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예술극장에서 이성열 연출로 공연중인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관람했다. 얼마전 체호프의 <갈매기>를 번안한 성기웅 작, 타다 준노스케 연출의 <가모메>를 본 데 이어서 연거프 체호프의 작품을 보게 됐는데, 이번 공연작 두 편 모두 색다른 경험을 안겨주었다. <바냐 아저씨>는 러시아 극단의 공연으로만 두 차례 본 적이 있고, 한국 배우와 연출의 공연으로는 처음 보았다. 예술의전당에서는 12월 1일부터 문삼화 연출의 <세 자매>가 공연된다. 연극 애호가나 체호프 애독자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듯싶다. <바냐 아저씨> 공연에 대한 소개기사를 일부 발췌해놓는다.

 

‘체호프 극은 지루하다’고들 한다. 가슴을 뛰게 하는 극적인 장면도 없고, 뚜렷한 메시지도 없이 그저 흘러가는 일상을 펼쳐 놓은 듯한 장면들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의 연극을 찬찬히 음미하다 보면 일상 속에서 번뜩이는 삶의 진실을 만나기 마련이다. 사실, 우리네 삶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10년, 20년이 훌쩍 지나 있고 그때서야 비로소 삶이란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느끼는 것 아닐까.

 

이 같은 ‘체호프 극’의 정수(精髓)를 보여주는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지난 26일부터 11월 24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바냐 아저씨’(사진)다. 오종우 성균관대 교수의 번역본을 바탕으로, 극단 백수광부의 이성열 대표가 연출을 맡은 연극에선 무엇보다 쟁쟁한 출연배우들의 면면이 돋보인다. 바냐 역의 이상직을 비롯, 마리야 역의 백성희, 세례브랴꼬프 교수 역의 한명구, 옐레나 역의 정재은, 의사 아스뜨로프 역의 박윤희, 소냐 역의 이지하, 마리나 역의 황정민, 찔레긴 역의 이정수 등 연극계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대거 무대에 올랐다.

 

이들의 출중한 연기야말로 체호프 극의 진면목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일등공신이다. ‘일상의 진실’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펼쳐 보인다는 말이다. 특히 국립극단 ‘간판배우’를 하다 4년 전 전남 구례로 낙향했던 이상직의 바냐 연기는 마치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와 연기하는 듯한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 ‘바냐가 곧 이상직이고, 이상직이 그대로 바냐’인 연기를 펼친다. 체호프 극에서 배우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 연극은 생생하게 증명한다.(문화일보)

 

개인적으론 옐레나와 아스트로프의 호흡이 좋아보였고, 소냐의 코믹한 연기가 흥미로웠다. 첼레긴 역의 캐스팅도 좋았다. 몇몇 동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론 원작의 매력을 느끼게 해준 공연이었다. 체호프의 드라마가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관람해보시길. 공연은 인터미션 없이 2시간 10분간 진행된다...

 

13.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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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두 편이 무대에 오른다. 러시아문학 작품을 여럿 각색해서 공연한 바 있는 명품극단의 새로운 레퍼토리인데, 좀 긴 분량의 <6호 병동>은 <라긴>이란 연극으로, 아주 짧은 <어느 관리의 죽음>은 <유령>이란 작품으로 탈바꿈했다. <라긴>은 9월 25일부터 10월 6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3관에서 공연된다(<유령>은 10월 9일부타 13일까지다). <6호 병동>은 강의에서도 자주 다뤄본 작품이기에 어떻게 각색이 됐을지 궁금하다. 내주엔 한번 더 대학로 나들이를 해봐야겠다...

 

 

13. 09. 24.

 

 

P.S. 참고로, 원작 <6호 병동>과 <어느 관리의 죽음>은 단편집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2009)에 수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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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에서 펴내는 반연간지 <연극>(제5호)에 러시아 연출가 레프 도진의 인터뷰가 실렸다(그밖에도 흥미로운 인터뷰가 많이 들어 있다). 지난봄 체호프의 <세자매> 공연을 위해 방한했었고, 한양대 이지연 HK연구교수가 인터뷰어로 그를 만났다. 일부를 옮겨놓는다.

