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에서 펴내는 반연간지 <연극>(12년 겨울호)에 실은 서평을 발췌해서 옮겨놓는다. 셰익스피어의 사극을 다루면서 일례로 <리처드 2세>에 대한 '읽기'를 적었다. 김정환 시인의 '영국 민족 사극'이 번역된 게 계기인데, '그리스 로마 사극'도 마저 번역되기를 고대한다.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을 읽다

 

셰익스피어 사극 번역
셰익스피어 문학을 대표하는 것은 비극이지만 그는 희극과 사극에서도 유례가 드문 성취를 이루었다. 하지만 4대 비극에 비하면 그의 사극은 국내 독자들에게 아직 생소한 편이다. ‘4대 비극’에 견주어 <셰익스피어 4대 사극>(범우사, 1999)이 이태주 교수의 번역으로 나온 바 있는데, <헨리 4세 1부, 2부>, <헨리 5세>, <리차드 3세> 등이 포함된 선집이다. 해설서로는 이대석 교수의 <셰익스피어 극의 이해 - 사극과 로마극>(한양대출판부, 2002) 정도가 참고할 수 있는 책이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2012년은 셰익스피어 사극 수용에 전기가 될 만한 해이다. 셰익스피어 전집 번역에 도전하고 있는 김정환 시인이 3차분으로 사극(잉글랜드 민족사극) 11편을 번역․출간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덧붙여 박우수 교수도 셰익스피어 사극 이해의 길잡이가 될 만한 유용한 해설서로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열린책들, 2012)을 펴냈다(이하 <역사극>으로 표기). 김정환 시인은 앞으로 ‘영국 사극’과 함께 셰익스피어 사극의 또 다른 축인 ‘그리스․로마 사극’ 9권, ‘희극과 소네트’ 8권 등을 마저 펴내 40권의 전집을 완간할 예정으로 있다. 완간된다면 현재 나와 있는 신정옥 교수의 전예원판 ‘셰익스피어 전집’(전42권)과 함께 ‘셰익스피어 전집’을 양분하게 된다.


물론 희곡으로 한정하면 셰익스피어 전집 번역이 처음은 아니다. 37편의 셰익스피어 희곡을 완역한 사례는 1964년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김재남 교수의 번역(휘문출판사, 전5권)과 공동번역(정음사, 전4권)이 더 있다. 하지만 현재는 모두 절판된 상태이기에(김재남 교수의 번역 가운데 희극과 비극만이 출판사를 옮겨서 재출간돼 있다) 사극을 포함한 셰익스피어 희곡의 전모를 살펴보는 것은 두 번역자의 노고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부분적으로는 두 전집 번역자의 번역 외에 이덕수 교수가 <헨리 4세 1부, 2부><헨리5세><리처드2세><리처드3세>(형설출판사) 등을 옮긴 사례가 있고, 강태경 교수도 <리처드 3세>(지만지)를 우리말로 옮겼다. 그리고 ‘나남 셰익스피어 선집’을 새롭게 펴내고 있는 이성일 교수도 <리처드 2세>와 <리처드 3세>의 새 번역본을 보탰다.


대략 이런 것이 우리가 셰익스피어의 사극, 더 구체적으로는 ‘영국 사극’을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여건이다. 김정환 시인은 보통 비극으로 분류되는 <심벨린>을 사극의 서두로 삼아서 총 11편을 ‘잉글랜드 민족사극’으로 분류했지만, 통상적으로 영국사극은 <존왕>에서부터 <리처드 2세>, <헨리 4세 1부, 2부>, <헨리 5세>, <헨리 6세 1, 2, 3부>, <리처드 3세>, <헨리 8세>에 이르는 10편의 희곡을 가리킨다. 시기적으로는 13세기 초엽부터 16세기 후반까지 약 400년간의 영국역사가 이 희곡들이 다루는 범위다. 이번 서평란에서는 셰익스피어 사극을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여건이 마련된 김에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의 해설을 참고하여 <리처드 2세>를 셰익스피어 사극의 일례로 읽어보려고 한다. 참고한 번역은 신정옥 역 <리처드 2세>(전예원, 1991), 김정환 역 <리처드 2세>(아침이슬, 2012)와 함께 이성일 역 <리처드 2세>(나남, 2011)다.   

 

 

 

영국 사극과 <리처드 2세>
10편의 영국 사극 가운데 <존왕>과 <헨리 8세>는 작품성이 조금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며 나머지 8편은 두 가지 4부작으로 묶인다. 먼저 쓰인 <헨리 6세>(1, 2, 3부)와 <리처드 3세>이 제1사부작이라고 불리지만, 연대기적으로 <리처드 2세><헨리 4세>(1, 2부><헨리 5세>로 이어지는 제2사부작이 앞서며 <리처드 2세>는 그 첫 작품이기에 역사적 사실의 흐름을 좇아가자면 가장 먼저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사극인 만큼 <리처드 2세>를 읽기 위해서는 역사적 배경지식이 약간 필요하다. “리처드 왕의 치세 말기 3년간(1398-1400)의 영국 정치적 갈등을 극화한 일종의 정치극”(<역사극>, 57쪽)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갈등이란 물론 왕권을 두고 벌어지는 다툼이다. 존왕의 맏아들이었던 헨리 3세의 뒤를 이어 에드워드 1세(재위 1272-1307), 에드워드 2세(재위 1307-27), 에드워드 3세(재위 1327-77)가 차례로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에드워드 3세에게는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 둘은 어려서 죽고, 다섯이 왕가의 가계를 형성한다.

