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만원 지하철에서 읽은 경향신문의 칼럼을 스크랩해놓는다. '어제의 오늘' 꼭지인데, 1941년 9월 8일은 독일군이 레닌그라드 공습을 감행된 날이라 한다. 이미 6월에 독일군이 침공해들어왔을 때, 당시 소련은 히틀러와 비밀리에 체결한 불가침 협정만 믿고서 전혀 무방비상태에 있었기에 피해가 더욱 컸다(스탈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미스터리다). 결국은 독일군을 격퇴하지만 2차 대전 중 가장 많은 전사자를 낸 곳이 동부전선이었다. 칼럼은 레닌그라드 봉쇄의 눈물겨운 사연을 전하고 있다.

경향신문(09. 09. 08) [어제의 오늘]1941년 독일군에 포위당한 레닌그라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역사와 문화, 예술이 어우러진 유서 깊은 러시아 제2의 도시다. 18세기 러시아의 개혁군주 표트르 대제가 유럽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러시아 북서부 네바강 하구 삼각주에 건설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소비에트연방공화국 수립 이후 1924년 레닌그라드로 개명했다가 1991년 소련 해체후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6월 독일이 300만 병력을 동원해 소련을 침공하면서 대독전선 전방에 위치한 레닌그라드도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파죽지세의 독일군은 개전 두달여 만에 레닌그라드 부근에까지 이르렀으나 시민들이 2만5000㎞에 달하는 참호를 파며 항전의지를 불태우자 점령 대신 포위전으로 전환한다. 히틀러도 독일군에 레닌그라드의 항복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특별지시를 내린다. 



마침내 9월8일 독일군은 라도가 호수를 제외한 보급선을 완전히 차단하고 공습을 시작했다. 인구 300만명의 레닌그라드에 대한 보급이 차단된 뒤 한달여 만에 시민들은 극심한 기아상태에 빠졌다. 밀가루가 떨어지자 톱밥, 목화씨는 물론 말 사료로 쓰던 귀리까지 먹어야 했다. 소련 해군함대가 보낸 곡물수송선이 라도가 호수에서 격침되자 배를 인양해 썩은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9월말에는 석유와 석탄이 떨어져 공장가동이 멈췄고 11월에는 교통수단 통행이 중단됐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아사자들이 속출했고, 사람들은 인육에까지 손을 댔다. 하지만 강원도만한 크기의 라도가 호수가 얼어붙으면서 최악의 사태는 모면했다. 말이 이끄는 수송부대가 호수를 통해 레닌그라드에 물자를 실어 날랐고, 이듬해 4월까지 50만명의 시민들이 결빙상태의 호수를 건너 탈출했다. 1942년 여름에는 라도가 호수 밑바닥으로 석유 파이프라인이 건설되기도 했다.

1944년 1월27일까지 900여일 가까이 상상조차 어려운 굶주림과 추위, 폭격에 맞선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분투는 소련국민에게 용기를 심어줬고, 스탈린은 1945년 레닌그라드에 ‘영웅도시’의 칭호를 부여했다. 포위기간에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뜨거운 동지애와 전우애로 서로를 격려하고 저항을 이어갔다. 나이 많은 시민들이 “꼭 싸워 이기라”며 젊은이들에게 배급을 양보하고 희생을 자처했다는 일화도 있다. 세계적인 음악거장 쇼스타코비치는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투쟁과 애국심을 찬양하는 레닌그라드 교향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독일군이 패퇴한 뒤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트로이도 로마도 함락됐지만, 레닌그라드는 함락되지 않았다”며 만세를 불렀다. 포위전의 희생자는 소련정부의 공식발표로는 67만명이지만 최대 120만명이라는 설도 있다.(서의동기자) 

09. 09. 08. 

 

 

P.S. 찾아보니 레닌그라드 대봉쇄를 다룬 책들은 예상대로 많이 나와 있다. 어떤 책이 가장 정평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두 권은 소개됨 직하다.

  

국내에 소개된 책은 데브라 딘의 실화소설 <레닌그라드의 성모마리아>(랜덤하우스코리아, 2007)가 있다. 전에 소개한 적이 있는데, "나치 치하 900일동안, 레닌그라드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지켰던 한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 그리고 네덜란드 작가의 <레닌그라드의 기적>(다림, 2007)도 나와 있는데, 어린이용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와 독일 사이의 레닌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열두 살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작품"이라고. 

 

물론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을 다룬 책들은 기본서일 텐데, 또다른 격전지인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그린 안토니 비버의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서해문집, 2004)는 "2차 대전의 향방을 뒤바꾼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대한 생생한 다큐멘터리". 소개만 읽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책이다. 찾아보니 동부전선에 투입된 독일병사의 회고록과 러시아 남부 쿠르스크에서의 전차전에 관한 책도 소개돼 있다.    



