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예고된 대로(http://blog.aladin.co.kr/mramor/2234968) '체호프의 가을'이 시작되었다. 이번 가을에 찾아온 모든 공연을 보지는 못하지만 한두 편 정도는 관람할 수 있을 듯하다. 참고가 될 만한 소개 기사들을 한번 더 스크랩해놓는다.

뉴시스(08. 09. 15) 가을 한국연극을 감싸는 체호프 향기

러시아의 소설가 겸 극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가 가을의 한국에서 부활하고 있다. 일상의 소소한 해프닝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나약하고 추악한 본성을 가차없이 까발리는 것으로 유명한 체호프다. 인간의 보편적 감정인 희로애락을 담은 작품들로 시대와 배경을 초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문호다. 러시아 공연팀의 ‘바냐 아저씨’와 ‘세 자매’, ‘바냐 아저씨’를 아르헨티나 식으로 해석한 ‘비련의 여인을 바라보는 스파이’, 체호프의 작품은 아니지만 부인인 배우 올가 크니페르의 이야기를 담은 칠레 연극 ‘체호프의 네바’, 그리고 한국의 ‘벚꽃 동산’ 등이 일제히 무대에 오른다.

‘바냐 아저씨’의 바냐는 러시아 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 중 하나다. 주인공 바냐는 죽은 여동생을 위해 그녀의 남편과 딸을 돌보다 매부가 속물임을 알고는 실망과 허탈에 빠진다. 이 고뇌는 매부의 후처인 엘레나를 향한 사모의 정이 싹트면서 한층 심각해진다. 저택을 배경으로 우둔한 인간을 풍자한다. 10월 3~5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02-760-4877



‘비련의 여인을 바라보는 스파이’ 는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채 무기력한 일상을 살아가는 ‘바냐 아저씨’의 인물들을 아르헨티나의 조상으로 해석했다. 유럽을 견디지 못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왔다는 것이다. 이들의 의문, 즉 ‘과연 아무런 희망도 없는 오늘을 견뎌내면 내일 우리의 후손들은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는 ‘바냐 아저씨’의 고민과 일맥상통한다. 26~28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02-760-4877



‘체호프의 네바’는 러시아 배우 겸 체호프의 부인인 올가 크니페르의 이야기다. 러시아 최고의 여배우로 인기를 누렸지만 남편의 죽음을 옆에서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있는 올가다. 그녀의 친구 마샤, 알레코 등이 러시아 네바강이 흐르는 도시를 바라보며 연극의 아름다움을 논한다. 18~20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볼 수 있다. 02-760-4877

◇거창한 배경이 아닌 일상에서의 인간 본질을 논한다. 그러면서도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놓지 않는 연극이 ‘벚꽃동산’ 이다. 희극적인 캐릭터들을 통해 부조리한 삶의 비극성을 보여준다. 남편과 자식을 잃고 프랑스 파리로 돌아온 라네프스카야 부인에게 남은 것은 곧 경매에 넘어갈 벚꽃동산 뿐이다. 주위에서는 동산의 벚나무들을 잘라 별장지로 조성하라고 설득하지만 여인은 부유한 시절의 습관에 젖어 살 궁리 따위는 하지 않는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돈을 흥청망청 쓴다. 결국 삶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18일부터 10월12일까지 서울남산 드라마센터 무대에 오른다. 02-889-3561



‘세자매’는 ‘갈매기’, ‘바냐 아저씨’, ‘벚꽃 동산’과 함께 체호프의 4대 희곡 가운데 하나다. 작은 마을의 세 자매와 남자 형제들은 늘 대도시인 모스크바를 동경한다. 그러나 꿈은 실현되지 않는다. 언제나 바람으로만 그칠 뿐이다. 현실을 벗어나고 싶지만 선뜻 행동으로 옮기는 못하는 지극히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이다. 꿈과 현실의 충돌을 담담한 필체, 서정적인 러시아 언어와 노래, 속담 등으로 그려냈다. 25~27일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에서 공연된다. 02-2280-4297 (이민정기자)

뉴스컬쳐(08. 09. 12) 올 가을, 체호프 제대로 알고보자

‘미묘하다’ , ‘모호하다’, ‘비밀스럽다’, ‘수수께끼 같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름아닌 러시아의 대문호 체호프의 희곡 앞에 따라오는 수식어들이다. 미묘하고 모호한, 그래서 비밀스런 수수께끼 같은 체호프의 작품들이 올 가을, 극장마다 풍년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후대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작인 만큼, 체호프의 희곡은 늘 공연되어 왔다. 그러나 올 가을 확실히 남다르다. 체홉의 4대 장막전이라 일컫는 ‘바냐아저씨’, ‘벚꽃동산’, ‘갈매기’, ‘세자매’가 모두 공연된다. 그런가 하면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국외 유명 단체의 공연, 원작의 완벽 재현 또는 전혀 다른 해석으로 만나보는 다채로운 체호프의 공연들이 줄줄이 준비되어 있다. 체호프, 우린 왜 그의 작품에 매료 될 수 밖에 없는가. 올 가을, 체호프를 제대로 알고 만나자.

체호프 없이 현대 희곡을 논하지 말라

올 가을, 체호프의 작품을 앞다투어 선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희비극이 공존하는 쓸쓸한 러시아의 정서가 가을과 잘 어울려서도 그러하지만, 올해는 체호프의 탄생 150주년을 2년 앞두고 있는 해이기도 하다. 1860년 1월 17일 러시아 남부 작은 도시 따간로그에서 오늘의 대문호 체호프가 탄생했다. 그는 이후 45년의 짧은 생애 동안 10편의 단막극과 7편의 장막극 등 모두 17편의 희곡을 남긴, 20세기를 대표하는 극작가가 되었다.

이 뛰어난 극작가는 본래 모스크바 의과 대학을 졸업한 의사였다. 대학 진학 후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단편 소설을 오락 잡지에 기고하면서 문학과 연을 맺은 그의 전기에는 풍자와 애수가 가득한 단편들이 가득하다. 작가로서의 자각을 새로이 하며 탄생된 첫 희곡은 ‘이바노프’로 그 이후 1895년을 기점으로 그를 대표하는 장막극 갈매기, 바냐아저씨 등이 집필되었다. 객관적인 문학론을 중심으로 한 그의 작품은 입센과 더불어 사실주의 연극의 문을 열었다.