 

에드워드 3세에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는 이는 첫아들 웨일즈 공 에드워드(1330-1376)의 아들 리처드 2세(1367-1400, 재위 1377-1399)다. 곧 에드워드 3세의 장손인 셈인데, 어려서 즉위하기에 숙부인 랭커스터 공작 곤트의 존(존 오브 곤트)이 섭정을 한다. 리처드 2세는 1389년에 돼서야 성인으로서 독자적인 통치에 나선다. 리처드에게는 곤트의 존 외에 클라런스 공작 라이오널과 요크 공작 에드먼드, 그리고 글로스터 공작 토머스 우드스톡이 숙부로 있었는데, 1397년 글로스터 공작이 그의 사주로 살해당한다. 남은 숙부 가운데 <리처드 2세>에서 주요 역할을 하는 이는 곤트와 요크 공작이다. 전체적으론 리처드 2세가 곤트의 아들로 후일 헨리 4세가 되는 볼링브루크에 의해 왕위에서 밀려나는 이야기가 5막으로 이뤄진 <리처드 2세>의 골자다.


일단 막이 오르면 리처드 사촌이기도 한 볼링브루크가 글로스터 공작의 암살죄로 노포크 공작 토머스 모브레이를 고발한다. 모브레이는 결백을 주장하며 오히려 볼링브루크가 ‘가장 위험한 반역자’라고 맞서며 둘은 결투를 통해서 자기주장을 입증하고자 한다.(1막 1장) 글로스터 공작부인은 시아주버니인 곤트에게 남편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간청하지만 곤트는 신의 대리인(왕)에 대한 복수는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는다.(1박 2장) 이어지는 결투 장면에서 볼링브루크와 모브레이가 막 결투에 임하려는 순간 리처드가 중지시키고 볼링브루크에게는 10년, 그리고 모브레이에게는 영구추방령을 내린다. 하지만 숙부인 곤트가 상심하는 걸 보고서 리처드는 볼링부르크의 추방 기간을 6년으로 줄여준다.(1막 3장) 요크 공작의 아들로 또 다른 사촌인 오멀이 리처드에게 볼링브루크가 추방의 길을 떠났다고 알리고 리처드는 볼링브루크에 대한 경계심을 표한다. 이어서 아일랜드의 반란을 직접 진압하러 나서고자 하지만 재정이 바닥난 상태다. 숙부 곤트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듣자 리처드는 그가 빨리 죽어서 재산을 몰수해 전비를 충당하고자 한다.(1박 4장)

 


1막에서 보여주는 건 리처드 2세의 군주로서의 모습이다. 볼링브루크와 모브레이의 분쟁을 중재하려고 하지만 말을 듣지 않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과인은 명령하도록 태어났지 간청은 못하오”(신정옥) “짐은 탄원하러 태어나지 않고, 지배하러 태어났나니”(김정환) “내가 할 바는 간청이 아니라 명령인 것을-”(이성일) 즉 리처드는 자신이 ‘내추럴 본 킹’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왕이기 때문에 왕”이라는 물신주의적 믿음을 갖고 있는 그가 권력을 남용하는 전횡적 군주 행세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시대는 점차 더 이상 그러한 ‘왕권신수설’이 용인되지 않는 쪽으로 넘어간다.

 

리처드는 곤트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서 자기 잇속만을 챙길 궁리를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대신 가운데 왕권의 신성불가침에 대한 가장 충직한 믿음을 지닌 이가 곤트였다. 제수인 글로스터 공작부인이 동생의 복수를 탄원하면서 “아주버님의 아우가 살해당한 걸 눈감아주시는 건/ 아주버님의 생명을 내어주시는 거와 같아요./ 무도한 살인자에게 아주버님도 살해하라고 일러주는 거잖아요./(...)/ 아주버님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도는 제 남편 글로스터의 죽음에 대한 복수뿐이에요.”(이성일)라고 말하지만 그는 신의 대리인에게 맞설 수는 없다고 답한다. 만약 왕이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심판은 신의 몫이지 신하나 백성들이 나설 일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하지만 그의 믿음은 곧 시험에 처한다.


리처드가 아들 볼링브루크에게 추방령을 내리자 곤트는 크게 상심한다. 비록 그 결정에 자신도 참여하긴 했지만 아들의 죄를 묻는 자리였기 때문에 그는 평판을 염려해서 적극적으로 두둔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돌아온 결과는 아들에 대한 가혹한 징계였다. 비록 추방기간이 10년에서 6년으로 4년이 감형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여생에 견주어 그는 아들을 다시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왕의 말 한마디에 “네 번의 지루한 겨울과 네 번의 흐드러진 봄”이 사라져버리지만 그런 신적인 권능도 유한한 수명을 연장해주거나 죽은 자를 되살리지는 못한다. “전하는 시간을 무거운 슬픔으로 내 살 날을 줄이고, 내게서/ 밤을 앗을 수는 있으나, 단 하루아침도 더해 주진 못하오.”라는 게 곤트의 깨달음이다.