1941년 6월 22일 히틀러는 '바르바로사 작전'이라 이름 붙여진 소련 침공을 실행에 옮긴다. 이로써 불붙은 독일과 소련의 전투는 역사상 최대의 시가전으로 기록될 만큼 양국에 막대한 피해를 안기며 2차 대전의 향방을 뒤집는다. 전체 전사자 중 80%를 이곳에서 잃은 독일군은 이 전투 이후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2차 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기울었다.

어떻게 스탈린 체제의 비효율적인 공포정치에 익숙해진 소련이 그토록 막강한 독일군을 이길 수 있었을까? 흐루시초프는 이 전쟁에 대해 "소련은 스탈린 덕분에 독일에 이긴 것이 아니다. 스탈린이 있었음에도 이긴 것이다."라고 평했다. 이 전투의 주인공이 스탈린이나 히틀러가 아니라 이름조차 없이 사라진 무명용사들이라는 것.

이 책은 이같은 입장에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들여다본다. 전투 현장의 양쪽 군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전투에 휩쓸린 보통의 사람들이 이 전투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견뎠는지를 담아낸 한편의 다큐멘터리와 같다. 이를 위해 양측 군인의 일기와 편지, 군목들의 보고서, 개인적 메모 등 다양한 사료들을 동원했다.  

겸사겸사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도 감상해본다(http://www.youtube.com/watch?v=m3G9ZqxcR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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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9-08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러시아 사람을 작년에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사람 왈 레닌그라드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정확한 러시아 발음은 어떻게 되나요?^^)로 복귀했지만 스탈린그라드는 아직 스탈린그라드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스탈린그라드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기에, 그리고 너무나 많은 사람이 스탈린그라드 대회전과 관련되어 있기에 이름을 바꿀 수 없다고 하던데, 전 사실 금시초문이었습니다^^ 러시아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 하니 갑자기 내가 제대로 알았나 의문이 들기도 하고... 아무튼 반박을 못했는데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1961년 이후 볼고그라드로 복귀된 걸로 되있네요.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할리는 없을 테고, 행정적으로는 볼고그라드지만 아직 많은 러시아인 기억에는 스탈린그라드로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Sati 2009-09-08 20:34   좋아요 0 | URL
검색해보니, 러시아공산당을 중심으로 개명운동이 매년 꾸준히 펼쳐지고 있는데, 아직 공식적으로는 볼고그라드입니다. 2004년에 푸틴이 국민정서를 고려하여 모스크바 크레믈린 옆 무명용사의 묘역에 있는 '볼고그라드' 명판을 '스탈린그라드'로 바꾼 일이 있었네요.

로쟈 2009-09-08 23:41   좋아요 0 | URL
'뻬쩨르부르그'라고 표기하기도 합니다. 러시아지명에 대해선 러시아인들도 모르는 수가 있군요.^^

푸른바다 2009-09-09 16:5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Sati 님 감사합니다^^ 그런 움직임들이 있군요... 업무상 러시아 인들을 만날 일이 있는데, 소련에 대해 물으면 대부분 답을 회피하더군요^^ 스탈린그라드에서의 싸움을 영웅적인 행동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시 이름을 바꾼다는 건 그 싸움의 명분이 상당부분 사라지는 것을 상징하기에 혼란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델러웨이부인 2009-09-08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음악 잘 들었습니다~

로쟈 2009-09-08 23:40   좋아요 0 | URL
중국엔 잘 다녀오셨나요?^^

노이에자이트 2009-09-08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오래전 번역된 것도 있고 국내 저자가 쓴 것도 있지만 레닌그라드 공방전 자체만을 다룬 것은 단행본으로 나온 게 없어요.해리슨 솔즈베리 것이 영어권에선 꽤 유명한데 우리나라에선 아직 번역되지 않았구요.좀 오래된 것 중 윌리엄 샤이러<제3제국의 흥망>이 자세한데 60년대에 번역된 것은 일본어 중역이라 가타카나 발음으로 나와서 좀 어지럽지요.

최근 나온 것은 데이빗 글랜츠<독소전쟁사>가 군사전문가 쪽에서 많이 읽히고 있습니다.오버리는 러시아어를 모르는데 글랜츠는 러시아어를 안다는 잇점이 있지요.그리고 전투 묘사에 더 치중하고 있습니다.