뿐만 아니라 모스끄바 예술극장을 대표하는 간판 작품으로 선구적인 근대 연극의 무대화에 성공하였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연출가이자 배우인 스타니슬랍스키는 그의 저서 ‘예술에서 나의 삶’을 통해 체호프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갈매기]와 [바냐아저씨]의 성공 이후에 극단(모스끄바 예술극장)은 이제 체호프의 새 희곡 없이는 불가능하였다. 이렇게 우리 운명은 그때부터 안톤 빠블로비치 체호프의 손에 놓여 있었다. 희곡이 있으면 공연 시즌이 있고, 희곡이 없으면 극단은 고유의 향기를 잃게 되었다.”라고.

자연스런 일상, 그 속의 숨은 그림 찾기

체호프의 희곡에는 희망과 고통으로 얼룩진 일상이 다양하게 변주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은 행복을 열망하며 보람 있고 충만한 삶을 원하지만 현실에 부딪히며 좌절하고 타협하는 것이 체홉 등장 인물의 운명이다. 10대부터 60대까지 각 세대를 대표하는 등장인물들이 그 세대만의 희망과 고통을 토로한다. 저 마다의 이유로 하나같이 가슴 시리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 사람들은 내면적이다. 보통의 연극에서처럼 등장인물들이 드러내놓고 다투거나 충돌하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각자의 ‘눈’으로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부대끼며, 그를 극복하려는 심리적인 내면의 갈등이 작품을 꽉 채운다.

그러다 보니 극은 눈에 보이는 갈등이나 클라이맥스 없이 잔잔히 흘러간다. 체호프의 작품을 보다 보면 일상에서 숨은 그림을 찾고 있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한 귀로 흘리기 쉽상이다. 상세한 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체호프의 희곡에는 명쾌한 주제도, 플롯도, 행동도 없다. 그렇지만 체호프의 희곡에는 우리 일상의 숨은 면면이 디테일하면서도 복합적으로 제시된다.

나와 비슷한, 내 주변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거북스럽지 않다. 편안하다. 수면 아래에서 요동치는 삶의 ‘조용한 꺼리’들을 무대 위로 직접 끌어올려 눈으로 확인하는 쾌감이 남다르다. 시∙공간을 초월해도 통용되는 삶의 본질에 대한 주제와, 작가 특유의 객관적이고 담담한 시각은 자유로운 감상을 허락한다. 이러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올 가을 체호프에게 제대로 빠져들게 한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통해 만나보는 체호프스페셜

체호프의 다양한 작품들이 공연되는 올 가을, 이 축제에 가면 체호프를 제대로 만날 수 있다. 뛰어난 국내외 현대예술작품을 소개하는 제 8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바로 그다. 올해 축제에는 연극 14작품 중 4작품이 체호프의 작품으로, 체호프 스페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에서 온 전통의 체호프의 작품을 만나고 싶다면 러시아 타바코프 극단의 '바냐 아저씨'(10.3-5,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를 추천한다. 이 작품은 리투아니아 출신의 젊은 연출가 민다우가스 카르바우스키스와 만든 작품으로 2005년 러시아 황금마스크 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여배우상을 받았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러시아 격동기를 배경으로 도시인의 세속적인 욕망과 시골사람들의 순박함을 대비시키며 원작과 밀착된 공연을 선보인다.

러시아 연출가인 에프로스는 “저마다 자신만의 체호프가 있다”고 했다. 여기 아르헨티나의 시선이 담긴 새로운 체호프의 ‘바냐아저씨’가 온다. ‘비련의 여인을 바라보는 스파이’ (9.26~28,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가 바로 그것이다. 최소한의 무대에서 연출가 다니엘 베로네세는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채 무기력한 일상을 살아가는 원작의 인물들을 유럽을 견디지 못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아르헨티나 조상의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한국 연출, 한국배우의 체호프가 만나고 싶다면 극단 수의 ‘벚꽃동산’ (9.12~10.12, 남산드라마센터)을 보자. 연출가 구태환이 ‘비계덩어리’ ‘나생문’에 이어 선보이는 ‘2008 고전시리즈’로 가감 없이 원전에 충실한 있는 그대로의 체호프를 선보인다. 인상 깊은 마리아에서 귀부인 라네프스까야로 변신하는 강효성과 가수에서 연기자로 변신한 데니안의 변신도 주목할만하다.

그런가 하면 체호프가 직접 집필한 작품은 아니지만, 체호프의 부인 여배우 올가 크니페르의 삶을 다룬 작품도 무대에 오른다. 칠레 블랑꼬극단이 선보일 '체홉의 네바'(9.19-9.20,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가 그것이다. 연출가 기예르모 깔데런이 실제 인물인 올가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허구를 가미해 쓴 이 작품은, 올가와 그의 친구들이 논하는 연극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1905년 네바 강을 피로 물들인 학살 사건 '피의 일요일'과 맞물려 전개된다.

바야흐로 가을이 오면 조금은 고독해지고, 조금은 허무해지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2008년 상반기 일상의 비극과 희극 사이를 오가며 그저 바쁘게만 지냈다면, 올 가을 체홉을 만나보자. 지극히 평범한 나와 같은 인물들이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숨은 그림들을 제시한다. 조금은 느긋하게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조금은 진지하게 그들의 고민과 어깨를 나란히 해보자. 그렇게 숨은그림에 동그라미가 늘어갈 때 쯤이면, 올 가을 현대 희곡의 진수도 맛보면서 일상의 발견으로 내면이 그득해지는 풍성한 가을이 될 수 있다.(김미소기자)

08. 09. 22.

P.S. 체호프와 그의 드라마에 관한 페이퍼로는 '안톤 체호프를 찾아서'(http://blog.aladin.co.kr/mramor/914178), '레프 도진과 체호프'(http://blog.aladin.co.kr/mramor/834340) 등을 참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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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9-22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체호프의 6호실을 연극이나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희곡은 아니지만 내용이 좋더라구요.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도 이 소설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나구요.

로쟈 2008-09-23 00:10   좋아요 0 | URL
러시아에서는 TV용으로라도 만들어졌을 법한데요...

람혼 2008-09-22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굉장히 관극을 고대하고 있는 연극들인데, 과연 정말로 갈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행운이 따른다면 극장에서 로쟈님을 우연히 만날 기회를 얻을 수도 있겠는데요? ^^

로쟈 2008-09-23 00:10   좋아요 0 | URL
네, 어쩌면...^^
 

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 연구로 유명한 문학자이자 철학자 미하일 엡슈테인 교수가 지난달 세계철학대회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엡슈테인'은 가까이 있는 책장에도 그의 책들이 여러 권 꽂혀 있을 만큼 러시아문학도에게는 친숙한 이름이다(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러시아문학자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는 몇 사람에 속한다. 홈피는 http://www.emory.edu/INTELNET/Index.html%20). 발표까지 들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뻔했다. 교수신문에 인터뷰기사가 올라왔기에 스크랩해놓는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6683).

