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는 폭우중에도 일정이 있어 이동중이다. 북플 글쓰기를 하려 했더니 임시저장된 글이 뜨는데, 어젯밤에 쓰려다 만 것이다. 지울까 하다가 몇마디 적기로 한다. 최승자 시인의 가장 최근 시집인 <빈 배처럼 텅 비어>(2016) 소개글에서 전문이 인용된 시 몇 편 읽고서 느낀 점을 적으려 했다.

어지간한 시집은 갖고 있는 걸로 생각했는데 이 시집을 포함해 <쓸쓸해서 머나먼>(2010)과 심지어 분명히 읽은 기억이 있는데 <내 무덤 푸르고>(1993)까지 구매내역에 뜨지 않는다. 설사 <내 무덤 푸르고>를 읽었다 하더라도 <빈 배처럼 텅 비어>까지는 23년의 간격이 있다. 1952년생인 시인의 나이를 고려하면 40대 초반부터 60대 중반까지의 간격이다. 그럼에도, 시집 제목에서 이미 눈치챌 수 있지만, 최승자를 식별하는 건 어렵지 않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1981)고 이미 서른 전에 적어놓은 최승자 말이다.

문제는 거기에서 비롯되는데, 이후에 이 시인이 어떤 시를 더 쓰더라도 이미 읽은 시로 생각된다는 점. 혹은 느껴진다는 점. 진작에 늙었던 시인이기에 장년의 시나 노년의 시가 따로 있을 리 없다. 고로 ‘최승자는 최승자다‘만 반복할 수 있을 뿐.

얼마나 오랫동안
세상과 떨어져 살아왔나
“보고 싶다”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깨달았다
(아으 비려라/ 이 날것들의 生) (‘얼마나 오랫동안‘ 전문)

너의 존재를 들키지 마라
그림자가 달아난다
(내 詩는 당분간 허공을 맴돌 것이다) (‘내 詩는 당분간‘ 전문)

최승자 투는 이런 시들에서 고스란히 확인된다. 삶에 대한 신랄한 냉소와 풍자, 자조, 독설 등은 최승자 시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런 만큼 너무 익숙한 세계다. 그런 대로 재밌다고 느낀 건 ‘우리는‘ 정도.

우리는 쩍 벌리고 있는 아구통이 아니다
우리는 人도 아니고 間도 아니다
우리는 별다른 유감과 私感을
갖고 사는 천사들일 뿐이다
우리가 천사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세상 환영에 속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게 전문이고 전부다. 그 이상을 보여줄 거라는 기대감이 없어서 시집은 장바구니에 묵혀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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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성 소설의 제목이다.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문학과지성사). 짐작엔 이인성의 소설 가운데, 가장 편하게, 그리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낯선 시간 속으로>를 강의하게 된 김에 다시 읽어보려 오랜만에 재구입했는데, 다시 읽는다고 한 건 단행본으로 나오기 전, 잡지에 발표되었을 때 읽었기 때문이다.

단행본은 1995년에 나왔는데, <낯선 시간 속으로>(1983)와 <한없이 낮은 숨결>(1989)에 이은 것이니 6년만에 나온 작품. 그 뒤에 소설집 <강 어귀의 섬 하나>(1999)가 추가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먼저 절판된다(공식적으론 품절이지만 다시 나올지 의문이다). 현재로선 80년대에 나온 작품집 두 권이 이인성의 대표작이고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이 보너스로 덧붙여진 듯한 모양새다.

잡지에서 읽었다고는 하지만 다 읽은 것 같지는 않고 다 읽는 게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다. 한 장면만으로도 책값은 충분히 하는 소설이어서다. 문제의 장면은 주인공 화자가 시집을 라면과 같이 끓여먹는 대목으로 ‘나‘는 좋아하는 시를 주저없이 뜯어내 갈기갈기 찢어서는 코펠에 뿌려넣는다. 그러고는 걸죽하게 되도록 끓인다. 그렇게 끓인 다음에 라면과 양념수프를 털어넣고 4분. 언젠가 따라서 해볼지 모르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묘사가 자세하다. 이 대목을 다시 읽는 걸로 오늘의 밤참을 대신한다.