2막은 그러한 깨달음의 자연스런 귀결을 보여준다. 임종의 병상에서 리처드를 맞이한 곤트는 정작 죽어가는 자는 자신이 아니라 리처드라고 말하며 왕의 처사를 무겁게 비판한다. 그가 가장 크게 문제삼는 것은 리처드의 할아버지(에드워드 3세)의 눈으로 볼 때 ‘아들의 아들’이 ‘아들들’을 해한 것이다. ‘아들의 아들’이란 물론 리처드 2세이고, ‘아들들’은 글로스터 공작과 자신을 가리킨다. 글로스터는 리처드에 의해 암살당했고 자신 또한 병상에서 아들을 보지 못한 채 죽어갈 운명이다. 그는 조카 리처드에게 왕으로서의 한계를 직시하라고 충고한다. “폐하는 이제 잉글랜드의 지주일 뿐, 왕은 아니십니다. 폐하의 법적 지위는 법의 노예일 뿐.”(신정옥) “잉글랜드의 지주이다, 지금 그대는, 왕이 아니라,/ 그대의 법적인 지위는 법으로 묶인 노예에 다름 아니야”(김정환) “이제 그대는 영국의 지주이지 임금은 아니오./ 통치권은 이제 토지 상거래법에 종속되고.”(이성일) 곤트의 이러한 충고는 그가 더 이상 왕권신수설의 신봉자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더불어, 곤트의 충고를 묵살하는 리처드의 운명이 결국은 파멸에 봉착하게 되리라는 점을 미리 암시해준다.


곤트가 세상을 떠나자 전쟁에만 정신이 팔린 리처드는 그의 전 재산을 몰수한다. 곤트의 재산은 의당 아들인 볼링브루크에게 상속돼야 하지만 리처드는 그러한 상속권 자체를 일소해버린다. 봉건제의 기본 질서에 도전하는 리처드의 처사에 당장 곤트의 동생인 요크 공작은 “내 얼마나 오래 참아야 하오? 아, 얼마나 오래, 신하 된 처지 때문에 잘못된 일을 내 참아야만 하오?”라며 분통을 터뜨리며 귀족들은 동요한다. 무거운 과세로 평민들의 인심을 잃은 리처드는 이제 귀족들에게도 인심을 잃게 된다. 볼링브루크가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군대를 일으켜 영국으로 들어오자 민심은 자연스레 그에게 쏠리고 리처드의 몰락은 시간문제가 된다.


3막에서도 리처드와 볼링브루크의 대치는 계속되지만 리처드의 주변에는 칼라일 주교와 몇몇 충복만이 남는다. 칼라일은 “두려워 마소서, 전하. 전하를 군왕으로 만드신 바로 그 힘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전하를 군왕이시게 할 힘을 갖습니다.”라고 리처드를 위무하려고 하지만 힘의 현실은 냉혹하다. 그럼에도 리처드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며 다시금 왕권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에 매달리려고 한다. 그것은 곤트조차도 임종을 앞두고 부인한 왕권신수설에 대한 믿음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거칠고 난폭한 바다 물 전체로도/ 기름 부음 받은 왕의 성유를 씻어 낼 수 없는 법./ 세속 인간의 숨으로는 폐위시킬 수 없다/ 주님이 뽑으신 대리인을./ 볼링브루크한테 징집되어/ 짐의 황금 왕관에 사악한 쇠를 겨누는 각각의 한 사람마다/ 하나님은 그분의 리처드를 위한 하늘의 원군을 두고 계시느니,/ 영광의 천사 한 명씩을, 그렇다면 천사들이 싸울 때에/ 연약한 인간은 필멸이라, 하늘이 항상 정의를 수호하시는 까닭이다.”(김정환)

더불어, 그는 왕이란 이름 하나가 2만 명에 버금간다고 스스로를 일깨운다. 하지만 위안은 잠시뿐이고, 국법을 어기는 걸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망설이던 요크 공작까지 포함하여 귀족들이 속속 볼링브루크의 편으로 돌아섰다는 소식을 접하자 그는 전의를 상실한다. 결국 자기 몫을 돌려달라는 볼링브루크와 마주한 리처드는 “사촌 자신의 것은 사촌 것이야, 나도 사촌 것이고, 모든 게 그렇지.”라고 말하며 힘의 차이를 인정하고 왕위를 넘기겠다는 뜻을 표한다.


4막은 리처드가 왕관과 왕홀을 볼링브루크에게 넘겨주는 ‘탈관식’으로 이루어진다. 비록 무능력하고 군주로서 자질이 부족했던 왕이지만 리처드는 왕위를 벗어던지는 이 탈관식 장면에서 오히려 ‘시인’처럼 말하고 주인공의 위엄을 보여준다. ‘슬픔의 왕’이라고 자칭하면서 리처드는 왕관을 물려주는 데 동의하느냐는 볼링브루크의 물음에 “그렇소, 아니오. 아니오, 그렇소. 난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러므로 아니오, 그대를 위해 난 물러나니까./ 이제 날 보시오. 내가 어떻게 날 무화하는지.”라고 답하면서 왕관과 왕홀을 그에게 넘긴다. 그러고는 거울을 가져오게 해 자신의 얼굴을 비춰본다.

 

하지만 그 얼굴에 슬픔이 충분히 새겨져 있지 않은 걸 보고서 거울이 자신을 속인다고 바닥에 집어던지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 얼굴도 영광처럼 부서지기 쉬운 것,/ 저것 보아, 일백 개의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진 걸,/ 말씀 없으신 임금, 잘 새겨두시오, 이장난의 의미를,/ 내 슬픔이 내 얼굴을 얼마나 빨리 깨뜨렸는지.” 리처드는 거울을 깨뜨리면서 스스로 자명하게 생각했던 ‘리처드=왕’이라는 등식도 깨뜨리게 된다. 그는 그 스스로 왕이었던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왕으로 모셨기 때문에 왕이었다. 따라서 왕위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가변적인 사회적 관계의 산물로서 자의적인 것이다. 이것을 왕이란 기호가 갖는 자의성에 견줄 수 있을까.


