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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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조제는 열린 창문 앞에 앉아 있었다. 날씨가 감미로웠고 그녀는 자크가 입구에 자기 외투를 던진 뒤 거실로 급히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 억누를 수 없는 미소가 그려졌다. 자크가 그녀를 보면서 걸음을 멈췄다. 거의 슬픔에 가까운, 그녀와 똑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마침내 그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가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거리인 세 발자국을 걷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키가 크고, 조금 바보 같고, 화를 잘 내는 그를. 그리고 그가 그녀를 품에 안고 있는 동안, 그녀는 재빨리 손을 그의 머리카락 속에 넣은 채 이런 생각 말고는 다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난 그를 사랑하고, 그는 나를 사랑해. 이건 믿기 힘든 일이야.' 그때부터 그녀는 무한히 조심스럽게 숨을 쉬게 되었다. 

 
   

 오래간만에 읽는 사강의 소설이다. 사강의 소설에는 뭐랄까, 나는 사강을 좋아합니다. 라고 말하기 민망한 길티 플레져가 있다. 그건, 그녀의 말랑말랑한 문장들 때문일까, 포스트잇정도의 떼어내도 별 자욱 안 남는 끈적한, 관계들 때문일까, 아니면, '슬픔이여, 안녕' 을 줄곧 헤어질때의 인사로 알고 있다가, 만날때의 인사라는 걸 깨닫고 괜시리 혼자 배신감을 느꼈던 10대때 그녀를 처음 과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일까. 무튼, 사강은 나에게 그렇다. 프랑스 여자에 대한 동경을 내 마음 깊이 심어준건, 아마 뒤라스보다는 사강이었으리라.

이 소설속의 남녀들의 관계를 보자니, 얽히고 설킨 실타래가 떠올랐다. A는 B를 좋아하고, B는 C를 좋아하고, D는 A를 동정하며, B를 좋아하고, 등등등  

사실, 이런 복잡한 관계가 나에게는 더 당연하게 느껴진다.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기가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마침, 그 사랑에 빠진 사람도 나를 사랑할 확률은 나에게는 로또 확률, 사기 확률이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또 무슨 헛소리냐, 고 한다면, 또 다른 사랑에 대한 통념,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덜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고 반박하고 싶다.  

무튼, '사랑= 병'이라고 생각하는데, 지나고 나면, 그것을 '사랑'으로 미화하거나, '사랑'이 아니였다고 부인하거나 그 두 초라한 옵션외에 다른 어떤 옵션이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한 달 후, 일 년 후, 우리는 어떤 고통을 느끼게 될까요?
주인님, 드넓은 바다가 저를 당신에게서 갈라놓고 있습니다.
티투스가 베레니스를 만나지 못하는 동안,
그 얼마나 많은 날이 다시 시작되고 끝났는지요.  

라신 <베레니스> 1670中  
 

제목인 '한 달 후, 일년 후'는 라신의 1670년 희곡 <베레니스>에서 따온 말이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헤어짐의 고통' 을 이야기한다.   

... 이야기하나? 한 달 후, 일 년 후, 오 년 후, 십 년 후... 
'어떤 고통'은 점점 스러지고 바래져서 재가 되어 존재했다는 기억만이 남을 것이다.  

작품 속의 남녀는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지만, '타협'도 한다.  
안 그래도 사랑=병=독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한껏 시니컬한 마음을 심어 준 이야기.   

작품 속에서 소설가인 베르나르와 의대생인 자크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조제는
일본 소설/영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그 조제라고 한다. 여주인공이 좋아하는 주인공이었다나.

니콜, 파니, 베아트리스, 조제. 이 책에 나오는 여주인공들의 이름이다. 각기 다른 사랑, 이별, 타협을 하는.
아직 읽어보지 않은 그 일본 소설 속의 여주인공이 조제를 좋아했단 말이지. 조제를 좋아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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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3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03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Joule 2009-11-03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사강을 좋아합니다. 라고 말하기 민망한 길티 플레져"라니 근사한데요.