교수신문(08. 08. 25) 테크네의 귀환

<교수신문>은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5일까지 서울대에서 개최된 제22회 세계철학대회에 참관한 모하일(*미하일) 엡슈테인 교수와 조준래 성균관대 선임연구원(러시아문학)의 대담을 마련했다. 대담은 2008년 8월 7일 서울 서울역사박물관 내에서 이뤄졌다.

조준래: 얼마 전 폐막한 세계철학자대회의 의의와 성과에 대해 평가해달라.

엡슈테인: 첫 번째 의의라면, 통산 22회째 되는 이번 대회를 통해 세계철학자대회가 100년 이상의 명맥을 무사히 이었다는 데 있겠다(웃음). 둘째로, 형이상학적 측면에서 철학은 고독한 학문인 동시에, 본원적으로 소통과 대화를 요구하는 학문인데, 이런 철학의 특성이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비롯해 본 대회의 잘 조직된 운영방식과 조화를 이뤘단 점을 들 수 있다. 단점이라고 한다면, 프로그램과 달리 베르나르 앙리 레비, 주디스 버틀러, 장 뤼크 마리옹 등 소위 거물급 철학자들이 대거 불참한 점을 들 수 있다. 다양한 사정이 있겠지만 어떤 경우든지 동료 철학자들의 큰 행사를 경시하는 것이 좋은 모습이 아님은 분명하다.
 
조준래: 이번 대회부터 유가, 도가, 불교 철학이 정식분과로 채택됐다. 한국 철학자의 발표에 대한 평을 해준다면. 또 세계철학에서 동양철학이 담당하는 역할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엡슈테인: 20년 전부터 노장 사상 및 도가와 관련된 서적을 접한 뒤 꾸준히 연구하면서  현대 철학에서 서구 철학이 놓친 사상적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동양 철학이 계속 감당할 것이란 생각이다. 지금까지 서구 철학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실재와 비실재의 관계, 비실재의 생성적 힘에 대해 동양 철학은 직관적인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카오스이론, 복잡성이론, 시너제틱스 등 현대 과학에 의해 그 주장의 타당성이 꾸준히 입증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세계 철학계에서 동북아철학을 위시한 동양 철학의 목소리는 계속 커질 것이란 생각이다. 

조준래: 오늘날 세계 철학계의 주요 화두라면.

엡슈테인: 첫째는 2001년 9월 11일 사태를 계기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기가 종언을 고하고 포스트모던 시대의 다음 단계인 새로운 문화적 지층이 태동했다는 점이다. 스티븐 호킹과 에드워드 윌슨처럼 오늘날을 ‘포스트(post-)’ 대신 ‘시작’을 뜻하는 ‘프로토(proto-)’의 시기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시뮬라크르의 권력에서 벗어난 미래와 현실은 예측불가능하고 비가역적이고 새롭고 진지한 모습으로 다시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지식, 문화, 사회의 영역에서 새로이 대두하고 있는, 미궁과도 같은 ‘프로토’의 현상을 진단하는 데에 철학은 경주해야 한다. 둘째는 새 시대의 도래와 관련된 과학기술문명의 역할이다. 캐서린 헤일즈가 말한 ‘포스트휴먼(Posthuman)’은 사실 ‘프로토휴먼’을 의미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몸을 변형시키고 인간으로 하여금 신체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하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성의 제거가 아니라 인간성의 확장을 가져올 것이다. 철학 역시 과학에 대한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관점을 통해 이런 미래 문화의 발전을 논해야 된다.

조준래: 그렇다면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도덕성 역시 제고한다고 볼 수 있을까.

엡슈테인: 얼핏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과학과 기술, 통신수단의 발전은 인간의 도덕을 오히려 향상시킨다고 믿는다. 그것을 ‘테크노모랄’(techno-morality)이라고 부르고 싶다. 기술 문명의 발전으로 인간 간의 거리는 대폭 축소됐다. 이로 인해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와 일방적인 패배는 불가능해졌다. 핵무기만 생각해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제 군사적인 위협은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 어느 일방이 상대방과 동일한 행동준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공멸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극히 이기적인 욕심에서 생겨난 테크놀로지가 타인의 입장을 보다 더 많이 고려하도록 우리를 인도했다는 데에 현대 문명의 역설이 있다.        

조준래: 이번 세계철학자 대회에서 발표한 주제도 앞서 말한 오늘날의 철학적 화두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엡슈테인: 윤리학 분과에서 ‘복합윤리학’을 뜻하는 ‘스테레오에틱스(stereoethics)’라는 주제를 발표했다. 인간의 행위를 이루는 선한 가치 역시 상황에 따라 서로 충돌하고 서로 모순되는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일하게 올바른 도덕적 선택을 단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시공간의 변화에 따른 다양한 도덕적 관점의 공존이 불가피함을 인정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의 시력이 두 눈에 서로 다르게 비친 피사체의 결합을 통해 입체적인 형상을 얻듯이 윤리학 또한 복합적인 행동준칙에 의해 보강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즉, 나와 타자의 유사성과 공통적 인간성 뿐 아니라 서로 환원될 수 없는 나와 타자의 차이를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 현대 윤리학의 과제다. 훌륭한 행위란, 나의 최상의 능력이 타인의 최고의 필요에 부응할 수 있는 경우의 행위, 나를 포함해 모두가 행하기를 원하고 또 그래야 하지만, 나 외에는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행위를 가리킨다. 

조준래: 이런 ‘복합 윤리학’은 당신의 표현대로 ‘프로토-포스트모던’의 시대적 요청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새로운 문화 현상인 ‘트랜스컬쳐(trans-culture)’와도 무관하지 않은 듯 한데.

엡슈테인: ‘트랜스-’(trans)라는 라틴어 접두사는 무엇을 넘어서거나 초월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트랜스컬쳐’란 말은 민족, 젠더, 직업 등에 의해 다양하게 구획된 문화의 경계선을 가로질러 발전하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를 말한다. 그것은 기존 문화에 대한 낯설게 하기와 외재성의 원칙, ‘자신의’ , ‘본래적인’ 문화에서 벗어나기 등을 전제로 구성된다. 트랜스컬쳐는 한 문화 내의 의미적, 기호적 틈새,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을 드러내며, 여러 문화의 교차점과 간극 속에서 새로운 상징적 환경을 창조한다. 트랜스컬쳐는 문화적 상대주의와 고립성을 전제하는 멀티컬쳐(multi-culture)와는 다른 개념이다. 자기를 초극해 자기 밖의 입장에서 자기를 바라보고 타자와 소통하는 트랜스컬쳐의 관점만이 이념, 종교, 민족 다원화의 시대에 궁극적인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

조준래: 오늘날 한국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일상화돼버린 지 오래다. 상투적인 질문이지만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극복방안’을 들어본다면.