박우수 교수는 <역사극>에서 <리처드 2세>을 일부 연구자들의 견해를 좇아 ‘언어극’으로 파악한다. 여기서 대립되고 있는 것은 언어가 특정한 대상을 일대일로 지칭한다고 보는 ‘언어적 실재론’과 언어란 자율적인 기호체계에 불과할 뿐이라고 보는 ‘언어적 유명론’이다. “언어적 실재론과 언어적 유명론은 역사적으로 늘 공존해 왔지만 거칠게 구분하자면 중세에는 실재론이 우세했으며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는 유명론이 우세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2세>에서 서로 대립하는 두 인물인 리처드왕과 볼링브루크는 각각 실재론과 유명론을 대변하는데, 극중에서 볼링브루크가 승리함은 중세에서 근대로, 봉건제에서 초기 자본 축적기로 역사적 힘이 전이되고 있음을 상징한다.”(<역사극>, 59쪽)


언어적 실재론과 유명론의 대립은 4막에서 리처드가 거울을 깨뜨리는 장면에서 무화된다. 언어와 세계 사이의 자명한 대응관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언어 게임 혹은 연기의 산물이다. 5막에서 폼프레트 성에 유폐된 리처드의 모습은 언어 유명론자의 그것이다. “이렇게 난 혼자서 여러 사람 노릇을 하는데,/ 그 어디에도 만족하지를 못해./ 어떤 때는 왕이 되는데, 반역 행위들을 떠올리면, 내가 거지였더라면 하는 마음 들고,/ 실제로 거지인 걸- 그러다가 견딜 수 없는 궁핍 앞에선/ 역시 임금이었을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면 다시 왕이 되고-” 결과적으론 죽어서 평온함을 가질 때까지 그 무엇으로도 만족할 수 없게 된다는 결론에 그는 도달한다. 마치 그러한 결론에 부응하듯이 그는 볼링브루크에게 환심을 사려는 엑스턴에게 곧 살해당하고 만다. 비록 자신의 암시를 실행한 암살이었지만 볼링브루크는 엑스턴을 보상에게 내리지 않으며, 속죄를 위해 성지 순례를 떠나겠다고 밝히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

 

(...)

 

13. 0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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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에 실은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 스튜어트 머레이의 <도서관의 탄생>(예경, 2012)에 대한 서평을 제안받고 쓴 것이다. '문명의 기록과 인간의 역사'는 그 부제. '일러스트판 도서관의 역사'로 분류될 만한 책으로 도서관의 역사 5000년을 일람할 수 있다.

 

 

중앙일보(13. 01. 19) 철강왕 카네기가 도서관 2500곳에 돈 낸 까닭은…

 

‘아름다움과 달콤함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피난처’라면 어떤 곳이 떠오르시는지. 많지는 않겠지만 ‘도서관’이라고 답하는 분이라면 헨리 베일리와 뜻이 같다. 미국의 저명한 사서였던 그는 『도서관 사색』에서 “이곳에서라면 근심을 잊을 수 있고 영혼도 쉼을 얻을 수 있다”고 적었다. ‘이곳’은 물론 도서관이다. 전문 저술가 스튜어트 머레이의 『도서관의 탄생』은 바로 그 도서관의 역사를 다양한 도판을 곁들여서 들려준다.

독서의 역사가 책의 역사와 겹칠 수밖에 없다면 도서관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점토판에 철필로 쐐기문자를 새겨 넣은 최초의 책이 5000년 전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만들어졌고, 시리아 남부 에블라 유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도서관 또한 이 점토 서판을 보관한 곳이다. 무려 2만여 개의 서판이 마치 철해놓은 카드처럼 차곡차곡 쌓인 모양으로 발굴됐다.

기원전 7세기에 부강했던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네베에서도 아슈르바니팔 왕의 서재가 발굴됐는데, 방대한 서판과 낱장이 항목별로 분류된 왕립도서관이었다. 카탈로그까지 갖춘 명실상부한 ‘최초의 도서관’이다. 고대부터 도서관은 지식과 지혜의 요람으로 숭배됐고 책과 도서관을 관리하는 자는 고유한 권력을 가졌다. 기원전 300 년에 설립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최대 40만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곧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독교가 부흥하면서 로마시대의 많은 장서가 이교도의 가르침이라는 이유로 파괴되긴 했지만 책이 신앙심을 전파하는 유효한 수단으로 간주되면서 도서관은 중세에도 살아남았다. 비잔틴제국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책을 다량의 두루마리로 소유했고 아랍과 페르시아 도서관으로 수출까지 했다. 중세에 도서관을 겸했던 수도원에서는 주로 수사들이 필경사이자 제본사가 돼 책을 만들었는데, 필경사 한 명당 일 년에 평균 두 권을 필사했다고 한다. 그 일이 너무 고되 필경사의 후기는 대부분 “끝났다! 아, 고맙습니다”였다.

그렇게 귀한 책이었기에 책 도둑은 살인자, 혹은 신성 모독자로 간주됐고 최악의 저주가 퍼부어졌다. “이 책을 훔치거나 빌렸다가 돌려주지 않는 자의 손에서 책은 뱀으로 변해 그를 갈기갈기 찢어놓으리라”로 시작해서 “책벌레가 그의 내장을 갈아먹고 지옥의 불꽃이 그를 영원히 태워버리리라”로 끝나는 저주가 도서관에서 널리 쓰였다고. 요즘은 매주 쏟아지는 책만큼 흔한 것도 많지 않으니 책과 도서관의 역사라는 관점에서만 보자면 인류사는 거대한 진보의 역사다.