카스피 2009-11-03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소와즈 사강이라 이분이 그 옛날의 사강인가요??? 이제는 많이 늙으셨을텐데 사진은 아마 젊었을적 사진 같군요.
전 이 사강보다는 탤렌트 사강이 더 좋았답니다.텔 사강도 이젠 품절녀지요 ㅜ.ㅜ

2009-11-03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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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중학교 담임선생님이 종업식날, 아이들에게 ' 이 안에 내 아이를 살해한 사람이 있습니다' 라는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이야기는 선생님(살해당한 아이의 엄마), 학생A,B, 그 반의 반장 등 사건관계자들의 눈에 비추어진 사건의 모습을 이야기하며, 첫장의 충격적인 '고백'에 나타난 살인의 진상에 대해 밝혀나간다.

서술트릭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마지막의 반전을 반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정도로 뒷심이 부족하다. 여러명에 의해 각자의 눈으로 본 사건의 퍼즐이 맞추어나가는듯 하지만, 너무 빤한 전개라 첫장을 보면서 예상가능한 스토리 전개였다. 범인을 궁지로 몰아가는, 혹은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의 스릴이라던가 긴박감 같은 것을 기대한다면 낭패를 볼 것이다.  

짤막한 분량에 집약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무리없이 지루하지 않게 끌어갔다는 점은 이 작품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신선하지는 않았지만,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충실했다고 할 수 있겠다.   

소년범죄에 대한 처벌의 강도와 제재에 대한 문제, 소년범죄에 대한 어른(미디어, 법, 학교) 들의 태도의 모순, 좀 더 나아가자면, 사이코패스같은 녀석들에게도 어느 정도 자신의 사정은 있었다?  

무지 재미있는 예고편을 보고, 기대를 하고 영화를 보고 나서, 예고편이 다였네. 하는 기분이 이 책을 읽은 후 나의 솔직한 감상이다. 사실, 그닥 기대가 컸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책은 책도 책이지만, 책외적인 것으로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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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박물학자
로버트 헉슬리 지음, 곽명단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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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에서 찰스 다윈까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고대로부터의 많은 사람들의 모험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 책을 보고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책을 엮어낸 로버트 헉슬리는 영국 자연사 박물관 식물학부 표본실장이다. 글과 짜임새또한 나무랄 것이 없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 사료의 양과 도판의 질이 엮은이의 프로필 덕분에 더욱 신뢰가 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종이책을 읽는 즐거움을 느꼈다. 라고 한다면, 이 책의 훌륭함이 조금이나마 전해질까? 허튼페이지가 하나도 없다. 특유의 오래된듯한 페이지의 느낌은 바로 목차와 책정보서부터 시작된다. 왜그런지, 나는 이 부분이 신경쓴 것 같이 보여서 특히 맘에 들더라. 차례에는 이 책에서 시대순으로 다루고 있는 40여명의 박물학자의 이름과 간단한 소제목, 그 단락의 저자가 나와 있다. '레온하르트 푹스, 삽화의 중요성을 깨닫다' 브라이언 . 오글비' 심플하면서도 완벽한 목차라고 생각된다.

이런식의 튄자국을 보더라도 놀라지 마라. 책은 바랜듯한 종이와 하얀종이가 번갈아 나오는데, 이런 바랜듯한 종이(멋진 옛스런 효과인데, 종이는 좀 비싸보인다.)는 시대설명과 목차에 나오고,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하얀종이가 나와서 구별이 된다. 이부분도 좀 멋짐.

바랜듯한 종이에 나온다고 도판의 퀄러티를 의심할 필요 전혀 없다. 멋진 바탕이다!
무튼, 중간중간 이런 큼지막한(이 책은 꽤 큰 판형이다.)일러스트들이 들어있고, 이 일러스트들은 물론 다 그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마리아 지빌라 메리인이 그린 산누에나방과의 Arsenura armida. 나방이 탈바꿈하는 과정에 매료된 메리안이 최로로 생애주기 전 단계에 걸친 나방의 모습을 한 폭의 그림에...' 뭐 이런 설명이 옆에 붙어 있다.