로쟈 2009-09-08 23:39   좋아요 0 | URL
언젠가 서점에서 본 듯한 책이군요. 덕분에 챙겨둡니다.^^

펠릭스 2009-09-09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소피아로렌 주연 "해바라기(sunflower)"가
"스탈린그라드 전투(1942년)" 전을 배경으로 한
이탈리아 군인의 얘기가 아닌가요?
*'독소전쟁사' : '독소(toxin)전쟁사'로 오인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9-10 23:02   좋아요 0 | URL
마츠첼로 마스트로얀니가 독일군의 동맹군으로 소련에서 전투 중 낙오되어 현지여인과 결혼한 이탈리아 남자로 나오지요.그 소련 배우가 미녀로 유명한 루드밀라 샤벨리에라입니다.배경은 우크라이나입니다.현지에서 직접 찍었지요.촬영당시는 소련 시절이라 우크라이나가 소련 내 공화국이었습니다.

펠릭스 2009-09-12 09:5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접경이군요. 주위에는 동유럽국인 '벨로루시,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가 있군요.
현재 동유럽은 '경제.금융상의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합니다.
1) 외부 유입된 부채에 의한 경제구조.
2) 사회복지에 대한 많은 재정적자.
3) 정치불안,'우크라이나'경우 은행개혁과 정부 예산 수정 등 각종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미미한 상태로 2010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쟁으로 인해 혼돈 심화.(조선,이석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2009-09-11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1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달에 '8월의 읽을 만한 책' 목록에 올려놓기도 한 아냐 울리니치의 소설 <페트로폴리스>(마티, 2009)에 대한 서평기사가 뒤늦게 떴기에 옮겨놓는다. "러시아의 비참한 현실과 미국으로의 불법이민을 성장소설의 형식으로 ‘쿨’하게 그렸다"고 하기에 관심을 갖게 된 작품이고 구입은 해놓았지만 아직 손에 들지는 못했다. '러시아 이야기'로 분류해놓는다.  

경향신문(09. 09. 05) 혼혈·임신·불법 이민… 상처 뿐인 나의 소녀시절 

어느날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나버린 아버지, 인텔리겐치아 집안이라는 알량한 자존심만 남은 어머니, 그리고 흑인의 외모를 가진 러시아 소녀 사샤. 이 소설은 러시아의 비참한 현실과 미국으로의 불법이민을 성장소설의 형식으로 ‘쿨’하게 그렸다. 주인공 사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은 구 소련의 역사가 남긴 상처가 어떤 식으로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사샤는 러시아에서 보기 드문 흑인 혼혈이다. 그의 아버지 빅토르가 ‘축전 아기’이기 때문인데 이는 흐루시초프 시절, 스탈린주의로 꽁꽁 얼어붙은 분위기를 풀겠다면서 제6회 국제청소년축전을 개최했을 때 외국인을 처음 본 소련 소녀들이 분별없이 하룻밤을 보낸 뒤 태어난 사생아를 뜻한다. 그중 덜 까만 편이었던 빅토르는 부유한 과학자 부부에게 입양되지만 교통사고로 양부모마저 잃는다. 그런 아빠와 결혼한 엄마 류보프는 공산정권을 비판하다가 숙청된 ‘인민의 적’의 딸로 애정 없는 결혼생활을 한다. 사샤가 10살 되던 해 아빠는 누군가의 초청을 받아 혼자 미국으로 떠난다.

모든 것이 불만스러운 사샤는 15살 때 친구 오빠 알렉세이와 쓰레기매립장에서 사랑을 나누고 나디아라는 아기를 낳는다. 엄마는 나디아를 자신이 맡아 기르는 대신 미술에 재능이 있던 사샤를 레핀아카데미에 보내지만 사샤는 직업소개소를 통해 ‘정열적인 검은 미녀’라는 홍보문구를 달고 미국의 38살짜리 대머리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 그후 사샤는 남편에게서 도망쳐 부잣집의 가정부로 들어가고 그집 아들 제이크의 도움으로 아빠 빅토르를 찾게 된다. 치기공사가 된 빅토르는 하이디란 대학강사와 결혼했는데 하이디는 빅토르의 양아버지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빅토르를 미국으로 초청했던 바로 그 인물이다.

얽히고설킨 이야기의 갈래들 사이에서 반항적인 소녀였던 사샤는 어느덧 험난한 삶을 헤쳐가는 여성이 된다. 500달러를 모은 뒤 고향의 엄마를 찾아가 나디아의 양육비로 내놓고 다시 엄마가 실종되자 나디아를 데려온다. 아버지와 나디아의 아빠인 알렉세이를 보면서 무책임한 러시아 남자들에게 절망하지만 자신을 도와준 제이크에 대해, 그가 불구자인데도 사랑을 품게 된다. 사실 러시아 남자의 무능조차 사회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 시절 군대에서 살아남더라도 대개 중년이 되면서 보드카, 질병, 이혼, 산업재해에 무릎을 꿇는다.