그렇다고 그런 진보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저자가 아무래도 다른 지역보다 자세히 다룬 미국 도서관의 역사를 보면, 미국 독립선언서의 초안자인 제퍼슨이 당대의 장서가로서 국회도서관 설립에 큰 기여를 했고, 철강왕 카네기는 무려 2500여 곳의 도서관 건립을 후원함으로써 공공도서관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카네기는 평생 자기 재산에 90%를 사회에 기부했는데, 어릴 때 한 개인도서관에서 꿈을 키운 그에게 도서관 건립 사업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회사업이었다.

책 서두의 추천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도서관 이용자와 대출건수가 10% 이상 증가했다 한다. 미국을 버텨주는 힘은 군사력이 아니라 도서관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도서관 강국’이라면 우리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13. 01. 19.

 

 

 

P.S. 세계도서관에 대한 소개도 책에는 곁들여져 있는데, 분량상 기사에서는 언급하지 못했지만 유종필 전 국회도서관장의 <세계 도서관 기행>(웅진지식하우스, 2012),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들의 <북미 도서관에 끌리다>(우리교육, 2012)도 겸해서 읽어볼 수 있다. 우리 도서관에 대해서는 강예린/이치훈의 <도서관 산책자>(반비, 2012)가 가이드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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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주말판에서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오랜만에 차례가 돌아왔는데, 막상 아이템을 고르는 건 쉽지 않아서 고심 끝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대해 한번 더 의견을 적었다(<데미안>에 대한 기본 생각은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오월의봄, 2012)에 수록돼 있다). 요즘 새번역본이 계속 더해지고 있어서 새롭게 작품을 만나는 독자들에게 참고가 될까 싶어서다.

 

 

한겨레(13. 01. 19) 살육이 영혼의 발산?…데미안을 대하는 서먹함

 

헤르만 헤세의 독자들에겐 반가운 일일 테지만 연초부터 헤세의 작품이 앞 다투어 출간되고 있다. 1962년에 세상을 떠났기에 사망 50주년까지 보호받는 저작권이 작년에 만료됐고 올해부터는 저작권 없이도 출판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유난히 국내에서 많이 읽히는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를 필두로 여러 작품이 새 번역본을 얻었고 앞으로 더 얻을 전망이다.

이미 많은 번역본이 나와 있지만 개인적으로 새 번역이 궁금했던 작품은 <데미안>이다. 중학생 때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서 십대 시절 ‘내 인생의 책’으로 꼽기도 했지만 <데미안>과는 좀 서먹한 관계였고 성인이 돼 다시 읽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전영애 옮김·민음사)라는 유명한 구절을 읽어도 주인공 싱클레어처럼 ‘깊은 생각’에 빠지진 않았다. 신의 이름이 ‘아프락사스’(안인희 옮김·문학동네)나 ‘아브락사스’(김재혁 옮김·고려대 출판부)로 바뀌어도 신에 대해서나 그 새에 대해서 모르는 건 싱클레어나 우리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서문에서 헤세는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라고 했으니 욕심은 금물이다.

<데미안>의 핵심 메시지는 서문에 나오듯이 “모든 사람의 삶은 제각기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안인희)일 것이다. 그럴듯한 주장이지만 불편한 것은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쓰인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자기발견이 전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싱클레어는 인간이 이상을 위해 사는 경우가 극히 드물지만 전장에서는 많은 사람이 이상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다는 걸 발견한다. 다만 그 이상은 각자가 자유롭게 선택한 이상이 아니라 공동의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진다. 획일화된 공동의 위험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운명의 의지에 다가가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서 많은 이들이 죽어갔는데, 그들의 증오와 분노가 대상과는, 곧 적과는 무관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럼 무엇인가.

“피비린내 나는 이들의 과업은 단지 영혼의 발산, 즉 자체 분열된 영혼의 발산이었으며, 이 영혼이 날뛰고 죽이고 섬멸하고 죽고자 했던 까닭은 새로 태어나기 위함이었다.”(김재혁) 곧 싱클레어는 전장에서의 죽음을 거대한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는 몸부림으로 본다. 알은 세계이기에 세계는 부서져 산산조각이 나야 했다. 그렇다면 세계에 대한 투쟁의 기회로 전쟁보다 맞춤한 것은 없으리라. 이것을 전쟁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부여로 읽는 것은 과도한 해석일까.

아이러니한 것은 헤세 자신이 반전론자였다는 점이다. 서문에서도 그는 “지금은 각각 하나하나가 자연의 단 한번뿐인 소중한 시도인 인간들을 무더기로 총으로 쏘아 죽이고 있다”고 적었다. 이것이 조금이라도 비판적 의미를 갖는다면, 전장에서의 살육을 새로 태어나기 위한 영혼의 발산으로 보는 관점과 양립하기 어렵다. “오늘날에는 인간이 대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드물다”면서 헤세는 스스로도 “나 자신이 무언가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헤세에게 너무 많은 걸 물어보는 것은 욕심일 듯하다.

 

13. 0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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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010호)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인문학자 김영민의 <당신들의 기독교>(글항아리, 2012)가 내가 고른 책이다. 언론에서 많이 다룬 책이어서 중복의 감이 없지 않지만, 여하튼 내가 갖고 있는 책 몇 권 가운데서는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다루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주간경향(13. 01. 22) 한국기독교 어긋남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인문학이란 세속의 어긋남에 대한 관심이기에 그 노동을 ‘어긋냄’이라고 일컫는 인문학자 김영민의 <당신들의 기독교>(글항아리)는 기독교에 대한 어긋냄의 산물이다. <세속의 어긋남과 어긋냄의 인문학>에 적은 그의 표현으로는 “어긋남의 구조를 통새미로 알면서도, 그 두루 아는 것을 죽인 채 외려 모난 일을 찾는 것”이 어긋냄이다. 기독교의 어긋남의 구조에 대해서 통새미로 아는 그이지만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한국 기독교의 ‘모난 일’들을 들추며 10명의 신자에 대한 스케치와 함께 인문적 성찰을 포개놓는다.