이 책에 나온 도판들의 특징이, '와, 예쁘다, 화려하다, 퀄러티 죽이는데' 하고 넘어가는 도판들이 아니라(내가 예전에 꽃,식물 도판보면 주로 그랬다;;) 그림 하나하나 찬찬히 보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메리안에 대해서는 뒤에서도 소개된다. 사진도 현미경도 없던 시대에 오로지 '끈기있는 관찰'로 이와 같은 그림을 그리며 연구했다는 사실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콘라트 게스너의 <동물 탐구>에 복제하여 수록한 알브레히트 뒤러의 코뿔소 그림 판화. 이 그림은 낯익은 사람 많을것이다. 독일과학교과서에 가장 오래 실린 삽화라고 하는데, 이 삽화를 수록한 <동물 탐구>의 박물학자겸 서지학자였던 콘라트 게스너도 뒤로가면 한 챕터 차지하고 있다.

1476년 베네치아에서 출판된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에 관하여> 라틴어판 표지. 유럽에서 나온 최초의 과학서들 가운데 하나이다.

아름다운 도판이다.

'모든 자연에는 경이로운 무엇인가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동물의 신체 부위에 관하여(제1권)> 중에서

이 책이 아리스토텔레스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는 이 책에서 '철학자 겸 최초의 박물학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하긴, 그가 최초인 것이 어디 박물학 뿐이겠냐마는. 그 유명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의 전체 그림과 일부가 확대된 그림이 도판에 나와있는데, 중간의 두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라는건 알고 있겠지만, 그들을 지켜보는 오렌지색 옷 입은 사람이 식물학의 아버지인 '테오프라스토스' 인 것은 잘 모를듯. 테오프라스토스는 적절하게 아리스토텔레스 다음 챕터에 나오고 있다.

플리니우스 챕터.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생소한 이름들 중에 아는 이름이 나오면 반갑다. 로마 이야기를 좋아하다보니 관심 있는 플리니우스. '박물지'로 이름을 떨친 그의 단문소개는 '지식을 수집하다' 이다. 플리니우스가 나오는 첫장에 나오는 첫삽화(오른쪽 그림)는 무려, 나이팅게일과 장미를 세밀하게 관찰해 그린 그림으로 베수비오 화산 폭발 때 묻힌 폼페이의 어느 집 벽에서 발견한 벽화이다. 이런식의 센스, 정말 멋지지 않은가!!

가장 맘에 들었던 챕터들이 있는데, 플리니우스, 존 오듀본, 메리 애닝,등등등 그리고 레온하르트 푹스이다. 이 책에서 '삽화의 중요성을 께닫다' 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사진 왼쪽의 그림은 책을 인쇄한 후 손으로 채색한 것(품삯이 싼 어린이나 여성에게 채색작업을 맡겼고, 채색한 식물지의 가격이 몇 배나 더 비쌌다.고 한다.)이고, 오른쪽은 <식물 탐구에 관한 주목할 만한 논평> 마지막에 실린 삽화의 밑그림을 그리는 하인리히 퓔마우어와 알브레히트 마이어, 목판 새기는 파이트 루돌프 슈페클레의 초상이다. 르네상스 시대 도감 중에 화가 초상을 수록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푹스는 책의 성공여부가 삽화가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 하니, 21세기에 나온 이 책에 소개된 많은 훌륭한 도판들도 이 책의 성공을 이끄는 견인차? 하는 생각이 뜬금없이 든다.

어디 삽화가 끈기와 관찰과 모험에 의해서만 이루어졌겠는가,
공부와 이야기와 인용도 포함된다.

알드로반디가 수집한 그림과 자료들중에 나오는 동물들(?)이다. 이런 삽화를 보는 재미, 지금은 멸종된 동물을 볼 때의 안타까움 등등도 느낄 수 있다.

