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유익한 문학 독법이 책으로 나왔다. 토마스 포스터의 <교수처럼 문학 읽기>(이루, 2018)다. 저자는 <미국을 만든 책 25>(알에이치코리아, 2013)로 처음 소개된 미국 미시건대학의 영문학 교수로 <교수처럼 문학 읽기>와 <교수처럼 소설 읽기>, 두 권이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에 오른 바 있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을 만든 책 25>에 이어서 이번 책 <교수처럼 문학 읽기>에도 추천사를 붙인 인연을 갖게 되었다.

˝토마스 포스터의 <교수처럼 문학 읽기>는 뭔가 불길하다. 마치 무림 고수들 사이에서만 떠돌던 비전(秘傳)이 유출된 느낌이랄까? 문학 강의를 생계로 삼는 처지에서 보자면, 모두가 교수처럼 ‘쉽고 깊게‘ 문학을 읽는 날은 내가 전업해야 하는 날이다. 문학의 일반 문법과 함께 시시콜콜한 독서 비결까지 일러주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정말로 짐을 싸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정도 내공을 쌓은 사회라면 문학 교수로서 실직하더라도 문학 독자로서는 더없이 부듯할 듯싶다.˝

나로선 어느 쪽이나 유쾌한 결말이다. 독자들의 반응이 별로 없다면 문학강사로서 다행한 일이고, 이런 책을 통해 비전을 습득한 독자들이 많아진다면 ‘영업‘에는 지장을 좀 받겠지만 동료들이 많아진 보람을 느끼겠다.

사실 책의 추천사는 몇년 전에 썼고 그때 곧바로 원서도 구했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행방이 묘연한데, 원서와 같이 다시 정독해보고 싶다. 이런 종류의 책을 나도 쓸 수 있을지 가늠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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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의 단편집은 선집 형태로 여러 종이 나와있지만 첫 단편집 <플래퍼와 철학자>(1920)의 번역본은 현재 세 종이다. 재미있는 것은 원제의 ‘플래퍼(flappers)‘ 번역인데 마땅한 번역어가 없는 탓인지 각각 ‘아가씨‘와 ‘말괄량이‘, ‘말괄량이 아가씨‘로 옮겼다. ‘아가씨‘란 말로 1920년대 신여성을 가리키는 건 역부족이고 ‘말괄량이‘라고 옮기더라도 사정은 별로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 굳이 번역하자면 ‘왈패‘나 ‘왈짜‘ 정도가 유사할까. 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1920년대는 미국의 성 혁명 시대로 기록되는 데, 이 혁명의 선두 주자가 바로 flapper(플래퍼: 건달 아가씨, 왈가닥)였다. 넓게 보자면 플래퍼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의 사회참여로 인해 생겨난 신여성을 일컫는 말이지만, 그 전형적인 모습은 짧은 치마를 입고 담배를 물고 색소폰 소리에 몸을 흔들어대는 ‘노는 여자‘였다. 1922년 <플래퍼>라는 잡지가 창간될 정도로 ‘플래퍼 붐‘은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말이 외국으로 수출되면서 부정적인 의미가 더욱 강해져, 한국에서도 한때 ‘여자 깡패‘나 ‘행실이 방정하지 못한 여자‘를 가리켜 ‘후랏빠‘라고 부르기도 했다.˝

우리에게도 건너왔던 ‘후랏빠‘란 말은 ‘플래퍼‘의 일본어 음역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동아시아 여성상에 견주어 본래보다 더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된 성싶다. 본래의 ‘플래퍼‘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주체적 형상을 가리키기 때문이다(현대적 여성 주체성의 첫 모델이지 않았을까).

여덟 편의 단편을 묶은 피츠제럴드의 첫 단편집의 가장 큰 의의가 나는 제목에 있다고 생각한다. 표제작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그의 단편들은 ‘플래퍼‘라는 새로운 여성상을 포착하여 주목하게끔 한 공로가 있다. 더불어 플래퍼의 유행에 한몫 거들었다. 그가 시대의 흐름과 징후를 읽을 줄 알았다는 뜻인데, 데뷔 장편 <낙원의 이편>(1920)과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1925)의 여자 주인공에게서도 플래퍼 형상을 읽을 수 있는 건 자연스럽다. 피츠제럴드는 재즈시대의 작가이면서 플래퍼의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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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한스 2024-02-24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미소니안 IPTV 채널에서 컬러로 보는 미국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20년대 미국의 경제 호황과 같이 새로이 등장한 flappers를 신세대 여성이라고 나오더라구요 지금 MZ세대 처럼요(부정적인 뉘앙스 보다는요)
 

주말에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하인리히 뵐과 행복사회>(한국문화사, 2017)다. 국내 독문학자들이 뵐 문학의 의의와 현재성을 조명한 책이다. 그렇더라도 좀 뜻밖이었는데 알고보니 뵐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책이다. 1917년 12월 출생.