엡슈테인: 인문학, 특히 순수인문학의 위기가 초래된 일차적 원인은 현실과의 끈을 잃어버렸다는 데에 있다.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순수 인문학이든 모두 연구대상과 실용성의 두 측면을 갖고 있다. 여기서 실용성이란 학문이 연구대상과 접촉해 만들어내는 일종의 상부구조와 같은 것인데(예를 들면 자연과학이 자신의 연구대상인 자연과 접촉하여 빚어낸 상부구조인 테크놀로지, 사회과학이 자신의 연구대상인 사회와 접촉해빚어낸 상부구조인 정책이 그렇다), 다만 순수인문학은 이들과 달리 어떤 상부구조, 어떤 실용적 측면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핸디캡으로 안고 있다. 이제 실질적인 대안으로 첫째, 인문학은 자신의 연구대상인 언어, 문학, 예술 등 문화 전반을 변형시켜야 한다. 이로써 생겨나는 새로운 학문을 저는 또 다시 ‘트랜스인문학’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가령 ‘트랜스언어학’은 인공언어를 생산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자연언어의 수준을 제고하는 학문이 될 것이며, ‘트랜스미학’은 시학과 미학을 통하여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면서 예술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학문이 될 것이다. 둘째, 자연과학에서 전용돼 왔으나 본래 인문학의 용어였던 ‘테크네(techne, 예술, 기술)’를 인문학에로 되돌려 기존 인문학의 성과를 반성, 재가공하는 단계로 옮겨 가야한다. 인문학은 그 개념 자체에 내포돼 있듯이 과학과 예술의 종합적 형태로서 발전해 나갈 것이다. 한마디로 인문학의 활로는 문화를 변형시키는 예술, 즉 ‘테크노-휴머니티’(techno-humanities)로서 인문학이 거듭날 때에 발견될 것이다.

미하일 나우모비치 엡슈테인(Mikhail Naumovich EpshteIn)

전공분야 러시아 출신의 철학자, 문예학자. 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 현상을 최초로 연구. 미국과 서유럽의 슬라브학을 비롯, 러시아학계 전반에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개념을 최초 도입.

주요 저서  『잠재성의 철학』(2001), 『父性의 의미』(2003), 『여백의 기호: 인문학의 미래에 관하여』(2004), 『러시아 문학의 포스트모던』(2005), 『새로운 종파: 1970년~1980년대 러시아의 종교적, 철학적 지적 경향』(1993, 2005) 등.

주요 논문 「새로움의 역설: 19~20세기의 문학 발전에 대하여」(1988),「자연, 세계, 우주의 은신처: 러시아 운문에 나타난 풍경 이미지 체계」(1990),「전체주의 사유에서 상대주의적 모델: 소비에트 이데올로기 언어 연구」(1991), 「문화의 경계선: 러시아와 미국과 소련」(1995)외 다수.

08. 08. 27.

P.S. 엡슈테인의 책으로 알라딘에서도 검색이 되는 건 <새로운 황야에서의 외침>(2002)이 유일하다. 하지만 보다 유명한 책은 <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1999) 같은 연구서이며, 그의 이름을 알린 '출세작'은 <미래 이후(After the future)>(1995)이다(*<미래 이후의 미래>(한울, 2009)로 출간됐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역설과 현대 러시아문화'가 책의 부제. 구글에서 찾은 아래 이미지는 뜻밖에도 국내 중고서점에 나와 있는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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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8-27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디스 버틀러의 불참은 이미 대회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잔뜩 기대감을 품은 채 장-뤽 마리옹의 육성을 듣고 그의 모습을 보러 갔다가 허탕만 치고 돌아온 저 같은 사람에게는, 엡슈타인이 말하는 저ㅡ슬쩍 냉소가 섞인ㅡ대회 의의에 대한 평가가 더욱 가슴에 다가옵니다. 대회에 참석한 동료 철학자들에게는 물론이고 저 같은 '일반 청중'에게도 실로 큰 결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개인적으로는 뷔넨베르제와 회슬레의 참가 정도가 그래도 철학자 대회의 '명맥'을 살려준 게 아닌가 하는 느낌입니다. 저로서는 '세계 철학'이 봉착한 어떤 '피곤함'과 '노회함'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음도 지나가는 길에 첨언하고 싶고요(그 피곤함과 노회함이 '포스트'를 '프로토'로 치환하는 개념적 작업을 통해 극복될 수 있을지도 살짝 의문입니다^^).

로쟈 2008-08-28 08:26   좋아요 0 | URL
네, 약간 김이 빠진 편이죠. 그만큼 언론의 관심도 줄어든 듯하고...

푸른괭이 2008-08-27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거덕, After the Future의 저자를 볼 기회를 놓치다니...! 지난 여름 최대의 실수..-_-;; 그 동안 로쟈님은 뭐하셨어요...? ㅠ.ㅠ

로쟈 2008-08-28 08:26   좋아요 0 | URL
알다시피 바빴습니다.^^;

2008-08-28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8-28 0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털세곰 2008-08-29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관악구를 떠나자마자 이런 빅이벤트가 벌어지고 거물이 오고갔을 줄이야...

로쟈 2008-08-30 21:25   좋아요 0 | URL
러시아 학자들이 200여명이나 들렀었다는군요...
 

원고를 쓰기 전에 간식을 먹다가, 문득 며칠전 옮겨놓으려고 했던 기사가 생각났다. 올 하반기에 개통된다는 아시아횡단철도에 관한 것이다.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제치고 세계최장의 노선이 된다고 한다. 겸사겸사 시베리아횡단철도와 관련된 최근기사도 찾아서 옮겨놓는다. 주한 러시아대사와의 인터뷰기사다(뒤늦게 안 것이지만 시베리아횡단철도는 이달 7-10일에 EBS의 '세계테마기행'에서 특집으로 다루어졌다). 너무 늙기 전에 한번은 타보고 싶군...