알드로반디의 방대한 수집물은 후에 볼로냐에 기증되어 '볼로냐 시청은 이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볼로냐 최초의 공립 박물관을 세웠다. 슬론의 방대한 수집물이 후에 런던자연사 박물관의 토대가 되기도 하였으니, 박물학자 개인의 집념과 그들이 해낸 일은 정말 놀랍기만 하다.

맨 앞장에 나왔던 '곤충의 변태에 매혹되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챕터다.
'가장 아름답고 더없이 특별한 애벌레들은 지극히 볼품없는 녀석들로 바뀌고 ... 아주 수수한 애벌레들은 눈부시게 고운... 나비들로 탈바꿈하는 일이 연거푸 일어났다. '마리안 지빌라 메리안의 <수리남 곤충의 변태(1705년) 중에서'

이 챕터에서는 지극히 여성스러운 예쁜 수채화 도판들이 나온다.

사회적 신분은 낮았지만 독학으로 남성의 세계에 뛰어들어 살아생전 명성을 얻은 매리 애닝의 초상화. 화석 수집가다. 맘에 들었던 챕터

정리해 놓은 사진들은 많지만, 여기서 마무리한다.
존 오듀본의 삽화는 많은 아름다운 삽화들 가운데서도 엄청나게 박력있게 눈에 확 들어오는데, 작은 사진으로는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힘들듯하다.

책장 넘기는 즐거움, 아름답고 신기한 과거로부터의 여행이었다.
후에 리뷰도 쓰겠지만, 그림뿐만 아니라, 글도 흥미롭고 유익했다는 것 정도만 여기 포토리뷰 말미에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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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31 1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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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09-10-31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정말 너무 매혹적인 책이네요. 당장 지르고 싶게 만드는.. 그러나 가격이 왠지 후덜덜일 것 같아서. 지금 가격 확인하러 갑니다. 리뷰도 꼬옥 올려주세요^^

하이드 2009-10-31 18:15   좋아요 0 | URL
책이 커서, 풀페이지로 나온 그림들, 굉장히 박력있고, 멋진데 저렇게 조그만 사진으로밖에 안 나오니 아쉽네요. 가격은 뭐, ㅎㄷㄷ 맞습니다. ^^

2009-10-31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31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뉴요커의 할로윈테마 커버.
코믹북 아티스트 크리스 웨어Chris ware 의 작품으로 뉴요커 사이트에서는 만화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할로윈을 모던하게 해석한 것이 눈에 띈다.
호박이나 박쥐, 마녀, 해골 없이, 밤의 검정색과 주황색 라인/글씨만으로도 할로윈표지의 느낌을 보여준다.

가면을 쓰고, 문 앞에서 사탕을 구하는 꼬마유령들,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가 보는 아이폰 빛이 얼굴에 반사되어 더 유령같은 얼굴을 만들어낸다.

기발하고, 쿨하고, 시의적절하며, 모던하다!!  



 

------------------------------- 뉴요커의 할로윈 커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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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30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30 1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tty 2009-10-30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요커 커버 진짜 너무 멋져요. 아 이거 보니 탁상용 데일리 캘린더 사고싶네요 ㅠㅠ
연말에 고르고 골라서 데일리 캘린더 마련하는게 낙이었는데...ㅠㅠ

카스피 2009-10-30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마지막 달을 가로질러 나르는 마녀의 표지가 제일 멋있어 보이네요^^
 


얼마전 JCO 책의 리뷰를 쓰면서 그녀는 노력형 작가와 천재형 작가중 노력형 작가라고 이야기한 적 있다.

그녀에 대한 나의 인상을 결정한 것은 아무래도 임팩트가 덜했던 <블랙 워터>보다는 두번째 읽은 작품인 <사토장이의 딸>일 것이다. 첫문장에서 마지막 문장까지 정확하게 계산해서 딱 떨어지게 쓰는 완벽함이 천재보다는 노력가에 가깝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사토장이의 딸>의 박력있는 전개와 강한 여주인공, 10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이 이토록 완벽한 시작과 끝과 과정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찰 지경이었다.  

