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인간은 참 잘도 반한다.
오늘 첫 수업 최영미 선생님의 서양미술사 ' 문학과 미술의 특별한 만남' 이란 부제를 담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 서양미술사 강의에 들어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박지성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팀버스에 올라탈때 감독이 ' 웰컴투 프리미어리그' 그랬단다. 3년만의 강의라 많이 떨린다며, 첫수업에서 써먹어야지 생각했다고 한다.
그녀가 몇마디 하기 전부터 그녀의 스타일은 확연히 드러났다.
말이 빠르고, 어수선하며, 문장의 끝도 잘 안 맺는다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그러니 이해하시라고 말한다. 자신은 이번 수업에 가능한 많은 도판을 보여줄텐데, 자칭,타칭 '최고의 슬라이드 편집자' 라고 하며 자신감을 보인다. Lucky. 원하는 바다. 처음부터 끝까지 쉴새없이 돌아가는 두개의 슬라이드. 슬라이드 넘어가는 0.5초의 시간도 아까워서 넘어갈때마다 '빨리빨리' 재촉하던 그녀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난다. 슬라이드 수업은 기대했던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고 유익했다.

그녀는 정말 미인이다.
화장기 없는 피부는 아기피부같이 잡티하나 주름하나 없이 뽀얗다! ( 그렇게 피부 고운 사람 첨봤다!)
앞가르마를 탄 검은 머리는 그녀를 지적으로 보이게 한다.
짙은 카키색의 정장 수트가 쫙 떨어지는 슬림한 몸매에
큰 키. 검정 단화에 고상하고 화려한 스카프를 매고 있었다.
나중에 스카프를 벗으니,
정말 아름다운 길쭉한 목선이 드러났다.
목소리는 굉장히 지적이고
말은 굉장히 빠르다. 그녀의 말대로 어수선하기 그지없다.
축구를 무지 좋아한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조합된 그녀는 정말 멋졌다.
미술사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알아야 하지만, ' 인생 경험이 풍부해야 한다' 고 한 말이 특히 와 닿았다. 고대부터 중세 직전까지를 훑었는데, 에게해 미술, 그리스 미술 슬라이드가 나올때는 겁나게 뿌듯했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서 라루스 미술사까지, 그 외 이것저것 미술책까지 그닥 정독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리저리 뒤적여 보긴 했기에, 이야기들은 알고 있는 것들이 많았지만, 시대별로 지역별로 정리되면서 새롭게 알게되는 이야기들의 재미가 쏠쏠했다.
그녀의 강의의 가장 큰 힘은 그녀가 지금 '그녀가 가르치고 있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투에 절절이 드러났다. 알렉산더 대왕의 마라톤 전투를 그린 벽화를 보며 '이때부터 원근감이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 하다가, '이 말 뒷모습좀 보세요. ' .. ' 야, 정말 대단하다. ' ' 이것봐요. 이거. 이게 이렇게 뒷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림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데, 이집트 미술에선 생각하기 힘든거죠. ' ' 정말 멋지다'
혼자서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어수선화법에 듣는 사람을 말려들게 한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 에드워드 번즈 등의 ' 서양문명의 역사 1-4' 그리고 성경을 꼭 읽어야할 책으로 꼽았는데, 겁나게 설득력 있어서 그 책들이 세상에서 재미있고 유익한 책들처럼 느껴지며, 에드워드 번즈의 '서양문명의 역사 1-4' 없는게 죄스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미술과 문학의 만남이다.
직접 작품을 보며 얘기하기도 하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나고 페리클레스가 읽었던 장례식 연설문을 낭독하면서 또 막 감탄하고 멋지다. 그런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도 사치로 흐르지 않고
지혜를 사랑하면서도 유약함에 빠지지 않고
부자는 부를 자랑하지 않고 그것을 활동의 바탕으로 삼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단지 가난을 이겨내는 노력을 게을리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 페리클레스의 '장례식 연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그녀가 정말 좋아한다는 사포의 시
Ah, The Sweet apple that reddens at the tip
of the branch on the topmost limb,
and which the pickers forgot - or cold not reach
Or the hyacinth on the hills that shepherds
trample unknowingly under foot, yet on the ground
the flowers how its purple
본인이 번역한 본을 낭독해주었다.
그리스 최대의 여류시인인 그녀는 레스보스섬에서 젊은 소녀들을 모아 시를 가르치며 예술활동을 했다고 하는데, '레즈비언' 이란 말은 거기서 유례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묘한 질문 던져주신다. ' 내가 레즈비언일까요, 아닐까요? 말할 수 없습니다.' 뭐, 내가 지금 '앰 아이 블루' 를 읽고 있어서 그렇게 들렸을 수도 있다.
아무튼 정말 멋지다.
지난번 진중권 선생님의 수업에 이어 이번에도 개근상 탈 수 있을듯 -_-v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얘기해준 에피소드 하나와 관련 이야기를 옮기는 것으로 첫수업 후기 끝!
말 옮기는건 정말 조심스러운데, 특유의 어수선하고 빠른 말투에 내가 잘못 알아듣거나 오해했을 수도 있으니깐, 아무튼, 한다리 건너 전해지는 거니, 적어도 내가 페이퍼에서 이야기하는 걸로 인해 그분에 관해 결코 조금의 나쁜 얘기나 추측도 하시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내가 '화가의 우연한 시선' 이라는 책. 제목 맞나? 내 책인데, 제목이 가물가물하네. 아무튼 그 책에 보면 첫 페이지에 이 조각이 나와 있는데, 이 책 탈고할 당시가 대선 직전이었어요. 나름대로 한 후보에게 도움 될 얘기 썼는데, 그 분은 그거 모를꺼야. 그리고 그 분 나 별로 안 좋아할꺼야. 왜냐면. 아, 또 잡소리가 길어진다. 너무 길으니깐 말자. 근데, 당시에 내가 인터뷰 하길 했었는데, 어떤 이유 때문에 안 나갔었거든요. 밝히긴 좀 뭐하고. 돈이 작아서 안 나간다고 했어요. 사실 내가 인터뷰 하고 에이. 밝히자. ㅎ 주간지였는데, 내가 돈도 세게 부르고, 또 내 글 절대 안 고친다고 각서 쓰라고 했더니, 돈은 많이 줄 수 있는데, 이때까지 편집장이 그런 각서 쓴 적 없다고 안 된다고. 아무튼, 그래서 그 분 비서들은 내가 나가는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이 결국 나가서 그분이 나 별로 안 좋아 할꺼야. '