197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뵐은 ‘쾰른의 현인‘으로 불린다. 작가이면서 성찰적 지식인이었는데, 국내에는 대표작 몇권만 남아있고 에세이와 평론에 해당하는 책들은 다 절판된 듯싶다. 나로선 노벨상 수상작가 강의에서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었고,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도 별도의 강의에서 다룬 적이 있다.

기회가 닿으면 <어느 어릿광대의 견해>(문학동네)도 강의에서 다루고 싶다. 유감스러운 건 대표작이라는 <여인과 군상>이 발췌본으로만 나와있고 아직 완역되지 않은 점(기억에는 오래전에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나왔다가 절판됐다). ‘하인리히 뵐괴 행복사회‘를 위해서라도 전공자들이 좀더 힘을 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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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문득 생각이 나서 근황을 알아본 저자는 시인이자 평론가로 활동한 이승훈 교수다. 이상 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김승희 시인과 함께 이상 시 전문가였다) ‘비대상 시‘를 통해 김춘수의 무의미시를 계승한 바 있다. <라캉으로 시 읽기>(문학동네, 2011)까지가 내가 아는 근황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후에도 평론집과 심지어 시전집이 나왔고 그 이전에도 내가 주목하지 않았던 시론집이 몇권 더 있었다.

<이승훈 시전집>(황금알, 2012)은 책값이 부담이 돼 포기하고 비평집 혹은 시론집에 해당하는 책 두 권을 아침에 주문했다. <시적인 것은 없고 시도 없다>(집문당, 2003)와 <현대시의 종말과 미학>(집문당, 2007)이 그것이다. 제목만으로도 요지는 가늠이 되는 책들이다. 다만 구체적인 논거들을 확인하려는 차원이다. 한국현대시 강의준비도 겸해서. 시 한편을 옮겨놓는다. ‘시적인 것은 없고 시도 없다‘는 시론에 잘 부합하는 시다. ‘망할 놈의 시‘.

용기도 없고 사랑도 없고 기쁨도 없다
눈도 없고 코도 없다
밑빠진 나날 입도 없다 입도 없다
아아 사랑했던 너의 얼굴도 없고 기차도 없고 다리도 없고
건너야 할 다리도 없고 오늘도 없다
오늘도 없는 것들을 위하여 시를 쓴다
시를 어떻게 쓰나
망할 놈의 시를
쓸 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없는 얼굴이 나를 감싸면 없는 해가 생기고 없는 풀이 생기고 없는 시가 생길 테니까
없는 내가 마침내 없는 기차를 타고 없는 너를 찾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걸 믿고 살아온 게 말짱 애들 장난 같고
그런 걸 믿고 살아온 게
망할 놈의 시
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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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분야에서 ‘이주의 발견‘은 데버러 러츠의 <브론테 자매 평전>(뮤진트리)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영문학사에서 제인 오스틴의 바톤을 이어받는 여성작가가 브론테 자매이고 이들어 대표작 <제인 에어>과 <폭풍의 언덕>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영소설 군에 속한다. 당연히 우리에게도 친숙하지만 소위 본격적인 평전은 그간에 소개된 적이 없었다(연구서야 좀 있지만).

˝빅토리아 시대 문학 연구가인 데버러 러츠가 전세계에 흩어져있는 브론테 가 관련 자료와 유품 들을 연구하여 쓴 이 책은 자매들과 일상을 함께한 아홉 개의 사물을 통해 그들의 삶과 문학을 새롭게 분석한 흔치 않은 평전이다.˝

몇년전 19세기 영소설을 강의할 때 참조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가 재번역돼 나온다면 다시 진행해보려 한다) 아무튼 나 같은 문학 가이드뿐 아니라 브론테 자매의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새해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셀프 선물이다...

아래 사진은 1979년작 영화 <브론테 자매>에서의 세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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