이 소설은 러시아 출신 불법이민자의 현실을 아기자기하면서도 입체적으로 풀어놓았다. 우울한 사연이지만 나름대로 발랄하고 한순간도 희망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 대부분의 성장소설이 주인공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것과 달리, 3인칭 시점을 취한 것도 한몫한다. 단 사샤가 자신의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딸 나디아에게 보낸 독백에 가까운 편지들은 사샤의 그늘진 내면과 진정성을 보여준다. 

Anya Ullinich   

작가(36)는 사샤와 비슷하게 17살 때 가족과 함께 관광비자로 미국에 눌러앉은 불법이민자 출신으로, <코냑으로 공무원을 매수하는 법> <지하도 전체에 풍기는 썩은 냄새를 오래 참는 법> 등 과거 러시아에서의 시시콜콜한 기억을 소설로 옮겼다. 뉴욕의 문화 전문 무가지 ‘빌리지 보이스’는 이 책을 2007년 최고의 책으로 꼽았다. 한편 책을 번역, 출간한 도서출판 마티는 인터넷 연재가 소설의 주요 홍보수단이 된 현실을 감안해 이 책의 내용을 지난달 25일부터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문학속세상’ 코너와 인터넷 교보문고 북로그 코너에 무료 연재하고 있다. 소설 출간 후 연재하기는 처음이다.(한윤정기자) 

09. 09.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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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번역이 참 좋아요
    from 아흐퉁! 미잔트롭 2009-09-10 00:49 
    다음에 올라온 부분을 천천히 읽고 있는데, 번역이 참 좋네요. 구매의사 100%
 
 
Sati 2009-09-07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하도 전체에 풍기는 썩은 냄새를 오래 참는 법>이라니!.. 모스크바 하면 후각적인 인상이 참 강하게 남아 있는데... 지금은 90년대 초반에 접했던 그 냄새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어서 그립기까지 하네요. <페트로폴리스>는 다음에 가서 첫 페이지만 읽어보았는데 재미있는 걸요. 러시아어로는 나오지 않은 듯 하구요(ozon에 없네요).

(한국어본 사진 올려주신 것은 상품으로 직접링크가 안 되네요.^^)

로쟈 2009-09-07 16:51   좋아요 0 | URL
네, 펌글은 이미지만 제가 따다붙여서 그렇습니다. 러시아에선 반가워하지 않을 소설 같은데요.^^

노이에자이트 2009-09-06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미국에서 러시아 출신 이민에 대해서는 러시아의 유대인 박해 때 이민온 이들을 그린 소설이 많았는데(버나드 맬러무드,솔 벨로우 등)이젠 소련 몰락 이후를 그린 소설도 번역되는군요.

로쟈 2009-09-07 16:52   좋아요 0 | URL
그런 유대계 작가들처럼 하나의 '흐름'을 이룰지는 미지수이지만, 사람 살았던 얘기야 다 소설거리죠...

펠릭스 2009-09-08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나라도 이민정책을 펴야 한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산업연수생'과 '불법체류자' 등에 대한 부작용이
날로 더 합니다. 최근 뉴스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로쟈 2009-09-08 23:52   좋아요 0 | URL
인종차별방지법안이 며칠전 제출됐더군요...

털세곰 2009-12-03 0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소설의 작가가 저렇게 생겼군요. 왠지 덜 러시아적같은 느낌이...
그나저나 저런 사진들은 도대체 어디서 구하세요? 늘 드는 생각이지만 수색능력이 CIS 아니 CSI를 찜쪄먹으십니다 ㅋㅋㅋ
 

잊혀진 혁명가의 생애를 소설화한 정철훈의 <소설 김알렉산드라>(실천문학사, 2009)도 지난주에 나온 책이다.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기자인 저자가 러시아사 전공자이기도 하다는 건 이번에 알게 됐는데, 김알렉산드라는 그의 전공과도 관련되는 듯하다. <김알렉산드라 평전>(필담, 1996)에 이어서 이번에 소설로 한 여성 혁명가의 파란만장한 삶을 조명하고 있다. '러시아 이야기'로 분류하여 관련기사를 정리해놓는다.

 

서울신문(09. 08. 08) “삶을 바꾸려 했던 에너지… 사랑… 여전히 우리사회에 유효한 것들”  

이토록 뜨거웠던 삶이 있었을까. 서른의 나이로 러시아혁명의 한가운데에서 활약했던, 또 한국 최초로 사회주의 정당을 만들었던 여성혁명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 스탄케비치(1885~1918). 이미 90여년 전 떠난 그녀가 소설가이자 시인, 기자인 정철훈(50)의 손에 되살아 났다. 혁명가로서 그녀의 활약을 담은 ‘소설 김알렉산드라’(실천문학사 펴냄)를 내고 지난 6일 서울 종로에서 기자와 만난 작가는 “한마디로 그녀는 여성 김산(1905~1938·중국에서 활동한 조선인 혁명가)”이라고 말을 꺼냈다. 누구보다 그 영역에서 활약했지만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얘기였다.   