등장인물이나 사건은 온전한 사실도 허구도 아니며 취지에 맞게 재구성해 놓았다고 미리 밝히고 있지만, 책을 관통하는 건 구체적인 사례들이 보여주는 리얼리티의 힘이다. 가령 “A는 기독교인이다. 그는 적어도 지난 10년간 한 차례도 주일 대예배에 빠진 적이 없으며, 40대의 문턱을 넘어서면서부터 십일조가 성에 차지 않아 십이조(十二組)를 한 지도 7년째에 접어든다”거나 “B는 기독교인이다. 그녀는 교회 권사직에다 봉사부장까지 맡아 충량하고 열성스럽게 신앙생활을 하는 70대 노파다. 노령에 이르러서도 기세가 등등한 그녀에게는, 젊어 청상(靑孀)이 된 채 남자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궁핍하지만 당당하게 살아온 전력이 온몸에 서슬 퍼렇게 드러난다” 같은 구체적 서술은 현실감을 전달한다. 물론 ‘독실한’ 신자들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목사이면서 대학에서 성서를 강의하는 성서학자이지만 동시에 강남의 룸살롱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 소문난 오입쟁이 C 등도 ‘기독교인’이다. 이들이 모여서 얼추 한국 기독교인의 총체적 신앙생활을 구성한다. 저자가 이름 붙인 바로는 ‘당신들의 기독교’다.

무엇을 어긋내고자 하는가. 몇 가지 어긋남의 지점이 있다. 먼저, 사유(공부)의 부재.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공부를 매개로 신앙과 신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얻은 뒤에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학을 동원한다. 신앙의 ‘주체화’에 이르는 노역이 신앙의 알짜이지만 그것이 생략되거나 부족한 것이 ‘당신들의 기독교’다. 그리고 가족주의. 예수의 급진성은 그의 탈가족주의, 곧 “네 가족을 버리고 내게로 오라”는 메시지에 담겨 있지만, “21세기의 한국 개신교회는 예수의 첫닭울이와 같은 메시지를 까마득히 잊은 채” 가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만을 강박적으로 붙들고 있다고 저자는 일갈한다. 거기에 자본과의 결탁도 빼놓을 수 없다. “국가는 대자본의 현실을 돕는 안전망이자 심지어 여리꾼 노릇을 하고, 종교는 자본의 성취와 번영에 대해 뒷북을 치며 축복”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즉 ‘카이사르냐 예수냐’가 아닌 ‘카이사르=예수’가 자본주의 시대 기독교의 정식이 돼버렸다.

‘당신들의 기독교’는 초기 교회와 같은 ‘절실한 약자들로 구성된 희망의 공동체’가 아니라 자신들의 사적 욕망을 ‘소망’이라 부르면서 사회적 강자와 부자들이 자본제적 세속의 성취와 권리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종교다.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를 부인하는 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은 마치 예수를 잡아먹은 허깨비들의 장송곡처럼” 들린다고까지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당신들의 기독교’와 단절할 수 있는 길인가. 저자는 쓰레기통의 파리떼처럼 번성하는 신자가 아니라 제자의 길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제자란 “타자성의 소실점을 향해 몸을 끄-을-고 다가서는 검질기고도 슬금한 노력”이다. 그것이 ‘예수의 희망’이다. 물론 불가능에 가까운 희망이다. 예수의 제자로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는 생활양식의 실천을 오늘날 더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래밭에 숨은 바늘을 돼지 뒷다리로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노릇”이 되었다는 게 저자의 토로다. 하지만 예수의 삶 자체가 그런 불가능한 꿈을 지핀 삶이 아니었던가. 그의 삶과 ‘당신들의 기독교’가 어디에서 어긋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13. 01. 16.

 

 

 

P.S. 최근에는 무함마드와 이슬람 관련서들을 모으면서 덩달아 예수와 기독교에 관한 책에도 눈길을 주게 됐는데, 오늘 탐을 내고 있는 책은 한스 큉의 저작들이다. 특히 방대한 분량의 <그리스도교>(분도출판사, 2002)와 <한스 큉의 이슬람>(시와진실, 2012)이 욕심을 내게 한다. '당신들의 기독교'가 아닌 기독교의 본질과 이슬람의 본질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절판되기 전에 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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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한차례씩 연재하는 프레시안의 '3인 1책 전격수다'를 발췌해 옮겨놓는다(전문은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30111113847§ion=05 를 참고하시길). 지난 연말에 가진 좌담에서 다룬 책은 존 그레이의 <불멸화 위원회>(이후, 2012)였다.

 

 

 

프레시안(13. 01. 11) 냉동된 지도자의 시체…그는 신이 되려 했다!

 

(...)