 

 

 

연극(13년 여름) 무대 위의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위대한 비극의 주인공들이다: 레프 도진

 

(...)

 

이지연: <형제자매들>은 당신의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이다. 그런데 사실 이처럼 하루 종일을 보아야 하는 엄청난 길이의 연극이라는 것도 우리의 관점에서는 상당한 파격이다. 

 

 

레프 도진: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인간의 영혼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이다.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요즘 세상은 그러한 깊이를 요구하지 않는다. 인간들은 점점 단순하게 생각하고 인간의 언어는 점점 짧아져 간다. 인간의 언어가 점차 짧게 축약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인간은 복잡해져야 한다. 길고도 복잡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복잡함을 무대 위에 길게 펼쳐내는 것, 복잡할 뿐 아니라 때로는 모순된 인간의 내면을 무대 위해서 비로소 드러내는 것, 이것이 내가 연극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긴 상연 시간이나 연극의 독특한 형식들은 무엇보다 이러한 관념적이고 사상적인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인간의 삶에는 사상이, 관념이 필요하다.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언어, 풍성한 언어로 끊이지 않는 긴 생각을 무대 위에 펼쳐 놓는 것이 내 연극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어제 보니 젊은이들이 많이 연극을 관람하고 있었다. 점점 고속화 되고 간결해지는 이 시대에 그런 젊은 세대가 나의 연극을 보는 것이 기쁘다.

 

(...)

 

이: 그렇다면 현대 러시아 소설 중에서 새롭게 상연을 기획하고 있는 레퍼토리가 있는가?

 

 

도: 늘 원하는데 아직 맘에 딱 드는 깊이 있고 위대한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최근 재미있게 읽은 자하르 프리레핀의 『산카』 같은 작품이 맘에 드는데 몇몇 부분에서 무대화에 제약이 있어 상연이 쉽지 않다. 최근 많은 산문 작품들을 읽고 있다. 언젠가 좋은 작품을 만나 그것을 상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당신이 지적했듯 나는 늘 시대의 형상을 무대 위에 그려내고자 했다. 지금 생각으로는 20세기 러시아의 전 역사를 포괄하는 대작을 만들고 싶다. 1차 대전 시기로부터 시작해서 혁명과 소련 시대, 소련의 붕괴와 현대 러시아에 이르는 20세기의 전 역사를 포괄할 수 있는 대작이 있으면 좋겠다. 트리포노프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노인>(1988) 같은 작품도 그런 부류의 작품이었다. 2차 대전 코사크들을 다룬 매우 비극적이고 위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무대 위에 연대기를 창조하고 싶다. 그리고 그 연대기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간의 삶을 그리고 싶다. 위대한 러시아 소설을 발굴하고 싶고 가능하다면 20세기 초부터 전 역사를 관통하는 그런 작품을 한 번 상연해 보고 싶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으려 한다. 연출가에게 독서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나는 철학 서적을 많이 읽는다. 칸트의 저작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한때 러시아 철학에 심취한 적도 있고 하이데거 등을 비롯한 실존철학에 몰두한 적도 있다. 요즘은 입센과 프리레핀, 콘래드 등을 읽고 있다. 책은 나의 연극의 힘이다. 근데 매일 연극을 올리다 보면 책 읽을 시간이 없다. 머리맡에 책을 쌓아두기만 한다. 그래서 휴가 때가 되어 큰 가방에 책을 가득 채우고 한적한 곳으로 떠나는 것이 너무 좋다. 사람들이 전자책 같은 걸 선물해 주기도 하는데 나는 아무래도 그건 좀 적응이 안 된다.

 

(...)


13. 08. 24.