˝뜨거운 김에 눈을 찔끔대며, 뜨거운 맛에 혀를 휘두르며, 김치를 말아 라면을 먹는다. 가끔, 충분히 섞이지 못한 밍밍한 종이 맛이 이물스럽게 목에 걸린다. 꿀꺽 삼킨다. 그래, 내가 너희를 먹는다. 너희를 모두 먹고, 너희 모두만한 시인이 되겠다. 나는 맹세했었다. 오래 전에, 그녀에게. 나는 혼자서라도 그 맹세를 지키겠다. 미치기 전에, 내가 미쳐 사라지면 그녀가 죽는 날까지 울, 그런 미침의 기록인 시를 쓰겠다. 맹세를 위해, 나는 국물 위에 뜬 작은 종이 섬유질 덩어리를 손가락으로 집어, 입 안에 쑤셔넣는다. 꿀꺽 삼키고. 손가락을 빨고. 손가락을 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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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대한 촌평과 험담을 자주 늘어놓다가 급기야는 박인환에 대한 책들까지도 ‘업데이트‘ 명목으로 몇권 주문했다. 오래 전에 시집부터 평전까지 뗀 시인인지라 ‘재방문‘이 된다. ‘목마와 숙녀‘와 ‘세월이 가면‘ 등이 대표작인데 그의 전집을 읽더라도 대표시의 목록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명동 백작‘으로도 불렸던 박인환은 시가 아니라 포즈로써 시인이었다.

오랜만에 가을 분위기에 맞기도 해서 그의 시 ‘세월이 가면‘을 인터넷에 찾았다(찾은 건 어젯밤이다). 박인희가 부른 ‘세월이 가면‘의 가사가 원시와 약간 달라서 혼동되는 면도 있는데 일단 이런 시다(최종판은 시집에서 확인해봐야겠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시를 읽으면 노래가 자동으로 귓전에 흘러드는 시다. 감상적인 시의 표본이라도 해도 과장이 아니다. 노래 가사와 원시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했는데 가장 두드러지는 건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이란 시구다. 노래에서는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이라고 개사되었다. 이 개사는 누구의 작품인지 문득 궁금한데 더불어 이유도 생각해보게 된다.

개인적인 추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발성상의 문제. ‘과거는 남는 것‘은 순수하게 음성학적 차원에서 조금 불편하다. 특히 ‘거‘와 ‘남‘이 음성모음과 양성모음의 조합이어서 자연스레 이어지지 않는다. ‘옛날은 남는 것‘에서 ‘날‘과 ‘남‘이 호응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의미론의 문제인데, 한국어에서 ‘과거‘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많이 쓰인다. ‘과거가 있는 사람‘ 같은 표현을 보라. ‘과거는 묻지 마세요‘ 같은 호소도 마찬가지다. 반면에 ‘옛날‘은 긍정적, 부정적으로 다 쓰일 수 있지만 ‘사적인‘이라거나 ‘비밀스러운‘이라는 뉘앙스는 갖지 않는다. 과거는 숨겨져 있고 옛날은 드러나 있다. 그래서 이 유명한 시에서조차 ‘과거‘는 숨겨지고 ‘옛날‘에 의해 대체된다. 문득 그런 조처가 흥미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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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이면 이주의 강의책과 강의자료를 식탁과 식탁 주변에 모아놓는다. 오래된 습관은 아니고 아마도 한두 달 된 듯싶다. 미리 챙겨놓지 않아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생기면서 취하게 된 대응조처다.

오늘도 행방이 묘연한 책은 다시 주문하고 엊그제 배송받은 책은 또 주문할 수가 없어서(그새 행방이 묘연하다니!) 계속 추적중이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가 지명수배중인 책이다(원서와 같이 도주중이다).

책을 찾느라 책들을 뒤집어놓다가 허은실의 <나는 잠깐 설웁다>(문학동네)를 발견하고 펴들었다. 잠깐 보다가 만 듯한데 특별히 인상적이지 않아서 기억엔 ‘밋밋한 시집‘으로 분류돼 있다. 잘못 본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앞뒤로 몇편 훑어보았지만 뭔가 통하는 시와 만나지 못했다. 여성독자라면 ‘우리들의 자세‘나 ‘입덧‘ 같은 시에 공감할 수 있겠다 싶은 정도. 하지만 다른 시들은 읽기 괴로웠다.