 

이권우 : 영국에서의 심령주의는 다윈주의 충격에 대한, 과학으로 무장한 세속주의의 대응 같아요. 구체적으로 34쪽을 보면 "인간과 지각 능력을 가진 모든 존재들이 그토록 기나긴 진보의 과정을 기껏 거치고 나서 완전히 소멸할 운명에 이른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생각이다. 하지만 인간 영혼의 불멸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 세계의 소멸이 그리 끔찍한 전망으로 여겨지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나오죠. 이 구절이 영국 심령주의자들의 기본적 속성 같아요. 우리 육체가 불멸한다는 게 아니라 영혼이 사후에도 지속된다는 것, 이 사후에 지속하는 영혼이 계속 진화한다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19세기 말 고전학자 프레더릭 마이어스는 "과학은 죽는다는 것이 '더 이상 물리적인 재앙으로 중단되지 않고 무한히 먼 목적을 향해 계속 움직여 나가는 도덕의 진화 과정' 상에 있는 한 사건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줄 터"라는 믿음을 가졌지요. 심지어 본인이 죽기 전에 봉인된 편지를 친구에게 남기고, 나중에 유령이 되어 영매를 통해 그 편지와 똑같은 내용의 신호를 보내겠다고 했죠. 결국 같지 않다는 게 드러났지만.(웃음)

 

김용언 : 영국 심령주의자들의 한계는 엘리트라는 데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다들 좋은 가문 출신의 학자, 교수, 물리학자, 작가 등이었지요. 이 사람들이 꿈꿨던 사후 세계라는 게, 자신들의 그 좁은 귀족 그룹 이외의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잖아요. 상류층 사람들이 그 상류층의 삶을 사후에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갖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이미 19세기 말에 이르면 자신들이 누려왔던 특권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어떻게든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었을 텐데, 자신의 계급이 사라지고 있다는 상황에 대한 불안한 예감도 심령주의 부흥에 크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이권우 : 맞습니다. 101쪽에 보면 유령과의 교차 통신에 '정신적 우생학' 실험이 포함되잖아요. 우생학은 결함을 없애는 걸 목표로 하는 학문입니다. 심령학자들은 사후 육신에 결함이 없을 거라고 믿었고요. 그러니까 양쪽 모두 과학의 어떤 성과를 받아들이면, 인류가 과거에 발생한 그 어떤 수준보다도 더 높이 다다를 수 있다고 믿었다는 거지요. 우생학이 대체로 엘리트 중심이고 지배권력 중심이다 보니까, 심령주의에 빠진 인물들도 엘리트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영국인들의 불멸의 꿈은 엘리트 중심 우생학이 심령주의와 얽히면서, 다윈의 결과를 왜곡시키고 그에 저항하려 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이현우 : 이 책에선 영국과 러시아의 공통점으로 진보에 대한 관념을 꼽지요. 지금이야 모두들 진보와 진화가 다르다고 얘기하고, 진화의 동력이라는 건 우연하게 환경에 적응하는 계기에 따라 진행된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죠. 당시에는 그런 관념을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독교적인 관념 자체를 전부 폐기하지 못했지요.

 

러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러시아에선 마르크스적인 진화론을 종교적 관념과 결합시켜요. 부르주아 사회가 폐기된 이후에 새롭게 도래될 사회라는 건 그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사회이고, 그 사회주의적 인간 자체도 훨씬 더 나은 인간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팽배합니다. 흥미로운 건 '더 나은 인간'의 조건 중 하나가 죽지 않는 존재여야 한다는 겁니다. 러시아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도 얘기했지만, 죽음은 부르주아적인 것으로 간주됐어요.

 

이권우 : 책 53쪽에 보면 그렇게 왜곡된 방향으로 대중화된 진화론에 대해 나옵니다. "진화에 완전함을 향해 가는 경향이 내재"되어 있으며 "진화는 하등한 생명 형태에서 고등한 생명 형태로 가는 과정"이라는 속설 말이죠. 그걸 퍼뜨린 대표적 인물이 허버트 스펜서와 프랑스의 생물학자 라마르크라고 지적합니다.

 

이현우 : 오늘날에도 통속적으로 많이들 그렇게 오해를 하지요. 라마르크 식 유물론, 스펜서 식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요. 보통 우파 이데올로그들도 적자생존이 진화의 핵심이라고 주장하잖아요. 이 라마르크 진화론은 러시아의 스탈린 시대에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수용됩니다. 책에 언급된 유명한 예로 농학자 트로핌 리센코가 나오지요. 사실 다윈 식 진화에는 이념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어요. 하지만 인간이 의도적으로 개입하여 자연의 유전적 특성을 바꾸면서 개선시키고 발전시킨다는 노력에 라마르크 식 진화설이 잘 들어맞기 때문에, 리센코는 바로 그 라마르크 식 진화론을 채택합니다.

 

다윈주의 진화론을 신봉했던 생물학자들은 리센코의 정적으로 간주되어 전부 숙청당해요. 특히 세계적인 육종학자였던 니콜라이 바빌로프도 그 와중에 희생당하고요.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심각한 식량난을 해결을 못 했고, 소련의 생물학은 약 30년 동안 퇴보 상태에 머무릅니다. 이념적으로 옳은 것, 이념적으로 받아들이기 좋은 것, 실제 과학적 진실 사이에는 간극이 있는데, 그 중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했을 때 얼마나 큰 재앙의 결과를 맞게 되는지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러시아 작가 보이노비치의 소설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아마추어 생물학자인 한 등장인물이 육종 개량 시험을 하는데, 그 프로젝트 이름이 '사회주의로의 길'이에요. 토마토 줄기에 감자 뿌리를 결합시켜 아래는 감자가, 위에는 토마토가 열리게 하는 거죠. 절반의 성공을 거둡니다. 감자 줄기에 토마토 뿌리로.(웃음) 현실 사회주의 실험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는 동시에 리센코주의의 비판이기도 해요.

 

이권우 : 방향이 자연스럽게 러시아 쪽으로 넘어왔는데요, 러시아의 불멸의 의지에는 건신주의(建神主義)가 결합되어 있다는 얘기가 나오지요. 건신주의가 정확히 어떤 건가요?

 

이현우 :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신을 만들어야 한다' 내지는 '우리가 신이다'라는 믿음입니다. 그게 함축하는 바는 '신이 아니면 인간도 아니다'라는 거지요.(웃음) 바로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강철 인간' 정도는 돼야죠.