알렉산드라와 작가의 인연은 오래 됐다. 그는 1990년 한·소련 수교를 기회로 북방에서 활약한 운동가들의 자료를 찾기 위해 3년 정도 러시아에 머물렀다. 거기서 박사학위도 받았다. 김알렉산드라의 존재도 그때 알게 됐고, 그녀의 매력에 순식간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모스크바에 있는 중앙공산당문서보관소, 중앙아시아 쪽에 있는 고문서보관소 등을 모두 뒤졌죠. 중앙아시아를 7차례 왔다갔다 했습니다.” 같이 활동했던 지인들을 수소문해 만나서는 구술까지 받았다. 그렇게 나온 것이 ‘김알렉산드라 평전’(1996). 이번 소설도 그때 모은 것을 활용했다.  

하지만 작가는 “소설에서는 현재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여러 번 강조한다. 그는 “그녀가 보여줬던 자기 삶을 바꾸려는 진보적 에너지, 치열했던 사랑은 여전히 우리와 우리 사회에 유효한 것들”이라고 말한다. 현재성을 위한 장치로 작품은 3부로 나눈 액자소설 형식을 취했다. 1·3부는 그녀의 아들이 등장해 어머니의 흔적을 좇으며 그 삶의 의의를 짚어본다. 본문 격인 2부에는 김알렉산드라가 직접 화자로 나와 처음 우랄 지방의 한 목재소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의 대변인 역할을 했던 때부터의 생생한 활약상을 전한다.  

1900년대, 1950년대가 작품배경이지만, 작가는 “이건 오늘날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는 “그녀가 곁에서 함께 했던 노동자들의 삶은 너무나 억눌려 있었다.”면서 “그랬기에 격렬한 시위나 노동운동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쌍용차 노동자들도 그런 비참한 상황”이라고 아쉬움을 전한다.  

혁명가를 주인공으로 했지만 의외로 문체는 서정적이다. 사건을 중심으로 한 2부는 짧게 끊어친 문장이 긴박감을 주지만, 픽션이 많은 1·3부에서 배경을 그리는 솜씨나 도입부의 이야기 전달 방식은 한편의 동화나 애틋한 편지를 읽는 것 같다.    

일간지 문학전문기자 출신으로서의 자기 작품을 보면 어떨까. “2% 정도 모자란다고 할까요. 상업성의 눈치를 좀 안 본 것 같습니다.”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팔리는 글도 있어야겠지만, 누군가는 써서 남겨야 할 글도 있다.”라고 자부심을 드러낸다.(강병철기자)  

09. 08. 09.  

P.S. 찾아보니 러시아에서는 작년에 김알렉산드라 자료집이 출간됐다. 저자의 참고문헌에 포함돼 있을 듯싶다. 김알렉산드라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박노자 교수가 약술한 기사도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3. 05. 25) 김알렉산드라의 독립운동 

우리 나라 학생들을 접하면서 필자가 아쉬워했던 것 중 하나는 조선독립운동사에 대해 대다수가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고 있는 점이었다. 대부분은 독립운동가에 대해서 존경의 감정을 가지면서도 독립운동을 현재와는 전혀 무관한 과거사로 여겼다. 이처럼 생각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역사 교육이 독립운동을 일률적으로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건국을 위한 민족적 투쟁”만으로 묘사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식민지 암흑 속에서 투쟁의 중요한 목표는 일제로부터의 독립 쟁취와 민족국가 건설이었다. 문제는, 제도권의 서술이 ‘민족독립’만을 획일적으로 강조하고 식민지 시기 국내외 반체제운동의 여러 갈래들의 보편주의적·초(超)국가적 지향은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대가 그들에게 강요한 일제 타도라는 급선무만이 강조되고, 세계와 미래를 향해 나아간 그들의 고귀한 뜻이 도외시되어 학생들이 자연히 독립운동을 지금의 우리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옛날 일’만으로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선열들이 ‘건국’만을 염두에 두었을까 오늘의 대한민국의 존재가 바로 그들 뜻의 바른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 예로 시베리아와 연해주를 활동의 무대로 삼은 한국 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단체인 한인사회당(1918년) 발기인이었던 탁월한 여류 독립운동가 김알렉산드라(스딴께비치:1885-1918)를 들어보자.  

1918년 9월에 러시아 반(反)혁명 세력에 붙잡힌 김알렉산드라는 타민족 출신으로 왜 러시아의 내전에 간여하느냐는 추궁에 “나는 민족주의자가 아니고 사회주의자다. 러시아 볼셰비키와 함께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조선의 진정한 해방을 위하는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만약 더 이상 볼셰비키와 손잡지 않겠다고 하면 석방해주겠다”라는 제안에 그는 “세계의 모든 노동자들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죽겠다”고 대답하여 동지와 함께 총살을 당하는 것을 선택했다.