늙은 구름은 칭얼대고
죽은 아기들은 웃어대고
버스는 좁은 벼랑 위를 달린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안 될 거예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나쁘진 않아요
치사량이 언제나 치명적인 것은 아니니까요

빚 받으러 온 사내들처럼 목 조르는
쉰밥이여
무엇을 주리 빈 젖을 주리

‘지독‘이란 시의 첫 세 연인데, 일단 여기까지 읽는 것도 괴롭다. ‘늙은 구름‘이나 ‘죽은 아기들‘을 들먹이는 시 치고 괜찮은 시를 보지 못했다. 좋지 않은 시의 견본으로나 의미가 있을까. 마지막 두 연도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악한 게 아니라 다만 약한
그리하여 독에 이르는
전갈과 뱀과 당신과 우리
지독해진다는 것
매독처럼 피어
서로에게 중독되는
허기의 무궁

비 내린 숲의
비린 냄새를 따라가면
독버섯들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마지막 연만 봐줄 만하다. ˝매독처럼 피어/ 서로에게 중독되는/ 허기의 무궁˝ 같은 구절은 습작에서나 허용되는 거 아닌가.

‘라이터소녀와 껌소년의 계절‘이란 제목의 시도 제목부터 관념적이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들 너무 따듯해서
이 거리의 사랑은
일회용 라이터처럼 흔해요

라이터 하나에 가든과 라이터 하나에 모텔과
라이터 하나에 오빠 오빠

이런 식으로 나가면 기대를 접게 된다. 데뷔 시집의 단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한데 습작티를 못 벗은 시들은 버렸어야 하지 않을까.

‘Midnight in Seoul‘도 마찬가지.

도시의 틈새에서
어둠이 새어나온다
홍등이 걸린다

모텔 네온사인이 켜지고
묘지에 돋는 붉은 십자가들
라디오에선
이퓨렛미인 유네버로스트미
내부순환로 양방향정체

방음벽 너머로 골리앗 크레인
도시를 굽어본다
피가 튄 곳마다 거인들이
태어난다고 하지
저 환한 통증들 좀 봐

관념적인 묘사로 공감이나 발견을 끄집어내기는 어럽다. 서울에 대한 묘사가 이럴진대 ‘월 스트리트‘는 어떻게 묘사할까.

온다
지축을 흔드는
강철 페니스
시든 정자들 쏟아진다

계단을 오르는
검은 정장 행렬
마천루로 들어간다

이런 시를 계속 나열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다시 <시녀 이야기>나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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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작가 에. 테. 아. 호프만(풀네임 ‘에른스트 테오도르 아마데우스 호프만‘이 너무 길기에 보통 그렇게 부른다)의 대표작 선집이 나왔다. <모래사나이>(창비). 가장 유명한 단편을 표제작으로 삼았다.

˝독일 낭만주의 작가 E. T. A. 호프만의 대표 중단편을 고루 묶은 소설집. 환상과 그로떼스끄의 대가이자 탁월한 심리묘사와 인간의 어두운 측면에 대한 날카로운 탐구로 호프만의 작품들은 도스또옙스끼, 고골, 보들레르, 발자끄, 에드거 앨런 포 등 무수한 작가를 매료했고, 차이꼽스끼, 슈만, 오펜바흐 같은 음악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번 창비 <모래사나이>에서는 특유의 기이하고 매혹적인 세계에 정치체제 풍자와 근대 이성에 대한 비판을 담은 중편소설 ‘키 작은 차헤스, 위대한 치노버‘를 국내 초역으로 선보이고, 호프만 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걸작 단편 ‘황금 항아리‘ ‘모래 사나이‘ ‘스뀌데리 부인‘을 함께 수록해 호프만 문학의 진미를 두루 맛볼 수 있게 했다.˝

요컨대 호프만 중단편 선집으로 아주 요긴한 번역본이 나온 것. 안 그래도 이번 겨울 독일문학 강의 때 ‘모래사나이‘를 다시 강의하게 되는데 기존 번역판(문학과지성사)과 비교해서 읽어보고 싶다. 더 나아가면, 러시아 작가 고골과 도스토예프스키를 호프만에서 이어지는 환상문학 계보에 위치시켜서 다뤄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이론서로는 프로이트의 ‘두려운 낯설음‘(언캐니)과 토도로프의 <환상문학 서설>을 참고할 수 있다.

독일문학과 러시아문학의 관계를 조명할 때 환상문학은 중요한 비교범주다. 이에 대해서 다룬 연구서가 있는지도 찾아봐야겠다. 호프만을 올해부터 강의에서 다루면서 추가로 떠안게 된 과제다. 환상문학의 시학을 구성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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