어의 경계에서' 칼럼을 옮겨놓는다. 일본문학 강의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를 다시 읽었고 그에 대해서 적었다. 소세키 문학의 여전한 의의에 대해서 확인하게 된다...


















한겨레(21. 01. 15) 소세키 최고작이자 패배작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히는 소설은 초기작 <도련님>과 후기작 <마음>이다. 지인의 권유로 쓰게 된 첫 작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가 예상 밖의 호응을 얻으면서 소설 창작의 길로 들어서지만 소위 ‘근대소설’로의 진입은 늦춰진다. 지금까지도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도련님>도 무모한 성격의 시골학교 교사가 벌이는 권선징악적 모험담이었다. 근대적 개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근대사회를 묘사의 대상으로 삼는 본격적인 근대소설은 소세키가 도쿄제국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아사히신문사의 전속작가로 전직하면서 계기가 마련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마침내 이르게 되는 지점이 문제작 <산시로>(1908)다.















소세키의 최고작이라고 평가받을 만한 <그 후>(1909)는 이런 사전설명이 불가피한 소설이다. 제목의 ‘그 후’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앞에 어떤 인물 혹은 이야기가 있었던가를 확인해야 한다. 소세키의 직접적인 해명에 따르더라도 <그 후>는 <산시로>에 뒤이은 이야기로, 주인공 산시로의 뒷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의 결말 이후도 독자에게 ‘그 후’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한다. 소세키의 답변은 후속작 <문>을 통해서 주어진다. 그렇게 해서 주인공은 각기 다르지만 <산시로>와 <그 후>, <문>은 3부작으로 묶인다(그 뒤를 잇는 세 편의 ‘후기 3부작’과 구별하여 통상 ‘전기 3부작’이라고 부른다). 각각을 독립적인 작품으로도 읽을 수 있지만 소세키의 의도를 감안하면 연쇄적인 작품으로 읽는 독법이 필요하다.


<그 후>를 최고작으로 평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 소설이 놓인 위치 때문에 가능하다. 3부작의 가운데에 놓여 있으면서 ‘본론’에 해당하는 작품이 <그 후>다. 시골 출신의 청년 산시로가 제국대학의 신입생으로 난생처음 대도시 도쿄에 와서 겪게 되는 새로운 경험(학문과 연애가 대표적이다)을 다루고 있는 <산시로>가 ‘서론’이란 것을 염두에 두면, 본론이다(서론적인 면을 고려해야 주인공의 무력감 같은 <산시로>의 특이한 면들이 이해된다). 산시로가 근대세계의 입문자 형상이라면 다이스케는 대결자의 모습이다. 무사 집안 출신으로 메이지유신 이후 사업가로 성공한 부친의 차남인 다이스케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부러 직업을 갖지 않은 ‘고등유민’이다.


다이스케는 경제적으로 아버지와 형에게 의존하고 있지만 사고와 인식에 있어서는 독자적이다. 그는 급속한 근대화로 변모한 일본사회 문제들에 대한 예리한 관찰자이면서 비판가이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용모를 섬세하게 관리하는 심미가이기도 하다. 유럽소설에서 도식을 가져오자면 다이스케는 예술가적 태도로 아버지와 형으로 대표되는 시민계급에 맞선다. 문제는 다이스케의 그러한 입지 자체가 생활 면에서는 기생적이라는 데 있다. 아버지가 권유하는 혼사를 거절하고 자신이 결혼을 주선까지 했던 친구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게 되자 다이스케의 입지는 흔들린다. 친구의 고자질로 아버지와 형은 그에게 의절을 선언하고 다이스케가 갑작스레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는 게 소설의 결말이다. 열린 결말이기는 해도 다이스케에게 가능한 ‘그 후’ 이야기가 낙관적이긴 어려울 것이다.