세계일보(08. 04. 21) 런던∼다카 ‘鐵의 실크로드’ 열린다

영국의 런던과 방글라데시의 다카까지 약 1만1300㎞를 잇는 아시아횡단철도(TAR)가 올해 하반기에 개통된다. 20일 영국 일간 타임스에 따르면 아시아횡단철도는 런던에서 출발해 벨기에의 브뤼셀, 터키의 이스탄불, 이란의 테헤란, 인도의 라호르 및 델리를 거쳐 다카까지 23일 동안 달리게 된다. 이는 약 9300㎞에 달하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보다 2000㎞가량 더 길다.

유엔의 후원 아래 진행되는 아시아횡단철도 연결 사업은 1965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발발 이후 끊어졌던 인도 콜카타∼다카 구간이 이달 초 40여년 만에 재개통되면서 노선이 크게 연장됐다. 다음달에는 파키스탄과 이란이 처음으로 자국 철도 노선과 유럽 철도의 연결에 합의할 예정이어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장의 철도 노선을 구축하게 됐다. 유엔 관계자는 “아시아횡단철도는 남아시아·중동 지역 국가는 물론, 중앙아시아의 옛 소련 국가들에까지 유럽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무역·여행 노선을 열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횡단철도 사업이 최종 완성되면 런던에서 출발해 남아시아를 거쳐 중국 남부 윈난성과 싱가포르에 이르기까지 모든 구간을 철도를 이용해 여행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놓인 터키의 보스포루스 해협은 배를 타고 건너야 하지만, 이 구간도 해저터널을 이용해 통과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를 가르는 도버해협은 이미 해저터널로 연결돼 있다. 다카에서 최종 목적지인 윈난성이나 싱가포르까지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미얀마 횡단 구간이 마지막 장벽으로 남아 있다.(안석호 기자)

동아일보(08. 04. 04) [4강 대사에게 듣는다]이바센초프 주한 러 대사

《“우리는 육지와 바다에 이어 우주에서도 협력하게 됐다. 한국이 러시아를 파트너로 선택한 데 대해서도 만족한다.” 글레프 이바셴초프 주한 러시아대사는 며칠 후면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이 될 이소연 씨가 러시아에서 훈련을 받은 데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이바셴초프 대사는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정동 러시아대사관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양국이 같이할 수 있는 공동사업의 아주 긴 목록을 갖고 있다”며 한국 정부와 기업이 러시아에 적극 투자해 줄 것을 기대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 정부가 출범한 데 이어 5월에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신임 러시아 대통령이 취임한다. 한-러 관계는 어떻게 변할 것 같은가.

“현재 ‘상호 신뢰하는 포괄적인 동반자 관계’로까지 높아져 있는 양국 관계가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러시아에서 이 대통령은 1990년 한―러 수교 이전부터 러시아를 방문해 양국 간 경제 관계를 처음 시작한 기업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메드베데프 차기 대통령의 동북아 정책에 대한 예상은….

러시아는 동북아 지역에서 더 적극적인 정책을 펴 나갈 것이다. 대내외 관심사가 이 지역처럼 긴밀하게 연결된 곳도 없다. 방대한 천연자원을 갖고 있는 극동과 동시베리아 지역의 성공적인 개발 여부에 러시아의 미래가 달려 있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지역을 개발할 기회가 없었지만 이제는 가능성이 생겼다. 지역 개발을 위해선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된 정세가 필수적이다. 특히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이 지역의 대규모 자원개발 프로젝트에 이웃나라를 동참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국경지역에서 핵이나 미사일 실험, 군사 위협 행위가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침이고 메드베데프 정부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러시아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을 어떻게 보고 있나.

“러시아는 지금까지 남북한 모두를 이해하는 관계를 유지하면서 통일로 가는 것을 지지해 왔다. 남북한이 서로에 대해 어떤 정책을 펼칠지는 독자적으로 결정할 일이고, 우리는 그 과정에까지 ‘충고’할 의사가 없다. 다만 한국의 대북정책이 남북한 간에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풀기 위한 방향으로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러시아는 6자회담의 역할에 만족하는가.

“러시아는 앞으로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한반도의 비핵화는 러시아로서는 아주 중요하다. 6자회담은 공동 작업이고 과정이기 때문에 특정 국가가 자기 역할을 부각시키는 것은 건설적이지 않다. 6개국이 모두 한 팀이고, 결정은 참가국들의 컨센서스에 의해 내려져야 한다.”

―러시아는 남북한과의 삼각 경제 협력에 관심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3자의 장기적인 공동협력 사업은 남북한의 상호 신뢰를 강화해 한반도의 평화 정착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논의 중인 세 가지 사업이 있다. 먼저,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의 연결이다. 이 사업이 실현되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유럽으로 가는 새로운 수송로가 생긴다. 두 번째는 동시베리아에서 북한을 통해 한국으로 가는 가스관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마지막으로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한반도로 전력을 공급하는 사업이 있다. 현재 러시아는 중국에 전기를 수출하고 있다.”

―아직도 한국과 러시아 간에 사람과 물자, 자본의 교류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해마다 각각 6만여 명의 러시아인과 한국인이 상대국을 방문하고, 양국 간 교역 규모는 100억 달러에서 지난해 150억 달러로 늘어났다. 물론 인적 교류와 물류 분야에서 더 개선할 여지가 있다. 앞으로 교류가 더 활성화되기를 원하지만 1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커진 것도 사실이다.”

―양국 간 교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양국 국민이 더 접촉해 언어와 문화, 생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수십 년 동안 한국과 러시아는 관계가 단절된 상태였다. 양국 수교 후 지난 17년은 이런 단절에서 오는 긴장감과 감정을 극복하는 시기였다. 이런 ‘공백’을 1, 2년 만에 메우기는 힘들다.”

―이 대통령이 곧 미국과 일본을 방문할 예정인데 러시아 방문 시기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취임 축하 메시지를 전하면서 러시아로 초청했다. 올해 이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이 이뤄지길 기대하지만 현재로서는 정확한 방문 일정을 얘기하기 어렵다. 러시아에서는 5월 7일 새 대통령이 취임한다. 그 후에야 이 대통령의 구체적인 방러 일정이 확정될 것이다.”

―한-러 정상회담을 하게 되면 주요 의제는 무엇이 될 것으로 예상하나.