이집트 미술에 나타난 기하학적 엄격함은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나일강에 의존한 대규모 관개 농업과 관계가 있습니다. 대홍수를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주민들의 공동작업을 강제할 강력한 절대 권력이 필요했지요. 대자연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기원전 민심의 동요를 막고 왕국을 보존하기 위해 지배자는 완벽한 평정심을 보여 주어야 했지요. <멘카우레와 그의 왕비>를 보세요. 굳은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는 그는 웃지 않습니다. 울지도 않지요. 성공적인 통치자라면 대중 앞에서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데, 그 불문율을 어긴 어느 철없는 왕이 있었지요.

<산우스레트 3세의 초상> 은 지금으로부터 4천년 전 이집트 왕의 초상입니다. 처음 이 작품의 도판을 접했을 때 저는 그냥 지나쳤지요. 뭉개진 코와 윤기 없는 표면은 제 시선을 끌지 못했지요. 두꺼운 미술사 속에 들어간 무명(無名)의 유물이거니, 어느 변방에 살았던 촌장쯤 되려니 ......
왕이나 신분이 높은 사라이 아니면 엄격한 규칙이 완화되어 직접 관찰에 의존한 사실적인 표현을 허용하던 예가 흔하지 않았던가. 그것이 왕의 얼굴임을 알고 비로소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고뇌가 어린 표정이 놀랄 만큼 현대적입니다. 그는 젊지 않지요 아름답지도 영웅적이지도 않지요. 파라오, 하면 흔히 연상되는 모습 대신 그늘이 드리운 얼굴은 감수성이 예민한 예술가처럼 보입니다. 깊게 팬 눈과 입 주위에 도사린 주름은 그리 섬세하지는 않지만 몇 개의 단순한 선이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거인의 고뇌를 전달합니다. 자잘한 주름이었으면 이토록 진지한 우수(憂愁)를 창조하지 못했을 겁니다. 두꺼운 눈두덩, 축 처진 눈초리, 찌푸린 미간, 두드러진 광대뼈,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거리에 나가면 몇 발짝 못 가 마주치는 초라한 얼굴입니다. 중년의 남자인지 겉늙은 아줌마인지...... 신분을 짐작케 하는 머리와 옷이 없이 이목구비만 달랑 떼어놓고 보면 누구든 나이와 성별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지요. 자연스레 닫힌 입술의 양 끝에 찍힌 희미한 보조개 같은 자국에 저는 감탄했습니다. 작은 주름 하나가 그 어떤 말보다도 주인공의 피곤한 삶을 웅변하고 있지요.
여기, 이 깨어진 돌 조각에 새겨진 그는 더 이상 영원불멸의 신이 아닙니다. 왕의 갑옷을 벗고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나약한 개인일 뿐입니다. 크기도 작아 높이가 겨우 16.5m 밖에 안 됩니다. 보존상태가 완벽했다면 감동이 덜했을 텐데. 불완전한 파편이기에, 왕관도 없고 왕을 표시하는 특별한 머리장식도 없는 모난 돌조각이라서 더욱 진한 인간미가 배어 나옵니다. 산우스레트 3세의 생동하는 리얼리티에 비하면 멘카우레 왕은 얼마나 정적이고 경직되어 있는지. 얼굴 위에 한 꺼풀 가면을 쓴 것 같습니다. 몇 천 년간 변하지 않은 완고한 미술의 전통을 깨고 새로운 양식의 왕실 초상을 도입한 그는 어떤 왕이었을까요? 자신을 초라한 범부처럼 표현하다니, 표현하게 용인하다니. 렘브란트에 못지 않은 통렬한 자의식의 소유자였던 그는 대체 어떤 인간이었을까? 그도 노예들을 잔혹하게 다루었을까? 전쟁을 즐겼을까? 아닐 것 같습니다.
(중략)
<산우스레트 3세의 초상> 에 나타난 예리한 심리적 사실주의는 로마로 이어져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같은 뛰어난 초상 조각을 낳았습니다.

똑같은 소박함이지만 저는 이 천민 출신 황제의 쏘아보는 듯 근엄한 눈빛보다 산우스레트 3세의 상처받기 쉬운 얼굴에 더 정이 갑니다. 매끄러운 로마의 대리석보다 거친 이집트의 규암 조각이 저를 끌어당깁니다. 그는 자신을 근사하게 포장하지 않습니다. 상대를 압도하려 눈을 부릅뜨지도 않습니다.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연출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더 아름답지요. 그처럼 진정한 고통을 아는 투명한 권력이라면 기꺼이 그 앞에 머리 숙일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