조국의 해방을 갈망하면서도 세계의 모든 노동자들과 하나되기를 원했던 그가 만약 세계 각국에서 우리 나라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노동착취와 폭력, 폭언 등을 당하고 있는 것을 봤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자국의 노동자를 천민으로 만들고 외국에서 온 노동자는 거의 노예로 만드는 사회체제가 과연 그의 목표이었겠는가 그가 생각했던 해방 투쟁은 과연 대한민국의 건국과 함께 끝나야 하는 것일까

김알렉산드라와 함께 한인사회당을 만든 사람은 바로 이승만에 대해서 “미국의 제도를 민주주의 발전의 최종 결과로 아는 편협된 세계관의 소유자”라는 적절한 평을 한 독립운동가 이동휘(1873-1935)였다. 시종일관 일제와의 무장투쟁을 주장하는 군인 출신의 이동휘였지만, 1920년 말에 중국인, 일본인 동지와 함께 상하이에서 동아공산당연맹을 조직하면서 술자리에 같이 어울리며 장난도 치는 등 소박한 국제주의자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와 또 다른 수많은 조선 공산주의자·아나키스트들의 국적을 초월한 연대투쟁은 지금 우리에게 동아시아 각국의 지역적 연대의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1920년대 초반 연해주의 한국 빨치산들이 일본 군인들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전하여 그들의 계급의식을 깨우치는 데 노력을 기울였던 것은 국제주의자로서의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측면이다.

전세계의 근·현대사에서 조선의 진보적인 독립운동가만큼 큰 희생을 치른 집단은 드물 것이다. 러시아에서 스탈린으로부터, 북한에서는 독재체제 구축에 착수한 김일성 일파로부터, 남한에서는 역대의 반공정권으로부터 각각 탄압을 당해온 그들의 역경과 고난의 무게만큼 그들이 지금의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시사해주는 바가 있다. 조선의 애국자로 남으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국제적인 시각을 우리는 그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다.(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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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8-10 0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에게 추억이 있다. 아련한...",
1980년 초여름, 교회 지하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 여자가 정면으로 보였다.
희미한 백열등 아래서 가르치던 그 여자는 스몰바지(검정군복)를 입고 있었다.
"아련한 추억이 있다. 우리에게는..".
여성혁명가(김알렉산드라),나혜석(최초서양화가),노서아가비(주인공/따냐)
그리고 80년대 어떤 노동운동가(그 여자),,,,
옛 혁명도 사랑도 다 지난 일이 되어버린, 작가의 아쉬움속에 조선의 진보적인 독립운동가의 희생과 그들의 꿈이었던 지금의 현실을 생각해봅니다.

로쟈 2009-08-11 09:05   좋아요 0 | URL
그나마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주 없진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듯해요...

카스피 2009-08-10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구 소련에서 많이 숙청된 공산주의계열의 독립 운동가들에 대한 국내의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느껴지네요.
친일한 사람의 후손은 국내에서 호의호식(뭐 뉴스보니 친일 후손들의 국가의 땅 찾기에 소송으로 맞대응한다고 하니 참 염치 없지요)하는데 비해 독립 운동가의 자손들은 국내와 국외(중국과 러시아등)에 참 많은 고생을 하니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로쟈 2009-08-11 09:03   좋아요 0 | URL
현대사가 일그러진 원인이죠...

2009-08-10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11 0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11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러시아 여기자의 죽음

러시아의 여성 인권운동가가 또 피살됐다. 2006년 피살된 여기자 폴리트코프스카야의 친구이기도 하다고. 러시아 인권과 법치주의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사건이어서 음울하고도 씁쓸한 소식이다. 어제 읽은 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9. 07. 17) 체첸 비판 러시아 인권운동가 또 피살

체첸의 인권 실태를 비판해온 러시아의 여성 인권운동가가 또다시 피살됐다. 영국 BBC방송 등은 15일 체첸 인권단체 ‘메모리얼’에서 활동해온 나탈랴 에스테미로바(50)가 납치·피살됐다고 보도했다. 에스테미로바는 이날 체첸 수도 그로즈니에서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됐으며, 몇시간 뒤 인접한 잉구셰티야 공화국의 나즈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에스테미로바는 그로즈니 대학을 졸업하고 역사 교사로 일하다 2000년 인권운동에 뛰어든 인물이다. 2006년 살해된 여성 언론인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의 친구이기도 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체첸 실태를 외부에 알려 2007년 여성노벨상 수상자들이 선정한 ‘폴리트코프스카야 인권상’을 받은 그는 유럽의회의 로버트 슈만 메달을 받기도 했다. 그의 사무실은 외국 취재진이 그로즈니를 방문하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에스테미로바는 지난달 체첸 당국이 분리주의 반군의 집을 모두 불태우며 탄압하고 있다는 조사 보고서를 냈다. 또 지난 7일 그로즈니 도심에서 총격전이 벌어지자 보안군의 무력 남용을 맹비난했다. 