“우리는 양국이 같이할 수 있는 공동사업의 아주 긴 목록을 갖고 있다. 가스 석유 우라늄 석탄 등의 자원 개발에 대한 한국의 참여와 한국 기업의 투자를 기대한다. 또 우리는 자원뿐 아니라 첨단기술을 이용해 만든 완제품을 한국에 수출하기를 원한다. 물론 러시아는 지금도 한국에 천연자원만 수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운항 중인 민간 헬기의 40%가 러시아제다. 한국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는 핵연료의 3분의 1 이상이 역시 러시아산이다. 우리는 우주기술과 핵의 평화적인 이용을 위한 협력 사업에도 관심이 많다. 상호 신뢰 관계의 수준을 보여 줄 군사협력도 희망한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며칠 후 러시아의 도움으로 우주선에 탑승할 예정이다.

우리는 이제 육지와 바다뿐 아니라 우주에서도 한국과 협력하게 됐다. 러시아가 한국의 첫 우주인을 육성해 우주에 보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한국이 이번 사업의 파트너로 러시아를 선택한 것에도 만족한다. 이런 사업은 아주 민감한 문제인데, 협력을 하게 된 것은 양국 간의 높은 신뢰 수준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올해에는 양국이 공동으로 개발한 발사체(로켓)인 KSLV-1의 발사도 예정돼 있다. 우리는 이 분야에서 또 다른 협력사업을 기대한다.” (대담=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정리=김기현 기자)



▼틈만 나면 박물관 순례, 부인이 직접 김치 담가▼ 

글레프 이바셴초프 대사는 본국에서나 서울 외교가에서 ‘전형적인 외교관’ ‘모범생’으로 통한다. 한국의 각계 인사들과 폭넓게 교유하면서도 매사에 빈틈이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 외교부 내의 대표적 인도 전문가인 그는 1997∼2001년 미얀마 대사로 있을 때 한국 대사와 친하게 지내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항공 엔지니어 출신인 부인 이리나 여사가 한국 대사 부인에게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워와 집안에서 선보인 후 이바셴초프 대사는 열렬한 김치 애호가가 됐다.

대사로 내정된 후 한국 영화를 여러 편 구해 볼 정도로 문화에 관심이 많다. 지금도 틈날 때마다 서울시내 구석구석과 박물관을 순례하며 한국 문화와 생활을 배우려고 애쓰고 있다. 아직은 서툴지만 한국어도 배우는 중. “세계 3대 박물관인 에르미타시 등 러시아의 대형 박물관에 비해 한국의 박물관은 너무 작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국립중앙박물관과 전쟁기념관처럼 짜임새 있는 한국 박물관들은 곧 규모도 커질 것”이라며 웃었다.

취미는 수영과 테니스. 그래선지 스포츠 외교에도 적극적이다. 격투기 황제 에밀리아넨코 표도르 때문에 유명해진 러시아의 고유 격투기 삼보가 최근 한국에서 널리 보급되고 있는 데도 그의 역할이 컸다. 이바셴초프 대사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및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차기 대통령과 동향(상트페테르부르크)인 데다 러시아 최대의 외교 인맥인 모스크바국제관계대 출신으로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과도 가까워 ‘성골’이라는 말도 나온다.(김기현 기자)

08. 04. 24.

P.S. 시베리아횡단철도에 관한 책은 기행문 형식으로 여러 권이 출간돼 있지만, 가장 충실한 건 '러시아 전문가 8인의 횡단보고' <시베리아 기행>(동아일보사, 2001)으로 보인다. 이미 절판된 책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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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4-24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아가도 될까요? 저도 철도를 좋아하는지라^^ 재미있게 읽었어요.

로쟈 2008-04-24 23:24   좋아요 0 | URL
오픈된 자료인데요 뭐...

노이에자이트 2008-04-24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아시아 횡단철도라는 게 개통되는군요.아...그러고 보니 오리엔트 특급은 이스탄불에서 시작하니까 바다를 건널 필요가 없었군요.음...보스포러스 해협에 해저터널을...
현해탄에 해저터널을 뚫으면 일본에서 남북한 거쳐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 이어지겠군요.

로쟈 2008-04-25 12:27   좋아요 0 | URL
현해탄 해저터널까지는 아니어도 그냥 서울에서 모스크바까지 철도가 개통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드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4-27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바로프스크는 변두리에 호랑이가 나온다고 하던데요.연해주에서 살고 싶어요.곰이랑 호랑이랑...

로쟈 2008-04-27 18:38   좋아요 0 | URL
^^
 

이번주 시사IN에 실은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60#). 석영중 교수의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예담, 2008)에 대한 것이다.

시사IN(08. 04. 08) 돈이 필요했지만 돈을 원하진 않았다

‘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장 속물적인 돈 이야기?’ 표지의 문구가 그렇다. 사실 ‘위대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전기나 소설을 몇 권 읽어본 독자라면 ‘도스토예프스키와 돈’이라는 주제가 낯설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입문서로도 제 값을 할 만한 석영중의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예담 펴냄)는 이 주제에 관한 종합 보고서이자 흥미로운 뒷담화이다. 

사실 도스토예프스키의 데뷔작이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부터가 이 ‘잔인한 천재’의 앞날을 예고해주는 듯한데, 우리에게 가장 널리 읽히는 <죄와 벌>은 가난한 대학생 주인공이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는, ‘돈에 죽고, 돈에 또 죽고’ 하는 이야기였다. 또 만년의 걸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호색한 아버지와 불한당 아들 사이의 주된 갈등이 3000루블이란 돈을 놓고 빚어진다. 아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3000루블에 관한, 3000루블에 의한, 3000루블을 토대로 하는 소설”이라고 말해질 정도다.  

그렇다면 이 러시아 작가는 왜 그토록 돈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가? 저자가 작가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여주는 것은 ‘낭비가’의 초상이다. 빈민구제 병원의 의사인 아버지가 근면과 성실을 삶의 보증으로 삼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간이었다면 아들 도스토예프스키는 책읽기를 좋아한 조숙한 소년이면서 동시에 부잣집 동급생들의 눈에 혹여라도 가난하게 보일까 봐 ‘과시용 소비’를 일삼은 미숙한 속물이었다. 공병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그는 끊임없이 돈을 요구하는 내용의 편지를 ‘울먹이는 문체’에 담아서 아버지에게 보내며 그렇게 받은 돈은 들어오기가 무섭게 다 써버렸다. 한술 더 떠서 앞으로 들어올 돈을 상상해가며 당겨 썼다. 이런 식의 턱없는 지출 때문에 그는 항상 쪼들렸고 언제나 주변 사람에게 돈을 꾸어달라고 간청해야 했다.