 

 

P.S. 인터뷰 덕분에 관심을 갖게 된 작가가 프리레핀이다('프릴레핀'이라고 표기해야 될지 모르겠다). 1975년생 작가로 <산캬>는 2006년에 발표한 데뷔작이다. 국내에도 소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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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진행한 '로쟈의 러시아문학클럽' 시즌3이 종강했다. 20세기 러시아문학 편이었는데, 내달에는 시즌4로 '로쟈의 러시아문학클럽: 세계문학 커넥션' 편을 강의한다(몇년 전에 강의한 '도스토예프스키 커넥션'의 확장판이기도 하다). 올초부터 러시아문학클럽 강의를 세 차례에 걸쳐 해왔고, 이번이 마지막 시즌 강의다(http://www.hanter21.co.kr/jsp/huser2/educulture/educulture_view.jsp?&category=academyGate8&tolclass=0002&lessclass=0003&subj=F91416&gryear=2013&subjseq=0001&booking=).

 

일정은 10월 8일부터 11월 26일까지 8주간 매주 화요일 저녁 7:30-9:30이다. 강의 소개와 커리큘럼은 아래와 같다.

이번 강의의 주제는 세계문학과 러시아문학의 관계, 주고 받은 영향을 살펴보는 세계문학 커넥션이다. 러시아 근대문학의 아버지 푸슈킨부터 20세기의 솔제니친에 이르기까지의 러시아 문학 여행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멕베스>부터 죠지 오웰의 <1984>까지. 푸슈킨의 <보리스 고두노프>부터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까지. 세계문학의 대표작 8편과 러시아문학의 대표작 8편을 비교 분석하며 살펴본다. 예를 들어,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알베르 카뮈의 <전락>을 함께 펼쳐놓고 두 작품간의 연관성을 살펴보면서, 두 작품의 주제 연관성, 형식과 스타일의 유사성 등을 비교해 읽다보면, 작품에 대한 이해의 폭이 보다 넓어질 것이다.  

제1강_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vs 푸슈킨의 <보리스 고두노프>

 

 

 

제2강_ 셰익스피어의 <헴릿> vs 체호프의 <갈매기>

 

 


제3강_ 티르소 데 몰리나의 <돈 후안> vs 푸슈킨의 <석상손님>

 

 

제4강_ 괴테의 <파우스트> vs 투르게네프의 <파우스트>

 

 

제5강_ 루쉰의 <광인일기> vs 고골의 <광인일기>

 

 

제6강_ 카뮈의 <전락> vs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

 

 

 

제7강_ 카뮈의 <페스트> vs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제8강_ 오웰의 <1984> vs 자먀찐의 <우리들>

 

 

13. 0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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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역사 아카데미에서의 가을 강좌는 '20세기 러시아문학 강의'다. 여름에 진행한 '로쟈의 러시아문학 읽기'(http://blog.aladin.co.kr/mramor/6389785)에 이어지는 것인데, 8명의 대표작가의 대표작 8편을 커리로 골랐다. 강의는 9월 9일부터 10월 28일까지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30분-9시 30분에 진행된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공지(http://cafe.daum.net/purunacademy/8Bko/111)를 참고하시길.  

러시아 문학 하면 우리는 푸슈킨,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체홉 같은 19세기 작가들을 떠올립니다. 그만큼 20세기 러시아 문학은 우리에게 단절된 채로 남아 있습니다. 루카치는 <변혁기 러시아 리얼리즘>에서 "러시아 문학은 오직 1917년의 시점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1917년 볼세비키 혁명, 스탈린이 죽음을 맞는 1953년, 소비에트 러시아가 해체되는 1991년. 러시아 문학는 다양한 국면을 맞이하며 변화합니다. 격동의 20세기 러시아 문학, 로쟈 선생님이 꼽은 8명의 작가로 만나 보세요.^^

 

1강: 9월 09일_ 고리키, <어머니>

 

 


2강: 9월 16일_ 자먀찐, <우리들>

 


3강: 9월 23일_ 파스테르나크, <닥터지바고>

 

 

4강: 9월 30일_ 불가코프, <거장과 마르가리타>

 


5강: 10월 07일_ 플라토노프, <체벤구르>

 

 


6강: 10월 14일_ 숄로호프, <고요한 돈강>

 

 

7강: 10월 21일_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8강: 10월 28일_ 나보코프, <롤리타>   

 

 

13. 0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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