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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꽃들 ㅣ 돌런갱어 시리즈 1
V. C. 앤드루스 지음, 문은실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이십여년만에 만난 책이다. 표지도 훨씬 화려해졌고, 이전에 삭제되었던 부분도 포함된 완역본이라고 한다. 다른 거보다 이 책의 독자였던 내가 이십살을 더 먹었다. 끄어어어억
이십년 전에 그 나이의 감수성을 풀가동해서 읽었던 책들이라면 '다락방의 꽃들' 시리즈와 영웅문 시리즈가 아니었나 싶다. 영웅문은 그 동안 몇번이나 더 읽었지만, 이 책들은 다시 읽을 기회가 없다가 이십여년만에 만나는 거라는 감상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내가 이만큼 변했으니, 분명 이 책이 다르게 느껴질꺼라고, 시시하게 느껴질꺼고, 그건 서글플거라고 지레 겁먹었던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내 생각은 틀렸다.
이 책은 여전히 재미있고,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 지만, 이 책은 여전히 두근거린다. 그 당시에는 의식하지 못했을 장치들이 눈에 들어오고, 빠른 전개로 여러가지 일이 폭주전차처럼 일어나는데, 그 에피 하나하나가 다 생생하게 기억나고, 그 운명의 기차가 비극의 종점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을 알기에 ( 읽으면서 생각나는 중이라 2,3,4,5권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는 아직 가물가물하다) 가슴 죄며 읽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죽으면서 천상 여자에 아버지에게 의지하기만 해왔던 예쁘기만한 엄마와 함께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할머니네 집으로 들어가 다락방에 갇히게 된 네 남매. 사촌과 결혼한 죄로 광신도에 가까웠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이들의 엄마인 코린을 내치지만, 할머니는 네남매를 숨기는 조건으로 그들을 다시 받아준다. 하루면 할아버지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 하루는 일주일이 되고, 한달이 되고, 기약없이 그들은 갖혀지내게 된다.
크리스와 나는 사과 껍질 길게 깎기 시합을 벌였다. 껍질이 길고 긴 줄로 고불고불하게 흘러내렸다. 오렌지를 까서 쌍둥이가 싫어하는 하얀 줄을 하나하나 전부 떼어내기도 했다. 치즈 크래커가 든 작은상자들이 있을때는 정확히 4분의 1로 나누었다.
이십년전에 읽은 이 장면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나서 깜짝놀랐다. 이 책이 고딕로맨스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대저택, 감금, 아이들 등이 나와서라고 생각하는데, 갇혀 있는 아이들은 생각보다 끔찍했지만, 이십년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갇혀 있는다는 것에.. 뭐라고 말하기 힘든데, 갇혀있다고 막 마음이 파괴되고 그럴것 같지는 않다. 여튼, 그건 딴 얘기고. 캐시와 크리스가 캐리와 코리, 쌍둥이 동생들을 돌보며 성장해가는 부분이 가장 와닿았다.
그 금요일에 이상한 일이 우리 모두에게 일어났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다가 그만 쪼그라들고 말았다. 그다음붙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놀이를 해도 책을 읽어도 즐겁지 않았고, 말없이 튤립과 데이지를 오리며 엄마가 다시 희망을 들고 우리를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어렸고, 희망이란 어리고 젊은 사람들에게는 그 강한 뿌리가 꺾이지 않는 법이다. 희망은 발가락 끝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락방에 들어서서 자라가는 우리의 정원을 보았을 때 우리는 또 웃고 연기를 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이 세상에 우리의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칙칙하고 추한 것에서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550페이지가 넘는데,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전개가 휙휙 지나간다. 다음권이 엄청 기대된다.
다락방 시리즈가 길티플레져라고 선전하고, 나도 아마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왜 그런지 몰라버리게 되었다.
코린이 아이 버리는 죄책감에 공감해서 길티플레져라고 느꼈을리는 없는데 말이다.
이 시리즈하면 가장 기억에 남아 있던 캐시와 크리스, 그리고 캐시와 바트(->2권에 나오지 싶다) 하나를 꼽는다면, 캐시와 크리스의 이야기이겠는데, 소재 자체가 지금에 와서는 많이 나오는 소재이고, 여기서는 기억과는 달리 놀랄만큼 점잖게 순간적으로 지나가고, 작가가 굉장히 부드럽게 문장으로 갈등을 여며주어서 ( 물론 그 둘은 죄책감에 어쩔줄 모르는 현재진행형이겠지만, 그들에게는 살아나가야만 하는 더 큰 소명이 있다.) 이 부분이 이십년전과는 다르게 느껴진 부분이겠다.
엄마가 다락방에서 내려오라고 크리스와 쌍둥이를 불러서 크리스에게 입을 맞추고, 그의 금발 고수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서로 놀리듯 노닥거리면서 쌍둥이는 거의 거들떠도 안 보는 것을 보자, 방금 전에 나누었던 친밀함이 곧바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캐리와 코리는 엄마가 와 있는 것이 이제는 편하지 않은 듯했다. 그들은 내게 달려와 무릎에 기어올랐다. 내가 그들을 바짝 안았고, 그들은 엄마가 크리스를 쓰다듬고 그에게 키스와 애정을 퍼붓는 것을 지켜보았다. 엄마가 쌍둥이는 보고 싶지도 않다는 듯이 대하는 것을 보고 나는 무척이나 심정이 상했다. 크리스와 내가 사춘기로, 성인을 향해 가는 동안에 쌍둥이는 오갈 데 없이 정체되고 있었다.
희망을 놓을 수 없는 아이들을 상대로 희망으로 낚시질하는 코린. 이 정말로 끔찍해지기 시작한 부분이다. 약하고 무능력한 여자. 에서 자식을 죽이는 금수만도 못한 '엄마'가 되어 쌍둥이를 무시하게 되는 부분.
이야기의 전개는 어리둥절할만큼 빠르고, 작가가 그리는 네 남매와 엄마, 할머니의 모습은 대단히 생생하고, 선명하다.