신문·잡지 열심히 읽어 ‘팔리는 소설’ 쓰다

그런 낭비벽의 소유자가 작가가 됐다. 자기 기질을 숨겨놓을 방도는 없어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가난한 사람들’이고 ‘모욕당한 사람들’이며 ‘돈을 구걸하는 사람들’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 같은 귀족 출신의 동시대 작가와는 창작의 명분이 달랐다. 그는 돈을 위해 썼고 생존을 위해 써야 했다. ‘문학은 돈이 아닐지 모르지만 원고는 확실히 돈’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고 언제나 의식했다. 때문에 그는 ‘팔리는’ 소설을 쓰고 싶어했고 써야 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가? 신문을 읽었다. 그는 ‘광적인 신문 애독가’로서 당대의 신문과 잡지를 게걸스럽게 읽었다. 대작 장편소설의 아이디어를 대부분 신문의 사회면에서 얻었을 정도다. 그런 탓에 살인과 자살 같은 자극적인 사건과 통속적인 요소가 그의 작품에 많이 포함돼 있다. 그의 궁여지책이 어떤 의미에서는 활로였던 셈이다.   

평생 돈에 쪼들리면서 돈을 위해 펜을 들기는 했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돈에 모든 걸 걸지는 않았다. <백치>의 여주인공 나스타샤가 구애자금으로 받은 거금 10만 루블을 벽난로 불구덩이에 집어넣는 장면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인물들은 돈보다 우선해 자기가 자존심을 가진 인간임을 보여주기 위해 애쓴다. 저자가 마지막 장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다룬 장의 제목을 ‘돈을 넘어서’라고 붙인 것은 그래서 시사적이다. 저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돈을 잘 이해했고, 돈을 읽었고, 절실히 아주 절실히 돈을 필요로 했지만, 돈을 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오로지 돈을 필요로만 했지, 원하지도 사랑하지도 아끼지도 않았다.’

왜 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사람이란 배가 부르면 배고팠던 시절은 떠올리지 않기 때문이다. <미성년>에 등장하는 한 인물의 말을 빌리면, 인간이란 족속은 ‘자, 이제는 배가 부릅니다. 이번에는 무엇을 해야 하지요?’라고 질문하게 되는 것이다. 돈은 그러한 질문과 맞닥뜨리게 해줄 뿐이지 그 질문에 해답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도스토예프스키와 돈’에 대해 배부르게 읽고 나니 이런 질문이 생겨난다. 이번에는 무엇을 읽어야 하지요?

08. 04. 10.

P.S. 기본적인 소개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돈'(http://blog.aladin.co.kr/mramor/1990550)을 참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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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4-11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작품보다 전기들이 더 재미있더라구요.문제는 전기를 읽으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인간성이 되게 싫어져서 작품을 읽고 싶은 마음이 안나기까지 한다는 겁니다.특히 구제불능의 도박병...

로쟈 2008-04-11 22:23   좋아요 0 | URL
작가들의 전기가 모범생 전기일 수는 없지 않을까요?^^

군자란 2008-04-11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히려 돈에 집착하는 도스도에프스키가 더 좋은것 같습니다. 아마 인간중에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돈에서 자유로울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저는 작년에 츠바이크가 쓴 발자크 평전을 읽으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말이 나온김에 츠바이크의 평전은 정말 일품이라고 생각듭니다.
마치 그시대에 저도 같이 있는 느낌이 들정도 이니까요......

로쟈 2008-04-11 22:24   좋아요 0 | URL
도스토예프스키가 바로 '발자크'과지요. 그를 벤치마킹하고자 했던...


stella.K 2008-04-11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저도 이제부터라도 신문이라도 좀 게걸스럽게 읽어야겠습니다.^^

로쟈 2008-04-11 22:24   좋아요 0 | URL
여차하면 '팔리는' 소설도 쓰시겠는데요.^^

stella.K 2008-04-12 11:02   좋아요 0 | URL
ㅎㅎㅎ 로쟈님! 그게 제 소원인데 가능할지 모르겠어요.ㅜ.ㅜ

로쟈 2008-04-12 11:17   좋아요 0 | URL
빚독촉을 받으면 가능하실지도.^^;

stella.K 2008-04-12 18:35   좋아요 0 | URL
오~로쟈님! 입심이 만만치 않으시군요. ㅎㅎㅎ
맞아요. 그 방법이 있었네요.ㅋㅋ

로쟈 2008-04-12 18:47   좋아요 0 | URL
하긴 말로 빚을 갚는다고도 하니까요.^^

노이에자이트 2008-04-12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전기도 외국처럼 어두운 면도 그렸으면 좋겠어요.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 인물의 문중후손들이 난리를 친다고 하더라구요.

로쟈 2008-04-12 22:59   좋아요 0 | URL
영화나 드라마도 못 찍으니까요.--;

털세곰 2008-04-12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 로쟈님 도-끼가 왜 똘스또이에겐 돈 빌려달라는 말이 없었는지 이유 아세요?
똘스또이가 무게는 좀 잡았지만 그래도 나이도 도-끼가 예닐곱살 더 많고 해서는 그냥 누를 수도 있었을텐데... 뚜르게녜프보다 똘스또이를 도-끼가 어려워했서 그랬을까요?

로쟈 2008-04-12 22:58   좋아요 0 | URL
글쎄요,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톨스토이가 워낙 비사교적이어서 말붙일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닐까 싶네요...

털세곰 2008-04-13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문현답이십니다^^
 

개인적인 관심에다 필요까지 겹쳐서 앤 애플바움의 <굴락>(드림박스, 2004)을 지난주에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오늘은 아예 원서까지.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굴락)에 대한 이 방대한 저작은 지난 2003년에 출간됐고 이듬해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된다. 국역본이 나온 게 2004년 12월이니까 분량을 고려하면 초스피드로 나온 셈이다. 역자가 'GAGA 통번역센터'라는 건 그래서 이해할 만하다. 이른바 '집단번역'인 것. 하지만 동시에 '강제번역'이었는지 번역의 수준이 '수용소'만큼이나 열악하다(이미 절판된 책이니 이런 흠을 잡는다고 해서 매출에 지장을 초래하진 않겠군. 혹은 이런 평도 명예훼손감일까?).

 

 

 

 

'당신에 없는 사이에' 나온 책이어서 기억에 내가 국역본의 존재를 안 건 마냐님의 리뷰를 읽고서이다(http://blog.aladin.co.kr/goodmom/601472). 너무도 허술하게 번역됐다는 지적을 읽었기 때문에 따로 구입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출간된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조해보니 원서와 같이 읽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하지만 누가 그렇게 읽을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책의 헌사에서부터 번역은 '번역'이 필요하다.