 

러시아 혁명기 때 문화적으로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가 '새로운 인간'이었어요. 어떻게 '새로운 인간'이 될 것인가, 내지는 어떻게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낼 것인가. 이건 니체 식 초인(위버멘쉬)이기도 합니다. 1900년대 초 러시아에서 니체주의가 굉장한 반향을 얻었어요. 그들을 매혹시킨 건 초인 혹은 새로운 인간에 대한 관념이었고, 볼셰비키 역시 모든 인민이 새로운 인간으로 개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혁명 이후 무자비한 학살 내지는 죽음에 대한 방조가 벌어진 상황의 이념적 배경은 바로 그겁니다. 레닌과 트로츠키, 스탈린 모두 공통적으로 대단히 무자비했습니다. 특히 농민 계급에 대해서요. 우크라이나 대기근 때 500만 명 이상이 아사했는데 죽어 마땅하다며 일부러 방치했어요.

 

이권우 : 러시아 혁명사를 살펴보면 혁명 이후 농민들이 식량을 안 내놓았잖아요. 그 문제와 관련된 조치였던 건가요?

 

이현우 : 그렇진 않습니다. 농민은 노동자들과 다르게 취급되었어요. 러시아 혁명 자체가 노동자들의 연대 혁명으로 설명됩니다. 깃발에도 망치와 낫이 그려져 있잖아요. 망치가 노동자 계급을 상징하고 낫이 농민 계급을 상징해요. 볼셰비키 혁명가 내에는 노동자들이 많이 포함되었지만, 국민 전체적으로 봤을 때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었어요. 그들만으로는 러시아 사회 전체를 전복할 수 없기 때문에 농민들의 연대가 필요했던 거죠.

 

당시 농민들이 혁명에 동조했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이런 거예요. 그동안 귀족 계급에 예속되어 자기 땅을 가질 수 없었거든요. 농노 해방 이후에도 남의 땅을 부치는 소작농을 전전했는데, 세상이 바뀌면 자기 땅을 소유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에 동조했던 겁니다. 하지만 혁명이 일어나고 난 뒤에는 상황이 달라져요. 부농을 러시아 어로 '쿨락(kulak)'이라고 하거든요. 주먹을 뜻하는 '쿨락'에서 나온 말이지요. 무얼 쥐고 있는 계급이에요. 바로 농민들의 땅에 대한 기본적인 소유욕을 뜻하는 것이고, 그런 본성으로는 새로운 인간이 될 수가 없다는 주장이 대두됩니다. 결과적으로 농민은 새로운 사회의 적으로 간주되고 치밀하게 척결이 추진됩니다.

 

일단 계급을 나눠요. 부농, 중농, 빈농. 맨 처음엔 부농 척결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어요. 그런데 기준이 참 애매합니다.(웃음) 자기가 경작할 수 있는 이상의 땅을 소유하고 있으면 무조건 부농입니다. 작으나마 자기 땅을 가졌거나 말 한 필이라도 소유하고 있으면 무조건 중농입니다. 빈농은 진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이고요. 나중에 빈농 빼고 대부분이 계급의 적으로 타도 대상이 돼 숙청당합니다. 소유욕은 부르주아적 근성이며 이기적 본성이고, 그런 본성을 다 제거해야만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인민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권우 : 이 건신주의라는 게 러시아의 전통적 영지주의와 관련 있다고 나오는데요. 여기에는 어떤 배경이 있나요?

 

이현우 : 러시아 종교철학자 중 니콜라이 표도로프(책에는 페도로프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원발음은 표도로프이다.-편집자 주)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이 사람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불멸화 위원회> 186쪽에 잘 나오는데, 표도로프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임무는 모든 죽은 자들, 우리가 잃은 모든 사람들, 우리의 아버지들과 선조들을 그들의 아들로서, 그들의 후손으로서, 우리가 되살려 내는 것"입니다. 영국하고 좀 다르게, 영혼만 계속 존재하는 게 아니라 육신까지도 되살릴 수 있다고 하지요. 이런 러시아 정교가 사회주의와 결합했을 때,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부활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게 되죠.

 

인간을 극대화하고 과대평가하면 '인간은 신'이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잖아요. 인간은 신에 가까워지는 존재다, 신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신이 되어야 한다는 관념이 생겨나요. 상대적으로 평균적 인간에 대한 과도한 비판이 생겨나고요. 아이러니합니다.

 

 

자본주의의 강점은 인간에 대한 과소평가입니다. 인간은 다 하찮은 존재들이고 굉장히 속물적이고 천박하고 이기적인 존재라는 관념. 한편 이게 자본주의의 성공 비결이기도 하죠.(웃음) 반면 사회주의는 인간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바람에, 현 수준의 인간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고 강철 같은 인간, 새로운 인간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 중 대표적 사례가, 이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노동 영웅 운동이지요. 스타하노프 운동 같은 것이요. 스타하노프는 탄광 노동자였는데 열 몇 명 어치의 일을 혼자 해냈어요. 사회주의에는 인센티브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혼자 대가 없이 그런 일을 해냈다는 점 때문에 인민 영웅이 되고 다른 노동자들의 모범이 됐죠. 당신이 스타하노프처럼 탄을 못 캐내는 건 열의가 부족해서고 당성이 부족하고 혁명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근거가 가능해집니다. 새로운 착취의 방식이죠. 너는 이렇게 대단한 걸 할 수 있는 존재라면서 거꾸로 인간에 대한 굉장한 억압을 가하는 겁니다.

 

(...)

 

13. 0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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