메모리얼은 이번 살해의 배후에 람잔 카디로프 체첸공화국 대통령(32)이 있다고 밝혔다. 카디로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대통령이었을 때부터 그의 지원을 받아왔다. 체첸 독립운동 세력의 공격에 숨진 아흐마드 카디로프 전 대통령의 아들로 체첸의 분리운동을 강경 탄압해왔다. 그는 푸틴이 1999년 ‘2차 체첸전쟁’을 일으키자 사병 조직 ‘카디로비츠’를 이끌고 러시아군에 합세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체첸 정보국장을 맡아 푸틴의 신임을 굳혔다. 2004년 아버지가 숨진 뒤 부총리를 거쳐 총리로 초고속 승진했고, 2007년 3월에는 푸틴에 의해 체첸 대통령으로 임명됐다. 그가 체첸 석유를 빼돌려 재산을 불리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폴리트코프스카야 사건에 개입한 의혹도 있다.

그의 집권 뒤 체첸에서는 독립운동가 납치·고문·살해가 계속되고 있다. 메모리얼 측에 따르면 카디로프는 이를 비판하는 에스테미로바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카디로프는 “살인범은 응당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배후설을 부인하고 있으나, 인권단체들은 “우리를 겁주기 위해 카디로프가 저지른 살인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사건으로 유럽과 러시아 간에는 인권 갈등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유럽연합은 즉시 살인 배후세력을 맹비난하고 “러시아 연방정부 차원의 조사와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연방기구를 통해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성명을 냈지만 제대로 될지는 회의적이다. 올초 체첸 문제를 비판한 인권변호사 등이 피살됐을 때에도 메드베데프는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으나 범인은 오리무중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취임 때 ‘법치 확립’을 강조했던 메드베데프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고 보도했다.(구정은기자) 

09. 07. 18.  

Наталья Эстимирова в Грозном, 1 сентября 2004 года

P.S. 에스테미로바의 인터뷰 동영상이다(http://www.youtube.com/watch?v=3oZsJzXKqI0). 고인의 명복을 빈다. 비록 러시아/체젠의 수치스런 인권상황이 개선될 때까지는 그녀 또한 편하게 눈을 감지 못하겠지만... 

 

P.S.2. 체첸이나 체첸분쟁에 관한 단행본 저작이 국내엔 아직 나오지 않은 듯하다. 부분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 몇 권만 찾아보았다. 체첸분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다룬 <야만의 시대>(황소자리, 2005)는 생소한데, 역시나 2004년에 나온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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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무개 2009-07-19 0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초인가에 리벨리온이라는 리트비넨코에 관한 다큐 영화를 본적이 있는데요.. 거기에 나오는 안나 폴리코브스카야의 모습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일어나는 정부의 비리를 폭로해도 그에 대한 반응조차 볼 수 없는 상황에도 끈임없이 진실을 알리기위해서 애쓰는 모습이.. 그런데 또 이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네요... 끔찍합니다...

로쟈 2009-07-19 18:40   좋아요 0 | URL
끔찍한 일이야 지구촌 곳곳에서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는데, 저는 더 끔찍한 게 이런 일에 차츰 '면역'이 돼간다는 거예요...

펠릭스 2009-07-20 09:36   좋아요 0 | URL
죽고, 죽이고, 대중의 이름으로, 민족으로 이름으로,,,
그리보면 살리려는 마음은 얼마나 값진 마음인가요!

람혼 2009-07-19 0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기사를 읽고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곧 로쟈님의 멘트가 있겠구나 생각도 했습니다). "지난해 취임 때 '법치 확립'을 강조했던 메드베데프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는 기사의 문장이 남의 나라 일 같지만은 않은 게 또 다른 문제겠지요...

로쟈 2009-07-19 18:39   좋아요 0 | URL
메드베네프는 이미 지난번에 무능력을 과시한 바 있지요. 푸틴을 넘어설 수 있느냐의 시험대이기도 한데, 별로 기대해볼 수 없지 않을까 싶어요...

펠릭스 2009-07-19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반도 역시 분쟁지역에 포함된다. 우리의 경우는 타민족간의
분쟁이 아니라, 자민족간에 분쟁으로 세계대전과 이념적 산물로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이다.