그 후에 읽은 <멀베이니 가족들>에서는 약간 실망. <사토장이의 딸>에 그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들어가서 더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멀베이니 가족들> 역시 좋은 작품이지만, 길이에 비해 단조로운 이야기 전개였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읽은 <소녀 수집하는 노인>에서도 역시, 그녀의 조사와 노력을 십분 느낄 수 있었다.

문학적 센스와 감각이 없다면 그런 멋진 작품집을 만들지 못하겠지만, 어쨌든 다섯 거장( 헤밍웨이, 헨리 제임스, 애밀리 디킨슨, 마크 트웨인, 애드거 알랜 포우)의 작풍과 작품. 그들에 대한 역사를 새로운 창작물 속에 세밀하게 끼워넣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거다.  

조이스 캐롤 오츠하면, 어떤 연유에서인지 생각나는 작가가 나에게는 존 어빙이다. (존 어빙은 커트 보네것이나 J.D. 샐린저의 이름과 함께 오르내린다고는 하지만) 다작에 장편을 쓰는 작가라서?   

 

 

의도적으로 삽입한 사진은 아님. ^^  사진은 존 어빙와 그의 아들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타고난 이야기꾼' 은 바로 존 어빙이다.  

 

 

 

 

 

 

 

 

 

 

 

 

작품이 정말 많긴 많다. 우리나라에선 어쩌자고 다 분권으로 나왔는지; ( 가아프가 본 세상이나 일년동안의 과부는 충분히 한권으로 나올 수 있는 양이었는데 말이다.)  

다음 장을 예측할 수 없는, 클리쉐 따위는 개나 줘, 그가 창조하는 인물들, 불행, 행복,  모든 것이 새롭다.
조이스 캐롤 오츠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그녀가 한문장 한문장 계산된 문장을 쓴다면, 존 어빙은 그냥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술술술술 자판이 알아서 움직여 줄 것 같다. <가아프의 세상>에서의 그 어처구니 없는 불행한 사건에 충격받고, 도대체 이건 뭔가. 싶었는데,  

만만치 않은 분량이라 미루고 있었던 <사이더 하우스>를 읽기 시작한 채 5분도 안 되어, 아, 진짜 존 어빙은 타고났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이제 1권을(480페이지) 다 읽었을 뿐이니 2권에서 또 어떤 쇼킹한 이야기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든 '타고난 이야기꾼'에 대한 생각은 읽을 수록 굳혀질 뿐이다.  

이야기는 메인 주 세인트 클라우즈(St. Cloud's)고아원의 남아관에서 시작된다. 병원에서 간호사 둘이 신생아의 이름을 짓고 의무 포경 수술을 받은 작은 성기들이 잘 아물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당시 (192x년) 세인트 클라우즈에서 태어나는 남자 아기들은 모두 포경수술을 받았는데, 그건 이 병원의 의사가 전쟁 중에 포경수술 받지 않은 병사를 치료하면서 이런저런 문제를 겪었기 때문이다. 이 의사는 고아원의 책임자고, 이름은 윌버 라치였다. 두 간호사중 하나는 '라치'라는 성에서 단단하고 강한 침엽수를 연상했다. (라치Larch는 낙엽송 의미) 하지만 그 간호사는 '윌버'라는 우스꽝 스러운 이름을 싫어했고, 그것을 나무같이 실질적인 단어와 나란히 붙여 놓은 어리석음에 분개했다. 또 다른 간호사는 닥터 라치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신생아 이름을 지을 차례가 되면 존 라치, 존 윌버, 윌버 윌시, 등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첫장부터 이야기의 배경이자, 시발점인 세인트 클라우즈 고아원의 중요 인물인 두 간호사 에드너와 안젤라, 그리고 주인공인 윌버 라치에 대한 이야기가 청산유수로 흘러나온다.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기대하는 아이의 마음으로 눈 똘망똘망 뜨고, 책으로 몰입하게 한다.  