저자인 애플바움은 "이 책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신 분들께 바칩니다."라고 헌사에 적었다. "This Book is Dedicated to Those Who Described What Happened." '알려주신'이라고 옮긴 단어는 'Described'이다. 이 경우엔 '기록한' 혹은 '기록으로 남긴'이란 뜻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 저자가 이 책을 쓸 수 있었던 건 수용소 체험자들의 기록과 증언 덕분이었을 테고 그에 대해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는 것(노벨문학상 수장작가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도 <수용소군도, 1918-1956>라는 방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애플바움은 영역판의 서문을 썼다). 그런데 이 헌사는, 특히 'Described'란 단어는 러시아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1889-1966)의 한 서문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런 사실이 국역본에는 드러나 있지 않은데 옮겨보면 이렇다.

"예조프에서 일어난 테러 이후 끔찍했던 몇 년 후 나는 레닌그라드의 수용소 밖에서 줄을 서며 17개월을 보냈다. 어느 날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았다. 내 뒤에 서 있던 여자는, 추위로 입술이 파랗게 질려있었으며, 물론 이전에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은 없었다. 이제 그녀는 우리 모두에게 닥친 마비상태에서 벗어나서 나에게 속삭이며 물었다(그곳에서는 모두가 속삭이며 말했다). "이걸 설명할 수 있나요?" 나는 말했다. "할 수 있어요." 그러자 미소 비슷한 것이 그녀의 얼굴 위를 스쳐갔다."

인용문의 출처는 아흐마토바의 연작시 '레퀴엠 1935-1940'의 서문이다. 국역본에는 "서두 해설 대신 진혼곡 1935-1940"이라고 돼 있는데, "Instead of a Preface: Requiem 1935-1940"을 옮긴 것이고, '서문을 대신하여'는 이 연작시의 서문격으로 1957년에 붙인 에피소드다(시의 전문은 http://www.wikilivres.info/wiki/index.php/Requiem_%28Akhmatova%29 참조, 영역으로는 http://www.poemhunter.com/poem/requiem/).

그런데, 이 인용문 번역의 첫문장, 첫단어부터 국역본은 잘못 옮겨놓았다. "예조프에서 일어난 테러 이후 끔찍했던 몇 년 후 나는 레닌그라드의 수용소 밖에서 줄을 서며 17개월을 보냈다."의 원문은 이렇다. "In the terrible years of the Yezhov terror I spent seventeen months waiting in the outside the prison in Leningrad." 

여기서 'Yezhov terror'를 '예조프에서 일어난 테러'라고 옮겼는데, '예조프'는 지명이 아니라 인명이다(설사 인명인 줄 모른다고 쳐도 단 몇 초만 검색해보면 알 수 있건만!). 니콜라이 예조프(1895-1940)로 KGB의 전신 내무인민위원회(NKVD)의 총수였고 악명 높았던 1937-8년의 대숙청 작업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물론 이후에 그 자신도 숙청당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쓰는 스탈린 시대'란 페이퍼 참조(http://blog.aladin.co.kr/mramor/1745168). 그러니 'Yezhov terror'는 '예조프에서 일어난 테러'가 아니라 '예조프의 테러'를 가리킨다. 거기에 '몇 년 후'란 번역은 어떻게 들어가게 된 건지 알기 어렵다. 첫문장을 다시 옮기면, "예조프의 테러가 판을 치던 끔찍한 시절 나는 17개월을 레닌그라드 감옥 바깥에 줄을 서서 기다리며 보냈다." 

 

누굴 기다리며? 짐작엔 아들 레프 구밀료프를 기다리며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레프는 남편인 시인 니콜라이 구밀료프와의 사이에서 낳은 외아들이다. 그는 나중에 부모 이상으로 유명한 역사학자가 된다). 스탈린은 유명시인이었던 어머니를 직접 핍박하는 대신에 아들을 체포하여 '볼모'로 삼았고 때문에 아흐마토바는 스탈린을 찬양하는 시까지 써서 바치기도 했다.

여하튼 그런 곡절 때문에 수용소 밖에서 기다리던 아흐마토바를 어느 날은 한 사람이 알아봤다는 것. 그러니까 누군가 아흐마토바의 이름을 부른 것이겠다. 그리고 그걸 들은 뒤의 여자가 굳었던 입을 열고 이 '시인'에게 속삭였을 터이다. "이걸 기록하실 수 있겠어요?(Can you describe this?)" 물론 '이것'이 가리키는 건 이 '말도 안되는 사태'이겠다. 그에 대해서 아흐마토바는 이렇게 답한다. "할 수 있어요.(I can.)" 그때 스쳐간 희미한 미소라는 건 이 터무니없는 역사적 수난이 그래도 기록(의미화)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작은 위안의 표시겠다. 아흐마토바의 '레퀴엠(진혼곡)'은 바로 그 '기록'인 것이고.

해서 나는 애플바움의 헌사 "This Book is Dedicated to Those Who Described What Happened."를 "이 책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기록해준 모든 이들에게 바친다." 정도로 이해하고 싶다. 앤이 쓴 건 '히스토리'이고 안나가 쓴 건 '레퀴엠'이지만 두 여자는 현대사의 한 비극을 사이에 두고 그렇게 서로 교신하고 있다...

08. 04.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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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2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4-03 22:37   좋아요 0 | URL
아흐마토바의 책들이 좀 소개되면 좋을 텐데요...

수유 2008-04-04 09:26   좋아요 0 | URL
예. 저도 그녀의 저 우아한 프로필과 더불어 그녀의 시를 올려놓고 싶어요~~

노이에자이트 2008-04-06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제니친이 사실상 지금은 러시아 민족주의자가 되어버린 지금 자신의 저작인 수용소 군도를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요.그 책이 서방진영에서 소련을 씹을 때 많이 이용되었잖아요.서방진영에서 나온 30년대 소련의 대숙청을 다룬 로버트 콘케스트의 책은 이제 오래되어 아펠바움의 책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아펠바움이나 콘케스트나 강경한 보수주의자들인데...솔제니친은 이 책은 또 어떻게 생각할지.
소련 수용소를 직접 체험한 이들의 회고록 풍 글은 우리나라에도 꽤 많이 번역되었더라구요.

로쟈 2008-04-07 00:47   좋아요 0 | URL
'서재 투어'를 하시는군요.^^ 솔제니친은 요즘도 책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민족주의자이면서 (러시아식) 공산주의자의 포지션은 원래부터 갖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펠바움의 책은 시각보다는 자료 집성에 의의가 있는 것 같고요...

Sati 2011-08-08 0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에 조예가 없다보니, 저는 다른 것보다 prison을 수용소라고 번역한 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