체첸과 러시아는 민족도 다르며, 종교도 다른(리시아:정교,체첸:이슬람)
타민족으로부터 독립을 갈망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나탈랴 에스테미로바(50)"가 납치·피살되었다.
기구한 운명이다. 용감하고 의로운 세계 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딸 역시 깊은 상처속에 자국의 현실에 재인식하겠지만,,,

우리의 경우도 남과 북의 통일문제가 해결되다면, 새로운 국면의
중국과 러시아연방과의 문제가 새롭게 부상 될 것이다.

우리의 임시정부 시절, 일본에 의해 희생되었던 독립투사들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한다. 시대마다 고군분투했던 조상들 있다.

코샤크족(고용한 돈강)에 비해 체첸는 러시아 문학작품에 거이
등장하지 않지만, 1940년대 스탈린에 의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는 체첸이 비극을 그린 "황금색 구름은 비쳤다(1987)"가
있다고 한다.

로쟈 2009-07-19 18:38   좋아요 0 | URL
야만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Sati 2009-07-20 22:20   좋아요 0 | URL
펠렉스/ 톨스토이의 '하지무라트'가 체첸사람일걸요^^.
 

창밖으로 검은 비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보인다. 보더 정확하게는 물감통에서 번져가는 듯한 짙은 회색 비구름이다. 오늘부터 장마비가 내린다더니 예고대로 빗줄기가 굵다. 방안에만 있을 수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날씨다. 오늘 아침 '책읽는 경향'에서 소개하고 있는 책이 이반 부닌의 단편집 <어두운 가로수 길>(지만지, 2008)이다. 대부분은 예전에 <비밀의 나무>(삶과꿈, 2005)에 실렸던 작품들인데, 러시아어판 제목도 <어두운 가로수 길>이다(원저는 두툼한 단편집이다). '어두운 분위기'가 어쩐지 연관성이 없지도  않을 듯싶어서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20세기 문학 강의 때 읽을 작품에 포함하는 것도 고려해봐야겠다...   

경향신문(09. 06. 29) [책읽는경향]어두운 가로수 길  

언젠가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의 단편집이 내 방 책꽂이에는 물론 집안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살짝 맥이 풀려버렸다. 조카 녀석이 빌려가서는 학교에서 돌려 읽다가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여중생이 읽기엔 좀 그런데’ 하고만 말 수가 없어, 나는 책을 내준 아내에게 채신없이 화를 내고 말았다. 나는 부닌의 단편들을 늘 곁에 두고 싶었던 것이다.  

 

‘깨끗한 월요일’을 시작으로 부닌의 단편집 <어두운 가로수 길>(김경태 옮김·지만지)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신께서 당신 편지에 답하지 않을 힘을 주시길 바라요”라는 문장은 역시 좋았다. 좋아서 두 번을 읽었다. “시간에 대한 희망을 제외하고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라는 대목도 여전히 곱씹을 만했다. 한데 이 매혹으로 가득 찬 사랑이야기들이 주는 느낌이 이전과는 제법 달라져 있었다. 그게 어젯밤의 술 때문인지, 오늘 아침 바람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혹 감정의 깊이가 소멸의 속도와 비례하기 때문은 아닐지.   

부닌은 표제작에서 말했다. “모든 게 사라진다고 잊히지는 않아요”라고. 내게는 이 한 줄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사라짐과 잊힘 사이에 무엇이 있는 걸까? 죽은 자도 기억과 추억이며 회한은 남기게 마련이란 뜻이겠지. 그래도 문장은 수정될 수 있겠다 싶었다. 결국엔 잊히고 말 테니까, 그런 거니까. 하지만 이 한 줄은 부닌의 단편들 모두에 대해 결론적이고, 그러므로 결정적이다. 지독하게 아름다운 언어로 아름다울 만큼 지독한 상실을 그려낸 사례로 부닌의 단편들을 지목한다.(현진현 소설가) 

09. 06. 29. 

P.S. 비는 잠깐 오다가 다시 해가 났다. '어두운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다. 이것이 '장마'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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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9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30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9-07-01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 어제 경향신문의 이 칼럼을 읽고 메모해 두었거든요. 한번 읽어보고 싶어서 말이죠. 그런데 지금 알라딘에서 검색 해보니까 어두운 가로수길의 책은 이미지가 없어요. 신문에도 나왔고, 로쟈님께서도 올리신 저 이미지 그대로이겠죠? 저도 한번 부닌의 단편들을 읽어보아야 겠어요.

로쟈 2009-07-02 20:34   좋아요 0 | URL
네, 소개된 책이 장편 <아르세니예프의 생애>와 함께 단편집 몇 권입니다. 나름 열독자들이 있는 듯해요...

털세곰 2009-12-03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닌은 의외로 시"도" 좋습니다. 맑고 깨끗하고 언어도 그렇게 어렵지 않고.
부닌의 문학상에는 사실 시가 더 많이 기여했어야 하지 않을까도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