윌버 라치라는 인물에 대해 세세하게 해부하듯이 펼쳐 보여주어서, 윌버 라치의 말 하나하나, 행동과 판단 하나하나에 강한 설득력을 지니게 한다.   

겨울이 긴 동네, 메인주의 황량한 마을에 있는 세인트 클라우즈  

세인트 클라우즈에서 봄은 사건을 의미했다. 음주와 싸움, 매춘과 강간. 봄은 자살의 계절이기도 했다. 그리고 봄이면 고아의 씨들이 과도하게 뿌려졌다. 그렇다면 가을은? 닥터 윌버 라치는 고아원의 일상을 기록하는 일기 비슷한 자신의 일지에 가을에 대해 썼다. (...) "바깥세상에서는 가을이 수확의 계절이다. 사람들은 봄과 여름의 수고로 맺은 결실을 거둬들인다. 이 결실은 겨울이라고 불리는 비성장의 계절과 긴 잠에 대비한 것이다. 하지만 이곳 세인트 클라우즈의 가을은 5분이면 지나간다." 하기야 고아원에서 어떤 날씨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휴양지'의 날씨? 또 고아원이 '청정'마을에서 번창할 수 있기나 할까?

이 배경은 윌버 라치와 함께 이야기의 주인공인 호머 웰즈의 성격을 설명해주는 것 중에 하나다. 독자에게 '세인트 클라우즈' 고아원과 고아원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닥터 라치, 호머 웰즈, 나중에는 멜로니까지...가 읽어주는 <제인 에어>와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그 어느때보다 더 의미심장하다. 많은 현대의 작품 속에 <제인 에어>와 디킨스의 작품들이 나온다. 이렇게 감정이입되는 작품속의 제인에어와 데이빗 코퍼필드는 정말이지 처음이다.  

윌버 라치와 호머 웰즈의 고민은 독자에게도 역시 같은 고민과 질문을 하게 한다.  

몇몇 장면 묘사는 정말 극적이어서,  아, 이래서 영화보다 책. 이런 느낌을 주기도 한다.

대체 무슨 일이야? 멜로니는 그녀의 신랄한 창가에서 궁금해하며 서 있었다.
강렬한 천장 조명 때문에 창문에 그녀의 모습이 비쳤고 흰 캐딜락이 그녀의 윗입술에 멈춰 섰다. 컬리 데이가 그녀의 뺨을 가로질러 뛰어갔고 그녀의 목에서 아름다운 금발 여자가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안고 있었다.  

꽤 중요한 장면이다. 그녀보다 먼저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한 호머 웰즈가 약속을 깰 것이라는 예감과 복선
멜로니라는 인물은 존 어빙이 만든 기괴한(?) 인물 중 하나인데, 2권에서는 어떤 활약(?)을 펼치지 않을까 기대중이다.
무튼, 이 장면에서 멜로니가 창가에서 고아원에 찾아온 윌버와 캔디, 그들의 캐딜락을 보는 모습을 묘사하는데, 소름이 쫙 끼쳤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이야기들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일까? 존 어빙의 책을 읽으면, 그는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아니면 뭐가 되었을까? 레슬링 코치? (그는 레슬링 선수였다.)  가끔 인터뷰를 보면, 꽤 심심하지만, 그가 쓰는 책만은 언제나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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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30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10-31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 헌책방에서 존 어빙<제3의 호텔>(호텔 뉴햄프셔의 번역본)을 샀어요.이 책은 요즘 안 나오더라구요.하이드 님은 읽으셨는지요? 저는 꽂아놓고 아직 읽지는 못했어요.

하이드 2009-10-31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가앞, 사이더하우스, 미니오웬 3권 읽었네요. ^^ 찾아보면, 책장에서 원서 몇 권 더 나올듯도 한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