<그 후>가 최고작이라는 평가는 이 소설에서 근대사회에 대한 인식과 비판이 최대치로 표현돼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소세키 소설의 성취라고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이 성취는 그의 패배이기도 하다. 주인공 다이스케의 몰락이 시사하는 바대로 근대에 대한 소세키의 응전이 이후에는 점차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소세키 문학이 일본 근대문학의 최대치인 것을 감안하면 그의 패배는 일본 근대문학의 패배이기도 하다. 이후에 군국주의로 폭주하는 일본을 일본문학은 제지할 수 없었다. 문학의 역할과 의의가 어디까지인가를 확인시켜준다는 면에서도 소세키는 좋은 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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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프랑스 현대소설의 탄생

8년 전 독서 계획이다. 프랑스문학 강의가 세계문학 강의의 출발점이었고, 올 상반기에도 강의할 예정이다. 이를테면 강의 루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앞으로는 번역본 문제로 다루지 못했던 조르주 상드나 위스망스를 포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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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5 12: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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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5 17: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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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1 23: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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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1 23: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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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 일이 밀려 있어서 미리 한숨 자고 일어나 정신을 차리는 중이다. 막간에 옛날 얘기를 적는다.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세트가 나와서 떠올린 얘기다. 20년쯤 전 대학 시간강사를 하면서 학원에서는 국어논술 강의도 했는데, 한동안은 학생수가 많지 않아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도맡기도 했다. 초등학생은 4학년부터 6학년까지. 수업은 한두명 씩(그 아이들이 어느새 30대가 되었겠다!). 그때 교재로 즐겨 쓴 책이 로알드 달의 <마틸다>와 에프라임 키숀의 <개를 위한 스테이크>였다. 짤막하고 재밌는 이야기여서 한 대목씩 복사해서 나눠준 다음에 줄거리와 느낀 점 쓰게 하기가 수업의 주내용이었다. 읽고 쓰기를 습관화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라는 생각에서. 
















초등학생들이 읽기 좋은 작가라고 그때는 생각했는데, 성인들이 읽기에는 어떤지 모르겠다. 독서에도 입맛이라는 게 있다면 독서의 재미를 잃은, 독서의 입맛을 잃은 독자들이 손에 들만하지 않을까 싶다(<맛>은 한번 나왔던 책의 개정판이다).



  













확인해보니 여전히 가장 인기있는 책은 <마틸다>다(영화로도 만들어졌군). 주니어용으로만 많이 나와있는데, 로알드 달 단편 베스트는 좀 번듯해서 소장용으로도 괜찮겠다.


 












한편 에프라임 키숀은 잊혀진 작가가 되었다. <개를 위한 스테이크>나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같은 책은 진작에 절판되었고 <행운아 54> 정도만 남아있다. 다시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작가의 명성에 비하면 의외다. 이미 오래 된 정보이지만 작가 프로필을 옮겨오면 이렇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선 키숀은 해외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37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43백만여 권의 책이 팔렸고, 2001년에는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희곡과 시나리오도 집필한 키숀이 직접 감독한 영화 두 편은 아카데미상 후보에 추천되었다. 한국에는 <개를 위한 스테이크>,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남편> 등이 소개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풍자작가인데, 풍자라는 장르가 시류성이 있긴 하지만 키숀 정도면 다시 나와도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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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3 02: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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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3 17: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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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부인 2021-01-14 0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가 로알드달 60주기래요. 그래서 행사가....줄줄이 .. 로알드 달 생애도 흥미로운 지점이 있고 영화도 뮤지컬도 다 대박이 나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 되었어요. ^^

로쟈 2021-01-14 19:52   좋아요 0 | URL
아하. 초등학교 읽었더라면.^^

2021-01-14 2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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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4 23: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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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5 03: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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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작년부터 이어진 강의의 뒤늦은 종강이 있었다(가을강의의 종강이었다!). 대개 강의가 끝나면 그때그때 쓸 거리들이 생긴다. 하지만 막상 쓰는 경우는 드물다.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해서다. 그래도 가끔 일부는 적어놓는데, 이 페이퍼도 그에 해당한다. <스토너>의 작가 존 윌리엄스(1922-1994)에 대해서. 아마도 올해 번역돼 나올 것 같은 <도살자의 건널목>에 대해서. 

















