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장마 시작,
제주 비바람이 불던 아침, 동생은 포기하고 그냥 가는게 낫겠다는 눈치를 계속 보여서 내가 디엔에프의 ㄷ만 꺼내도 집에 갈 기세였지만, 런친자들이 비바람에도 즐겁게? 몸을 풀고 있는데 그 중 하나라는 것이 멋있고, 기상 악화는 트레일 러닝의 묘미가 아닌가 싶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포기할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근데, 날씨 좋았으면, 컷오프 타임 내에 완주 못할뻔. 이전과 같은 코스인 줄 알았더니, 뒤에 산이 하나 더 있어서, 나는 이미 평지에서 에너지 다 소모했건만, 산이 하나 더 나와서 ..
4월 첫 대회 참가 이후 꾸준히 훈련했고, 4월 대회 코스라면, 시간 단축도 노리고 있었는데, 산이 하나 더 생겨서 정상적인 날씨라면 컷오프 타임 못 맞췄을 것 같다. 지난 번에 꼴지로 2시간 20분만에 들어갔고, 이번에도 꼴지로 3시간 20분만에 들어갔다. 기상 악화 때문에 길이 험해져서 컷오프 타임이 없는 경기였다.
아니, 그래도 천 명 가까이 신청하는 큰 대회인데, 어떻게 내가 두 번 다 꼴지냐. 아니, 내가 잘 달리는건 아니고, 순위권도 아니고, 내 소박한 목표는 항상 컷오프 타임내 부상 없이 완주이긴 하지만, 두 대회 연속 꼴지라니 좀 이상하잖아.
이번 대회에서 날씨 때문에 포기하고, 중간에 돌아온 사람들이 330여명이라서 내가 570등 하긴 했다.
지난번 대회도 100명 정도는 안 오거나 중간에 포기.
진흙길은 갯벌같이 발이 푹푹 빠졌고, 미끄러졌고, 발목까지 물이 오기도 했고, 지난 번에 돌 밟고 건넜던 곳을 이번에는 물이 불어 허벅지까지 오는 곳에 입수해야 했고. 나는 진흙 내리막에서 한 번, 진흙 물에서 한 번 두 번 넘어졌고, 다들 넘어지고 자빠지고 엉덩이로 내려오면서 진흙투성이로 걷고, 달리고, 올라가고, 내려갔다.
아니, 근데, 이번에 내가 꼴지인건 이해 간다. 이런 날씨에 달리는 다람쥐 염소들과 인간 초보 러너가 달리는데, 인간이 질 수밖에.. (아님)


발톱 주위로 흙타투가 새겨져서 씻어도 반신욕해도 바스타월로 박박 문질러도 안 지워져 ㅎㅎ
내가 이꼬라지인걸 모르고, 커피 픽업하러 송당 스타벅스 리저브에 들어갔다. 안 쫓겨난게 다행.
아, 다리는 물티슈로 벅벅 닦고 갔어. 신발도 다른 신발로 갈아신고.

이거 트하르방이라고 하더라고. 트하르방 친구 생겼다.
10월에 20키로 나가면, 하나 더 생긴다. 올해의 업적으로 트하르방 삼총사.
이번에 마지막 산 넘으면서, 오르막 계단이 정말 끝도 없어서, 영혼이 약간 탈출한 상태로 올라갔는데, 양쪽으로 산수국이 너무 예뻤고, 진한 꽃향기가 공기중에 흘렀다. 내가 죽어 극락인가. 하면서 끝없이 오르고, 나중에는 끝없이 내려갔다. 물론 언제나 끝은 있다. 땅은 질었지만, 비도 그치고, 전혀 덥지도 않았다. 유일한 목표는 안전히, 부상 없이 완주였다.
훈련하고, 좀 더 잘 달리게 되어 더 잘 할 줄 알았는데, 기상악화와 코스에 나타난 산 (대록산, 큰사슴이오름) 때문에 온 몸의 힘을 짜내고, 짜내서 완주했다.
근래 저강도 훈련도, 고강도 훈련도 하고 나서 컨디션 저하 없었는데, 이번에는 온 몸이 아주 그냥, 동생 말로는 근신경계 타격 와서 그렇다며 리커버리 달리기 못하겠으면 걷기라도 하라고 두 번이나 전화왔지만, 일요일의 나는 존재 자체가 힘듦이었다고.
하지만! 너무 뿌듯한 트하르방! 그리고, 달리기 코스!
강아지 달리기 코스를 얻었다!

강아지 러닝 코스를 위해서라면, 대록산쯤 오를 수 있지!
집에 와서 아이스젤로 냉찜질 하고, 운동화 빨고 (흙이 끝도 없이 나옴) 옷 빨고, 저녁 먹고, 반신욕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두 시간에 한 번씩 낑낑대며 깼다. 발, 종아리, 허벅지, 엉덩이 아파서. 아침에 일어나니 아픔이 전신으로..
같이 뛰었는데, 동생은 아무렇지도 않고.. 아, 얼른 러너의 몸이 되어야 해.
어제 드디어 리커버리 달리기 30분 느릿느릿 했다. 오늘은 한 시간 할 수 있길.
대회 전 후로 방학하면서 서너시간 일하던 내가 여덟,아홉시간으로 늘려 일하게 되어서 적응 못하며 모든 루틴을 내려 놓은 상태다. 내일부터는 조정 가능한 한가한 방학으로 복귀. 잘 먹고, 잘 읽고, 잘 달리고, 줄넘기랑 슬로 버피도 꾸준히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