윌리엄스는 <스토너>가 50년만에 재발견되면서 '역주행'한 대표적 작가로 꼽히고 덕분에 그의 소설 두 권이 더 번역돼 나왔다. <오직 밤뿐인>과 <아우구스투스>다. <스토너>가 리커버판까지 알에이치코리아에서 출간되었는데, 다른 두 편은 구픽에서 나왔다. 짐작엔 <스토너>에 대한 반응 때문에 나머지 책들을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그 나머지라는 게 세 권이다. 윌리엄스는 <스토너>를 포함해 단 네 권의 소설을 발표했을 뿐이다(거기에 두 권의 시집이 그의 전작을 구성한다). 연도까지 병기하면 아래순이다. 


<오직 밤뿐인>(1948)

<도살자의 건널목>(1960)

<스토너>(1965)

<아우구스투스>(1972)


작품 목록만 보면 두 가지 점이 눈에 띈다. <오직 밤뿐인>부터 <도살자의 건널목>까지 좀 긴 간격이 있는 것(12년). 그리고 <아우구스투스> 이후에 '절필'한 것. 작가가 94년에 사망했으니 22년간이다. 덧붙이자면, <도살자의 건널목><스토너><아우구스투스>는 전혀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임에도 뭔가 연속적이라는 것.


강의에서 <스토너>를 다시 다루면서(두 번 강의했다) 비로소 갖게 된 생각인데, <스토너>는 그 자체로도 읽을 수 있지만, 삼부작의 한 작품으로도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삼부작'이 작가 윌리엄스에게는 일종의 완결판이라는 것(그 이후에 덧붙일 필요가 없는). 


 


 













삼부작의 하나로 읽으려고 하면 아직 <스토너>를 읽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삼면화로 치자면 왼쪽 첫 그림에 해당하는 <도살자의 건널목>이 아직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행히 <아우구스투스>의 뒷표지에 따르면 근간 예고로 돼 있다. <아우구스투스>가 2016년에 나온 걸 고려하면 너무 늦어진다는 불길한 예감도 있지만, 여하튼 올해는 나오길 기대한다. 개인적으로는 <스토너>를 읽기 위해서, 더 나아가 작가 윌리엄스를 읽기 위해서. 


















<스토너>가 재발견작이라지만, 가장 높은 평판을 얻은 건 전미도서상(1973년) 수상작인 <아우구스투스>다. 특이하게도 그해에 존 바스의 <키메라>(1972)와 공동 수상했다(전미도서상 최초의 공동수상이었다). 흥미롭게도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대표작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1971)도 비슷한 즈음에 나왔다(윌리엄스가 읽었을까?). 그래서 <아우구스투스>를 윌리엄스 삼부작에서 떼어내면, 동시대 작품으로는 <키메라>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과 비교해서 읽을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작품이 갖고 있는 맥락이고 좌표다. 그에 따라 작품에 대한 해석과 판단, 그리고 평가는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스토너>에 대해선 지난가을에 강의했지만, 아직 <도살자의 건널목>이 나오지 않아서 존 윌리엄스 읽기는 숙제가 되었다(책이 나온다면 올 하반기에는 강의에서 다룰 수 있겠다. 윌리엄스 소설 전체를, 혹은 삼부작을). 


뒤늦은 강의소감을 간략히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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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doza72 2021-01-09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알릴레오 보셨나요? 유시민 박웅현 조합이던데. 두분이 사뭇 의견이 다르더군요. 로쟈님 출연을 강추드리는데. 혹시 연락없었나요? ㅎ....꼭 한번 알릴레오에서 뵙기를 빌겠습니다. 그리고 조르바 애 대해서 민음사 책으로 보고 있더군요. 저는 이윤기씨 책을 가지고 있는데 민음사 번역은 어떤가궁금합니다.? 민음사 책도 다시 사볼 필요가 있을까요?

로쟈 2021-01-09 12:50   좋아요 1 | URL
연락 없었고요.^^ 조르바는 아시는 대로 다수 번역본이 나와있고 저도 페이퍼에서 다룬 적이 있어요. 그리스어 원전 번역부터, 영어본, 불어본 번역까지 다 나와 있습니다. 관심있는 독자라면 비교해볼 수 있을 거구요. 다만 조르바는 그런 차이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거 같습니다. 먹물들한테나 중요한 일이라고..

2021-03-11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12 0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로쟈 > 라스콜리니코프 '두 모녀'를 살해하다

13년 전에 적은 페이퍼다. 자매가 알고보니 모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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